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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은퇴 용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만찬가
작품등록일 :
2023.01.25 09:01
최근연재일 :
2023.03.10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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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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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79,336

작성
23.03.03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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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8. 탈락자는 아카데미 퇴출 (3)

DUMMY

"아즈엘카 교장 선생님."


"네."


아즈엘카는 빠르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 뒤에 잠깐 의아했다.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반말을 하던 용사가 갑자기 자기에게 존칭을 사용해서 부른 까닭이 무엇일까.


용사와 아즈엘카는 잠시 대화를 나눴다.


"무슨 얘기를 하는 거지?"


학생들은 그들의 대화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용사가 교묘하게 얼굴을 틀어서 입 모양이 보이지 않게 한 것도 있었고.


그들의 대화 소리가 작아진 탓도 있었다.


짐작컨대 방금 전에 했던 퇴학 이야기를 계속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 마. 교장 선생님은 퇴학에 반대하는 입장이신 거 같으니까."


"설마 퇴학 시키겠어?"


몇 명의 학생들이 퇴학 처분을 받은 학생들을 다독였다.


퇴학 처분을 받은 학생들 또한 교장의 말을 듣고 반쯤 안심했다.


아무리 상대가 용사라고 해도 그는 일개 강사이며 아카데미 방침의 권한은 교장에게 있었으니까.


그런데.


"어?"


"뭐야?"


"왜 저래?"


교장의 표정이 심상치 않게 변하기 시작했다.


용사의 말을 들은 그녀의 얼굴은 처음에는 놀랐다가.


이내 반박하려 했으나 말문이 막혀서 경청하는 태도를 보였고.


이내 괴로워하더니.


결국 눈꼬리를 아래로 내려 슬픈 표정을 짓고 수긍하는 듯 했다.


학생들은 불안했다.


'설마.'


'아니겠지.'


'에이, 아니겠지.'


그런데 다음 순간.


"여러분."


아즈엘카가 학생들 앞에 다가서서 내뱉은 말을 듣고.


"힘이 되어 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허리를 숙여서 미력한 자기의 수준에 용서를 구하는 것을 보고.


학생들은 얼굴에 사색이 되었다.


"교장 선생님?"


"다른 사람을 탓 할 것 없이 저를 탓해주세요. 여러분들을 올바르게 인도하지 못한 것은 다 저의 책임입니다."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그녀를 부르는 학생들 앞에서 아즈엘카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다 내가 미진한 탓이야.'


심장을 붙잡혀서 목숨이 휘둘려져 있었다고는 해도.


그들이 탈락하는 것 또한.


용사의 기준점에서 탈락해 퇴학하는 것 또한.


그녀의 탓이다.


아즈엘카는 자기를 탓했다.


용사는 아즈엘카의 앞에 서서 그녀를 되돌려 보냈다.


학생들은 축 늘어진 채 힘없이 되돌아가는 아즈엘카를 넋 놓고 바라봤다.


가지 않았으면 했다.


그녀가 이렇게 가버린다는 것은.


그들의 마지막 희망 마저 사라진 것과 다름 없었다.


'어째서.'


그녀가 가장 잘 알 텐데.


여기에서 벗어난다는 건.


곧 죽음을 의미한다는 걸.


"거짓말."


이건 꿈인가?


퇴학 처분을 당한 게 기정사실이 된 학생들은 눈에 힘을 잃었다.


갑자기 눈앞에 모든 것이 까매졌다.


용사는 이들에게 한 차례 더한 부담감을 실어줬다.


"다들 이제 파악이 됐지? 아즈엘카 교장 선생님께서 너희들에 대한 권한을 전부 내게 넘기셨다."


"···"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방금 전 상황을 봐버린 것으로 반박을 할 수 없게 되었으니까.


"일주일 뒤, 아니 정확히는 6일 뒤지. 아카데미의 학생들끼리 경합하는 대회가 열린다. 그건 알고 있겠지."


대부분 알고 있었다. 신입생을 제외한 나머지는 참석한 경험이 있었으니까.


아카데미의 관계자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참관하는 유명한 대회이면서 축제이기도 했고.


대륙의 각국 주요인사들이 인재들을 파악하고 스카우팅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하지만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실력에 자신이 있는 사람들만 나가서 실력을 뽐내는 장기자랑 대회나 다름없었고.


주요인사들이 스카우트하는 자리에 평민과 몰락 귀족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애초에 이번 사태로 한순간에 아카데미의 위신이 나락까지 떨어졌기에 참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너희들 중에서 상위권을 뽑아 그 대회에 출전 시킬 거다."


"뭣!"


"뭐라고요?!"


안 그래도 창백했던 얼굴이 잿빛이 되었다.


황당한 말을 들은 것처럼 따지듯이 되묻는 반응들을 하나둘씩 보이는데.


용사의 입장에서 봤을 때 그런 그들의 태도는 가히 가소롭고 기만적이기 짝이 없었다.


"안심했겠지. 어차피 우리들은 이제 좆밥 아카데미가 되었으니까 나설 필요 없다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오래된 이름 만큼은 있어서 졸업한 뒤에 어떻게든 할 수 있겠지, 적어도 몰락 귀족에 갈 곳 없는 평민이라고 해도 선임들이 어여삐는 여겨주겠지, 졸업자로서 우예를 해주겠지, 그딴 생각들이나 하고 자빠졌지."


"···"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 우리들의 마음을 잘 아는 걸까?'


실은 그 또한 같은 몰락 귀족 처지였던 적이 있었다던가?


"하, 하지만 지금부터 저희를 교육시킨다고 하시더라도 만족하실 만한 결과는 얻기 힘들 텐데요!"


"542번 교육생."


용사가 차가운 눈빛으로 의문을 제기하는 학생을 가리켰다.


그것만으로 542번 교육생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퇴학 당하는 건가?'


방금 전까지 열댓 명을 무더기로 퇴학 처리 한 전적이 있는 용사의 삿대질이었기에.


학생들 전원이 은연 중에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자신 없나? 자신이 있으니까 배울 것도 안 배워가면서 기숙사에서 농성이나 해대고 그런 거 아니었냐고."


"하, 하지만 이번 일로 인해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다른 아카데미로 이적 간 걸 선생님도 알고 있잖아요!"


"맞아요! 그리고 거기에는 작년, 제작년 우승자들도 있는걸요!"


전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아카데미는 신입이 아닌 전학생을 받을 경우.


해당 전학생의 커리어와 실력을 테스트 한 다음에 받아들일지의 여부를 결정한다.


때로는 다른 아카데미에서 스카우트를 해서 데려가는 경우도 있기에.


아카데미생들 사이에서는 암묵적으로 전학을 이적으로 표현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다.


학생들이 이구동성으로 얘기했다.


다른 아카데미에는 자기들보다 강한 학생들이 있다.


그러니까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시작도 전에 포기부터 생각하고 있구나.'


막연히 그들의 사고방식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하지만 이곳에서 성장하는 몇 년 동안 저들의 사고방식을 저렇게 정착시킨 사람들이 누구지?'


조금 더 면밀히 보자면.


저들이 저렇게 패배 의식을 가지고 시작도 전에 포기하는 것은.


'명백하게 이전에 있던 강사진들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지.'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다시는 이곳에서 얼굴 볼 일 없는 작자들이고.


애초에 용사는 그 얘기를 듣고 입꼬리부터 올렸다.


"그 우승자들은 마왕을 잡아봤냐?"


"···"


"나는 잡았다. 그러면 누가 더 강하지?"


단순히 계산을 하지 않더라도 명백하다.


때문에 학생들은 그것을 계산하는 과정을 넘어서 왜 그가 이런 말을 하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자기가 더 강하니까 이길 수 있게 만들어줄 수 있다고 자신하는 건가?'


그들은 용사가 아니다.


그저 놀고 먹던 학생이지.


‘아무리 용사라고 해도 6일만에 대회를 우승시킬 수 있게끔 성장시키는 게 가능할 거라고 보나?’


하지만.


‘왜일까.’


학생들은 이상하게 그의 말에 신뢰를 느꼈다.


'어떻게 꼬맹이한테 이런 카리스마가 나올 수 있는 거지?'


보면 볼수록 신기한 노릇이다.


앳된 데다가 목소리는 앵앵거리는 애기 같고 한 대 쥐어 박으면 일어서지 못하고 엉엉 우는 꼬마아이 같은 모습인데.


어떻게 저런 몸에서 저런 박력이 나올 수 있는 걸까?


"어차피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면 너희들은 여기에서 쫓겨나."


"그게 무슨···"


용사는 운동장 너머를 가리켰다.


모두의 고개가 그의 손가락을 따라 향한 곳에는 땀을 뻘뻘 흘리며 보수 공사를 하고 있는 인부들이 있었다.


"저 사람들이 왜 여기에서 일하고 있겠냐? 누가 돈을 대줘서 일하고 있는 거겠지?"


용사가 그 정도 힌트를 주자 몇 명이 의도를 알아채고 얼굴을 굳혔다.


"그런 거야. 어른의 사정이라는 거지."


이번에 성과를 내지 못하면 보수 공사는 중단될 것이다.


아카데미의 후원자들은 대부분 죽거나 행방불명이 되어서 뚝 끊긴 마당에.


아카데미가 자체적으로 보수 공사를 할 여력이 없다는 사정도 몇 명은 알고 있었다.


때문에 인부들의 급료를 제공하는 후원자들이 있다는 것인데.


그들이 후원 여부의 마지노선을 이번 대회로 잡은 것이었다.


'납득은 가.'


딱 봐도 세기말 아카데미로 변모한 데다 학생들이 죄다 떠나버린 죽은 아카데미인데.


'아직까지 후원자가 있는 것도 신기하긴 해.'


르로노아도 그 정도 얘기를 듣고 나서야 용사의 행동을 얼추 이해할 수 있었다.


때문에 반박하지는 못했으나.


그럼에도 입술 한쪽을 잘근 깨물었다.


"이미 코가 석자인데 기본도 없는 놈들까지 끌고 갈 생각은 없다."


퇴학 처리를 당한 학생들을 들으라고 한 얘기였다.


귀족이라면 무조건 남탓을 먼저 하곤 한다.


내가 이렇게 된 건 다 너의 탓이라며.


권력의 맛을 알게 된 사람이 한 순간에 많은 것을 잃었을 때 버릇처럼 하는 도피 방식이다.


그렇게 원망하고 분노한다.


하지만 용사의 눈에 봤을 때 그들이 분노하고 있는 대상은 용사가 아니라.


그들 자신이었다.


'분하다.'


단순한 얘기다.


여기 있는 녀석들은 출석 번호 3번까지를 제외하면 다들 고만고만한 녀석들뿐이었다.


언제든지 서열 정리를 하고자 한다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녀석들.


하지만 명백하게 우위가 가려진 뒤에 변명할 수 있는 거리는 없었다.


모두가 알았다.


겨우 세 명을 제외하고는 스타트 라인은 똑같았다는 걸.


그리고 똑같이 지각과 결석을 반복한 나태함을 가졌다는 것은 함께 어울린 그들이 더 잘 알았다.


하지만 어째서 그들은 합격하고 자기들은 탈락했는가?


'저 녀석들은 최소한의 할 거라도 했으니까.'


그러면 자기들은?


나는?


'왜 나는 저 녀석들이 한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하지 않았지?'


변명할 여지가 없다.


"크흑···"


때문에 그들은 고개를 떨궜고.


눈물을 흘렸다.


'내 태만함 때문에, 나 스스로를 죽음에 몰아넣는구나.'


당해도 싸다.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용사는 그들의 반응에서 눈을 돌리지 않았다.


'더 아파해라. 뼈저리게 아파해라.'


뒤가 없는 후회란 죽을 상황에 처했을 때를 말하는 것.


하지만 아직 후회하고도 멀쩡히 살아 있을 여지가 있다는 건.


조금이나마 뒤로 걸음질 칠 자리가 있다는 뜻이다.


'뼈저린 후회는 다시는 반복하지 않는다는 다짐을 낫지.'


용사가 그랬다.


그렇게 후회했음에도 반복하고 말았다.


하지만.


'뒤가 있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발디딤대가 있다는 것.'


결국 마왕을 토벌하지 않았는가.


용사가.


내가 바로 그 산증인이나 다름없다.


'저 아이들에게는 물러날 곳이 있다.'


퇴학을 죽음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정말 목이 칼에 썰리기 직전까지는, 글쎄.


'그걸 알아채는 녀석들이 몇 명이나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이걸 계기로 나아가는 녀석들은 확실히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가시안과 르로노아는 용사가 잠시 말을 멈추고 시선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 확인했고.


그의 시선이 퇴학 처리 시킨 학생들에게 향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비아냥거리고 놀리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다만 그런 말을 내뱉었기에 무슨 의도를 가지고 말을 내뱉었는지까지는 헤아리지 못했을 뿐.


"미리 말해두겠는데 지금부터 내 가르침은 비쌀 거다. 너희들의 목숨을 전부 줘도 모자랄 만큼."


"꿀꺽."


마른 침을 삼키고 식은 땀이 몸에서 흘러내렸다.


용암의 열기 때문이 아니었다.


용사의 말에 실린 무게.


말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과 공포는 용암의 열기를 잊을 만큼 한기 마저 가져왔고.


학생들은 수업이라는 지금의 상황에서 마치 현장에 있는 듯한 싸늘한 공기를 느꼈다.


"내 수업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녀석은 죽는다. 마찬가지로 이번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 할 경우에도."


죽는다.


유유자적한 퇴로 따위는 없다.


"다시 한 번 소개하지. 이번 일주일 동안 너희들을 가르칠 용사라고 한다."


"···"


"앞으로 잘 부탁하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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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은퇴 용사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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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45. 내기 23.03.10 19 0 12쪽
44 44. 살풍경 23.03.09 22 0 11쪽
43 43. 나름 잘 되어가고 있는 듯한 23.03.08 36 0 12쪽
42 42. 1교시 대환장 파티 (2) 23.03.07 29 0 13쪽
41 41. 1교시 대환장 파티 23.03.06 17 0 11쪽
40 40. 기습 23.03.05 20 0 14쪽
39 39. 용암 근처에서 노숙 23.03.04 22 0 13쪽
» 38. 탈락자는 아카데미 퇴출 (3) 23.03.03 21 0 12쪽
37 37. 탈락자는 아카데미 퇴출 23.03.02 28 0 10쪽
36 36. 종 쳐 (2) 23.03.01 34 0 10쪽
35 35. 종 쳐 23.02.28 31 0 10쪽
34 34. 정신교육과정 불나방 23.02.27 18 0 9쪽
33 33. 망나니 테스트 (2) 23.02.26 27 0 10쪽
32 32. 망나니 테스트 23.02.25 20 0 10쪽
31 30. 참교육 23.02.24 20 0 14쪽
30 30. 짹짹 23.02.23 22 0 14쪽
29 29. 할 일 투성이 23.02.22 18 0 16쪽
28 28. 적과의 불편한 동거 (4) 23.02.21 21 0 14쪽
27 27. 적과의 불편한 동거 (3) 23.02.20 23 0 13쪽
26 26. 적과의 불편한 동거 (2) 23.02.19 21 0 11쪽
25 25. 적과의 불편한 동거 23.02.18 23 0 11쪽
24 24. 결산 보고 23.02.17 24 0 11쪽
23 23. 낯선 천장이다 23.02.16 24 0 12쪽
22 22. 마무리는 용사의 몫 23.02.15 23 0 19쪽
21 21. 아이리스 아마게돈 23.02.14 25 0 17쪽
20 20. 배로 갚는다 (3) 23.02.13 23 0 15쪽
19 19. 배로 갚는다 (2) 23.02.12 22 0 18쪽
18 18. 배로 갚는다 23.02.11 25 0 10쪽
17 17. 뒤통수 얼얼하네 (2) 23.02.10 27 0 17쪽
16 16. 뒤통수 얼얼하네 23.02.09 28 0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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