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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펭귄의 서재

어쩌다 보니 공간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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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펭귄
작품등록일 :
2020.12.13 14:41
최근연재일 :
2021.03.05 18:15
연재수 :
10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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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7
추천수 :
184
글자수 :
390,460

작성
20.12.14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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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0
추천
7
글자
18쪽

1장 그래서 홧김에 휴학을 내버렸죠. (3)

DUMMY

“······그러니까, 이건 진짜 연구원의 굳은 연구 의지를 꺾는 전형적인 갑질인 거죠!”


어지러운 집 안에서 기막히게 틈을 찾으며 왔다 갔다 하며 얘기를 쏟아내는 여자의 모습을 진욱은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진욱 씨도 회사에서 그런 일 겪었다면서요. 그러니까 제 기분도 이해할 테죠? 안 그래도 오빠도 진욱 씨 얘기 듣고 회사가 제정신이 아니라면서 말을 하던데······.”

“그러니까, 제정신이 아닌 회사에서 곧 잘릴 사람에게 무슨 볼일이 있는데요.”


진욱은 마시던 커피를 마무리한 뒤, 여자에게 무미건조하게 말하였다.


“뭐 아직 잘린 건 아니지만, 그래도 대기발령이라니 얼마나 화가 나겠어요, 저도 대학에서 아까 말한 일들을 겪으니까 화가 나고요. 짧게 말해서 화난 사람들끼리 뭐라 해야 하지······ 동병상련 이런 걸 좀 하자는 거죠.”

“동병상련을 원하는 것치고는 남의 집에 막 들어오고 예의가 없는 거 아니에요?”


진욱은 몸을 젖히며 식탁 앞에 서 있는 여자를 보고 얘기하였다.


“아이, 그거야 진욱 씨가 연락도 안 되고 집 밖으로도 안 나오니까 제가 방법이 없어서 그런 거죠, 이해 좀 해요.”


진욱의 노골적인 부정적 태도에도 여자는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단순한 결심으로 진욱의 집에 찾아온 것은 아닌 것은 분명했다.


진욱이 빈 커피잔에 손을 대려고 할 때, 여자는 진욱의 빈 잔을 낚아채 싱크대 구석에 놓으면서 말을 이었다.


“아무튼, 이왕 이렇게 된 거 진욱 씨가 절 좀 도와줘요. 어려운 것도 아니고 진욱 씨가 늘 해오던 대로만 하면 되니까요. 보니까 집에서 폐인같이 지내고 있으면서 참······.”


진욱은 이제 싱크대 주변까지 정리하려는 여자를 여전히 탐탁스럽지 않게 보았다.


“오랜만에 집에서 쉬는 건데, 괜히 방해하지 마요.”

“여기서 조용히 쉬나 우주에서 조용히 쉬나 똑같잖아요. 내가 진짜 딱 출발하는 순간부터 도착할 때까지 드라마 보는 엄마들처럼 조용히 있을게요.”


필요 이상으로 높은 소리를 내며, 어느새 다 씻은 커피잔을 정리하는 여자의 모습에 진욱은 슬쩍 한 발짝 물러나기로 했다.


“그래서, 정확히 뭘 원하는데요?”

“그러니까, 얼마 전에 뉴스 봤죠? 그 트리톤에 있던 기지가 습격당한 거요. 거기 가고 싶어요.”


여자는 몸을 돌려 싱크대에 기댄 후, 진욱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였다.


“그래요, 그렇다고 칩시다. 그거랑 징계 중인 일개 조종사인 나와 무슨 상관인가요?”


진욱은 한발 물러섰지만, 여전히 귀찮은 짐을 떠맡은 당나귀 같은 표정으로 여자를 바라보고 대꾸하였다.


“일개 조종사가 아니라, 우리 사촌오빠가 인정한 최고 조종사잖아요.”


여자는 씩 웃으면서 엄지를 치켜들고 말하였다.

어지간히 진욱의 도움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진욱은 그런 모습이 어이없기도 하면서, 동시에 여자의 이야기에 계속 대답하고 있었다.


“그건 걔가 잘못 알고 있는 거고······ 어쨌든 내가 조종을 좀 해달라는 거죠, 그럼?”

“네, 맞아요. 분명히 트리톤에 가면 툴론에 대해 연구할 수 있는 흔적들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근데, 대학에선 ‘그런 건 너보다 훨씬 똑똑한 사람들이 넘치는 연합군과 행성 연합에서 알아서 할 테니 지도 교수 동계 학회 논문이나 도와라.’ 하잖아요.”


여자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세상에 그 교수 요새하는 연구 주제가 뭔지 알아요? ‘유로파에서 찾을 수 있는 우주먼지의 구성비’래요. 참나, 플레넷에 조금만 검색하면 나오는 것들을 굳이 또 논문을 쓴다니 세금이 줄줄 샌다니까요.”


여자는 진심이 진하게 배어 나오는 비꼬는 말투로 손짓까지 쓰면서 연기하였다.

그러고 여자는 진욱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진욱은 살짝 당황하였으나 평소처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래서 홧김에 휴학을 내버렸죠. 뭐, 집에서야 난리 칠 게 뻔해서 말은 안 했는데, 사촌오빠한테는 얼마 전에 통화하면서 얘기를 했어요. 그러다가 당신 얘기가 나왔고, 딱 제 계획에 맞는 거 아니겠어요. 사실 뭐, 연구실에 처박혀 있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어디 실력 좋은 조종사의 사돈 팔촌이라도 평소에 알겠어요. 이렇게 또 알아가는 거죠.”


진욱은 구구절절한 이야기까지 말하는 여자 덕에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하였지만, 여전히 끌리지는 않았다.


“근데, 왜 꼭 트리톤이에요? 툴론이 침입한 다른 곳도 많은데요.”


여자는 먹이를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진욱의 반응을 기다렸지만, 오히려 되돌아온 질문에 낮게 감탄사를 보였다.


“아, 역시 들은 대로 예리하네요. 음······.”


여자는 고민하는 듯 입을 닫은 후 잠시 생각에 빠졌다.

진욱은 어디서부터 자신이 예리한 것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일단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제일 최근이 아무래도 트리톤이니까······ 에이, 자세한 건 트리톤에 가면 얘기해 줄게요. 그쪽도 궁금하죠? 잘 생각해 봐요. 괜찮은 제안이잖아요. 안 그러면 계속 찾아올 거예요.”


진욱은 자리에서 일어나 여전히 싱크대 앞에서 아기를 달래듯 살살 어루만지듯 유혹하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여자를 지나쳐 냉장고로 몸을 옮긴 진욱은 맥주 한 캔을 꺼낸 뒤 한 모금 마시면서 말하였다.


“툴론은 관심 없어요. 어쨌든, 그 트리톤까지만 내가 당신을 데려다주면 되는 건가요?”

“네, 우주선도 제가 빌리고, 가서도 진욱 씨는 아무것도 할 거 없어요. 이런 파격적인 제안에 보수까지 두둑하게 주는데 마다하는 것이 이상하죠.”


여자는 수면까지 나온 물고기 입을 보고 열심히 마지막 릴을 감듯, 진욱을 강태공처럼 몰아붙였다.


“더해서, 가는 동안은 이온추진 방식으로 가고요?”

“좋아요, 어떻게든 가기만 하면 되니까요. 백방으로 알아봤는데 다들 손을 절레절레하는 게 아유, 뭐가 그리 무섭다고······.”


진욱은 으스대는 여자를 뒤로하고 다시 침대 쪽으로 가서 TV를 켰다.

TV에서는 이제 아예 예전 툴론의 침략의 일대기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를 쏘아대고 있었다.

진욱과 여자는 각자의 자리에서 TV를 바라보았다.


머릿속으로는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랐지만, 확실한 것은 이제 여자뿐만 아니라 진욱의 머릿속에도 가랑비에 옷 젖듯 여자의 제안이 스며든 점이었다.


진욱은 눈을 TV에 고정한 채 한동안 있다가 여자에게 들리듯 입만 열었다.


“한 가지 더.”


여자는 TV와 진욱을 미어캣처럼 두리번거리다 진욱의 소리에 반응해 진욱 쪽으로 다가갔다.


“뭔데요?”

“갈 때까지 조용히 있기.”


여자는 진욱의 말을 듣고 살짝 웃겼는지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윽고 진욱의 앞 어지럽혀진 바닥 사이의 그릇들을 발로 밀어내면서 길을 만들어냈다.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진욱은 힘없이 밀려나는 그릇들을 바라보다, 자신과 TV 사이에 선 여자의 모습으로 시선을 옮겼다.


죽어도 죽어도 계속 도전해 끝내 마지막 판 보스를 물리친 어린아이처럼, 뿌듯해하는 표정의 여자는 진욱과 눈이 마주치자 손을 내밀었다.


“그럼 하는 거예요. 에헴, 그럼 정식으로 다시 소개할게요. 서울 5 대학 천체물리과 박사 과정 대학원생 이희진이라고 해요.”


희진은 말을 마치면서 내민 손을 살짝 올렸다가 내렸다.


진욱은 마지못해 손을 잡아 악수하였다.

희진은 진욱의 손이 닿자 진욱의 눈을 바라보면서 힘을 주어 얘기하였다.


“그리고 진욱 씨 직장 동기인 태환 오빠의 사촌 동생이고요.”


마지막으로 소개를 마친 희진은 오래된 친구와 헤어지듯, 악수한 손을 살짝 힘주어 잡은 뒤 손을 풀었다.


진욱은 악수했던 손을 풀면서, 괜히 동기들을 불러 집들이를 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 막 생각해보니 자기 집에 일단 쳐들어가자고 집들이 바람을 넣던 녀석도 태환이었다.

조용했던 우주가 괜히 그리워지는 진욱이었다.


------------------------------


“이걸로 어떻게 해왕성까지 가요.”


진욱은 조종간 위의 버튼을 몇 개 누른 후, 조종간을 잡은 손을 놓았다.

이윽고 전면 모니터 위로 간단한 지도가 몇 개 뜨더니 선체가 살짝 떨렸다.


삐걱대는 버클을 낚아챈 진욱은 눈에 떨림이 보일 정도로 손에 힘을 주며 버클을 눌렀다.

짧지만 투박한 소리를 내며 버클이 풀리자 진욱은 고개부터 뒤로 돌렸다.


희진은 그런 진욱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선내 ITC에 꽂혀 있는 자신의 단말기에 눈을 고정하고 있었다.

빠르게 눈동자를 돌리는 희진의 모습에 진욱은 더 크게 불평하려다 속으로 한숨을 쉬며 참았다.


조종석에서 한 다리를 밖으로 뻗은 진욱은 떠다니던 전자펜을 낚아채면서 일어섰다.

학교 이름이 적혀있는 걸 보니 희진의 것이 분명했다.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단말기와 ITC를 번갈아 보는 희진의 모습을 떠올리고, 진욱은 자신의 주머니에 전자펜을 넣었다.


선체 밖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창밖을 보던 진욱은 주날개까지 훑어본 후, 시선을 주날개 너머로 넘겼다.

창 너머로 보이는 어두운 우주는 늘 이런 모습이었음을 끊임없이, 조용히 알리고 있었다.


진욱은 얇은 섬광의 햇빛에 갈라지는 어둠을 보며 다시금 우주에 적응하였다.

얼마간 그 광경을 쳐다보던 진욱은 갑작스러운 소리가 난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희진의 단말기에서 흘러나오는 알 수 없는 전자음이 조용하던 선체 내부를 순간 깨웠다.


“역시 예상이 맞았어요! 트리톤에서 초동조사를 할 때 연합이 놓친 섹터가 있어요. 방금 시뮬레이션을 돌려봤는데 내가 생각했던 곳이랑 거의 일치해요.”


진욱은 기다렸다는 듯 찬물을 얹었다.


“그렇다고 칩시다. 문제는 그게 아니에요.”


이제 막 입에서부터 시작한 웃음이 볼 쪽으로 가던 희진은 웃음을 다시 입 쪽으로 되돌렸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진욱은 머리 받침대에 손을 대고 몸을 희진 쪽으로 살짝 밀었다.

컨트롤 박스를 넘어갈 때쯤, 거칠게 선체 벽을 잡은 진욱은 다른 손으로 벽을 가볍게 쳤다.


조용했었던 선체에 다시 둔탁한 소리가 퍼지면서 희진은 진욱이 친 벽을 바라보았다.


“소리요? 나 지금까지 조용히 있었어요. 솔직히 소리 냈다고 이러는 거면 억지에요.”


희진은 산책하러 가자고 조르는 강아지를 보듯, 살짝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말하였다.


진욱은 한 번 더 벽을 쳤다.

공기를 타고 흐르는 파동이 조금 더 커진 느낌이었다.


“그게 아니라, 이 우주선 자체가 문제에요. 이걸로는 트리톤까지 한 달 안에 못 가요.”

“그래도 내가 구할 수 있는 이온추진 우주선 중에는 제일 빨랐어요. 이름도 얼마나 멋져요. 슈퍼노바 호. 거기다 진욱 씨는 아주 유능한 조종사잖아요.”


희진은 ‘유능한’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말하였지만, 자신이 쳤던 벽부터 슈퍼노바 호 선체 전체를 이미 둘러보고 있는 진욱에게는 별로 효과가 없었다.


“유능한 조종사라고 평범한 우주선을 막 날아다니게 할 순 없어요.”

“원래 우주선은 날아다니는데요?”


진욱은 실없이 둥둥 떠다니면서 농담까지 실없이 하는 희진을 보고 한마디 하려다 참았다.


“말 한대로 한 달 안에 가려면 엔진 출력이 지금보다 최소 두 배는 되어야 해요. 개조한다고 해도 부품도 없고 시간도 더 걸릴 겁니다.”

“그러면 최대한 빨리 개조하고 가면 되죠.”

“우주 공항이나 정거장, 하다못해 임시 보급소에만 기항해도 입출항 기록이 전부 연합 쪽에 들어갈 거예요. 그렇게 하면 당신이 말한 ‘몰래’ 간다는 건 불가능해요.”


이번에는 진욱이 ‘몰래’에 힘을 주며 희진을 향해 말하였다.

이제 막 공중에서 반 바퀴를 회전하던 희진은 살짝 고개를 저었다.


그것이 진욱의 말에 동의한다는 의미인지, 슬그머니 웃기 위함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희진은 한동안 정적 속에서 떠다닐 뿐이었다.


진욱은 결국 자신의 말에 희진이 수긍한다고 간주하고, 희진에게서 눈을 떼려고 했다.


“아!”


희진은 슈퍼노바 호의 벽을 치던 진욱과는 다른 성격의 파동을 새롭게 만들었다. 희진은 자신의 손바닥을 가볍게 주먹으로 쳤다.


“생각났어요. 오빠가 예전에 얘기해줬는데, 방금 그 말 듣고 생각났어요.”

“뭐가요?”


진욱은 자신의 집에 침입할 때부터 어딘가 독특했던 희진이 이번에는 무슨 말을 할지 걱정이 되었다.

거기다, 선체란 조용한 곳이라는 진욱의 생각을 또 깨트리는 희진의 행동에 불편함도 느꼈다.


“몰래 우주선을 개조할 수 있는 곳이 있어요. 개조 말고도 여러 가지 한다던데······.”

“이번에도 또 이상한 제안 할거죠?”


진욱은 타고 있던 슈퍼노바 호의 벽을 내리치며 말했다.


“아이참, 그런 거 아니에요. 오빠가 확실하다고 그랬어요.”

“지상직만 하던 녀석이 무슨······.”


희진은 공중에서 자세를 바로잡으며 진욱의 말을 끊었다.


“그 대신 진욱 씨보다 발이 넓죠.”


퇴근하고 이따금 공항 라운지에서 면식도 모르는 사람들과 술을 걸치던 태환의 모습을 떠올린 진욱은 일단 희진의 말을 계속 들었다.


“스페이스넷에는 나오지 않지만, 난파한 우주선이나 도움이 필요한 우주선에 여러 가지 도움을 주는 정거장 같은 게 있다고 했어요. 뭐, 급한 일들이 대부분이니까 아무래도 비용도 더 들고 애매하게 법을 넘나든다고는 하던데 실력은 확실하다고 하더라고요. 이런저런 개인적인 사정이 있는 사람들도 있고······,”

“그리고 범죄자와 밀수꾼에 연합 끄나풀도 숨어있는 곳이죠.”

“어? 아시네요?”


학생들에게 강의하는 것처럼 잔잔한 톤으로 자신만의 설명을 끝마치려 했던 희진은 말을 끊어오는 진욱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은 채 바라보았다.


“실제로 본 적은 없어요. 어차피, 어디 있는지 찾으려고 해도 절대 못 찾고요.”


진욱은 희진이 있었던 쪽으로 다가가 ITC를 확인하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그것 말고는 다른 방법 없어요?”


진욱은 말을 마치며 힐끗 희진을 보았다.

희진은 아까 전 놀랐던 표정 그대로였다.


대책 없는 희진의 모습을 보면, 하나만 알면서 다 아는 것처럼 친구들에게 ‘이것도 모르냐’고 놀리는 어린아이가 떠올랐다.


사실 터무니없는 제안이었다.

토성 기지 밖으로는 군부 및 연합의 감시가 적은 것이 사실이지만, 몇 년 만에 일어난 툴론의 침입이었다.


아무리 멍청이들의 집합 같은 연합이라도 근처의 검문이 강화될 건 확실했다.

더하여, 아무리 이온추진으로 간다고 한들 이런 구형 우주선으로는 수 만km에서부터 중력 레이더에 걸릴 것이 뻔했다.


이런 식이면 희진이 생각해뒀다는 레이더를 피하는 방법도 분명히 의미 없을 것이 뻔했다.


진욱은 이참에 이런 걱정거리들을 확실히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더 진행했다가는 의뢰도 어중간해지고 시간도 아까울 뿐이었다.


진욱은 희진에게 돌아가자는 말을 꺼내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다른 방법 없이도 가능해요.”


친구를 부르는 척하며 손가락을 볼에 대고 장난치는 아이처럼, 희진은 자신의 단말기를 돌아보는 진욱의 얼굴에 들이댔다.


진욱은 순간 고개를 뒤로 빼며 희진을 쳐다보았다.


예의 그 밝은 눈빛의 평소의 희진으로 돌아온 모습이었다.

무언가 생각해 낸 모양이었다.


“놀래라······ 어떻게요?”


희진은 대답 대신 단말기 위의 버튼을 살짝 만졌다.

단말기에 천도가 펼쳐지면서 작은 점이 깜박이며 떴다.


진욱은 희진과 단말기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천도에 집중하였다.

익숙한 행성들과 소행성대가 보였다.


눈 감고도 갈 수 있는 화성부터, 배송 기간이 남았을 때 몰래 침묵의 시간을 즐기던 달의 뒷면까지 나와 있는 일종의 지도였다.

그리고 그 중간에 빛나는 작은 점이 보였다.


“깜박이는 거 보이죠?”

“이 근처네요.”


희진은 단말기를 그대로 진욱의 눈에 고정한 채, 구렁이 담 넘듯 손가락 하나를 단말기 위에서부터 넘겨 톡톡 두들겼다.


“바로 여기 있어요.”


진욱은 의아했다.

자신이 수 년 간 다니던 우주 공간 바로 근처에 그런 비밀 정거장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순간 희진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안 그래도 달을 지나가는 타이밍에 기가 막히게 틀 것이라며, 집구석에 처박혀 있던 ‘Fly me to the moon’의 LP판까지 챙겨왔다고 자랑하던 희진이었다.


그런 기행을 생각해보면, 진욱은 희진의 말이 의심스러웠다.

거짓말은 아니라도 농담의 가능성은 충분했다.


“희진 씨, 장난 그만 해요. 이 근처를 내가 몇 번을 지나다녔는데······.”

“아이, 속고만 살았나. 진욱 씨 말대로 여기 근처니까 일단 가보고 얘기해요.”


진욱은 이번에는 질 수 없다는 듯 바로 다시 입을 뗐다.

그러나 이 에너지 넘치는 희진을 이기려면, 말보다는 눈으로 직접 틀렸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욱은 일단 조종석으로 향했다.

조종석에 앉자마자 희진의 단말기에서 깜박이던 그 점이 전면 모니터에도 표시되었다.


진욱이 고개를 돌려 뒤를 슬쩍 보았다.

뒤에선 희진이 엄지를 올리며 진욱에게 미소 짓고 있었다.


작가의말

읽어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온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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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12장 죄가 없어지진 않아요. (5) 21.02.27 76 0 7쪽
98 12장 죄가 없어지진 않아요. (4) 21.02.27 84 0 7쪽
97 12장 죄가 없어지진 않아요. (3) +2 21.02.26 85 0 7쪽
96 12장 죄가 없어지진 않아요. (2) 21.02.25 83 0 8쪽
95 12장 죄가 없어지진 않아요. (1) 21.02.24 77 0 7쪽
94 11장 박사에게 할 말이 많군. (11) 21.02.23 97 0 7쪽
93 11장 박사에게 할 말이 많군. (10) 21.02.22 82 0 7쪽
92 11장 박사에게 할 말이 많군. (9) 21.02.21 111 0 7쪽
91 11장 박사에게 할 말이 많군. (8) 21.02.21 81 0 7쪽
90 11장 박사에게 할 말이 많군. (7) +2 21.02.20 97 1 7쪽
89 11장 박사에게 할 말이 많군. (6) 21.02.20 118 0 8쪽
88 11장 박사에게 할 말이 많군. (5) 21.02.19 80 0 7쪽
87 11장 박사에게 할 말이 많군. (4) 21.02.18 88 0 7쪽
86 11장 박사에게 할 말이 많군. (3) 21.02.17 86 0 7쪽
85 11장 박사에게 할 말이 많군. (2) +2 21.02.16 114 1 7쪽
84 11장 박사에게 할 말이 많군. (1) 21.02.15 96 0 7쪽
83 10장 본질적인 문제? (11) +2 21.02.14 96 1 7쪽
82 10장 본질적인 문제? (10) 21.02.14 92 0 7쪽
81 10장 본질적인 문제? (9) 21.02.13 123 1 7쪽
80 10장 본질적인 문제? (8) 21.02.13 88 1 7쪽
79 10장 본질적인 문제? (7) 21.02.12 97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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