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mongster 님의 서재입니다.

펠릭스전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夢ster
작품등록일 :
2014.12.22 00:00
최근연재일 :
2016.12.28 16:59
연재수 :
292 회
조회수 :
2,567,381
추천수 :
63,526
글자수 :
1,813,839

작성
16.04.13 12:57
조회
4,275
추천
157
글자
38쪽

261

DUMMY

261


오후 훈련이었다.

"크으윽~"

"더 천천히!"

펠릭스는 오러를 끌어내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그러나 지켜보고 있는 드비어스 경은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시선은 다른 쪽에 둔 채로 연신 펠릭스에게 천천히 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칼과 펠릭스에게 각각 안드레아 경과 드비어스 경이 훈련 지도를 하기 위해 붙어있었다. 펠릭스에게는 드비어스 경이 붙어있었다.

처음에는 대련훈련일거라 예상하던 펠릭스는 슬쩍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드비어스 경은 펠릭스에게 오러를 담은 제식검술을 해 보라고 시켰던 것이다.

그리고는 시작하자마자 불만을 표시했다.

"천천히!"

"예?"

"더 천천히 펼쳐보라고."

"하 하지만··· 알겠습니다."

가뜩이나 무뚝뚝한 드비어스 경이었다. 긴장하며 기다리고 있던 펠릭스는 별 말없이 지시에 따라야했다. 드비어스는 피셔와는 또 다르게 펠릭스가 소대에서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펠릭스가 천천히 제식검술을 펼쳐도 드비어스의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한번을 펼치고 두 번째가 되어도 드비어스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하라고 할 뿐이었다.


"더 천천히!"

"하지만 드비어스 경, 이 이상 어떻게 더 천천히 펼친단 말입니까?"

벌써 두 번이나 연속으로 오러를 담아 제식검술을 펼친 다음이었다. 이제는 슬슬 펠릭스의 오러도 간당간당 하는 상태였다.

"흠~"

펠릭스의 대답에 드비어스는 또다시 힐끗 옆을 보더니 별수 없다는 듯 펠릭스에게 다가갔다.

"어디 다시 해 봐!"

"예?"

"처음부터 다시 해보라고."

"예."

펠릭스는 다시 검에 오러를 담아 제식검술을 펼치기 시작했다. 제식검술의 첫 동작인 상단내려치기에 들어가려는 순간이었다.

'찡!'

"어?"

드비어스는 검을 빼들더니 상단내려치기를 하려는 펠릭스의 검 을 막아 세우듯 자신의 검을 가져다댔다.

"흐윽!"

검에 부하가 걸리자 펠릭스의 손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드비어스는 그냥 적당히 검을 마주 댄 것이 아니었다. 지렛대의 원리로 펠릭스가 검에 힘을 주기 가장 어려운 검의 끝 부분에 자신의 검을 대고는 움직임을 막아 세운 것이었다.

"그대로 실전의 적을 상대한다는 느낌으로, 천천히! 힘을 줘!"

"으으윽!"

펠릭스는 쥐어짜듯 자신의 검에 오러와 함께 힘을 불어넣었다. 검은 바르르 떨리며 겨우 하단까지 내려왔다. 그제야 드비어스는 자신의 검을 떼어냈다.

하지만 펠릭스가 제식검술의 다음 동작인 수평 베기에 들어가자 다시 자신의 검으로 펠릭스의 검을 막아 세웠다. 이번에도 펠릭스의 검 끝부분이었다.

'쩡!'

"단순히 검술의 동작을 흉내 낸다고 생각하지마라! 정말로 자신의 검에 상대의 검이 마주하고 있다고 생각해! 여기서 밀리면 죽는다고 생각해라!"

"크으윽!"

또다시 부하가 걸리자 펠릭스는 죽을힘을 다해 오러와 힘을 검에 불어넣었다. 펠릭스의 검은 그제야 드비어스 경이 원하는 만큼 '천천히' 움직인 모양이었다. 자신이 제어를 하고서야 드비어스의 입에서는 '천천히'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 후로 펠릭스가 제식 검술을 끝마칠 때까지 드비어스 경은 계속 자신의 검으로 펠릭스의 검을 가로막아 일부러 부하를 줬다.


"헉! 헉!"

훈련이 끝나자 펠릭스는 양손을 바닥에 짚은 채 무릎을 꿇었다. 겨우 제식검술 한 번에 이렇게까지 지칠 줄은 몰랐다. 오러도 체력도 바닥이 난 것 같았다.


"타고난 오러력은 별로군. 내가 보기에는 아마 평생 수련해야 엑스퍼트 중급정도일거야."

"예, 저도 알고 있습니다. 다들 그렇게 얘기하더군요."

드비어스의 말에 펠릭스는 풀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자신이 고민하는 문제 중 하나였던 것이다. 이제 와서 드비어스에게 들을 필요도 없었다.

"휴~"

드비어스는 펠릭스의 태도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또다시 옆을 보며 짜증 섞인 표정을 짓더니 돌아서서 펠릭스를 향해 뭔가 말을 하려다 망설였다.

드비어스의 계속되는 이 행동에 펠릭스는 드비어스가 보던 방향을 봐라봤다.

그곳에는 어느새 안드레아 경이 씩 웃으며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그 뒤로는 칼이 탈진 한 듯 드러누워 하늘을 보고 있었다. 안드레아 경과 칼의 훈련이 먼저 끝난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군."

결국 드비어스는 말을 해주기로 마음을 먹은 모양이었다.

"내가 보기에 네 고램 조종 실력은 상당히 괜찮은 편이야. 그리고 검술도 그 정도면 그 나이또래에는 우수한 편이야."

"그 그렇습니까?"

뜻밖에 드비어스의 칭찬에 펠릭스는 잠시 당황했다.

훈련을 시작할 때만해도 무뚝뚝한 드비어스였다. 지금 갑자기 말이 많아진 것만도 놀라웠는데 자신을 칭찬해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계속 자신이 펼치는 제식검술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 마지막에는 자신의 검으로 막아 세워 훈련을 시켰기에 더 그랬다.

"분명 최근에는 오러력을 키우는데 집중해서 엑스퍼트의 상위로 가는 사람들이 많지. 하지만 꼭 그 방법만이 상위 엑스퍼트로 가는 길은 아니다."

"아!"

드비어스의 말에 펠릭스는 지난겨울 헨리와 나누었던 말이 떠올랐다.

"그렇죠. 오러와 기술의 균형을 이루거나 한쪽에 지우치는 방식. 다른 방법도 있었죠."

엑스퍼트 중급에 오르는 세 가지 방식에 대한 얘기였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여러 가지 일로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쪽 가문에서는 셋으로 분류하는가 보군. 뭐 상관없지. 결국은 같은 얘기가 될 테니."

드비어스는 말없이 자신의 검을 들어 제식검술을 펼쳐 보이기 시작했다. 상당히 느리지만 어딘가 무게감이 느껴졌다. 제식검술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모든 검술에는 나름의 철학과 이론이 있다. 제식검술이라도 예외는 아니야. 단순해 보이는 이 제식검술이라도 수련방법에 따라, 펼치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지지. 그리고 그 중심에는 시전자가 어떻게 검에 오러를 운용하는가. 검술의 형을 어떻게 이해했는가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 모든 것은 시전자의 깨달음이 바탕이 되지."

"깨달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입니까?"

"그렇다기보다는 어떻게 다음 상위 엑스퍼트가 되던 그 바탕에는 깨달음이 같이해야 한다는 얘기다. 오러만 강하다고 그것만으로 엑스퍼트 중급에 오를 수는 없다. 네가 말한 것처럼 기술이나 오러에 치우치던 혹은 양쪽의 균형을 이루던 결국 그 바탕에는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는 거다. 그 다음 어떤 방식으로 엑스퍼트 상급이 되던 상관이 없다는 거지. 바꿔 말하면···."

드비어스는 갑자기 시범을 중단하고 펠릭스를 정면으로 바라봤다.

"오러가 아니라 검술에 집중해도 깨달음을 얻으면 부족한 오러의 재능에 상관없이 엑스퍼트 중급이 될 수 있다는 거다."

"그 그럼 저도! 오러의 재능이 없는 저도 중급이 될 수 있다는 겁니까?"

드비어스의 말에 펠릭스는 놀라서 큰소리로 물었다.

"이론상으론 그렇다. 물론 그래도 일반적으로 오러나 재능을 타고난 쪽이 확실히 각성이 빠른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드비어스는 저쪽에 드러누워 있는 칼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러다 안드레아 경과 시선이 마주치자 다시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렸다.

"쳇!"

드비어스는 자신의 검을 검집에 넣으며 펠릭스를 나무라듯 말했다.

"그러니 너무 안달하지 마라! 말했듯 네 녀석의 고램 조종 실력과 검술은 나쁘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최근 아침 오러력 강화연습 때마다 네 녀석이 조급해하는 모습을 보면 괜히 나도 답답해진단 말이야! 그러다 또 마음에 빈틈이 생기면 어둠의 안내자가 찾아오는 거야! 대체 무엇 때문에 무의 수련을 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을 해봐!"


드비어스가 말을 마치자 갑자기 박수소리가 들렸다.

'짝짝 짝짝!'

"이야~ 드비어스 경으로는 보기 드문 강의였어!"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안드레아 경이 끼어들었다.

"큭!"

드비어스는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안드레아를 노려보다 곧 눈을 감고 화를 삭였다. 그리고는 갑자기 펠릭스를 보며 말했다.

"자! 이걸 방어해봐!"

"예? 헛!"

드비어스는 갑자기 검을 뽑을 자세를 잡았다. 펠릭스가 다급하게 자세를 잡자 오러를 담은 검을 뽑아 휘둘렀다.

'깡~!'

"크흑!"

가까스로 드비어스의 일격을 막아낸 펠릭스는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났다. 검을 잡은 손이 부르르 떨려왔다.

"이 이건?!"

펠릭스도 기억에 있는 충격이었다.

3학년 고램 실습당시 제시 교관과의 대련에서 느꼈던 충격이었다. 고램 대 고램의 대련이었지만 제시 교관이 제대로 휘두른 검을 마주하면 그야말로 손끝에서부터 머릿속까지 울렸던 것이다.

"나도 아직 자유자재로 구사하지는 못해. 하지만 방금 수련을 반복하면 너도 할 수 있을 날이 올 거다. 물론 고램으로도 말이야."

펠릭스가 지금의 일격에 대해 미처 물어보기도 전이었다. 드비어스는 검을 다시 검집에 집어넣고는 몸을 돌렸다.

"여기까지!"

놀란 펠릭스의 표정을 뒤로하고 드비어스는 성큼성큼 멀어졌다.


"매정한 녀석! 좀 더 친절하게 설명해줘도 될 텐데."

"안드레아 경."

드비어스가 사라지자 지켜보던 안드레아가 펠릭스에게 다가왔다. 여전히 얼굴에는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저 녀석 말이나 행동은 저래도 꽤나 펠릭스 경이 마음에 들었나 보군."

"예? 저를요?"

"방금 그 제식검술 수련법 말이야."

"예."

"그거 드비어스 가문의 수련비법이거든. 그것도 내가 보고 있는 걸 뻔히 알면서 자네에게 가르쳐 주다니···."

"예?!!"

안드레아의 말에 펠릭스는 깜짝 놀라 드비어스가 사라진 방향을 다시 바라봤다. 그러나 드비어스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이거 참 미안하게 됐군. 괜히 나 때문에 좋은 기회를 놓쳤으니. 대신이라고 하기엔 뭣하지만 나머지 연습시간은 나하고 같이 해볼 텐가? 어차피 칼 경도 벌써 저 모양이고 말이야."

안드레아는 자신의 뒤에 있는 칼을 가리키며 말했다. 칼은 겨우 정신을 차린 듯했다. 이제는 일어나 앉아서 무언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었다.

"칼? 대체 무슨 훈련을 시키신 겁니까?"

"뭐 딱히 특별한 훈련은 아니야. 네 친구는 타고난 재능이 뛰어나니 기존의 재능을 좀 더 깊이 발휘할 수 있는 힌트를 좀 줬을 뿐이지."

"기존의 재능을 깊이 발휘하는 훈련··· 이란 말이죠."

안드레아의 말에 펠릭스는 미심쩍은 얼굴로 칼과 안드레아를 번갈아 바라봤다.

학교에서부터 칼을 봐왔던 펠릭스였다. 항상 우수한 성적의 칼이 이렇게 단시간의 훈련에 지쳐 나가떨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 악명 높았던 제시 교관의 훈련에도 이정도 단시간은 아니었다. 대체 어떤 훈련이기에 저렇게 금방 칼을 지치게 했을지 궁금하기보다는 슬쩍 두려워졌다.



안드레아 경은 소대의 최고 실력자로 꼽혔다. 어쩌면 선임 기사인 길버트 경이나 리차드슨 경보다 더 실력이 뛰어날지 모른다는 얘기도 있었다. 항상 옅은 미소를 얼굴에 띤 온화한 성격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소대에서 제일 이해하기 힘든 인물이기도 했다.


드비어스 경은 말수가 없고 무뚝뚝해 접근하기 힘든 성격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알기 쉬운 성격이기도 했다.

반면 안드레아 경은 정반대의 성격으로 보임에도 어딘가 쉽게 친해지기 어려운 성격이었다.

소대 3인자를 자처하며 요란하게 다가가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는 피셔도 안드레아의 말만큼은 거역하지 못했다. 아니 은근 소대원 전체가 안드레아의 눈치를 보는 듯했다.

그동안 펠릭스가 경험한 안드레아 경은 마치 이야기속에 등장하는 악당들의 배후에 존재하는 흑막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선임기사들 몰래 무언가 나쁜 짓을 하거나 내부에서 권력을 휘두르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리차드슨 경이나 길버트 경의 지시나 권위를 거스르거나 하지 않았고 관계도 좋아보였던 것이다.


이상한 점은 또 있었다. 레논에게 듣기로는 안드레아 경과 드비어스 경이 모시는 두 가문은 서로 적대적인 관계라고 했다.

그럼에도 이들 두 사람은 항상 붙어 다녔다. 좀 전 식당에서도 그랬다. 심지어 두 사람은 전장에서도 붙어있었다.

방금 드비어스 경의 반응으로 보건데 분명 두 사람은 서로 적대적인 관계인 것이 분명해 보였다. 아니, 드비어스 경이 일방적으로 안드레아 경을 경계하는 듯 보였다.


항상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펠릭스로서는 이 속을 알 수없는 인물이 어쩌면 소대에서 대하기 제일 불편한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때? 자네도 한번 해 볼 텐가? 별로 이론이 어려운건 아니야. 그보다는 센스가 필요한 훈련이지."

안드레아 경이 웃으며 펠릭스에게 말했다. 펠릭스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보였다. 안드레아 경은 이미 펠릭스의 옆으로 바짝 다가와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말입니까?"

"그래, 좀 더 검에 집중해봐. 오~ 이거 놀라운데? 자네가 칼 경보다는 이쪽에 센스가 있는가봐?"

"그 그렇습니까? 하하!"

안드레아의 칭찬에 펠릭스는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훈련은 별 대단한 게 아닌 듯했다. 오러를 자신이 의도하는 대로 신체 각 부위에 집중하거나 분산하는 훈련이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펠릭스는 이미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지난겨울 펠릭스가 세세한 오러의 흐름을 느낀 이후로 자연스럽게 깨달은 것이었다.


일리아드 영지는 남쪽이 모두 산과 숲이었다. 세세한 오러의 운용을 깨달은 펠릭스는 그 후 훈련 때 인근 산으로 갔다. 나무가 빽빽하고 비탈진 산길이나 숲속에서 좀 더 빠르게 움직이기 위해 그 깨달음을 활용했다. 후기 훈련소에서 다리 부분에 오러를 집중해 나무를 타고 달린 것은 그 응용이었던 것이다.


펠릭스가 신체 여기저기에 한 번씩 오러를 집중 하고나자 안드레아는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그리고 그제야 펠릭스는 칼이 저렇게 단시간에 뻗어버린 이유를 알게 되었다.

"좋아. 그대로 몸의 오러를 전부 검을 든 팔에만 집중해봐."

"예? 전부요?"

"그래, 한번 해봐!"

펠릭스는 깜짝 놀랐으나 안드레아는 별일 아니라는 듯 웃으며 말했다. 쉽사리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오러는 생명에너지였다. 살아있는 생명이라면 항상 오러가 흘러야 한다는 뜻이었다. 일반인은 기사들처럼 오러를 발출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체내에 오러는 존재했다. 심지어 작은 식물이나 곤충도 살아있는 동안은 체내에 오러가 흘렀다. 그런데 안드레아는 지금 그 흐름을 의식적으로 끊어보라고 한 것이었다.

"걱정 말고 나를 믿고 한번 시도 해봐."

"으음~"

펠릭스는 반쯤 의심스러운 상태에서 안드레아의 지시에 따랐다. 몸의 오러를 온통 오른손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흐읍! 으으윽!"

몸의 오러를 팔에만 집중하자 마치 피가 통하지 않는 것처럼 다른 부분이 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반면 오른팔에는 굉장한 고통이 느껴졌다. 팔이 터져나갈 것 같았다.

"끄으으윽, 아아아악!"

결국 견디다 못한 펠릭스는 오러의 집중을 풀고 털썩 쓰러졌다. 그리고 다시 놀란 눈으로 안드레아를 쳐다봤다.

방금 그 고통 역시 경험에 있었던 것이다.

"이건···."

어둠의 안내자와 마주쳤을 때 그때의 고통이었다. 어둠의 안내자가 펠릭스의 가슴에 억지로 붉은 오러의 덩어리를 집어넣으려 할 때 느껴졌던 그 고통과 유사했던 것이다.

"역시, 초반부터 그러는 건 무리였나?"

펠릭스의 놀란 표정에도 안드레아는 무덤덤했다. 아마도 펠릭스가 왜 놀랐는지 이유를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걸 해 내고나면 다음에는 그 오러를 검과 검을 휘두르는데 필요한 온 몸에 순간적으로 퍼트리는 훈련을 해. 아니, 터트린다고 표현해야 할까?"

안드레아는 자신의 검을 빼들고는 시범을 보였다. 잠시 눈을 감고 집중하더니 순간적으로 오러를 끌어올려 움직였다.

"하앗!"

'파팟! 펑~!'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엄청난 빠르기로 오러를 담은 삼연격 찌르기였다. 찌르기를 선보인 후 안드레아는 잠시 거친 숨을 내쉬었다.

"하~ 하~ 좀 옛날 기술이긴 한데. 아직도 가끔 쓰는 사람이 있거든. 이게 뭐냐면."

"압축기··· 죠?"

"응? 뭐야? 알고 있었던 거야?"

펠릭스는 충분히 놀란 표정이었지만 내심 그 이상의 반응을 기대하던 안드레아는 실망한 표정이었다.

"한번 본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설마 여기서 또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펠릭스는 지난겨울 헨리가 압축기를 펼치며 해 줬던 설명을 떠올렸다. 분명 엑스퍼트 중급 수준의 오러력이 아니면 펼치기 어렵다고 했었다. 그러니 당연히 방금 펠릭스의 오러 집중훈련이 잘 되지 않았던 것이다.


"쳇! 이거 김새는데? 하는 수 없지."

안드레아는 심통이 난 표정으로 검을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한쪽에 준비된 목검 두 자루를 들고 왔다.

"자! 받아!"

안드레아는 목검 한 자루를 펠릭스에게 넘겼다.

"대련을 하는 겁니까?"

"하는 수 없잖아? 압축기를 가르쳐 주려고 했더니 이미 알고 있다니. 드비어스 녀석이 제식검술을 가르쳐 줬으니 나는 대신 서부 검술을 한 수 보여주지."

안드레아는 목검을 들어 자세를 취했다.

"너도 알겠지만 지금 전선에 기사들이 사용하는 검술은 대부분 제식검술이야. 지역마다 차이가 조금씩 있지만 기본적으로 패도적이고 직선적이고 강한 공격위주지. 하지만 서부 쪽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최근에는 전선에서 서부검술을 쓰는 사람도 조금씩 늘어나는 것도 사실이야. 기초가 복잡하고 배우기 어렵지만 서부 검술을 익힌 내가보기에 검술로서 완성도는 서부검술 쪽이 높아. 검사로서 더 높은 경지를 추구하고자 한다면 당연히 서부검술을 익히는 게 좋을 거야."

안드레아는 목검을 들고 자세를 취했다.

"자, 우선 기초만 가르쳐주지."

펠릭스도 잘 아는 자세였다. 하지만 안드레아는 펠릭스가 서부검술의 기본을 알고 있는 걸 모르고 있었다. 펠릭스는 슬쩍 장난기가 돋았다. 그대로 안드레아가 시범을 펼치려는 앞으로 나갔다.


두 사람은 서로 오른쪽 대각선상에 상대를 두고 검을 가운데에서 마주했다.

"자! 검을 쥐고 있는 손목의 움직임과 발의 위치를 잘 보도록 해!"

"이렇게 말입니까?"

'휘리릭!'

펠릭스는 손목을 시계방향으로 틀며 안드레아의 검을 휘어 감았다.

"어?!"

깜짝 놀란 안드레아는 서둘러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펠릭스는 서부검술의 기초대로 상대가 물러선 만큼 다가서며 다시 검을 찔러갔다. 펠릭스의 압박에 안드레아는 몸을 옆으로 빼며 검을 세워 막아섰다.

"핫! 이 녀석! 서부검술도 알고 있었어?"

"예! 기초 정도는 어디서 배웠습니다."

"하하! 녀석! 미리 말했어야지! 어디 그럼 얼마나 하는지 한번 보자고."

안드레아는 펠릭스와 잠시 간단하게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펠릭스의 수준을 시험했다. 어느 정도 펠릭스의 실력을 가늠한 안드레아가 한발 물러서더니 말했다.

"좋아! 그럼 지금부터 제대로 간다!"

"옛!"


"하앗!"

'따닥!'

안드레아는 펠릭스의 오른쪽에서 머리를 노리며 목검을 휘둘러왔다. 펠릭스는 가로막으며 손목을 틀어 안드레아의 검을 휘어 감으려 했다. 그러자 안드레아는 재빨리 가까이 다가와 바인딩을 하려고 했다.

'훗! 좋았어!'

펠릭스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지금까지 펠릭스가 겪어본 서부 검술에는 이렇게 바짝 붙은 바인딩 자세에서의 대응기술은 별로 본적이 없었다. 반면 펠릭스는 한동안 사용하지 않았지만 바인딩 상태에서 쓸 수 있는 변칙기술을 몇 가지 알고 있었다.

오러를 사용하는 대련이라면 위험할지 모르지만 지금 두 사람은 목검을 사용하고 있었다. 때문에 검에 오러는 사용하지 않는 상태였다.

"하앗!"

두 검이 마주친 상태에서 서로 가까이 다가오자 펠릭스는 한손을 풀어 안드레아의 검 손잡이를 잡으려 했다. 그대로 검을 뺏을 생각이었다.

안드레아는 힘으로 검을 한손으로 잡고 있는 펠릭스 쪽으로 밀었다. 여기까지는 펠릭스의 계획대로 되어가는 듯했다. 그러나 곧 펠릭스의 손이 허공에서 헛손질을 했다.

펠릭스의 손이 막 안드레아의 검 손잡이를 잡으려는 순간이었다. 안드레아가 검을 펠릭스의 왼쪽으로 밀치며 빠르게 펠릭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안속을 겁니다!"

펠릭스는 재빨리 검을 오른쪽으로 휘둘렀다. 이미 경험이 있는 수였다. 상대의 모습이 사라진 것은 펠릭스의 오른쪽 어깨 뒤쪽 사각으로 돌아들어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펠릭스의 예상은 들어맞았다.

'땅~'

펠릭스의 휘두르기 공격을 안드레아가 검을 세워 막았다.

"역시!"

"오~ 제법인데?"

펠릭스의 공격을 막아 세운 안드레아는 다시 검을 마주한 채 펠릭스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드드득!'

목검이 마찰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철로 만든 검이라면 아마 불똥이 튀었을 것이다. 좀 전에 펠릭스가 바인딩 된 후 쓰려던 수를 견제하려고 안드레아가 일부러 마주한 검을 이리저리 비틀고 있었던 것이다.

"자! 그럼 진짜로 간다!"

"옛!"

펠릭스가 힘으로 안드레아를 밀어내자 안드레아는 일부러 펠릭스의 오른쪽으로 밀려났다. 다시 펠릭스의 오른쪽으로 돌아들어가려는 것이었다.

펠릭스는 다시 검을 옆으로 휘둘러 견제를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검이 마주치지 않았다. 안드레아는 허리를 ㄱ자로 크게 굽힌 채로 몸을 빙글 돌렸다. 동시에 묘한 발걸음으로 다리를 크게 벌려 뛰더니 다시 펠릭스의 오른쪽 뒤로 돌아들어갔다.

"익!"

펠릭스는 또다시 검을 오른쪽으로 힘껏 휘둘렀다.

'땅!'

이번에는 다시 검이 마주쳤다. 그러자 안드레아는 이번에는 펠릭스가 휘두른 검의 반동을 이용해 다시 펠릭스의 오른쪽 뒤로 더 깊이 돌아들어갔다.

"이런 젠장!"

펠릭스는 몇 번 헛손질을 하고나자 바로 지금 처한 상황의 문제를 깨달았다.

안드레아는 마치 펠릭스의 주변을 춤을 추듯 빙글빙글 회전하며 돌고 있었다. 가끔은 펠릭스의 공격의 힘마저도 역이용했다. 그러면서 뒤로 돌아가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펠릭스는 자연스럽게 안드레아의 움직임에 끌려가 오른쪽으로 따라 돌았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자신의 시야에서 상대를 놓치고 공격 범위에서 안드레아가 사라지자 공격 패턴이 단순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오른쪽으로의 수평 베기 한 가지가 그것이었다.


당연히 안드레아 경의 입장에서도 예측이 쉬웠다. 일일이 펠릭스의 공격을 검으로 막지 않고 피하는 것으로 봐서 상당히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아마도 봐주지 않고 공격으로 전환했다면 몇 번은 펠릭스의 몸에 검이 닿았을 상황이었다.

"설마 벌써 지친 건 아니지? 움직임은 이쪽이 더 많다고!"

"천만에요!"

펠릭스는 재빨리 회전 방향을 전환했다. 왼쪽으로 급선회 하면서 반격을 노린 것이었다.

"헙!"

그러나 몸을 돌리던 펠릭스는 급히 숨을 삼키며 움직임을 멈췄다. 채 반도 돌기 전이었다. 어느새 멈춰선 안드레아의 목검이 자신의 목에 닿아있었다.

"안되지 그렇게 성급해서는."

안드레아는 검을 다시 거둬들이며 웃었다.

"생각해봐. 그 상태에서 왼쪽으로 몸을 돌리면 상대에게 자신의 품을 열어 보이는 거잖아.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그렇게 움직여서는 안 되지."

"그 그렇죠."

펠릭스도 바로 수긍할 수 있었다. 얼핏 생각하기엔 회심의 수라고 생각했는데 조급했던 것이다.


상대는 자신의 오른쪽 뒤로 돌고 있었다. 거기서 자신이 왼쪽으로 돌면 우선 오른손에 든 자신의 검이 상대에게 닿을 시간이 오래 걸렸다. 거기다 상대에게 자신의 급소인 왼쪽 가슴을 그대로 노출시키는 결과가 되는 것이었다.


"자! 다시 해봐!"

안드레아와 펠릭스는 다시 검을 마주했다. 대련이 시작되자 펠릭스는 이번에는 재빨리 손목을 돌려 안드레아의 검을 휘감았다.

"하앗!"

'휘리릭!'

아무리 생각해도 방금 그 기술의 대응책을 생각해내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급히 생각해 낸 것이 상대의 검을 옭아매 움직이지 못하도록 할 생각이었다.

칼과 검문소에서 대련을 할 때도 어느 정도 먹혔던 수였다.

"호~ 움직임을 막겠다는 생각은 좋은데 뭘 잊은 거 같지 않아?"

안드레아는 펠릭스가 휘감아오는 반대방향으로 손목을 돌려 검을 풀어내며 말했다.

"헛!"

"이런 근접한 상태의 수 싸움은 이쪽이 위라고!"

서로의 손과 발이 빠르게 움직이며 몇 번 서로의 검이 얽히고설켰다.

안드레아의 말 대로였다. 서부 검술에 능통한 안드레아 경이 펠릭스의 자세나 움직임을 예측해 대응하는 게 훨씬 빠르고 정교했다. 갈수록 안드레아의 검의 속도가 빨라졌다. 거기다 마지막에는 기묘한 움직임마저 보였다.

"허억!"

안드레아의 검이 마치 살아있는 뱀이나 밧줄처럼 느껴졌다. 목검이 굽이굽이 휘어지더니 펠릭스의 검을 역으로 감아왔다.


놀란 펠릭스는 재빨리 검을 빼서 물러서려했다. 그러자 안드레아는 역으로 바짝 다가와서는 펠릭스의 검을 휘감아 눌러 내렸다.

"크으~"

펠릭스는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안드레아는 여유 있게 펠릭스의 움직임을 봉쇄했다.

"힘으로 푸는 게 아니야. 마지막까지 상대의 움직임을 잘 봐. 손목의 움직임. 힘의 균형점이 어디에 있는가를 잘 살피라고."

"지금 그렇게 대응하고는 있습니다만···."

펠릭스는 안드레아의 손목 자세와 누르고 있는 검의 위치를 보며 반대로 틀어 풀어내려고 힘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안드레아가 한 수 앞서 손과 발의 자세를 바꾸고 있었다.


잠시 후 펠릭스가 겨우 검을 풀어 올리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펠릭스의 검을 내리누르고 있던 안드레이가 오히려 먼저 검을 풀고는 펠릭스의 힘을 역이용해 검을 대각선 위로 쳐 올렸다.

"엇!"

펠릭스는 검이 왼쪽 위로 튕겨 올라오자 또다시 시야에서 안드레아를 놓치고 말았다. 그 사이 안드레아는 다시 자세를 낮추며 빙글 회전해 펠릭스의 오른쪽 옆구리 사이로 빠져나갔다.

"또?! 당했다!"

전황은 또다시 전과 같이 변해버렸다. 변변한 대응책을 찾지 못했던 펠릭스는 또 안드레아에게 급소를 내주며 패배했다.


서너 번의 대련에서 비슷한 방법으로 모두 패한 펠릭스는 이제 체력마저 고갈되어 거친 숨을 내쉬었다.

"하아~ 졌습니다. 완패입니다."

"아니, 그 정도면 제법 잘했어."

안드레아는 펠릭스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격려했다. 펠릭스는 가만히 호흡을 고르며 방금 대련을 복기하기 시작했다.


패배의 원인은 물론 격이 다른 실력 차였다. 최소 엑스퍼트 중급이상으로 보이는 안드레아 경은 실력뿐만 아니라 경험도 풍부해보였다.

우선은 자신의 오른쪽 후위로 돌아들어가는 안드레아의 발을 막지 못한 게 컸다. 일단 상대가 자신의 시야에서 사라지자 거기서부터 상대에게 끌려 다닌 셈이었다.

그 보법을 막기 위해 억지로 바인딩을 걸려고 하면 오히려 힘을 역이용해 다시 벗어났다. 거기다 가까운 거리에서 검을 마주한 접전에서의 그 검의 움직임.

그러고 보니 후기 훈련소에서 서부 검술을 훈련할 때 세비안이 하던 말이 떠올랐다. 글랜포드 교관이 나무덩굴을 건네주자 세비안은 되도록 유연한 물체를 잡고 연습하는 게 좋다고 했던 것이다.

"그 훈련은 지금의 검의 움직임을 만들기 위해서였군."


안드레아는 펠릭스가 한참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한발 물러나 펠릭스의 주변에 원을 그렸다. 펠릭스의 검의 범위를 나타내는 원이었다.

"지금부터 보여줄 것은 서부 검술의 비법중 하나인 자유로운 중심이동이야. 서부 검술의 기초 훈련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각자 상대의 압박에서 벗어나는 기술을 찾게 되지. 이 보법은 내가 찾아낸 그 해결방법이야."

안드레의 말에 펠릭스는 다시 세비안과 후기 훈련소에서 나누었던 말이 떠올랐다. 세비안도 비슷한 말을 했던 것이다.


'서부검술 기초 훈련의 최종목적은 상대의 강한 압박과 힘에서 벗어나는 거야. 나비검은 따로 기술을 만든 게 아니라 그런 훈련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결과물 같은 것일 뿐.'


그러자 펠릭스는 방금 그 상황에서 나비검을 썼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펠릭스도 나비검을 쓸 줄은 알았지만 어떤 타이밍에 썼어야 할지 감이오지 않았다. 기술을 알고 있는 것과 그 기술의 의미를 이해하고 상황에 맞게 응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자신은 아직도 기술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었다.


"자! 이번만 특별히 보여주는 거야!"

펠릭스의 원 옆에 선 안드레아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더니 곧 오러를 끌어올려 검술을 펼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유연한 찌르기와 함께 발이 펠릭스 주변에 그려진 원의 경계선을 따라 움직였다. 그러더니 곧 좀 전처럼 빙글 돌기 시작했다.


"우와~"

펠릭스는 멍하니 입을 벌리고 안드레아의 검술 시범을 바라봤다. 마치 춤을 추는 듯 한 움직임이었다.

안드레아는 원의 경계선을 따라 돌다 멈추더니 그 자리에서 회전하며 떠올라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는 착지하자 허리를 굽혀 반대방향으로 회전하더니 옆으로 훌쩍 뛰어 이동했다. 그리고 다시 제자리에서 회전하며 뛰어올랐다.

직선적인 움직임은 거의 없었다. 비슷한 패턴으로 반복해서 옆으로 옮겨가며 물 흐르듯 끊어짐 없는 검술이 펼쳤다.


펠릭스는 세비안의 나비검 이후로 이토록 우아한 검술은 처음 보았다. 세비안은 기술하나였지만 지금은 전체 완성된 검술의 형을 가까이에서 보고 있었다.

지난겨울 볼거 부기사단장이 서부검술에 능통한 자를 소드 댄서라고 부른다는 이유를 이제야 알거 같았다.


시범이 끝이 나자 어느새 펠릭스가 서있는 원을 중심으로 6개의 작은 원이 꽃잎처럼 그려져 있었다. 각각의 작은 원들의 중심은 펠릭스 주변의 큰 원에 접해있었다.


"소드 댄서··· 이십니까?"

"뭐? 하하하! 그 말도 아는 거야? 하지만 아니야. 애석하게도 아직 에덜라드인 중에 소드 댄서로 인정받은 사람은 없어."

펠릭스는 안드레아가 그려놓은 바닥의 그림을 살펴보며 물었다.

"서부검술의 기초훈련을 할 때는 두 개의 접한 원 안에서 하는 게 아니었나요? 이러면 벗어난 게 되지 않습니까?"

"그런가? 그러면 그런 규칙을 누가 정했는데? 실전에서도 두 개의 원 안에서만 싸울 거야?"

안드레아의 말에 펠릭스는 할 말을 잃었다. 분명 그 말 대로였다. 훈련이란 늘 실전을 대비해서 하는 것이었다.

"사실 어떻게 보면 그 기초훈련의 또 다른 목적은 그런 선입관을 깨는 거라고 할 수 있지."

말을 마친 안드레아는 목검을 한쪽으로 치우기 시작했다. 훈련을 종료하려는 것이었다.


훈련을 종료하면서 안드레아는 마지막으로 조언을 해 주었다.

"대련을 할 때 말이야. 오러는 검에만 쏟아 넣는 게 아니야. 무작정 강하게 발출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예?"

"서부 검술의 기초 훈련을 할 때 수건을 이용한다는 얘기는 들어봤니?"

"음~ 밧줄을 이용한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나무 덩굴을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오, 그것도 괜찮은 재료군. 아무튼 소재가 중요한 게 아니라 훈련의 내용이지. 그 훈련은 검의 움직임에 유연성을 주기위한 훈련이니까."

"역시, 좀 전에 안드레아 경의 움직임을 보고 그럴 거라 예상은 했었습니다."

안드레아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펠릭스의 목검을 받아 한쪽 병기대에 걸었다.


"그러면 오러에 대해서 말인데. 대련이나 대결을 할 때 검에만 오러를 집중해야 할까? 아니면 그저 검과 함께 온몸으로 오러를 발출해야 할까?"

"예?"

"오늘도 그렇고 보통 오러력 강화 훈련은 그럼 어떤 의미가 있지? 방금 자네가 드비어스 경과 함께한 그 오러력을 발출하며 한 제식검술은 어떤 목적으로 한 걸까? 검술과 오러력은 어떤 관계가 있는 거지?"

"흐음~"

펠릭스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동안 오러력 강화 훈련에 대해서는 별로 크게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학교에서나 훈련 중에 오러를 쓰는 게 허락된 이후에도 그저 그러려니 생각했었다.

엑스퍼트가 되고난 이후 세세한 오러의 운용을 깨달은 다음에도 대련이나 오러력 훈련에 그렇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던 것이다.

단지 예전처럼 요란하게 밖으로 오러의 빛을 내지 않고 속으로 갈무리 하는 게 달라졌을 뿐이었다.


"검술을 펼치면서 발휘하는 오러의 운용도 몸의 움직임과 힘의 흐름, 중심의 변화에 따라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그게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안드레아의 얘기에 펠릭스는 옆의 칼을 바라봤다. 칼은 펠릭스와 안드레아의 대련에는 아랑곳없이 자신의 오러 집중 연습에 한창이었다.

"조금 전 칼에게 줬다는 힌트는 그 오러의 효율적 운용에 관한 것이었습니까? 그 압축기를 쓰기 전에 했던 연습이 바로 그 기초였던 겁니까?"

안드레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내가 펼친 검술의 움직임도 그래. 몸의 오러를 미세하게 조종해서 동작을 펼치는데 필요한 곳에 집중하면 그런 움직임이 가능하지. 심지어 더 곡예처럼 움직이는 것도 가능해. 그러니 검을 사용할 때도 마찬가지야. 같은 찌르기라도 몸의 오러를 어떻게 운용하는가에 따라 그 특징이 달라지지."

그러자 펠릭스도 뭔가 깨닫는 게 있었다.

"그럼 좀 전에 드비어스 경이 보여준 그 중검술도 그런 겁니까?"

이번에도 안드레아 경은 말없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검술에는 오러 흐름에 대한 고유의 수련법도 같이 있어. 보통은 검술과 함께 자연스럽게 전수되지. 검술의 형을 연습하는 사이에 어느새 몸도 그때 몸에 흐르는 오러에 익숙해지는 거야. 뭐 우리 서부검술이 보기에 제식검술을 기본으로 하는 다른 검술의 오러 운용법은 대부분 너무 단순해서 하찮아 보이지만. 하긴, 가끔 중검술 같은 보기 드문 기법도 나오기는 하지."

안드레아의 말에 펠릭스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처음 듣는 얘기였다. 지금까지 검술을 익혀오며 한 번도 그런 건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지금 에덜라드에는 크게 두 종류의 검술이 있지. 제식검술을 바탕으로 한 검술과 웨스터랜드에서 들어온 서부검술. 펠릭스 경은 고램 라이더이니 싫으나 좋으나 제식검술을 바탕으로 한 검술을 익혀야겠지. 가문이 동부 귀족이니 익힌 검술의 바탕도 그렇고. 하지만 상위 엑스퍼트의 길을 노린다면, 특히나 부족해 보이는 그 오러의 재능을 어떻게 보완하려 한다면···. 다른 검술들에도 한번 눈을 돌려봐. 특히 그 검술들 속에 오러의 운용이라든지 말이야. 틀림없이 도움이 될 거야."

"그건 좀 더 가르쳐 주실 수 없습니까?"

"내걸?"

펠릭스는 간절한 눈빛으로 안드레아를 쳐다봤다. 그러나 안드레아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무래도 그건 아닌 거 같군. 서부 검술은 주어진 문제에서 각자 해결책을 찾아가는 방식이야. 내 오러의 운용법은 내 검술의 깨달음과 같이 가지. 자네의 검술에 적용하기는 무리야. 그리고 이 검술과 오러의 운용법은 우리 가문의 비밀이라고. 한번 본 것으로 만족하게."

"그렇습니까?"

펠릭스는 짐짓 실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어뜨렸다.

"너무 그런 표정 짓지 마. 좀 전에 압축기 시범을 보이기전에 오러의 집중과 분산에 대해서 설명했었지?"

"예."

"그게 기본이야. 제식검술이던 서부검술이던 심지어 크로비스군의 검술이나 동부 이스테로드 제국의 검술도 오러의 운용의 기본은 그 집중과 분산에서 시작하는 거야."

안드레아는 한쪽에 벗어둔 망토와 옷가지를 다시 걸쳤다.

"한때는 말이야. 지금처럼 전쟁으로 휴페리온 대륙이 분단되기 전에는 기사들도 검술의 교류를 통해 오러의 수련법이나 엑스퍼트의 체계를 만들려는 노력이 있었어. 마치 마법사들의 마법체계가 현자 하이베르크에 의해 정립된 것처럼. 지금도 그런 시도를 하는 기사들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안드레아는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설래 설래 흔들었다.

"그래도 혹시 누가 알겠어? 펠릭스 경, 자네가 그 통일체계를 세울 장본인이 될지 말이야. 물론 지금으로 봐선 자네보다 저쪽이 가능성이 훨씬 높아 보이지만."

두 사람은 한쪽에 혼자 연습을 하고 있던 칼을 바라봤다.


칼은 어느새 일어나서 한참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면서 몸의 오러도 자유자재로 운용하고 있었다. 몸의 곳곳의 오러의 빛이 이쪽저쪽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더니 멈춰 서서 오러를 가라앉혔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하앗!"

'파팡~! 펑!'

조용하던 칼이 순간적으로 움직였다. 그러자 파공음과 함께 바닥이 패였다.

압축기였다. 아직 불완전 했지만 분명 칼이 펼친 것은 2연격의 압축기가 분명했다.


"올해 중앙기사학교 졸업생들이 대단하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저건 숫제 괴물이로군. 기본을 가르쳐 준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저런 흉내를 낼 수 있다니."

안드레아는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그렇죠? 우리 동기생들의 자랑이랍니다."

펠릭스는 복잡한 심경으로 그런 칼의 모습을 바라봤다. 마음속에선 질투, 경외심, 부러움과 존경이 같이 떠올랐다.

"만약의 얘기지만, 혹시 기사의 수련과 그 체계를 정립하는 인물이 근시일내에 우리 에덜라드에서 나온다면 말이야. 중앙기사학교 출신일 가능성에 내 돈 전부를 걸겠어."

칼을 보면서 안드레아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펠릭스도 그런 안드레아의 말에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작년겨울 볼거 경도 비슷한 취지의 얘기를 한 것 같았다. 어쩌면 중앙기사학교의 교육은 펠릭스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유용했던 걸지도 몰랐다.

그동안 상당기간 에덜라드 각 지역의 검술을 익힌 소년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교류를 할 수 있었던 장소였던 것이다.


칼이 연습을 끝내는 모습을 보자 안드레아 경은 펠릭스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는 멀어졌다. 펠릭스는 멀어지는 안드레아의 뒤에서 말없이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오늘 하루 동안 드비어스 경과 안드레아 경 두 사람에게서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시범과 조언과 보고 들었던 것이다. 심지어 가문의 기사들에게서도 받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그래, 군무도 엑스퍼트 중급으로의 길도 희망은 있어! 절대 포기하지 않겠어!'

펠릭스는 주먹을 불끈 쥐며 속으로 다짐했다.


작가의말

써 놓고 잠시 일이 있어서 올리질 못했네요.

거기다 어디서 나눠야 할지 분량도 좀 고민이었고...


그냥 통채로 올립니다. -_-;;

그래서 오늘 분량은 좀 깁니다.


4월 13일 소중한 한표 다들 행사 하셨기를


항상 부족한 글 읽어 주시는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6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펠릭스전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77 276 +16 16.06.16 4,057 133 20쪽
276 275 +16 16.06.12 4,307 131 21쪽
275 274 +16 16.06.11 4,169 148 20쪽
274 273 레드숄더. +22 16.06.02 4,798 129 25쪽
273 272 +32 16.05.31 4,451 137 34쪽
272 271 +30 16.05.23 4,771 136 36쪽
271 270 +18 16.05.14 4,524 128 25쪽
270 269 +30 16.05.11 4,578 124 28쪽
269 268 +22 16.05.07 4,457 135 22쪽
268 267 +22 16.05.02 4,285 143 21쪽
267 266 +18 16.05.01 4,327 149 19쪽
266 265 스승과 가족. +14 16.04.29 4,450 141 17쪽
265 264 +14 16.04.23 4,098 150 19쪽
264 263 +12 16.04.22 3,979 147 17쪽
263 262 +16 16.04.18 4,187 154 26쪽
» 261 +26 16.04.13 4,276 157 38쪽
261 260 +14 16.04.08 4,243 144 17쪽
260 259 +12 16.04.07 4,298 155 27쪽
259 258 +20 16.04.02 4,379 142 22쪽
258 257 오명과 명성. +14 16.04.01 4,634 139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