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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펭귄의 서재

어쩌다 보니 공간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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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펭귄
작품등록일 :
2020.12.13 14:41
최근연재일 :
2021.03.05 18:15
연재수 :
106 회
조회수 :
19,625
추천수 :
184
글자수 :
390,460

작성
21.02.21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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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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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11장 박사에게 할 말이 많군. (9)

DUMMY

혼잣말과도 같던 박사의 말에 담긴 의미심장한 뜻을 놓칠 부장이 아니었다.

부장은 단도직입적으로 박사에게 물었다.


“박사님께서 말씀하신 곳으로 왔더니 이런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제 아시는 걸 얘기하시죠.”


부장의 눈은 어느 때보다 더욱더 날카로웠다.

예의를 차리는 단어 선택이었으나, 흡사 반역자나 반란군을 취조하는 느낌의 압도적인 목소리였다.


부장은 깍지를 낀 채, 고개를 돌리며 박사를 쳐다보았다.

박사는 눈을 잠깐 감더니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내가 공간도약에 대한 논문을 쓴 게 오십여 년 전이었지. 이제 막 루나 에모스에 연합군 전초기지가 건설되던 시기였네. 그때만 해도 우주 진출에 대해서 회의적인 의견이 많았지. 정부든 여론이든 언론이든 그랬네······ 나라 간의 주도권 싸움으로 번질 것이 뻔하였고, 더 큰 문제는 돈이었네.”


박사는 기억을 더듬듯 눈을 한두 번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인류 발전이라는 대의를 위한다고는 하지만 사람들은 막상 자기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는 것은 싫어하더군······ 행성 연합이라고 우여곡절 끝에 창설하기는 했다만, 이름만 거창했지 지구밖에 없는데 무슨 행성 연합인가라고 한 신문 기사도 있었네······.”


박사는 잠깐 숨을 고르며 부장을 바라보았다.

부장을 비롯한 사람들은 일단 인내심을 갖고 부동자세로 박사의 입이 다시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내 공간도약 이론은 이런 분위기 때문에, 별로 빛을 받지 못했네. 기존의 로켓추진 방식보다야 비용이 줄어들지만, 이미 개발되고 있던 이온추진 같은 방식이 보기에······ 더 믿음직스러웠네. 한동안 술에 빠져 살았지. 그때였나, 나에게 연합군이 접근하더군. 그 뒤로는 말 안 해도 알 것 같다만······.”


박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회의실 안의 사람들은 몇 초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몇몇 사람에게는 태어나기 이전의 이야기이기도 했으며, 몇몇 사람에게는 마치 어린아이일 때 할아버지의 흥미로운 옛날이야기를 듣는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희진이 손을 들었다.


“저기, 박사님······ 말씀하신 부분은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루나 에모스를 박사님의 공간도약 덕분에 예상보다 빨리 완성하고부터 우주 붐이 일어났다는 건 아마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알 것 같은데······.”


희진은 말을 흐리며 주변을 둘러본 후 손가락을 올렸다.


“사실 저희는 그것보다, 그 시절의 흔적들이 왜 이런 곳에 있는 것인지가 더 궁금합니다.”


부장 다음은 희진이 배턴을 이어받는 호흡이었다.

박사는 이제 교과서에 나오지 않은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희진 양 정도면 알고 있겠지만, 공간도약 이론을 계속 연구하던 나는 뭔가 이상한 걸 발견했네. 정확하게 말하면, 불완전성이었지. 극히 미미한 확률적 오차라고도 할 수 있었지만 확실한 결점이었네······.”

“실종.”


묵묵히 듣고만 있던 진욱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진욱은 말을 마치고 박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서서히 녹아가는 아이스크림처럼 스며들던 진욱의 담담했던 모습은 사라진 모습이었다.

박사는 진욱을 쳐다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언젠가는 큰일이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었지. 나는 그 오류를 발견하자마자 바로 행성 연합에 보고했네. 그러나 내 주장은 무시당했네······ 이유는 간단하더군. 이제 막 연합의 틀을 갖춰가고 각국 정부에서 예산도 얻어내는 시기에, 이런 사실이 밝혀졌다간 모든 게 끝난다는 것이었네······ 그때부터 자네의 부하들이 나를 감시하기 시작했지.”


박사는 천천히 기억을 더듬으며 말을 하다 부장을 바라보았다.


“아, 자네 말고, 자네가 있는 곳. 연합정보부 말일세. 실수할 뻔했구먼······. 아무튼,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했네. 지금까지도 말이네. 누군가에게 알리려고 하면, 어김없이 다음 날에 그 사람은 실종되거나 변사체로 발견되더군. 너무 무서웠네. 그렇게 난 감시 속에서 이 실종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연구를 이어나가다가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네.”


박사 본인마저도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것은 처음이라는 느낌의 회상에, 회의실의 사람들은 점점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공간도약 이론, 아니, 결점이 있으니 이론도 아닌가······ 말하고 나니 시원하군. 아무튼, 그 이론의 결점으로 인해 사라진 우주선들이 일정한 곳으로 귀결된다는 것이었네.”

“네? 그게 무슨······.”

“믿기지 않겠지, 희진 양. 하지만 사실이네. 공간도약의 오차로 사라진 우주선들은 마치 깔때기에 모이듯이 한군데로 모이는 것이었네. 만약 누군가 이걸 알아차린다면, 연합이 숨겨 왔던 비밀이 밝혀지는 꼴이 되겠지. 그러다 보니, 연합의 요원들이 친히 날 입막음을 시키더군. 학회 발표는 상상도 못 했지.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이미 그땐 나도 우주 붐을 일으킨 세기의 석학이라는 칭호를 얻었으니······ 어쩔 수 없었네.”


박사의 이야기는, 특히 과학자였던 희진에게는 더욱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희진은 자기도 모르게 손으로 입을 가리고 탄식을 내뱉었다.


“그리고 우주선이 모인다는 일정한 장소가 바로 여기군요.”


창밖에 보이는 행성을 손가락으로 가리킨 빅토리아가 박사의 회상을 거들었다.


“그렇다네. 거기다 그렇게 공간도약이 뒤틀리면, 우주선에 설치된 공간도약 드라이브가 타버리더군. 실종된 우주선들은 다시 태양계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여기 남게 되었던 걸세······.”


깍지를 끼고 있던 부장은 자세를 그대로 한 채, 박사에게 마지막 질문을 하였다.


“그리고 확실히 비밀에 부치기 위해서, 여기로 표류한 우주선들은 깨끗이 없애버렸군요.”

“······그랬겠지, 연합군만의 처리 방식이었지.”


박사는 고개를 살짝 떨구며 부장의 말에 간단히 대답하였다.


너무나 거대하고 믿기지 않는 얘기가 순식간에 끝이 나자, 회의실에는 정적만이 다시 감돌았다.


회의실의 사람들은 더 질문할 수 없었다.


머리를 넘기며 이마를 짚는 빅토리아와 아직 충격받은 입을 어떻게 가려야 할지 모르는 희진만이 박사의 이야기에 반응해주고 있었다.


그때, 잿빛과도 같은 비장한 표정의 진욱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옆에 앉아 있던 두어 사람만이 그런 변화를 눈치챌 사이, 진욱은 곧바로 박사에게 달려들었다.


작가의말

읽어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온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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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12장 죄가 없어지진 않아요. (10) 21.03.03 95 0 7쪽
103 12장 죄가 없어지진 않아요. (9) 21.03.02 97 0 7쪽
102 12장 죄가 없어지진 않아요. (8) 21.03.01 76 0 7쪽
101 12장 죄가 없어지진 않아요. (7) 21.02.28 84 0 7쪽
100 12장 죄가 없어지진 않아요. (6) 21.02.28 80 0 7쪽
99 12장 죄가 없어지진 않아요. (5) 21.02.27 74 0 7쪽
98 12장 죄가 없어지진 않아요. (4) 21.02.27 82 0 7쪽
97 12장 죄가 없어지진 않아요. (3) +2 21.02.26 83 0 7쪽
96 12장 죄가 없어지진 않아요. (2) 21.02.25 80 0 8쪽
95 12장 죄가 없어지진 않아요. (1) 21.02.24 74 0 7쪽
94 11장 박사에게 할 말이 많군. (11) 21.02.23 90 0 7쪽
93 11장 박사에게 할 말이 많군. (10) 21.02.22 79 0 7쪽
» 11장 박사에게 할 말이 많군. (9) 21.02.21 108 0 7쪽
91 11장 박사에게 할 말이 많군. (8) 21.02.21 76 0 7쪽
90 11장 박사에게 할 말이 많군. (7) +2 21.02.20 94 1 7쪽
89 11장 박사에게 할 말이 많군. (6) 21.02.20 115 0 8쪽
88 11장 박사에게 할 말이 많군. (5) 21.02.19 77 0 7쪽
87 11장 박사에게 할 말이 많군. (4) 21.02.18 86 0 7쪽
86 11장 박사에게 할 말이 많군. (3) 21.02.17 84 0 7쪽
85 11장 박사에게 할 말이 많군. (2) +2 21.02.16 111 1 7쪽
84 11장 박사에게 할 말이 많군. (1) 21.02.15 93 0 7쪽
83 10장 본질적인 문제? (11) +2 21.02.14 94 1 7쪽
82 10장 본질적인 문제? (10) 21.02.14 90 0 7쪽
81 10장 본질적인 문제? (9) 21.02.13 120 1 7쪽
80 10장 본질적인 문제? (8) 21.02.13 84 1 7쪽
79 10장 본질적인 문제? (7) 21.02.12 95 1 8쪽
78 10장 본질적인 문제? (6) 21.02.11 102 1 7쪽
77 10장 본질적인 문제? (5) 21.02.10 100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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