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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은퇴 용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만찬가
작품등록일 :
2023.01.25 09:01
최근연재일 :
2023.03.10 09:08
연재수 :
45 회
조회수 :
1,673
추천수 :
8
글자수 :
279,336

작성
23.02.25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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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32. 망나니 테스트

DUMMY

사람의 선은 도끼 휘두름 한 번으로 간단하게 잘리는 것이었다.


"꺄아아아악!"


"미쳤나 봐, 진짜!"


"용사가 학생 죽인다!"


"튀어어어어어!"


방 하나가 도끼질에 허물어지는 것을 목격한 학생들이 문을 열고 앞 다투어 밖으로 뛰쳐 나오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런 썅!"


그들의 비명 소리를 듣고 방 안에 숨어 있던 학생들도 덩달아 방 밖으로 뛰쳐 나왔다.


어디로 갈지는 불 보듯 뻔했다.


밖으로 나가려고 발버둥을 치겠지.


그런데 그게 마음처럼 어디 쉽게 될까?


"뭐야, 씨발!"


"결계?!"


아까 분명히 얘기를 했다.


이미 결계를 쳐두었으니 나갈 수 있으면 나가 보라고.


다른 것도 아니고 룬문자가 새겨진 분홍빛의 결계가 기숙사의 입구와 출구를 전부 막았다.


창문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으며 주먹으로 두들기거나 기물파손을 룬문자에 대고 해봤자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그니션!"


화르륵!


4서클에 준하는 나름 중급 불 속성 마법이 결계에 닿았다.


거센 불줄기 하나가 살라만다의 형상을 띄며 용솟음 쳤다.


그러나 결과를 확인한 학생들은 당황했다.


기세 좋게 결계를 향해 고개를 처박던 불줄기는 결계에 닿자마자 통과하면서 기세 마저 죽었기에.


"통과했어?!"


"이 결계, 마법이 안 통해!"


'당연하지, 그렇게 결계를 짰는데.'


이 결계는 물리에 취약한 대신 마법을 통과시켜 무력화시키는데 특화되어 있었다.


한 마디로 마법 하나만 믿고 뻗대던 녀석들에게는 최악의 상성을 가진 결계.


심지어 물리에 취약하다는 것도 용사의 기준이었지, 수준급의 모험가라고 해도 해당 결계를 부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런 제기랄! 안 부숴지잖아!"


"내 칼! 내 칼이 부숴졌어! 이거 비싸게 주고 산 건데!"


"끼끼끼끼."


그러니까 용사는 칼을 가는 듯한 기괴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여유롭게 그들에게 다가갔다.


어차피 하나하나가 우리에 갇힌 염소 떼나 다름 없으니까.


'어디 해볼테면 해보라지.'


방금 전까지 여유롭게 자기의 말을 개무시하던 이들이 공포에 잠기는 모습이 퍽 보기 좋았다.


그 동안 용사짓을 해오느라 남을 괴롭혀 본 적이 없었는데.


일단 저지르고 보니 퍽 그의 취향인지라.


'아니지! 이건 엄연한 교육이지, 어험!'


오늘부터 용사는 양심의 털을 깎지 않기로 결정했다.


절그럭, 절그럭


"얘들아. 빨리 뒤지고 싶니? 발들이 멈췄다."


일부러 더욱 애가 타라고 도발을 걸었다.


"히익!"


"위, 위로 올라가자! 거기에 선배들이 있잖아!"


하지만 도발에 걸리기는커녕 위로 올라갔다.


아르토리아 학생으로서의 자존심일까? 아니면 이런 꼬맹이에게 사과를 하는 게 굴욕적이라 느껴서인 걸까?


어찌 됐든 곧바로 항복을 안 하는 점에 대해서는 칭찬할 만 하다.


"개조할 보람이 있겠어. 끼이끼끼끼끼!"


이제는 괴기스런 웃음을 흘리는 것조차 평소에 하던 것처럼 자연스러워졌다.


사악한 표정 하며 눈가 아래까지 길쭉하게 늘어진 입꼬리 하며.


서당개도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하던가.


평소에 그가 수도 없이 베었던 악당의 컨셉을 고스란히 카피해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래, 그래. 부디 질질 끌어줘라. 질길수록 베는 맛이 있는 법이거든!"


악당이 내뱉을 법한 대사를 내뱉으며 나아가던 용사는 문득, 지나가려던 방 앞에서 멈춰섰다.


"흐흐흐흐흑, 흐흐흐흐흡."


안쪽에서 떨면서 흐느끼는 목소리가 들렸다.


오죽 겁에 질렸으면 입을 틀어막았으면서 입 밖으로 떠는 소리가 새어나오는 걸 막지 못하는 것일까.


간간히 새어나오는 중간 정도의 숨소리에서 여자의 느낌이 나는 목소리가 들렸다.


'음.'


용사는 고민했다.


'아무리 그래도 전의도 없는 여자애한테 대놓고 도끼질 하는 건 좀 그렇지?'


방금 전에 휘두른 방에는 대놓고 시비를 틀려고 눈에 쌍심지를 키고 나온 개싸가지가 있었다.


그리고 몸을 벤 게 아니라 그냥 문짝이랑 벽 좀 벤 것뿐이었다.


미쳤다고 학생을 벨까.


'어차피 다 무너져가는 건물인데.'


이 참에 여기도 리모델링 깔쌈하게 한 번 하자는 마인드.


오히려 대놓고 철거 각을 잡아주는데 고마워해도 시원찮을 판이랄까?


'보수하는 돈 어차피 그 황제놈이 다 대주잖아.'


그렇기에 그간 쌓인 스트레스를 풀 겸이기도 하다만.


아무래도 떨고 있는 상대에게 이건 좀···


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몸은 멋대로 도끼를 수직으로 들어 문짝을 쪼갰다.


콰직!


"꺄아아아아악!!!"


한 번의 휘두름에 문이 도화지 한가운데에 바람 난 것처럼 구멍이 뻥 뚫렸고.


그와 동시에 귀를 찢는 여학생의 비명소리가 복도 전체를 관통했다.


용사는 뚫린 구멍 사이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눈을 살짝 왼쪽으로 굴려 안을 바라보니 바로 문 뒤에서 숨 죽이고 있었던 건지 창백하게 질린 그녀의 모습이 훤히 보였다.


'안심시켜줘야지.'


용사는 그녀를 향해 만개한 잇몸으로 씨익 웃으며 눈썹을 들썩였다.


"히얼스 좌니~"


"꺄아아아아악!!!"


벽에 얼굴을 박은 채 눈물을 쏟아내는 여학생.


이내 다리에 힘이 풀려서 풀썩 주저 앉았다.


이미 머릿속에 리스트를 훤히 꿰고 있었기에 그녀가 몇 학년이고 출석 번호가 몇 번인지 얼굴만 봐도 알았다.


"35번 탈락."


"꼴깍."


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는데 기분 탓이겠지.


"이런 씨발, 좆됐다!"


"그냥 다 때려부순다! 방 버리고 올라가!"


35번 여학생과 같은 생각을 하고 방에 숨어 있던 쥐새끼들이 몇 마리 있었다.


용사가 무자비하게 문을 부수는 모습을 보고 꽁지 빠지게 계단을 올라가는 쥐새끼 같은 놈들.


용사는 한 손으로 엑스를 계단으로 던졌다.


손 끝에서 벗어나 수십 차례 회전하던 도끼가 층계참에 정확히 꽂혀 위로 올라가려던 학생들의 길목을 막았다.


"으악!"


"길이 막혔어!"


위로 향하는 통로가 막히자 어쩔 줄 몰라하는 학생들.


그들의 바로 뒤에.


"어디가 얘들아~ 이리와~ 같이 놀자~"


용사가 생긋 웃으면서 걸어왔다.


계단 잔해에 파묻혔던 도끼가 그의 손짓에 반응해서 튀어올라 그의 손아귀에 돌아왔다.


나름 좋은 도끼였지만 보검이었던 아카시처럼 귀소 본능이 있는 건 아니었다.


이기어검을 사용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른 용사가 순수한 힘만으로 가져온 것이었다.


방금 전에 그가 보여준 경지에 대해 이해하는 학생들은 적어도 눈앞에는 없었다.


없었으나, 그에게 공포감을 느껴 벌벌 떨었다.


"수업 안 듣고 깝치던 새끼들 어디갔냐~ 그 동안 수업 차암 편하게 받았지? 왜 개기들 셨어요. 나를 얼마나 줫밥으로 보셨으면."


자박자박


어깨에 자기 몸보다 큰 도끼를 여유롭게 걸친 채.


느릿느릿.


그러나 확실하게 다가오는 용사의 전진에 학생들은 겁을 먹었다.


"으, 으아아아악!"


"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하던가?


겁을 너무 먹었는지 이내 상실한 학생들 중 하나가 용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드디어.'


용사는 이때를 노리고 있었다.


사람을 개호구로 아는 양아치들이 맞설 생각은 않고 도망만 쳐대는 오합지졸 겁쟁이 투성이라 실망하던 차였다.


"382번, 깡다구는 합격."


"닥쳐! 아이스 스피어!"


382번 학생이 달려들며 손에서 2서클 얼음 속성 마법을 형성했다.


그의 장갑 손바닥에 찍힌 마법진 안쪽에서 얼음의 마나가 공기 중의 수분을 흡수해 날카로운 얼음 기둥을 뽑아냈다.


'판단은 나쁘지 않은데?'


고작 2서클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별도의 영창 없이 마법의 이름만 불러도 생성할 수 있는 2서클 마법이기에 갑작스러운 기습과 근접전에 용이했다.


전투 마법사들이 자주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상대 또한 1대1 싸움에 거리가 가까운 것을 상정해 2서클 마법을 사용했을 터.


하지만.


'그래봤자 2서클 마법.'


딱!


용사는 손가락을 튕기는 것만으로 코앞에 접근한 얼음 기둥을 가볍게 부쉈다.


같은 2서클 마법이라고 해도 한계를 뛰어 넘은 헤이즈의 1서클 마법에도 비할 바가 못 되는 완성도였다.


"뭣?!"


기습 공격을 아무렇지도 않게 상쇄한.


나아가 2서클 마법을 손가락 하나만으로 파쇄한 용사를 보고 382번 학생은 경악했다.


앞으로 뛰어 오는 도중이었고 제자리에 멈출 만한 제동력이 신체에 갖춰져 있지 않았다.


딱!


"실력은 빵점."


벌로 딱밤형에 처한 382번 학생은 눈자위를 뒤로 굴리며 그대로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이, 이런 제기랄!"


"다 같이 공격해! 어차피 꼬맹이 한 명이야!"


선발주자가 총대를 메면 후발자가 뒤따라오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


뒤로 도망칠 구멍도 없고 먼저 용사를 공격한 학생이 속수무책으로 당한 상황에서.


학생들은 저마다 손에 마력을 실어 용사를 향해 난사했다.


불, 물, 바람, 번개 등등 갖은 속성의 마법이 용사를 향해 빗발쳤다.


1서클에 2서클, 어느 정도 마력을 모은 학생은 3서클 마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하암."


용사는 마법을 맞으면서 하품을 했다.


학생들이 전력을 다 한 이 엄청난 마법의 향연은 그에게 있어 안마 수준도 되지 않았다.


"어, 어떻게 저럴 수가."


"마법이 통하지 않아."


1층에 남은 학생들은 모두 전의를 잃고 우두커니 서거나 바닥에 주저앉았다.


더 이상 볼 것도 없겠다.


"너희들 전원 탈락."


용사는 허리를 살짝 돌려 도끼를 휘둘렀다.


용사의 힘에 회전력이 얹힌 도끼의 얇은 날에서 바람의 기운이 실리더니 마치 장풍과도 같이 학생들을 향해 휘몰아쳤다.


"으아아악!"


"꺄아아악?!"


가벼운 휘두르기 한 번에 학생들은 속수무책으로 휘말려 사방으로 휩쓸려 날아갔다.


손을 바닥에 떨군 채 기절해 있는 학생들 사이를 지나치며.


용사는 계단의 잔해를 밟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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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44. 살풍경 23.03.09 22 0 11쪽
43 43. 나름 잘 되어가고 있는 듯한 23.03.08 36 0 12쪽
42 42. 1교시 대환장 파티 (2) 23.03.07 31 0 13쪽
41 41. 1교시 대환장 파티 23.03.06 17 0 11쪽
40 40. 기습 23.03.05 20 0 14쪽
39 39. 용암 근처에서 노숙 23.03.04 22 0 13쪽
38 38. 탈락자는 아카데미 퇴출 (3) 23.03.03 21 0 12쪽
37 37. 탈락자는 아카데미 퇴출 23.03.02 28 0 10쪽
36 36. 종 쳐 (2) 23.03.01 34 0 10쪽
35 35. 종 쳐 23.02.28 31 0 10쪽
34 34. 정신교육과정 불나방 23.02.27 19 0 9쪽
33 33. 망나니 테스트 (2) 23.02.26 27 0 10쪽
» 32. 망나니 테스트 23.02.25 21 0 10쪽
31 30. 참교육 23.02.24 20 0 14쪽
30 30. 짹짹 23.02.23 23 0 14쪽
29 29. 할 일 투성이 23.02.22 18 0 16쪽
28 28. 적과의 불편한 동거 (4) 23.02.21 21 0 14쪽
27 27. 적과의 불편한 동거 (3) 23.02.20 24 0 13쪽
26 26. 적과의 불편한 동거 (2) 23.02.19 21 0 11쪽
25 25. 적과의 불편한 동거 23.02.18 24 0 11쪽
24 24. 결산 보고 23.02.17 25 0 11쪽
23 23. 낯선 천장이다 23.02.16 25 0 12쪽
22 22. 마무리는 용사의 몫 23.02.15 24 0 19쪽
21 21. 아이리스 아마게돈 23.02.14 26 0 17쪽
20 20. 배로 갚는다 (3) 23.02.13 24 0 15쪽
19 19. 배로 갚는다 (2) 23.02.12 22 0 18쪽
18 18. 배로 갚는다 23.02.11 25 0 10쪽
17 17. 뒤통수 얼얼하네 (2) 23.02.10 27 0 17쪽
16 16. 뒤통수 얼얼하네 23.02.09 29 0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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