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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ster 님의 서재입니다.

펠릭스전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夢ster
작품등록일 :
2014.12.22 00:00
최근연재일 :
2016.12.28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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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5.14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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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

DUMMY

270


다음날 아침 단체 검술훈련을 마친 후였다. 펠릭스는 드비어스와 함께 길버트 경을 만나고 있었다.


전날 칼에게서 자극을 받은 펠릭스는 자신도 나름 개인 훈련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펠릭스는 우선 침상 끝에 줄을 매달았다. 펠릭스도 칼이 한 것처럼 저녁에 잠들기 전에 손목 돌리기 훈련을 할 생각이었다.


거기에 더해 아침에는 드비어스 경과 중검 수련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뜻밖에도 드비어스는 펠릭스의 부탁을 별 말없이 흔쾌히 수락했다.

그 수련법은 드비어스 가의 비전 수련법이었다. 아마도 중계진에서 개별 훈련을 하면서 드비어스가 펠릭스를 제법 잘 본 모양이었다.


문제는 펠릭스의 타고난 오러가 부족한 점이었다. 남들과 같이 훈련을 마치고 거기에 더해서 따로 훈련을 하기에는 무리였다.

그래서 아침 단체 제식검술 훈련시간에 따로 훈련을 하면 안 되겠는지 길버트 경에게 요청하려했다. 어차피 드비어스 경의 중검도 형은 똑같은 제식검술이었다.


"힘들 텐데 괜찮겠나?"

길버트 경은 드비어스와 펠릭스를 각각 바라보며 물었다.

"다른 훈련에 지장이 있을 것 같으면 알아서 조절하겠습니다."

펠릭스의 대답에 드비어스도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래. 알겠네. 의욕이 앞서는 건 좋지만 너무 무리하지는 말게나."

"예. 감사합니다."

세 사람이 대화를 마칠 즈음 리차드슨 경이 안드레아 경과 함께 다가왔다. 두 사람은 상당히 조심스러운 표정이었다.

"대장님."

"음?"

두 사람은 길버트 경을 양쪽으로 감싸 벽을 만들고는 자신들의 등 뒤를 슬쩍 가리켰다.

"저기를 한번 보십시오."

"베인브릿지 사령관 아닌가?"

"예. 오늘이 아마 그날인 모양입니다."

"그렇군. 저 모습을 보니 그 소문이 사실인 모양이야."

사람들의 말에 펠릭스도 힐끗 뒤를 돌아봤다.

베인브릿지 사령관과 길버트 경은 사이가 나빴다. 리차드슨 경과 안드레아 경의 행동은 괜한 시비를 만들지 않기 위한 배려였다.


미들사이드 요새 마당에 꽤 큰 마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마차의 뒤와 지붕에는 꽤 많은 짐들도 올려져있었다. 거기다 열 명이 넘는 호위 기사들 까지 말을 타고 대기하고 있었다. 장거리 여행을 준비 중인 것이 분명했다.

베인브릿지 사령관은 마차 문 앞에 서 있었다. 떠나기 전에 부관들에게 무언가 부지런히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아침 식탁의 분위기가 무거웠다. 조금 전 미들사이드 요새를 떠난 베인브릿지 사령관 때문이었다.

"역시 공세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은 사실인 모양입니다."

"스코필드 총사령관답지 않은데요?"

"동감이야.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봐선 틀림없는 거 같군. 문제는 어디냐는 건데···."

"설마 우리 동부전선 쪽은 아니겠지요?"

"이곳은 양 군의 고램 전력을 모두 집중하기에는 지형이 너무 좁습니다. 가능성으로 본다면 중부전선이 제일 유력하겠죠."

"그래도 몰라. 어쩌면 모든 전선에서 일제 공격이 있을 수도 있지."

"그러기에는 고램 물량이 부족하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올해 서부 제국에서 고램을 그렇게 많이 가져왔다고 하지 않던가? 지금까지도 의회가 끝나지 않았다니 수도가 얼마나 시끄러울지 상상도 되지 않는군."

"거기다 남부에서 셀베이지로 찾은 고램도 있다고 하니···."

"걱정이군요. 그동안 이곳은 상당히 조용했었는데."

"아직은 모르니 미리부터 지레짐작하지 말자고."


식탁의 상석에는 길버트 경과 리차드슨 경. 그리고 다른 소대의 선임 기사들 몇몇까지 모여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칼과 펠릭스를 비롯한 다른 소대 기사들은 입을 다물고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제법 복무기간이 오래된 안드레아나 드비어스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풀만 무성한 식탁을 보면서도 피셔가 찍 소리도 못할 정도의 무거운 분위기였다.




아침 식사를 마친 후 다시 개인 대련이 시작되었다. 펠릭스는 칼과 대련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건성으로 대련을 하면서 몰래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면 이제 의회의 고램 분배는 끝났다는 거야?"

"글쎄? 그건 아직 모르지. 다만 베인브릿지 사령관이 떠난 이유가 대 공세를 대비한 각 지역 사령관의 통합회의 때문이라는 건 사실인 모양이야. 이번 회의의제가 어느 지역을 주전장으로 삼을 건가를 결정한데."

"그러니까 다들 여기 동부전선이 대공세의 전장이 될까봐 이렇게 걱정인거야?"

"당연하잖아? 펠릭스, 너도 느꼈잖아. 여기는 최전선이라고 하기엔 너무 느슨하다고. 다들 이대로 적당히 시간을 때우다 제대하고 싶겠지."

"흠···."

비록 전선에 도착하자마자 실전을 거치긴 했지만 펠릭스는 아직 분위기를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상상하던 전장과는 분명 달랐다.

펠릭스도 겨울에 몇 차례 몬스터와의 싸움을 겪었다. 하지만 인간끼리의 싸움은 몬스터의 싸움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에덜라드와 크로비스가 근 100여 년간 싸우고 있는 이곳 북부 전선은 남북으로 동부 산맥과 서부산맥이 길게 마주한 지형이었다.


북부 전선은 크게 셋으로 나뉘었다.

익시투스 산과 동부산맥 사이의 이곳 동부 전선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었다. 그러나 분위기는 상당히 느슨했다. 크로비스 군의 한 번의 대규모 우회작전 이후로는 양군은 그저 감시만 하고 있는 모양새였다.


반면 익시투스 산맥 너머 서쪽의 중부전선은 분위기가 달랐다. 다들 진짜 전장은 중부전선이라고 했다. 북부 전선에서 가장 넓은 지형을 가지고 있고 양군 모두 본격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곳이었다.

처음 에덜라드와 크로비스가 전쟁을 시작했을 때부터 주전장이던 곳이었다.


마지막으로 서부 전선은 서쪽에 절벽처럼 깎아지른 서부산맥과 맞닿아 있었다. 이곳은 서부산맥의 절벽과 좁은 길을 통과하는 산악 통로와 숲을 중심으로 한 레인저들의 유격전이 주가 되는 전장으로 고램이 들어설 장소가 아니었다.

그러니 지금 논의가 되는 것처럼 많은 수의 고램을 이용한 전투가 생긴다면 서부전선은 일단 제외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나저나 이런 분위기면 도저히 저녁의 우리 훈련을 도와달라는 말을 못 꺼내겠는 걸?"

"우리 훈련? 칼, 너 설마 진짜로 그 검술을 만들 생각인거야?"

"당연하지. 그럼 농담으로 그랬을까봐?"

"말도 안 돼! 중계진에서 우리 개별적으로 안드레아 경과 드비어스 경에게 훈련을 받은 것만 해도 엄청 행운이었다고!"

"그러니까 하려는 거야. 한번 했는데 두 번 안 될 것도 없잖아? 거기다 어차피 우리 소대에서 두 사람의 검술이 제일 뛰어나잖아."

"너도 정말!"

그 순간 불호령이 떨어졌다.

"누가 훈련 중에 잡담을 하는 건가! 진지하게 하지 못하겠나!"

"이크!"

두 사람은 서둘러 입을 닫고 손발을 바쁘게 움직였다.


점심시간을 지나면서도 미들사이드 요새는 그 얘기로 하루 종일 무거웠다. 그나마 분위기가 좀 풀린 것은 저녁시간이었다.


본격적으로 여름에 들어서면서 날씨는 점점 따듯해졌다. 식당 야외에 설치된 테이블에는 오늘도 소대별로 병사들이 모였다. 오전과는 달리 그래도 사람들은 가끔 담소를 나누며 웃어보였다.


맴피스 마법사를 선두로 칼과 펠릭스, 레논과 드비어스가 길버트 경과 가까이에 앉아있었다. 다음 주 고램 훈련계획을 세우기 위해서였다.

"이번에는 아마 토너먼트 같은 구성은 무리일거야."

"그럼 역시 소대별로 따로 훈련을 잡아야 할까요?"

"그래, 일단 상대는 내가 알아 볼 테니 자네들은 고램 포메이션을 다시 한 번 점검해보게."

"예!"

"그래 다른 질문은?"

마지막으로 길버트 경이 사람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그러자 잠시 망설이던 칼이 슬며시 손을 들었다.

"칼?! 너 설마!"

칼의 행동에 펠릭스가 오히려 뜨끔해서 칼의 옷을 잡아당겼다. 무슨 얘기를 할 지 뻔했던 것이다.

"칼 경? 그래 무슨 일인가?"

"저~ 고램에 관련된 얘기는 아닙니다만. 저와 펠릭스가 새로 검술을 만들어 보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모두 조금씩만 도와주십사 해서요."

"뭐?"

"검술을 만들어?"

칼은 결국 아침부터 벼르던 얘기를 하고 말았다.


소대원이 순식간에 모두 술렁이기 시작했다. 펠릭스는 창피해서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슬그머니 고개를 숙였다.

"흥!!"

"하! 말도 안 돼!"

아니나 다를까 비난의 목소리가 나왔다. 드비어스는 웃기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콧방귀를 뀌고는 칼을 노려봤다. 피셔는 비웃는 듯 한 얼굴로 식탁에 턱을 괴고 비스듬히 누웠다.

"뭘! 재미있겠는데? 난 찬성이야! 도와주지."

"글쎄? 못 도와 줄 것도 없지만···."

반면 안드레아는 장난스런 표정으로 웃으며 대답했다. 레논은 적극적이지는 않았지만 반대하지도 않는 태도였다. 단지 걱정스런 눈빛으로 다른 반대하는 두 사람을 바라봤다.


아이러니 하게도 서부 검술을 익힌 두 사람은 찬성이었다. 반면 제식검술을 익힌 두 사람은 반대를 표명했다.


기사들은 모두 제각각의 답변을 하고는 상석의 리차드슨 경과 길버트 경을 바라봤다.

"아! 걱정은 마십시오. 저희 둘 다 일과가 끝난 후에 개별적으로 하겠습니다. 절대 훈련이나 일정에 방해가 되지 않을 겁니다."

"음~"

칼의 말에 길버트 경과 리차드슨 경은 곤란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중계진에서 드비어스 경이나 안드레아 경이 하셨던 것 정도만 해주시면 분명 저나 펠릭스에게 크게 도움이 될 겁니다. 잘만하면 둘 다 빠르게 엑스퍼트 중급에 도달할 실마리를 빨리 찾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펠릭스의 어둠의 오러에 대한 걱정도···."

"웃기는 소리!"

칼의 말은 피셔에 의해 끊겼다.

"뭐? 조금만 도와달라고? 칼, 네 녀석 실력이 좀 뛰어나다고 우습게 보이나 본데. 자기 밑천을 그렇게 쉽게 드러내 줄 녀석이 어디 있어? 드비어스나 안드레아 녀석이 한번 호의를 보였다고 그게 그렇게 우스워 보여?! 뭐 검술을 만들어? 허 참!"

흥분한 피셔에 덩달아 평소 말이 없는 드비어스도 끼어들었다.

"나도 피셔와 동감이다. 자유 시간에 너희들이 뭘 하던 상관없지만 이건 좀 아닌 거 같군."

드비어스는 특히 펠릭스를 보며 말했다.

"내가 보는 눈이 없었던가? 실망이군."

드비어스에게 이미 분에 넘치는 호의를 받았다고 생각한 펠릭스는 쥐구멍이라도 파고들어가고 싶었다.


반면 안드레아는 느긋했다.

"뭐 어때? 드비어스, 자네도 어차피 핵심적인 건 벌써 펠릭스 경에게 가르쳐 줬잖아? 이제 와서 조금 더 알려 준다고 뭐 달라질까? 그리고 그게 잠깐 알려준다고 금방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안 그래? 그리고 피셔, 네 검술에 비전이라고 해봐야 별것도 없잖아? 어차피 칼이나 펠릭스가 쓰는 제식검술에 크게 다른 것도 없으면서 뭘 그렇게 발끈하는 거야?"

안드레아는 웃으며 반대하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말을 들은 피셔는 발끈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흥! 아~ 그래! 출신도 비천한 나 따위가 만든 허접한 검술이 어디 감히 고든 자작가의 저 유명하신 안드레아 경의 검술에 비교나 되겠어? 쳇!"

"피셔 경! 안드레아 경! 자! 자! 진정하세요."

갑작스런 흐름에 당황한 레논이 말리려 두 사람 사이에 나섰다. 그러나 피셔는 톡 쏘아붙이고는 뒤도 보지 않고 막사로 향했다.

피셔에 이어 드비어스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경우에 따라선 우리 아침 훈련도 다시 생각해 봐야겠군."

드비어스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펠릭스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는 안드레아를 잠시 노려보더니 역시 막사로 향했다.

"아~ 아! 결국 저질렀다!"

레논이 엉망이 된 식탁의 분위기를 보며 말했다.

기사들의 갑작스런 내분에 그나마 조금 나아지려던 분위기가 다시 어두워졌다. 일반 병사들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사태를 조용히 보고만 있던 길버트 경이 칼을 보며 물었다.

"그렇게 금방 도움이 될 거 같긴 한가?"

"예! 어제 저녁에 둘이서 연습 삼아 대련을 한번 해봤습니다. 검문소에서 했던 대련에 비하면 정말 크게 발전했었습니다. 저야 오기 전에 이미 중급의 실마리를 잡고 있었지만 펠릭스도 무언가 분명 얻은 게 있었습니다."

"흐음~"

칼은 이 상황에도 당당했다. 길버트 경은 망설이듯 생각에 잠겼다. 보다 못한 리차드슨 경이 나섰다.

"칼 경! 검술의 비법이나 비전은 함부로 묻거나 수련을 훔쳐보는 게 아니야. 이게 얼마나 실례가 되는 행동인줄 알고 있나?"

"거기다 자기들 검술 만든다는데 왜 다른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그래? 본래 그런 건 자신의 깨달음과 경험을 바탕으로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거 아냐? 흐흐흐."

리차드슨 경의 말에 이어 안드레아도 칼을 보며 웃으며 말했다.

"압니다. 해서는 안 될 말이라는 것도, 저번 중계진에서 안드레아 경과 드비어스 경이 보여주신 호의도 결코 쉽지 않은 결정 이었다는 것도. 하지만 이건 단순히 제 욕심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럼?"

"사실 검술이야 어찌되더라도 좋습니다. 결과로 펠릭스만 엑스퍼트 중급에 빨리 도달해도 소대의 불안 요소가 줄어듭니다. 그리고 오전 훈련에 서로 교류를 하면서 느낀 건데 서로 이렇게 비전을 숨기고 있는 상태에선 진정한 훈련이 되기 어렵다고 봤습니다. 하물며 저나 레논 경은 조금만 더 무언가 실마리를 잡는다면 바로 중급으로 올라 설 수도 있습니다. 자존심도 좋고 가문의 비전, 비기도 좋지만 좀 더 효율적으로 전력을 높일 방법이 있는데 왜 돌아가야 하겠습니까? 더구나 조만간 대공세가 있을지도 모르는 이 상황에서 말입니다!"

칼의 말에 길버트와 리차드슨은 서로 바라보며 빠르게 시선을 교환했다.

"오~ 정론이야! 좋아! 난 적극 도와주지!"

안드레아는 박수를 치며 칼의 말에 동조했다.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던 길버트 경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사실 중계진에서 드비어스 경과 안드레아 경에게 자네들 둘을 개별적으로 가르쳐 보라고 했던 건 좀 더 장기적인 안목에서였네. 그런데 설마 이렇게 빠르게 효과를 볼 줄은 몰랐군."

"그럼? 도와주시는 겁니까?"

"흐음, 나나 여기 리차드슨 에게는 별로 배울만한 게 없을 거야. 두 사람도 이제 어느 정도 알겠지만 우린 검술이나 오러의 운용에 별 특별한 게 없이 그저 오랜 시간에 거쳐 오러의 양을 늘려 중급에 오른 거라서···. 대신 드비어스나 피셔는 내가 한번 설득 해 보도록 하지."

뜻밖의 길버트 경의 말에 칼과 펠릭스는 반색을 하며 기뻐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날 저녁 칼과 펠릭스의 개인 훈련에는 안드레아와 레논도 참석해 있었다. 우선 나선 것은 레논이었다.


레논은 검을 잡고 찌르기 위주의 자신의 검술과 함께 오러의 운용에 대해 설명했다.

"내 가문 검술의 특기인 찌르기 공격이야. 우리 가문의 손목자세는 좀 복잡하니 그냥 이것만 봐. 사실 나도 잘 설명할 자신이 없거든."

레논은 찌르기 자세를 천천히 보여주면서 오러의 흐름에 대해 설명했다.

"자! 몸의 중심에서 찌르기를 하는 팔과, 반대 방향으로 뻗는 발로 오러를 동시에 보내는 거야. 그 다음에는 각 팔과 발의 반대 방향에 오러를 보내 몸을 틀어 움직이고 공격하며 뻗은 손은 손목을 돌리며 뺀 후에 다음 공격을 준비해! 이게 우리가문 찌르기의 기본이야."

레논의 설명이 끝나자 칼과 펠릭스는 흉내를 내 보았다. 옆에서 레논이 지켜보며 잘못된 자세나 좀 더 자세한 오러의 사용법을 알려줬다.

"오러를 손과 발에 동시에 보내는 거군요."

"그래서 발놀림이 그렇게 빨랐던 거군요."

"그래, 하지만 단점도 있지. 시연자의 오러 수준이 높지 못하면 그냥 좀 빠른 공격이 될 뿐이야. 힘이 실리지 않거든."

레논의 말에 칼과 펠릭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어제 레논과 칼의 공격을 펠릭스가 힘으로 막았던 경험이 있었던 것이다.


잠시 후 안드레아가 나섰다.

"일단은 구체적인 기술보다는 이론을 먼저 세우는 게 좋아. 본래 새로 검술을 만든다면 자신의 경험과 깨달음에 따라 사상과 이론의 체계를 먼저 세우고 기술을 만들어 가니까."

안드레아는 칼과 펠릭스에게 각각 자신의 기본 검술 자세를 취하게 했다.

"서부 검술은 기본적으로 제식검술 보다 중심이 위에 있어. 펠릭스 네가 쓰는 동부 검술은 중심이 다리나 골반 정도에 있다면 칼 네가 쓰는 남부 검술은 허리나 배꼽정도일거야. 하지만 서부검술은 대부분 가슴, 혹은 가슴과 배 사이에 중심을 두고 움직여. 때문에 방금 레논처럼 빠른 발놀림이나 몸놀림이 가능하지. 이게 기본적인 서부 검술의 중심 체계야. 여기에 각 가문의 고유 비법이 포함되지."

듣고 있던 펠릭스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서 비슷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아마도 후기 훈련소에서였던 것 같았다.


"잘 봐! 이건 우리 안드레아 가문의 비법중 하나야."

안드레아는 시범을 보이려는 듯 검을 들고 나섰다. 그리곤 가만히 서 있는 칼의 앞으로 가서는 칼의 몸 오른쪽으로 찌르기를 하는 동작을 취했다.

'촤악~!'

"아!"

펠릭스를 비롯해 보고 있던 사람들이 감탄성을 내뱉었다. 안드레아는 칼의 오른쪽 뒤로 빠르게 미끄러져 들어갔다. 중계진에서 펠릭스와 대련을 하며 보여줬던 그 움직임이었다.


"기본은 레논이 했던 것과 비슷해. 다만 검은 찌르는 게 아니라 이동방향 쪽으로 강하게 밀듯이 내질러. 앞선 발은 무릎을 굽혀서 방향과 균형을 잡고 뒷발은 밀면서 추진을 하지. 그리고 내지르는 검과 추진하는 뒷발에 오러를 집중해서 힘을 더하는 거야. 거기에 하나 더!"

안드레아는 이게 제일 중요하다는 듯 사람들이 잘 보이는 곳으로 다시 걸음을 옮겨 말했다.

"때로는 균형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게 새로운 중심을 만드는 바탕이 되지. 이렇게 말이야."

안드레아는 방금 동작을 이번에는 조금 천천히 모든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도록 다시 보여줬다.


오른쪽 무릎을 굽히고 왼발로 강하게 미는 동작을 취하며 검을 내지르는 동시에 상체를 같은 방향으로 확 숙였다. 그러자 오른쪽 무릎에 힘이 쏠리며 앞으로 빠르게 미끄러졌다.

마치 찌르기를 하는 방향으로 몸이 빨려들어 가는 듯했다.


"오러가 집중되는 곳은 보통 검사의 몸의 중심점이지. 그러니 제식검술은 기본적으로 하체에 오러가 집중되어 있어. 하지만 서부검술은 상체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온몸으로 오러를 좀 더 빨리 확산 시킬 수 있지. 때문에 이런 빠른 움직임이 가능해. 거기에 지금처럼 약간의 몸을 이용한 트릭을 쓰면 좀 더 효율을 높일 수 있지."


몸의 중심점이 되는 상체를 오러가 쏠리는 방향으로 기울인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잠시 만요. 그러면 좀 이상한데요?"

가만히 듣고 있던 칼이 손을 들어 질문을 했다.

"그렇다면 하체에 오러가 집중되어있는 제식검술 쪽이 오히려 더 빠른 움직임을 보여야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팔이 상체에 더 가까우니 가슴 쪽에 오러를 집중한 서부검술 쪽이 더 강한 파괴력을 보여야 하고요. 그렇다면 지금 설명한 이론과 현실이 정반대가 아닌가요?"

안드레아가 막 칼의 질문에 답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그 대답은 내가 해 주지."

"드비어스 경!"

드비어스와 피셔가 막사 쪽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답은 서부검술의 오러 운용이 인위적인 흐름이기 때문에 그렇다."

"인위적이라뇨?"

"원래 오러는 생명에너지로 몸 전체에 분포하고 있어. 제식검술은 따로 인위적인 오러의 운용법이 없다. 힘의 움직임이나 중심을 두려는 곳에는 그곳에 가까운 신체의 오러가 자연스럽게 집중되어 효력을 발휘하지. 하지만 서부검술은 오러를 인위적이고 의식적인 운용법으로 따로 집중해서 모아 활용하는 거야. 말하자면 온 몸의 오러를 일단 다시 한곳에 모아서 움직이는 거지. 그러니 얼핏 서부검술이 더 효율적이고 더 강한 오러를 사용할 수 있을 거 같지만 사실은 한 번 더 오러를 움직인 만큼 비효율적이지. 몸의 오러를 완전히 한곳으로 모을 수 있는지도 의문시 되고 말이야. 그러니 의식적인 서부검술과 달리 무의식적인 제식검술 쪽이 더 제대로 된 오러를 사용하는 거라고 볼 수 있지."

말을 하면서 드비어스의 시선은 안드레아를 향하고 있었다. 여전히 두 사람은 상반되는 표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드비어스가 다시 입을 닫자 피셔가 입을 열었다.

"외형적인 검술도 마찬가지야. 제식검술은 가장 기본적인 몸의 움직임에 최대한의 힘을 발휘하도록 구성되어 있지. 반면 서부검술은 극한의 이상적인 움직임을 지향하고 있어. 당연히 몸이 그런 움직임을 표현하기 힘들지. 그러니 인위적으로 오러의 힘을 움직이는 운용법을 만든 거야. 어때? 이정도면 슬슬 감이오지 않아? 너희들이 지금 하려는 짓이 얼마나 철이 없는지?"

피셔의 말에 칼과 펠릭스는 곤란한 표정으로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제식검술과 서부검술은 외형적으로나 오러의 운용법이나 전체적인 사상체계가 서로 대립관계에 있었던 것이다.

마치 안드레아와 드비어스의 사이처럼.


새 검술을 만들기 위한 모임은 그렇게 마지막을 향해가고 있었다. 드비어스와 피셔는 따로 시범은 보여주지 않았다. 간단히 말을 마치고는 다시 돌아간 것이다.


안드레아는 마지막으로 서부검술의 오러 운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기본적인 운용법은 전에 중계진에서 가르쳐 준 대로야. 압축기 연습을 할 때처럼 의식적으로 몸의 오러를 한곳에 집중하는 훈련을 하는 거지. 그러다 점점 검술의 경지가 높아지면 오러의 운용법은 제식검술의 오러 운용과 비슷해져. 어떻게 움직여도 오러의 운용과 일치하게 되지."

"결국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인가요?"

"글쎄? 내 스승은 극한의 오러 운용법에 대해 이렇게 얘기하더군."

펠릭스와 칼은 안드레아의 말에 집중했다. 안드레아는 마지막으로 끝을 내려는 듯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끊임없이 오러를 소용돌이치게 하라!"

"예?"

"무슨 뜻입니까?"

그러나 안드레아는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오래전 서부의 소드댄서였던 어느 마스터 검사가 남긴 말이 전해져 오는 거래. 아마 마스터가 되어야만 의미를 알게 되겠지?"

말을 마친 안드레아는 손을 들어보이고는 막사로 향했다.


둘만 남은 칼과 펠릭스는 잠시 말없이 앉아 생각에 잠겨있었다.

"역시 무리일까?"

펠릭스가 먼저 말을 꺼냈다.

"글쎄? 과연 내 생각이 너무 안일하고 짧았다는 건 인정하지. 단순히 여기저기서 서로의 장점과 기술 몇 개만 모아서는 새 검술을 만들 수는 없겠어. 하지만 오늘 얘기들은 분명 건질게 많다고 생각되지 않아?"

"그건 그렇지만. 그래서 이제 어쩔 거야?"

"어쩌긴. 목표가 좀 더 커지고 멀어지긴 했지만 반면 이제는 좀 더 구체적인걸 알게 됐잖아? 급할 것도 없는데 천천히 다시 시작하면 되지 뭐."

"포기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구나."

"포기? 흥, 두고 봐! 이렇게 된 이상 반드시 두 검술의 사상과 체계를 모두 포괄할 수 있는 새 검술을 만들어 보일 테니까."


두 사람은 일어서서 막사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걸어가면서 펠릭스는 가만히 생각에 잠겨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응? 아, 드비어스 경 말이야."

"드비어스 경이 왜?"

"이상하잖아? 서부 출신인데 꽤나 높은 수준의 제식검술을 쓰고. 거기다 드비어스라는 이름을 어디서 들어본 것 같단 말이야."

"흠, 하긴 나도 그게 좀 신경 쓰이긴 하더군. 거기다 안드레아 경과 그렇게나 사이가 나쁜데 같은 소대에 오래 있는 것도 그렇고."

"물어볼래?"

"누구한테?"

"전에 맴피스 마법사랑 레논 경이 본인들에게 직접 물어보라던데?"

"드비어스 경에게?"

"···."

칼의 말에 펠릭스와 칼은 잠시 서로 바라보며 말이 없었다. 그러다 드비어스의 무뚝뚝한 표정을 떠올리고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평소 조용하던 사람이 화가 나면 무서운 법이었다. 오늘 드비어스가 그랬다.

"그나저나 내일이 걱정이군."

"왜?"

"너야 상관없겠지만 난 내일부터 드비어스 경과 아침마다 같이 훈련을 하기로 했단 말이야. 아~ 대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잘됐네! 그럼 내일 훈련 하면서 펠릭스, 네가 슬쩍 안드레아 경과의 관계에 대해 물어보면 되겠네!"

"너 정말!"

"하하하! 농담이야! 농담!"

칼은 유쾌하게 웃으며 앞서가기 시작했다. 펠릭스는 못 말리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뒤를 따랐다.


그러다 슬쩍 진짜로 한번 물어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드비어스 경은 자신에게 순순히 대답해 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확신이 들었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펠릭스는 나름 이곳이 마음에 들었다. 오늘처럼 무거운 분위기는 두 번은 사양하고 싶었던 것이다.

"부디 내일은 좋은 분위기가 될 수 있기를···."

펠릭스는 떠있는 달을 보며 조용히 소원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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