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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펭귄의 서재

어쩌다 보니 공간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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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펭귄
작품등록일 :
2020.12.13 14:41
최근연재일 :
2021.03.05 18:15
연재수 :
106 회
조회수 :
19,624
추천수 :
184
글자수 :
390,460

작성
21.02.26 18:15
조회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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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7쪽

12장 죄가 없어지진 않아요. (3)

DUMMY

“직접 보시죠.”


부장은 무미건조하지만, 날이 선 말투로 짧게 입을 열었다.

부장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회의실 중앙에 놓인 홀로그램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막 정체불명의 검은 구조물에서 툴론 함선이 쏟아지는 십여 초의 영상이 반복적으로 재생되었다.


맨눈으로 이미 보았지만, 아직도 믿기지 않는 모양인지 여전히 충격에 휩싸인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한껏 눈을 찌푸린 채로 툴론을 노려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 와중에 오직 한 사람만이 상대적으로 평정된 눈으로 영상을 바라보았다.


부장을 포함한 사람들은 그런 눈이 신기해서인지, 아니면 적절한 대답을 기다리는지 그 한 명만을 바라보았다.


그 사람은 낮게 기침하며 입을 열었다.


“툴론이구먼······.”

“그건 누구나 압니다, 박사님. 그 툴론이 왜 하필 여기서 나오는 겁니까? 대체 저 검은 덩어리는 뭡니까? 툴론이 나오는 공간도약 통로 같은 겁니까? 대답해보시죠!”


부장은 다소 침착한 말투로 시작하였으나, 마지막에는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툴론을 가리키면서 격양된 모습을 보였다.


부장의 눈은 오로지 박사의 입으로 향하고 있었다.


“공간도약에 문제가 있다는 건 얘기했었네······ 그 이후로도 종종 우주선들이 표류하여 여기로 왔지. 일이십 년은 문제가 없었네. 그때 연합을 뒤집어 놓았던 바로 그 사건이 일어났지······.”


박사의 흐리는 말을 이어준 것은 빅토리아와 파샤의 대답이었다.


“메레디스 호!”


빅토리아와 파샤의 음량만 차이가 날 뿐, 둘은 거의 동시에 대답하였다.

물론, 외치자마자 기분 나쁘게 파샤를 쳐다보는 것을 빅토리아는 잊지 않았다.


박사는 묵묵히 말을 이었다.


“연합군 병사 하나가 실수를 하는 바람에, 공기와 새에 날벌레까지 가득한 대기권 안에서 공간도약을 했지. 그 결과는 말 안 해도 알 거라 믿겠네. 그때부터, 공간도약에 대한 불신이 피어나기 시작했지. 각국의 정부들과 단체들은 해명을 요구했네. 나아가, 공간도약을 통한 개척정신을 핵심 가치로 여기던 행성 연합의 존립에까지 의문을 가졌지. 물론, 우주 공간에서 하면 아무 문제가 없었네. 그렇지만 사람 심리는 그렇지 않았지······”


박사는 그 때의 기억이 떠오르는 듯 약간의 높낮이를 주며 말을 이었다.


“달과 화성에 젖과 꿀이 있다고 한들, 가는 도중에 재수가 없으면 무조건 죽을 텐데 누가 도전하겠나? 그걸 고민하며 우물쭈물하는 사이, 사람들의 주머니에서 연합의 이름으로 돈까지 뺏어간다면? 이미 십수 년간 누적되던 각국의 재정적자에 메레디스 호는 그저 기폭제였을 뿐이었네.”

“그게 툴론과 무슨 상관이 있죠?”


다소 답답한 표정으로 턱을 괸 빅토리아의 참견 아닌 참견에, 박사는 고개를 살짝 올려 홀로그램을 한 번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연합에는 새로운 바람이 필요했지. 행성 연합이 이런 역경에도 불구하고 존립해야 하고, 강해져야 하는 이유 말이네······ 그때, 어떤 젊은 연합군 병사 하나가 아이디어를 냈지. 내부의 분란을 없애기 위해서는 강한 외부의 적이 필요하다고, 동양의 고전서까지 인용하더군. 똑똑히 기억하네.”


박사의 회상을 들은 희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우연히 맞은 편에 있던 진욱이 그런 희진의 표정을 보았으나, 아직 그 이유까지는 짐작하지 못했다.


“외부의 적을 만들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갖고 노는 장난감처럼, 적당히 가볍고 적당히 위험한 그런 적을 말이네. 그리고 연합은 그 병사의 아이디어를 채택했지. 그리고 그 다음으로 그런 장난감을 만들기 위한 재료와 가공, 그리고 장소가 필요했네······.”

“어떻게 그런······.”


어두운 기운이 어느새 희진의 머릿속까지 퍼진 모양인지, 희진은 입술까지 파르르 떨렸다.


“왜 그래?”


옆에 있던 빅토리아가 희진을 향해 돌아보며 물었지만, 희진은 그런 빅토리아는 안중에도 없이 박사를 쳐다보았다.


박사는 희진의 떨리는 눈빛을 보면서 계속 말을 이었다.


“연합은 재료가 꾸준히 공급되며,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고 넓은 곳에, 비밀스럽게 운영되기 위하여 완전 자동화된 설비가 이뤄지는 조건에 맞는 곳을 찾기 시작했네. 그리고 최적의 장소로 뽑힌 곳이 바로 여기였네. 생명공학과 로봇공학의 선구자들을 포함해 수백여 명의 전문가들이 극비리에 작업에 착수했네······. 물론, 반항하는 사람들에게는 연합만의 방식으로 처리가 이루어졌지.”

“생명공학? 재료라는 게 설마······.”


빅토리아는 무심코 말을 뱉은 후에야 희진의 반응이 이해되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이제 방 안의 모든 사람을 이해시키기에 충분하였다.


무거운 표정으로 묵묵히 바라보는 부장마저도 강제로 입을 꾹 닫고 있는 모습이 여실하였다.


“처음으로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들어 낸 툴론은 예상외로 성공적이었네. 결과도 연합의 예상대로였네. 연합군은 힘겹지만 어쨌든 툴론을 물리쳤지. 다음 날, 상황은 단번에 역전되었네. 행성 연합에 대해 토를 다는 사람들은 귀신같이 사라졌네. 연합은 그 후로도 필요할 때마다, 연합에 불리한 일이 생길 때마다 툴론을 태양계에 뿌려댔네. 지금까지······.”

“미쳤어······.”


빅토리아의 한 마디보다 더 나은 감상은 없을 것 같았다.


박사는 그런 대답을 예상한 모양인지, 아니면 이미 체념한 것인지 몰라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지켜보던 부장이 입을 열었다.


“그럼 내 전우와 후임들은 겨우 그런 이유 때문에 툴론과 싸우다 죽은 것인가?”


부장은 열리지 않는 입을 힘들게 떼며 박사를 향해 물었다.

어느 때보다도 박사의 확실한 대답을 원하는 부장의 손은 어느새 주먹이 쥐어져 있었다.


“대답해!”


그러나 희끗희끗한 머리와 눈썹 사이로 부장을 바라보는 박사의 눈은 이미 탁해져 있었다.


그런 박사를 보며, 부장은 호랑이가 울음을 짖듯 소리쳤다.


회의실의 공기는 순간 떨렸다가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그리고 들릴 듯 말 듯 자그마한 박사의 대답이 이 사태를 마무리 지었다.


“유감이네······.”


부장은 홀로그램이 버벅거릴 정도로 강하게 회의실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그리고 정장의 소매가 흐트러진 것도 놔둔 채,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


묵묵부답으로 뒤돌아 있는 부장의 모습을 보고, 진욱마저도 자리에 굳어버렸다.


희진이 겨우 충격에서 벗어나 사태를 파악하려는 단계에 진입할 즈음, 부장은 무거운 목소리를 내보냈다.


“그 아이디어를 준 병사, 어떻게 됐습니까.”


작가의말

읽어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온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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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12장 죄가 없어지진 않아요. (11) 21.03.04 85 0 12쪽
104 12장 죄가 없어지진 않아요. (10) 21.03.03 95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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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12장 죄가 없어지진 않아요. (8) 21.03.01 76 0 7쪽
101 12장 죄가 없어지진 않아요. (7) 21.02.28 84 0 7쪽
100 12장 죄가 없어지진 않아요. (6) 21.02.28 80 0 7쪽
99 12장 죄가 없어지진 않아요. (5) 21.02.27 74 0 7쪽
98 12장 죄가 없어지진 않아요. (4) 21.02.27 82 0 7쪽
» 12장 죄가 없어지진 않아요. (3) +2 21.02.26 83 0 7쪽
96 12장 죄가 없어지진 않아요. (2) 21.02.25 80 0 8쪽
95 12장 죄가 없어지진 않아요. (1) 21.02.24 74 0 7쪽
94 11장 박사에게 할 말이 많군. (11) 21.02.23 90 0 7쪽
93 11장 박사에게 할 말이 많군. (10) 21.02.22 79 0 7쪽
92 11장 박사에게 할 말이 많군. (9) 21.02.21 107 0 7쪽
91 11장 박사에게 할 말이 많군. (8) 21.02.21 76 0 7쪽
90 11장 박사에게 할 말이 많군. (7) +2 21.02.20 94 1 7쪽
89 11장 박사에게 할 말이 많군. (6) 21.02.20 115 0 8쪽
88 11장 박사에게 할 말이 많군. (5) 21.02.19 77 0 7쪽
87 11장 박사에게 할 말이 많군. (4) 21.02.18 86 0 7쪽
86 11장 박사에게 할 말이 많군. (3) 21.02.17 84 0 7쪽
85 11장 박사에게 할 말이 많군. (2) +2 21.02.16 111 1 7쪽
84 11장 박사에게 할 말이 많군. (1) 21.02.15 93 0 7쪽
83 10장 본질적인 문제? (11) +2 21.02.14 94 1 7쪽
82 10장 본질적인 문제? (10) 21.02.14 90 0 7쪽
81 10장 본질적인 문제? (9) 21.02.13 120 1 7쪽
80 10장 본질적인 문제? (8) 21.02.13 84 1 7쪽
79 10장 본질적인 문제? (7) 21.02.12 95 1 8쪽
78 10장 본질적인 문제? (6) 21.02.11 102 1 7쪽
77 10장 본질적인 문제? (5) 21.02.10 100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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