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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에 오면 당신은 설 것이다.

아카데미 은퇴 용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만찬가
작품등록일 :
2023.01.25 09:01
최근연재일 :
2023.03.10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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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336

작성
23.03.08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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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3. 나름 잘 되어가고 있는 듯한

DUMMY

아침도 거르고 몬스터 퍼레이드에 밥 먹고 나면 소화하기도 전에 용암길을 따라 체력 단련.


그리고 저녁이 되기까지 나에게 1대1 맞춤형 트레이닝을 받고.


화룡점정으로 야간 기습에 언제든지 대비할 수 있도록 골렘으로 마무리.


"순조롭네. 순조로워."


꽤 얇아진 두깨의 종이 리스트를 이리저리 훑어보면서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만에 절반밖에 안 떨어진 걸 생각하면 나름 잘 버티는데?"


한 명 한 명 탈락할 때마다 뜯다 보니 어느덧 절반 가까이 뜯겨져서 종잇장이 너덜너덜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내가 나름 조절을 해서 이만큼이나 남은 거지.'


아주 약간이라도 강도를 높였더라면 3인방들도 어떻게 끝까지 잘 버틸 수 있을지는 장담 못 할 것이다.


나도 지금까지 내가 활동한 루틴이 일반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다.


때문에 나름대로 대중을 두고는 있지만 이 정도도 해내지 못한다면 6일, 아니 5일 뒤의 대회에서 좋은 성적은 물거품이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눈빛들이 달라지기는 했어."


이전까지는 궁지에 몰리는 쥐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면.


지금은 몸을 바짝 세운 승냥이 정도는 될 것이다.


모처럼 훈련시간 사이에 휴식을 부여했는데 나한테 무기를 겨누고는 절대로 뒤를 보이지 않았다.


'경계심을 가지는 건 좋은 거지.'


오히려 그 동안 너무 안일하게 살았던 녀석들이 아닌가.


'저 정도가 딱 좋아.'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녀석들을 보고 있자니 입가에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용사님!"

"응?"


누군가가 뒤쪽에서 정겨운 억양으로 내 발걸음을 잡아 끌었다.


누구지? 하고 생각하다가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지금 이 아카데미에서 나한테 밝은 목소리와 함께 총총 걸음으로 걸어올 수 있는 사람은 두 사람밖에 없으니까.


"켁. 용사다."


토악질을 하는 도마뱀 한 마리 추가해서.


"쉐릴. 공주님."

"좋은 아침이에요, 용사님. 지금까지 학생들 가르치고 계셨던 거예요? 설마 밤 새신 건 아니죠?"

"네."

"세상에.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니에요? 조금씩 쉬면서 하세요. 건강 해치실까 걱정돼요."


걱정해주는 건 고마웠지만 전혀 걱정할 거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가르치는 게 즐거워서 낮밤 바뀌는 줄도 모르고 있지.'


이들이 학생들보다 나를 먼저 걱정하는 건 나와 친분이 있어서인 것도 이유로 들 수 있겠지만.


내가 이들에게 오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것이 클 것이다.


이 사람들은 내가 어떻게 교육하는지 감도 잡지 못하고 있으니까.


'저 녀석들 상태 보면 절대로 나한테 걱정된다고 말 못 할 걸.'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마침 쉬려고 나온 참이었어요."


환하게 웃으면서 그들의 걱정을 덜어주고 있는데.


"요옹사아니이임···."


저 멀리, 그러니까 그들이 걸어온 길 쪽에서 웬 좀비 한 마리가 내 이름을 부르면서 비척비척 걸어오고 있었다.


짚을 게 없어 벽을 짚다가 바닥에 넘어질 뻔도 하고, 구부정하게 허리를 굽힌 채 거의 바닥을 기다시피 하면서 걸어오는 가여운.


아니 한심한 영혼.


내가 이 둘의 담당 교사를 부탁했던 헤이즈였다.


"살려주세요오···."


그녀가 겨우 내 앞까지 와서는 바짓가랑이를 잡고 도움을 요청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내 얼굴이 한심한 것을 보듯 구겨졌다.


"아니 학생들은 쌩쌩한데 왜 강사라는 녀석이 다 죽어가냐."

"어쩔 수 없잖아요오. 저는 1대1 싸움에 특화된 데다가 소지한 마력도 얼마 안 되는데, 세 명이서 떼로 덤비는데 제가 어떻게 감당해요오."

"맞아! 얘 엄청 약해! 허접이야 허접!"

"융융! 선생님한테 그런 말 하면 못 써요!"


세 명이 아니라 한 마리라고 정정하려 했지만 넘어간다.


"그러면 1대1로 싸우면 되잖아."

"공주님은 몰라도 쉐릴 양은 드래곤 브리더잖아요. 협공을 하는 직업인데 따로 싸우게 되면 반도 전력을 못 낸다고요. 아시잖아요."


한 명을 상대로라면 무적이지만.


'두 명이 되는 순간부터 거짓말처럼 D급 모험가보다 못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게 최대의 단점이란 말이지.'

"그러면 둘을 하나의 조합으로 묶는다고 생각하고 싸워."

"그런다고 둘이 하나가 되지는 않잖아요. 저는 이런 훈련에 적합하지 않아요. 차라리 아리아 님이나 아이리스 님에게 부탁해주세요."

"정말로?"


나는 바로 되물었다.


저질체력에 헤롱거리던 헤이즈가 돌아온 물음에 잠깐 생각하는 것처럼 고개를 들었다.


"···아니요."


내가 헤이즈를 둘의 전문 강사로 부탁한 것은 그녀 말고는 이들을 가르칠 만한 사람이 아카데미에 없기 때문인 게 컸다.


아리아가 교육을 담당한다?


'나도 감당못하는데?'


장담하건데.


"아리아는 신성마법으로 사람을 녹여."


신성마법이 아니라 산성마법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그렇다고 아이리스에게 교육을 맡긴다?


'그건 더욱 재앙이지.'


대련을 하는 상황이라고 쳤을 때 그 녀석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훤히 보인다.


"템페스트! 냐하하하하하!"


그 날은 아카데미가 지도에서 사라지는 날이다.


'아즈엘카에게 맡기고 싶은 마음도 있긴 하지만.'


코가 석자인 마당에 어떻게 부탁을 한단 말인가.


'하다 못해 그 녀석만 멀쩡했어도.'


아이리스의 마법을 막아내느라 내 옆 침대에서 미라가 된 그 녀석.


외상이 치유되려면 적어도 일주일 안에는 못 맞출 것 같았다.


남는 사람이 한 명 있기는 했다.


'황제는 나가리고.'


한신.


선도위원장인 그녀는 아르토리아 아카데미에 끝까지 남는 충성심을 보여줬다.


엘리트 출신에 성실한 에이스의 소질까지 갖춘 그녀였기에 온갖 아카데미에서 러브콜을 보내왔지만 그녀는 아르토리아 아카데미에서 졸업하겠다며 선을 그었다.


'이유인 즉 그녀가 올해 곧 졸업을 앞둔 졸업반이기도 하고.'


마지막까지 아르토리아 아카데미의 선도위원장으로서 자리를 지키고 싶다는 그녀의 뜻을 누구도 꺾을 수 없었다.


지금 그녀는 인부들을 인솔하며 일을 거드는 동시에 아즈엘카의 보좌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고 있었다.


'참 맡기기 애매하다는 말이야.'


여차하면 대회에서 조커로 쓸 수는 있겠지만.


'그럴 마음은 내가 없지.'

"그러니까 힘내라."

"히잉···"


체념하듯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는 헤이즈.


그러더니 아주 자연스럽게 나를 뒤에서 껴안는다.


그녀의 가슴이 내 머리 위에 올라 앉아 시야를 가렸다.


누가 보면 내가 봉제인형이 된 줄 알겠어.


"이거 놔. 무거워."

"무겁다는 말 하지 마세요오. 이렇게라도 용사님 성분을 충전하지 않으면 못 버틸 것 같단 말이에요."

"사람을 비타민 보충제 취급하지 마라."


마음 같아서는 품에서 떨쳐내고 싶긴 하지만.


'고생시키고 있으니까 이 정도쯤이야.'


한 번쯤은 관대하게 넘어가주기로 했다.


"에헤헤. 용사님. 용사니임~ 말은 무뚝뚝해도 상냥하시다니까."


말꼬리를 늘어뜨리면서 나한테 자기 뺨을 부비부비 비벼댔다.


'내가 어리광을 너무 받아줬나?'


이번 생에서는 모질게 대한 게 거의 전부였던 것 같은데.


"아, 부럽다. 나도 하게 해줘요!"

"안 됩니다."

"치이."


이러는 걸 뭐 저렇게 부러워하는 표정으로 보는 걸까.


"용사님."


또 공주와 같은 부탁을 하려고 운을 떼는 건가 했지만 쉐릴의 표정을 보아하니 그건 또 아닌 것 같았다.


"저도 다른 학생분들과 마찬가지로 용사님께 가르침을 받을 수는 없을까요?"


내게 요청을 하던 쉐릴은 아차 싶어 헤이즈를 보며 손사레를 쳤다.


"아니, 헤이즈 선생님께 배우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용사님께 가르침을 받고 싶어요. 예전부터 바라왔던 일이에요. 용사님께 배우면 저도 용사님께 좀 더 도움이 될 수 있을 거예요."


기특한 생각이다.


내게 보은을 입은 것을 갚기 위해 드래곤 브리더가 되었다는 것은 전에 들었다.


보다 강해지기 위한 목적을 자기의 몸을 보호하기 위함보다 내게 도움이 되기 위함을 우선 순위로 드는 것도 고마운 일이었다.


물론 내가 그녀를 가르치는 게 헤이즈에게 가르침을 받는 것보다야 효율이 좋다고 생각은 하는데.


"음."


입 안쪽에서 신음만 흐르고 고개는 갸웃거렸다.


애매해서 그렇다.


'이 아이라면 지금의 커리큘럼 쯤이야 쉬운 난이도겠지.'


다른 학생들이야 죽을 맛이겠지만 쉐릴에게 있어서는 쉬울 것이다.


내가 이 둘을 그들과 따로 떨어뜨린 이유는 내가 하는 말에 귀담아듣는 이유도 물론 있었지만.


그들에 비해 이 둘의 실력은 한참 위에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참고로 공주도 포함해서.'


아즈엘카는 공주가 예상 외로 높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면서 놀라워했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애초에 그녀는 마왕에게 납치 당한 이력이 있지.'


어디 동화 속에 나오는 높은 신분의 공주도 아니고 한낱 약소국의 공주가 마왕에게 납치 당했다.


마왕이 본능처럼 생명체를 취한 이유는 마력을 얻기 위함에 있었다.


놈은 생명체의 생명력을 소모품처럼 흡수했다.


그런 마왕이 공주를 바로 흡수하지 않고 감옥에 가둬둔 이유는 그녀에게 상당한 마력이 잠재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왕비에게서 물려받은 걸 거야.'


빡빡이 대왕의 아내.


실제로 얼굴을 본 적은 없었다.


내가 용사가 되기 이전에 그녀는 공주를 낳고 이미 죽은 뒤였다.


'궁전 벽에 걸린 초상화로 얼굴만 몇 번 봤지.'


그녀는 14서클 마법을 구사할 수 있는, 대마법사의 반열에 들어선 역대급 마법사 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초상화에서 본 그녀는 지금의 공주와 상당히 닮았지만 빼어난 미모 또한 겸비하고 있었다.


공주 또한 한 미모 하는 것을 보면 초상화가 과장되었다는 생각은 안 든다.


'왜 하필 그런 빡빡이랑 결혼을 했는지.'


생각하면 할수록 미스테리.


아무튼.


초조하게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쉐릴에게는 안 됐지만.


"대회가 끝나기 전까지는 안 될 것 같아. 미안해. 그 다음에 얘기하면 안 될까?"


나는 나름 정중하게 거절 의사를 보였다.


'지금은 한쪽에만 집중해야 할 때야.'


기대감이 실망으로 바뀌면 어깨가 축 처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


"흥! 네 도움따위는 필요없거든? 네 도움 없이도 엄마와 나는 누구에도 지지 않을 정도로 강해!"

"아. 나 사실 얘 때문에 가르치기 싫어."

"융융! 당신! 미워요!"

"꺅! 어, 엄마! 미워하지 마! 미워하지 마!"


사랑하는 엄마의 자식 미워 선언에 용들짝 놀라서 어쩔 줄 몰라하는 융융.


얼마나 초조했는지 애절한 눈망울로 나한테 도움을 구했다.


물론 나는 철저하게 외면했다.


'어디 그냥 혼쭐 나봐라.'


낄낄거리면서 슬슬 작별을 하려는데 내 시야 멀리에서 낯선 마차들이 줄지어 주차되어 있는 게 보였다.


"응?"


한 눈에 봐도 아르토리아 아카데미의 마차는 아니었다.


'이 다 쓰러져가는 아카데미에 손님이라고?'


심지어 색깔이나 모양도 다른 게 왕국 한 곳에서 찾아온 게 아닌 것이 확실했다.


"처음 보는 마차인데, 누가 왔어?"

"아."


쉐릴이나 공주는 물론 헤이즈까지 알고 있는 반응이었다.


다만 보여주는 반응이 애매한 것이, 표정은 어딘가 깨름칙해보이고 입 모양은 쌉싸름한 게 혀끝에 닿은 것 같이 미묘하게 뒤틀렸다.


"아카데미에서 찾아왔어요."

"아카데미?"

"네. 대회에 대해서 할 말이 있는 것 같던데요."

"흠."


'불난집에 기름 부으려고 왔군.'


의도가 뻔할 뻔자였다.


그 동안 아르토리아 아카데미의 위상에 찍 소리도 못하던 자들이 한순간에 망조에 들어서니까 불구경 온 김에 기름 붓고 싶어서 안달이 났을 것이다.


'아. 아즈엘카한테 근황 보고하러 가야 되는데.'


사실 휴식 시간을 준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학생들을 걱정하는 그녀에게 정기적으로 근황 보고를 해주겠다고 약속했기에.


'그녀라면 대처야 잘 하겠지.'


하지만 분명히 조리돌림을 열심히 당하고 있을 것이다.


'아르토리아 강사가 교장이 조리돌림 당하는 걸 참아?'


아니.


"용사님. 지금 이상한 생각하고 있죠."

"아니."


나는 턱을 쓸었다.


"좋은 생각이 났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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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은퇴 용사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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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45. 내기 23.03.10 19 0 12쪽
44 44. 살풍경 23.03.09 22 0 11쪽
» 43. 나름 잘 되어가고 있는 듯한 23.03.08 36 0 12쪽
42 42. 1교시 대환장 파티 (2) 23.03.07 29 0 13쪽
41 41. 1교시 대환장 파티 23.03.06 17 0 11쪽
40 40. 기습 23.03.05 20 0 14쪽
39 39. 용암 근처에서 노숙 23.03.04 22 0 13쪽
38 38. 탈락자는 아카데미 퇴출 (3) 23.03.03 20 0 12쪽
37 37. 탈락자는 아카데미 퇴출 23.03.02 28 0 10쪽
36 36. 종 쳐 (2) 23.03.01 34 0 10쪽
35 35. 종 쳐 23.02.28 31 0 10쪽
34 34. 정신교육과정 불나방 23.02.27 18 0 9쪽
33 33. 망나니 테스트 (2) 23.02.26 27 0 10쪽
32 32. 망나니 테스트 23.02.25 20 0 10쪽
31 30. 참교육 23.02.24 20 0 14쪽
30 30. 짹짹 23.02.23 22 0 14쪽
29 29. 할 일 투성이 23.02.22 18 0 16쪽
28 28. 적과의 불편한 동거 (4) 23.02.21 21 0 14쪽
27 27. 적과의 불편한 동거 (3) 23.02.20 23 0 13쪽
26 26. 적과의 불편한 동거 (2) 23.02.19 20 0 11쪽
25 25. 적과의 불편한 동거 23.02.18 23 0 11쪽
24 24. 결산 보고 23.02.17 24 0 11쪽
23 23. 낯선 천장이다 23.02.16 24 0 12쪽
22 22. 마무리는 용사의 몫 23.02.15 23 0 19쪽
21 21. 아이리스 아마게돈 23.02.14 25 0 17쪽
20 20. 배로 갚는다 (3) 23.02.13 23 0 15쪽
19 19. 배로 갚는다 (2) 23.02.12 22 0 18쪽
18 18. 배로 갚는다 23.02.11 24 0 10쪽
17 17. 뒤통수 얼얼하네 (2) 23.02.10 27 0 17쪽
16 16. 뒤통수 얼얼하네 23.02.09 28 0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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