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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연재수 :
17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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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4,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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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2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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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149화

DUMMY

웨일 저택의 뒷마당에는 오두막 한 채가 자리잡고 있었다. 네모난 오두막은 지붕 정 가운데에 굴뚝이 붙어 있어 조금 우스운 모양이었다.



그 오두막 한 가운데에는 커다란 솥이 불 위에 걸려 있었다. 솥 아래에 쌓인 장작더미는 붉게 이글거리며 실비아의 하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집 안에 연금술 작업실을 만들어 뒀어요?”



실비아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기다란 나무 주걱으로 솥의 바닥을 긁으며 계속계속 저었다.



“당신 언니네 집에도 있었잖아요.”



“의외로, 귀족들 사이에서 연금술이 유행인가봐요.”



“그랬죠. 예전에는.”



펠릭스는 의자에 앉아 보던 책을 덮으며 대꾸했다.



“예전이 좋았어요. 그 때는 사람들이 우리 연금술사들을 존경의 눈빛을 듬뿍 담아 봐 주었는데.”



“지금은요?”



“지금은 싸구려 약팔이나 다름없는 취급이죠. 당신 아버지가 절 어떻게 대하는지 봤잖아요?”



실비아는 펠릭스가 보던 책의 표지를 힐끗 곁눈질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101가지 재료. 처음보는 제목의 책이었다.



“무슨 책이에요 그건?”



“아, 이거요?”



펠릭스는 자기가 읽던 책을 슬쩍 들어올렸다.



“내 스승님이 마지막으로 남긴 책이죠.”



“무슨 내용인데요?”



“미치광이의 헛소리.”



실비아가 당황하여 머뭇거리는틈에 펠릭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농담이에요, 농담! 놀라기는. 난 답답해서 잠깐 산책이라도 다녀올 테니까, 솥 안 타게 잘 저어요. 무슨 약을 만드는지는 몰라도.”



“알아서 잘 할테니까 걱정 말아요.”



실비아가 등을 돌리자 펠릭스는 책을 내려놓고 작업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작업실의 나무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자마자 실비아는 등 뒤를 힐끗거리며 주걱을 잠시 내려놓고 펠릭스가 두고간 책을 집어들었다.







실비아는 한 손으로 주걱을 저으며 빈 손으로 책을 집어들고 펼쳤다. 처음 보는 낯선 글씨. 제대로 출판된 책도 아니었다. 몇 페이지 정도 파르르 종이를 넘겨보니 책이라기보단 수기에 가까운 물건이었다. 무시무시한 압박감에 짓눌리던 한 사람이 어떻게 터무니없는 생각에 매달리고 집착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이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상세하게 쓰여있었다.



“약 다 돼 가요?”



창문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실비아는 화들짝 놀라 손에 들고있던 책을 바닥에 툭 떨어뜨렸다.



“펠릭스! 깜짝 놀랐잖아요.”



“집중해야죠, 집중! 딴데 한눈팔다가 솥 바닥에 눌어붙으면 그거 닦아내는게 얼마나 힘든데.”



실비아는 떨어진 책을 주워올리고 투덜거리며 두 손으로 주걱을 쥐었다.



“내가 닦으면 되잖아요.”



“약 만들 때 한눈팔지 말아요, 실비아. 그러다가 당신 약이 독약이 될지 뭐가 될지 누가 어떻게 알아요? 벌써부터 나쁜버릇 들이지 말고 약 만들때는 약에만 집중해요. 당신이 만든 약에는 당신밖에 책임질 사람이 없으니까.”



“네, 네. 스승님.”



실비아는 입술을 부루퉁 내밀고는 주걱을 휘휘 저었다. 펠릭스의 말투는 짜증났지만, 그래도 말 자체는 맞는 말이니.







실비아가 완성된 약을 걸러내기 위해 솥을 기울이자, 그녀는 바닥 군데군데 눌어붙은 약 찌꺼기를 보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거 봐요. 집중하랬잖아.”



“미리 말을 하고 가야죠. 자기도 중간에 알려줘놓고선.”



실비아는 찌꺼기를 외면하며 연보랏빛의 약을 걸러냈다.



“보라색? 당신은 보라색 취향이군요?”



“그런게 어딨어요? 그냥 걸러내다보니 그렇게 됐죠.”



“나였으면 똑같은 재료로 무색투명한 약을 만들어요. 린이었다면 새파랗겠죠.”



실비아는 투명한 약병에 보랏빛 약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담아 펠릭스에게 내밀었다.



“왜요?”



“······먹어봐요.”



펠릭스는 히죽 웃었다.



“나보고 실험용 쥐가 되어달라?”



“그런 거 아니거든요! 사람 해칠 만한 재료 하나도 안 넣었어요. 그냥, 먹고 좀 소감이라도 알려줘요. 이거면 되겠다 안 되겠다. 뭐 그런거 있잖아요.”



“알았어요, 알았어. 무슨 농담도 못 하겠네. 그럼, 어디!”



펠릭스는 실비아의 손에서 약병을 낚아채 고개를 뒤로 젖혀가며 약을 꿀꺽꿀꺽 들이켰다. 그는 순식간에 약병을 비우고 빈 병을 작업대 위에 탕 내려놓고 잠시 입을 우물거렸다.



“으음.”



“어때요?”



펠릭스는 잠시 가만히 서 있다가, 순식간에 얼굴을 찡그리며 두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부여잡았다.



“크······헉!”



“펠릭스!”



그는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져 앓는 소리를 내며 팔다리를 바들바들 떨었다.



“펠릭스! 왜요! 왜 그래요!”



“실비아······독······독이······.”



“어떡해! 세상에, 펠릭스. 어떡해요? 빨리, 빨리 해독제 뭐라도 알려줘봐요!”



“독이······없어요.”



펠릭스는 아무렇지도 않다는듯 도로 자리에서 일어났고, 실비아는 그의 따귀를 향해 손바닥을 올려붙였다.



“또 장난!”



펠릭스는 상체를 뒤로 젖혀 실비아의 공격을 가볍게 피해버렸다.



“깜짝놀랐죠?”



“진짜 놀랐단 말이에요! 장난 좀 그만쳐요. 진짜.”



펠릭스는 실비아의 눈가에 눈물까지 맺힌 것을 보고 헛기침을 했다.



“뭐, 조심하라는 뜻에서 그랬어요. 약 만들때는 집중해요 다음부터.”



“말로 하면 되잖아요. 꼭 그렇게 사람을 놀려야 속이 풀려요?”



“버릇이라.”



“그래서! 어땠어요? 제 약.”



“어떻고 자시고.”



펠릭스는 의자에 넉살좋게 풀썩 주저앉았다.



“그냥 평범한 감기약이에요.”



“그게 다예요?”



“네. 손 풀려고 만들던거 아니었어요?”



“······아닌데.”



펠릭스는 아리송한 표정이 되었다.



“이걸로 우리 엄마를 설득할 생각이었다? 아니면 빅터에게 먹일 생각이었다?”



실비아는 머뭇거리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제대로 말 해요 실비아. 부끄럽다고 입 꾹 다물지 말고. 그래야 조언이든 뭐든 해 주죠.”



“당신 어머니가 이 약을 먹으면 무슨 생각이 들까요?”



“뭐. 아주 맛없고 이상한 차를 한 모금 마셨다고 생각하겠죠.”



“그게 다예요? 가슴 속에서 올라오는 따뜻한 감정이라든가······.”



“뜨거운 물만 마셔도 가슴 속에서 따뜻한게 올라와요.”



펠릭스는 어느새 다리를 꼬고 앉아있었다.



“그래서야 데운 물만도 못하죠. 그리고 사랑초는 자꾸 왜 넣어요?”



“제가 좋아해서요.”



“제 입에는 너무 들큰해요. 올리버도 그렇고. 다들 왜그리 좋아하는지.”



“맛있으니까 그렇죠. 달고, 또 향기도 좋고.”



실비아는 입을 비죽이며 작업대 창고에서 솥을 닦는 솔을 꺼내왔다.



“아무튼, 이 약으로는 아무것도 못 해요. 엄마는커녕 빅터도 설득 못해요. 그러니까 좀 더 생각해 봐요. 어떻게 하는게 좋을지.”



실비아는 펠릭스에게 대꾸도 하지 않고 묵묵히 솔질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한참 시간이 더 흐른 뒤에, 실비아는 또다시 두 손으로 나무 주걱을 꼭 쥐고 솥을 젓고 있었다. 이번에는 아까와는 명백하게 다른 약이 솥 안에서 끓고 있었다. 유백색의 걸쭉한 액체는 뻑뻑한 죽처럼 보였다.



“할 만 해요?”



펠릭스는 실비아 쪽은 쳐다도 보지않고 의자만 까딱이고 있었다.



“아직까지는요.”



여전히 실비아는 구슬땀을 흘려가며 뻑뻑한 약을 저었다.



“무리하지는 말아요. 그러다 몸살나면 나만 골치아프니까. 몸살이랑 숙취에는 제대로 된 약도 없거든요.”



“내 참. 당신, 별의 별 약은 다 만들면서 몸살 약을 못 만든다고요?”



실비아는 조금도 믿지 못하겠다는 투로 대꾸했다.



“뭐, 따지자면 안 만드는 쪽이지만.”



“좀 만들어 줘요. 사람들한테 진짜 필요한 약은 목숨을 죽이고 살리는 약이 아니라, 몸살 약이나 숙취 해소 약이라고요.”



“몸살 약을 내가 갖다주면, 그 사람들은 약만 믿고 또 무리할 거 아니에요? 그럼 평생 약에 매달려 무리만 하다 죽겠죠.”



“그건 너무 비약이 심하죠.”



“그 사람들이 무리하기 싫다고 해도 그들의 고용주가 가만 놔 둘까요? 그들의 가족이나 친구, 친지들은? 왜 더 일을 할 수 있는데도 벌써 일을 그만두냐고, 그런 말을 할 사람이 없을것 같나요?”



“당신은 너무 비비 꼬였어요!”



실비아는 솥 어디에 걸쭉한 덩어리에 주걱이 걸려서인지, 아니면 펠릭스의 말에 짜증이 나서인지 거칠게 주걱을 밀어붙였다.



“뭐, 마음대로 생각해요.”



팰릭스는 다시 의자를 앞뒤로 까딱까딱거렸다.







이번에 실비아가 걸러낸 약은 짙은 보랏빛의 투명하고 맑은 약물이었다.



“보라색. 제비꽃 색깔이네.”



걸러낸 약이 담긴 병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펠릭스가 중얼거렸다.



“보라색 재료는 하나도 안 썼는데.”



“당신 취향이 약에 묻어나온 거예요. 내가 말 했잖아요. 약을 만드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약에 영향을 미친다고.”



“이런 뜻인줄은 몰랐죠.”



“알았으면 다음부터는 놀라지 말아요. 그래서, 이번에는 무슨 약을 만들었죠? 누구에게 먹일 약이죠?”



“당신 형님에게 먹일 약을 만들어 봤어요.”



“정열을 잘라내는 약?”



실비아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럼?”



“그러니까, 이건 용기를 주는 약이에요.”



“용기? 왠, 뜬금없이 용기에요? 엄마랑 싸우라고? 아니면, 스스로 목숨을 끊······.”



“거기까지! 더이상 말하지 마요!”



펠릭스는 입을 꾹 다물었다.



“설명해 줄게요. 그러니까, 아까 빅터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어요. 정열을 잘라내는 약을 먹은척하고 어머니를 속이면 되지 않느냐고. 정열이 있든 없든, 남 보기에 그 사람의 행동은 별반 달라질게 없으니까. 말조심만 좀 하고, 그림 그릴 때 조금만 신경쓰면······.”



펠릭스가 어이없다는듯 피식피식 웃은 탓에 실비아는 말을 멈췄다.



“왜요?!”



“아니, 당신. 순수한지 멍청한지 이해가 안 되네. 그래서요? 그래서, 정열이 죽은척 행동하면, 그럼 어떻게 되는데요?”



“어떻게 되긴요. 당신 형님은 여전히 가슴 한 곳에 정열을 품고 살아갈 수 있겠죠.”



“그걸로 그림도 못 그릴텐데. 품어봤자 어디써요, 그걸?”



“네? 왜 못 그려요?”



“당연하죠! 그 정열을 담아 그림을 그렸다간 엄마가 바로 눈치챌텐데? 이놈이 나를 속이고 있었구나 하고. 그럼 엄마가 빅터를 어떻게 하겠어요? 만약에라도 그런 일이 일어나면, 당신 감당할 수 있어요? 엄마를 속이기로 작정했으면, 가슴 속에서 정열이 끓든 말든 죽은척 살아야 하는데. 빅터가 그걸 바랄까요?”



실비아는 생각지도 못했다는듯 주저했다.



“그럼······그럼 어떡해요? 그냥 놔둬요? 당신이, 형님의 정열을 도려내 그 사람을 인형처럼 만들도록 가만 놔 둬요?”



“내가 어려운 일이라고 했잖아요.”



실비아는 시무룩해져서 방금 걸러낸 보랏빛 약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그래서, 용기를 주는 약이라고요?”



“네.”



그녀는 짧게 대답하고는 힘없이 솥 닦는 솔을 집어들었다.



“먹고싶으면 먹어봐요. 별 도움은 안 되겠지만.”



실비아는 펠릭스의 소감도 듣지않고 솔을 물 양동이에 푹 담갔다 꺼내 솥을 슥슥 닦기 시작했다.



“흠.”



펠릭스는 시무룩해서 축 쳐진 실비아의 어깨를 힐끗 보더니 말없이 약병의 뚜껑을 열었다. 그는 이번에도 약을 무슨 냉수 마시듯 벌컥벌컥 마셨다.



“오, 이건 꽤나······.”



소감을 말하자 실비아의 손이 움직임을 멈추는 것을 보고, 펠릭스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흐음. 좀 쓸만할지도.”



실비아의 쳐졌던 어깨가 살짝 펴지더니 솥을 닦던 그녀의 손놀림에도 힘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펠릭스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실비아는 크게 하품을 하며 나무 주걱을 들고 솥을 느릿하게 저었다. 먼저 만든 두 병의 약과 달리, 이번 약은 솥의 내용물도 절반밖에 되지 않아 주걱으로 젓기에는 훨씬 편했다.



“졸려요?”



“네.”



실비아의 눈은 평소의 절반 크기정도밖에 떠지질 않았다.



“그럼 자요.”



“약 만들다 말고 잘 수는 없죠.”



“잘 아네요.”



“펠릭스. 졸음 쫓는 약은 없어요?”



“흔해빠졌죠. 하지만, 지금은 못 줘요.”



“왜요?”



펠릭스는 실비아가 젓고있는 솥을 향해 손가락을 쭉 뻗었다.



“당신이 솥 쓰고 있으니까.”



“정말. 필요할때는 전혀 도움이 안 되네요. 그정도 약은 가지고 다닐줄 알았더니. 왜요, 졸음 쫓는 약도 일부러 안 만들어요? 사람들이 잠도 안 자고 일 할까봐?”



“잘 아네요. 설명할 수고를 덜어줘서 고맙네요.”



“퍽이나요.”



실비아는 우아하지 못하게 크게 하품을 했다.



“솥에 침이나 안 떨어뜨리게 조심해요.”



“내가 알아서 해요, 그쯤이야.”



펠릭스는 영 못미덥다는듯 실비아와 솥을 힐끗거렸다.



“이번에는 무슨 약 만드는데요? 누구한테 먹일 약이에요?”



“첼시요.”



펠릭스는 의아해하며 자세를 고쳐앉았다.



“첼시? 첼시는 왜? 첼시가 약을 먹어봤자 상황은 조금도 안 달라져요.”



“그냥, 제가 만들어주고 싶어서 그랬어요. 됐어요?”



“왜요. 또 불쌍한 이야기를 들으니 도저히 가만있질 못하겠던가요?”



“네.”



펠릭스가 이죽거리는 것도 무시하고 실비아는 바로 대답했다.



“내 참. 오지랖이에요. 첼시는 당신한테 도와달라고 한 적 없어요. 오히려 싫어할지도 모르는데.”



“상관없어요.”



“당신, 살면서 만나는 불쌍한 사람들 한명 한명한테 모조리 약을 만들어 줄 거예요?”



실비아는 주걱을 솥에 걸치고 뒤를 돌아보았다.



“당신 대스승님이 그랬어요. 원하는 약을 만들기 위해 진심을 담아 상상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뛰어난 연금술사라고.”



“그렇죠. 그래서 제가 최고의 연금술사인거고.”



“저도 그럴려고요.”



실비아는 걸쳐둔 주걱을 도로 집어들었다.



“펠릭스. 당신은 당신 만들고 싶은대로 약을 만들잖아요. 저도 그럴려고요. 당신이 무시하고 비웃어도 상관없어요. 나도 내 마음대로 할 테니까.”



“여긴 우리 집이고, 이 작업실도 재료들도 당신 것은 하나도 없는데. 남의 걸 빌려쓰는 주제에 너무 속 편한거 아니에요?”



실비아는 어색하게 손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좀, 빌릴게요.”



“나중에 갚아요 그럼?”



“알았어요! 하여튼. 진짜, 사람다운 마음이라고는 요만큼도 없다니까!”



실비아가 투덜거리는 뒷모습을 펠릭스는 웃으며 지켜보았다.







이번에 실비아가 완성한 약은 자줏빛의 걸쭉한 약물이었다.



“뭐······보라색은 아니네요. 비슷하지만.”



“색깔 말고는 말할게 그렇게 없어요?”



실비아는 솥을 닦으며 다시 크게 하품을 했다.



“눈에 제일 먼저 띄니까 그렇죠. 그럼, 어디. 냄새는······으악!”



펠릭스는 약병 뚜껑을 열었다가 재빨리 병을 멀리 떨어뜨렸다.



“단내! 무슨, 설탕을 불에 달궈도 이렇게 심하지는 않겠어요!”



“당신 대스승님이랑 똑같은 말을 하네요.”



“재료로 뭘 넣었어요? 사탕무? 사탕수수줄기? 꿀? 알밤? 적율로 즙이라도 짜넣었어요?”



“사랑초요.”



“아니, 까짓 풀 좀 넣었다고 이렇게 진한 단내가 난다고? 배합을 어떻게 한 거예요?”



“말린 사랑초를 으깨어 가루내서 홀홀 뿌렸어요. 그게 다예요.”



펠릭스는 헛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어이가 없어서. 정말이지. 연금술 세상이란. 그럼, 어디. 맛은······악! 이게 뭐야!”



실비아는 느릿하게 고개를 뒤로 돌렸다.



“왜요?”



“써! 웩, 이게 뭐야. 고작 한 방울인데? 단내가 이렇게 나는데, 맛이 이렇게 쓰다고? 당신, 뭐 태워먹은거 아녜요? 솥 똑바로 안 저어서 바닥에 눌어붙은거 탔죠?”



실비아는 대답 대신 솥에서 비켜섰다. 솥 바닥에는 눌어붙은 찌꺼기는 조금도 없었다.



“믿을 수가 없네. 첼시를 놀려주려고 이런 약을 만들었어요? 나한테 그랬듯이, 어디 한번 한 방 먹어봐라. 뭐 그런 건가요?”



“난 내 진심을 담아서 만들었어요. 먹어보고 소감이나 말 해줘요.”



펠릭스는 약병의 뚜껑을 도로 꼭 닫았다.



“첼시 먹으라고 만들었으면 첼시한테 갖다줘요. 내가 먹어봤자 아무런 효과도 없을게 뻔하니까.”



실비아는 교류회에서 자기가 만들었던 약을 떠올렸다.



“하긴. 그렇긴 하네요. 정말, 다른 사람들은 먹어도 아무것도 못 느끼더라고요. 신기했어요.”



“팔자좋게 늘어져있지 말고 솥이나 마저 닦아요. 그러다 밤새겠네. 우선 잠이나 좀 자고, 내일 아침 먹고 약 갖다주러 가자고요.”



“그게 좋겠네요.”



실비아는 다시한번 크게 하품을 하고 슥슥 솔질을 했다.



“도와줘요?”



“됐어요. 자기 약에는 자기가 책임지는 거라면서요? 내가 할게요.”



펠릭스는 피식 웃으며 팔짱을 끼더니, 꽤나 만족스런 눈으로 실비아의 등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 밤중에, 땅 밑에 세워진 빛 한 줄기 들지 않는 지하 감옥으로 간수들이 내려왔다. 그들은 철컹거리는 금속성의 소리를 내며, 눈부시게 타오르는 기름 등불을 앞세워 어두컴컴한 감옥 복도 끝자리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일어나!”



첼시는 난데없는 불빛에 화들짝 놀라 부신 눈을 손으로 가리며 어리벙벙한 얼굴을 지어보였다.



“나와!”



감옥의 철문이 철컹 소리를 내며 무겁게 열리자 간수들은 감옥 안으로 쳐들어와 다짜고짜 죄수를 붙잡았다.



“살려줘, 살려줘! 안 돼! 아직 죽고싶지 않아! 제발!”



“끌고 가!”



간수들은 열린 철창 문을 내버려두고 불쌍한 죄수를 연행하여 순식간에 감옥에서 빠져나갔다. 등불의 기름 타던 냄새만이 감옥에 조용히 머물렀다.







웨일 저택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조용하디 조용했다. 그래서 실비아는 아주 의아한 기분으로 잠에서 깨어났다. 평소라면 새 지저귀는 소리나, 사람들의 부스럭거리는 소리. 웅성거리는 소리를 듣고 일어났을텐데. 이곳 저택 근처에는 새도, 새가 둥지를 틀 만큼 크게 자란 나무도 없었다.



실비아는 문을 살짝 열고 냉랭한 복도를 두리번거리다가 펠릭스가 있는 옆방 문을 살며시 두드렸다.



“펠릭스?”



문 너머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펠릭스?”



실비아가 재차 노크를 했는데도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실비아는 살며시 문 손잡이를 잡고 살짝 돌려보았다. 잠기지 않은 문은 철컥 소리를 내며 스르륵 안으로 열렸다.



살금살금 방 안으로 들어온 실비아는 방 안에서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아 더욱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창문이란 창문에는 모조리 커튼이 쳐져있어, 열린 문의 틈새를 통해 복도의 어스름한 빛이 새어들어온게 조명의 전부였다.



“펠릭스? 자요?”



실비아는 살짝 커튼을 걷었다가, 경악했다. 웨일 저택의 뒷마당에는, 분명 지난 밤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없었는데, 처형대가 세워져 있었다.



“세상에. 저게 뭐야? 펠릭스!”



실비아는 커튼을 휙 젖히고 펠릭스가 누워있는 침대로 다가가서, 또다시 경악했다. 펠릭스의 얼굴은 시체처럼 차게 굳어있었으며 그 얼굴 위에는 아무런 표정도 떠올라있지 않았다.



“펠릭스! 정신차려요!”



“어, 음. 아, 아침부터 왜요······.”



펠릭스가 하품을 하며 상체를 일으켜 세우자 실비아는 안도의 한숨을 쉬다말고 다시 그를 재촉했다.



“빨리요, 빨리! 밖에, 밖에좀봐요!”



“왜요. 아침부터. 잠은 좀 자게 내버려두지······.”



“첼시 죽겠어요!”



“네? 첼시가? 그럴리가. 실비아. 무슨 꿈이라도 꿨어요?”



“창 밖에 봐요!”



실비아는 펠릭스의 손목을 잡아끌고 창문 앞으로 질질 끌고갔다.



“저기, 처형대가······꺄악!”



얼굴에 두건을 덮어쓴 집행인의 도끼날이 번쩍이자 실비아는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외마디 비명이 웨일 저택의 뒷마당에서 홀연히 울려퍼졌다.



“펠릭스······어떡해요.”



펠릭스는 눈을 끔뻑이며 몸에서 떨어져 나간 머리를 힐끗 내려보았다.



“저건 첼시 아니에요.”



“첼시. 불쌍한······네?”



실비아는 살짝 고개를 돌려 눈을 깜빡였다.



“첼시 아니에요. 저건 누가봐도 수염 시커먼 남자구만. 진정좀 해요.”



“진짜요? 거짓말 하는거 아니죠?”



“아니에요. 보아하니, 엄마가 수집했던 죄수 한 명 한테 싫증났나보죠. 뭐, 가끔 있는 일이니까.”



“가끔 있다고요! 당신 어머니란 사람은, 정말이지······.”



“뭐 어쨌든 간에. 첼시는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라고요. 엄마도 당분간은 첼시를 살려두기로 나랑 약속했으니까. 자, 울지말고. 진정좀 하고.”



“안 울었거든요!”



울먹거리며 실비아가 대답하는 실비아를 보더니 펠릭스는 말없이 주머니를 뒤져 실비아의 손에 손수건을 쥐여주었다.



“어련하겠어요. 가서 옷이나 좀 갈아입고 오든가.”



“옷이요? 제 옷이 왜······아, 꺅!”



뒤늦게 실비아는 자기가 입고있던 하늘하늘한 실내복을 내려다보고, 얼굴을 붉히며 도망치듯 펠릭스의 방에서 빠져나갔다.



“어휴. 이른 아침부터 이게 뭔 소란이야. 하여튼. 실비아. 쓸데없이 감은 좋아가지고는. 그리고 엄마도 참.”



펠릭스는 순식간에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처형장을 힐끗 내려다보았다.



“혹시나 해서 약속하길 잘했네. 하여튼. 예상이 안 간다니까. 미리 약속 안 했으면 진짜로 첼시까지 죽었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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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 에필로그 22.01.13 56 1 4쪽
171 마지막화 22.01.13 44 1 22쪽
170 170화 22.01.12 38 1 24쪽
169 169화 22.01.11 33 1 24쪽
168 168화 22.01.10 34 1 23쪽
167 167화 22.01.09 36 1 22쪽
166 166화 22.01.08 34 1 23쪽
165 165화 22.01.07 37 1 26쪽
164 164화 22.01.06 32 1 22쪽
163 163화 22.01.05 36 1 24쪽
162 162화 22.01.04 39 1 22쪽
161 161화 22.01.03 34 1 22쪽
160 160화 22.01.02 36 1 25쪽
159 159화 22.01.01 37 1 23쪽
158 158화 21.12.31 32 1 21쪽
157 157화 21.12.30 35 1 23쪽
156 156화 21.12.29 35 1 24쪽
155 155화 21.12.28 34 1 24쪽
154 154화 21.12.27 40 1 22쪽
153 153화 21.12.26 42 1 24쪽
152 152화 21.12.25 39 1 21쪽
151 151화 21.12.24 39 1 24쪽
150 150화 21.12.23 39 1 22쪽
» 149화 21.12.22 38 1 21쪽
148 148화 21.12.21 40 1 22쪽
147 147화 21.12.20 44 1 22쪽
146 146화 21.12.20 39 1 21쪽
145 145화 21.12.19 40 1 22쪽
144 144화 21.12.18 43 1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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