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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은퇴 용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만찬가
작품등록일 :
2023.01.25 09:01
최근연재일 :
2023.03.10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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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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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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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10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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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내기

DUMMY

"하! 웬일로 루카스 교장 선생님께서 마음에 맞는 얘기를 하시는군요!"


호카스가 무릎을 탁 치며 대놓고 웃어재꼈다.


아즈엘카는 입술을 다물었다.


'놀리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학생과 아르토리아를 걱정하기에 내뱉는 말이었다.


그리고 경고이기도 했다.


대다수의 인재들이 아르토리아를 떠나고 껍데기만 남은 것을 모두가 알고 있는 실정.


애써 남은 아르토리아라는 이름 마저 퇴색시켜서 학생들에게 상처를 안기지 말라는 소리는.


무참히 패배할 정도의 격차가 있음을 확신하기에 하는 소리였다.


투명했기에 가혹하다.


'분하다.'


주먹을 조용히 쥐었다.


다른 아카데미의 사람에게 동정을 받을 정도로 추락했는가.


아르토리아 아카데미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었는데.


"까놓고 말해서 용사가 마왕을 토벌한 시점에서 아르토리아 아카데미의 존재의의 마저 잃지 않았습니까? 아직까지 아카데미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아집이 아닌가요?"

"저희 아카데미에 오시지요. 아즈엘카 교장님이라면 대마법사로 명성이 자자하신 분이시니, 저희 아카데미에서 극진히 대접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물론, 학생들도 말이죠."


말하면서 모브리의 눈이 아즈엘카의 얼굴과 몸을 음흉하게 훑었다.


그는 예전부터 아즈엘카의 미모에 홀려 데이트를 신청했다가 거절 당한 적이 있었다.


아즈엘카가 그의 흑심을 눈치 채지 못 할 리가 없었다.


'개만도 못한 자식.'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죽이고 싶었다.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러나 생긋 웃는 접대 미소로 반박했다.


이로써 오히려 분이 쌓이는 것은 모브리 쪽이 되었다.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져서는 모욕을 참는 것에 급급한 표정이었다.


"후회하게 될 것이오."

"그렇다면 용사는 내게 내놔라!"


컁컁이 이때다 싶어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마왕을 토벌한 용사의 강함이 어느 정도일지 궁금하구나! 가능하면 매일 질릴 때까지 붙어보고 싶다!"


그 동안 강자라고 명성 높은 사람들 중에 컁컁과 비등한 강함을 강한 사람은 몇 명 없었다.


있어봐야 옆에 있는 눈 하나 없는 제자 정도일까.


귀찮다면서 상대해주지 않기도 하고 강함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을 상대로 싸우는 것은 재미 있지만 어딘가 부족했다.


아즈엘카와는 싸워본 적이 없어서 근질거리기는 했지만 끈질긴 애원에도 불구하고 죄송하다는 답변만 들어 포기했다.


컁컁에게는 자기의 전력을 매일 쏟아부을 수 있는 강자 중의 강자를 원했고 그게 용사일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용사는 이곳에 자진해서 머물기로 했습니다."

"나와 붙으면 생각이 달라질걸! 강자는 강자에게 끌리는 법이니까!"

"어련하시겠습니까. 싸움 바보."

"무어라 했느냐!"

"안 했습니다."

"운눈누! 거짓말! 이 몸의 귀는 4개이느니라!"

"안 했다니까요, 글쎄."


아즈엘카는 순수하게 궁금해졌다.


"만약 용사가 만족하지 못하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가요?"

"가르쳐야지! 썩어도 준치일지니!"

"그 다음에는요?"

"싸워야지!"


머릿속에 싸운다는 선택지 말고는 지워버린 것일까.


"그렇다면 용사가 승리한다면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그 때는!"


컁컁은 팔짱을 끼고 당당하게 외쳤다.


"짝짓기를 할 것이니라!"

"푸우웃!"

"으아악! 새로 산 로브가!"


그녀의 발언에 차를 마시던 루카스가 입 안에 있던 것을 뱉었다.


하필 앞에 있던 모브리가 봉변을 당했다.


너무나도 당당하고 순수한 발언에 아즈엘카조차 할 말을 잃었다.


"응? 짝짓기를 모르느냐! 사랑의 교미 말이니라!"

"아뇨. 압니다. 알아요."

"그런데 왜 모르는 척 아무 말도 없었느냐! 고얀지고!"

"너무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지 않았습니까."

"강한 남자와 짝짓기를 하는 것은 여자의 몸을 가진 생물로서 본능이 아닌가! 너는 용사를 보고 울끈불끈한 적이 없다는 말인 것이야!"

"뭣! 무슨!'


아즈엘카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새빨개졌다.


'내가 왜 그딴 꼬맹이랑!'


말을 내뱉으려던 입이 턱하고 막혔다.


'그딴 꼬맹이랑.'


꼬맹이?


용사가 누구인가.


아르토리아 아카데미의 염원이었던 마왕을 토벌하고.


아카데미를 구한 장본인이 아닌가.


임시적이기는 하지만 심장을 인질로 잡힌 그녀에게 안정을 주었다.


한마디로 그녀에게는 은인이었다.


'어라?'


이상하다.


'왜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리지?'


아니. 아니다.


'나이 차이가 손자 뻘인 상대인데 왜 이제 와서?'


아즈엘카는 수십 년 동안 남자와의 인연은 없었다.


오랜 시간 안개숲의 마녀로 불려왔던 그녀였기에 사람을 상태로 많은 아픔을 겪었기도 했거니와.


반 세기를 학생들을 위해 종사하며 심장을 위협 당했기에 그럴 여력이 없었다.


'눈에 차지 않는 남자가 없기도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런 감정은 생전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다.


그 동안 용사를 의식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한 번 그녀의 발언으로 의식을 하니, 막연하게 얼굴이 화끈해지는 것이었다.


"그래! 그 표정이다! 완벽한 암컷의 표정이로구나!"


컁컁은 자기의 뜻이 옳다는 것을 증명했다는 듯 한껏 기고만장해져서 아즈엘카를 향해 삿대질했다.


아즈엘카는 그제야 자기의 표정이 남 보일 만한 표정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얼굴을 가렸다.


'나한테는 저런 표정을 보여준 적이 없었는데!'


이 와중에 손수건으로 로브에 묻은 차를 닦던 모브리의 눈에 불이 켜졌다.


용사라는 녀석이 자기가 연모하던 상대를 반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열등감과 분노를 느꼈다.


꽝!


"흐냐악!?"


루카스의 정의의 주먹이 컁컁의 정수리에 내리 꽂혔다.


짐승의 비명을 지르면서 양손으로 머리를 빠르게 감싸고 눈물 젖은 눈으로 원망스럽게 루카스를 올려다보는 컁컁.


"무슨 짓이냐!?"

"그쯤 하시죠. 곤란해하고 있지 않습니까."

"무슨 소리냐! 눈이 한쪽이라서 안 보이는 게야!? 저 얼굴은 누가 봐도 기뻐하는 암컷의 표정이잖···!?"



꽝!


"끼약!? 이것이! 나랑 해보자는 게야!"

"아니, 이 할머니가 하도 싸우더니 노망이 났나. 매파 짓을 하고 있네."

"누가 할머니라는 거얏! 이 몸은 아직 300살이라고!"

"예. 선조 할머니."

"컁! 내 오늘 너의 남은 한쪽 눈을 뽑아버리고 말테다!"


루카스는 자기를 향해 달려드는 컁컁의 얼굴을 한 손으로 막아세웠다.

컁컁은 어떻게든 그의 몸에 상처를 내려고 양손을 두서 없이 휘둘렀지만 허공만 휘저을 뿐이었다.


다른 교장들은 그 모습을 넋 놓고 봤다.


'최강의 야수를 저렇게 애 다루듯 하다니.'


그들의 입장에서 컁컁은 호승심에 몸을 불사르는 전쟁광이었기에.


다시 본론으로 넘어와서.


"거두절미하고. 오늘은 그 대답을 들으러 왔소."

"아."

"신중하게 대답해주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하면 사정을 이해하고 존중할 따름이오. 그렇게 되면 다음 천학제 동안 아카데미를 추스를 수 있을 테지. 하지만 만약 번복하지 않을 경우."


루카스 주변의 분위기가 무겁게 깔렸다.


"아르토리아 아카데미를 그 자리에서 학생들과 함께 영원히 산산이 부숴줄 것을 약속하지."


모두가 아즈엘카의 답변을 기다렸다.


'맞는 말이야.'


학생들이 천학제에 출전해서 좋은 성적을 기대할 정도의 실력을 갖추었느냐고 묻는다면.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 아이들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어.'


용사가 자신을 믿어보라고 했지만 한없이 불안하기만 했다.


누구보다 그들을 지켜봐왔기에.


'건물은 다시 세우면 돼.'


지금은 제국 황제의 도움으로 하루가 다르게 건물이 보수되고 있었다.


만약 이번 천학제를 포기한다고 하면 황제의 조력은 끊길 테고 많은 애로사항이 꽃을 피울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아르토리아 아카데미는.'


무너진 명성과 학생들의 자존실을 회복하는 것은 그보다 훨씬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믿고 싶어.'


아르토리아 아카데미는 아직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아르토리아 아카데미아의 학생은 스스로 위상을 드높일 자격을 갖추고 있음을.


'하루 건너 하루를 사는 곳이 과연 아카데미라고 할 수 있을까?'


그녀는 믿고 싶었다.


그녀의 주먹을 다부질 때의 힘만큼이나.


그리고.


똑똑


바깥쪽에서 노크소리가 들렸다.


모두의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


"누구지?"


누가 아카데미의 총수들이 얘기를 하는데 문을 두드리는가?


"볼일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처음 듣는.


'아.'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익숙한 목소리.


누구의 허락도 구하지 않고 문고리를 열어젖히는 당돌함.


문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목소리의 정체는.


"꼬마아이?"


아주 앳된 모습의 남자 아이였다.


본래 금발인 것 같았지만 머리 앞쪽이 애매하게 검게 물들었다.


그것 말고 특징이라고는 아주 어린 것밖에 없었다.


"아카데미에 다니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처럼 보이는데."

"아르토리아 아카데미는 이제 이런 어린아이까지 받는 겁니까! 어디까지 떨어질 건지!"


아이의 모습에 호카스와 모브리가 다시 책을 잡았다.


하지만 아즈엘카에게 있어서 그 아이는 희망이었다.


그저 희망만을 좇다가 바래진 눈이 다시금 빛을 찾았다.


그것을 둘은 모르는 것 같았다.


'누구지?'


루카스는 소년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허리춤에 걸친 칼집에 손을 댔다.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고 들어오는 소년에게서.


'피냄새가 나는군.'


전장에서 피로 온몸을 적신 그였다.


헌데 그의 몸에서 나는 피냄새 조차 소년에 비하면 맹물 수준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살기를 풍기는 게 아니었다.


적의를 드러내지 않는 게 눈에 보였고 그럴 낌새도 없었다.


'하지만 언제든지 우리를 죽일 수도 있다.'


소년이 들어온 순간, 평원하던 방의 분위기가 대번에 전장으로 바뀌었다.


오랫동안 전장에서 피를 흘렸으나 그 또한 오래 되었기에 잊히지 않을 거라 확신했으면서 조금씩 피냄새에 어색해져 가던 루카스.


그러나 눈앞에 엄습해오는 강렬한 기운에 전장의 감이 한 번에 돌아왔고 분명히 소년을 경계했고, 긴장했다.


'이 소년은 도대체 누구지?'


루카스는 등 뒤에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그 위로 식은땀이 흘러내려 등골이 서늘했다.


"호오. 오호?"


컁컁은 그가 들어오기 전부터 문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문밖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문이 열리자 모습을 드러내는 게 살수가 아니라 이런 어린 아이일 줄이야.


루카스가 말릴 틈도 없었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소년의 주위를 신기하다는 듯이 빙빙 돌아도 보고.


"킁킁. 킁킁."


냄새도 맡아보고.


"할짝."


맛도 보았다.


소년은 갑작스러운 혀놀림에 깨름칙한 표정을 짓고 몸을 피했지만 컁컁은 개의치 않고 재밌다는 듯이 웃어보였다.


'처음이구나.'


이렇게 강력한 진기를 보란 듯이 내뿜는 생물은.


'이길 수 있을까 가늠하는 적은 실로 오랜만이로구나.'


이빨을 입 안으로 숨길 수 없고 손톱이 가려웠다.


당장에라도 도망치라는 짐승으로서의 본능과 당장에라도 싸우고 싶다는 개인으로서의 호승심이 안쪽에서 빗발치고 있었다.


여지 없이, 강자였다.


"네 녀석. 웬 놈이냐."


여전히 여유로운 말투 끝에 짐승의 끓는 목소리를 섞은 그녀의 물음에 소년은 모두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처음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허리를 꼿꼿이 펴 모두를 향해 바라보며 존재를 알렸다.


"아르토리아 아카데미에서 임시 강사를 맡고 있는 용사라고 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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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은퇴 용사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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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 내기 23.03.10 20 0 12쪽
44 44. 살풍경 23.03.09 22 0 11쪽
43 43. 나름 잘 되어가고 있는 듯한 23.03.08 36 0 12쪽
42 42. 1교시 대환장 파티 (2) 23.03.07 31 0 13쪽
41 41. 1교시 대환장 파티 23.03.06 17 0 11쪽
40 40. 기습 23.03.05 20 0 14쪽
39 39. 용암 근처에서 노숙 23.03.04 22 0 13쪽
38 38. 탈락자는 아카데미 퇴출 (3) 23.03.03 21 0 12쪽
37 37. 탈락자는 아카데미 퇴출 23.03.02 28 0 10쪽
36 36. 종 쳐 (2) 23.03.01 34 0 10쪽
35 35. 종 쳐 23.02.28 31 0 10쪽
34 34. 정신교육과정 불나방 23.02.27 19 0 9쪽
33 33. 망나니 테스트 (2) 23.02.26 27 0 10쪽
32 32. 망나니 테스트 23.02.25 21 0 10쪽
31 30. 참교육 23.02.24 20 0 14쪽
30 30. 짹짹 23.02.23 23 0 14쪽
29 29. 할 일 투성이 23.02.22 18 0 16쪽
28 28. 적과의 불편한 동거 (4) 23.02.21 21 0 14쪽
27 27. 적과의 불편한 동거 (3) 23.02.20 24 0 13쪽
26 26. 적과의 불편한 동거 (2) 23.02.19 21 0 11쪽
25 25. 적과의 불편한 동거 23.02.18 24 0 11쪽
24 24. 결산 보고 23.02.17 25 0 11쪽
23 23. 낯선 천장이다 23.02.16 25 0 12쪽
22 22. 마무리는 용사의 몫 23.02.15 24 0 19쪽
21 21. 아이리스 아마게돈 23.02.14 26 0 17쪽
20 20. 배로 갚는다 (3) 23.02.13 24 0 15쪽
19 19. 배로 갚는다 (2) 23.02.12 22 0 18쪽
18 18. 배로 갚는다 23.02.11 25 0 10쪽
17 17. 뒤통수 얼얼하네 (2) 23.02.10 27 0 17쪽
16 16. 뒤통수 얼얼하네 23.02.09 29 0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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