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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공룡

몰락한 천재헌터는 폐급의 헬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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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공룡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2
최근연재일 :
2023.08.14 23:55
연재수 :
8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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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68
추천수 :
222
글자수 :
506,226

작성
23.06.14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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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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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3쪽

불길 속 눈꽃(1)

DUMMY

쾅!


뚫린 창문이 모두 새까만 커튼에 가려져 어두컴컴한 방 안에 폭음이 울렸다.


“그러니까······.”


그리고 그 속에서 낮게 깔린 음성이 흘러나오자 십여 명의 사람들이 저마다 침을 꼴깍꼴깍 삼켜댔다.


“오히려 그 놈들 명성을 올려줬다, 이 말인가.”


으드드득.


과과광.


십여 명이 둘러앉고도 남을 만큼 커다란 테이블이 이가 갈리는 소리와 함께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그 누구도 무너지는 테이블을 붙잡으려고도, 피하려고도 하지 않은 채 각자의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오로지 한 남자의 목소리만 나지막하게 울려 퍼지던 방 안에서, 황주찬이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열었다.


“연합장님. 우선 흥분을 가라앉히시고 -”


쾅!


그러자 배진석이 발을 굴러 바닥을 내리찍으며 말허리를 잘랐다. 그의 발밑엔 금방이라도 아래층까지 구멍이 뚫릴 듯한 금이 거미줄처럼 쩌적 갈라져 있었다.


“그 주둥이를 찢어버리기 전에 다물어라.”


나지막하지만 그렇기에 확실한 살기가 느껴지는 목소리에 황주찬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스톤의 길드장 황주찬은 A급을 달성한지 그리 오래 되진 않았다고 하나, 나름 석조(石彫)계 마법으로 실력이 잘 알려진 헌터다. 하지만 같은 A급이라 해도 단풍의 길드장 배진석과는 내뿜는 기운부터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갈렸다.

스스로를 S급이라 칭한다 해도 누구 하나 막아설 이가 없는 실력. 특히나 내뿜는 것만으로 피부가 저릿하게 마비되는 기운은 그보다 실력이 뛰어난 헌터라 해도 섣불리 덤벼들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조두현.”


“예. 길드장님.”


의자를 하나씩 잡고 앉은 사람들과 달리, 홀로 벽면에 가만히 서서 존재를 숨기고 있던 조두현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그의 존재를 아예 눈치 채지 못했던 이들은 작은 신음처럼 숨을 뱉었다.


“그 용병 꼬맹이가 지옥의 조석훈을 잡았다. 들었던 바와는 많이 다른 것 같군.”


칠성이 자칼을 잡아낸 직후, 회의에서 조두현이 했던 말대로라면 이찬솔은 고작 D급, 혹은 그보다 조금 높은 정도로 받아들여야 했다. 하지만 곧 B급을 바라보고 있던 강한나는 물론이고, 이미 A급에 도달했다 봐도 무방할 조석훈이 당했다는 건, 조두현이 했던 말이 전혀 들어맞지 않았다고 봐야 했다.

하지만 배진석의 목소리는 조두현을 탓하는 것처럼 들리지 않았다.


“예. 길드장님께서 생각하시는 그대로입니다. 그 이찬솔이라는 인물이 저희가 생각하는 성장의 속도를 아득히 벗어났습니다.”


조두현도 의도를 파악했다는 듯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이 생각한 바를 털어냈다.


“그런가······.”


의자에 난 팔걸이에 턱을 괴고 잠시 침음을 내뱉던 배진석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조만간 나까지 위협할 수 있다고 봐야겠군.”


그러자 연합원이 저마다 목소리를 냈다.


“여, 연합장님! 그건 아닙니다!”


“맞습니다! 고작 그런 꼬맹이가 연합장님을 위협하다니요. 섣부른 판단입니다.”


“조석훈이라는 그 녀석이 알려진 것보다 약한 녀석이었을 겁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

10년에 걸쳐 S급에 가까운 위치까지 도달한 배진석을 각성한지 고작 1년도 채 되지 않은 이찬솔이 따라잡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심지어 괴물이라 불리는 전 세계의 S급을 모두 모아놔도 그만한 성장을 보인 각성자는 없었다.

애초에 그런 실력이 있었다면 스물이 넘는 나이까지 폐급으로 지냈을 리가 만무하다. 16살의 나이로 세계 최연소 A급을 달성했다는 해외의 헌터도 그 위치까지 4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고, 검술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니고 S급의 스승 또한 가졌던 정상윤 마저도 3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들의 당연한 반응에도 배진석과 조두현은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길드장님. 제가 말해도 되겠습니까?”


배진석이 고개를 끄덕이자 조두현이 연합원을 향해 돌아섰다. 그리곤 거뭇한 안개와도 같은 마력을 흘리자 눈 깜짝할 사이에 그의 모습이 반대편 벽면에서 나타났다. 그 모습에 몇몇 연합원이 또다시 옅은 탄식을 뱉었다.


“여러분. 여러분께서는 아주 큰 착각을 하고 계십니다. 단풍연합이라는 이름아래 모인 여러분조차도 방금 제가 어떤 수를 썼는지 알아챈 사람이 고작 셋을 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저보다 늦은 각성을 이룬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조두현의 움직임을 읽은 세 남자는 당당하게 팔짱을 끼고 여유를 보였지만, 그렇지 못한 연합원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기 바빴다. 조두현이 서른이 가까운 나이가 되어서야 각성을 이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이 자리에 없었다. 게다가 5년도 채 걸리지 않아 A급을 달성했다는 것 또한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소문을 의심하는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해서 눈에 보이는 사실까지 의심하려 들지 마시길 바랍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인물이 여태껏 어디에서도 나타나지 않은 괴물이라는 걸 말입니다.”


고개를 숙인 연합원은 저마다의 탄식을 터뜨렸다. 어떤 이는 자신의 무지를 탓했고, 또 어떤 이는 타고나지 못한 능력을 탓했다. 애초에 칠성이라는 괴물에 대한 시기로 만들어진 연합에 그런 괴물이 또 탄생했다는 사실은 절망과도 같은 일이었다.

물론 그런 사실을 부정하려 드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그런 인재라면 칠성에서 용병으로만 가만 두고 있겠습니까?”


“단순 계산으로만 봐도 그렇습니다. 듣기로는 검사라던데, 검이라는 게 그리 단시간에 익힐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들의 말에 동요하는 이들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소란은 길게 가지 못했다.


“뭣······.”


이찬솔이라는 인물의 능력에 의심을 가지며 입을 열던 수 명의 연합원들 어깨로 동시에 손이 얹어졌다. 그들의 등 뒤엔 수 명으로 나눠진 조두현이 하나씩 나눠 서 있었다.


“이렇게까지 말해도 아직 이해를 못하시나 봅니다. 이러니 평생을 이렇게 살고 있는 거 아닙니까.”


그저 단순한 환상이라기엔 그들의 어깨로 느껴지는 감촉이나, 너머로 느껴지는 살기는 절대 허상의 것이 아니었다.

등 뒤로 느껴지는 살기에 짓눌린 이들이 저마다 딱딱하게 굳어 방 안에 긴장감이 흐르자 한쪽에서 다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됐다. 같은 목표를 두고 모인 이들끼리 싸우는 건 썩 좋아 보이지 않는군.”


목소리와 동시에 방 안을 가득 메우던 살기가 사라지자 곳곳에서 나지막한 한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숨을 고를 시간 동안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던 배진석은 자리에 모인 연합원을 천천히 훑어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악마들이 이 땅을 넘보는 때에 인간의 편으로 괴물 같은 녀석들이 나타난다는 건 아주 좋은 일이다. 하지만 칠성은 인간의 편이 아니다. 녀석들은 제멋대로 행동하며 자신들의 이득을 취할 뿐, 그로 인해 일반 시민들의 일상을 위협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녀석들의 손에서 괴물이 탄생하기 전에 막아내는 것뿐. 그걸 위해선 뭐든 해야 하지.”


나지막하지만 확실하게 귀에 꽂히는 목소리로 배진석이 말하자, 조두현에게 기가 눌렸던 연합원도 표정을 굳히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확실하게 끝내도록 하지. 녀석이 다음 균열로 들어설 때를 노린다.”


쿵!


배진석의 말에 의자에 앉은 연합원이 하나같이 발을 굴러 바닥을 내리쳤다.


* * *


“안 돼.”


“아, 왜요!”


이제는 너무도 당당하게 길드장실에 들어선 이찬솔이 최지환을 향해 온갖 떼를 쓰고 있었다.


“이······.”


의자에 앉아 시선조차 주지 않은 최지환이 테이블에 쌓인 서류를 하나하나 읽어가는 와중에도 그 옆에 선 강석호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이찬솔을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찬솔은 녀석의 살기에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최지환을 설득하기에 바빴다.


“진짜 거기서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앉아만 있는다니까요?”


“그럴 거면 애초에 들어가지 않으면 될 뿐.”


“김성환 헌터 성장시키려는 건데 왜 안 되는데요!······아, 자, 잠깐만요! 자, 잘못······. 케, 케켁!”


답답한 마음에 목소리를 키운 이찬솔은 스멀스멀 흘러온 붉은 기운에 목을 졸려야 했다.


‘저 자식한텐 덤비지 좀 마.’


최지환 녀석도 적당한 살기를 뿌리는 정도로는 이찬솔을 압박할 수 없다는 걸 알았는지, 이제 틈만 나면 숨통이 막힐 정도로 기운을 뿌려대는 턱에 나까지 숨이 막혀온다.


털썩.


“켁켁! 지, 진짜 죽는 줄 알았네······.”


“원한다면 길드장님을 대신해 내가 죽여주지.”


아무래도 강석호의 눈엔 바닥에 엎어져 숨을 고르는 모습마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다음은 없어. 진짜 죽고 싶지 않으면 빨리 꺼져.”


여전히 최지환의 시선은 서류에 박혀 있었지만, 귀찮다는 듯이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이번만큼은 녀석의 기분이 썩 좋지 않다는 걸 느꼈는지 이찬솔도 더 이상 목소리를 내진 않았다.


‘길드에 S급 하나 늘려준다고 해도 저렇게 싫다는데 포기해야지.’


“끄응······.”


김성환을 성장시키기 위해선 용암 균열로 들어서야 하지만, B급 균열부터는 길드장의 허가가 떨어져야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이번만큼은 한고을의 도움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몰래 들어가는 방법도 있긴 한데······. 걸리면 칠성에 발도 못 들이겠지.


길드장실 안에서 이정도로 때를 쓰는데도 강제로 쫓아내지 않은 걸 보면 이찬솔이 최지환의 눈에 어지간히도 든 것 같긴 하다. 하지만 길드 내 얼마 있지도 않은 규칙을 어기는 순간, 최지환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찬솔을 내쫓을 거다.


“알겠어요. B급 이상 균열에 들어설 때는 최소한 한 단계 윗 급의 헌터를 동반해야 된다는 거죠?”


‘포기해. 우리가 가려는 균열은 A급이야. 지금은 최지환을 동반해야 갈 수 있는 균열이라고.’


강석호가 가소롭다는 듯이 비웃었다.


“이번엔 숨겨뒀던 S급 헌터라도 데려 올 생각인가?”


하지만 최지환은 흥미롭다는 듯이 서류에서 눈을 떼고 이쪽을 빤히 바라봤다.


“강석호. 말조심해. 저 녀석은 그 말대로 S급이라도 데려올 것 같으니까.”


“······죄송합니다.”


“그 규칙. 꼭 칠성 내 멤버를 데려가야 한다는 것도 추가하지.”


“아, 진짜!”


갑자기 말을 바꾼 최지환에게 성질을 부리던 이찬솔은 찌릿한 눈길에 시선을 피했다. 그러더니 뭔가 생각났다는 듯 손바닥을 주먹으로 탁 내려쳤다.


“그럼 길드장님도 규칙 바꾸셨으니까, 저도 하나만 허락해주세요!”


녀석이 대답하진 않았지만 이찬솔은 상관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A급 균열이니까 원래는 S급을 데려가야 되는 거잖아요? 칠성 멤버를 데려갈 테니까 A급으로 바꿔주세요! 솔직히 A급 균열에 A급이 들어가는 게 문제되진 않잖아요? 게다가 마물을 잡으려는 것도 아닌데.”


‘그런 걸 들어줄 리가······.’


“좋아. 대신 두 명으로 하지.”


‘있네.’


저 녀석이 이 조건을 받아들인다고?


“그럼 A급 두 명으로 할 테니까 한 명은 외부 길드도 허락해주세요. 칠성에서 하나, 외부 길드에서 하나.”


“믿을만한 녀석이라면 그렇게 하지.”


“오케이! 진짜 말 바꾸기 없어요!”


“이제 빨리 꺼져.”


“넵!”


강석호의 입이 쩍 벌어졌다. 지금 이 대화를 직접 듣고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내가 옆에 있었다면 나도 저 표정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거다.


‘이걸······.’


아니. 애초에 칠성에서 데려갈 A급이 있나? 그걸 생각하고 조건을 받아들인 건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최지환의 반응이 이해되지 않는다.


‘근데 A급은 누굴 데려가려는 거야?’


싱글벙글 웃으며 길드장실을 나선 이찬솔은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고서야 입을 열었다.


“한 명은 당연히 사형이죠.”


그래. 그건 알고 있다.


‘다른 한 명은?’


“그 이름이 뭐였더라. 정······.”


칠성 소속 A급의 정······?


‘······설마, 정세라?’


“아! 맞아요!”


그제야 이찬솔의 무슨 생각을 하는지 깨달았다. 하지만 오히려 조금이라도 가졌던 가능성이 희미하게 번져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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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복수(1) 23.06.20 64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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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불길 속 눈꽃(5) 23.06.18 62 2 14쪽
48 불길 속 눈꽃(4) 23.06.17 64 2 13쪽
47 불길 속 눈꽃(3) 23.06.16 69 2 14쪽
46 불길 속 눈꽃(2) 23.06.15 80 2 14쪽
» 불길 속 눈꽃(1) 23.06.14 80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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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대장장이(3) 23.06.12 73 2 13쪽
42 대장장이(2) 23.06.11 81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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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스승과 제자(4) 23.06.08 81 1 13쪽
38 스승과 제자(3) 23.06.07 85 1 13쪽
37 스승과 제자(2) 23.06.06 92 2 14쪽
36 스승과 제자(1) 23.06.05 99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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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혹한의 균열(2) 23.06.01 99 2 14쪽
31 혹한의 균열(1) 23.05.31 110 3 13쪽
30 악마출현(7) 23.05.30 114 3 14쪽
29 악마출현(6) 23.05.29 112 3 14쪽
28 악마출현(5) 23.05.28 109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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