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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ster 님의 서재입니다.

펠릭스전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夢ster
작품등록일 :
2014.12.22 00:00
최근연재일 :
2016.12.28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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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6.02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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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5쪽

273 레드숄더.

DUMMY

273


'쿠콰쾅~!'

땅이 온통 울리고 있었다. 피어오르는 흙먼지 사이로 여섯 기의 고램들이 대치하고 있었다.


칼과 펠릭스의 마이티 고램은 서로 등을 진채 원형으로 돌고 있었다. 01포메이션의 0의 위치에서 각각 크로비스의 미니트 고램을 상대하는 것이었다.

"펠릭스! 간다!"

"오!"

칼의 신호가 떨어지자 두 사람은 순간 상대하던 미니트를 향해 달려들어 검을 바인딩했다.

"스위치!"

두 사람은 맞은편의 상대를 힘으로 밀어내고는 재빨리 180도로 방향을 틀어 서로의 적을 바꿔 달려들었다.

'콰쾅! 쿵!'

비교적 근거리에서 이루어진 돌격 차징이었다. 그러나 효과는 확실했다. 상대방 미니트 고램들의 거리가 점점 벌어지고 있었다.

'끼기긱! 치지직!'

오러를 머금은 금속과 금속이 요란하게 마찰하고 있었다.


상대하는 미니트 고램의 라이더들 실력이 나쁘지 않았다. 칼과 펠릭스는 타이밍을 살피며 벌써 몇 번인가 서로 스위칭해 상대 미니트에게 짧게 돌격했다.

적의 어지간한 신참 라이더였다면 그 중 한번 정도는 중심을 잃고 당황할 법도 했건만 녀석들은 아무렇지 않은 듯 펠릭스의 공격을 버티고 있었다. 오히려 반복 할수록 예상했다는 듯 한 대응을 보이고 있었다.

'일대일로 정면으로 붙었다면 승부를 장담하기 어렵겠는 걸?'

펠릭스는 일부러 약간씩 밀려나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번 상대들은 감도 좋은지 용케도 결정적인 순간에 위치를 벗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직 01포메이션의 함정은 눈치 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여기까지였다.


다시 포메이션의 가운데에 위치하게 된 펠릭스는 힐끔 자신의 오른쪽을 봤다. 길버트 경이 적의 나이트급 고램인 흑기사를 상대하고 있었다. 펠릭스는 바인딩 된 검을 비틀면서 상대를 오른쪽 길버트 경의 이동 동선으로 유인하고 있었다.

"좋아! 지금이다!"

마침내 길버트 경의 나이트급 고램이 상대를 밀어내며 약간의 간격을 만들었다.

"갑니다! 스승님!"

"오!"

펠릭스는 길버트 경과 상대방의 흑기사사이에다 자신이 상대하던 미니트 고램을 힘으로 밀어 넣었다.

'부우웅~!'

곧이어 무시무시한 바람소리가 울렸다. 길버트 경의 나이트급 고램이 기다렸다는 듯이 풀 스윙으로 검을 휘둘렀다.

'펑!'

'쿠쿵!'

과연 적의 미니트 고램은 실력이 나쁘지 않았다. 그 짧은 순간에 이번에도 길버트 경의 강력한 일격을 정면으로 막은 것이다.

그러나 미니트 고램과 화이트 고램은 체급이 달랐다. 미니트 고램은 뒤로 쑤욱 밀려났다.

거기다 운도 나빴다. 밀려난 자리에는 하필 자신의 상관일 흑기사가 있었다. 결국은 적은 01 포메이션의 전형적인 함정에 빠진 것이었다.


적의 흑기사와 길버트 경의 백기사가 만든 간격은 별로 넓지 않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미니트는 흑기사가 검을 쥔 오른쪽으로 밀려 났다. 한마디로 아군인 흑기사의 공격방향을 막아버린 것이었다.

'쿠쿵! 쾅!'

결국 두 대의 적 고램이 엉망으로 엉켜버렸다.


혼란스러운 시간이 이어졌다.

상대방 레인저 진영에서 다급하게 원군을 청하는 마법신호가 몇 차례 하늘로 올랐다. 뒤이어 아군의 마법신호도 올랐다.

뒤엉킨 적의 고램들은 필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검술도 뭣도 아니었다. 그저 살기위해 다가오는 길버트 경과 펠릭스의 고램을 향해 오러를 있는 대로 끌어올려 휘두를 뿐이었다.


그렇게 적과 아군의 원군이 오기까지 정신없는 상황이 이어졌지만 그 정도면 칼이 남은 상대 미니트 고램을 쓰러트리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1대1로 같은 체급의 고램에게 질 칼이 아니었다.




"아! 거기서 적의 마법사를 놓치면 어쩝니까!"

"녀석! 내가 놓치고 싶어서 놓쳤냐? 그러는 레논 너는 왜 안 따라 와?!

"피셔 경이 따라오질 않는데 둘이서만 적진 한가운데로 뛰어들라고요?"

"하긴, 피셔! 자네는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건가?"

"피셔 경!"

티격태격하던 맴피스와 레논의 시선이 동시에 피셔에게 향했다.

"아악! 몰라! 고기! 고기가 없어! 거기다 더워! 덥다고!"

피셔는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드러누워 짜증을 부렸다. 피셔의 태도에 맴피스와 레논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어야했다.


중부 중계진에서 예약된 임무기간 한 달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그날 전투가 끝난 저녁 길버트 경의 소대는 그나마 시야가 확보된 참호에서 저녁을 보내고 있었다.

여름이었다. 거기다 중부 중계진의 경계구역은 산 위였다. 고지대의 그늘 한 점 없는 참호는 저녁이 되어서도 뜨거웠다.


"아까웠습니다. 이쪽에서 상대방 마법사들과 레인져들을 조금만 더 눌렀다면 전과를 키울 수도 있었을 텐데."

리차드슨 경이 길버트 경을 보며 말했다.

"아니야.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공격위주 전술이 아니던가. 부상자나 사망자가 없으니 그게 무엇보다 다행이네. 그리고 이제는 저 둘도 자신감이 붙은 것 같으니 말일세."

"예."

두 사람은 칼과 펠릭스를 바라봤다. 칼과 펠릭스는 밝은 얼굴로 웃고 있었다.

안드레아 경이 둘을 보며 물었다.

"이야! 이러면 두 사람 이제 몇 기나 잡은 거지?"

"음, 오늘 잡은 걸로 제가 3기 반, 펠릭스가 2기가 되는군요."

"대단한데? 부임한지 4달 만에 그것도 전투도 별로 많지 않은 여기 동부전선에서 이 정도라니."

"이러다 올해가 가기 전에 둘 다 나이트급 고램으로 갈아타겠어."

사람들의 칭찬에 칼과 펠릭스는 얼굴을 붉히며 웃었다.


입대한지 6개월. 펠릭스는 이곳에 배치된 후 한기의 미니트를 더 잡아 2대의 격퇴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칼은 오늘 한기와 첫 출격에서 잡은 반파까지 3기 반을 기록하고 있었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고램 부대의 기록이 말해주듯 이번 중계진에서 길버트 소대는 승승장구 중이었다.

"가만, 이러다 두 사람 최단, 최다 격퇴기록을 갈아치우는 거 아냐?"

"설마?"

"지금 최단기간 격퇴 기록이 몇 기라고 했지?"

"3년간 19기라고 들었습니다."

"19기라. 누구였지?"

그러자 드러누워 있던 피셔가 대답했다.

"하벤 경이라고 한 10년 쯤 됐을 거야. 남부 기사학교를 졸업한 천민출신 기사였지. 공식 기록이 19기, 비공식으론 25기를 넘긴다는 얘기를 들은 거 같군. 아직은 우리 에덜라드 사상 최연소, 최단, 최다 기록이지."

"맞아! 이름이 하벤이었지."

"그래 기억나는군."

"3년 채우고 제대했다지?"

"아마 지금쯤이면 어디 유력 귀족가의 기사단에 한자리 꿰차고 있지 않을까?"

사람들의 말을 듣고 있던 펠릭스가 불쑥 끼어들어 물었다.

"제대라뇨? 왜?"

"왜라니?"

"하지만 그렇잖습니까? 50기를 잡으면 귀족 작위가 주어지는데. 3년 만에 19기면 단순 계산으로 6~7년이면 충분히 50기를 채울 수 있었지 않을까요?"

"하! 뭐야?"

펠릭스의 물음에 피셔가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어이없다는 얼굴로 쳐다봤다.

"너 인마! 이번에 벼락치기로 몇 기 잡았다고 너무 우습게 생각하는 거 아냐? 제대할 때까지 한기도 못 잡는 사람도 있어! 당장 우리 대장님만 봐ㄷ 읖···."

"예~! 거기까지!"

피셔가 막 길버트 경의 기록을 꺼내려고 하자 레논이 눈치 빠르게 피셔의 입을 막았다.

"하여튼 눈치라고는 고블린 코딱지만큼도 없다니까!"

그리고는 길버트 경의 눈치를 살폈다.


복무기간 약 30년, 나이트급 고램 라이더로 약 20년이 되어가지만 길버트 경의 격퇴 기록은 고작 8기였던 것이다.


"하하! 괜찮네."

다행이 길버트 경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보다 피셔, 자네 하벤 경에 대해서 잘 아는가?"

"잘 아는 건 아니지만. 뭐, 제가 졸업할 무렵에 제대했고 또 학교 선배랍시고 그때 교관들이 엄청 띄워대며 선전했었으니까요."

"그래? 그러면 얘기 좀 해 주겠나? 혹시 칼이나 펠릭스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

"이 녀석들에게요?"

피셔는 못마땅한 듯 칼과 펠릭스를 잠시 쳐다봤다.

"휴~ 하긴 뭐, 들어 둬서 나쁠 건 없겠지요. 거기다 가만 보면 하벤 경과 펠릭스 녀석, 어딘가 닮은 거 같기도 하고···."

"저하고요?"

펠릭스가 의외라는 듯 피셔를 보며 물었다. 펠릭스의 질문에 피셔는 대답 없이 바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하벤 경은 농노출신이었어. 타고난 오러의 재능도 별로였고 검술 실력도 그저 그랬다나봐. 생도 시절초기에는 당연히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성격이었다고 하더군."

"흐음, 듣고 보니···."

피셔의 말에 칼이 펠릭스를 쳐다봤다. 1학년 초 펠릭스가 딱 그랬던 것이다.


"그것뿐만 아니야. 알다시피 천민이나 평민출신 기사학교 생도들은 겨울에는 왕가 소유의 영토 여기저기로 몬스터 몰이를 하러 가야하지. 아무튼 그 와중에 하벤 경은 몇 번인가 몬스터에게 죽을 뻔 했대. 마치 누구처럼 말이야."


피셔의 말에 이번에도 칼은 놀란 듯 펠릭스를 바라봤다.

"그러다 하벤 경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게 3학년 고램 수업시간이었어. 고램 조종에 재능을 보이더니 졸업 할 무렵에는 엑스퍼트가 되었지. 듣기로는 그것도 고램 조종을 하면서 됐다나 뭐라나."

피셔의 얘기를 들을수록 하벤은 펠릭스와 상당히 비슷한 학창시절을 보낸 모양이었다.


"그렇게 졸업한 하벤이 배치 받은 곳은 가장 격전지인 중부전선이었어. 당연히 고램 라이더로 배속 받았지만 처음에는 그다지 좋지 못했나봐. 아니 상당히 어려웠지."

"어려웠다니요?"

"첫 출전에서 반파, 두 번째 출전에서 완파."

"예? 그 정도면 대단한 실력이잖습니까?"

"아니, 적이 아니라 하벤 경이 그렇게 당했다고."

"예?"

"특히나 두 번째 완파를 당했을 때는 그야말로 겨우 목숨을 건졌다고 하더군. 심지어 그 때문에 상부에선 진지하게 하벤 경의 병과를 바꿔야 하는 게 아닌가하고 고심했다고 해."

"저런!"

"하긴, 그럴 만도 하지. 실적이 너무 나쁘면 라이더에서 레인저로 다시 배속되기도 하니까."

"아무튼 운 좋게 한 번 더 기회를 받아 고램을 타게 됐지. 그런데 그때 같은 부대의 동기에게 이상한 얘기를 했다고 해."

"이상한 얘기라뇨?"

"뭐라더라? "뭔가 감을 잡은 거 같다." 라던가?"

"감을 잡았다?"

칼과 펠릭스는 의아해 하며 서로를 바라봤다.


"아무튼 그 후 적의 미니트 고램을 다섯 기 연속으로 격파하고 그해 겨울이 가기 전에 나이트급 고램으로 옮겨 탔지."

"오! 이제 전설의 시작이군요."

"글쎄? 그랬으면 좋겠지만 아니야."

"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2년차. 나이트급 고램으로 첫 출전해 또 반파를 당했지."

"저런."

"마이티와 화이트 고램은 느낌이 다른가?"

"글쎄다. 어쨌든 그 후 새 고램을 받고 다시 출전하며 동기들에게 말하길 "이제 뭔가 확실히 알거 같다."라고 했다는군. 그리고 그해가 가기 전에 10기를 격파하고 전용 고램을 허가 받았지."

"오~ 2년차 1년 만에 10기를?"

"놀라운데요."

"그렇지? 하지만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이었지."

"예? 문제라뇨?"

"보통 그쯤 되면 그냥 두질 않거든? 내외부에서 손이 뻗어오지."

"손이라면···."

"우선은 스카우트 제의야. 군에서야 당연히 여러 가지 조건을 제시하며 장기 복무를 권유했지. 그런가 하면 비밀리에 귀족들이 접촉해오기 시작하지. 자신의 기사단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말이야."

"귀족들이 어떻게. 군에서는 외부와 연락이 금지 아니었습니까?"

"바보, 방법이야 찾으면 얼마든지 있어."

펠릭스의 질문에 대답하며 피셔는 고개로 안드레아 경을 가리켰다.

"음, 나처럼 군에 있는 귀족가의 기사들이 유혹하기도 하지. 기억나? 칼 경? 자네라면 우리 주군께서 얼마든지 환영할걸세."

안드레아가 칼을 보며 유혹하듯 손을 흔들어 보였다.

지난 서부 중계진에서 칼에게 개인 수업을 해 본 후 칼의 재능을 확인한 안드레아가 농담처럼 늘 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칼은 이번에도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장난처럼 짐짓 실망한 표정을 짓던 안드레아 경이 다시 펠릭스를 보며 대답했다.

"편지는 보급품 전달을 하러온 민간 업자들을 통해 몰래 보낼 수 있지. 요즘은 예전처럼 그렇게 심하게 금지하는 분위기는 아니거든."

피셔가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우리 내부가 아니라 적이지. 그 정도 되면 적들에게도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거든. 거기다 10기를 격파하고 전용기가 주어지면 싫어도 전장에서 눈에 띠게 마련이지. 전용 고램을 받으면 다들 자기만의 색으로 고램을 도색하니까."

"그렇군요."

"그러면 그때부터 이른바 뿔 뽑기가 시작되지."

"뿔 뽑기요?"

"그래, 용의 뿔! 적이나 아군이나 앞으로 에이스가 될 만한 싹수가 보이는 라이더들을 집중적으로 노리는 행위를 말해. 예를 들면 하벤 경처럼 초단시간에 10기를 쓰러트린 경우라면 확실히 뿔 뽑기 대상이 되지. 용이 되기 전에 확실히 제거한다는 뜻이야. 보통 라이더들끼리는 적의 이 뿔 뽑기를 이겨내야만 비로소 에이스라고 인정하는 분위기거든."

"흐음~ 보통 어떻게 합니까?"

"방법이야 다양해. 아예 상대하지 않고 피해 버린다든지, 일대일이 아니라 절대 다수로 상대한다든지, 더 강한 우리 쪽 에이스로 상대하게 한다든지, 아니면 치사하다는 소리를 듣더라도 함정을 파는 경우도 있지. 심한 경우는 아군의 희생을 밟고서라도 뽑아 버리는 수도 있어."

"아군을 희생해서라도···. 그건 너무 하군요."

"어쩔 수 없지. 그 정도 되면 개인적으로 원한이 생기는 놈들도 있을 테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야. 아무튼 그렇게 3년째. 그 어려움을 뚫고 하벤 경은 다시 9기를 기록하지. 심지어 그 중에는 혼자서 한꺼번에 3기를 상대해서 이긴 적도 있다고 하니. 정말 대단하긴 했지."

"휘유! 혼자서 3기나?"

"엄청나군요."

그러자 조용히 듣고 있던 길버트 경이 끼어들었다.

"그러고 보니 한 20년 쯤 전에도 대단한 에이스가 있었지. 그 사람도 혼자서 3기를 잡았다고 그때 전선에서 상당히 떠들썩했었지."

"예? 누굽니까. 그 사람이."

"음···. 뭐였더라? 이름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별명이 아마 악귀였지? 근 10년 넘게 복무하면서 거의 50기를 잡아서 당시 상당히 유명했었지. 작위를 주니 어쩌니 말이 많았는데 그 후 갑자기 전선에서 더 이상 그 이름이 들리지 않더군. 어쩌면 전사한 게 아닌가 싶어."

"저런···."

사람들은 잠시 조용해졌다.


흔히 있는 일이었다. 잘 나갈 때는 최대한 띄우지만 자칫 전군의 사기에 악영향을 미칠 위험이 있으면 정보를 차단해 버리는 것이었다.

"가만, 악귀?"

"아!"

길버트 경의 말에 칼과 펠릭스는 갑자기 마주보더니 크게 웃기 시작했다.

"푸하하하!"

"세상에!"

"응? 왜? 두 사람은 뭔가 알고 있는가?"

"예, 스승님."

"그 악귀 이름이 혹시 제시 경 아니었나요?"

"제시? 그래, 그런 이름이었지."

"그렇다면 걱정 마십시오."

"악귀, 제시 경은 지금도 살아서 중앙기사학교 총 교관으로 여전히 악명을 떨치고 계십니다."

"아하~ 이제 보니 두 사람의 교관이 그 악귀 제시 경이었나 보군."

"예, 듣기로는 마지막 전투에서 크게 부상을 당하고 학교 교관직을 제안 받았다고 하더군요."

"허허, 아무튼 살아있다니 그거 다행이군."



잠시 끊겼던 얘기는 펠릭스의 질문으로 다시 시작되었다.

"그럼 하벤 경은 3년 후에 바로 제대해 버린 겁니까?"

"그래. 어디로 갔는지는 나도 들은 바가 없어. 하지만 이런 경우 대부분 유력 귀족가의 기사로 들어가는 게 정석이지. 지금까지 밝혀진 경우도 보통 그랬고 말이야. 내 생각에는 아마 중앙의 팔미온 후작가나 데이브 공작가 어딘가에 고램 라이더가 되어있지 않을까싶군."

"흐음, 그렇군요."

대답을 하면서도 펠릭스는 뭔가 찜찜한 표정이었다. 펠릭스의 표정을 바라보던 칼은 곧 펠릭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망설이는 펠릭스를 보던 칼이 결국 펠릭스를 대신해 질문을 했다.

"저- 혹시 그 사람 귀족이 됐을 가능성은 없을까요?"

"귀족?"

"예"

뜬금없는 칼의 질문에 사람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봤다.

"비록 50기는 아니지만 그 기간 중에 무언가 공을 세웠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혹시 신흥 무인귀족이 되어서 어딘가···."

"행! 어림없는 소리!"

그러자 피셔가 크게 소리쳤다.

"이봐 펠릭스."

"예, 피셔 경."

"너 만약에 여기서 공을 세워 신흥 귀족이 될 수 있다면 받아들일 테냐?"

"예? 그야 물론이죠."

펠릭스는 당연한 듯 대답했다.

군공을 세워 신흥무인귀족이 된다면 일단 펠릭스의 말도 안 되는 복무의무가 사라진다. 그러니 생각해 볼 필요도 없는 대답이었다.

"그러면 칼, 너는 어때? 레논 너는?"

피셔는 다른 기사들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칼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레논은 잠시 망설이더니 고개를 저었다.

"으음, 나는 역시 무리 일려나?"

"어? 레논 경?"

"왜?"

의외의 레논의 반응에 칼과 펠릭스가 물었다. 그러자 피셔가 다시 한심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멍청이들! 이러니 아직도 애송이 취급이지."

"왜요 피셔 경은 싫으세요? 영토를 받고 귀족이 되면 좋은 거 아닙니까? 피셔 경도 늘 출세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까?"

"안됐지만 나도 사절이야!"

"예?"

피셔의 단호한 대답에 칼과 펠릭스는 서로 의아해 하며 바라봤다. 그러자 이번에도 진득하게 듣고 있던 길버트 경이 나섰다.

"우리 헤이우드 가문의 경우를 생각하면 조금 이해하기 쉽지 않을까?"

"예?"

"······?"

"아!"

길버트 경의 말에 잠시 생각하던 칼과 펠릭스는 그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신흥 무인귀족은 왕가에서 세력을 키우기 위해 만들기 시작했지. 아마도 왕가에서 중앙 귀족에게 돈을 빌려 쓰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부터일거야."

길버트 경의 말에 칼과 펠릭스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 귀족이 되면 작위와 함께 고램 한기만 달랑 주어졌다. 물론 행정적 지원이 있기는 했지만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반면 중앙 귀족 파벌들의 견제. 일부러 몬스터가 넘쳐나는 오지에 배정되는 영지 등 신흥 무인귀족이 살아남을 확률은 극히 낮았다.

스승인 길버트 경의 헤이우드 가문도 그저 그런 수많은 실패한 가문의 하나였다.


"새로 귀족 가문을 여는데 얼마나 힘이 들지 상상해 보라고. 너희는 그래도 귀족이니 본가에서 도와줄 여력이 있겠지만. 나 같은 소위 백도 뭣도 없는 천민출신은 거저 줘도 사양이야. 심지어 장원을 소유한 기사가문인 레논도 거절할 정도라고. 나 같은 놈은 그저 어디 귀족 가에 기사자리 하나만 내줘도 감사할 따름이지. 쳇!"

피셔의 말에 칼과 펠릭스는 무안한 듯 쓴 웃음을 지었다.



잠시 분위기가 가라앉아있자 평소 조용한 성격의 리차드슨 경이 끼어들었다.

"요즘 자네들은 잘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사관들 중에서도 파벌 같은 게 있었다네."

"사관들에게 파벌이요?"

"그래 그것도 출신별로 말이야. 예를 들면 칼 경과 펠릭스 경처럼 귀족 출신에 중앙기사학교를 졸업한 이들이 있지. 이들은 스스로 엘리트 출신이라는 자부심이라고 할까? 그런 게 있었어. 물론 서부 기사학교 출신들과 남부기사학교 출신들도 그랬지. 경쟁심 이라고 할까? 나름 무언가 자신들만의 분위기로 서로 어울리지 못하는 게 있었어. 거기다 저기 안드레아 경이나 드비어스 경처럼 학교를 거치지 않은 이른바 늦깎이 기사들이 있지. 특히나 이들은 학교 출신들을 은근히 깔보는 경향이 있었거든. 대부분이 이미 엑스퍼트, 혹은 중급에 오른 실력자들인데다 실전 경험도 상당한 이들이 많았으니 갓 졸업한 애들이 얼마나 우습게 보였겠나?"

"그런···."

"하하! 설마 지금까지 저희를 그렇게 보신 건 아니시겠죠?"

칼이 장난스런 눈초리로 안드레아와 드비어스가 있는 곳을 바라봤다.

"흥! 애송이들이!"

드비어스는 말할 가치도 없다는 듯 고개를 틀었다.

"설마! 난 아니야. 이 녀석도 괜히 저러는 거라고."

반면 안드레아는 장난스럽게 고개를 저으며 드비어스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리차드슨 경이 다시 말을 이었다.

"파벌은 과거 서자들이 한창 군무에 집중될 당시에 제일 심했었지. 그때는 특히나 줄을 잘 서야 했거든."

"줄이라뇨?"

"신흥 귀족이 될 때. 자신이 유력 귀족가문이나 자산가 출신이 아니라면 가장 큰 힘이 되어주는 게 누구라고 생각하나?"

"예?"

그러자 다시 피셔가 끼어들었다.

"바보들! 바로 여기 전우들이야! 기사 친구들이라고!"

"아! 맞다! 그랬었죠!"

칼과 펠릭스는 다시 길버트 경을 바라봤다. 길버트 경은 두 사람에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 길버트 경에게서 들었던 적이 있었던 것이다. 초창기 헤이우드 가문이 세워질 때 길버트 경의 할아버지는 군의 전우들을 가문의 기사로 받아들였다고 했었다.


"그러니까 너희들도 이 몸에게 잘 보이란 말이다!! 그래야 너희들이 행여나 작위를 받은 다음 이 피셔라는 유능한 기사를 얻게 될 테니!"

칼과 펠릭스의 반응을 보던 피셔는 의기양양하게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길버트 경이 작게 웃으며 한숨을 쉬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 시작이군."

이어서 맴피스 마법사도 엉덩이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멍청이!"

"응?"

레논도 덩달아 한숨을 쉬며 덧붙였다.

"휴~ 피셔 경, 누가 경을···."

"뭐?"

그러자 다른 기사들도 무심히 하나 둘 일어나기 시작했다.

"밥이나 먹으로 가지?"

"오늘은 메뉴가 뭐였지?"

"또 빵이겠지 뭐."

"어이? 자 잠깐! 뭐야? 그 미적지근한 반응은?"

사람들은 모두 저녁을 먹기 위해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무시하는 거야? 나처럼 유능한 기사가 어디 있다고! 어이! 잠깐 기다려 보라니까! 잠깐만!!"

고원에 피셔의 애처로운 외침이 울렸다.




저녁을 먹은 후 펠릭스는 잠시 눈을 감고 무의 수련을 하고 있었다.

"제대할 무렵의 헨리는 실력이 어느 정도였어?"

"엑스퍼트 중급에 올랐지만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몇 번이나 적을 앞에 두고 도망쳐야 했죠. 이미 여러 방면으로 한계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서둘러 제대 신청을 했던 거구요."


머릿속에는 지난겨울 장원에서 일리아드가의 기사였던 헨리가 하던 말이 떠올랐다.


오거는 몬스터들의 왕이라 불릴 정도로 강하고 무시무시했다. 오크들이 사육한 녀석들은 어딘가 멍한 부분이 있었지만 야생 오거는 확실히 틀렸다.

그런 야생 오거를 헨리는 마이티 고램으로 간단하게 잡았다.


7년 복무 기간 중 라이더로 약 5년. 그사이 적 고램 7기 격파. 헨리는 라이더로서 분명 우수했다. 지금에 와서 펠릭스는 세삼 그런 헨리의 실력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엑스퍼트 중급의 에이스인 헨리 경 조차도 위기를 느낄 정도의 한계가 무엇이었을까? 펠릭스는 어쩌면 헨리는 적의 뿔 뽑기를 견디지 못했던 건 아니었을 까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오늘 이야기를 듣고 하벤 경도 그랬던 게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무의 수련을 마치고 눈을 뜬 펠릭스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18년의 복무기간을 벗어나는 길은 지금으로선 기간을 채우던지 아니면 공을 세우는 길 뿐이었다. 그리고 공을 세우는 방법 중 가장 확실한 것은 적의 고램을 50기 이상 쓰러트리는 것이었다.

세비안의 도움으로 펠릭스는 다행이 고램 라이더가 되어 있었다. 그나마 그 작은 기회를 잡은 셈이었다.

하지만 그러려면 싫어도 에이스가 되어야 하고 언젠가는 그 뿔 뽑기를 자신도 견뎌내야만 한다는 뜻이었다.


그러고도 문제가 남아있었다.

"작위 귀족이라···."

지금까지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문제였다.


서부 중계진에 길버트 스승에게서 처음으로 군무를 면제 받을 방법에 대해서 듣고 난 후 당연히 에이스를 목표로 잡았다. 자신이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니 당연했다.


하지만 설령 어떻게 작위를 받게 된다고 해도 그 아버지가 자신을 지원을 해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니 펠릭스가 오히려 거절하고 싶었다.

"에이드리안 형님이라면 모르지만."


가만히 생각하던 펠릭스는 문득 실소가 나왔다.

"풋! 나도 참! 이제 겨우 미니트 2기를 잡은 햇병아리 주제에 벌써 귀족 작위를 받고난 후를 걱정하고 있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없음에 펠릭스는 고개를 절래절래 젓고는 자신의 침소에 누었다.

중번 불침번 대기였다. 가뜩이나 더운 날씨에 잠이 부족할 수도 있었다.

'스승님도 있고. 어떻게든 잘 되겠지.'

펠릭스는 담요를 끌어올리곤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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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 261 +26 16.04.13 4,276 157 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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