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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둥거리다 님의 서재입니다.

휘, 왕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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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빈둥거리다
작품등록일 :
2018.01.31 18:48
최근연재일 :
2018.04.13 19:06
연재수 :
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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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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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34,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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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13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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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여정의 시작-32

DUMMY

봇짐을 매고 벙거지 모자를 쓴, 영락없는 장삿꾼 모양의 하영이 논둑길을 걷고 있다. 떠나오기 전 강천이 당부하던 말을 떠올리는 하영이었다.


강천;

“너희는 외지인이니 경계심을 느껴 소상한 답변을 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허니 곡물을 사는 상인으로 위장들을 하거라.

처음 나서는 장삿길이라 산지 사정을 먼저 두루 살피고자 한다면 너희의 어리숙함도 가려질 것이고, 또한 땅을 일구는 자들의 답변도 쉬이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처음 나서는 암행 길에 하영은 긴장하였다. 전국 각지로 흩어진 친구들은 잘 하고 있을지 걱정도 됐다.


마침 새참을 먹고 있는 농부들이 보여 하영은 다가가 말을 건넸다.


하영;

“저, 물 한잔만 얻어 먹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말을 튼 하영은 농부들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라 백성들의 삶을 누구보다 잘 안다 자부했던 하영이었다. 그러나 실상으로 마주친 민초들의 삶은 상상 이상으로 피폐하였고, 세상은 부조리하였다.


빈한한 가문일망정 귀족이었기에 자신은 언제나 누리는 자였으며, 위에 선 자였다는 것을 하영은 비로소 깨달았다.


의도와는 무관하게 자신의 존재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된 하영이 받은 충격은 컷다.


얽히고 설킨 이 부조화된 세상을 어찌 바꿀 수 있을지, 자신의 생 안에 그것이 가능키는 한 것인지 짐작조차 되지 아니하였던 것이다.



**



객주집 방 한쪽에 작은 책상이 놓여 있고, 그 위로는 수북히 종이 다발이 쌓여 있다.


사위어가는 촛불의 심지를 돋운 란이 목침을 베고는 누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방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봇짐을 맨 하영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반가움에 벌떡 몸을 일으켜 앉은 란이 명랑하게 물었다.


란;

“왔어?”


하영;

“응.”


란;

“밥은? 밥 먹었어?”


하영;

“응.”


벌써 한달 가까이 외지를 떠돌아 다녔음에도 하영은 여전히 단정하고 깔끔한 모습이었다.


하영이 봇짐을 내리는 걸 도우며, 란이 또 하염없이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란;

“그럼 뭐, 간식거리라도 줄까?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힘들었지?”


대답 대신 하영은 책상 위에 놓인 종이 다발을 집어 들여다보았다.


란이 그간 암행을 통해 조사해 모은 각 고을의 토지 현황과 인구 수, 수확량 등을 기입해 놓은 것이었다.


란;

“한 3분의 1은 했어. 넌 얼마나 했어?”


전혀 그녀답지 않게 시종일관 사근사근한 말투에, 입꼬리에는 실이라도 매달아 놓은 듯 상냥한 미소를 질질 흘려대고 있는 란을 하영이 힐끔 쳐다 보는데, 그 표정이 영 마뜩치가 않았다.


란;

“왜? 무슨 일 있어? 오다 똥이라도 밟은 거야?”


하영;

“합도 안 냈냐?”


란;

“어차피 네가 다시 검산해 볼 테고, 그럼 두 번 일하는 건데 그런 바보 같은 짓을 왜···. 미안!”


하영의 이맛살이 찌푸려지는 걸 본 란이 냉큼 어조를 바꿔 사과했다. 뻔뻔하던 표정 역시 대역죄인의 표정으로 급변하였다.


하영;

“그렇다고 아예 손도 안되는 건 너무하지 않냐?”


란;

“그게···. 나도 해볼려고는 했지. 그런데 할 때마다 답이 계속 틀리는 거야. 그래서··· 너도 알잖아, 나 진짜 셈은 약한 거···.”


고개를 한껏 숙이고는 손가락으로 옷자락을 배배 꼬았다 풀기를 반복하는 란의 모습은···. 진짜 안 어울렸다.


네가 어지간히 급하긴 한 모양이구나. 부끄럼 타는 여자애 흉내를 다 내고···. 저도 모르게 피식, 하영의 입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제 수법이 먹혀든 걸 안 란이 고개를 들고는 생긋 웃어보이며 말했다.


란;

“뭐 먹을래? 너 먹고 싶은 거 다- 말해. 내가 전부 다- 사줄테니까!”



**



전 파는 가게 앞에 앉은 란은 부추전에 김치전, 고추전, 동태전 등, 주인이 부쳐내는 족족 모두 입에 집어넣으며 맛있다 소리를 연발하였다.


그 모습에 주인여자가 웃으며 말했다.


“아이구, 잘도 먹네. 장사 해서 온통 다 그 입으로 들어가겠구만.”


란;

“헤헤. 그러니까요. 먹는게 남는 거라니까 그걸로 위안 삼죠 뭐. 식혜 한 주전자 더 주세요.”


주인이 건네는 식혜 주전자를 들어 꿀꺽꿀꺽 맛나게도 들이킨 후, 술꾼마냥 감탄사를 토해내는 란이었다.


란;

“캬아! 좋다! 죽인다!”


부쳐내기가 무섭게 또 소간전을 젓가락으로 집어 우적우적 씹어 먹는 란의 얼굴에 웃음꽃이 만발하였다.


처음 보는 옆자리 손님과도 식혜 주전자와 술잔을 맞부딪쳐가며 건배를 하였다.


란; “얼씨구, 좋을씨구! 하핳핳핳.”


더 이상은 집어넣을 수 없게 배가 빵빵해지고 나서야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란이었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란이 흡족하게 말하였다.


란;

“아, 좋다! 일은 넘한테 시키고 나는 식도락이나 즐기고. 이게 바로 진정한 땡땡이고, 사는 멋이라 할 수 있지. 캬아, 좋다!”


하늘 한가운데 자리 잡은 둥근 보름달의 운취가 사람을 취하게 하는 밤이었다.


흐드러지게 핀 봄꽃과 코끝을 간지럽히는 달콤한 꽃내음이 가득한 이 밤, 곰팡내 나는 컴컴한 객줏집 방에 앉아 주판이나 굴리고 있을 하영이 새삼 안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쯧쯧.


그러나 남의 불행은 곧 나의 행복을 돋보이게 하는 법. 란의 입에서 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라라라 라라라, 라라라라라라.


음치면 어떠한가. 이리도 흐뭇한 것을! 세상살이 팍팍하다지만 그 또한 어떠한가. 등 따습고 배부르니 이리도 좋은 것을!... 으하하하.


혼자 웃다말고 끄억, 트림을 하는 란의 눈에 한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온 건 그때였다.


밤이 꽤 늦었는데, 웅성대며 몰려 있는 모양새가 심상치가 않았다.



**



객줏집이었다. 란과 하영이 짐을 풀은 객줏집과 대동소이 해 보이는 작은 객줏집 앞에 모여든 사람들 사이로 끼어들며 란이 물었다


란;

“무슨 일이래요?”


“사람이 죽었대요.”


란;

“예에? 사람이 죽어요?”


그때 객줏집 뒷마당 쪽에서 포승줄에 묶인 젊은 남자가 포졸들에 의해 끌려 나왔다.


얼굴은 창백하였으나 사람을 죽이고 잡힌 사람치고는 비교적 안정돼 보였다. 입성도 깨끗한 것이, 모르고 보았다면 옆 동네 마실 가는 사람처럼 보였을 터였다.


구경꾼들의 웅성거림이 커졌다.


“아니, 저게 누구야? 한식이 아니야?”


“세상에! 그러네. 맞네, 맞아. 법 없이도 살 사람이 어쩌다? 뭐 잘못 된 거 아니야?”


“현장에서 잡혔대요. 자기가 죽였다 자백도 했다는데요.”


“자백이 아니라 자수라던데?”


“자백하고 자수가 다른가?”


“다르지. 자백은 네가 죽였냐 물었을 때 네, 하는 것이고, 자수는 지 발로 찾아가 내가 사람을 죽였소 하는 것이니까. 듣자니 지가 사람을 칼로 찔러 죽였으니 관에 연락을 해달라고 이 집 주인한테 말을 했다고 하더만.”


“그럼 죽인 게 맞기는 맞나 보네. 어쩌다 그랬을까?”


“이유가 있었겠지. 한식이가 누군데. 심성 착하기로 우리 동네에서 한식이 만한 사람이 또 있어?”


“바보 같은 놈. 죽였으면 도망을 쳤어야지 자수는 무슨... 지 목이 날아갈 판인데.”


“사람이 착해서 그렇지. 아이구, 딱해서 어쩌나. 쯧쯧쯧.”


“죽은 사람이 불쌍하다는겨, 아님 한식이가 불쌍하다는겨?”


“죽은 사람도 불쌍코, 한식이도 불쌍치. 사람을 죽였으니 영락없이 죽게 되잖았어?”


“저기 시체 나온다! 시체!”


한식이 끌려 나왔던 객줏집 뒤쪽에서 시체가 나왔다. 포졸 두 명이 들것에 시체를 담아 나르는데 돌부리에 발이라도 걸렸는지 그 중 한명이 크게 휘청였다. 그 탓에 시체를 덮었던 거적이 바닥으로 떨어져 시체가 드러나보였다.


아이구머니나! 가까이 있던 아낙이 놀라 소리를 지르며 뒷걸음질을 치고, 뒤에 있던 몇몇 사람들은 시체를 더 잘 보기 위해 앞으로 몰렸다. 사람들이 얽히고 설키며 한바탕 큰 소란이 일어났다.


포졸이 황급히 시체 위로 거적을 덮어 가렸으나, 사람들의 소란은 좀체 가라앉을 줄을 몰랐다.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어 얼핏 본 것이기는 하였으나, 란이 보기에 시신의 상태는 비교적 깨끗하였다.


옷에 피가 묻어있기는 했지만 많지 않았고, 몸싸움을 한 흔적 역시 보이지 않았다.


단정한 이목구비의 이십대 후반의 사내였다.



**



다음 날, 봇짐을 맨 란과 하영이 나란히 객줏집을 나섰다. 암행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그들 옆으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저마다 급한 걸음으로 어딘가를 향해 걷는 것이 목격되었다.


원래 가려던 방향과는 달랐으나 궁금한 마음에 란과 하영도 사람들을 따라갔다. 도착한 곳은 마을의 관청이었다.


이미 시위대들로 관청 앞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포졸들이 긴장한 모습으로 시위대를 지켜보고 있었다.


“한식이를 풀어줘라!”


“무고한 자를 가두는 법이 어디 있냐?”


“짐승을 죽인 것은 죄가 아니다!”


“무고한 한식이를 내놔라!”


목청을 높이는 사람들의 뒤에 가 서며 란이 물었다.


란;

“저기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뭐요?”


란;

“한식이라면 어젯밤 사람을 죽이고 잡힌 사람 아닙니까?”


“맞소.”


란;

“헌데 어찌 죄 지은 자를 풀어주라 하시는 겁니까?”


“죽이기야 했지만 그게 개백정이었다오, 그 죽은 놈이. 개백정!


란;

“개백정이요?”


“젊은 처자를 겁탈하려 했다니 그게 개백정이지, 딴 게 개백정이겠소?”


란;

“겁탈이요?”


“그랬다니까. 객줏집에서 일하는 처자를 겁탈하려는 걸 한식이가 보고 말리려다 그 사단이 났다잖소.”


“그냥 처자가 아니래도. 한식이가 좋아하던 처자였다니까. 그러니 그걸 보고 눈이 안 돌아가고 배겨?”


“그럼! 누가 그 자리에 있었대도 그 놈의 자식 찢어 죽여 버렸지, 가만히 둬?”


“사람을 구했는데 도리어 살인범으로 잡히다니 이게 말이 되냐고?”


하영;

“사정이 그렇다면 정상참작이 되겠지요. 너무들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은데요.”


“그게 그렇지도 않은 게 상대가 귀족 나부랑이랍디다.”


“귀족도 그냥 귀족이 아니고, 높은 벼슬아치라네. 그것도 임금이 직접 보낸.”


란과 하영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임금님이 직접 보낸 이라면 설마···.


“토지 조사한다고 나온 놈이 일은 안하고 멀쩡한 처녀를 겁탈 해? 쌍놈의 자슥! 하여튼 높은 것들이란!”


나쁜 예감은 어째서 틀리지를 않는 걸까. 죽은 이는 파견 나온 민사청 관리인 모양이었다.


이 일의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가늠할 수조차 없는 악재에 란과 하영의 등허리로 식은 땀이 배어나왔다.


작가의말

다른 사이트에서 유료 전환되었기에, 형평성 차원에서 이곳에서의 연재는 오늘로 마감합니다.

그동안 찾아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와 사죄의 말씀을 전합니다.

거듭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했습니다.

언제나 행복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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