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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ster 님의 서재입니다.

펠릭스전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夢ster
작품등록일 :
2014.12.22 00:00
최근연재일 :
2016.12.28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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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5.02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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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267

DUMMY

267


"천천히 들이쉬고 내쉬며 호흡에 집중하게."

막사 내 사관실은 고요했다. 오로지 길버트 경의 말소리만 은은하게 들려왔다.


미들사이드 요새의 막사는 중계진과 달리 임시 대기소가 아닌 정식 막사였다. 저녁을 먹고 나자 사람들은 모두 개인 짐을 풀어놓았다. 요새에 도착하자마자 떠나야했던 길버트의 경우는 정리해야 할 개인 짐이 상당했다.

펠릭스를 비롯해 별로 정리할 물건이 별로 없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길버트를 도왔다.

그 후 잠시 신병들의 신고식이 있었다.


평소라면 신이 나서 설칠 피셔 경은 그날따라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신병들의 신고식을 끝내버렸다. 다른 일반 병사들의 실망에 이은 야유에도 불구하고 간단히 정리해버린 피셔는 심지어 그날 도박에도 참가하지 않았다.

대신 서둘러 에스턴 병대장을 끌고 오다시피 사관실로 데려왔다.


그리고 길버트 소대의 사관실에는 묘한 광경이 펼쳐졌다. 길버트 경과 에스턴 병대장의 지도아래 나머지 기사들이 전원 무의 수련에 들어간 것이다.


어느 정도 수련의 수준이 높은 안드레아와 드비어스는 따로 지도가 필요 없었다. 다시 시작하는 레논과 피셔는 에스턴 병대장의 지도를 받고 있었다.

때문에 길버트 경은 자연스럽게 칼과 펠릭스를 맡았으나 이제 기초 수련을 시작한 칼은 아직 따로 봐 줄 필요가 없었다.


수련을 마치자 길버트의 칭찬이 이어졌다. 펠릭스의 성취에 상당히 놀란 표정이었다.

"못 본 동안 상당히 발전했군. 펠릭스 경."

"그렇습니까?"

"사냥 갔던 중에 무슨 일이 있었나?"

"그게, 어쩌다 운이 좋았다고 할까요?"

"운?"

"예."

미들사이드 요새로 오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다면 펠릭스가 사냥을 갔던 중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펠릭스는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사냥 중에 우연히 무의 수련을 하듯 주변을 명상 중의 상태처럼 인지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조금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그렇게 되자 마음이 차분해지고 주변의 사물과 자신이 지금 처한 상황을 좀 더 명확하게 인식하게 되더군요."

"호오~"

길버트는 더더욱 놀란 표정이었다.

"이게 길버트 경이 말씀하신 그 무의 수련의 관조라는 경지일까요?"

"들어보니 일단은 비슷한 거 같군. 그래 그때 다른 현상은 없었나?"

"예? 다른 현상이라뇨?"

"이를테면 자신이 처한 상황을 벗어날만한 주변 사물이 눈에 띤다든지 무언가 새로운 해결 방안이 떠오른다든지 말이야."

"음~ 아! 그러고 보니!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전에 마침 오러와 검술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오러의 세세한 흐름과 그걸 조절하고 응용할 방법이 떠오르긴 했습니다만···."

"오! 그래서? 성공했나?"

"아뇨, 아쉽게도 절반은 성공했지만 마지막에는 힘 조절이 제대로 되질 않아서 그랬는지 그만 실패했었습니다."

"저런! 그거 아쉽군."

펠릭스의 답변에 길버트는 자신의 일처럼 아쉬워했다.


그날 산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받아서 되돌렸던 일의 얘기였다. 펠릭스 로서는 그런 섬세한 오러의 사용과 검술을 펼친 것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사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고 조언을 받고 싶었으나 펠릭스는 그 이상은 말을 아낄 수밖에 없었다. 검은 화살에 관련된 일이라 발언에 조심스러웠던 것이다.

아직도 엔필드나 다른 궁수들로부터 그에 관해 아무런 설명을 듣지 못했다. 때문에 펠릭스도 일단 비밀로 남겨둬야겠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다행이 길버트 경도 펠릭스에게 자세한 내막에 대해서는 캐묻지 않았다.

'산에서 일어난 일은 산에서 끝낸다.'

얼핏 길버트 경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아마도 그 때문인 듯했다.


"그런데 길버트 경. 좀 전에 해결 방법이나 새로운 사물이 눈에 보인다니. 무의 수련으로 그런 것도 가능합니까?"

"음, 사실 내가 제일 오래 수련을 하긴 했지만 나도 아직은 모르는 게 많다네. 하지만 수련을 하면서 몇 번인가 신기한 경험을 했었지. 예를 들면 처음 엑스퍼트 중급에 들어설 때 그랬지. 한창 수련 중에 지금 내가 처한 상황, 어둠의 오러의 유혹의 원인과 해결책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더군. 그러자 엑스퍼트가 될 깨달음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더란 말이지. 뭐라고 할까? 상황에 대한 이해력이 높아졌다고 할까?"

"오! 뭔가 굉장하군요."

"그렇지?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야. 정말 대단했던 건 전투 중에 무의 상태에 들어갈 때지. 그때는 마치 상대의 움직임을 미리 예측할 수 있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어."

"예? 그런 게 가능합니까?"

"그런 경우가 지금까지 한두 번 정도밖에 없었기 때문에 나도 뭐라 확신은 못하겠네. 하지만 펠릭스 경, 자네도 두 번째 전투에서 겪어 봤겠지만 사실 전투 중에 감정을 그렇게 가라앉히고 의식을 무의 상태로 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이 아니겠나? 특히나 어둠의 오러의 유혹을 받고 있는 상태라면 말일세."

"예 확실히 그렇긴 하죠."

펠릭스는 조금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확실히 전투 중에 감정을 억누른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적의, 분노, 두려움, 위기감, 실전에서 적을 마주해 검을 몇 번 대하다보면 온갖 감정이 다 떠오르는 게 인간이었다.


첫 전투 이후 길버트 경에게서 자신의 지금의 처지를 벗어날 방법, 즉 공을 세우고 작위를 얻으면 된다는 얘기를 들은 후 펠릭스의 감정은 그야말로 폭발했었다.

그냥 싸워도 흥분해서 심장이 두근거리는데 잠시 찰나의 순간에도 수없이 변하는 인간의 감정을 그리 쉽게 누를 수는 없었다.

당장 이곳처럼 평온한 상태에서 무의 수련을 해도 그랬다. 최대한 의식의 심층까지 내려가는 고요한 상황에서도 수만 가지 잡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던 것이다.


"어쩌면 무상무념의 상태에서 적과 검을 나눈다는 건 검사가 대련을 하는 마음가짐의 극상이군요."

"그렇지. 사실 생각해보면 대단한 거지. 당장 대련에서 두려움이나 오만 같은 감정만 벗어내도 가진 실력의 대부분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을 테니 말일세. 뭐 그런 이점 때문에 저 두 사람이 계속 무의 수련을 하는 거지만 말이야."

길버트 경은 아직 명상을 끝내지 않은 안드레아와 드비어스를 가리켰다. 그제야 펠릭스는 어둠의 오러와 관계없는 두 사람이 왜 그렇게 무의 수련을 계속하는지 알게 되었다.


"음, 그렇지만 참 곤란하군요. 그런 점을 알고 있다고 해도 적을 앞에 두고 시간을 들여 명상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잖습니까?"

"하하! 그거야 그렇지. 그게 가장 곤란한 점이지."

길버트 경은 잠시 소대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펠릭스 경, 내가 생각하기에 말일세. 아마도 무의 수련의 궁극의 상태는 그런 걸 거야. 따로 명상을 하지 않아도 늘 관조의 상태로 있는 것. 쓸데없이 주변의 분위기와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과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상태. 그런 경지에 도달해야 진정 무의 수련의 궁극이 아닐까 생각하네."

"···갈 길이 멀 군요."

"그렇지. 자네나 나나 아직은 한참 멀었지. 하지만 펠릭스 경."

"예."

길버트는 손을 들어 펠릭스의 어깨에 올렸다. 그리고 잠시 인자한 표정으로 펠릭스를 보다 말했다.

"일단 자네는 한숨 놓아도 될 거 같아. 그 정도면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어둠의 안내자를 만날 일은 없을 걸세."

"예?"

길버트의 말에 펠릭스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못 믿겠다는 듯 다시 자신의 몸을 여기저기 바라봤다.

"중급이 되기 전에는 아직 안심할 수는 없지만 뭐 그렇게 위험한 상황은 지났다고 할까? 하지만 계속 꾸준히 정진하게."

"예! 길버트 경,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펠릭스는 진심으로 기쁜 마음으로 길버트 경에게 몇 번이고 고개를 숙였다.


시간이 지나 사람들이 서서히 명상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명상에서 벗어나 몸을 푼 피셔는 바로 자신의 몸에 오러를 주입했다.

"어때? 레논? 내 오러가 좀 늘어난 거 같아? 응?"

피셔의 호들갑에 레논은 피곤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아뇨! 하나도 안 늘었습니다!"

"야! 그러지 말고 좀 자세히 봐봐! 나 지금 컨디션 무지 좋단 말이야!"

"아! 오늘 새로 조금 수련 했다고 그게 늘어났을 리가 없잖습니까? 애초에 무의 수련과 오러의 수련이 직접 관련이 있는지 아직 밝혀지지도 않은 상황인데 말입니다!"

"뭐? 아니야? 관계가 없는 거야?"

"하~ 이런 사람이 대체 어떻게 엑스퍼트 중급이 된 거지?"

"뭐 인마?"

"하하하!"

두 사람의 대화에 다른 기사들이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미들 사이드 요새로 돌아온 첫날이 그렇게 지고 있었다.




다음날 이었다. 오전 수련을 마친 후 사람들은 다들 자신의 맡은바 일을 찾아 흩어졌다. 길버트 경을 제외하고 맴피스 마법사를 위시한 고램 라이더들은 모두 주기고로 모였다. 소대의 고램의 상태를 파악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엇? 힉스! 페로!"

"여! 칼, 펠릭스."

"여기서 보게 되네."

칼과 펠릭스는 의외의 인물들을 만났다. 학교 동기들 중 특기생으로 먼저 떠났던 고램 정비학과 소년들이었다.

"이봐! 신입! 게으름 피우지 말고 움직여!"

"옛!"

"칼, 펠릭스, 미안! 우리 지금은 바빠서! 다음에 보자!"

"어, 그래!"

칼과 펠릭스는 따로 얘기를 나누지 못했다. 동기들은 주기고의 선임의 불호령에 허둥지둥 정비중인 고램으로 달려갔다.


"친구들인가?"

맴피스 마법사가 두 사람을 보며 물었다.

"예."

"특기생이라 학교에서도 자주 보지는 못했는데 이곳에서 보는군요."

"부대가 새로 교대 할 무렵에는 여기 주기고 정비병들이 한창 정신없을 때라 여유가 나지 않을 거야."

맴피스의 말 대로였다. 주기고의 정비병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여유가 없어보였다. 거기다 분위기도 상당히 날카로워 보였다. 주둔 요새 소속의 마법사들도 얼굴에 짜증이 잔뜩 올라있는 게 보였다.

"무리도 아니지. 한번 중계진의 병력이 교대 할 때마다 거의 2~300대를 손을 봐야 하니."

"녀석들 힘들겠군요."

"뭐? 핫! 하하하!"

펠릭스가 무심결에 내뱉은 말에 맴피스가 웃음을 터트렸다.

"힘들긴 뭐가 힘들어! 저 녀석들만큼 전선에서 좋은 자리도 찾기 힘든데."

"예?"

"거기다 제대하면 앞날도 창창한 녀석들이라고."

"아!"

"하긴, 그렇군."

칼과 펠릭스는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램 정비병들은 마법사들을 도와 고램을 수리하거나 다른 공작물을 제작했다. 그러나 일반 공병들과는 달랐다. 마나나 오러처럼 타고난 능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공부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그리고 손재주도 필요했다.


고램의 관절과 특정부분에는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마법진이 그려진 부품에는 미스릴 합금과 같은 상당한 고급 합금이 사용되었다. 고램의 거검이나 대 마법 방어용 장갑에도 그랬다.

그 외에도 고램은 다양한 부품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머리 부분의 비젼 시스템은 유리광학과 마법진이 섞인 부품이었다. 조종석에서 고램의 각 관절로 오러를 전달하는 물질은 몬스터의 혈액과 여러 시약들을 섞어 연금술로 만든 물질이었다.

마지막으로 조종자의 오러를 증폭하는 마나석이 들어간 코어는 마탑에서 직접 허가를 받은 마법사가 아니면 열지 못하도록 되어있었다. 고램 부품 중 가장 핵심이 바로 코어였다. 함부로 열었다간 폭발 할 수도 있었다.


세세한 설정과 마법에 관련된 부분은 마법사들의 영역이었지만 설계와 정비, 조립 등에는 이들 고램 정비사들의 손이 필요했다.


당연히 이들은 고램 제작에 필요한 마법에 관련된 제반 지식을 모두 알아야 했다. 거의 마법사들 수준의 마법진, 연금술에 대한 지식이 필요했고 미스릴 합금과 같은 마나나 오러와 반응해 작용하는 합금에 필요한 지식도 필요했다.

거기다 기계의 제작과 조립에 대한 것들도 알아야 했으며 특히 머리 부분의 비젼 시스템에 들어가는 유리 제품의 가공은 마법이 아니라 순수 가공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었다.


물론 대부분의 고램 유리 가공품은 바다건너 레반터에서 건너온 것을 최고로 쳤다. 그 중에서도 특히 하이퍼보리아에 사는 드워프들의 제품을 최고로 쳤다. 미스릴이나 마법 합금의 경우도 역시 하이퍼보리아에 사는 엘프들의 것을 최고로 쳤다.

이것들은 인간들로서는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는 품질의 제품들이었다.


그나마 조금 흉내를 내는 이들이 이들 고램 정비 특기생들이었다. 이들은 보통 마나나 오러를 타고나지 못한 소년들 중에서 영리한 녀석들을 가려 뽑았다.

아니 정말로 머리가 좋은 녀석들이어야 했다.


평민 출신도 있었지만 천민 출신도 상당수 있었다. 이들은 일단 고램 정비사가 되면 다른 특기생들 보다 더 오랜 기간을 복무해야 했다. 그 중에도 천민 출신들은 기간이 더 길었고 복무 후 당연히 신분 상승의 기회도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들은 장래가 보장된 직업이었다.


마법사보다 더 부족한 것이 정비사였다. 전선에서 목숨을 잃을 위험도 적었다. 제대하면 그야말로 귀하신 몸이었다. 고램이 있는 곳이라면 왕궁에서부터 마탑, 귀족들에 상인들까지 모두가 환영하는 직업이었다.

보통은 돈이 많은 마탑이나 귀족 가에 취직하지만 실력만 인정받으면 자립해서 부품상회를 차릴 수도 있었다.


"장래 호의호식할 생각을 하면 저 녀석들은 이런 건 고생도 아니지. 오히려 나나 피셔 같은 되다만 마법사, 기사들 보다야 몇 백배 나은 녀석들이야."

맴피스 마법사의 말을 듣고 있던 레논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 나도 기사가문만 아니었으면 고램 정비사가 되는 건데."

그러자 무뚝뚝하게 걸어가던 드비어스경이 말했다.

"그 머리로?

"예?"

"무리야!"

"푸훗!"

"크크큭!"

드비어스의 말에 뒤따르던 펠릭스와 칼, 맴피스 마법사가 소리죽여 웃었다.

"잠깐 드비어스 경! 무슨 뜻입니까? 아니 사람을 어떻게 보시고···. 제가 이래 뵈도 어릴 때는 천재 소릴 들었다고요!"

레논이 드비어스의 뒤를 따라가며 항변했으나 이후로 드비어스는 일체 입을 열지 않았다.

다섯 사람은 곧 소대의 고램을 맡겨둔 주기장에 도착했다.



"머리동작 확인!"

"확인!"

"오른팔!"

"확인!"

"왼팔!"

"확인!"

지루한 점검이 시작되었다. 고램은 외부 장갑이 완전히 제거되어 골격이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펠릭스는 자신의 마이티를 지시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정비병과 레논 경이 밖에서 체크 항목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주기장의 담당 마법사와 정비사들 그리고 소대 마법사인 맴피스가 심각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펠릭스들이 중계진에서 작성한 고램의 사용 보고서와 중계진의 정비사들이 확인한 서류가 들려있었다.

점검 여하에 따라서 완전 분해해서 재조립하는 오버홀을 할 지, 단순 점검으로 마칠지를 결정하게 될 것이었다.




다행이 고램들은 오버홀까지는 필요 없을듯했다. 단지 격한 전투를 치룬 탓인지 칼과 펠릭스의 마이티는 관절 부분을 집중 점검하게 되었다. 거기에 펠릭스의 마이티는 오러 전달용액의 압력 조정을 해야 할 것으로 보였다.


고램들이 누이고 벗겨졌던 마이티의 장갑이 기중기를 이용해 들렸다. 정비는 마법사들의 주도로 주기고의 정비병들이 도와주는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같이 왔던 펠릭스나 다른 기사들은 별 할 일이 없었다. 간간히 정비병들의 힘쓰는 일을 도와주거나 할 뿐이었다.


"그런데 레논 경, 저와 칼이 오기 전에 라이더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응?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는 거야?"

"아, 우리 소대는 저와 칼이 한꺼번에 전입해 왔잖습니까? 본래대로라면 마이티 두 대의 라이더 중 한명은 어느 정도 경력자가 오는 게 정상이라면서요?"

"으음~ 그렇지···."

펠릭스의 질문에 레논은 표정을 잔뜩 찡그리고는 대답을 망설였다.


원래대로라면 펠릭스가 아니라 미렌이라는 기사가 왔어야 했다. 그걸 세비안이 펠릭스로 바꿔치기 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상한 점은 남아있었다.


길버트 경도 한동안 후방에서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의 부상이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미렌이나 누가 왔었어도 두 사람 모두 길버트 소대에 새로 배속되는 것이었다. 고램 소대가 한번 해체되었다가 다시 모인 경우였던 것이다.

"작년에는 운이 별로 좋지 못했어. 이전 라이더 두 사람은···. 한명은 전사했고 한명은 제대해버렸지."

"예? 전사요?"

레논의 대답에 펠릭스는 가슴이 철렁했다. 설마 길버트의 고램 소대에 라이더가 전사하는 일이 있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중앙기사학교 출신에 내 2년 선임이었나? 그랬을 거야. 한사람은 경력 6년의 기사였고. 그런데 그 사람과 길버트 경은 그다지 사이가 좋지 못했거든."

"흐음···."

레논은 펠릭스를 쳐다보지 않았다. 정비중인 고램을 보며 말을 이어갔다.

"잘할 때는 좋았는데 호흡이 안 맞을 때는 상당히 엇박자가 났거든. 그러다 작년 초에 사고가 터졌지. 길버트 경은 크게 부상을 당했고 한명은 사망하고 그 6년차 기사도 부상에 그길로 제대수순을 밟았지. 거기다 일반 병사들도 거기에 휘말려 10여명 사망하는 일이 있었고 말이야."

레논은 표정이 별로 밝지 못했다. 펠릭스는 괜한 걸 물었구나 싶었다.

"길버트 경은 이제 곧 복무한 지 거의 30년이 될 거야. 고램 라이더가 된지도 거의 20년이 되지. 하지만 사실 실력은 그리 좋다고 할 수는 없지. 제대로 수순을 밟고 나이트급 고램을 타게 된 것도 아니고 20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잡은 적 고램이 8기라면 결코 많은 숫자가 아니지."

펠릭스도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공감할 수 있었다.


길버트 경의 고램은 가문의 것이었다. 가문이 멸문하고 고램만 남자 전선의 길버트 경에게 의향을 묻는 서신이 보내진 것이었다.

원래는 길버트 경이 레인저 보직이었다는 것과 그때당시 어둠의 오러 문제로 상당히 고생했다는 얘기는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원래 고램 라이더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니 아마도 고램도 포기하고 국가에 반납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문의 마지막 남은 유산을 타인에게 주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로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런 때문에 자의반타의반으로 고램 라이더가 된 것이리라.


"고램 라이더의 개인 실력이 그다지 좋지 못해도 소대의 포메이션이나 팀웍으로 커버 할 수 있는데 그 사람은 그동안 그게 그다지 마음에 안 들었었나봐. 개인행동에 나가는 일이 많았거든."

"그래도 길버트 경이 중견 라이더와 사이가 나빴다니. 좀 의외군요."

"그렇지? 베인브릿지 사령관 외에도 저 성격 좋은 길버트 경과 사이가 나쁜 사람이 있다니. 하지만 그 기사가 성격이 좀 많이 까칠하기는 했어. 나도 그랬지만 당시 일반 병사들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거든."


고램의 정비가 끝나가고 있었다. 벗겨졌던 장갑이 조립을 위해 다시 천천히 옮겨지고 있었다.



펠릭스는 전임 라이더들의 이야기에 조금 충격을 먹은 상태였다. 오자마자 들었던 이야기가 '영웅이 되려고 하지 마라!'였다. 거기다 이곳 동부전선은 무조건 안전을 중시하는 분위기였다.


길버트는 고램으로 나설 때마다 칼과 펠릭스에게 가장 먼저 하는 얘기가 안전이었다. 우선 소대의 병사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할 것. 그다음이 자신들의 안전이었다.

어쩌면 소대의 분위기가 이렇게 자율적인 것도 그 때문인지 몰랐다. 이곳 정비소도 그렇지만 길버트 소대와는 다르게 다른 소대들을 보면 상당히 강압적이거나 고압적인 곳도 곧잘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길버트 경은 저나 사람들에게 너무 잘 해 주시는 거 같군요. 왜 그럴까요?"

"글쎄? 그냥 사람이 좋은 거 아닐까? 아무튼 이곳에 배속된 건 운이 좋은 거라고 생각해."

"흐음~"

레논의 대답에도 펠릭스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한 표정이었다.

"뭐 어때? 정 궁금하면 본인에게 직접 물어봐. 그런 질문을 피하실 분이 아니 신거 알잖아."

레논의 그 말에는 펠릭스도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딱히 질문을 할 생각은 없었다.


정비가 끝난 고램이 하나 둘 주기고 안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맴피스는 정비 내용과 확인을 위해 남았다. 펠릭스들은 다음 출전을 위해 소대의 고램들은 안쪽에 대기 시켜둔 후 연습용 고램들을 받아 이동했다.

학교에서도 사용했던 것이었다. 머리 부분에 좌석이 마련되어 있고 조종석 부분의 장갑도 거의 해제되어 시야가 넓은 녀석이었다.

"내일 부터는 정말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되겠군요."

"그러게. 아~ 싫다. 차라리 전선이 낫지."

펠릭스의 고램 머리 쪽 의자에 앉아있는 레논이 노골적으로 싫은 표시를 했다. 미들사이드 요새에서의 훈련은 상당히 강도 높게 실시되었던 것이다.

주기고 곳곳에서 비슷한 풍경이 눈에 띠었다.


계절은 서서히 여름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점점 더워져가는 가운데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작가의말


글 쓸 시간이 참...

생활에 여유가 좀 더 있었으면.


맘 편히 글만 쓰고 살 수 있었으면 좋겠군요...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앞으로 정말로 못 지킬 연재시간이나 주기 약속은 하지 말아야 겠습니다.


부족한 글 읽어 주시는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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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 265 스승과 가족. +14 16.04.29 4,450 141 17쪽
265 264 +14 16.04.23 4,098 150 19쪽
264 263 +12 16.04.22 3,979 147 17쪽
263 262 +16 16.04.18 4,187 154 26쪽
262 261 +26 16.04.13 4,276 157 38쪽
261 260 +14 16.04.08 4,243 144 17쪽
260 259 +12 16.04.07 4,298 155 27쪽
259 258 +20 16.04.02 4,379 142 22쪽
258 257 오명과 명성. +14 16.04.01 4,634 139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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