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mongster 님의 서재입니다.

펠릭스전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夢ster
작품등록일 :
2014.12.22 00:00
최근연재일 :
2016.12.28 16:59
연재수 :
292 회
조회수 :
2,567,400
추천수 :
63,526
글자수 :
1,813,839

작성
16.04.23 10:09
조회
4,098
추천
150
글자
19쪽

264

DUMMY

264


분주한 밤이었다. 저격 탓이었다.

사냥물의 흔적을 놓쳐 일찍 일과를 끝낸 날이었건만 더 이상 쉬지 못했다. 사람들은 서둘러 자리를 정리했다.


모두들 말이 없었다. 어두운 밤 산길을 흔적을 지워가며, 주변을 경계하면서 무거운 침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늦은 새벽 잠자리의 배치도 그랬다. 2인 1조로 서로가 서로를 볼 수 있는 위치에 배치했다. 혹시 한 조가 당하더라도 바로 다른 조가 알아차릴 수 있는 대비였다. 그러나 다들 쉬이 잠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단순히 저격의 공포 때문은 아니었다. 오히려 향후 그 저격수가 추격해 올 거라는 걱정은 아무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전방에 매복한 소대에게 알려야 한다는 소리도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그날 펠릭스는 호른과 마지막 경계 조였다. 늦게까지 움직인 탓에 아침기상시간이 길어져 두 사람이 경계를 설 때는 이미 해가 떠 있었다.

"호른 씨 대체 그 검은 화살이 뭡니까?"

펠릭스는 답답한 분위기를 참지 못하고 호른에게 물었다.


새벽 전투는 자신에게 꽤 중요한 싸움이었다. 그동안 고민하던 검술과 깨달음에 무언가 실마리가 잡힐듯했다. 검사는 나름 복기가 중요했다. 연습이나 대련이 끝난 후 되돌아보면 자신의 부족했던 점, 발전할 방향 등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였던 것이다.

그 기회를 지금 이 무거운 분위기 때문에 놓치고 있었다.


펠릭스의 질문에 호른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주변에 자고 있는 동료들의 눈치를 살펴볼 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잠들어 있는 듯 보였다.

"펠릭스 경, 토끼 올가미를 확인하러 갔을 때를 기억하십니까?"

"예. 둘째 날 아침이었죠."

올가미에 걸려있던 토끼 네 마리는 살아있었다. 그때 호른은 토끼들의 숨을 끊으면서 무언가 의식을 하듯 중얼거렸었다.

"우리 사냥꾼들은 뭐라고 할까? 조금 폐쇄적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만의 규칙이 있죠."

"그 검은 화살도 그런 규칙의 하나입니까?"

"···."

호른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몸통이 검은색으로 된 보통의 화살이었다. 그러나 다들 그 화살을 보는 순간 굳어버렸다. 말을 해주지 않는 이상 펠릭스로서는 그저 그 의미를 추측해 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검은색은 결코 좋은 의미로 해석하기 어려웠다.

일반적으로 검은색은 죽음을 뜻했다.


"죽음에 관한 겁니까?"

펠릭스의 말에 호른이 흠칫 놀랐다. 그 반응으로 봐서 색의 의미에 대한 펠릭스의 추측은 맞는 모양이었다.

"설마 저를 노린 건 아니겠죠?"

"음~ 그러니까 그게···."

갑작스런 펠릭스의 말에 호른은 살짝 당황하는 눈치였다.

"저는 서자입니다. 거기다 이미 들어서 아시겠지만 사정이 있어서 저를 노리는 다른 사람이 있을 수 있거든요."

펠릭스의 두 번째 추측이었다.

더 이상 전선의 부대에 이 사건을 알리려고 하지 않는 점이 이상했던 것이다.


이곳 동부 전선의 최전방 매복은 분명 인간보다는 적의 고램을 경계하기 위한 성격이 컸다. 고램이 전장의 주축이 된 이후로 맨몸의 인간군대는 별 효용이 없었다. 그렇다고 적의 인간 병사를 경계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동부나 서부 산맥은 기본적으로 몬스터 천지였다. 그러니 인간 스파이를 보낸다고 한다면 분명 오래전에 몬스터가 없어진 이곳 익시투스 산맥을 통과하는 것이 가장 좋은 루트이기는 했다.

그러나 에덜라드와 크로비스의 전선은 남북으로 길었다. 최전방을 통과하더라도 에덜라드 수도에 도달하기 까지는 검문소나 다른 감시선이 몇 겹으로 중복해서 쳐져있었다.

애초에 전선을 통해 스파이를 보내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다.

가령 전선을 통과한 적이 있다고 한다면 10중 8, 9 중요한 비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특수훈련을 받은 인물일 가능성이 컸다.

그런 인물이 요새의 지휘관도 아니고, 아니 하다못해 고램 라이더도 아닌 사냥을 나온 일반부대원을 노렸다? 지나가던 오크가 웃을 일이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 적은 북쪽이 아니라 남쪽, 즉 애덜라드에서 보냈을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이곳에서 가능성이 제일 큰 사람은 펠릭스였다.


호른이 제대로 답변을 못하고 망설이자 다른 곳에서 답변이 나왔다.

"확실히 예전에는 귀족 가에서 서자에게 검은 화살을 보내던 때도 있었지."

엔필드였다. 역시 깨어 있었다.

"하지만 아니야. 그 화살은 분명 나에게 보낸 거야. 아무리 궁수가 몰래 저격이 가능하다지만 화살을 검으로 받아 되돌려 보내고 숲에서 나무를 타고 날아다니듯 움직이는 괴물 같은 녀석에게 평범한 궁수를 암살자로 보내겠나?"

엔필드의 말에 펠릭스는 슬쩍 얼굴이 붉어졌다. 은근히 자기 칭찬을 들은 것이다.

"자! 이쯤하고 다들 이동하도록 하지!"

엔필드의 말에 사람들이 금세 일어났다. 역시 다들 잠들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돌아가는 길도 여전했다. 특히 엔필드는 상당히 가라앉아있었다. 원래도 과묵했지만 지금은 주변에 다른 궁수들조차 접근하기 꺼려하는 분위기였다. 다들 어서 중계진에 도착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펠릭스는 은근히 견디기 어려웠다. 분위기를 바꿀 무언가가 필요했다. 이대로는 중계진에 도착한다고 해도 한동안 소대에 무거운 분위기가 이어질 것이 분명했다.

"음?"

그때 발걸음을 서두르던 펠릭스의 얼굴에 가지 하나가 걸렸다.

"어라?!"

펠릭스는 가지를 손으로 치우다 뭔가 발견했다.

"잠깐만요!"

펠릭스의 말에 다들 멈춰 섰다.

"이거 그거 아닌가요?"

펠릭스는 손으로 가지와 바닥의 흔적을 가리켰다. 그러자 사람들이 펠릭스가 발견한 흔적 주위로 모여들었다.

가지의 잎은 반쯤 뜯어 먹혀 있었음에도 아직도 나뭇잎에 물기가 있었다. 바닥의 발자국 흔적도 상당히 뚜렷했다.

"어!"

"맞구먼! 그 녀석이군!"

"지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았어!"

무스의 흔적이었다.

잎을 뜯어먹은 높이로 보건데 첫날 추적하던 바로 그 커다란 녀석으로 보였다. 사람들의 시선은 이제 엔필드에게로 향했다.

"뭘 쳐다보는 거야? 우린 아직 사냥 중이야! 냉큼 쫓아가야지!"

엔필드는 망설이지 않고 명령했다. 그제야 병사들의 얼굴에는 화색이 조금 돌아온 듯했다. 그나마 분위기가 조금 돌아온 것 같아 펠릭스도 잠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추적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펠릭스들은 무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거대한 뿔을 가진 수컷이었다. 녀석은 햇볕이 잘 드는 평지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엔필드는 사람들을 세팀으로 나눴다.

무스가 있는 서쪽은 암벽으로 막혀있었다. 북쪽이나 동쪽으로 도망가면 나중에 추적하기 어려워졌다. 때문에 엔필드는 그쪽으로 먼저 각각 두 명씩 보냈다. 일부러 그쪽에서 부터 몰아갈 참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쪽에 엔필드가 매복해 있다가 끝을 낼 참이었다.

"다들 알겠지만 조심해."

"예."

"그럼!"

각 조가 맡은 위치로 흩어졌다. 펠릭스는 가장 노련한 엔필드와 같은 조가 되었다. 경험이 없는 펠릭스였기에 만약을 위해서였다.


3m가 넘는 녀석이었다. 몸무게만도 수백Kg이었다. 보통은 얌전한 녀석이지만 위기에 처하면 그 몸무게만으로도 상당한 위협이 되었다. 부딪혔다간 그야말로 뼈도 못 추릴 것이었다.

"저, 그냥 제가 오러를 써서 해치우면 안 될까요?"

이동을 하면서 펠릭스가 조심스럽게 엔필드에게 물었다.

"왜? 아예 조각조각 갈아 버리게?"

"아니요. 그냥 쫓기만 하면 안 될까요?"

"저놈이 저 덩치에도 상당히 빨라. 숲에서는 기사도 따라잡기 어렵지. 자네 그 나무 타는 실력은 내 인정하지. 아마 볼만한 경주가 될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네."

"예."

엔필드의 말에 펠릭스는 군말 없이 활을 들었다.

"심장이나 머리를 맞춰야 돼. 하지만 저 녀석은 머리에 뿔도 있고 하니 가능하면 심장을 노려야겠지. 한 번에 끝내지 못하면 힘들어져."

매복 장소에 도착한 엔필드는 활을 준비하는 펠릭스에게 노려야할 곳을 설명해 줬지만 펠릭스는 그냥 쓰게 웃을 뿐이었다.


펠릭스의 할아버지와 삼촌들도 평민 출신이었다. 장원에서 간간히 활을 연습하는 모습을 보던 펠릭스도 당연히 쏠 줄은 알았지만 그래도 자신은 기사인지라 활은 별로였다.

지금도 솔직히 맞출 자신은 없었다.



사냥이 시작되었다.

"우하!"

북쪽에 위치한 조가 먼저 큰 소리를 내며 달려 나왔다. 두 사람이 활을 쏘았지만 화살은 그저 위협용이었다. 그쪽에서는 무스의 엉덩이 밖에 노릴 곳이 없었던 것이다.


깜짝 놀란 무스는 펄쩍 뛰었다. 동쪽으로 향하려고 몸을 틀려는 순간 그곳에 잠복하던 조가 다시 활을 쏘았다. 이번에는 노리고 쏜 것이었으나 무스는 재빨리 몸을 틀어 피했다. 두 발 중 한발만이 아슬아슬하게 무스를 스쳤다.

두 사람의 실력보다는 노리는 위치가 나쁜 탓이었다.


결국 무스는 예상한대로 펠릭스와 엔필드가 숨어있는 남쪽으로 달려왔다.

"엔필드 씨?!"

"아직 이야! 기다리게!"

엔필드는 잔뜩 긴장한 펠릭스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정작 엔필드 자신은 아직 화살도 뽑지 않은 상태였다.

3m의 거체가 육박하고 있었다. 점점 다가오는 야생 짐승의 박력은 고램에 비할만했다. 다가오던 무스가 갑자기 머리를 펠릭스들이 있는 곳으로 돌렸다.

"제길! 눈치 챈 거죠? 엔필드 씨!"

펠릭스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러나 엔필드는 여전히 펠릭스의 팔을 잡고 제지했다. 그 순간 무스가 머리를 밑으로 내려 뿔을 정면으로 향했다. 돌아갈 길이 없자 두 사람이 있는 곳을 정면으로 돌파할 생각인 듯했다.

"지금이야!"

펠릭스에게 발사 명령을 내림과 동시에 엔필드는 화살 통에서 활을 꺼냈다.

'피윳!'

"엇?"

펠릭스의 화살은 무스의 뿔에 튕겨 보기 좋게 빗나갔다.

"쳇! 역시!"

펠릭스는 별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어차피 엔필드가 주 사수였다. 그러나 뒤를 이어 발사되어야 할 엔필드의 화살이 나가질 않았다.

"엔필드 씨?"

펠릭스가 다급하게 돌아봤다.


엔필드는 얼이 나가있었다. 손에는 검은 화살이 들려있었다. 전통에서 화살을 뽑는다는 게 하필이면 어제 챙겨온 그 검은 화살을 뽑은 것이었다.

"이런 제길!"

시간이 없었다. 펠릭스는 재빨리 오러를 끌어올리고는 엔필드를 향해 몸을 날렸다.

'파하학! 와작!'

무스가 두 사람이 숨어있던 수풀을 사정없이 덮쳤다. 그리고는 거대한 뿔을 이용해 거칠게 수풀을 한번 휘젓고는 다시 남쪽으로 달렸다.


"펫! 페펫!"

펠릭스는 입에 들어간 풀을 뱉어냈다. 근소한 차이로 무스의 진로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다행이 다친 곳은 없었다.

"대체 정신을 어디다 두고 있는 겁니까? 큰일 날 뻔했잖습니까!"

펠릭스는 아래쪽에 깔려있는 엔필드를 보고 소리쳤다.

"어? 아아!"

엔필드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모양이었다. 펠릭스는 거칠게 엔필드가 들고 있던 검은 화살을 빼앗았다. 그리곤 손에 오러를 모아서 꺾어버리곤 멀리 던져버렸다.

"제길, 놓쳤나?"

펠릭스는 뒤를 돌아 무스를 쳐다봤다. 녀석은 무성한 나무들 때문에 잠시 주춤거리고 있었다. 어쩌면 따라잡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펠릭스는 엔필드와 뛰어오는 다른 궁수들 그리고 무스를 보며 잠시 고민했다.

"쳇!"

결정을 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첫 사냥이었다. 며칠을 추적하느라 고생했다. 뜻하지 않은 저격 때문에 죽을 뻔도 했다. 지금 분위기 때문이라도 빈손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펠릭스는 검을 뽑아들고 오러를 끌어올리고는 달리기 시작했다. 길이 험해 바로 나무로 뛰어올라 나무 둥치를 타고 달렸다.

경주는 엔필드의 예상보다는 싱겁게 끝나버렸다. 험한 길 탓에 무스가 속도를 내지 못한 것이었다. 얼마 가지 않아 펠릭스는 무스의 정면에 내려섰다.

"으음! 생각보다 큰데? 이걸 어쩐다?"

무스는 바로 뿔을 앞으로 내밀어 싸울 태세를 잡았다. 정면으로 무스와 마주한 펠릭스는 살짝 후회가 되었다.


잡는 거야 사실 문제가 없었다. 오러를 입힌 검을 몇 번 휘두르면 엔필드의 말대로 무스는 아마도 조각조각 나 버릴 것이었다. 그러나 이건 사냥이었다. 아무렇게나 잘라버리면 뒤처리를 감당하지 못할게 뻔했다.

펠릭스는 눈 딱 감고 그냥 조각내버릴 것인지 어쩔지를 고민했다. 급소를 찔러 깨끗하게 끝을 내기에는 무스가 만만해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지. 무스 따위에 당했다거나 눈앞에서 놓쳐버렸다는 소린 듣기 싫으니!"

펠릭스는 마음을 굳히고 검에 오러를 있는 대로 주입했다. 펠릭스의 검이 오러로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게 오히려 역효과를 낳았다.

갑작스런 검의 빛으로 놀란 무스가 싸우기를 포기한 것이었다.

"어? 어! 거기 서지 못해!"

무스는 재빨리 몸을 왼쪽으로 틀어 크게 뛸 준비를 했다. 무스가 펄쩍 뛰는 순간이었다.

'퍽!'

공중에서 무스가 무언가에 부딪혔다.

"어?"

무스의 거체가 쓰러지자 그 너머에 활을 들고 있는 엔필드의 모습이 보였다.

불안하게 떨어져 내린 무스는 그래도 비틀거리며 일어서더니 몇 걸음 뛰어가다 다시 풀썩 쓰러졌다. 무스의 왼쪽 심장 부위에는 화살 하나가 박혀있었다.



죽어가는 생물은 애처로웠다. 커다란 눈망울을 껌벅거리며 무스는 거대한 몸으로 몇 번인가 발버둥을 쳤다.

"자네가 하겠나?"

엔필드가 펠릭스에게 단검을 내밀었다. 그러나 펠릭스는 뭘 해야 할지 몰랐다. 펠릭스가 머리를 흔들자 엔필드는 알겠다는 듯 자신이 앞으로 나섰다.


무스의 머리맡에 무릎을 꿇고 앉은 엔필드는 한손으로 조용히 무스의 눈을 가렸다.

"모든 태어나는 생명에 축복을, 모든 죽어가는 생명에 안식을, 숲에서 태어나 이제 우리 속에서 영원히 살지니."

엔필드는 마치 주문을 읊듯 했다. 주변을 둘러싼 궁수들은 모두 엄숙한 태도였다.

펠릭스는 전날 호른이 토끼를 잡을 때 중얼거렸던 말이 무엇인지 이제 알 것 같았다. 의식을 마친 엔필드는 단검으로 무스의 목줄을 끊었다. 신기하게도 그동안 무스는 전혀 발버둥치지 않았다.


"자! 서두르세!"

"옛!"

사람들이 서둘러 흩어지기 시작했다. 몇몇은 무스를 싣고 갈 나무를 준비했다. 몇몇은 바닥에 구덩이를 파고 무스의 피를 뽑기 시작했다.

"생물의 대부분은 액체지. 이것만으로도 무게를 좀 줄일 수 있을 거야. 원래 피도 쓸데가 있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어."

엔필드가 단검을 챙기며 말했다.

"···."

피를 흘리는 무스를 보며 펠릭스는 착잡한 심정이었다.



중계진에 도착한 것은 해가 진 후였다. 사람들은 순식간에 펠릭스들이 잡아온 무스에 몰려들었다.

"이야! 엄청난데?"

"이거 기록 아닌가?"

"누가 잡은 거지?"

"바보, 당연히 엔필드가 잡았겠지!"

엄청난 크기에 다들 감탄한 모습이었다.


잠시 후 길버트 경과 소대원들도 다가왔다.

"다녀왔습니다."

"음, 다들 무사해서 무엇보다 다행이네."

길버트는 사냥을 다녀온 대원들을 살펴보며 말했다.

"그래 이건 누가 잡은 건가?"

"예, 엔필드 씨ㄱ···."

길버트의 물음에 펠릭스가 대답하려하자 갑자기 엔필드가 끼어들었다.

"펠릭스 경이 잡았습니다."

"예?"

펠릭스가 놀라 엔필드를 돌아봤다. 그러자 엔필드는 다시 다른 궁수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렇지?"

그러자 다른 궁수들도 모두 웃으며 대답했다.

"예! 그 녀석은 펠릭스 경이 잡은 겁니다."

"대단했습니다. 하하하!"

"어? 아니, 하 하지만!"

당황한 펠릭스는 바로 이야기를 고치려 했다. 그러나 엔필드는 펠릭스의 어깨를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네."

그러자 다른 궁수들도 하나씩 펠릭스에게 다가와 어깨를 두드려주며 지나갔다.

"자네는 충분히 자격이 있어."

"펠릭스 경이 아니라면 이 녀석을 잡기는커녕···."

궁수 한 사람은 한쪽 눈을 찡긋하며 지나갔다. 입으로는 펠릭스가 오러를 이용해 막아선 이야기를 하면서 눈으로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마도 검은 화살에 관련된 일은 비밀로 해달라는 뜻인 듯 했다.


당황하는 펠릭스의 모습을 보며 길버트 경은 그저 웃고 있었다. 궁수들이 사라지자 펠릭스는 길버트 경에게 다가갔다.

"저~ 사실은 저 무스는 제가 잡은 게···."

"아니! 됐네!"

"예?"

"그래 사냥은 즐거웠나?"

"그 글쎄요? 힘들었습니다."

"그랬겠지. 아무튼 수고 많았네."

말을 마친 길버트 경도 펠릭스의 어깨를 두드려주고는 가려고 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응? 왜?"

"길버트 경, 정말 이래도 되는 겁니까? 이러면 제가 엔필드 씨의 공을 가로챈 게 되는데···."

"뭐 어떤가? 본인이 상관없다는데."

"예? 하지만···."

결국 길버트는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흔히 사냥꾼들은 산에서 일어난 일은 산에서 끝낸다고들 하지. 아무튼 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모르네. 하지만 사냥을 혼자 하지는 않았겠지?"

"예."

"지금 엔필드나 다른 사람이 말하는 건 저 무스에 누구의 화살이 꽂혔는가를 말하는 게 아닐 거야."

"예?"

"가령 엔필드가 자신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무스나 다른 사냥감을 잡을 필요가 있었다면 굳이 다른 사람들과 가지는 않았을 거네. 사냥꾼들은 무리지어 가는 걸 보통 좋아하지 않거든."

"···."

"명성은 외적으로 공을 세워야만 얻는 게 아니라네. 오히려 그런 경우 저번에 자네가 고램으로 폭주했던 것처럼 오명만 커질 수도 있지. 하지만 이렇게 단체 생활을 할 때에는 내부에서 동료들의 신뢰를 하나씩 쌓아가면서 얻어지는 사소한 명성이 진짜일 수 있지."

길버트 경의 말에 펠릭스는 어쩐지 다른 궁수들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았다. 무스를 양보한 것은 펠릭스에대한 신뢰의 표시였던 것이다.

"그러니 자네는 잘한 거야. 제발 저러지만 않으면 돼."

길버트 경은 다시 무스가 있는 곳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어느새 피셔 경과 주방의 조리원들이 와있었다.

피셔는 마치 자신이 잡은 양 무스의 위에서 폼을 잡고 있었다.

"봤지? 봤지? 이게 바로 내 실력이라고!"

"아! 진짜! 또 이러시네!"

"실력이라뇨? 이게 무슨 피셔 경이 잡은 겁니까? 사냥에는 따라가지도 않으셨다면서요? 우리도 이미 펠릭스 경이 잡았다고 들었습니다."

"다 닥쳐! 그 녀석도 우리 소대잖아! 내가 보낸 거라고! 이 몸 대신 보낸 거니 내가 잡은 거나 마찬가지야!"

사람들은 지나가며 그런 피셔를 보고 웃었다. 길버트 경도 어이없이 웃으며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중계진은 변함없이 평화로웠다.

펠릭스는 멀리서 무스를 보며 무언가 뿌듯했다.

"그러니까 내가 잡은 건 동료들의 신뢰인가?"


그 검은 화살이 어떤 의미인지는 아직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 후로도 그 화살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다. 엔필드에게 무슨 사연이 있는지, 저격수에 대해서 왜 길버트 경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펠릭스는 상관없었다. 펠릭스도 굳이 묻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동료들의 신뢰를 얻은 것으로 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이제 좀 편안히 쉴 수 있겠군."

펠릭스는 자신의 배낭을 챙겨들고 소대 대기막사를 향해 가기 시작했다. 뒤늦게야 졸음이 몰려왔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4

  • 작성자
    Lv.99 니푸르
    작성일
    16.04.23 11:45
    No. 1

    제발 저러지만 않으면 돼에서 터졌습니다ㅋㅋ
    재미있게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夢ster
    작성일
    16.04.23 11:56
    No. 2

    라루사님 늘 댓글 감사합니다. ^^/
    좋은 주말 되시길.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0 테사
    작성일
    16.04.23 12:24
    No. 3

    제 발 ... 띄워쓰기 고치셔야겠어요, ㅎㅎ 펠릭스의 장점은 본성이 밝고, 성실하다는 게 아닐까 싶어요. 캔디형이라고 할까.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夢ster
    작성일
    16.04.23 12:31
    No. 4

    헛 수정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캔디...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군요. ^^;

    테사님 늘 댓글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도수부
    작성일
    16.04.23 12:31
    No. 5

    늘 좋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夢ster
    작성일
    16.04.23 12:32
    No. 6

    도수부님 늘 대글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3 解愁
    작성일
    16.04.23 12:47
    No. 7

    띄워쓰기 고치시면서 제발이 재발로 바뀌었습니다.. ^^;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夢ster
    작성일
    16.04.23 13:58
    No. 8

    엇 그러네요. ^^;;
    바꿀 때마다 뭔가 다른 문제가 생기는 군요...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해수님 늘 댓글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1 韓熊
    작성일
    16.04.23 12:50
    No. 9

    기사에 대한 오해같은데 그놈의 소드맛스타때문에 검들고 닥돌하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검 창 활 도끼 체술등 종합무술과 교양 장비관리등을 종자시절에 익히죠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夢ster
    작성일
    16.04.23 14:11
    No. 10

    음... 오해라기 보다는
    세계관 상의 설정이라고 해야 할까요?
    활을 싫어하는거지 안 쓰는게 아니니까요.

    그리고 이 세계에서는 기사의 기준이 오러에 따르는 상황이라...

    종자 생활을 거치는 경우도 있지만
    펠릭스의 경우는 거치지 않았습니다.

    물론 한웅님 말씀대로 종자생활 거치면서
    일반적인 무술과 교양 등에 대해서 배우는
    가문의 기사들도 있습니다.

    간략하지만 1부에서 잠깐 스쳐가듯 설명한 부분도 여러번 있을겁니다.

    크게 일반 중세 상식에서 벗어나지는 않겠지만
    설정상 조금씩 바뀌는 부분은 있을겁니다.
    (애초에 오러라는 초인적인 힘이 나오면서
    조금씩 바뀌는게 아니라 확 바뀌어 버린 듯 합니다만. -_-;;)

    그냥 그러려니 생각해 주시길.

    댓글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0 갈남자
    작성일
    16.04.23 13:13
    No. 11

    주말 덕분에 따뜻하게 시작 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夢ster
    작성일
    16.04.23 14:11
    No. 12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2 JackieYo..
    작성일
    16.04.25 17:26
    No. 13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夢ster
    작성일
    16.04.27 19:06
    No. 14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펠릭스전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77 276 +16 16.06.16 4,058 133 20쪽
276 275 +16 16.06.12 4,308 131 21쪽
275 274 +16 16.06.11 4,170 148 20쪽
274 273 레드숄더. +22 16.06.02 4,799 129 25쪽
273 272 +32 16.05.31 4,452 137 34쪽
272 271 +30 16.05.23 4,771 136 36쪽
271 270 +18 16.05.14 4,525 128 25쪽
270 269 +30 16.05.11 4,579 124 28쪽
269 268 +22 16.05.07 4,458 135 22쪽
268 267 +22 16.05.02 4,286 143 21쪽
267 266 +18 16.05.01 4,328 149 19쪽
266 265 스승과 가족. +14 16.04.29 4,451 141 17쪽
» 264 +14 16.04.23 4,099 150 19쪽
264 263 +12 16.04.22 3,980 147 17쪽
263 262 +16 16.04.18 4,187 154 26쪽
262 261 +26 16.04.13 4,276 157 38쪽
261 260 +14 16.04.08 4,244 144 17쪽
260 259 +12 16.04.07 4,299 155 27쪽
259 258 +20 16.04.02 4,380 142 22쪽
258 257 오명과 명성. +14 16.04.01 4,635 139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