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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ster 님의 서재입니다.

펠릭스전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夢ster
작품등록일 :
2014.12.22 00:00
최근연재일 :
2016.12.28 16:59
연재수 :
29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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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7,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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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813,839

작성
16.06.11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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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274

DUMMY

274


이른 저녁이었음에도 아직 하늘은 밝았다. 매복을 마치고 중부 중계진으로 돌아온 길버트 소대는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칼이 3번째 격퇴를 기록한 이후로 더 이상 크로비스 군과의 접촉은 없었다. 길버트 경은 오자마자 우선 맴피스 마법사에게 명령했다.

"맴피스, 고램 정비부터 서두르게!"

"예!"

별다른 지시가 없어도 소대원들은 알아서 움직였다.

이미 서부 중계진에서 한차례 중계진 생활을 경험했던 칼과 펠릭스도 알아서 움직였다. 맴피스를 필두로 칼, 펠릭스, 드비어스, 레논의 고램반은 서둘러 고램을 주기고로 옮겼다.

이번에 처음 01포메이션을 도입하며 고램을 상당히 거칠게 다루었다. 다들 그게 마음에 걸렸다.


"이번 달에는 다들 정신없이 바쁘겠는 걸?"

주기고로 향하며 레논 경이 말했다. 칼과 펠릭스는 힘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매복에서 길버트 소대의 전과는 상당했다. 펠릭스가 2기, 칼이 3기를 잡았다. 한 달 사이에 접촉한 거의 모든 크로비스 군 매복, 순찰 부대와 싸워서 전과를 기록한 것이었다.


근례에 보기 드문 성과라 중계진 내에서도 상당한 화제였다. 들어서는 순간 사람들의 부러움, 존경, 걱정 같은 시선이 쏠리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칼과 펠릭스를 비롯해 소대 기사들은 표정이 과히 좋지 않았다. 교전 숫자가 통상 마주치는 숫자의 배에 가까웠다. 내일 부터 다들 관련 보고서를 작성하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레인저 소대의 전과도 있었다. 격전 중에 6명의 포로를 잡았던 것이다. 그 중에는 크로비스 군의 기사 두 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고램이 전선에 도입된 이후로 일반 병사나 기사들 간의 대규모 전투는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당연히 포로도 그다지 발생하지 않았다.

더구나 에덜라드와 크로비스는 국교가 단절 된지 오래였다. 그나마 두 나라 사이에서 임시 대화통로역할을 하던 웨스터랜드 제국도 크로비스와 공식 국교가 끊긴 상태였다.

한마디로 기사급 포로는 정보 청취를 위해 상당히 귀중한 존재였던 것이다.


당연히 소대에도 여러 부서에서의 면담이나 보고서 작성등에 부담이 있을게 분명했다. 이미 선임인 길버트 경과 리차드슨 경은 중계진의 경비주임과 보안대 소속으로 보이는 기사들과 심각한 얼굴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포로들은 잡힌 즉시 순찰대에 넘겨져 중계진으로 보내졌다. 때문에 칼이나 펠릭스는 포로들의 얼굴도 거의 보지 못했다.

멀리 선임 기사들의 모습을 보던 펠릭스가 레논에게 물었다.

"포로들은 어떻게 처리됩니까?"

"글쎄? 나도 처음이라서. 아마 지금쯤은 보안대 처리하지 않았을까?"

"역시 고문··· 같은걸 하는 걸까요?"

그러자 갑자기 모두 조용해졌다.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옛법 대로라면 기사나 귀족은 몸값을 주고 적에게 다시 팔 수 있었다. 그러나 두 나라의 국교가 단절된 지금은 불가능한 얘기였다.


"그러고 보니 학교에서 포로 취급에 대해서는 그다지 알려주지 않았지?"

레논이 말했다. 그러자 칼이 대답했다.

"너희들은 알 거 없으니 신경 끄라는 배려였을까요?"

"역시 고문··· 하는 거겠지?"

말을 꺼내며 펠릭스는 문득 1학년 때 도서관에서 봤던 책이 떠올랐다.

'코볼츠가의 심문, 고문비기 370종'

칼이 펠릭스를 레온의 동부패거리 중 하나로 오인했을 때 도서관에서 들고 있던 책들 중의 하나였다. 그 후 펠릭스는 도서관에서 에이드리안의 책을 찾다가 우연히 그 책을 발견했다. 그리고 호기심에 한번 슬쩍 봤었다.


책의 목차는 특이하게 신체부위를 지칭하는 말로 되어있었다. 손끝, 발끝, 머리털 끝에서 시작한 명칭은 서서히 몸의 가운데를 지칭하는 명칭으로 이어졌다.

많지는 않았지만 도판도 포함되어 있었다.


목차와 도판 위주로 슬쩍 훑어봤을 뿐이었지만 그 날 이후 펠릭스는 한 가지 결심을 하게 됐다. 적에게 포로로 잡힐 것 같으면 차라리 자결하기로!


펠릭스가 꺼낸 고문이라는 말에 다른 사람들도 긴장한 이유가 그것이었다. 적에게 일어난 일은 자신들에게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멍청이들! 쓸데없는 걱정은 집어 쳐!"

분위기가 가라앉아있자 길버트 경의 화이트 고램을 조종하던 드비어스 경이 벌컥 소리쳤다. 그제야 칼과 펠릭스, 레논은 흠칫 정신이 들었다. 마침 일행은 중계진의 주기고에 도착하고 있었다.



"음! 이건 좀 두고 봐야겠는데?"

"역시 손상이 심한가요?"

"애매하단 말이야. 일단 오러 전달 용액은 교체하고 천천히 한번 검사해 보도록 하지."

주기고의 정비담당 마법사가 길버트 소대의 고램들을 살펴보며 말했다.

세 기 모두 특별히 몸체에 적의 공격을 받은 적은 없었다. 새 전술은 나름 유용했고 세 사람의 콤비네이션은 잘 들어맞았다.


다만 마지막 전투에서 칼과 펠릭스의 고램이 짧은 돌격 차징을 여러 번 했던 게 조금 걸렸다. 아무래도 갑작스런 격한 움직임에 여러 곳에 과부하가 걸렸을 것이리라.




그날 저녁 소대 기사들은 사관실에 모여 무의 수련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훈련을 위해 단체로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거의 한 달 만이었다.

매복 중에는 여간해서 훈련을 할 시간을 내기 어려웠다. 펠릭스는 개인사정과 대원들의 배려로 무의 수련을 빠트리지 않았다. 하지만 칼과 약속한 새 검술을 만드는 훈련은 매복 중에는 하지 못했다.

기사들이 매일 하는 오러를 동반한 개인검술 훈련도 매복 중에는 경계근무와 상황에 따라 개인별로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 이제 확실히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 한 것도 같군."

훈련을 마치자 길버트 경이 펠릭스와 칼을 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이것도 다 스승님 덕분입니다."

칼과 펠릭스는 길버트 경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니야, 두 사람 모두 열심히 한 때문이지. 하하하."


매복 중에도 그렇고 바쁜 와중에도 길버트 경은 간간히 두 사람의 수련을 도와주었다. 자신이 바쁠 때는 에스턴 병대장을 보내서라도 신경써주었다.

"그래 두 사람 그동안 따로 진전은 있었나? 무의 수련과 관련해 특별한 경험 같은 건 없었고?"

"저야 수련한지 고작 한 달이라 그런지 아직은 별다른 경험이 없었습니다. 매복 시에는 거의 수련을 하지도 못했고요."

칼이 대답했다.

"저는 사실은···."

펠릭스는 첫 고램을 격파할 때 느꼈던 일을 간단히 얘기했다.

"전에 사냥 때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각이었습니다.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은 상태에서 스승님이 얘기하셨던 것과 같은 걸 느꼈습니다. 상황에 대한 이해력이 높아진 듯한, 마치 상대의 움직임이 미리 보이는 거 같은 느낌이더군요."

"오! 그래? 하하하하!"

"스승님이 얘기하시던 그 신기한 경험이 어떤 건지 조금은 알거 같았습니다."

"역시, 효과가 있구먼. 허허."

펠릭스의 이야기에 길버트 경은 무척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그래, 좀 더 자세히 말해보게. 고램 조종 중에 계속 그랬나? 설마 두 번째 격파를 기록할 때도 그 상태였었나?"

"아뇨, 처음 격파 때만 그랬습니다. 두 번째 격파 때는 저도 다른 생각을 할 경황이 없었으니까요."

"하긴 그랬지."

펠릭스의 대답에 길버트 경도 고개를 끄덕였다.


펠릭스의 첫 번째 완파 기록을 제외하고는 소대의 기록은 모두 01포메이션의 운용 중에 격파한 것이었다. 칼과 펠릭스 둘 다 새 전술의 덕을 톡톡히 본 셈이었다.


비록 미니트 뿐이긴 했지만 한 달 사이에 한 소대에서 5기나 잡은 것은 분명 상당한 기록이었다. 적과 접촉이 있어도 적극적인 교전 상태로 번지지 않는 이곳 동부 전선에서는 특히나 눈에 띄는 수치였다.


"관조라···. 정말로 그런 게 가능한 거군요."

듣고 있던 칼이 놀랍다는 듯 말했다. 그러자 어느새 훈련을 마친 피셔가 다가와 있었다.

"뭐야? 그때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야? 그러면 나한테도 말해 줬어야지!"

놀란 것은 피셔뿐만이 아니었다.

"이봐 펠릭스 경, 그 이야기 좀 더 자세히 설명해봐. 어떻게 전투 중에 그 상태에 들어간 건가? 또 그랬던 적이 있었나?"

안드레아 경도 다가와 물었다. 거기다 평소와 다르게 드비어스 경마저도 조금 흥분한 듯 펠릭스에게 물었다.

"뭔가 계기나 요령 같은 게 필요한가?"

어느새 펠릭스의 주변에 소대 기사들이 모두 모여들어 있었다.

"그 글쎄요? 의도적으로 그런 의식 상태로 들어간 적은···. 말씀 드렸듯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흐음-"

펠릭스의 말에 다들 심각한 표정이었다. 특히 안드레아 경과 드비어스 경이 그랬다. 물론 펠릭스도 두 사람의 태도를 어느 정도 이해는 할 수 있었다. 아니 이제는 확실히 이해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별 소득이 없었음에도 무의 수련을 계속해 온 두 사람이었다. 아니 사실 소대에서 가장 무의 수련을 열심히 하고 있던 두 사람이었다.

심지어 이동 중에도 가끔 경쟁하듯 무의 수련 상태에 들어가는 것을 자주 보았다. 어둠의 오러와는 상관이 없었음에도 그랬다.

'그렇구나, 두 사람은 바로 이것 때문에 무의 수련을 그렇게 열심히 하고 있었던 거구나.'

이제 펠릭스는 확실히 알게 된 것이다.


"그래, 정확히 어떤 느낌이었던 거야? 그때 피셔 경이 같이 있었으니 꽤나 시끄러웠을 텐데."

레논의 질문에 펠릭스는 애써 웃음을 참으며 힐끗 피셔를 바라봤다.

"야, 레논!"

"하지만 사실이잖습니까? 보나마나 옆에서 빨리 끝장을 내라는 둥. 별 참견을 다했죠?"

"크윽!"

언제나처럼 피셔는 레논의 말에 발끈 했지만 달리 대답을 하지 못했다. 정곡을 찔렸던 것이다.


잠시 웃음이 지나 간 후 소대 기사들이 모두 모였다. 이번에는 사관실 테이블에 회의를 하듯 정식으로 둘러앉아있었다.

소대원들의 반응에 제대로 토론을 해 보자는 의도로 길버트 경이 주최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그 경험을 한 사람은 소대에서 나와 펠릭스 경뿐이군."

길버트 경이 펠릭스를 보며 말했다.

"의도적으로 상시 무의 상태에 들어가는 것은 역시 무리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놓친 뭔가 다른 조건 같은 게 있는 걸까요?"

"흐음~"

안드레아의 지적에 다들 심각한 표정으로 궁리하기 시작했다.

"어둠의 오러의 유혹에 빠진 경험이 있을 것···."

"응?"

"칼 경, 지금 뭐라고 했나?"

갑작스런 칼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칼에게 향했다.

"아, 그러니까 펠릭스와 스승님, 두 사람의 공통점 말입니다. 어디까지나 가설입니다만. 어둠의 안내자와 한번이라도 만났던 사람만이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

칼의 대답에 기사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눈치 빠른 레논 경이 바로 일어서며 말했다.

"에스턴 병대장을 불러와 볼게요!"

펠릭스와 길버트 경을 제외하고도 어둠의 오러의 유혹에 빠졌던 소대원은 한명 더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피셔도 급히 일어서며 말했다.

"저는 다른 부대원 중에 무의 수련을 하고 있는 녀석들에게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저도 함께 가보겠습니다."

피셔와 함께 리차드슨 경이 일어서며 길버트 경에게 허락을 구했다. 아무래도 늦은 밤이었다. 피셔 혼자보내기 보다는 선임인 리차드슨 경이 같이 가는 게 힘이 될 것이었다. 길버트 경은 간단히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했다.




소대원들이 빠르게 흩어졌다.

"이럴 때는 피셔 경도 상당히 협조적이군요."

칼이 의외라는 듯 말했다.

"흠, 평소에 좀 짓궂어서 그렇지, 사실 주변에 대한 마음 씀씀이가 괜찮은 사람이야. 거기다 부대에선 여기저기 발이 넓은 편이기도 하고. 서부 중계진에서 자네들 악평을 막은 것도 피셔의 공이 크지."

펠릭스는 자신의 잘못으로 얻었던 별명 얘기가 나오자 살짝 얼굴을 붉혔다.


사람들을 기다리며 한동안 다들 말이 없었다. 자리에 남은 사람은 칼과 펠릭스, 길버트 경을 제외하면 안드레아 경과 드비어스 경뿐이었다.

각자 눈을 감고 다들 이번 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 안드레아 경과 드비어스 경은 무거운 표정이었다. 전투 중에도 평상심을 유지하는 방법! 그 하나만을 위해 그동안 누구보다 열심히 무의 수련을 계속해온 두 사람이었다.


펠릭스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저, 스승님."

"왜 그러나?"

"혹시 그 무의 상태, 관조의 상태에서 여러 대의 고램을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응? 다수를?"

"예, 그때 마치 상대방의 움직임이 미리 보이는 듯 했었습니다. 그러니 그걸 이용한다면 제시 경이나 하벤 경이 했던 것처럼 한번에 3대1 이나 그 이상의 다수와도 싸울 수 있지 않을까요?"

펠릭스가 질문한 의미를 알아차린 길버트 경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런, 펠릭스 경,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모양이군."

"예?"

"무의 상태에 들어갔다고 해서 정말로 상대의 움직임이 미리 보이는 건 아니야. 행여 그렇더라도 그게 자신의 실력이 높아진 것도 아니고. 잘 생각해보게."

"으음."

길버트 경의 말에 펠릭스는 잠시 자신의 경험을 돌이켜봤다.


엔필드와 함께 사냥을 갔을 때나 첫 고램을 완파 할 때 둘 다 상대방의 실력은 자신보다 뛰어나지 않았다. 특히 사냥 때는 미리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듯 한 느낌은 없었다.


첫 고램을 격파 할 때도 그랬다. 상대 움직임이 예측 가능한 듯 느껴졌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실력이 좋아진 것은 아니었다. 오러력이 갑자기 높아지지도, 검술 실력이 올라간 것도 아니었다.

아마 평상시 상태로 그 상대와 1대1로 붙었다고 해도 펠릭스가 이길 수 있었을 것이었다.

굳이 무의 수련으로 인한 승리 원인을 찾는다면 당황하지 않고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공격 방법을 찾았다는 것이었다.


당시 펠릭스나 상대방의 고램 둘 다 양 손을 내리고 있는 상태였다. 적을 먼저 발견한 것은 펠릭스였다.

펠릭스는 자연스럽게 오른손의 검을 올리며 비스듬히 올려 베기에 들어갔다. 펠릭스의 이 올려 베기는 준비 동작도 없었고 공격 동선에 자연스럽게 왼손이 합쳐졌다.


반면 상대방은 수평 베기를 하려고 했다. 발견이 늦어 당황해 하면서 이미 한 박자를 놓친 상태였다. 거기다 수평 베기를 하기 위해 검을 오른쪽 몸 위로 올려 예비 자세를 취하려 했다. 여기서 다시 한 박자를 놓쳤다.

마지막으로 강한 공격으로 일격에 끝내려고 생각했는지 힘을 모으기 위해 왼손도 몸 오른쪽에 있는 검 손잡이를 잡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니 펠릭스 보다 무려 세 박자가 느렸다.


펠릭스가 무의 수련의 도움을 받은 부분이라고 한다면 처음 적을 목격한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았던 점. 그리고 자신이 의식하거나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상대의 움직임에서 생기는 틈을 노려 정확하고 효율적인 일격을 넣은 점이었다.

그 과정에서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의 이해, 그리고 상대의 움직임을 미리 예측한 듯 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정확히는 인지하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몸이 자연스럽게 반응했다는 느낌이었다.


펠릭스가 잠시 생각에 잠겨있자 길버트 경이 자신의 경험을 얘기했다.

"나도 세 번 정도 전투 중에 관조의 경험을 한 적이 있네. 하지만 그 중에 두 번만 격퇴로 이어졌지."

"나머지 한번은 어땠습니까?"

"그게 자네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면 대답인데. 그 상대는 나보다 실력이 월등한 자였어. 나는 겨우 목숨만 건져 후퇴했네. 내 공격은 무엇 하나 통하지 않았지. 그러니 관조 상태에 들어간다고 해서 상대의 움직임을 미리 예측 가능한 것도, 실력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야. 그보다는 냉정하고 침착하게 상황을 판단하게 만들어 자신이 가진 실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해 주는 거라고 나는 생각하네."

"···역시 무의 수련을 이용해서도 다수의 적을 상대하는 건 무리일까요?"

펠릭스의 그 대답에 다들 마주보며 미소 지었다. 왜 펠릭스가 이런 질문을 했는지 이유를 안 것이다.

"펠릭스 경, 빠르게 전과를 올리고 싶은 건 이해하지만···. 전투 중에 침착하게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무의 수련은 대단한 거야. 실전에서 감정에 휘둘려 재 실력의 반도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자네도 알잖은가?"

안드레아 경의 말에 길버트 경이 거들었다.

"이번에 01 포메이션을 운용하면서 여러 번 다수의 고램을 상대해 봤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비록 나보다 실력이 떨어지더라도 2기 이상을 혼자서 한 번에 상대한다는 것은 상당한 실력 차가 아니라면 무리라고 보네. 무의 수련으로 관조의 상태에 있다고 해도 그건 마찬가지일거야. 성급한 마음이 드는 건 알겠지만 그렇게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게 좋아."

"으음, 그렇긴 하지만···."

안드레아와 길버트의 말에도 펠릭스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번 한 달 사이에 펠릭스는 두기, 칼은 세기의 기록을 달성했다. 그러나 단순히 칼의 실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한기를 더 잡은 것은 아니었다.

01 포메이션에서의 역할의 차이였다. 가운데에 위치하는 사람이 오른쪽 길버트 경의 이동 동선으로 상대를 몰아넣는 역할을 했다.

0위치의 칼과 펠릭스 두 사람은 자주 유기적으로 서로 위치를 바꾸었다. 지금의 기록은 그저 우연히도 펠릭스가 포메이션의 가운데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았을 뿐이었다.

실제로 펠릭스가 기록한 두 번째 고램도 칼이 가운데에서 적을 길버트 경의 이동경로에 밀어 넣는 동안 잡은 것이었다.


만약 자신보다 칼이 중앙에 서는 일이 많았다면 펠릭스의 기록이 3이 되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이번 경험으로 펠릭스는 나름 자신감을 얻은 것이다. 같은 체급의 고램으로 1대1 이라면 누구에게도 쉽게 지지 않을 자신이었다.

거기에다 제시 경과 하벤 경의 얘기를 들었다.


무의 수련과 새 포메이션, 그리고 자신의 실력, 무언가 가능성이 보였던 것이다. 단기간에 많은 수를 격파할 수 있을 무언가를.



"조급해하지 말게. 하벤 경도 가능했던 일이야. 분명 자네도 언젠가 가능할 걸세."

"그래. 우선은 안전부터 생각하도록 하게나."

길버트 경과 안드레아 경은 펠릭스를 위로하려는 듯 부드럽게 말했다. 반면 바로 뒤를 이어 드비어스 경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흥! 하벤의 기록 때문에 괜히 헛바람만 들어서는! 네놈에게 당장은 무리야! '무언가 알 것 같다고?' 애초에 그렇게 쉽게 적을 쓰러트릴 방법이 따로 있다면 누가 고생하겠나? 하지만 현실은 어디까지나 재능과 노력의 결과가 반영되는 거야! 하벤 경은 3년을 채우고 제대할 당시에 엑스퍼트 중급 이었다! 한마디로 타고난 재능이 달랐던 거야! 재능이 부족한 네 녀석은 죽어라 노력해서 따라잡는 수밖에 없다고!"

"예, 그 그렇겠죠."

불같은 드비어스 경의 질책에 펠릭스는 고개를 숙이며 물러섰다. 안드레아 경과 드비어스 경은 펠릭스에게 그야말로 당근과 채찍이었다. 펠릭스는 어느 장단에 반응해야 할지 몰라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칼이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말했다.

"저기, 스승님! 그러지 말고 펠릭스에게 한번 직접 경험해 보게 하면 어떨까요?"

"직접 경험해 보다니?"

"다수와의 대결 말입니다."

"응?"

칼이 곧 펠릭스를 제외한 나머지 세 사람을 한쪽으로 손짓해 불렀다. 그리고는 모여서 무언가 쑥덕쑥덕 모의를 하기 시작했다.


모의가 끝나자 길버트 경을 비롯해 다른 두 사람도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흐음, 그래, 어쩌면 언젠가는 펠릭스 경도 그런 상황에 마주치게 될지도 모르니."

"분명 도움이 될 거야."

대화가 끝나자 길버트 경이 펠릭스를 보며 말했다.

"예? 어?"

펠릭스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았다.


칼을 비롯해 길버트 경과 안드레아 경, 드비어스 경은 모두 재미있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만 드비어스 경의 웃음만은 다른 셋과 본질 적으로 달랐다.

마치 잘 걸렸다는 듯, 혼 좀 내주겠다는 의도가 역력해 보이는 미소였다.


작가의말


선작이 4천을 넘었군요.

편당 조회수도 조금 늘었는데 

재미있어요 숫자는  떨어지는 기 현상이...


설마 4천은 허수겠지 싶어서 며칠 기다렸으나 

20분 정도 떨어져 나가고 그대로군요.


개인 사정이 좀 있었습니다.

원래는 두 편 정도 한번에 올릴까 생각했는데 

좀 더 글을 다듬어야 될 듯해서...


일단 반절만 올립니다.


새벽 녁에 어쩌면 한편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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