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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펭귄의 서재

어쩌다 보니 공간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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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펭귄
작품등록일 :
2020.12.13 14:41
최근연재일 :
2021.03.05 18:15
연재수 :
10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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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5
추천수 :
184
글자수 :
390,460

작성
21.03.04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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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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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2장 죄가 없어지진 않아요. (11)

DUMMY

“저 꾀죄죄한 사람이 확실해요, 삼촌?”


빅토리아는 홀로그램에 비추어진 듀코프니 회장의 실루엣을 바라보며 물었다.


말꼬리가 평소보다 올라가는 것을 보아하니, 빅토리아는 확신이 없는 것이 분명하였다.


“빅토리아, 헤르메스에 대해 누구보다 알고 싶어 하는 유명한 분이니 잘 봐줘.”


듀코프니 회장은 그렇게 행운을 빈다는 말과 함께 통신을 끊었다.


“우리가 얻은 정보랑은 일치하는 것 같아요.”

“너무 일치해서 문제지, 이게 뭐 하는 건지······.”


희진의 말이 핀잔처럼 들렸는지, 빅토리아는 꾀죄죄한 남자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불평 아닌 불평을 하였다.

그 사이 진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해보자고.”


진욱은 상황을 정리하고 옆에 앉아 있는 대근을 바라보았다.

청바지와 코트를 걸쳐 입은 평범한 차림의 대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갔다 와요, 대근 씨.”

“갔다 올게요.”


희진의 인사를 받으며 대근은 문을 열어젖혔다.

빅토리아는 여전히 모니터로 보이는 꾀죄죄한 남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조그마한 창밖으로 보이는 모습이 답답해서인지 아니면 작전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지, 빅토리아는 자그마하게 입을 움직였다.


무슨 말인지 들리지는 않았지만, 뭔가 좋지 않은 내용이었음이 틀림없었다.


빅토리아의 시야에 대근의 머리가 들어오기 시작하자, 빅토리아는 다시 모니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화면 속 꾀죄죄한 남자는 화장실이 급한 사람처럼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가끔 하늘까지 쳐다보곤 하였다.


마침내 대근이 남자에게 다다랐다.

둘은 무언가 얘기를 나누었다.


대근이 손바닥을 펴면서 말을 마칠 무렵, 이를 지켜보던 빅토리아가 입을 열었다.


“온다. 둘이 같이 와.”


빅토리아의 속삭이는 외침에 진욱과 희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 진욱 씨, 어울리는데요?”

“놀리지 말아요.”


파란 모자를 눌러쓴 진욱의 모습을 보고 희진이 장난을 치자 진욱이 나름대로 되받아쳤다.

희진은 웃으며 자신의 모자를 썼다.


꽤 오랜만에 웃어본 거란 생각이 문득 드는 순간, 문이 열리고 대근과 꾀죄죄한 남자가 들어왔다.


문이 닫히며 다시 햇빛이 차단되자, 천장에 있는 붉은 무드 등 홀로 실내를 밝혔다.


“어휴, 뭐 이렇게 좁······. 어어?”


꾀죄죄한 남자는 들어오자마자 자신의 더러운 코트를 털어대며 불평을 하였다.

그러나 남자는 고개를 들자마자 불평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이희진 씨? 그리고 그쪽은 박진욱 씨 맞죠?”


당황해하는 남자의 말에, 빅토리아가 그늘에서 한 걸음 나오며 얼굴을 드러냈다.


“그쪽은 그럼 정말 전설의 기자 마리오 엥게르니 맞아요?”


빅토리아 특유의 빈정거리는 목소리가 처음으로 마리오를 맞이하였지만, 마리오는 불쾌한 기분보다는 신기함이 더 느껴졌다.


한창 사냥감의 흔적을 따라 땅을 보며 걷다가 고개를 올려다보자, 떡하니 곰 한 마리가 눈앞에 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어어, 빅토리아 마르틴······.”

“네네, 맞아요. 얘기는 이미 다 들었겠죠?”


멍한 표정으로 아직 충격에서 돌아오지 않은 마리오에게 빅토리아는 다시 한번 용건만 물었다.

마리오는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다 됐네. 그럼, 시작해볼까.”


빅토리아는 늘어져 있던 멜빵 옷의 지퍼를 올렸다.

진욱은 마리오를 향해 뒤로 물러나라는 손짓을 한 후, 중앙에 홀로그램을 띄웠다.


“마지막으로 확인해봐요, 희진 씨도요.”


진욱은 말을 마치고 빅토리아의 머리 옆에 있던 벽에 손을 대었다.

그러자, 드르륵거리는 소리와 함께 필통 크기만큼의 구멍이 생겼다.


“출발하면 되겠나.”

“박사님은요?”

“준비됐다는군.”


세 마디의 대화였지만, 그 장면이 보여주는 시각적인 충격은 마리오에게 상당했다.


홀로그램 너머 갈라진 벽 사이로 보이는 중후한 목소리의 주인공을 보자, 마리오는 급기야 손까지 가리키며 당황하였다.


“방금 크, 크리스토퍼 부장······ 박사라면 설마?”

“오늘 작전에 같이 참여하실 거예요.”


마리오는 아찔해졌다.


그동안 발로 뛰며 자신이 추적하려 한 모든 인물이 한 공간에, 그것도 서로서로 잘 아는 사이로 모여있을지는 그 자신도 상상도 못 하였다.


사실, 한창 헤르메스에 가는 법을 찾고 있던 마리오에게 뜬금없이 날아온 자유우주연맹의 메시지는 하늘이 준 기회 같았다.


처음에는 마리오도 반신반의했지만, 상대편에서 먼저 만나자는 연락을 보내왔던 것이었다.


속는 셈 치고 나온 마리오의 선택은 결국 옳은 선택이었다.


마리오는 지금 갑작스러운 만남에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그만큼 거대한 특종이 되겠다는 기자로서의 본능도 같이 느껴졌다.


“긴장하지 말고요. 얘기 나누었던 계획대로 해요.”


숨을 고르던 마리오는 희진의 나긋한 목소리에 다소 안심하였다.


희진은 자신의 단말기 위로 홀로그램을 띄우면서 마리오를 쳐다보고 있었다.

마리오는 결의를 다질 겸, 자신의 뺨을 가볍게 한두 번 쳤다.


마리오가 스스로 기대감과 자신감을 채울 동안, 앞쪽에서 부장의 무거운 소리가 들렸다.


“도착했네.”


진욱은 모자의 챙을 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대근은 정체불명의 가방을 들쳐 맸다.


빅토리아가 마지막으로 실내를 훑어보고 문 앞으로 다가갔다.


“다 잘 챙겼지? 시작한다.”


빅토리아는 말을 마치는 것과 동시에 문을 열었다.


문틈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을 맞서며 밖으로 나가는 빅토리아의 뒷모습은 전장을 향해 나아가는 성녀처럼 보였다.


감상에 젖어 있었던 마리오가 제일 마지막으로 빠져나왔다.

마리오는 눈을 몇 번 깜박이며, 햇빛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주위를 둘러보던 마리오의 눈에 제일 먼저 보인 것은, 자신이 방금까지 있었던 자기부상 차량이었다.


‘우리 가족이 머무는 곳만큼은 깨끗해야 합니다. 홀러웨이 방역업체’


짐칸 옆에 쓰인 문구를 눈으로 읽는 와중에 진욱이 마리오의 옆으로 다가갔다.


“위에서 보죠. 먼저 가세요.”


진욱은 그렇게 마리오에게 말을 남기고, 청소용 드론을 품에 든 채 파란 작업복을 입은 희진을 따라갔다.


마리오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오히려 이런 동작이 더 수상해 보일 것 같아 그만두었다.


평소의 출근길이라고 되새기면서, 마리오는 나무 그늘 사이를 빠져나왔다.

공원의 한구석을 벗어나자 바로 눈앞에 보이는 장면은 마리오에게 너무 익숙했다.


마리오는 그대로 직진하여 눈앞의 건물로 나아갔다.


“후우······.”


다행히 파란 작업복의 무리가 멀어질수록, 마리오의 마음속에 있는 긴장감도 줄어드는 것 같았다.

마리오는 자동문을 넘어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마리오 씨, 취재 다 끝났나 봐요?”


눅눅한 롱코트만을 보고 마리오를 알아차렸는지 유니폼을 입은 남자가 기분 좋게 말을 건네었다.


마리오는 애써 멋쩍게 웃는 얼굴을 한 뒤, 로비를 빠져나왔다.


“62층······.”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마리오는 새삼스러운 혼잣말을 하며 층수를 눌렀다.

얼마 전 리모델링을 한 엘리베이터는 62층까지 순식간에 올라갔다.


하지만 마리오의 마음은 아직 리모델링이 덜 된 모양인지 긴장감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마리오는 몸을 움직여야 했다.


엘리베이터를 나온 마리오는 성급하진 않은, 그러나 너무 느리지도 않은 복잡한 속도의 발걸음으로 걸어갔다.


마리오가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이미 파란색 작업복의 무리가 입구에서 마리오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는데 별일 없었어요?”


희진이 긴장한 마리오를 향해 가볍게 물었다.


“괜찮아요. 들어가죠.”


자리를 비켜준 희진의 자리에 대신 선 마리오가 인식창에 눈을 대었다.


“사원 번호 55231, 마리오 엥게르니.”


마리오가 음성 인식까지 마치자, 두꺼운 철문에 푸른색의 불빛이 들어오며 문이 열렸다.


“시간이 없네. 빠르게 준비하도록.”


철문 안의 공간은 생각보다 거대했다.


그리고 복잡한 장비와 카메라들이 상하좌우로 주렁주렁 그 공간을 빠짐없이 채우고 있었다.


처음 보는 장면에 취해있던 작업복 무리를 깨운 것은 부장의 목소리였다.


“대근 씨는 저기에요.”


희진의 말에 대근이 가방을 풀면서 한쪽 구석으로 향했다.

부장은 천천히 들어오고 있던 박사 옆에서 같이 움직였다.


“이제 벗어도 되겠나······.”

“그러시죠.”


부장은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벗는 박사를 도왔다.


“여기 있으면 화면발 잘 나오겠는데?”


의자를 준비하는 진욱의 옆에서 금발의 머리를 당기며 모델 같은 자세를 몇 번 취한 빅토리아가 감상을 남겼다.


그러는 사이, 마리오도 스테이지 정중앙으로 걸어왔다.

밥 먹듯이 서 본 스테이지였지만, 지금의 긴장감과 중압감은 이전과 차원이 달랐다.


마리오는 자신을 향하고 있는 수십 대의 카메라에 눈길이 갔다.


“방화벽은 어떻게 됐어요?”

“플레넷 쪽으로는 전용 루트를 깔았어요. 행성단 뉴스로 생방송으로 전파될 거에요. 생각보다······ 방송 쪽이 보안이 허술하네요.”

“대근 씨 실력이 좋은 걸 수도 있죠.”


단말기와 정체를 알 수 없는 홀로그램을 보며 바쁘게 컴퓨터를 만지고 있는 대근을 향해 희진이 격려의 말을 하였다.


희진의 말에 힘을 얻어서인지 아니면 컴퓨터공학자로서의 실력이 오랜만에 불이 붙은 것인지, 대근은 어느새 마지막 작업에 들어섰다.


“연합정보부 쪽도 확실히 막아놓는군.”


홀로그램에 얼핏 뜬 연합정보부의 표식을 본 부장이 입을 열었다.

대근은 고개를 뒤로 슬쩍 돌려 부장을 보며 대답했다.


“여기서 일했으니까요. 어떻게 나설지도 잘 알죠.”


잠시 후, 대근이 움직이던 손을 멈추었다.


“됐어요!”


희진은 앞에 있는 진욱과 빅토리아, 그리고 마리오를 향해 머리 위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리고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박사를 향해 다가갔다.


박사의 표정은 그때까지 큰 변화가 없었지만, 희진이 다가오자 조금 차분해진 모습이었다.


“박사님, 이제 자유를 찾을 때예요. 한 명의 양심적인 과학자로서요. 저랑 같이 가요.”


몇 마디의 짧은 말이었지만, 조심스레 손을 내미는 희진의 모습을 본 박사는 천천히 자신의 손을 내밀었다.


부장과 희진은 천천히 박사의 속도에 맞춰서 중앙으로 걸어갔다.


멋들어진 의자와 기다란 테이블, 그리고 공중에서 대기 중인 카메라 드론들의 뒤로 커다랗게 쓰인 문구에 희진은 눈이 갔다.


‘MK 플래닛 뉴스 9 스테이션’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수많은 일이 있었다.


아니, 애초에 이런 결말이 될 것이라고 진욱의 집에 갔을 때만 해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희진은 이런 결말이 싫지만은 않았다.


체포와 발견, 전투와 동료 그리고 음모와 폭로까지 벌어졌던 수많은 일이 빅토리아의 말처럼 다 최악은 아니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희진은 어쩌면 툴론의 비밀은 이제 새롭게 전개될 시대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느꼈다.


‘어떻게 해서 툴론이 만들어지는지 이제 생명공학까지 공부해야 하나?’ 같은 실없는 생각도 들면서, 동시에 노벨상을 받기 위해 단상에 올라서는 자신의 모습도 생각하였다.


희진이 즐거운 상상에 빠지는 동안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은 곧 생중계의 시간임을 의미하였다.


“시간 됐어. 모두 준비됐지?”


빅토리아의 외침에 그제야 희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리오는 드론 옆에서 목을 가다듬고 있었고, 부장과 박사는 진욱의 옆에 이미 앉아 있었다.


빅토리아는 마지막으로 드론에 설치된 카메라를 살펴보고 희진에게 눈짓하였다.

희진은 빅토리아와 함께 스테이지 밖으로 나왔다.


스테이지 옆의 그늘진 구석에서 빅토리아가 진욱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진욱이 고개를 끄덕이자, 빅토리아는 다음으로 대근을 바라보았다.


번쩍 든 대근의 오케이 사인을 본 빅토리아는 옆에 있던 큐사인을 들어 올리고 외쳤다.


“라이브 생중계. 마리오 씨, 준비하시고······ 3, 2, 1, 큐!”


작가의말

읽어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온한 하루 보내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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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에필로그 +2 21.03.05 92 0 7쪽
» 12장 죄가 없어지진 않아요. (11) 21.03.04 86 0 12쪽
104 12장 죄가 없어지진 않아요. (10) 21.03.03 96 0 7쪽
103 12장 죄가 없어지진 않아요. (9) 21.03.02 97 0 7쪽
102 12장 죄가 없어지진 않아요. (8) 21.03.01 77 0 7쪽
101 12장 죄가 없어지진 않아요. (7) 21.02.28 84 0 7쪽
100 12장 죄가 없어지진 않아요. (6) 21.02.28 80 0 7쪽
99 12장 죄가 없어지진 않아요. (5) 21.02.27 74 0 7쪽
98 12장 죄가 없어지진 않아요. (4) 21.02.27 82 0 7쪽
97 12장 죄가 없어지진 않아요. (3) +2 21.02.26 83 0 7쪽
96 12장 죄가 없어지진 않아요. (2) 21.02.25 81 0 8쪽
95 12장 죄가 없어지진 않아요. (1) 21.02.24 74 0 7쪽
94 11장 박사에게 할 말이 많군. (11) 21.02.23 90 0 7쪽
93 11장 박사에게 할 말이 많군. (10) 21.02.22 79 0 7쪽
92 11장 박사에게 할 말이 많군. (9) 21.02.21 108 0 7쪽
91 11장 박사에게 할 말이 많군. (8) 21.02.21 77 0 7쪽
90 11장 박사에게 할 말이 많군. (7) +2 21.02.20 95 1 7쪽
89 11장 박사에게 할 말이 많군. (6) 21.02.20 116 0 8쪽
88 11장 박사에게 할 말이 많군. (5) 21.02.19 77 0 7쪽
87 11장 박사에게 할 말이 많군. (4) 21.02.18 86 0 7쪽
86 11장 박사에게 할 말이 많군. (3) 21.02.17 84 0 7쪽
85 11장 박사에게 할 말이 많군. (2) +2 21.02.16 111 1 7쪽
84 11장 박사에게 할 말이 많군. (1) 21.02.15 93 0 7쪽
83 10장 본질적인 문제? (11) +2 21.02.14 94 1 7쪽
82 10장 본질적인 문제? (10) 21.02.14 90 0 7쪽
81 10장 본질적인 문제? (9) 21.02.13 121 1 7쪽
80 10장 본질적인 문제? (8) 21.02.13 84 1 7쪽
79 10장 본질적인 문제? (7) 21.02.12 95 1 8쪽
78 10장 본질적인 문제? (6) 21.02.11 102 1 7쪽
77 10장 본질적인 문제? (5) 21.02.10 101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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