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이 곳에 오면 당신은 설 것이다.

아카데미 은퇴 용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만찬가
작품등록일 :
2023.01.25 09:01
최근연재일 :
2023.03.10 09:08
연재수 :
45 회
조회수 :
1,679
추천수 :
8
글자수 :
279,336

작성
23.01.27 09:21
조회
78
추천
0
글자
18쪽

3. 계획이라는 게 쉽지가 않다 (3)

DUMMY

"용사님. 가실 때에는 제 마차를 사용하시는 것이 어떻겠어요?"


마왕성에서 왕국까지 맨 발로 돌아온 나다.


아카데미와 거리가 얼마나 멀든 내 기초 신체 능력과 스킬, 광보면 순식간에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공주의 호의이니 받아들이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3년 뻐겨야 하니까 시간 죽이는 셈 치고 천천히 가도 괜찮잖아.


그리고 일반 마차는 바퀴가 울퉁불퉁해서 투박한 땅 위에 구를 때마다 토가 쏠리는데 왕실 브랜드라면 만듦새가 꽤 좋지 않겠어?


그렇게 해서 수락했더니 내 앞에 대령한 마차는.


삥꾸삥꾸 핫삥꾸 색으로 도배를 한 호박 모양 본체에 휘황찬란한 장식을 두루두루 갖춘 완벽한 생김새를 갖추고 있었다.


"······아니, 이걸 타라고?"


"용사님! 타세요, 입학식에 늦겠어요!"


"공주님은 왜 거기에 타고 계십니까?"


"아이 참. 왜겠어요? 저도 아르토리아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입학생이라구요! 다시 말해 저도 용사님이 공략하실 히로인 중 한 명이라는 말씀!"


그냥 걸어가자.


"용사님 어디 가세요? 용사님? 용사님!"


///


"에헤헤. 용사님이랑 단 둘이~ 마차 안에서~ 두근두근~ 여행 데이트~"


"아닙니다."


단칼에 부정했다. 이런 거는 오해 쌓이지 않게 확실히 말해둬야 한다.


오해 될 만한 발언을 수정하지 않았다가 치정극으로 벌어져서 파티가 해산될 위기를 몇 번이나 맞이했던가.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다시 돌아오셨잖아요. 실은 용사님도 저랑 알콩달콩할 마음이 있으신 거 아니신가요?"


"아닙니다만."


"또 그렇게 부끄러워하시긴, 은근 귀여우셔라."


아, 다시 감옥에 가둬버릴까.


진짜로 먼저 가버릴 생각이었는데 위에 올려뒀던 치장에 본체가 못 견뎌서 무너져 내렸다.


용사의 본능이라고 해야 할까. 위기에 처하는 경우가 일상이라 낌새가 느껴지면 몸부터 움직여버린다.


그러니까 나는 결과적으로 다시 한 번 공주를 구한 셈이 된다, 본의 아니게.


본의 아니게.


그래서 왕이 타던 마차로 갈아타고 여행을 떠나게 됐으니,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나쁘게 볼 수만은 없다는 거지.


나는 자리를 바꿔 반대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공주도 쫄래쫄래 따라와 내 옆자리에 앉는다.


좀 갈 때라도 편하게 가면 안 되냐?


"공주님. 비좁습니다. 반대 자리에 앉으시는 게 어떨까요?"


"에에? 그럴 리가요. 이 마차는 장정 넷이 자리하는데 문제 없게끔 넓게 설계되어 있는걸요."


"그러면 조금 거리를 두시는 게 어떠신가요?"


"음~ 싫어요."


공주가 잠깐 생각하는 듯 하더니 장난치듯 고개를 팩 돌렸다가 내 어깨에 대놓고 머리를 기댄다.


"부비부비부비부비."


그리고 어리광 부리듯 얼굴을 막 비빈다.


고양이냐?


"에헤헤헤. 용사님 냄새다. 히히."


이쯤 되면 공주가 아니라 치녀나 변태 그 비스무리한 과 아닌가?


나는 최대한 심려를 끼치지 않게 그녀의 면상을 손바닥으로 천천히 밀어냈다.


"떨어지십시오. 남들이 보면 오해합니다."


"오해한다니, 어떤 식으로요?"


"왕국의 후계자인 공주 전하와 일개 평민이 마차 안에서 불순한 행동을 한다고요. 그렇다면 공주님이나 왕국이나 안 좋은 인식이 심어질 수 있겠지요."


"저는 상관없어요. 용사님은 용사님인걸요. 그리고 마차 안에서 기정 사실을 만들 수 있다면 바라던 바랍니다."


아이고, 두야.


"발언에 주의해주십시오, 공주 전하."


그래. 솔직히 말한다.


나도 남자니까 안다.


공주는 꼴린다.


햇살에 닿아 차랑차랑한 윤기를 발하는 분홍빛 장발은 분홍빛 장미꽃 냄새를 기분 좋게 풍긴다.


내 엉덩이 옆에 간단히 달라붙은 그녀의 엉덩이는 위치로 봤을 때 그 크기를 짐작해 볼 수 있고.


프릴이 달린 드레스 앞이 늘어진 것은 그만큼 한 줄기의 기다란 계곡을 형성할 정도로 풍성한 가슴 때문이 아닐까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얼굴은 앳되어 귀여우면서도 약간 촉촉하게 붉은 빛이 감도는 입술은 그녀의 얼굴에 색기를 돋워준다.


그녀의 얼굴을 본 남자들은 밤새 방에서 밤꽃 냄새를 피운다는 소문이 돌지.


하지만 그 냄새를 공주와 함께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일단 한 번 사고 치면 그 다음에 펼쳐지는 건 평범한 생활과는 거리가 아득히 먼 피와 온갖 모략으로 점철된 지옥도.


순간의 쾌락으로 평생 동안 지옥에 시달릴 만큼 난 순진하지 않단 말이야.


하물며 껍데기만 그럴듯하지 실속이라고는 전혀 없는 여자?


어우. 나는 사양이야. 거리를 둘란다.


"용사님도 애만 잔뜩 태우게 하시고는, 심술 궃다니깐."


내가 아예 고개를 돌려 창가를 바라보자 옆에서 볼멘 소리가 교태 섞여서 들려온다.


그렇게 얼마 동안 생각 없이 밖을 바라보는데.


세상이 좋아지긴 좋아졌다.


내가 태어난 왕국, 르세라 왕국은 처음부터 치안이 좋은 왕국이 아니었다.


일단 재정이 말도 아닌 건 둘째 치고, 인근 지역이 몬스터에 산적들이 들끓는 던전 투성이였기 때문에 그랬다.


성문 밖에 나가면 고블린이 아니라 오크가 몽둥이를 들고 침을 흘렸고 하늘에서는 와이번이 날아다니며 공성무기로 싸우다가 애꿎은 광장 한복판에 떨어지는 걸 심심치 않게 봐왔다.


백성들과 귀족들의 관계도 좋지 못했고, 그래서 산적으로 변질해 바깥에서 귀족들 털고 재산을 나눠주거나 그랬는데.


그랬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마차 타고 밖으로 나온 뒤부터 한적하다.


하늘도 깨끗하고 몬스터의 포효 한 번 들리지 않는다.


옛날 생각이 나서 언제든지 칼을 뽑고 밖으로 나갈 수 있게 칼을 옆좌석에 세워뒀는데 뽑을 일이 없어 보이는데?


얼마만일까. 몬스터와 마주하지 않고 편안한 여행길을 걷는 게.


아마 처음이 아닐까.


"히이이익! 살려줘! 산적이다!"


아니, 뭔 생각을 하자마자 산통을 깨고 난리야.


"끼야하하! 때깔 좋은 귀족 마차다! 나라 물 빨아먹어 뒤룩뒤룩 살찐 돼지에게 천벌을 내리자!"


"겔겔겔겔! 옷을 벗기고 재산을 갈취해라! 하나도 빠짐없이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눠주는 거야!"


잔잔하게 펼쳐진 녹음과 그 너머 바다의 풍경이 펼쳐지던 창가에서 갑자기 귀족의 마차가 쏜살같이 지나치더니 그 뒤를 산적 떼가 말을 타고 쫓는다.


이쪽 길은 아직 험해서 잘 가지 않는데, 간다면 방향은 아카데미 쪽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산적 하나와 눈이 딱 맞는다.


"오, 이 쪽도 제법 부정탄 돈의 냄새가······."



나는 슬쩍 칼을 빼든다.


불똥 튀면 뒤진다.


"안 나는 군! 쫓아라!"


눈치는 있는 산적이군.


"용사님. 곤란한 상황에 처한 사람 같은데, 구해야 하지 않을까요?"


내가 왜?


"괜찮습니다. 언제나 있던 소동 같아요."


"정말인가요? 마치 산적에 쫓기는 사람들 같았는데."


"요즘 외부에서는 저런 놀이가 유행인 것 같더군요. 병사와 도둑 같은 느낌으로."


이쪽 왕국의 산적들은 빈부격차에 체념하고 산적이 된 사람들이 많다.



원하는 건 오로지 단물 빨아 먹는 귀족들의 재산이지 구태여 목숨까지 취할 정도로 잔혹한 편은 아니니까.


어차피 오늘 하루 재수 좀 털렸다고 생각하고 순순히 가진 거 다 놓으면 목숨까지는 빼앗지 않겠지.


"그렇군요! 요즘에는 저런 게 유행인가 보군요!"


얘는 또 이걸 믿네.


"캬오오오!"


"응?"


이게 무슨 소리지?


이건 사람이 낼 수 있는 소리가 아닌데.


그렇다고 마차 끄는 말이 내는 울음소리도 아니잖아.


말은 히히히힝 하고 우는데?


이 때 나는 눈치챘다.


어느 새 달리는 마차의 일대가 회색빛으로 짙게 물들어 있었다는 걸.


천장 때문에 어둡게 보였던 게 아니었던 건가?


그런 것 치고는 햇빛이 전혀 안 드는데?


위에 뭔가가 있다.


그것도 거대한 무언가.


나는 창가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캬오오오!"


"드래곤?!"


집채 만한 드래곤이 배를 전부 드러내며 저공비행을 하고 있다.


동굴에서 금은보화로 이불 덮고 자고 있을 종족이 왜 갑자기 이런 길가에 나타난 거지?


생각할 새도 없이.


"크와아아!"


놈의 입에서 거대한 불길이 내가 탄 마차를 뒤덮는다.


"이런 미친!"


나는 뒤늦게 수속성 배리어를 쳐서 위쪽으로 쏘았다.


놈의 브레스가 내 배리어를 뚫지는 못했지만 마차 천장이 녹아내리고 곤죽이 되어 길가에 나뒹굴 요량으로 심하게 비틀린다.


나는 반사적으로 마차 밖으로 몸을 날려 지상으로 한 바퀴 뒹군다.


"용사님. 또 제 목숨을 구해주셨군요."


아차. 깜빡하고 공주도 같이 안고 내렸네.


분명 하늘은 내가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기회를 몇 번이나 주는 것 같은데 왜 내 몸은 멋대로 움직여서 번번이 기회를 날려먹는 거야!


갑자기 화가 치밀어오른다.


안 그래도 불편한 여행길 도중에 감상 돋고 있던 타이밍이었는데 감히 브레스를 끼얹어?


"야, 이 날개 달린 악어 새끼야!"


나는 칼을 들고 날아오른다.


이미 인지를 초월한 신체에 순식간에 몇 겹으로 겹친 버프 효과에 의해 내 몸은 지면을 박찬 이래 순식간에 드래곤의 머리보다 한참 위로 날아오른다.


"갸오?!"


"왜 갑자기 나타나서 깽판을 치고 지랄이야!"


깡!


"꺅?!"


칼집 째로 놈의 머리를 베듯이 후려 갈기자 철이 휘는 듯한 소리와 함께 드래곤이 추락한다.


"엄매, 씨발, 이게 뭐여!"


"산적 살려! 드래곤이 떨어진다!"


"꺄악!"


뭔가가 우당탕탕 우지끈 부러지면서 사람 비명소리가 들렸지만 알 바는 아니고.


"용사님."


땅에 착지하자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자리에 털썩 앉은 공주의 모습이 보인다.


일단 살려는 놨으니 최대한 잘 보여야지.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공주 전하."


"예. 하온데."


공주는 나 말고 너머에 어스름한 흑연이 피어오르고 있는 쪽을 바라본다.


"저쪽에서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요?"


"아무 일도 없습니다."


"하지만 연기가 나는데요? 아까 병사와 산적 놀이를 하던 분들의 마차가 저 쪽으로 지나갔던 것 같은데."


"아무 일도 없습니다."


"하지만······."



아, 진짜. 제발 이러지 좀 마.



그렇게 남한테 다 기대하면서 떠넘기는 걸 부탁할 때만 짓는 간곡하고 아련한 눈길로 바라보지 말라고.



그런 표정 지으면 다 되는 줄 알아?



내가 곤경에 처한 마차 구해줄 때마다 생성되는 연계 퀘스트만 몇 천개를 받은 줄 아냐고.



"제발······."



하아······ 인생 씨이펄.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현장에 가자 그 곳에는 엎어진 산적 여러 명과 박살이 난 마차, 그리고 기절한 드래곤이 한 데 어우러져 있었다.


참신한 조합이긴 한데 인명피해도 없고 상황 정리 끝났네. 내가 나설 필요 없겠는데?


"낑. 낑."


무너진 마차 안쪽에서 누군가가 힘겹게 기어나온다.


금발에 약간 주홍빛이 섞여 있는, 코르셋으로 허리를 조이긴 했지만 고급스러운 귀족 드레스가 아닌 움직이기 편한 편인 대외용 드레스를 착복한 여성.


일단 금발인 시점부터 99프로는 귀족으로 먹고 들어간다.


일반인도 아니고 귀족가 영애와 연관되는 건 절대로 사양이지.


"어, 엉덩이가··· 끼어서 안 빠져······. 하, 할아버지. 누군가···도와줘···."



아, 진짜!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녀의 손을 잡아 마차 밖으로 끌어내고 있었다.



"도와주셔서 정말로 고맙습니다.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앗."



왜. 아니, 뭔데. 왜 갑자기 내 얼굴 보고 굳어버리는 건데?



싸늘하다. 바람이 비수처럼 날아와 내 가슴에 꽂힌다.


이 감각은, 저 표정은 전혀 의외의 장소에서 낯익은 사람을 만났을 때의 표정.


"용사···님?"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용사님이시죠? 용사님 맞죠?"



아니 왜 이래. 왜 갑자기 눈물을 글썽이고······.




"용사님!"



아니, 왜 혼자 감성에 팔려서 초면에 껴안고 그러세요. 진짜.



"저예요. 저, 쉐릴이에요!"



"쉐릴?"



쉐릴. 잠깐만. 어디에서 들어본 이름인데? 어디에서 들어봤더라?



아.



"너 설마 라스텔카의 그 악동 쉐릴이냐?"



"헤헷. 옛날에 그렇게 불렸던 적도 있었죠."



쉐릴은 드래곤에게 아이를 바치며 살아가던 마을에서 구해줬던 아이의 이름이다.



그 때 스스로 제물로 희생하려 동굴로 갔던 그 꼬마아이. 머리색이 독특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그러고 보니 머리색도 똑같네.



아니, 그런데 그 애는 남자애였는데?



여동생이나 누나가 아니라 그 본인이라고?


이런 미녀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저요. 그 때 용사님께 구해진 뒤부터 용사님의 도움이 되고 싶어서 노력하고 또 노력했어요. 그렇게 노력해서 저, 드래곤 브리더가 되었어요!"


드래곤을 사육하는 직업을 갖게 됐다고? 용기사와 맞먹는 잠재력을 가진 상위 직업이잖아?


"보세요. 저기 저 용, 융융이 저의······어라?"



쉐릴은 드래곤을 찾느라 고개를 두리번거리다가 쓰러져 있는 녀석을 발견하고 얼굴이 굳는다.



"아, 쟤였어? 저기 산적이랑 싸우다가 발을 헛디뎌서 고꾸라지던데? 저 산적들이 아주 나쁜 녀석들이더라고."



"아니야! 저 새끼가 자기 칼로 내 대가리 후드러 깠어!"



저, 저, 저. 갑자기 일어나서 사람 말 하는 드래곤 낯짝 좀 보소.



"정당방위였지. 갑자기 브레스를 날리는 통에 내가 타던 마차가 홀라탕 타버렸잖아."



"같은 편인 줄 알았지! 갑자기 살기가 느껴졌단 말이야!"



산적한테 살짝 흘리긴 했는데.



"어쨌든 너 때문에 죽을 뻔 했잖아."



"아니야! 구라쟁이! 살았잖아! 살았잖아!"



"쓰읍."



나는 슬쩍 녀석을 참교육했던 칼을 허리춤에서 들어올렸다.



"히익! 엄마, 나 저 아저씨 무서워! 나 머리 아파! 호해줘! 흐엉엉엉!"



"아이구, 그랬어요. 우리 융융이."



명색이 먹이사슬 정점의 종족이 사람 때를 너무 탔는데. 마마보이 드래곤이라고?


"용사님! 그 분들은 괜찮으신가요? 어라? 쉐릴!"


"아리아나 공주 전하!"


어랍쇼? 둘은 또 어떻게 아는 사이야?


치마폭을 들춘 채 쫄래쫄래 뒤따라온 공주와 쉐릴이 서로를 보다가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손을 맞잡고 상봉한 것처럼 얼굴을 환하게 비춘다.


"용사님과 아는 사이였어요?"


"네. 이전에 제가 용에게 제물로 바쳐지려고 했을 때 구해주셨어요!"


"어머. 그건 또 정말로 어찌나 로맨틱한 이야기인지!"


"공주님은 어떻게 이곳에?"


"저는 용사님과 함께 아르토리아 아카데미에 입학하려고 왔지요!"


"어머. 공주님도요?"


"그렇다면 쉐릴 백작도?"


뭐요? 백작? 평민이 아니라?


"네. 이번에 용사님께서 아르토리아 아카데미에 입학하신다는 얘기를 듣고 저도 입학하려고 가던 중이었답니다!"


"나랑 폐하랑 입학 얘기를 나눴던 게 오늘 아침이었는데?"


"네. 폐하께서 각 왕국에 전이 마법을 이용한 전보를 이용해 대대적으로 알리셨거든요. 그래서 오늘 아침 급히 입학 수속을 밟아 채비를 꾸리고 출발했지요."


그 돈독 오른 빡빡머리 호랑말코 돼지새끼가!


그러면 대륙 전체에 내 입학 소식이 다 퍼졌다는 거 아니야.


조용하게 3년을 뻐기려고 했던 내 계획이 물거품이 됐잖아!


"잘 됐다. 마침 마차도 부서졌겠다, 함께 가시는 건 어떠신가요?"


"마차가 부서진 건 쉐릴 백작 쪽도 마찬가지인걸요?"


"저희에게는 이 아이가 있으니까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악어 대가리를 올려다봤다.


"드래곤을······?"



"어쩌다보니 기르게 되었어요. 두 분이 괜찮으시다면 이번 기회에 어떠신가요? 드래곤을 타고 구름 위를 가르며 나는 기분은 끝내주게 좋을 거에요!"



"세상에. 저야 물론 좋죠!"



"나는 저 새끼 태우기 싫어! 나 쟤 싫어!"



나도 너 싫어 이 잼민이 용가리야.



"융융. 용사님한테 그런 말 하면 싫어할 거에요?"



"헉! 안 돼! 나 싫어하지 마, 엄마. 내가 잘못했어!"



"제가 융융을 싫어할 리 없잖아요?"


"히잉. 엄마 심술궂어!"


애도 없을 텐데 애 다루는 게 능숙하네.


쉐릴에게 한 번 쓰다듬 받은 융융은 영 꺼림칙한 눈으로 나를 흘겨 보면서도 몸을 낮추고 등을 돌렸다.


"타."


쉐릴과 공주가 위에 올라탔다.


"용사님. 타세요!"


먼저 몸을 일으키며 날개를 펼치는 융융의 위에서 쉐릴이 손을 뻗는다.


마음 같아서는 타기 싫다.


안 그래도 소문 다 나서 주목 받을 대로 받으면서 입학하게 될 텐데 드래곤을 타고 등장하면 대놓고 나 관종이다 광고하는 꼴 아냐.


그래도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미 소문 날 대로 났는데 이러면 또 어떻고 저러면 또 어떠냐.


에라 모르겠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융융의 등 위에 올라탔다.


녀석이 두 다리를 들어 허리를 꼿꼿이 펴고 힘차게 날개짓을 한다.


과연 만물의 정점, 드래곤. 순식간에 구름 위를 올라 태양과 나란히 서서 하늘을 유영한다.


땅에서는 멈춘 것처럼 보이던 구름을 몇 개나 순식간에 지나친다.


드래곤 위에 올라타는 건 사투를 벌이는 것 외에 처음이라 실제로 편안하게 올라탄 적은 없었는데.


"와, 정말로 바람이 기분 좋아요! 드래곤의 등 위는 이렇게 기분이 좋은 것이었군요!"


"히히! 그치 그치?"


뭐, 그렇게 나쁜 기분은 아니네.


"꽉 잡으세요! 융융은 엄청 빠르니까요!"


그녀의 말을 신호로 융융은 몸을 낮춰 그야말로 바람보다 빠르게 날았다.


그렇게 날은 끝에 나는 순식간에 아르토리아 아카데미에 도착했다.


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본 아르토리아 아카데미의 광경은.


'경, 마왕을 무찌른 용사님 아르토리아 아카데미에 입학하다, 축.'


'아르토리아 아카데미에 어서오세요, 용사님!'


'기쁘다, 용사님 오셨네.'


"저게 다 뭐야?!"


나를 환영하는 온갖 플랜카드가 걸려 있었다.


와. 좆됐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아카데미 은퇴 용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5 45. 내기 23.03.10 20 0 12쪽
44 44. 살풍경 23.03.09 22 0 11쪽
43 43. 나름 잘 되어가고 있는 듯한 23.03.08 36 0 12쪽
42 42. 1교시 대환장 파티 (2) 23.03.07 31 0 13쪽
41 41. 1교시 대환장 파티 23.03.06 17 0 11쪽
40 40. 기습 23.03.05 20 0 14쪽
39 39. 용암 근처에서 노숙 23.03.04 22 0 13쪽
38 38. 탈락자는 아카데미 퇴출 (3) 23.03.03 21 0 12쪽
37 37. 탈락자는 아카데미 퇴출 23.03.02 28 0 10쪽
36 36. 종 쳐 (2) 23.03.01 35 0 10쪽
35 35. 종 쳐 23.02.28 31 0 10쪽
34 34. 정신교육과정 불나방 23.02.27 19 0 9쪽
33 33. 망나니 테스트 (2) 23.02.26 27 0 10쪽
32 32. 망나니 테스트 23.02.25 21 0 10쪽
31 30. 참교육 23.02.24 21 0 14쪽
30 30. 짹짹 23.02.23 23 0 14쪽
29 29. 할 일 투성이 23.02.22 18 0 16쪽
28 28. 적과의 불편한 동거 (4) 23.02.21 21 0 14쪽
27 27. 적과의 불편한 동거 (3) 23.02.20 24 0 13쪽
26 26. 적과의 불편한 동거 (2) 23.02.19 21 0 11쪽
25 25. 적과의 불편한 동거 23.02.18 24 0 11쪽
24 24. 결산 보고 23.02.17 25 0 11쪽
23 23. 낯선 천장이다 23.02.16 25 0 12쪽
22 22. 마무리는 용사의 몫 23.02.15 24 0 19쪽
21 21. 아이리스 아마게돈 23.02.14 27 0 17쪽
20 20. 배로 갚는다 (3) 23.02.13 24 0 15쪽
19 19. 배로 갚는다 (2) 23.02.12 22 0 18쪽
18 18. 배로 갚는다 23.02.11 25 0 10쪽
17 17. 뒤통수 얼얼하네 (2) 23.02.10 27 0 17쪽
16 16. 뒤통수 얼얼하네 23.02.09 29 0 2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