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이 곳에 오면 당신은 설 것이다.

아카데미 은퇴 용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만찬가
작품등록일 :
2023.01.25 09:01
최근연재일 :
2023.03.10 09:08
연재수 :
45 회
조회수 :
1,669
추천수 :
8
글자수 :
279,336

작성
23.02.27 09:25
조회
18
추천
0
글자
9쪽

34. 정신교육과정 불나방

DUMMY

"누가 등을 보여줬다고?"


"뭐?"


이 와중에 무슨 말을···


까지 생각하고 있는 가시안은 낌새를 눈치채고 다급하게 레이피어를 뒤로 빼며 몸을 피했다.


용사가 어깨에 메고 있던 양날 도끼가 그의 손목 스냅 만으로 움직여 위에서 아래로 휘둘리고 있었기에.


"다 잡았는데 놓치다니 어리석긴···!"


용사가 움직이는 동시에 하칸이 몸을 날려 주먹 등으로 후려칠 것처럼 팔을 휘둘렀지만.


"어리석은 건 너님이시구요."


용사가 도끼를 휘두르는 속도가 압도적으로 빨랐다.


앞으로 무게 중심이 실린 하칸의 얼굴 옆면이 도끼의 옆면에 강하게 부딪혔다.


하칸은 눈앞이 아찔해지는 것에 모자라 머리가 날아간 것 같이 새하얘졌다.


여지껏 받아본 충격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이었다.


쾅!


그대로 옆으로 날아가 벽에 머리를 처박고 꿈쩍도 하지 못하는 하칸.


"이, 무슨···!"


일격에 당하는 모습을 처음 보고 당황하는 르로노아의 앞에.


용사가 섰다.


분명히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음에도.


방심하지 않았음에도.


움직임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 이게 무슨···.'


도저히 뇌가 눈앞에 벌어지는 일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와중에.


"호오~"


용사는 딱밤 때릴 것처럼 손 모양을 만들더니 입김을 불었다.


딱!


"하윽!"


르로노아는 자기 이마 한가운데에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렸다는 것을 자각했다.


자각만 했을 뿐 머리가 띵 울리더니 몸이 제멋대로 맨바닥에 쓰러졌다.


그녀의 마지막 기억은 바닥이 자기를 마중 나오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두 명을 잠재운 용사를 보면서.


가시안은 다른 생각을 했다.


'강하다.'


납득하지 못하는 것은 인정하려 하지 않으려는 자아 때문.


다른 학생들과 달리 가시안은 타인의 강함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가 놀란 것은 강함의 끝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까지 장난감 취급 받는 건 오랜만이다.'


그것도 일대일 싸움도 아니고 일 대 다수의 싸움에서.


자기가 다수의 입장인 싸움에서 이렇게 당해본 건 실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한 때 B급 모험가에 올랐던 자.


한 때 아카데미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으며 지금까지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은 자.


그리고 한 때 아카데미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모험가와 교사, 교장, 학생들에게 두루 인정을 받았던 본인까지.


'결코 낮은 전력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는 업적을 가지고 있었건만.'


눈앞의 꼬마는 장난을 치면서도 모든 공격을 받아내고 모든 것을 예상하고 관통했다.


그럼에도 느껴지는 강함의 끝이 보이지 않는 것은 수많은 경험을 쌓았다고 자부했던 본인의 커리어 모든 것이 부정 당하는 느낌이었다.


'이게 용사?'


이게 아르토리아 아카데미가 추구하던 강함이란 이상향?


'생긴 건 꼬맹이에 품위도 없고 말투 하나가 열 받지만.'


이길 수 없음을 알았다.


그렇기에 그는 레이피어를 들고 있던 손에 강하게 힘을 들였다.


'짜증나는군.'


그 때의 일이 떠올랐다.


저 얄미운 꼬마의 얼굴과.


자기를 이렇게 폐인으로 만들어버린 그 남자의 얼굴이 겹쳐보였다.


"응? 더 하게?"


둘을 정리하고 이제 슬슬 이 사태를 어떻게 교장에게 보고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던 용사였다.


이 정도의 격차를 보여줬으니 나름 수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에 포기할 줄 알았다.


그런데 등 뒤에서 느껴지는 건 투기가 아니던가?


아니, 나아가 살기를 띠고 있었다.


'뭐지?'


왜 나를 죽일 셈으로 노려보는 걸까?


동시에 귀찮은 표정으로 내뱉는 용사의 말을 듣고.


가시안은 떠올랐다.


"아직도 더 할 셈인가?"


그 날 그 자가 내게 했던 그 말.


"···"


패배를 선언하지 못하고 아득바득 일어서려는 나의 노고를 깡그리 무시하고 한심한 듯이 바라보던 그 눈망울.


"포기해라. 너는 나를 이제 나를 이길 수 없다."


영원한 패배자로 낙인 찍어버리는 확신에 찬 말투.


"한 때는 적수로 생각했다만, 고작 그 정도였다는 거겠지. 나는 앞으로 나아간다. 너는 그대로 멈춰 있어라."


돌아서서 멀어지는 그 뒷모습까지.


"···아니."


가시안은 이를 악 물었다.


아직이다.


"나는 아직 패배하지 않았어!"


뒷다리 근육이 끊어질 것처럼 힘을 주어 인위적으로 펌프질을 시켰다.


그리고 그대로 발을 박차듯이 내딛어 전력으로 용사를 향해 레이피어를 찔러 넣었다.


지금 그가 낼 수 있는 최대의 속력, 최대의 출력.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이 찌르기 한 번에 담았다.


그러나.


"아, 좀 주무세요."


용사는 고작 몸 한 번 비껴서 피한 뒤.


손날치기로 목을 쳐서 그의 몸을 바닥에 떨궜다.


귀찮다는 듯 가볍게 흘린 몸놀림이었지만.


너무나도 군더더기 없는 회피이기도 했다.


"커억!"


목 안에서 가래가 끓는 듯 했다.


목 안에서 끓는 무언가가 기도를 막았기에 목소리가 새어나오지 않았다.


안에 응어리 졌던 무언가가 그 순간, 한 번에 유리조각처럼 산산이 깨졌다.


가시안은 그대로 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혼절했다.


* * *


나는 춉 자세를 풀고 자리에 바로 섰다.


그의 악바리를 끝낸 뒤, 주변을 둘러보자 이제 기숙사에 맨정신으로 있는 사람은 없었다.


다소 깽판을 쳤던 것은 인정지만 내가 이번에 기숙사에서 불시에 진행한 레크레이션은.


학생들의 전력을 파악하기 위한 일종의 테스트였다.


'아즈엘카가 준 이력서만으로는 가늠이 어렵지.'


그 결과.


'하나같이 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구만.'


이 녀석들, 그 동안 뭘 배웠는지 모를 정도로 처참했다.


싸우려는 학생보다 도망치려는 학생들이 많았고.


사용하는 마법도 6서클이 최대치였으며.


전술은커녕 전투의 기본인 연계를 할 줄 아는 사람이 꼴랑 최고참 세 명뿐이었다.


'그마저도 다 그저 겉핥기 식이었지만.'


눈에 차는 학생이 어쩜 이렇게 하나도 없을까!


'악기바리로 덤비는 녀석도 있긴 했지.'


그 부분은 마음에 들었다.


적어도 한 명이라도 진심을 다할 수 있는 녀석이 있다는 소리니까.


'하지만 최고 전력이라는 녀석들이 이 모양 이 꼴이어서야.'


나는 한심한 표정으로 일대에 널브러진 학생들을 둘러보며 들으라고 한 소리 했다.


"불합격. 너희들 죄다 불합격이라고. 알아?"


정신 있는 학생들이 어디 있겠냐마는.


목소리를 내서 알려 주는 기분이라도 나야 속이 풀릴 것 같았기에.


용사를 양성하는 목적으로 설립된 아르토리아 아카데미?


나를 좆으로 보지 않고서야.


이딴 수준밖에 못 보여주면서 용사 아카데미를 자칭한다고?


이건 학생도 문제지만 강사진들이 얼마나 헤이했고 수준 미달이었는지를 지극하게도 보여줬다.


'아즈엘카한테 가서 한 마디 해서 강사들까지 모조리 정신교육을 시켜주고 싶은데.'


매우 아쉽게도 그런 무능한 강사진을 쫓겨낸 게 아즈엘카였다.


그들의 몫까지 다해서 성심성의껏 학생들을 다스리리라.


"니들은 일어나면 곧바로 불나방 행이다."


아주 뼛속부터 사무치게 단련시켜야겠다.


그건 그렇고.


"이걸 어떻게 하면 좋을꼬."


우지끈!


와르르르!


"고작 도끼질 몇 번 했을 뿐인데."


멀쩡하던 기숙사가 폐허가 되었다.


가만히 있어도 벽과 천장이 제멋대로 무너졌다.


"아이리스의 마법 여파가 세긴 세."


마물 군대를 상대로 얼마나 강한 마법을 썼길래.


'이 정도면 부실공사가 아닐까?'


그래. 이건 내가 도끼를 휘둘러서 난 게 아니라 애초에 안쪽부터 썩어 있었는데 바람 결에 속살이 드러난 것 뿐이다.


내가 아니었으면 기숙사에 빈대처럼 살던 학생들이 갑자기 무너지는 건물에 파묻혀서 죽을 수도 있었다.


오히려 칭찬을 받았으면 받았지 나를 탓할 사람은 누구도 없었다.


아즈엘카에게 무어라 변명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음."


용사는 벌써부터 양심에 털이 무럭무럭 자라는 것을 느끼고 흐뭇하게 웃었다.


'뒷감당을 남에게 떠넘길 수 있는 게 이렇게 마음이 편할 줄이야!'


알아서는 안 되는 귀족의 무책임함을 알아가는 기분이다.


'나중에 교장이나 황제가 와서 알아서 뒷처리 하겠지.'


거기까지는 내 알 바가 아니다.


내가 벌인 일이지만 내 알 바는 아니다.


"그럼 슬슬 다음 단계로 넘어가볼까?"


나는 기절해서 몸을 축 늘어뜨린 학생들을 하나둘씩 들춰 업고 운동장을 왕래했다.


"아, 근데 운동장이 멀쩡했었나?"


잠깐 멈추고 운동장 상태에 대해 생각하다가.


뭐 생각할 게 있나 싶어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시원하게 덮어줄 건데 뭐."


그렇게 나 홀로 운동장과 기숙사 사이에서 쓰러진 학생들을 운반하는 막노동이 시작됐다.


"후! 이야, 이거 은근히 운동 되네."


용암의 열기가 후끈 달아오르는 야외와 실내를 학생들 서너 명을 들춰 업은 채로 왔다리 갔다리.


심지어 정신을 잃은 사람은 정신 멀쩡한 사람보다 몇 배는 더 무겁지 않던가.


축 늘어진 채로 팔다리가 바닥에 향해 있으니 이것도 은근한 중노동이었다.


그렇게 수십 번을 반복하고 있자니 이마에서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남들이 보면 이게 무슨 개뻘짓이냐고 하겠다마는.


나는 지금 이 순간이 그렇게 보람 찰 수 없었다.


'이게 다 아카데미 흥하라고 하는 거니까.'


그러니까 지금부터 내가 이녀석들에게 하는 짓에 대해.


그 누구도 토를 달지 못 할 것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아카데미 은퇴 용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5 45. 내기 23.03.10 19 0 12쪽
44 44. 살풍경 23.03.09 22 0 11쪽
43 43. 나름 잘 되어가고 있는 듯한 23.03.08 36 0 12쪽
42 42. 1교시 대환장 파티 (2) 23.03.07 31 0 13쪽
41 41. 1교시 대환장 파티 23.03.06 17 0 11쪽
40 40. 기습 23.03.05 20 0 14쪽
39 39. 용암 근처에서 노숙 23.03.04 22 0 13쪽
38 38. 탈락자는 아카데미 퇴출 (3) 23.03.03 21 0 12쪽
37 37. 탈락자는 아카데미 퇴출 23.03.02 28 0 10쪽
36 36. 종 쳐 (2) 23.03.01 34 0 10쪽
35 35. 종 쳐 23.02.28 31 0 10쪽
» 34. 정신교육과정 불나방 23.02.27 19 0 9쪽
33 33. 망나니 테스트 (2) 23.02.26 27 0 10쪽
32 32. 망나니 테스트 23.02.25 20 0 10쪽
31 30. 참교육 23.02.24 20 0 14쪽
30 30. 짹짹 23.02.23 22 0 14쪽
29 29. 할 일 투성이 23.02.22 18 0 16쪽
28 28. 적과의 불편한 동거 (4) 23.02.21 21 0 14쪽
27 27. 적과의 불편한 동거 (3) 23.02.20 23 0 13쪽
26 26. 적과의 불편한 동거 (2) 23.02.19 21 0 11쪽
25 25. 적과의 불편한 동거 23.02.18 23 0 11쪽
24 24. 결산 보고 23.02.17 25 0 11쪽
23 23. 낯선 천장이다 23.02.16 25 0 12쪽
22 22. 마무리는 용사의 몫 23.02.15 24 0 19쪽
21 21. 아이리스 아마게돈 23.02.14 26 0 17쪽
20 20. 배로 갚는다 (3) 23.02.13 24 0 15쪽
19 19. 배로 갚는다 (2) 23.02.12 22 0 18쪽
18 18. 배로 갚는다 23.02.11 25 0 10쪽
17 17. 뒤통수 얼얼하네 (2) 23.02.10 27 0 17쪽
16 16. 뒤통수 얼얼하네 23.02.09 29 0 2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