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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ster 님의 서재입니다.

펠릭스전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夢ster
작품등록일 :
2014.12.22 00:00
최근연재일 :
2016.12.28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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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3,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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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5.07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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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268

DUMMY

268


아침 기본훈련이 끝난 후였다. 식사를 하고나자 일반 병사들은 신병의 훈련을 포함해 산으로 향했다. 기사들은 오전에 개인 대련과 오후에는 고램 대련이 예정되어 있었다.

소대 훈련장에는 길버트 소대의 기사 여덟 명이 두 줄로 마주보고 서 있었다. 열의 끝에는 맴피스 마법사가 작은 테이블 옆에 서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작은 모래시계가 놓여있었다.

"시작!"

모래시계를 뒤집으며 맴피스 마법사가 외쳤다.

"하앗!"

"이얍!"

격한 함성과 함께 여덟 명의 기사들이 각각 맞은편 상대와 격돌했다.

'채채챙!'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펠릭스의 상대는 레논이었다.

레논도 서부출신 기사였다. 안드레아 만큼은 아니었지만 검술이 기본적으로 화려했다. 찌르기 위주의 빠르고 경쾌한 공격이 이어졌다. 그러다 펠릭스가 반격하려고하면 현란하고 빠른 스텝으로 달아났다.

반면 펠릭스는 양 발을 굳건하게 벌리고 서는 동부 특유의 검술로 상대하고 있었다. 제식검술과 동부의 지역 색이 어우러진 검술이었다.

정과 동, 두 사람은 서로 상반된 움직임을 보이며 대련을 이어갔다.

대련은 쉽사리 한쪽이 우위를 차지하지 못했다. 레논의 찌르기는 펠릭스의 강한 쳐내기 식의 방어에 막혀 효과를 보지 못했다.

레논도 아직 엑스퍼트 초급이었지만 펠릭스 보다는 확실히 우위의 실력이었다. 원래 의도대로라면 빠른 연속 공격이 이어져야 했으나 펠릭스가 강하게 쳐 낼 때마다 공격의 흐름이 끊어졌다.

이는 연습용 검을 이용한 탓도 있었다. 오러가 거의 맺히지 않는 연습용 검으로는 무거운 펠릭스의 방어를 뚫고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었다.

반면 펠릭스도 방어 후 이어서 결정타를 날리지 못했다. 레논은 자신의 연속공격이 막힐 때마다 빠른 발걸음으로 펠릭스로부터 멀어졌다.


"그만! 교대!"

작은 모래시계는 금방 뒤집혔다. 레논과 펠릭스 뿐만 아니라 아무도 상대와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맴피스 마법사의 말에 기사들은 대련을 멈추고 상대를 바꾸었다. 펠릭스의 다음 상대는 피셔였다.


"흐얍!"

'챙!'

"으라차!"

"우웃!"

피셔와 검을 마주친 펠릭스는 순간 당황했다.

피셔는 검술이 그다지 뛰어난 편이 아니었다. 피셔의 검술 스타일은 제식검술에 자기만의 변칙기술을 더한 아류였다. 검술의 수준 만이라면 좀 전의 레논이 훨씬 뛰어났다.

지금도 검이 바인딩 되는 순간 온몸을 비틀어 힘과 체중을 같이 실어 다시 밀어붙여왔다. 이른바 이단 밀어붙이기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하체를 굳건히 해서 버티는 동부검술을 익힌 펠릭스에게는 크게 효과를 보지 못했다. 갑작스런 행동으로 펠릭스를 잠깐 놀래 켰을 뿐이었다.


그러나 확실히 엑스퍼트 중급은 중급이었다. 오러의 양만큼은 펠릭스를 확실히 압도했다. 아마도 연습용 검이 아니었다면 초반부터 펠릭스가 크게 낭패를 볼 수도 있었다.



조금은 특이한 방식의 연속대련이 이어졌다. 기사들은 돌아가며 짧은 시간 대련을 펼쳤다. 레인저들의 실전 상황을 고려한 훈련이었다.


레인저들 간의 실전은 거의 난전이 될 확률이 높았다. 기사들 간의 일대일의 대결의 경우는 보기 힘들었다.

따라서 상대하는 적도 검술 스타일도 금방 금방 바뀌었다. 거기다 간간히 일반 병사들도 전투에 끼어들었다.

일반 병사들은 근거리에서는 기사들을 상대로 방패와 창으로 상대하고 숨어있는 궁수들이 화살을 날려 왔다.


몇 번인가 순번을 바꾸어가며 대련을 마치자 진형을 갖춘 상태에서의 훈련이 이어졌다. 난전을 대비한 훈련이었다.

쉬지 않고 이어진 훈련에 점심을 먹을 즈음에는 다들 어깨를 들썩일 정도로 지쳐있었다.




미들사이드 요새에서의 생활은 기본적으로 단체 활동이었다. 식사시간에는 다들 같은 테이블에 모였다. 점심을 먹을 때도 그랬다. 길버트 소대의 기사들은 점심을 먹으며 오전 훈련에 대한 토론을 하고 있었다.


"중앙에 리차드슨 경이 맴피스 마법사와 전체지휘를 하고 그 앞에 피셔 경, 그리고 내가 방어를 맡고 있어."

"그러면 안드레아 경과 드비어스 경이 공격적인 포지션이 되는군요."

"그렇지."

레논의 설명을 들으며 칼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레인저 소대의 포메이션에 대한 것이었다.


기본 내용은 칼과 펠릭스도 학교에서 받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일선의 부대는 여러 현실에 맞춰 적당히 변화를 주고 있었다.

칼의 경우는 후기교육 병과가 고램 라이더였던 탓에 레인저 훈련에 대해 모르는 점이 많았다. 때문에 레논이 현재 길버트 소대의 실정에 맞춰 오전의 훈련 내용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반면 펠릭스는 후기교육을 레인저 교육을 받은 덕분에 이런 훈련이 익숙했다. 오히려 고램의 포메이션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지금은 펠릭스가 편하게 듣고 있지만 아마 오후 고램 훈련이 끝나면 고램 소대의 포메이션이나 훈련에 대해서 칼에게 따로 설명을 들어야 할 것이다.



"역시 예전대로 레인저 기사들로 먼저 밀어붙이는 전술이 낫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고램 전력은 크로비스 쪽이 우수하지 않습니까? 기체 성능이나 수급능력도 그렇고."

"음, 하지만 기사들의 수준도 우리가 무조건 높다고는 말하기 어렵지 않아?"

"일단 기사들 수는 우리 쪽이 많잖습니까?"

"그야 에덜라드가 영토크기나 인구수가 크로비스 보다 배에 가까우니 그렇지."

테이블 다른 쪽 끝에서는 안드레아와 리차드슨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거기에 드비어스가 끼어들었다.

"난 반대야. 올해 우리 소대의 신입 라이더들 실력은 나쁘지 않아. 슬슬 바꿔도 좋다고 생각한다."

"드비어스, 누구도 우리 소대 신입들의 실력이 나쁘다고는 안했어."

"흥! 방금 한 말이 그런 뜻이지 않은가?"

"나 참! 그거야 어디까지나 일반론이지!"

"자, 자! 두 사람 진정하게나."

안드레아와 드비어스의 언성이 높아지고 있었다. 리차드슨이 사이에 끼어들어 말리고 있었다.


"또 시작이군!"

"저건 괜찮지 않은가요 피셔 경? 저 정도면 건전한 토론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럴 리가. 모르겠어? 드비어스 녀석, 이번에도 괜히 안드레아에게 시비를 거는 거라고."

칼의 질문에 피셔는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지켜보던 펠릭스도 맞은편에 앉은 맴피스와 레논에게 말했다.

"평소에 항상 같이 다니면서···. 저 두 사람은 사이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정말 모르겠군요."

펠릭스의 말에 레논과 맴피스는 쓴 웃음을 지었다.


안드레아와 드비어스 두 사람이 모시는 영주 가문이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은 소대에서 유명했다. 펠릭스도 이미 잘 아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두 사람은 단짝처럼 항상 붙어 다녔다.

"같이 다닌다고 다 사이가 좋은 게 아니지."

"자세한 사정은 여기서 우리가 말하기는 그러네."

"기회가 되면 두 사람에게 직접 물어보는 게 좋을 거야."

레논과 맴피스는 슬쩍 답을 피했다. 아마도 다른 이들은 두 사람의 자세한 사정을 아는 듯했다. 칼과 펠릭스는 불만스럽게 서로 쳐다봤다.




드비어스가 비록 괜한 시비조로 끼어들기는 했지만 토론 주제 자체는 건전했다.

소대의 전술을 고램 중심으로 할 것이냐. 아니면 레인저들을 중심으로 할 것이냐는 것이었다. 사관급인 기사들로서는 맴버가 새로 바뀔 때마다 한번쯤 심각하게 고민하는 문제였다.


이곳 동부의 중계진 3곳은 지형이 각각 달랐다.

펠릭스가 처음 겪었던 서부 중계진은 서쪽에 익스투스 산맥을 끼고 있었다. 보통 적과 마주치면 산 아래 평지와 산속에서 각각 고램과 레인저들간의 전투가 같이 벌어졌다.

산속에서 레인저들이 매복이나 습격으로 서로의 임시 지휘부를 공격하는 것은 평지의 고램 전투 결과만큼이나 중요한 전략이 되었다. 거기다 여차하면 레인저들은 고램을 피해 산 위로 도망갈 수도 있었다.

익시투스 산맥은 산의 고도가 급격히 변하는 지형이었다. 고램이 레인저들을 쫓아서 산으로 올라가기 어려웠다. 즉 독립적인 전투가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였다.

한마디로 서쪽 중계진은 고램이나 레인저의 전투가 반반씩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지형이었다.


반대편의 동부 중계진은 복잡한 동부산맥의 경계를 따라 숲이 정글처럼 빽빽이 펼쳐져 있었다. 겨울이면 가끔 대형 몬스터도 내려오는 곳이었다. 이곳은 아직 인간의 손길이 완전히 닿지 않은 곳이었다.

때문에 고램이나 레인저들이나 단체 전투가 그리 용이하지 않은 지형이었다. 덩치가 큰 고램으로서는 시야가 불편하고 밀림 수준의 나무 때문에 움직임에도 장애가 많았다.

이곳에 근무하게 되면 레인저들은 우선 매복할 근거지를 확보하고 고램들의 눈 역할을 해야 했다.

근거지의 레인저들이나 마법사의 통신 지시를 무시하고 서부 중계진에서처럼 고램이 전투를 벌였다간 부대가 뿔뿔이 흩어져 낭패를 볼 수도 있었다.

그러니 이곳에서는 레인저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마지막으로 중부 중계진은 황량한 곳이었다.

원래는 동부전선의 서부와 동부 중계진 사이를 가르는 산과 언덕이 있던 고지대였다. 높은 지형이라 동쪽과 서쪽을 모두 감시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동부전선의 가장 중요한 요충지였다.


그 중요성 때문에 지금은 나무하나 없는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에덜라드와 크로비스 양측 병사들이 좋은 장소와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오랜 기간 서로 이곳의 나무들을 모두 뽑아버린 탓이었다.

대신 곳곳에 미로처럼 파여진 길이 이어져 있었다. 원래는 레인저들이 고램을 피하기 위해 만들었던 참호들이 비나 눈, 혹은 낡아서 붕괴되며 넓어지고 서로 이어져 복잡한 길을 만들어낸 때문이었다.

거기다 고램을 언덕이나 산 위로 이동시키기 위해 커다란 계단도 곳곳에 만들어졌다. 결국 지금에 와서는 마치 미로 같은 지형이 되어버렸다.

작은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양쪽 군의 고램 소대가 배치되어 있어도 산 위로 올라가기 전에는 서로의 존재를 알 수 없는 지형이 부지기수였다.


이곳은 고램으로부터 몸을 숨길만한 장소가 별로 없어 레인저들이 활약할 장소가 아니었다. 간단한 척후나 고램간 전투의 감시, 지원 등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이었다.

한마디로 이곳에서는 고램을 중심으로 전략을 짤 수밖에 없었다.




결국 어떤 지형의 중계진에 근무하느냐에 따라 또 소대의 전력에 따라서 전술이 달라져야 했다. 거기다 양국의 고램 전력의 차이도 고려해야했다.

휴페리온 대륙에서 두 번째로 고램을 만든 크로비스는 고램 운용과 전술에 선두국가였던 것이다.


크로비스의 블랙나이트는 명품이었다. 에덜라드에서 운용하는 화이트 고램에 비해 힘과 장갑이 우수했다. 북쪽의 크로비스에는 자체 제작을 할 기술도 있었으며 자원도 풍부했다.

특히 기사단이 돌격할 때 발생하는 오러필드를 고램으로 구현한 최초국가였다. 대규모 전투에서 크로비스군 기사단소속 고램의 오러필드를 이용한 전술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에덜라드 군이나 이스테로드 제국군 기사단도 고램을 이용한 오러필드를 구사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한 번도 크로비스군 고램의 오러필드와 맞서서 이긴 적이 없었다.

에덜라드가 크로비스군과 고램 간 대규모 전면전을 피하는 가장 큰 이유였다. 최초로 고램을 만든 동부의 이스테로드 제국도 마찬가지였다.


크로비스도 에덜라드처럼 이스테로드 제국과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심지어 그 악연은 에덜라드보다 더 오래되었다.

자체 제작 가능한 고램과 풍부한 자원, 강력한 고램 기사단. 다른 두 나라와 비교해 약소국인 크로비스가 두 나라를 상대로 동시에 전쟁을 치르면서 전혀 밀리지 않고 있는 이유가 이것이었다.


표면적으로 안드레아와 드비어스의 토론의 주제는 이런 배경에서 시작된 건전한 토론이었다.

길버트 소대는 지금까지는 레인저들 위주의 전술을 운용해 왔다고 했다. 고램 소대의 대장인 길버트 경의 실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안드레아와 드비어스 같은 실력이 뛰어난 기사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직은 레인저 위주로 가야해!"

"천만에! 오후 훈련을 보면 알게 되겠지!"

안드레아와 드비어스의 갈등은 결국 리차드슨의 제지와 중재로 봉합되었다. 그러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오후에는 고램 훈련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천천히! 천천히!"

연습용 마이티가 일어서고 있었다. 탑승자는 소대 예비 라이더 중 한사람인 레논이었다. 맞은편에는 펠릭스가 이미 다른 연습용 고램을 타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 아래에는 역시 예비 라이더인 드비어스가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준비! 시작!"

길버트의 신호에 맞춰 두 고램이 부딪혔다.

첫 대련은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다. 레논은 검술과는 달리 고램 조종 실력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펠릭스는 어렵지 않게 레논을 이길 수 있었다.


반면 다음 주자인 드비어스는 나쁘지 않은 실력을 보였다. 레논과 마찬가지로 뛰어난 검술 실력에 비교하면 의외이긴 했지만 충분히 칼이나 펠릭스를 대신할만한 실력이었다.

길버트는 만약을 대비해 안드레아와 피셔에게도 고램 조종 훈련을 시켰다. 하지만 결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피셔는 그나마 가망성이 보였으나 안드레아는 상당히 불안했다.


"저런, 저거 그거군."

"아, 그래. 참 고약한 케이스야."

소대 기사들의 대련과 시운전이 한 번씩 끝이 나자 칼과 펠릭스는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안드레아의 불안한 조종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두 사람은 바로 알아봤던 것이다. 바로 정교한 검술을 익힌 사람들이 고램 조종을 할 때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그 문제였다.


아쉬운 것은 안드레아는 너무 서부검술에 익숙해져 어떻게 손쓸 방법이 없다는 점이었다. 제식검술도 익히기는 했지만 안드레아 로서는 거의 건성으로 익힌 때문이었다.

레논도 비슷한 케이스였다. 그나마 레논은 서부검술에 완전히 익숙해지기 전에 서부기사학교에서 제식검술도 나름 제대로 익혔기에 고램 조종에 어느 정도 익숙했던 것이다.

"난 별로 고램 조종에 미련은 없어. 검술도 이미 서부검술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고 말이야."

제식검술의 자세로 고램 조종의 개선이 가능하다는 칼과 펠릭스의 설명에 레논은 편하게 대답했다.

"설마 안드레아 경이 레인저들 위주로 소대 전술을 운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 아닐까?"

"자신이 고램 조종에 미숙하기 때문에?"

칼과 펠릭스는 서로 쳐다봤다.


매번 안드레아 경의 말이나 행동에 못마땅해 하면서 태클을 거는 것은 드비어스 경이었다. 반면 안드레아는 늘 웃는 얼굴에 여유 있는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어쩌면 사실 두 사람 다 서로에게 지기 싫어 고집을 피우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에이~ 아니겠지?"

"그렇게."

칼과 펠릭스는 애써 부정하며 고개를 저었다.



의외였던 것은 피셔였다.

남부기사학교를 나와 기본바탕이 제식검술이었다. 고램 조종도 곧잘 했다. 하지만 항상 마지막 동작에서 한 박자씩 엇나갔다.

칼과 펠릭스는 이번에도 바로 원인을 알 수 있었다. 피셔는 제식검술에 자기만의 방법을 더한 때문이었다. 칼과 펠릭스가 고쳐주겠다고 했으나 피셔도 거절했다.

"나도 됐어! 내 주제에 고램 조종은 무슨···."

"하지만 자세를 조금만 손보면 될 텐데요."

"이미 학교 졸업하기 전에 포기했었어! 니들이나 열심히 해!"

피셔는 손사래를 치며 거절하고는 자리를 떴다.

"귀족가의 기사가 되고 싶다고 했으면서. 빈말이었나?"

"그러게. 요즘 고램 조종도 못하는 외부 기사를 영입하는 귀족은 거의 없는데."

칼과 펠릭스는 걱정스럽게 피셔를 쳐다봤지만 본인이 싫다는데 두 사람도 별 방법이 없었다.

소대원들이 고램 훈련을 마치고나자 날은 어느새 어두워지고 있었다.




산으로 갔던 병사들은 저녁식사시간 전에 돌아왔다. 이번에도 다들 모여서 소대별로 식사를 했다. 때문에 저녁시간은 점심때보다 시끌벅적했다.

안드레아와 드비어스는 여전히 소대의 기본 전략에 대해 논쟁 중이었다. 이제는 크로비스와 이스테로드 제국간의 전쟁사까지 들먹이고 있었다.

피셔는 레논, 맴피스와 야밤에 벌릴 도박판에 대해 모의하고 있었다. 몇몇 고참 병사들도 그 이야기에 끼어있었다.

길버트 경과 리차드슨 경은 간간히 웃음을 터트리며 무언가 자신들만의 이야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오전의 훈련은 힘들었지만 마치고 난 후는 더없이 평화로웠다.

"이런 기분은 입대한 후로는 처음이야. 마치 고향집 장원에서 할아버지가 잔치를 벌일 때 느낌이야."

펠릭스는 소대의 테이블을 쭉 훑어보며 칼에게 말했다.

"그래도 전쟁 중인데 이래도 되려나 몰라."

"뭐 어때? 내일 또 힘들게 훈련하기 위해서 잠시 쉬는 거 정도는 괜찮겠지."

두 사람은 모두 평온한 표정이었다. 점점 포근해져가는 날씨에 더해 야전 식당의 풍경은 마치 시골의 잔칫집을 닮아가고 있었다.




저녁 자유 시간이었다. 펠릭스는 하릴없이 병사들의 도박판을 보고 있었다. 그런 펠릭스에게 칼이 다가와 밖으로 나가자며 손짓했다.

"왜? 무슨 일인데?"

"자!"

밖으로 나오자 칼은 펠릭스에게 연습용 검을 던졌다.

"지금?"

"그래, 개인 훈련은 오랜만이거든. 좀 도와줘."

두 사람은 연습용 검을 휘둘러 몸을 풀면서 막사 옆의 넓은 장소로 향했다.

"야밤에 개인 훈련이라니, 칼 네 실력에도 아직 그런 게 필요해?"

"이런, 펠릭스, 설마 너도 나를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그렇게 라니?"

"천재, 타고난 재능, 뭐 그런 거?"

"음, 하지만 누가 봐도 그렇잖아? "

그러자 칼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더니 펠릭스를 보며 자세를 취했다. 펠릭스도 마주보며 검을 내밀었다.

"어릴 적에 난 따로 가문의 기사들에게 검술훈련을 받을 시간이 별로 없었어. 알잖아? 남부는 사시사철 몬스터 때문에 다들 바쁘다는 걸."

"헛! 그래서?"

칼이 내지르는 검을 받으며 펠릭스가 되물었다.

"기회가 별로 없었으니 어쩔 수 없잖아? 부족한 것은 브랜든 형님의 수련을 훔쳐보며 익혔고 실전은 마을 수확제의 무술대회에서 경험했지.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더라고. 한번 익힌 것은 혼자서 어떻게든 소화해 내야했거든."

"혼자서? 어떻게?"

두 사람은 간단하게 서부검술의 손목 회전을 이용한 기술을 주고받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매일 늦게까지 검을 휘둘렀어. 그날하루 오러를 소모하기 전까지는 연습을 멈추지 않았지. 스스로 이런 말을 하긴 좀 부끄럽지만 매일 지쳐 잠들지 않은 날이 없었을 정도야."

"···설마 학교에서도 그랬던 거야?"

"물론 학교에서는 매일 그렇게 하는 것은 무리였지. 제시 교관의 그 훈련은 나라도 힘에 버거웠다고."

칼은 대답을 하면서 슬쩍 얼굴을 붉혔다. 칼의 말에 펠릭스는 잠시 검을 멈추고 한발 물러섰다.

조금은 충격이었다.


기사 지망이라면 누구나 자발적인 훈련은 한다. 귀족가의 자제이던 천민출신의 종자이던 마찬가지였다.

펠릭스도 여섯 살부터 훈련을 해왔다. 비록 원해서 하게 된 것은 아니었지만 매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몸에 배여 있었다. 당연히 자발적인 훈련도 했다.

문제는 스스로 하는 훈련의 강도와 그 시간이었다. 원래 혼자 하는 훈련만큼 힘든 게 없는 법이었다.



펠릭스가 아는 비슷한 또래 중에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가진 사람은 필립 형이었다. 그 다음으로 뛰어난 실력을 가진 사람이 칼이었다.

학기 초에는 펠릭스는 감히 칼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펠릭스의 실력이 빠르게 성장한 것은 사실이었다. 아마도 동기들 중에 가장 빠른 성장을 이룬 사람이 자신일 것이었다.

그럼에도 졸업을 하고 이곳 미들사이드 요새로 오기 전에 한 대련에서 그나마 칼과 어느 정도 검을 마주할 수준에 도달한 것이었다.


남들이 보기에 칼은 오러도 검술의 센스도 타고나 보였다. 펠릭스도 그렇게 오해하던 사람들 중에 하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칼은 언제나 여유가 있었다.

자신이 그렇게 버거워했던 레온을 상대할 때도 그랬다. 아이들의 리더격으로 조용히 행동했지만 늘 자신만만해 보였다.

그런 칼이 사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렇게 노력을 하고 있었다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친구이면서 대체 내가 칼에 대해서 아는 게 뭐지?'

펠릭스는 문득 허탈감 자괴감이 들었다.


"뭐야? 너무 그런 눈으로 보지 마. 창피하다고."

"칼, 나는···."

펠릭스는 차마 칼을 마주보기가 어려웠다. 자신도 노력한다고 했지만 과연 얼마나 노력했을 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미 학교에서도 제6훈련소에서도 느끼고 있었다. 비록 자신이 원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다른 친구들에 비해 자신은 과하게 해택을 받아왔었다.

수련을 하다 막히면 설명해줄 가문의 기사들이 있었다. 남부와 달리 동부는 겨울을 제외하면 여유가 있었다. 그때면 항상 뛰어난 가문의 기사와 대련을 했다. 고램 조종도 배웠다.

그럼에도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의문과 후회가 남았다.

'나는 과연 매일 지쳐 잠들지 않을 만큼 노력했던가?'

스스로 생각해도 창피했다. 심지어 늘 들어왔던 말이 자신의 타고난 재능이 부족하다는 말이 아니었던가?

"자! 더 어두워지기 전에 빨리 시작하자고! 여기 와서는 개인 훈련을 너무 많이 쉬었거든."

칼의 말에 펠릭스는 표정을 고쳐 옅게 웃어보였다.

"그래. 하지만 봐주기 없기야!"

"하하! 녀석, 봐서!"

두 사람은 검을 나란히 마주했다. 곧이어 두 사람이 발하는 오러의 빛이 어두운 마당을 수놓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이번화는 반쯤 쓰다가 한 세번쯤 갈아 엎었습니다.

때문에 이렇게 늦어졌습니다.


요 며칠 글 쓸 시간이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글이 이번만큼 막히기는 처음이었네요.


나름 진도를 빨리 빼려고 노력 중인데 

오히려 연재 주기가 늘어지는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많이 늦어져서 정말 죄송합니다.

그럼에도 선작 수 거의 줄지 않아서

죄송스럽고 감사합니다.


어버이날 다들 부모님에게 감사의 마음 잘 전하시길...


늘 부족한 글 봐 주시는 독자분들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2

  • 작성자
    Lv.52 까망구루
    작성일
    16.05.07 14:43
    No. 1

    작가님 여유를 가지세요 1화부터 잘 챙겨 보고 있습니다 화이팅~!!서두를 수록 잘 안풀리더군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夢ster
    작성일
    16.05.07 16:20
    No. 2

    진도를 좀 빨리 빼 볼까 싶었는데
    쉽지 않네요. -_-;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Zakky
    작성일
    16.05.07 15:01
    No. 3

    열심히 노력하는 친구를 옆에 뒀으니 펠릭스도 노력하겠군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夢ster
    작성일
    16.05.07 16:21
    No. 4

    아마도 그래야 겠죠? ^^;

    댓글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2 밀천사
    작성일
    16.05.07 16:18
    No. 5

    즐겁게 즐겁게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夢ster
    작성일
    16.05.07 16:21
    No. 6

    가능하면 즐겁게 쓰려고 노력은 하는데.
    왠지 자꾸만 진도에 쫓기는 기분이네요.

    댓글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니푸르
    작성일
    16.05.07 17:18
    No. 7

    66% 조금만 자세를 조금만-> 조금만 자세를 or 자세를 조금만
    칼은 노력하는 천재였군요ㅎㅎ
    조금 늦어져도 괜찮으니 여유있게 글쓰셔도 좋을것 같습니다ㅎㅎ
    즐겁게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夢ster
    작성일
    16.05.07 19:49
    No. 8

    수정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몇번을 읽어도 계속 이런 실수가 남는군요. -_-;

    라루사님 늘 댓글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7 정예백부장
    작성일
    16.05.07 17:22
    No. 9

    제가 작가님 글을 보면서 느끼는건 너무도 자세한 설명입니다. 작가분이 독자에게 할말이 많으셨던 것이겠죠. 어떻게 보면 장황하다고 할까? 친절하다고 말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부분들이 글을 늘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번편을 보고 요약하자면... 훈련했다. 독자입장에서 한 문장일뿐이네요..
    두문장으로 늘리면 칼은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정도?

    이제 내용의 삭제하는 단계로 발전 하셨으면 바램으로 적었을 뿐입니다.

    좋은 글 항상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夢ster
    작성일
    16.05.07 19:51
    No. 10

    줄인게 이거라서...
    가능하면 줄이려고 했는데 이렇군요.

    그러니 아마도 장황하다고 생각하시는 부분을 쓴 이유가 있어서겠죠?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8 비몽랑
    작성일
    16.05.07 22:46
    No. 11

    전기. 긴 호흡으로 한 인간의 대서사시 느낌의 글을 쓰려 하셨다고 느끼고 그런 마음으로 읽고 있습니다. 물론 어느정도 진도를 빼주는 것도 좋겠지만 초조해 하지 마시고 표현하고자 하시는 것들은 후회없이 쓰시는 것도 중요하다 생각됩니다.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읽고 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夢ster
    작성일
    16.05.08 10:03
    No. 12

    읽어주셔서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0 테사
    작성일
    16.05.08 01:02
    No. 13

    펠릭스는 영웅형은 아니죠. ㅎ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夢ster
    작성일
    16.05.08 10:04
    No. 14

    과연 영웅의 ㅇ 이라도 가능할지. ^^;
    테사님 늘 댓글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5 [탈퇴계정]
    작성일
    16.05.08 01:31
    No. 15

    난 더 장황해도 되는데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夢ster
    작성일
    16.05.08 10:05
    No. 16

    좀 더 노력? 하겠습니다. ^^;;
    하유님 댓글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왕콩알
    작성일
    16.05.08 02:46
    No. 17

    음 칼의 천재포지션이 주인공과 대비되서 더 좋았는데 아쉽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夢ster
    작성일
    16.05.08 10:06
    No. 18

    아직은 아쉬울 단계는 아닐겁니다.
    아마 다음편에는...
    ...

    왕콩알님 댓글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도수부
    작성일
    16.05.08 08:10
    No. 19

    이렇게 하나씩 느끼면서
    발전하면 되죠.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夢ster
    작성일
    16.05.08 10:06
    No. 20

    과연 발전 해 나갈 수 있을 지...
    도수부님 늘 댓글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2 JackieYo..
    작성일
    16.05.09 10:09
    No. 21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夢ster
    작성일
    16.05.10 18:43
    No. 22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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