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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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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20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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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146화

DUMMY

빅터는 힘없이 조그만 의자에 풀썩 걸터앉았다. 그는 떨리는 눈을 도무지 멈출 수가 없어 불안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그의 손으로 찢어버린 빈 캔버스를 향해 눈을 고정시켰다.



“엄마가 너보고 날 죽이라고 했다고?”



“비슷해.”



펠릭스는 주저하거나 미안하다는 낌새도 없었다.



“정확하게 뭐라고 그랬는데?”



“약을 만들어 달라고. 형이 갖고있는 그 쓸데없는 정열을 뭉텅뭉텅 잘라내 못 쓰게 만들어 달라던데.”



“할 수 있어? 그런 약을 만들 수 있다고?”



“물론이지. 까짓거, 한 수레도 만들어 줄 수 있어.”



빅터는 고통스런 신음을 흘리며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연금술사라는게 그렇게 끔찍한 직업이었던가.”



“달리 뭘 기대한거야? 내가 동화 속의 요정처럼 형을 도와주기라도 할까봐?”



펠릭스는 빅터에게 농담조로 대꾸했다.



“그럼 가서 네 멋대로 약이나 만들지, 난 왜 찾아온거야! 날 놀리려고? 내가 좌절하는 얼굴을 보고싶어서? 여기서 피눈물이라도 쏟아주면 만족할 셈이냐?”



빅터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있는 힘껏 펠릭스를 노려보며 당장이라도 그를 후려칠듯 팔을 움찔거렸다.



“아, 내가 만들려는 약에 대해 설명해 주려고. 내 손님들은 자기가 무슨 약을 먹는지 알아야 해.”



“그게 연금술사들의 윤리인가? 그래서, 나한테 친절하게 설명까지 해 주려고? 날 어떻게 죽이겠다고 말이야!”



“아니. 내 개인적인 직업적 자존심. 다른 연금술사들은 상관없어.”



빅터는 금방이라도 폭발할듯 몸을 움찔거리다가, 갑자기 한 순간에 모든 힘이 빠진듯 도로 의자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대체, 왜? 왜 이제와서? 지금까지 날 벌레보듯 무시하기만 했으면서. 그런데, 왜 갑자기 날 죽이겠다고그래? 이제 겨우······.”



“글쎄. 갑자기 그러는건 아닐걸. 뭐 짐작가는일 없어?”



빅터는 펠릭스가 넋두리에 슬그머니 끼어들자 다시 두 눈동자를 떨었다.



“얼마 전에, 아주 좋은 사람을 만났어.”



“또?”



“또? 또라고?”



빅터는 거칠게 고개를 돌려 펠릭스를 노려보았다.



“네가 어떻게 알아? 이게 첫 번째인지 아닌지.”



“가끔 그레고리가 집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편지 써 주거든.”



“그 빌어먹을 첩자놈이. 이 집안에 내 편이라고는 한 명도 없군.”



“평소에 잘 좀 하지 그랬어.”



“닥쳐!”



빅터는 다시 얼굴을 붉혔다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그래서, 이번으로 몇 번째더라? 다섯 번째 아니야? 이제 그만 질릴 때도 됐잖아. 그동안 만난 사람들도 하나같이······.”



“이번에는 달라! 이번 만큼은, 지금까지 만난 그 꽃뱀들과 다르다고! 나를 진심으로 이해해주는 사람을 드디어 만난거야. 내가 그린 그림들의 가치를 알아본다고. 내 마음 속에 불붙은 열정의 불꽃을 알아보는 사람이야!”



“또 꽃뱀이네. 질리지도 않아?”



“닥치라니까!”



빅터는 그의 동생에게 달려들어 멱살까지 붙잡았지만 차마 그 이상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펠릭스는 겁먹은 기색은 요만큼도 없이, 무슨 파리 쫓듯 빅터의 두 손을 탁 쳐냈다.



“이번에는 재수가 없었어. 형이 만난 그 사람 말이야.”



펠릭스는 빅터가 힘없이 두 팔을 아래로 늘어뜨리는 것을 힐끗 보았다.



“엄마랑 닮은 사람이래.”



“누가 그래.”



“우리 엄마가. 본인 입으로 직접 말했으니까, 뭐. 아마 확실하겠지. 엄마가 보는 눈은 정확하잖아.”



“그러면, 오히려 좋아해야 하는 거 아니야?”



“무슨 소릴 하는거야?”



펠릭스는 어이가 없다는듯 피식피식 헛웃음을 터트렸다.



“엄마같은 사람이 웨일로 들어오면, 엄마가 했던 거랑 똑같은 일을 저지르지 않겠어? 방해되는 사람들을 치워버리고, 쓸데없어 보이는건 싹둑싹둑 잘라버리고. 자기 입맛대로 집을 바꾸고, 사람들을 바꾸고, 갖고 싶은게 있으면 뭐든 긁어모으고, 보기 싫은건 싹다 치워버리겠지.”



“그렇다고 날 죽이려고 해? 내가, 까짓 여자한테 마음 좀 줬다고서?”



“벌써 다섯 번째잖아. 처음보는 여자한테 할 말 못할 말 안 가리고 하소연하는것. 지금까지야 형이 어려서 대충 봐줬다곤 해도, 이젠 그렇게 못 하겠지. 그러다가 진짜로 형이 덜컥 결혼이라도 해 버리면 엄마도 여간 곤란한게 아닐테니까.”



“그 여자의 대변인이라도 된 셈이야? 꼴에 자식이라고, 싸고 돌기는. 몰라, 네 마음대로 해! 죽일 테면 죽여봐! 마음대로 해 보라고!”



빅터는 미친 사람처럼 광소를 터트리더니 목청이 터져라 있는 힘껏 웃음며 고개를 위로 치켜들었다. 하지만 펠릭스의 눈에 빅터는 여전히 겁쟁이일 뿐이었다. 자기가 겁먹었다는 사실을 드러낼 용기조차 없어 미친 척을 하는 겁쟁이.



“너무 겁먹지는 마. 먹고 죽는 약 아니야. 내가 만드는 약.”



“그럼, 불구가 되는 약인가? 두 번 다시 남들앞에 설 수 없도록?”



“아니. 사지멀쩡해. 아픈데도 없어. 큰 부작용도 없고.”



“무슨, 꿀물이라도 태워주려고? 펠릭스. 이제와서 무슨소리야? 내 정열을 도려내겠다며. 그게 날 죽이는게 아니면 대체 뭔데? 응? 뭐냐고! 평생 그것만 바라보고 살아왔는데, 내게서 그것마저 잘라내겠다고? 그럼 나한테 뭐가 남아? 날개꺾인 새를 새라고 부를 수는 있어?”



빅터는 계속해서 미친척 웃었지만 이제 그것도 힘에 부친듯 보였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더이상 웃지도 못하고 헉헉거리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빅터. 내가 무슨 약을 만들지 제대로 설명해 줄게.”



펠릭스는 자세를 살짝 고쳐앉았다.



“형이 갖고 있는 정열을 모조리 잘라낼거야. 그럼 형은 아주 고분고분한 사람이 될 테고, 아마도 그 이후로는 스스로의 의지를 갖지 못한채 인형처럼 시키는대로 따라가겠지.”



“시체만도 못한 삶이야.”



“그래도, 꽤 행복할걸? 재능도 없는 못난 그림에 매달릴 필요도 없어. 아버지의 명예를 위해서 어쩌고저쩌고 할 필요도 없어. 그러면 엄마랑 싸울 필요도 없을테고. 하인들이 형을 무시하든말든 아무런 생각도 느낌도 들지 않을 거야. 매일매일이 새롭게 느껴질테고, 아침 햇살과 새의 지저귐 소리만 들어도 입가에 절로 미소가 걸릴걸.”



“머리가 텅 빈 꼭두각시로 살라는 뜻이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 하지만 자기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꼭두각시는 거의 없어.”



“그게 가장 비참한 일이지. 자기가 불행한줄도 모르고 실실 웃으며 사는 꼴.”



빅터는 그사이 한 오 년은 늙은 얼굴로 펠릭스를 향해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날 그렇게 만들겠다고?”



“형한테도 나쁜 이야기는 아닐텐데. 형도 이제 그만 포기하고 싶잖아?”



“네가 어떻게 알아! 함부로······.”



“그림. 마지막으로 완성한게 몇 년 전이야?”



빅터가 하려던 말은 돌덩이가 되어 그의 가슴에 철렁 내려앉았다.



“뭐?”



“그림. 식당에 걸려있는 형 그림. 마지막으로 완성한게 벌써 삼 년 전이야. 그동안 일 년에 한두개 씩은 완성해서 식당에 걸었잖아. 삼년 동안 한 장도 못 그렸어?”



“그렸어, 그렸다고! 수도 없이 많이 그렸어!”



“완성한 건 없나봐. 식당에 안 걸어둔걸 보니.”



“부족해서 그래. 조금만, 조금만 더 하면······.”



펠릭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빅터의 어깨를 가볍게 붙잡았다.



“형. 그만해. 눈치챘지?”



“뭘, 내가 뭘?!”



“내 입으로 말하면 형만 더 비참해질텐데. 말할까?”



빅터의 얼굴은 붉다못해 새파랗게 질렸으며, 마침내 떨리던 그의 입술은 말소리를 만들어냈다.



“나가, 나가! 나가!!! 마귀같은놈. 두 번 다시 돌아오지마! 나가버려!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져!!!”



길길이 날뛰는 빅터의 두려움에 가득 찬 눈동자를 힐끗 보고는, 펠릭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씩 웃으며 대답했다.



“다음에는 천천히 약 이야기를 하자. 형이 원하는 게 있으면 최대한 반영해 줄게. 맛이라든가 질감이라든가. 뭐든 간에.”



“내 눈앞에서 꺼져버려, 이 돌팔이 연금술사가!”



펠릭스는 느긋하게 뒤를 돌아 등 뒤에서 들리는 소란을 무시하며 다락방을 나가버렸다. 그리고 다락방의 문이 닫히자마자 빅터는 그대로 무너져내려 흐느끼며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버렸다.







“어디서 이상한 소리 못 들었어요?”


실비아는 귀를 쫑긋 세우고는 그레고리에게 물어보았다.



“착각일겁니다.”



그레고리는 조금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실비아에게 대답했다.



“착각이요?”



“네. 제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목소리를 들은것 같은데요. 꼭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어요.”



“저는 못 들었습니다. 아주 예민한 감각을 가진 제가 말입니다.”



“하지만······.”



실비아는 그레고리의 차가운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동자가 실비아에게 이렇게 말하는듯 했다. ‘신경쓰지 마시오.’



“알겠어요. 그나저나, 아직도 더 볼 곳이 남아있어요?”



“지루하셨나요?”



실비아는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 눈에는 다 똑같아 보여서요. 저는 제가 꽤 보는 눈이 좋다고 생각했지만, 이곳 웨일 저택은 잘 모르겠어요. 여기가 저기같고, 이것이 그것 같아요. 제 눈에는요.”



“제 설명이 부족했나봅니다.”



“아니오. 그런 것 때문은 아니에요. 사실, 그레고리 당신이 뭐라고 설명한들 저는 그게 사실인지 거짓말인지 구분할 눈도 방법도 없으니까요.”



앞서가던 그레고리가 발걸음을 멈추자 실비아도 자연스레 걸음을 멈추었다.



“아, 설마 제가 말실수를 했나요?”



“아닙니다. 잠시 감탄하고 있었습니다.”



“감탄요? 왜요? 제가 너무 무례했나요? 죄송해요. 준남작일 뿐인데······.”



“꽤나 보는 눈이 있는 편이군요.”



실비아는 뜻밖의 칭찬에 눈을 깜빡거렸다.



“네?”



“도련님이 옆에 데리고 다닐만 합니다. 잘 봤습니다 실비아. 정말로 저택 안의 모든 것들은 똑같은 모조품일 뿐입니다. 이곳 웨일 저택 안에 진품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말하자면, 여긴 가짜로 가득찬 공간입니다. 그것도 똑같은 가짜로.”



“왜, 왜요? 웨일은 공작이잖아요. 공작씩이나 되어서 집 안을 모조품으로 장식해요? 그러면, 그 하인들은 별로 귀하지도 않은 모조품을 그렇게 조심스레 다루던 거예요?”



“그렇습니다.”



“정말 이상해요.”



“주인 마님의 취향입니다.”



“그러면, 진품은 어딨어요? 다른 가문의 저택을 장식하고 있나요? 아니면 박물관?”



“진품은 주인 마님의 개인 금고에 모두 정리되어 있습니다.”



실비아는 조금 더 당황해서 눈을 연신 깜빡였다.



“진품이 있는데도 가만히 모셔만 둬요? 그럴거면, 뭐하러 힘겹게 진품을 구해요?”



“주인 마님은 항상 단순하고 명쾌하십니다. 갖고 싶어서 가졌지만, 가졌으니 더이상 흥미가 없다는 거죠.”



실비아는 눈을 깜빡거리며 생각하다가 겨우 상식적인 결론에 도달했다.



“아! 그러니까, 힘들여 구한 물건이 망가질까봐 고이 모셔두는 건가요?”



“비슷하군요. 저로서도 그 이상 명쾌하게 설명할 수는 없을 겁니다.”



실비아는 이 저택 안으로 들어와서 처음으로 무언가를 납득했다. 그 사실이 실비아의 마음에 드리운 긴장의 구름을 조금 걷었고, 그래서 실비아의 눈에는 총기가 약간이나마 되살아났다.



“그래요. 그렇죠. 결국 이러니저러니 해도 사람일 뿐이라고요. 그레고리. 그러면, 저는 가짜로 가득찬 똑같은 공간은 더이상 구경하고 싶지 않아요. 좀 더 재미난 장소 없을까요?”



“재미라. 어떤 것을 원하십니까?”



“답답한 마음이 탁 트이는 곳이요. 어디 없을까요?”



“있습니다. 따라오십시오.”



그레고리는 실비아에게 미소를 지어주곤 다시 복도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실비아는 방금전보다 훨씬 더 기운찬 걸음걸이로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레고리는 실비아를 저택 삼 층 식당 비슷한 곳으로 안내했다. 아니, 그곳은 조금 좁은 것을 빼면 식당과 완전히 판박이였다. 가구의 배치나 벽과 바닥재, 천장에 매달린 조명. 다만, 창문이 북쪽으로 난 것과 벽에 그림이 걸려있지 않다는 차이가 있었다.



“식당이 두 군데나 있어요?”



실비아는 휑뎅그레한 공간 안으로 걸어들어왔다가, 북쪽에서 내려오는 차갑고 서늘한 공기에 가볍게 몸을 떨었다.



“주인 마님이 쓰시는 공간입니다.”



“그 사람도 마음이 답답할 때가 있나봐요. 그런데, 여긴 북향이잖아요? 차갑고 축축한 데다가 해도 들지 않아요. 이런 곳에서 답답한 마음을 푸셔요?”



“주인 마님의 취향이십니다.”



실비아는 남쪽을 향했더라면 아주 밝고 따스했을 이 공간이, 다만 그 반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만으로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넘어서 일말의 두려움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차 한잔 하시겠습니까?”



“네? 차요? 여기서요?”



“네. 주인 마님은 여기서 창 밖을 내다보며 차를 마십니다. 아, 마침 곧 그럴 시간이군요.”



“그럼 빨리 나가요. 저는, 그, 펠릭스네 어머님은 좀 불편해서······.”



“주인 마님은 펠릭스 도련님을 좋아하시니, 만나더라도 별 상관은 없을겁니다.”



“그래도요. 저, 빨리 나가요. 이러다가 마주치기라도 하면 괜히 저만······.”



그레고리를 재촉하여 실비아는 그들이 들어왔던 문으로 돌아가 문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문 너머에서 막 손잡이를 잡으려던 빅토리아 웨일이 조금 놀란 눈으로 그레고리와 실비아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주인 마님.”



그레고리는 곧바로 정중히 허리를 숙여 예를 표했다. 그러자 실비아도 조금 허둥거리며 뒤따라 허리를 꾸벅 숙였다.



“뭐 해?”



“도련님의 부탁으로, 손님께 저택 안내를 시켜주고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실비아는 잘못이라도 저질렀나 싶어 마음 속으로 전전긍긍했다.



“네.”



“그래.”



빅토리아 웨일은 그걸로 끝이라는듯 그레고리에게서 눈을 돌려 이번에는 실비아를 살펴보았다. 먹잇감을 물색하는 사냥꾼처럼 그녀는 싸늘한 눈초리를 한 채 실비아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여기까지 온 김에, 차라도 한 잔 할래?”



빅토리아의 입에서 뜬금없이 나온 말에 실비아는 당황하여 몸 둘 바를 몰랐다.



“저, 환대에 감사드립니다만······.”



“한 잔 하고 가지.”



“저는, 그게, 그······.”



“내가 이 집 주인이야. 한 잔 하고 가. 그레고리. 가서 펠릭스한테 전해줘. 내가 잠깐 데리고 있겠다고.”



“알겠습니다 주인 마님.”



실비아가 붙잡을 새도 없이 그레고리는 순식간에 자리를 떠나버렸다. 결국, 실비아는 눈치를 보다가 어색하게 웃었다.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빅토리아는 조금도 웃지 않았다.







실비아는 전혀 뜬금없이 빅토리아 웨일과 마주 앉아 차가운 북향의 방 안에서 차를 마시게 되었다. 원래부터 차가웠던 공기는 빅토리아 웨일의 등장으로 한층 더 싸늘해져 당장 머리위에서 눈송이가 떨어져도 놀랍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차가운 공기를 뚫고 세 명의 하인이 각각 쟁반에 잔과 주전자, 처음 보는 신기한 빵과 과자를 받쳐들고 안으로 들어와 순식간에 테이블을 세팅해주고는 유령처럼 그 곳을 빠져나갔다.



“마셔.”



실비아는 빅토리아의 명령에 가까운 제안을 듣고 잔을 덥썩 쥐려다가 손을 살짝 데었다.



“당장 마시라는 뜻은 아니었어.”



빅토리아는 조금 이상하다는 눈으로 실비아를 힐끗 보았다.



“아, 네. 저, 다시한번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이번에도 빅토리아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더니 그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잔을 들어올려 식히지도 않고 소리없이 한 모금을 마셨다.



“저,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빅토리아가 잔을 내려놓자 실비아는 주저하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없어.”



“그럼, 왜 절······.”



“그냥.”



“네?”



“그냥. 너랑 차를 마셔보고 싶어서.”



“저랑······요?”



실비아는 대화의 흐름을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 난 딸이 없거든.”



“아, 그렇구나.”



“하지만, 딸도 아들과 별로 다를 건 없네.”



빅토리아는 다시 잔을 집어들어 차를 호록 마셨다.



“안 마셔?”



“아, 네.”



실비아는 손을 데지 않도록 손잡이를 쥐고 잔을 들어올려 후후 불어 차를 살짝 식히며 한 모금 머금었다. 그 차는 따뜻하고 평범한 홍차였다. 맛은 있었지만, 웨일 공작가에서 대접할만큼 좋은 차는 아니었다.



“차가 맛있네요.”



“그건 맛 없는 차야.”



실비아는 어색하게 웃으며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아, 네. 제 입에는 맛있었어요.”



“넌 거짓말은 못하는구나.”



실비아는 속으로 뜨끔하여 어색하게 웃으면서 조용히 잔을 내려놓았다.



“펠릭스의 제자라고?”



“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어요. 그는 뛰어난 연금술사기는 하니까요.”



“펠릭스를 어떻게 생각하지?”



실비아는 이 질문에 사실대로 모조리 대답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가 펠릭스를 보며 느껴왔던 그 당혹감을 그의 어머니에게 있는대로 일러바치고 싶었다.



“됐어. 별 사이 아닌가보네.”



그러나 막 실비아가 입을 열기도 전에 빅토리아는 더이상 흥미가 없다는듯 도로 잔을 집어들었다.



“저,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넌 얼굴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드러나. 들을 필요도 없어.”



실비아는 빅토리아의 훈계조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잘 생각했어. 펠릭스를 상대로 쓸데없는 마음을 품지 말도록 해. 그런 건 빅터 하나로 충분하니까.”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아마도.”



빅토리아는 다시 잔을 들어 차를 홀짝 마셨다. 그리고 그녀가 잔을 내려놓자, 실비아는 그 사이에 빅토리아가 찻잔을 완전히 비운 것을 발견하고 새삼 놀랐다. 여전히 그녀의 잔은 뜨거운 김을 모락모락 피워내고 있었기 때문에.



“잘 마셨어.”



빅토리아는 간식에는 손도 대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려했다.



“저, 저기요!”



그러자 빅토리아는 도로 앉아 실비아를 쳐다봤다.



“왜?”



“저, 저기. 그러니까······.”



실비아는 왜 그녀를 불러세웠는지 잠시 스스로를 원망했다.



“하나 여쭤봐도 될까요?”



“그래. 넌 조금 마음에 들어. 잠깐정도는 상대해 줄게.”



“혹시, 저희 아버지를 아세요?”



“알아. 실바누스 로즈베리 준남작.”



“어떻게 아는 사이에요?”



빅토리아 웨일은 아주 뜬금없는 질문이라는듯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넌 웨일이 어떤 가문인지 전혀 모르니?”



“잘은 몰라요.”



“하긴. 알았다면 여기까지 들어오지도 않았을테지.”



“그, 그건 알아요! 사람들이 그러던데요. 돈만 밝히는 수전노라든가······.”



실비아는 다시한번 말실수를 했다는 생각이 들어 빅토리아의 눈치를 재빨리 살폈다. 그런 말을 면전에서 들었는데도, 여전히 빅토리아의 얼굴 위에는 별다른 감정의 징후가 나타나지 않았다.



“맞아.”



오히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실비아의 말을 인정했다.



“난 돈이 좋거든. 그래서, 물어보고 싶은건 그게 전부니?”



“왜 우리아빠 사업을 훔쳐갔어요?”



또다시 생각하기도 전에 입에서 말이 먼저 튀어나갔다. 아니, 이미 한참 전부터, 실비아가 펠릭스에게 아버지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그 말은 언제든지 튀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뒷감당따윈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말이었다. 상대가 상대인 만큼, 자칫잘못하면 큰일이 날 지도 모르는데도.



“훔쳐가다니. 난 실바누스 로즈베리의 사업을 제 값을 주고 정당하게 샀어.”



“파괴 공작이라든가······.”



“흥정을 안 해주니까 그렇지.”



“흥정이요?”



“그래. 실바누스는 사업 감각은 있었는데, 경험이 부족해서 자기 물건의 가치를 못 알아봤어. 터무니없이 비싼 값을 불러두곤 흥정도 안 해 주길래, 조금 괘씸해서 그랬지.”



“아빤 그 일로 크게 상처받았어요!”



“그래서?”



실비아는 빅토리아의 텅 빈 눈동자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뒤늦게 자신의 처지를 상기했다.



“죄송해요. 그냥, 그러려던 건 아니에요. 저기, 다만 하나 물어보고 싶었는데······.”



“물어봐.”



“왜, 하필이면 우리 아빠였어요?”



빅토리아는 눈을 한번 깜빡였다.



“마침 눈에 띄었는데, 자세히 보니 내 마음에 들어서. 갖고싶어져서 갖기로 했어.”



“그게 전부에요?”



“그래. 달리 무슨 이유가 필요하니?”



실비아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자 빅토리아 웨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즐기다 가거라. 넌 꽤 마음에 드니까.”



실비아는 당장에라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저택에서 도망치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그녀의 두 다리에 차갑고 축축한 공기가 스며들어 얼어붙어버리고 만 것인지, 한동안 실비아는 두 손으로 잔을 쥐고 몸을 덜덜 떨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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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161화 22.01.03 33 1 22쪽
160 160화 22.01.02 36 1 25쪽
159 159화 22.01.01 37 1 23쪽
158 158화 21.12.31 32 1 21쪽
157 157화 21.12.30 34 1 23쪽
156 156화 21.12.29 35 1 24쪽
155 155화 21.12.28 34 1 24쪽
154 154화 21.12.27 39 1 22쪽
153 153화 21.12.26 42 1 24쪽
152 152화 21.12.25 39 1 21쪽
151 151화 21.12.24 39 1 24쪽
150 150화 21.12.23 38 1 22쪽
149 149화 21.12.22 37 1 21쪽
148 148화 21.12.21 40 1 22쪽
147 147화 21.12.20 44 1 22쪽
» 146화 21.12.20 39 1 21쪽
145 145화 21.12.19 40 1 22쪽
144 144화 21.12.18 43 1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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