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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ster 님의 서재입니다.

펠릭스전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夢ster
작품등록일 :
2014.12.22 00:00
최근연재일 :
2016.12.28 16:59
연재수 :
292 회
조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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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813,839

작성
16.03.30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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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256

DUMMY

256


의외로 기회는 일찍 찾아왔다.

다음날 오후 무렵이었다. 갑자기 파수를 보던 대원들로부터 신호가 왔다. 적이 접근하고 있었다.

"적 고램 세대. 북쪽에서 접근 중!"

미리 대기하고 있던 길버트 소대의 고램들이 서둘러 영격에 나섰다. 오늘은 펠릭스가 대형의 왼쪽이었다.

"너무 나서지 마라! 대형을 무너트리지 않도록, 적의 격퇴보다 아군의 안전이 우선임을 명심해라!"

"옛!"

"옛!"

칼과 펠릭스는 대답을 하고는 달려 나갔다.


첫날과는 상황이 달랐다. 어제는 벽에 가려 서로가 제대로 상대를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부딪혔었다. 그러나 지금 다가오는 적들은 이쪽의 전력을 알고 있었다. 충분히 이쪽을 주의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숲에서 레인저들 간의 전투는 없는 듯했다. 크로비스군의 레인저들의 모습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 말은 펠릭스들이 뚫리면 이쪽만 보병들이 당할 위험이 있다는 뜻이었다. 아마도 오늘의 적은 어제 적들이 당한 후 위력정찰에 나선 부대로 보였다.


서로가 열린 공간이었다. 세대씩 여섯 대의 고램이 양쪽에서 다가와 마주했다. 일정한 거리가 되자 거의 동시에 서로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돌격!"

"이얏!"

"하앗!"

'쿵! 쿵! 쿵! 쿵!'

길버트 경의 명령과 함께 요란한 고램의 발소리가 퍼졌다. 각각의 고램의 거검에 서서히 오러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쿠쾅! 쾅~!'

검과 검이 부딪혔다. 강력한 힘의 격돌에 의한 충격으로 각각의 고램들이 한두 발씩 뒤로 물러섰다. 자연스럽게 1 대1의 대결을 벌일 간격이 생긴 것이었다. 첫 격돌의 결과는 거의 호각으로 보였다. 교과서에 나올법한 격돌의 정석이었다.


이때만 해도 펠릭스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아직 두 번째의 실전이었고 여전히 조심스러운 상태였다. 그러나 1대1 상태로 맞은편 적의 미니트와 첫 일검을 나누자 갑자기 펠릭스의 마음이 급변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상대와 검을 마주친 순간 황당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었다.

'투캉~ 쩍!'

"헛?! 뭐 뭐야?"

그저 힘을 실은 평범한 일격이었다. 거리가 떨어지자 펠릭스가 먼저 적의 몸통에 수평 베기 공격을 날렸다. 상대는 수직으로 내려치며 막았다. 두 고램의 검이 십자 형태로 부딪혔다. 그런데 펠릭스의 검이 그대로 상대의 검날에 박혀버린 것이었다.


원인은 상대가 검에 오러를 주입하지 않고 펠릭스의 검을 막은 탓이었다.

어이없는 상황에 당황한 펠릭스와 상대 고램 라이더는 서둘러 검을 떼어내기 위해 서로의 검을 힘껏 당겼다.

'떵~!'

상대는 뒤늦게야 검에 오러를 씌웠다. 잠시 후 박혀있던 검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그 바람에 검을 빼기 위해 힘을 주며 뒤로 당기던 두 고램들은 동시에 서로 두어 걸음 뒷걸음질 쳤다.

당연히 상대의 검날은 이빨이 크게 빠져있었다.

"허참!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람?"

펠릭스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상대를 바라봤다.

학교에서 처음 고램을 타보는 학생들의 훈련을 도와 줄 때도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에드가 춤추는 에드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고램을 조종할 때 오러를 일정하게 지속하지 못하긴 했지만 적어도 고램 대련에서 검에 오러를 주입하는 것을 잊을 정도는 아니었다.

펠릭스에게 고램 조종을 가르쳐줬던 헨리 경도 고램 대련과 관련해서 여러 이야기를 들려줬지만 그럼에도 이런 황당한 일이 있었다는 얘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펠릭스는 혹시나 자신이 모르는 적의 작전인가 싶어서 조심스럽게 다가서며 상대를 살폈다. 그러다 바로 적의 상태를 알아차렸다.

"이 녀석 설마?!!"

작전 같은 게 아니었다.

엉거주춤 상체를 내밀고 허리를 뒤로 뺀 자세. 당연히 검을 든 모습도 어색했다. 거기다 검에 주입되는 오러도 일정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첫 실전이구나!!"

펠릭스는 상대의 자세를 보자 바로 어제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늘은 적과 아군의 상황이 뒤바뀐 것이었다.


적에게 어떤 사정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완전히 우연일 수도 있었다. 어제 펠릭스를 상대한 적이 이쪽을 초보 라이더 들이라고 판단하여 부대의 신입 라이더를 경험차원에서 보낸 것일 수도 있었다.

아무튼 어느 쪽이던 상관없었다. 단지 이 순간 당장 펠릭스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오직 하나였다.

이 녀석을 쓰러트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자유의 몸이 되기 위한 첫 제물로 삼을 절호의 기회였다.

"이얏!"

'쾅~'

펠릭스는 시험 삼아 있는 힘껏 검을 내려쳤다. 적은 펠릭스의 검에 담긴 힘을 제대로 막지 못하고 크게 휘청거렸다. 상대는 초보가 분명했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부웅~!'

펠릭스는 이어서 사정없이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오른쪽, 왼쪽, 좌 상단, 우 상단, 수평 베기, 마치 연습이라도 하듯 단순한 공격이었다. 그러나 검에는 절대 무시 못 할 오러가 담겨있었다.

"쓰러져!"

'쾅!'

"쓰러지라고!"

'콰쾅!'

"그만 쓰러져!"

'쿠쿵!'

"으아아아~!!"

'쾅!'

'쾅!'

'쾅!'

상대가 초보라는 것을 알자 갑자기 흥분이 되었다. 다음 한방이면 금방 쓰러질 것처럼 비실거렸던 것이다. 펠릭스는 상대의 검을 부셔 버리기라도 할 듯 마구 쳤다.

일방적인 공격이었다. 상대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펠릭스의 공격을 받을 때마다 한발씩 뒤로 물러서는 것뿐이었다.


상대 고램은 펠릭스의 기세에 겁을 먹은 게 분명했다. 어제 펠릭스가 그랬던 것처럼 검을 가슴 앞에 세운 상태로 꼼짝도 못한 채로 펠릭스의 검을 가까스로 막고 있었다.

하지만 적은 그 꼴로도 쉽사리 펠릭스의 공격을 허락하지 않았다. 본체로 향하는 공격은 악착같이 어떻게든 막아냈다. 펠릭스는 확 짜증이 났다.

"이~ 빌어먹을! 집으로 돌아갈 테다! 나는 돌아갈 거라고~!"

펠릭스는 조종석에서 있는 대로 고함을쳤다. 증오도 분노도 아니었다. 알 수 없는 서러움과 북받쳐오는 슬픔 같은 감정이 끓어올랐다.

'콰쾅! 쿵!'

펠릭스는 오러를 잔뜩 검에 끌어 모아서는 사정없이 내려쳤다. 순간 어디선가 머릿속에 연결된 의식의 끈이 끊어진 느낌이었다. 갑자기 멍해져왔다.


펠릭스가 그 상태로 있는 힘껏 수평으로 검을 휘두르자 상대 고램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뒤로 벌렁 쓰러져버렸다. 적의 검은 펠릭스의 광란의 공격에 듬성듬성 이빨이 빠져 엉망이었다. 거의 검의 심만이 남아있었다. 그 상태에서도 미니트는 검을 손에서 놓지 않고 한손으로 막아 세우고 있었다.

그리고는 쓰러진 자세에서 꿈틀꿈틀 바닥을 기어 뒷걸음질 치며 물러서고 있었다.


"크흑!"

어째서인지 눈물이 났다. 그제야 멍하던 정신이 돌아왔다. 살려고 발버둥치는 적의 모습이 들어왔다. 차마 더 이상 그 모습을 볼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펠릭스는 끝을 내기위해 앞으로 나서며 검을 치켜들려고 했다. 그 순간 무언가가 펠릭스의 고램을 잡아 뒤로 당겼다.

"뭐야?"

펠릭스는 무슨 일인지 확인하기 위해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자신의 고램의 오른쪽 어깨를 잡고 있는 마이티가 눈에 들어왔다.

"어? 칼?!"

펠릭스의 동작을 방해하고 막아 세운 것은 뜻밖에도 칼이었다.

"뭐야? 칼! 방해하지 마!"

그동안 쓰러진 상대 고램을 돕기 위해 적의 다른 미니트 고램이 옆으로 다가왔다. 펠릭스는 칼의 고램의 손을 뿌리치고 나서려했다. 자신이 나서서 한 녀석을 상대하면 적의 또 다른 고램은 자연히 칼이 맡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칼은 여전히 펠릭스의 고램을 잡아 세웠다.

"왜? 왜 막는 거야?"

그러자 칼은 자신의 검을 든 손으로 앞을 가리켰다.

"아!"


왼편 익시투스 산맥의 기슭 저편에서 적의 것으로 보이는 마법신호가 피어올랐다. 하나가 올라가자 잠시 후 차례차례 거리를 두고 몇 개의 신호가 올랐다. 곧이어 오른쪽 평원에서도 몇 개인가 신호가 올랐다.

뒤를 돌아보니 아군의 신호들도 마찬가지로 마구 하늘로 떠오르고 있었다.

"이 이게 대체?!"

펠릭스는 당황하여 칼의 고램을 쳐다봤다. 그러자 칼의 고램은 다시 손을 들어 귀 부분을 가볍게 두들겼다.

"어? 아!"

그제야 펠릭스는 어느새 자신이 고램 간 통신을 꺼놓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휴~ 이런···."

펠릭스는 겨우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리고는 눈을 감고는 한숨을 쉬었다.

사고를 친 것이었다.

적의 고램은 이제 뒷전이었다. 펠릭스가 더 이상 다가올 의도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적은 펠릭스에게 당한 미니트를 감싸며 멀어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펠릭스는 천천히 마법통신 스위치를 켰다.

"···장 돌아와!! 펠릭스 경! 돌아오지 못해?!!"

켜자마자 잔뜩 화가 난 길버트 경의 목소리가 펠릭스의 귓가를 때려왔다.

정신없이 상대를 몰아세우다보니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대열을 벗어나 한참 앞으로 나와 있었던 것이다.




'짝~!'

펠릭스의 고개가 옆으로 휙 젖혀졌다.

"전투 중에 통신을 끄다니 제정신인가?"

길버트 경에게 한방 얻어맞고 그 얘기를 듣자 펠릭스는 희미하게 기억이 떠올랐다.

전투 중 어느 순간 멈추라는 통신이 들렸었다. 그러나 펠릭스는 멈출 수가 없었던 것이다.


눈앞에 손쉬운 먹잇감이 있었다. 자신이 자유의 몸으로 가는 첫 먹이였다. 앞으로 한번, 단 한걸음만 더 다가가서 휘두르면 끝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상황에서 어렴풋이 어둠의 안내자의 목소리도 들려왔던 것 같았다. 어느 쪽이 먼저였는지는 몰랐다. 목소리가 먼저였는지 자신이 먼저 움직였는지.

아무튼 펠릭스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방해하는 통신 스위치를 내려버린 것이었다.


겨우 정신이 든 것은 아마도 눈물을 흘렸을 때였던 것 같았다. 쓰러진 후에도 발버둥치는 적을 보며 연민인지 동정인지모를 감정을 느끼고 눈물을 흘릴 때 겨우 정신을 차린 모양이었다.


"어제 내가 자네에게 공을 세워보라고 한 얘기의 조건은 분명 최대한 여기 모두가 안전하게 군무를 마치는 선에서라고 하지 않았던가?"

길버트 경의 말에 펠릭스는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휴~ 어쩌면 자네에게 그 얘기를 너무 일찍 했나보군. 아니 차라리 하지 않는 편이 좋았을지도 모르겠군."

"···."

"이 꼴을 보게! 이 상태에서 어떻게 자네를 믿고 고램을 맡기겠나?"

한동안 말없이 생각에 잠겨있던 길버트 경은 옆에서 지켜보던 드비어스 에게 말했다.

"드비어스 경, 별도 명령이 있을 때까지 자네가 펠릭스 경의 고램을 맡도록 하게."

"예."

드비어스는 펠릭스를 한번 힐끗 본 후 조용히 펠릭스의 마이티 고램으로 향했다.

"펠릭스 경, 자네는 벌로 한동안 레인저들과 함께 경계임무를 맡도록!"

펠릭스는 대답 없이 군례를 올리고는 바로 리차드슨 경을 따라나섰다. 그 뒤로 길버트 경이 에스턴 병대장에게 눈짓을 했다. 에스턴 병대장도 알아들은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따라나섰다.



산을 올라가던 펠릭스는 잠시 멈춰 아래를 쳐다봤다. 해가 어둑어둑 지고 있었다. 산 아래 캠프는 지금 자신이 벌여놓은 사고로 때 아닌 소동이 벌어져 있었다.


일명 벽이라는 지형을 경계로 각각 20기 가까운 양군의 고램들이 대치하고 있었다. 신호를 보고 인근을 순찰 중이던 소대에 중계진의 응원소대까지 여섯이 넘는 소대의 고램들이 몰려와 있었다.

어제 피셔 경이 얘기하던 이른바 피곤한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너무 신경 쓰지 말게. 누구나 한번은 사고를 치는 법이야. 다행이 아직 아무도 다치거나 하지는 않았잖은가?"

펠릭스가 멈춰 서자 리차드슨 경이 펠릭스를 달래며 말했다.

"예, 아직은 그렇죠."

펠릭스는 착잡한 심정으로 말했다.

이후로 이 대치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갑자기 적군이 도발을 해 올수도 있었다. 고램을 앞에 미끼로 두고 산으로 레인저들이 공격해 올 수도 있었다.

일단 이 상황에서 전투가 벌어진다면 상당한 규모의 전투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면 누군가 죽거나 다칠 수도 있었던 것이다.

"괜찮을 겁니다. 오히려 이렇게 요란하면 속으로 알맹이가 없는 수가 많으니까요."

뒤따라오던 에스턴 병대장도 펠릭스를 안심시키려 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펠릭스는 마음이 편치 못했다.

지금의 상황이나 이런 상황을 만든 자신의 실수보다 무엇보다도 자신을 도와주려고 애쓰는 길버트 경에 대한 믿음을 져버린 것 같아 그 점이 더 가슴 아팠다.


"여~ 사고뭉치!"

산 위의 임시 주둔지에 도착하자 피셔 경이 얄밉게 웃으며 펠릭스를 맞이했다. 그러나 곧 리차드슨 경이 매서운 눈초리로 피셔 경을 쫓아 버렸다. 펠릭스는 그대로 저녁을 먹고 에스턴 병대장의 지도로 무의 수련을 한 후 야간 경계를 하기위해 나섰다.

벌로서 한동안은 두 사람분의 야간 경계를 하게 되는 것이었다.


경계초소는 덤불로 덮여 밖에서는 초소인지 알기 어려웠다. 초소에는 몇 명의 병사들과 함께 펠릭스의 첫 경계 파트너인 안드레아 경이 와 있었다.

"너무 그렇게 인상 쓰지 않아도 돼! 누구나 한번은 사고를 치니까."

"죄송합니다."

안드레아 경은 예의 늘 웃는 얼굴로 펠릭스를 맞이했다. 그러나 펠릭스는 차마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달이 밝았다. 숲은 고요했다. 가끔 산짐승이 우는 소리 외에는 별다른 기척은 없었다. 안드레아 경은 원래 말수가 없는지 펠릭스를 배려해서인지 조용히 숲을 응시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갑자기 초소의 위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옵니다."

펠릭스는 깜짝 놀라 위를 쳐다봤다.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초소 위에는 궁수인 엔필드가 기척도 없이 있었다. 엔필드는 밤눈이 밝은지 다른 사람들 보다 먼저 다가온 사람들의 신분을 확인했다.

"아군입니다."

교대 조였다.

"어라? 다음은 피셔 경 순번이 아니었던가?"

교대를 하던 안드레아는 다가온 교대조의 조장을 보고 의외라는 듯 말했다.

"제가 일부러 바꿔달라고 했습니다."

"그래? 그럼 수고하게 칼 경."

교대할 병사들을 이끌고 온 사람은 칼이었다.


"칼, 어떻게 온 거야?"

"자, 받아!"

칼은 답변보다는 우선 펠릭스에게 담요를 건넸다.

"그리고 이것도."

칼은 이번에는 데워놓은 작은 철로 된 수통을 펠릭스에게 건넸다. 어제 술이 들어있었던 피셔 경의 그 수통이었다.

"이건?"

"괜찮아. 술이 아니라 차야."

"그래? 고마워."

펠릭스와 칼은 담요를 덮어쓰고는 나란히 앉았다. 그리고는 수통의 차를 나눠마셨다. 이제 완연히 봄이었지만 산속의 밤은 아직도 쌀쌀했다.

"이제 괜찮은 거야?"

"글쎄?"

칼의 물음에 펠릭스는 피식 웃었다. 자신도 장담하기 어려웠다. 설마 오늘처럼 전투 중에 어둠의 유혹에 빠질 뻔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나저나 고램 하나 쓰러트리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어."

"흥, 그래도 칼, 너는 벌써 하나 잡았잖아."

"그래봐야 반파야. 그것도 운이 좋았지."

"우리 학년 수석께서 어울리지 않게 겸손은. 첫 전투에서 반파가 결코 쉬운 기록이 아닐 텐데."

"아니 정말이야. 그 녀석 나랑 싸우기 전에 너하고 나한테 두 번이나 격돌했잖아? 그 바람에 정작 나하고 검을 마주칠 때는 이미 잔뜩 위축이 되어 있더라니까. 그러니까 내 첫 반파의 절반은 사실 펠릭스, 네 몫이라고 할 수 있지. 하하."

"말은 고맙지만, 그래봐야 전과평가에서는 그런 거 인정해 주지 않겠지?"

"그렇겠지···."

두 사람은 별을 올려다보며 쓰게 웃었다.


고램의 전투성과는 외부 관찰과 증언에 의존했다. 2인 이상의 기사나 병사가 외부에서 본 증언이 있거나 1인 이상의 관찰자와 그에 상응하는 전과물이 있어야 자신의 전과로 기록이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쓰러트려 노획한 적 고램처럼 확실한 결과물이 있어야 했다.

칼은 첫 전투에서 소대의 병사들과 기사들이 보는 앞에서 적 미니트의 오른팔을 잘랐다. 외부의 증언과 전과물이 있었기에 완벽한 반파로 기록이 될 것이었다.


반파 둘을 합치면 1기 격파로 인정했다. 다섯 기의 적 소형 고램을 쓰러트리면 나이트급 고램으로 갈아탈 수 있었다. 펠릭스의 첫 목표는 우선 나이트급 고램으로 기체를 교환하는 것이었다.

갈 길이 먼 펠릭스였다. 길버트 경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것도 마음에 걸렸지만 오늘 놓친 한기도 뼈아팠다.

"사실은··· 어제 오른팔만이 아니라 완파를 할 수도 있었어."

칼은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런데 도저히 조종석으로 검을 내려치지는 못하겠더라고."

"···."

펠릭스도 그 기분을 알 것 같았다.

어제 전투 후 나누던 대화에서 처음 오크를 죽였던 때의 지저분한 기분을 떠올렸었다. 둘 다 매년 겨울 몬스터 몰이를 하면서 적잖은 오크들을 베었다. 분명 처음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생명을 빼앗은 것은 결코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무리 인간과 비슷하다 해도 몬스터는 몬스터였다. 결국 생명을 빼앗는 거부감 보다는 인간에게 유해한 몬스터에 대한 거부감이 이기게 마련이었다.


반면 고램에 타고 있는 것은 인간이었다. 아무리 상대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그곳에 인간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 적 고램의 조종석을 찌르기는 쉽지 않았다. 거기다 오늘 펠릭스도 겪었듯 상대도 필사적으로 그곳을 방어했던 것이다.

어제 칼이 했던 말처럼 오늘 펠릭스가 상대했던 적은 실력차이가 많이 났음에도 악착같이 검을 마주쳐왔다.

그야말로 살려고 발버둥치는 게 생생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오크나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처럼 익숙해지는 날이 올까?"

"글쎄? 하지만 언젠가는 그렇게 되겠지?"

"···."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둘 다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대화의 다음에 올 말이 서로의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다음에는 자신들이 그 발버둥치는 입장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어느새 별이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작가의말


글좀 진득하게 쓰려고 하면

뭔가 집에 일이 생기네요. -_-;


이번 주에도 연참이나 비축은 물 건너 간 듯 합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시는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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