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나무공룡

몰락한 천재헌터는 폐급의 헬퍼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나무공룡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2
최근연재일 :
2023.08.14 23:55
연재수 :
84 회
조회수 :
11,075
추천수 :
222
글자수 :
506,226

작성
23.06.05 18:05
조회
99
추천
2
글자
13쪽

스승과 제자(1)

DUMMY

“휴.”


칠성 사옥 정원의 구석진 벤치에 앉은 이찬솔이 새파란 얼음조각을 만지작거리며 한숨을 내뱉었다.


“장비도 못 만들어, 수련도 못해. 심지어 혼자라고 균열도 안 들여보내 주면 전 뭐 하라는 거예요? 엄연히 따지면 스승님까지 해서 두 명인데.”


균열 공략을 끝내 하루 휴식을 가지고 다시 모이기로 했던 일행들은 갑자기 생긴 각자의 업무로 뿔뿔이 흩어졌다.

수련이라도 해보려 했지만 여전히 쫓아다니며 괴롭혀 대는 기자들 탓에 검 한 번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쉴 틈도 없다고 투덜거릴 땐 언제고.’


“그래도 이렇게 쉬는 건 아니죠! 차라리 칠성에 있는 대장장이한테 아이템 제작해달라고 할까요? 그거라도 하면 재밌을 것 같은데!”


‘안 돼.’


“다 안 된대······.”


이 자식. 요즘 불만이 점점 느는 것 같은데?


‘아예 못 만드는 것도 아니고, 바빠서 일이 밀려있다는 걸 어떡해? 그래도 강한나 덕분에 그 녀석한테 의뢰 맡길 수 있는 가능성이라도 생긴 거잖아.’


애초에 칠성을 부수려 만들어진 단풍 연합.

그곳에 속한 스톤에 뭔가 부탁한다는 건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그 대장장이가 그렇게 능력이 좋아요?”


‘최지환이 이 시기에 유일하게 탐내던 사람이야. 길드에선 그런 사람 못 구하거든.’


길드에선 항상 대장장이가 부족한 반면, 흔히 대장장이라 불릴만한 특성을 지닌 각성자는 길드로 들어오는 걸 꺼린다. 길드의 특성상 갑작스러운 제작과 수리 의뢰가 끊이지 않는 탓에 근무 환경이 지옥과도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장장이들은 각종 의류 업종에 취업이 확정돼 있다 봐도 무관하다. 심지어 능력만 좋으면 쟈넬과 같은 세계적인 기업으로도 손쉽게 들어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스톤 길드의 대장장이는 으리으리한 기업들의 러브콜을 모두 차버리고 그곳에 남았다. 듣기로는 길드장과 혈연으로 엮여 있다고 한다.


아. 이 시기에 탐내는 사람이면, 이 녀석도 마찬가진가?


“최지환 헌터님이 탐낼 정도면 능력 하나는 확실하겠네요. 사람한테 매달릴 만한 작자는 아닌 것 같던데.”


이찬솔의 말투에 처음 최지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의 존경심은 온데간데없었다.


꽤 겪긴 했지.


‘아무튼 오늘은 좀 쉬면서 지아라도······. 어? 저 녀석이 왜 여기에 있어?’


“예? 누구······. 어!”


하루정도는 여유를 가질 생각을 하던 찰나, 익숙한 사람이 눈에 띠었다.


“사형!”


함께 자칼을 잡아냈던 정상윤이 꽤나 반가웠는지, 벌떡 일어난 이찬솔이 달려갔다.


“사제.”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이었지만 어딘가 쓸쓸함이 묻어나고 있었다.


“여긴 어쩐 일로 오셨어요?”


“수련. 답답해. 스승. 보러. 근데 안 돼.”


하긴 이 녀석은······.


“혼자 수련이 잘 안 풀릴 때마다 스승님을 만나서 많이 배웠었는데, 지금은 얼굴 보는 것도 못하게 한다는 거죠? 아무래도 스승님은 부길드장이니까 길드측에서 많이 조심하고 있을 거예요.”


표정이 한결 가벼워진 정상윤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저걸 어떻게 알아들은 거지? 독심술이라도 가진 건가?


“아!”


이찬솔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치더니 정상윤의 등을 떠밀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정상윤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굳이 발을 멈추진 않았다.


“어디?”


“제가 누굼까! 용병이긴 해도 나름 칠성 소속 아니겠슴까!”


정상윤을 떠밀던 이찬솔은 그대로 사옥의 로비를 지나 3층으로 올라갔다.


‘온 김에 지아도 한 번······.’


이찬솔이 고개를 저었다.


음. 정상윤 때문에 절대 안 되겠지.


그때.


“거기! 여기서 뭐하시는 겁니까!”


복도 끝에서부터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발걸음을 꽤나 위협적으로 내디디며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저 누군지 아시죠? 길드장님 직속 용병 이찬솔입니다! 한고을 연구팀장님 지시 받고 스승······부길드장님 상태 확인하러 왔습니다!”


이젠 칠성에서 이찬솔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칠성만이 아닌가? 뭐, 아무튼.


“······잠깐 기다리십쇼.”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이찬솔의 거짓에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남자는 전화기를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연구팀장님. 이찬솔씨가 차재현 헌터님 병실에 방문 요청을 -”


-별 것도 아닌 거로 전화질이야, 전화질이! 지금 바빠 죽겠는데!


뚝.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에서 욕지거리가 끊임없이 들려오더니 잠시 정적이 흘렀다.


“크흠. 저와 동행하는 조건으로 허용하겠습니다.”


“네, 네.”


갑자기 끊긴 전화에 헛기침을 내뱉은 남자는 복도 가장 끝에 있는 병실로 안내했다.


“스승······.”


‘음.’


내 몸이 홀로 누워 있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생각하거나 찾아오지 않았다. 혹시라도 내 몸에 미련이 남아 다시 돌아오고 싶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 다른 것에 집중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보니까 이거 기분 좀 묘하네.


어느 누가 자신의 몸을 이런 시점으로 볼 수 있겠는가.


몸 곳곳에 꽂힌 주사바늘로 갖가지 영양제가 흘러들어갔고, 덕지덕지 붙은 테이프로 각종 기계가 연결돼 있었다. 거기에 각종 액세서리까지 치장해둔 모습이 그렇게 꼴사나워 보일 수가 없었다.


‘큭큭······.’


괜한 웃음이 흘렀다.


예뻐해 주겠다는 게 이런 의미였어?


얼마나 관리를 잘 했는지, 몇 달의 시간이 지났지만 지저분하게 정리된 검정 머리카락만 빼면 핼쑥해 보인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저 깊은 잠에 빠져 금방이라도 눈을 뜨고 일어날 것처럼 보였다.

갖가지 실험의 대상이 되긴 했겠지만 그 모든 게 내 상태를 건강한 채로 유지하기 위한 실험이었을 거다.


“이 분이 스승님이구나······.”


“응?”


‘말조심해.’


내 실제 모습을 처음 보는 이찬솔이 본인도 모르게 말을 흘렸다.


“아. 쓰러져 있는 모습이 낯설어서 한 말이에요.”


“맞아. 스승. 무적.”


“그렇죠. 금방 일어나실 거예요.”


괜히 머쓱하네.


정신은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는데, 나를 걱정하는 옛 제자의 모습을 직접 보고 있자니 묘한 기분이 떠나질 않는다.


‘이제 돌아가자. 수련해야지.’


“사형. 이제 가요. 스승님이 일어날 때까지 같이 힘내야죠.”


“······응.”


녀석. 아쉬운 티내기는.


그래도 어쩐지······, 그때보단 등판이 더 듬직해 보이기도 하네.


* * *


“여기. 수련장.”


정상윤은 제대로 수련을 하지도, 균열을 들어가지도 못한다는 사정을 듣더니 이찬솔을 택시에 밀어 넣고서 평택에서도 시골에 가까운 한적한 동네까지 넘어왔다.


“······아니, 사형. 도대체 왜 여기까지 와서 수련을 하는 거예요?”


강남역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화랑 길드의 사옥. 국내 3위 길드인 만큼 그곳의 훈련 시설은 어딜 가도 빠지지 않는다.


근데 굳이?


‘이러니까 한 번 사라지면 찾을 수가 없었지······.’


정상윤이 사라졌다 하면 화랑 녀석들이 날 쥐 잡듯이 잡아댔던 이유도 이제야 알 것 같다.


“여기. 마음 편해. 좋아.”


“아무리 그래도······.”


그때.


‘잠깐.’


거친 마력을 잔뜩 내뿜는 무리가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저건 또 뭐야?’


균열도 찾아볼 수 없는 한적한 동네의 좁은 길을 통해 울룩불룩한 근육을 잔뜩 드러낸 무리가 험상궂은 표정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스르릉.


“심상치 않은데요?”


위협을 느낀 이찬솔도 검을 뽑아들고 그들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사제. 위험.”


“네?”


파밧.


다가오던 무리 중 가장 앞 서 있던 남자가 매섭게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정상윤도 남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콱!


“······뭐예요?”


잠깐 움찔했던 이찬솔은 뜻밖의 상황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달려든 남자와 정상윤은 주먹을 맞대고서 서로를 바라봤다.


그래. 분명 노려보는 게 아니라 바라보는 것 같은데······.


“정상윤이! 이게 얼마만이야! 왜 이제야 왔어? 응? 이 녀석은 뭐야? 위험하게 검은 왜 뽑아 들고서······. 잠깐. 이거, 이거······.”


자세를 잡고 있던 이찬솔이 무안할 정도로 겁 없이 다가온 남자는 몸 곳곳을 더듬기 시작했다.


“자, 잠깐만요! 아, 아니! 거기를 왜 만져요!”


“이야······. 이거 장난 아닌데?”


몸을 한참 더듬던 남자는 한 발 물러서서 흥미롭다는 듯이 이찬솔을 바라봤다.


그래. 또 바라본다. 그윽하게.


‘이거 기분 이상한데······.’


“행님! 무슨 일 있슴까?”


어느새 근처까지 다가온 무리 중 또 다른 남자가 앞서 말했다.


“이 자식 몸 좀 봐. 그냥 보기 좋으라고 만든 몸 같으면서도 다이어트 제대로 한 것 같기도 하고. 직접 만져보면 또 장난 아니야.”


무리에서 앞서 나와 다가온 또 다른 남자가 이찬솔의 손을 붙잡고 여기저기 훑기 시작했다.


“오호. 진짜. 이 놈 이거. 손바닥 튼 것 좀 보십쇼, 행님. 전완근도 그렇고. 이건 진짬다.”


“아, 아니! 진짜 뭐하냐고요!”


붙들린 손을 빼낸 이찬솔이 부담스러운 시선을 느끼고 조금 뒷걸음질 쳤다.


딱 달라붙는 기능성 티셔츠와 반바지. 그 속에 선명하게 내비치는 위협적으로 갈라진 근육.

열 명 남짓한 남자들은 모두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누가 누군지도 모르겠는데······.’


“수련장 친구. 좋은 사람들.”


“아!”


“오늘도 훈련하러 온 거지? 이러고 있지 말고 얼른 가보자고!”


“자, 잠시만요!”


울룩불룩한 근육을 들이밀며 이찬솔을 둘러싼 무리들은 몸을 힘껏 밀어 어디론가 끌고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겉으로 보기에 다 무너져 가던 상가 건물의 훈련장이었다.


‘관리가 꽤 잘 됐네.’


겉보기와 다르게 내부의 시설은 꽤나 정교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넓지 않은 공간에 수련실과 훈련실, 대련실이 제대로 구분되어 있었고, 기구들 또한 웬만한 희귀급의 장비만큼 마력이 실려 있었다.


“꽤 괜찮지? 나름 15년간 꽤 정성들여서 관리한 공간이야. 무려 A급 헌터님이 사용해줄 정도로 나름 자부심도 가지고 있지.”


“사형이 왜 여길 고집하는지 알겠네요.”


이찬솔이 고개를 끄덕이자 가장 먼저 정상윤을 반갑게 맞았던 남자가 손을 내밀어왔다.


“난 김진우라고 하네. 여기 관장이야.”


“저는 이찬솔입니다. 정상윤 헌터님과는 같은 스승님 따르는 사이에요.”


“오. 칠성 부길드장? 정상윤이한테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 역시. A급을 키워낼 정도의 작자면 악마보단 더 하겠지.”


“예?”


김진우의 입에서 악마라는 이야기가 나오자 불안감이 치밀었다.

널리 퍼진 헛소문 때문에 외부 훈련장은 입장조차 거부당하기 십상이라 평택까지 와서 쫓겨난다면 그대로 하루를 날려 먹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뭐, 악마랑 계약을 했다던가. 자네가 그 당사자 아닌가?”


“어······.”


턱!


김진우는 우물쭈물하는 이찬솔의 등을 세게 후려치더니 크게 웃어 보였다.


“기죽을 거 없어! 그런 헛소문은 실제로 악마도 못 만나본 녀석들이나 할 소리지! 그 잔인한 놈들이 뭐 계약이나 해줄 거라고 헛소리 떠들어 대는 게 어처구니가 없어서, 원. 게다가. 정상윤이가 직접 데려온 친구면 믿을 만도 하지. 혹시 자네가 헛짓거리 하면 정상윤이가 때려잡아주지 않겠나? 무려 A급 헌터님이신데? 하하하!”


그 호탕한 웃음을 보고 있으니 이찬솔의 마음이 누그러드는 게 느껴졌다.


이 모지리 자식. 친구도 없는 줄 알았는데, 여기까지 와서 제대로 된 친구 만났었네.


“사형이 절 여기까지 데려온 이유가 있었네요.”


“하하하! 낯간지러운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그럼 이제 시작해볼까?”


또다시 호탕한 웃음을 지은 김진우가 갑자기 얇은 티셔츠를 벗어던졌다.


“저 멀리서 여기까지 왔으면 제대로 훈련 해야지.”


“사제. 수련. 같이 해.”


어느새 옷을 갈아입고 다가온 정상윤이 뒤에서 등을 떠밀었다.


“어······.”


근처에서 가볍게 몸을 풀던 무리들도 이찬솔을 바라보며 기분 나쁜 미소를 씨익 지어 보이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몰락한 천재헌터는 폐급의 헬퍼가 되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6 마기(1) 23.07.03 57 1 13쪽
55 복수(5) 23.06.24 61 2 15쪽
54 복수(4) 23.06.23 61 2 14쪽
53 복수(3) 23.06.22 64 1 12쪽
52 복수(2) 23.06.21 61 1 13쪽
51 복수(1) 23.06.20 64 2 14쪽
50 불길 속 눈꽃(6) 23.06.19 59 2 14쪽
49 불길 속 눈꽃(5) 23.06.18 62 2 14쪽
48 불길 속 눈꽃(4) 23.06.17 64 2 13쪽
47 불길 속 눈꽃(3) 23.06.16 69 2 14쪽
46 불길 속 눈꽃(2) 23.06.15 80 2 14쪽
45 불길 속 눈꽃(1) 23.06.14 80 1 13쪽
44 대장장이(4) 23.06.13 77 2 13쪽
43 대장장이(3) 23.06.12 73 2 13쪽
42 대장장이(2) 23.06.11 81 2 12쪽
41 대장장이(1) 23.06.10 86 2 13쪽
40 스승과 제자(5) 23.06.09 87 2 12쪽
39 스승과 제자(4) 23.06.08 81 1 13쪽
38 스승과 제자(3) 23.06.07 85 1 13쪽
37 스승과 제자(2) 23.06.06 92 2 14쪽
» 스승과 제자(1) 23.06.05 100 2 13쪽
35 혹한의 균열(5) 23.06.04 96 2 15쪽
34 혹한의 균열(4) 23.06.03 97 1 12쪽
33 혹한의 균열(3) 23.06.02 94 2 13쪽
32 혹한의 균열(2) 23.06.01 100 2 14쪽
31 혹한의 균열(1) 23.05.31 111 3 13쪽
30 악마출현(7) 23.05.30 115 3 14쪽
29 악마출현(6) 23.05.29 113 3 14쪽
28 악마출현(5) 23.05.28 109 3 12쪽
27 악마출현(4) 23.05.27 117 3 1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