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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둥거리다 님의 서재입니다.

휘, 왕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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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빈둥거리다
작품등록일 :
2018.01.31 18:48
최근연재일 :
2018.04.13 19:06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11,587
추천수 :
50
글자수 :
134,425

작성
18.03.09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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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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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여정의 시작-17

DUMMY

술상이 놓였다. 며칠 전 왕세자의 생일상이 차려졌던 그 정원, 그 정자 마루였다.


이것 또한 계략의 일환인가? 하영과 강협, 운초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앞에 놓인 술상을 바라보았다.


왕세자;

“스승을 얻었으니 술 한잔은 내야 올바른 제자라 할 터이지.”


술병을 집어 든 왕세자가 끝에 앉아있는 운초를 보았다.


운초;

“저, 저는 술을 못합니다.”


왕세자;

“술을 못해?”


운초;

“예··· 황공하옵니다, 저하.”


왕세자;

“사시사철 주색에 빠져 사람 목을 베는 것이 왕세자의 술버릇이라, 그 말을 들은 게로군.”


운초;

“어찌 그런! 아니옵니다!”


운초의 강한 부정에도 왕세자의 입가에 떠오른 씁쓸하고도 자조적인 미소를 지우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왕세자;

“이하 동문인가?”


강협과 하영 두 사람을 보며 왕세자가 물었다.


둘이 채 입을 떼기도 전에 운초가 그대로 바닥에 엎드렸다. 오직 진심으로 말하는 운초의 목소리가 조금 떨려나왔다.


운초;

“소신 비록 우둔하오나 어찌 그런 불충한 자들이 내뱉는 요설 따위를 믿겠나이까? 저하, 감히 거짓을 아뢴 죄 죽음으로 벌하시되 소신의 충심만은 부디 의심치 말아주시옵소서!”


왕세자;

“거짓을 말한 것은 인정을 하겠다?”


왕세자의 입가에 문득 미소가 떠올랐음을, 엎드린 운초는 미처 알지 못하였다.


운초;

“예. 소신 죽음으로써 그 죄를 씻겠나이다. 죽여 주시옵소서, 저하!”


왕세자;

“소문을 사실로 만들 수는 없으니 대신 다른 벌을 내리지. 벌주다. 받거라.”


운초가 감격해 몸을 일으켜 술을 받았다.


이어 강협이 왕세자가 따라주는 술을 황공히 받아들었다.


왕세자;

“마셔도 되겠느냐? 허리 다친 병자이거늘···”


왕세자가 하영을 보며 말하는데, 그 입가에 다시 한번 미소가 떠올랐다. 그 미소의 의미를 안 하영이 황송해하며 얼른 잔을 내밀었다.


하영;

“주시옵소서.”


강협이 술상 아래로 운초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그리고 란의 몫으로 놓여진 빈 술잔을 눈짓으로 가리키니, 곧 두 사람 사이에 이심전심의 눈길이 오고갔다.


운초;

“어, 저게 뭐지?”


운초의 말에 하영의 잔에 술을 따른 왕세자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운초가 란의 술잔을 집어들어 정원의 풀숲 사이로 던져버렸다. 무성한 풀 덕분에 아무 소리도 나지 않은 완전범죄가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운초;

“청솔몬가?”


강협;

“어, 맞네. 청솔모.”


맞춘 듯 그때, 란이 들어왔다. 운초의 옆, 빈 자리에 가 앉는 란을 향해 왕세자가 말하였다.


왕세자;

“술을···”


강협;

“황공하오나 저하, 란은 술을 못합니다.”


다급한 마음에 강협이 감히 왕세자의 말 중간을 치고 들어갔다.


그런 강협을 왕세자가 찬찬한 시선으로 바라보니 한결 다급해진 강협이 사족의 말을 중언부언 덧붙이기 시작했다.


강협;

“한잔도 못하옵니다. 단 한잔도. 하오니 요량하여 주십시오.”


왕세자;

“···.”


운초;

“하하하. 맞춤하니 잔도 없습니다. 이건 술을 내리지 마시라는 하늘의 계시가 아니올는지요. 하하하.”


운초의 너스레도, 강협의 불충을 무릅쓴 언행의 보람도 없이 왕세자는 자신의 잔을 들어 술을 마시고는 빈 잔을 란에게 내밀었다.


운초와 강협, 그리고 하영까지 불안한 시선으로 주목하는 가운데 란은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결국 술잔을 받았다.


왕세자가 손에 든 것은 그러나 술병이 아니었다. 란이 들고 있는 잔에 물주전자를 기울여 따르며 왕세자가 말하였다.


왕세자;

“제자가 스승에게 주는 입학례이니 술이라 생각하고 마시거라.”



**



란이 취했다. 취해서 해롱거렸다. 그 모습을 모두가 어이없어 바라보고 있었다.


란;

“저하, 저하께서 내리신 술이라 그런지 기분이 대따 좋습니다. 히히히. 꼭 천상에 오른 것 같습니다. 맛이 죽입니다요! 한 잔 더 주세요, 저하. 한잔 더요, 더, 더, 더!”


란이 내민 술잔을 운초가 다급히 뺏어들었다. 그리고는 란을 대신해 연방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였다.


운초;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저하. 오죽하면 술 취한 개라는 말까지 있겠습니까? 이것이 취해 가지고 사리분별을 못해 이리 하는 것이니···”


란;

“개? 내가? 그럼··· 멍. 멍멍, 멍멍멍. 히히히. 난 개다! 멍멍.”


말과 동시에 란이 운초의 팔을 잡고는 꽉 이로 물었다. 개처럼. 한마리 개가 되어!


운초;

“악! 이것이 진짜 미쳤나?”


란;

“왜? 나 개라며? 개는 이래도 되는 거야.”


다시 팔을 물려하는 란.


운초가 그런 란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밀어내는 한편, 어거지 웃음을 띤 얼굴만을 돌려 다시 말하였다.


운초;

“저하, 미친 개입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란;

“놔! 니들은 친구도 아니야! 이렇게 좋은 걸 그 동안 니네끼리만 마셨단 말이야? 의리 라고는 쥐뿔도 없는 놈들! 괘씸한!”


운초의 손을 뿌리친 란이 느닷없이 성을 내며 술병을 집어들었다. 방금 전까지 개를 자처하며 희희낙락하였던 것을 생각하면 딱 조울증 걸린 미친개의 처사라 아니할 수 없었다.


운초가 황급히 미친 개의 손에서 술병을 뺏어 들었다.


운초;

“야, 이거 술이야. 죽으려고 환장을 했냐?”


란;

“왜 죽냐? 나, 저하가 따라주는 술 마신 여자야, 이거 왜 이래?”


운초;

“너야말로 왜 이러냐? 아까 그거, 술 아니라 술 따랐던 잔 헹군 물이었다고. 기억 안나냐?”


란;

“히히히. 거짓말쟁이! 내가 아무렴 물 마시고 이렇게 취했다고? 저하, 얘가 이렇게 순 뻥장이에요. 입만 열면 뻥이야. 뻥! 그래도 속은 착해요. 그니까 예쁘게 봐 주세요. 히히, 귀여워!”


란이 어린 조카에게 하듯 운초의 두 볼을 손가락으로 잡고는 이리저리 잡아당겼다. 히히히, 미친 여자마냥 연신 웃음을 흘려대며.


어이가 없는 것을 넘어 기절할 지경의 상황을 당한 운초가 란의 손을 뿌리쳤지만, 한사코 다시 볼을 꼬집어대는 란이었다.


란;

“귀염둥아, 내가 노래 하나 해 줄까?”


운초;

“뭐? 안돼! 절대 안돼! 꿈도 꾸지 마, 너!”


놀란 와중에도 운초가 황급히 말렸으나 술 취한 개에게는 마이동풍일 뿐이었다.


란;

“알았어. 해 줄게. 잘 들어, 귀염둥아. 흠 흠.”


그렇게 란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음정박자 무시는 기본이었다. 진짜 문제는 시종일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댄다는 것이었다.


이러다가는 목구멍이 찢어져 란이 죽든지, 고막이 터져 청중 네 사람이 죽든지 할 판이었다.


왕세자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나름 산전수전 다 겪은 몸이라 생각하였지만 그래도 귀하게 자라신 몸이었다.


이렇듯 천태만상 속세의 인간계를 직접 맞닥뜨리고 보니 그 충격이 과히 대단하였던 것이다.


란의 찢긴 고음 사이로 한없이 부드러운 저음의 목소리가 스며든 건 그때였다. 강협이었다.


안정되면서도 묵중한 힘이 실린 강협의 노래 소리에 란의 미친듯 날뛰던 고음은 이내 주춤하더니 멈춰섰다.


놀란 금붕어처럼 한동안 입만 뻐끔거리고 서서 강협을 쳐다보고 있던 란은 돌연 히죽 웃음을 흘리더니 자리에 앉았다. 무릎을 세우고, 그 위에 턱을 괸 편안한 자세로 노래 소리에 빠져드는 란의 얼굴에 아련함이 묻어나왔다.


듣는 이의 귀는 물론 마음까지도 편안히 어루만져 주는 강협의 아름다운 노래 소리가 정원 안에 가득히 울려 퍼졌다.


좀 전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왕세자는 놀란 마음으로 강협의 노래를 들었다. 잔잔한 미소를 입가에 띄운 채.



**



다음 날, 또 다시 훈련장.


란이 하영의 뒤에 숨듯이 섰다. 하영이 웃으며 란의 팔을 잡고 옆에 세웠으나 란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였다.


그런 란을 운초는 참으로 꼴 좋-다, 생각하며 쳐다보았다. 그 옆, 걱정스런 얼굴의 강협과는 사뭇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그런 네 사람을 보는 왕세자의 얼굴은 평온하였다.


왕세자;

“오늘은 누구부터 시작 할 것이냐?”


하영;

“제가 먼저 하겠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하영의 기습에 운초와 강협, 그리고 란까지도 기겁해 쳐다보았다.


운초가 앞으로 나서려는 하영의 발을 걸기 위해 움직이려는데, 왕세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왕세자;

“발을···”


엄하기 그지 없는 왕세자의 시선이 자신을 향해 있음을 안 운초가 순간 동작을 멈추고 움찔하였다.


왕세자;

“함부로 놀리면 그 발을 자를 것이요. 혀를 함부로 놀리면 그 혀를 자를까 하는데···..”


뒤의 말을 하면서는 란과 강협을 보는 왕세자였다.


작가의말

못본새, 훌쩍 자란 모습에 깜짝 놀라는 일이 있습니다.

못본새, 부쩍 연로해진 모습에 깜짝 놀라는 일도 있습니다.


모르고 흘러보낸 시간, 모르고 지나쳐버린 세상의 무거움을

새삼 절감합니다.


함부로 못본채, 모른채 하지 말아야할 일입니다.

내 가벼움의 이유가 거기에 있을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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