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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은퇴 용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만찬가
작품등록일 :
2023.01.25 09:01
최근연재일 :
2023.03.10 09:08
연재수 :
45 회
조회수 :
1,675
추천수 :
8
글자수 :
279,336

작성
23.03.01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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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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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36. 종 쳐 (2)

DUMMY

모두가 염원했다.



'아아, 한 입만. 제발, 한 입만!'



'저 물을 넘기는 목구멍이 내 것이었더라면!'


물론 이런 반응을 용사가 의도한 것이었다.


일단 말을 듣게 하려면 포상, 먹이를 줘야 한다.


지금 그들이 무엇보다 원하는 건 물이 아니겠는가.


그들에게는 물 한 방울조차 성수의 한 줄기와도 같을 것이다.


"크으! 이야, 물 맛 끝~내준다. 와. 역시 중노동 한 뒤에 마시는 물은 최고라니까!"


일부러 수통을 하늘 위로 쳐들고 습관적으로 훔치던 입도 그대로 놔뒀다.


지금 그들의 시선은 용사의 입가에서 침 대신 흐르는 물 한 방울에 집중됐다.


모두가 말하고 싶은 욕구가 턱끝까지 차올랐다.


"제발 물 한 모금만!"


하지만 끝내 버텼다.


방금 전까지 용사에게 호되게 당한 데다 반항을 한 와중에 굴복하는 것은 너무나도 굴욕적이었기에.


그리고 상습적인 결석을 하는 그들은 영악했기에.


용사가 맨입으로는 절대로 안 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분명히 저기 있는 물통들에도 시원한 물이 있을 터.


그리고 용사 혼자서 미쳤다고 저걸 다 마실 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마시고 싶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용사의 말을 기다리는 것뿐.


"마시고 싶냐?"


"···"


"마시고 싶겠지. 침 삼키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리더만."


애쓴다는 표정으로 학생들을 바라보던 용사가 물통을 들어올렸다.


그게 신호였다.


"먼저 땅에서 파묻고 올라오는 녀석부터 물을 주겠다. 시작!"


이렇게 갑자기?


하지만 학생들은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하고 몸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흐야아압!"


물을 준다는.


악마의 유혹과도 같은 말에 그들은 얼굴에 핏줄이 터질 것처럼 새빨개져서는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끄아아악!"


"흐아아압!"


여기저기에서 흘러나오는 신음과 고통 어린 곡소리.


"곡소리 한 번 우렁차다!"


용사는 그들의 소리에 리듬을 맞춰 몸을 들썩이며 박수를 짝짝 쳤다.


저 모습에 열이 받아서라도 그들은 몸에 더욱 더 힘을 줬다.


"아니, 이런···"


이게 맞나?


가시안은 고민했다.


당장 목구멍에서 수분을 내놓으라고 혓바닥을 낼름거리고 있었고.


탈수 직전에 몰려서 물을 너무나도 마시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 용사의 말을 들어야 한다니?


지금 몸을 움직이는 건 저 녀석의 말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가 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그 순간.


"우오오오!"


첫 번째 합격자가 나왔다.


그것도 바로 옆에서.


"하칸?!"


거센 고함 소리를 내지르며 흙더미 밖으로 팔을 꺼내더니.


마치 고릴라가 포효하듯 몸을 일으키며 흙을 파헤치고 밖으로 나왔다.


용사의 말을 듣건 말건 일단 자기 목 마른 게 우선이었다.


"오케이! 3번 교육생! 물통 챙겨라!"


용사가 말하기도 전에 하칸은 물통을 향해 나아갔다.


용사에게 당한 게 있어 덤벼들 법도 했으나 용사는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한 번에 물통을 열어 젖히고 순식간에 수분을 빨아들였다.


"벌컥! 벌컥!"


목구멍 안에 시원하게 들어오는 물방울의 향연!


'살 것만 같다.'


하지만.


'아직 부족해!'


아직 혀를 내밀고 입만 다시고 있는 하칸을 향해.


"아, 참고로 물병 갯수는 인원 순서대로 가져왔지만 마셔도 되는 물에는 제한 없다."


천사의 달콤한 유혹이 들려왔다.


저 말의 뜻은?


먼저 온 사람이 임자라는 뜻.


끼릭!


"벌컥! 벌컥! 벌컥!"


하칸은 곧바로 다른 물병을 집어 마셔 재끼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덩치가 덩치라 물이 끊임없이 들어갔다.


지금의 하칸은 밑 빠진 물탱크 그 자체였다.


"뭐, 뭐하는 거야?!"


"우리가 마실 물도 사라지잖아!"


그의 행동을 본 학생들은 분개했지만.


"뭐! 이 새끼가 마셔도 된다는데 뭐 어쩔 건데! 꼬우면 기어 올라오던가!"


하칸은 되레 성을 내며 정당함을 드러냈다.


그의 말을 들은 용사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걸 노렸지.'


애초에 몸집이 남들에 비해 두 배는 큰 하칸을 같은 깊이에 파묻은 것부터 출발점을 다르게 설정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칸은 다른 학생들과 달리 태생부터 평민 출신이었다.'


기사 작위를 받은 가계의 자식이었지만 배움이 거칠었고 본인의 성향 또한 기사도와는 거리가 멀었다.


평민의 사고방식 자체가 대체로 이기적인 편이긴 하다.


왜냐하면 귀족과는 달리 풍족함을 모르고 자기 몫 챙기면서 살아가는 데만으로도 역부족인 경우가 다분하니까.


'그러니까 준우승을 차지한 뒤로 마냥 배움에 뜻이 없다면서 자기 개발에만 충실했지.'


가시안을 따르는 듯 했지만 본성은 자기 중심적인 사고가 큰 편에 속했다.


일부러 정원 수대로 챙겨 온 물병.


하나씩을 자기 것으로 여기고 질서 있게 받아 갔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겠지만.


선발대가 무한이기주의를 보이면서 물욕을 보이면.


뒤처진 사람들은 애가 타기 시작한다.


'거기에 내가 기름까지 부어주면.'


짝짝!


"자, 자. 굼벵이 새끼들아. 그렇게 처져 있다가 언제 올라올래!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마실 물도 줄어들고 물도 끓는다!"


용사는 박수를 치면서 호응을 유도했다.


"그 동안 곰탱이처럼 기숙사에서 처먹으면서 비축해뒀던 힘은 다 어디갔냐!"


"빡대가리 새끼들아! 마법은 뒀다가 뭐해? 입이 뚫려 있으면 영창이라도 해라!"


간간히 얄밉게 도발을 섞어가면서.


"이런 제기랄!"


"으아아악!"


"됐다!"


"물 내놔!"


하나둘씩 합격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흙더미에서 빠져 나온 학생들이 걸신 들린 하이에나처럼 물통 사이로 뛰어들어 한 손에 하나씩 집었다.


"아오, 씨 미끄러!"


흙 묻은 손에 물기가 묻어 여러 번 손에서 뚜껑이 삐끗거리면서 안 열리자 애가 타는 듯 하다가도.


"열렸다!"


뚜껑이 열리자마자 입에 물통 주둥이가 닿기도 전에 미친 듯이 턱부터 뒤로 열어재꼈다.


"벌컥! 벌컥! 벌컥!"


"캬, 씨발! 물 존나 맛있네!"


"물이 이렇게나 맛있었나?"


"지금까지 마셔본 물 중에서 최고야!"


빠졌던 수분이 단숨에 보충되면서 소진된 에너지가 온 몸에 스며드는 듯한 청량감!


갖은 고생에 땀을 흘리던 학생들의 얼굴에는 보상을 받은 뒤에 웃음꽃까지 피었다.


"에잇! 블래스트!"


결국 르로노아까지 영창 끝에 흙더미를 무너뜨리며 나왔고.


"내놔요!"


좀비 떼처럼 몰려든 무리 안에 합류해 물통을 뺏어 들었다.


"벌컥! 벌컥! 푸햐! 이야! 이제야 살 것 같네!"


고풍스레 차려 입은 드레스가 전체적으로 흙투성이가 되었고.


애써 세팅한 소라빵 머리가 전부 풀어헤쳐져서 마찬가지로 흝투성이가 되었다.


교양 없는 사람을 돌 보듯 하던 귀족 영애의 표본 같았던 그녀가.


아주 걸쭉하게 목소리를 내면서 털털하게 물을 마셨다.


그녀조차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처럼 시기적절하게, 딱 알맞게 주어지는 보상이란 사람의 사고방식조차 다르게 바꿔버리는 것이었다.


'좋아라 하네.'


용사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미 이들은 알게 모르게 그의 말을 듣기 시작한 것이었다.


'어디 보자.'


그런 그가 주목하는 것은 아직도 갈등하고 있는 가시안이었다.


그는 못 나오는 게 아니었다.


그 자존심 하나 때문에 나오지 않고 있는 거지.


'어떻게 하지?'


하지만 슬슬 깨달을 때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알량한 자존심은 버리는 게 삶의 이득이라는 현실을.


얼마 남지 않은 물통과 물통 앞에 모여 물을 마시면서 개운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학생들.


대리만족도 어느 정도 만족을 가질 수 있는 상태여야 느낄 수 있는 거지, 탈수 상태에 헤롱거리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림의 떡이었다.


가시안은 물이 너무나도 마시고 싶었다.


심지어 그렇게나 겸양 떠는 르로노아까지 체통까지 버리고 저렇게나 맛깔나게 물을 마시고 있지 않은가.


'저렇게나 맛있나?'


정신이 나간 건지 호기심까지 일었다.


이렇게 극한 상황까지 몰려본 뒤에 마시는 물이 저렇게나 각별한가?


'막 탄산수 처럼 톡 쏘기라도 하나?'


"꿀꺽!"


계속 애꿎은 마른침만 목구멍을 적셨다.


그러면 그럴수록 갈증만 커져 가는데.


"도, 도와줘. 도저히 못 나가겠어. 제, 제발 아무나···."


그 때, 탈진 직전까지 간 학생이 도움을 구했다.


아무리 애를 써서 몸을 움직여봐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법을 쓰려 했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아 역부족이었다.


2층의 브레인이었던 막시맹이 그 주인공이었다.


수분을 섭취해 정신이 든 학생들은 그의 구원 요청을 듣고 막시맹을 바라봤다.


같은 학생의 신분이었고 기숙사에서 몇 날 며칠을 함께 지낸 친구였다.


망설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들 중에서 섣불리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보상은 그들이 스스로 쟁취한 것이었기 때문에.


'구하러 갈까?'


가 아니라.


'구해줘야 돼?'


였다.


자기는 똑같은 조건에서 이렇게 애를 써서 올라왔는데 도움을 구한다고 해서 꼭 도와주러 가야 하나?


이기적인 사고에 더해 보상을 받은 자로서의 권력의 맛을 알았기에.


그들은 나아가 그를 구하는 행위 자체에 수고스러움, 귀찮음을 느꼈다.


물론 그들 중에서 기사다운 면모를 발휘해 몸을 움직이려던 자들이 한 명 있었다.


용사의 예상에 벗어난 인물로, 르로노아였다.


그녀가 먼저 물병을 들고 구덩이 쪽으로 다가가자 망설이던 학생들도 하나둘씩 남은 물이 든 물병을 들고 움직이려 했다.


"도와주지 마라."


하지만 그들의 움직임은 용사가 막았다.


팔짱을 낀 채로 낮게 깔린 그의 목소리는 어느새 엄숙하게 변했다.


"도와주면 탈락이야."


저게 무슨 소리일까?


"탈락이라뇨?"


물음에 튀어나온 용사의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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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41. 1교시 대환장 파티 23.03.06 17 0 11쪽
40 40. 기습 23.03.05 20 0 14쪽
39 39. 용암 근처에서 노숙 23.03.04 22 0 13쪽
38 38. 탈락자는 아카데미 퇴출 (3) 23.03.03 21 0 12쪽
37 37. 탈락자는 아카데미 퇴출 23.03.02 28 0 10쪽
» 36. 종 쳐 (2) 23.03.01 35 0 10쪽
35 35. 종 쳐 23.02.28 31 0 10쪽
34 34. 정신교육과정 불나방 23.02.27 19 0 9쪽
33 33. 망나니 테스트 (2) 23.02.26 27 0 10쪽
32 32. 망나니 테스트 23.02.25 21 0 10쪽
31 30. 참교육 23.02.24 20 0 14쪽
30 30. 짹짹 23.02.23 23 0 14쪽
29 29. 할 일 투성이 23.02.22 18 0 16쪽
28 28. 적과의 불편한 동거 (4) 23.02.21 21 0 14쪽
27 27. 적과의 불편한 동거 (3) 23.02.20 24 0 13쪽
26 26. 적과의 불편한 동거 (2) 23.02.19 21 0 11쪽
25 25. 적과의 불편한 동거 23.02.18 24 0 11쪽
24 24. 결산 보고 23.02.17 25 0 11쪽
23 23. 낯선 천장이다 23.02.16 25 0 12쪽
22 22. 마무리는 용사의 몫 23.02.15 24 0 19쪽
21 21. 아이리스 아마게돈 23.02.14 26 0 17쪽
20 20. 배로 갚는다 (3) 23.02.13 24 0 15쪽
19 19. 배로 갚는다 (2) 23.02.12 22 0 18쪽
18 18. 배로 갚는다 23.02.11 25 0 10쪽
17 17. 뒤통수 얼얼하네 (2) 23.02.10 27 0 17쪽
16 16. 뒤통수 얼얼하네 23.02.09 29 0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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