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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둥거리다 님의 서재입니다.

휘, 왕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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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빈둥거리다
작품등록일 :
2018.01.31 18:48
최근연재일 :
2018.04.13 19:06
연재수 :
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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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92
추천수 :
50
글자수 :
134,425

작성
18.01.31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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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0쪽

여정의 시작-1

DUMMY

드디어 도착이다.


촉박한 일정 탓에, 하루 서너 시간의 수면 시간을 제외하고는 꼬박 말 위에서 지내며 달려온 고된 여정이었다. 말과 사람 모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일행을 대표해 강협이 문 앞을 지키고 섰는 보초에게 다가가 용건을 말하는 사이, 말에서 내린 란과 하영, 운초는 굳어진 근육을 풀었다.


국경을 넘어선지 나흘 만에 비로소 찬찬히 대진국의 거리와 사람들을 둘러 볼 여유도 생겨났다.


과연 대국다웠다. 수도라고는 하지만 황제가 거주하는 황성과는 거리가 먼 외곽 지역임에도 굴곡진데 하나없이 길이 모두 넓고 곧았다. 길 양옆으로는 크고 웅장해보이는 건물들이 즐비하고, 활기 가득한 사람들로 거리는 붐볐다.


남녀 가릴 것 없이 화장을 하고, 화려한 장신구를 한 모습은 이채로웠다. 심지어 등짐을 지고가는 노새마저도 붉고 푸른 오색실로 잔뜩 멋을 내고 있었다.


넓적하고 평평한 돌이 빈틈없이 깔려있는 바닥은, 수많은 인파와 마차들의 행렬에도 흙먼지 하나 날리지 않아 쾌적하였다. 실로 고국의 전경과는 확연히 대비되는 모습이라 할 수 있었다.


인강국에선 왕성 앞 대로마저도 맑은 날이면 풀풀 흙먼지가 날리기 일쑤였다. 비라도 내리면 먼지는 가라앉는 대신 이내 진창으로 변해버린 길은 푹푹 발이 빠지고, 옷과 신발을 엉망으로 만들곤 했다.


대로가 그 모양이니 구불구불 좁고 어두운 뒷골목의 사정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가옥의 수준 또한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귀족들을 제외한 일반 백성들의 집 대부분이 쩍쩍 금이 간 담벼락에, 제때 이엉을 갈아주지 못한 초가 지붕들로 썩어 무너지기 일보직전이어서 보기에 심히 위태로웠다.


뿐인가. 인강국에선 굴러다니는 돌맹이보다 많은 것이 걸인들이라 했다.


손발이 불편해 할 일을 찾지 못하는 걸인들, 속병이 들어 운신조차 하지 못하는 걸인들, 늙은 걸인, 젊은 걸인, 어린 걸인들이 거리마다에 차고 넘쳐 발에 채였다.


운이 좋아 걸인의 신세는 면했을지 몰라도 나머지 백성들의 형편이라고 나을 것은 없었다. 몸을 뉘울 방이 있고, 간신히 끼니를 굶지 않는다는 것뿐 그들 역시 앙상하고 추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말라버린 고목마냥 굳어진 얼굴로 피폐한 삶을 희망도 없이 속수무책 살아나가는 백성들···


이역만리 타국땅 한복판에서 고국의 현실을 새삼 뼈아프게 느낀 세 사람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운초;

“별 거 없네, 뭐···. 별 것도 없어....”


누구보다도 자존심 강한 운초가 간신히 입을 떼었다. 그러나 정작 그 말과는 달리 운초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동경 가득한 눈빛으로 홀린듯 사방을 주시하느라, 쳐다보는 란의 시선조차 느끼지 못한 채였다.


못 본 척, 고개를 돌리는 란에게 하영이 물었다.


하영;

“어때?”


란;

“뭐가?”


하영;

“대진국에 온 소감 말이야.”


란;

“글쎄···... 적국의 한복판에 서 있자니 기분이 좀 이상하긴 하네.”


하영;

“적국이라···.”


란;

“물론 겉으로야 화친을 했지. 그치만 전쟁의 기억을 지워버리기에는 10년의 기억은 너무 짧으니까. 나야 그때 어렸고, 또 외가가 있는 학섬으로 피난을 갔었거든. 그래서 특별히 나쁜 기억은 없지만, 우리 할머닌 아직도 전쟁 때 얘기만 나오면 안색이 파래지셔. 가끔은 곧 숨이 넘어갈 듯 하셔서 옆에 사람이 없으면 위험할 정도고.”


하영;

“···..”


란;

“본가에 남아계셨는데 그때 직접 보셨대. 사람 인피를,그것도 어린 애의 살거죽을 벗기면서 대진국 병사들이 낄낄 웃는 모습을. 집마다 불을 지르고,겁간을 해대고···. 살아서 지옥을 보신 셈이지."


하영;

"...."


란;

"그런 사람이 어디 우리 할머니 뿐이겠어? 온 나라가, 온 백성이 지옥을 경험한 거지, 바로 이 대진국 때문에···..”


전쟁의 피비린내는 사라졌을지 모르나, 그 여파는 아직도 남아 인강국의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경제는 무너지고, 도덕과 신의와 주권 역시 땅에 떨어졌다.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중 가장 참혹한 일이랄 수 있었다.


하영;

“근데 어떻게 용케 왔네? 대진국에 간다는데 말리지 않으셔?”


란;

“바보냐? 당연히 말 안했지! 할머닌 내가 심신수련하러 절에 들어가는 줄 알고 계셔.”


인강국 여성의 평균치를 웃도는 까무잡잡한 피부, 커다란 입, 튀어나온 광대, 고집스러워 보이는 매부리코까지. 하얀 피부에 오목조목한 얼굴을 미인으로 치는 인강국에서 란의 외모는 결코 좋은 평을 받지 못했다.


“누가 보면 줏어온 자식이라고 하겠네. 저리 생긴 인물이 우리 집안엔 없는데 말이야. 쯧쯧. 이쁘게 안생겼으면 얌전하게라도 생겼든가. 저리 대가 세겨 생겨서야 시집이나 잘 가려나? 쯧쯧쯧.”


친척들이 모이면 늘상 하는 소리였다. 그럴 때면 또한 항상 란의 편에 서서 목소리를 높이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란의 아버지였다.


“누님, 저 애 눈을 보고 얘기를 하세요. 우리 란이 눈 하나면 천하절색 미인 열을 데려와도 상대가 안됩니다. 아닙니까?”


그랬다. 란의 눈은 참으로 특별했다. 다른 모든 결점을 가리고도 남을 수려하고도 아름다운 눈임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했다.


길고도 풍성한 속눈썹 아래, 가무잡잡한 피부와 대비되어 더욱 희게 보이는 물기 촉촉한 순백색 빛깔의 흰자위. 그 가운데 유독 크고 선명한 검은 눈동자는 한없이 짙고 깊었다. 동시에 세상을 모두 비출 듯 맑은 검은 빛이기도 했다.


무심히 보고 지나칠 수는 있겠으나, 단 한번이라도 주목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는 마성이 깃든 눈.


그 마력 가득한 눈에 힘을 주며 란이 말했다.


란;

“어차피 시집 가 남편 받들며 살 성질은 아닌 것 같고, 그래서 부처님이나 모시며 사는 게 낫다 싶으신 건지, 말리는 시늉조차 안 하시더라. 나 참. 왜 여잔 고분고분 해야 되는 건데? 나 같은 여자 좋아하는 남자도 있지 않겠어, 안그래?”


천성이 신중한 하영답게 바로 대답이 나오지 못했다. 그러자 단박에 도끼눈을 뜨고 란이 세차게 노려보았다.


란;

“뭐야? 그 우물쭈물은?”


하영;

“아니..... 너 남자 관심 없다 하지 않았냐?”


하영의 등짝을 란이 소리도 경쾌하게 손바닥으로 짝- 소리가 나게 치며 말했다.


란;

“오우, 기억력! 그거 우리 처음 만난 날, 지나가는 소리로 한번 한 것 같은데 그걸 기억하냐? 혹시 너 나한테 관심있는 거야?”


본인은 장난이겠으나 무도를 익힌 손이었다. 하영이 차마 크게 아픈 기색은 내지 못하고, 몸을 비틀며 맞은 곳을 말없이 손으로 비벼댔다. 그 모습에 란은 목젖이 들여다보일 정도로 입을 크게 벌리며 웃어댔다.


란;

“하하하하. 아프냐? 미안! 내가 손이 좀 매워.”


여자가 얌전치 못하다며, 친척들이 보면 분명 한소리할테지만 다행히 이곳은 이역만리 타향땅이었다.


더구나 대진국은 인강국과 달리 여인의 바깥 활동이 꽤나 자유로운 나라였다. 여인이 관직에 진출키는 비록 어려우나, 그 외의 부분에선, 특히 상업에 종사하는 여인들의 수는 그 수가 적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세도 상당하였다.


현 대진국 황제를 황위에 올리는데 최고 공훈을 세운 이도 여인인데, 그는 대진국에서 손꼽히는 상단의 우두머리라고 했다.


비록 적국의 땅에 와 있기는 하나 그래서 일정부분 해방감을 느끼기도 하는 란이었다.


란;

“하도 찌질한 놈들이 많으니까. 여자가 바깥에 나다니는 것 자체를 시비거는 놈들까지 있잖아. 그래서 그런 놈 만나느니 차라리 안 만나고 말겠다 그 말이었지. 아무튼 진짜 크다. 우리랑은 비교가 안되게 크고, 부유하고, 여유도 있고, 그리고···.”


하영;

“문명대국이지.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란;

“그래. 문명대국.···. 단순히 크기만 하고, 부자이기만 한 거라면 그깟 것들 무시하면 그만인데. 그런 건 겉껍데기에 불과한 거니까.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거잖아. 무너뜨릴 자신도 있고. 그런데 이건···.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네.”


운초;

“무슨 헛소리들이야? 그래봤자 야만인 나라야. 300년도 넘은 유구한 전통의 우리 인강국하고는 비교도 안된다고!”


돌연 새파랗게 날 선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운초였다. 하영이 부드러운 시선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하영;

“하천, 봤니?”


운초;

“뭐?”


하영;

“하천 말이야. 오면서 봤는데 엄청 깨끗하더라. 아무도 거기에 뭘 버리지 않나봐. 거리도 마찬가지고. 봐,말이며 노새며 다 주머니를 달고 있어.”


하영이 가리키는 손끝을 따라 란과 운초의 시선이 옮겨가 보니, 과연 그 말대로였다. 짐승들의 똥으로 거리가 더럽혀지는 걸 막기 위해서인 듯, 말과 노새 등 동물의 엉덩이 부위에는 모두 주머니가 달려 있었다.


잠깐만 한눈을 팔아도 거리에서 똥밟기가 예사인 인강국의 모습과는 이또한 확연히 구분되는 모습이었다.


란;

“그러고보니 들은 기억이 나. 대진국에선 똥오줌을 관리하는 정부 부서가 따로 있대. 똥은 똥대로, 오줌은 오줌대로 모아서 비료를 만들어 논과 밭에 뿌린다나? 그래서 대진국 농작물들은 우리 인강국 것에 비해 열매가 배이상 크고 실하다고 하더라고.”


하영;

“그뿐이 아니야. 똥오줌으로 인해 하천이 오염되는 일이 없으니까 질병 예방도 돼. 일년에 몇번씩 전염병이 도는 우리 인강국과는 차원이 다른 거지. 그래서···”


운초;

“그래서 뭐? 하고 싶은 말이 뭔데? 거국적으로 오줌똥 관리하자 그거냐? 그러면 부국강병 이룬대? 니들은 어떤지 몰라도 양식있는 자라면 하천에 똥오줌 버리는 일 따위 안해! 우리집만 해도 그런 무식한 짓따윈 절대 안한다고!”


하영;

“너희 집은 수도 번화가에 있으니까. 하지만 외곽으로 조금만 벗어나도 사정은 달라져. 빨래하는 사람들 옆에서 태연히 요강을 부시고, 아이들은 그 물에서 물장구를 치지.”


운초;

“아, 진짜 더러워 못 들어주겠네. 똥오줌 말고는 할 얘기가 없냐, 니들은?”


작가의말

명징한 겨울 새벽 공기와도 같은,

겨울내 얼었던 강변가 두꺼운 얼음을 녹이는 봄날 오후의 햇볕과도 같은,

그런 글을 쓰려 합니다.


성장과 우정, 그리고 연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무쪼록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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