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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공룡

몰락한 천재헌터는 폐급의 헬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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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공룡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2
최근연재일 :
2023.08.14 23:55
연재수 :
8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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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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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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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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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회귀(1)

DUMMY

20년 전, 시공간이 비틀리며 전 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균열에서 온갖 마물들이 침범해 인류를 위협했다. 마력이란 개념이 없던 인류는, 마력을 두른 마물에게 전멸당하는 듯했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균열에서 새어나온 마력에 적응한 인간들이 하나둘씩 각성해 마물과 맞서기 시작했고, 덕분에 인류는 한 번의 위기를 넘겼다.


나 또한 그 시절에 각성할 수 있었고, 지금은 헌터 세계랭킹 2위에 더불어 희망의 7인이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하지만.


“커헉······!”


지금은 피를 쏟아내며 죽어가는 사람일 뿐이다.


“지아야······.”


마찬가지로 새하얀 원피스를 붉게 물들인 홍지아가 쓰러져 있다.


인간이 마물과 맞설 정도로 성장하자 균열 속에서 악마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인류의 두 번째 위기가 닥쳐왔다. 일부러 희망을 짓밟기라도 하려는 듯이 적절한 때에 나타난 악마들은 인류를 희롱하기 시작했다.


그때, 인류의 또 다른 희망이 되었던 게 바로 지아다.

악마의 압도적인 힘에 점차 밀려가고 있을 때, 지아는 각성과 동시에 ‘제약’이라는 스킬을 얻었다.


지정한 범위 내 모든 마(魔)의 힘을 감소시키는 스킬, 제약.

효과도 효과지만 범위마저도 무한정인 말도 안 되는 스킬이다. 지아 홀로 악마에게서 전 인류를 지키고 있다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눈 좀 떠 봐, 지아야······.”


“포기해. 이 상황에 뭘 하겠다는 거야.”


지아의 생기 잃은 얼굴을 바라보는 사이, 그 앞에 선 최지환이 입을 열었다.

나와 같이 희망의 7인이란 타이틀을 가진 최지환은 헌터 세계랭킹 1위로 정점에 서 있는 녀석이자 내 절친한 친구다.


아니, 불과 몇 시간 전까지는 그랬다.


“최지환. 네가······. 네가 도대체 왜······!”


바닥을 기어가며 소리치자 거검이 관통한 복부에서 아찔한 통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장기가 찢기는 고통보다 최지환의 배신으로 느껴지는 고통이 몇 배는 더 크게 느껴졌다.


“너도 알잖아. 2년 전에 만났던 악마. 악마는 우리를 어떻게 하지 못해서 가만히 두고 있는 게 아니야. 그냥 인간들을 지켜보고 있는 거지. 그래서 나온 결론이 이거야.”


최지환은 기다란 재킷 안주머니에서 보랏빛 구슬 하나를 꺼내 내 앞에 내려놓았다.


깊이감이 느껴지는 보랏빛 구슬을 보자 그날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악마가 출현했다는 소식에 균열로 들어선 날, 우리는 마주해선 안 될 녀석을 만났다.

칠흑과도 같은 갑옷에 그와 같은 대검을 들고 나타난 녀석은 인간의 정점이라 불리던 우리를 단숨에 제압했다.

그리곤 인간을 악마로 변형시킨다는 보옥만을 남겨둔 채 유유히 사라졌다.


지금 눈앞에 놓인 구슬은, 바로 그 보옥이었다.


“너······. 너 설마······.”


최지환은 그저 내리깐 시선으로 날 바라본 채 입을 열었다.


“그대로 있으면 죽을 거야. 인류가 곧 사라진다고 해도 네가 죽는 걸 보고 싶진 않아. 그러니까 이걸 삼켜.”


홍지아를 죽인 최지환이 내게 보옥을 건넨다.


“그럼······. 지아를 이렇게 만든 것도······.”


뻔한 결론이었다.


정말 혹시라도. 내 생각이 잘못됐기를 바랐다.

이 녀석이 나를, 지아를 배신했어도 인간이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최지환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만 옅게 끄덕였다.


“이 빌어먹을 새끼가!”


“혹시라도 걸림돌은 없애야지.”


최지환의 얼굴엔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원래도 그 속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표정이 없는 녀석이긴 했지만 감정이 없는 녀석은 아니었다.


이젠 속도 모르겠네. 빌어먹을 새끼.


콰직!


최지환이 바닥에 내려둔 구슬이 내 주먹에 산산이 부서졌다.


“악마 새끼. 나 같은 건 뒤지든 말든 그냥 사라져.”


공허한 눈으로 날 가만히 바라보던 최지환은 검은 재킷을 흩날리며 뒤돌아섰다. 그리고 등을 돌린 녀석이 허공에 손짓하자 공간을 찢는 듯 새까만 균열이 생겨났다.

균열 앞에 멈춰 선 녀석은 여전히 무표정한 눈으로 잠시 날 주시하더니 그곳으로 발을 들였다.

최지환이 균열 속으로 사라지자 텅 빈 공간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정적이 흘렀다.


“지아야. 정신 차려봐······.”


손으로 바닥을 짚어가며 피로 범벅된 지아에게로 기어갔다.

복부에 꽂혀 있던 거검은 최지환과 함께 먼지처럼 흩어져 사라진 덕분에 바닥을 기는 건 문제가 없었다.


“······홍지아.”


지아의 하얀 얼굴이 더욱 창백하게 질려 더 이상 살아 있지 않다는 게 실감됐다.


가장 절친했던 친구는 인류를 배신했고, 가장 사랑했던 연인은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


모든 걸 잃은 허탈함에 눈물인지, 핏물인지도 모를 액체를 쏟아내며 하염없이 지아만을 바라보고 있을 때, 등 뒤에서 날아든 거뭇한 안개가 내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이미 다 죽은 판국에 이런 수상쩍은 안개가 무슨 상관이 있겠냐마는 허공에 손을 휘저으며 안개를 떨쳐내기 위해 애썼다.


지아의 모습을 가리는 거뭇한 안개가 점차 사라지며 흐릿한 시야가 다시 돌아왔다.


“안 돼······.”


하지만 점점 흐릿해지는 시야에 지아의 얼굴을 담으려는 걸 방해라도 하려는 건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푸른색 상태 창이 시야를 가렸다.


『스테이터스』


이름 : 차재현


나이 : 35


레벨 : 164


특성 : 강직한 검사(SSS)


보유 스킬 : [공간참 Lv.M], [흑참 Lv.M], [반월참 Lv.M], [발도술 Lv.M], [검술 Lv.M], [절대영역 Lv.19], [정신 방벽 Lv.18], [무기연마 Lv.17]······.


죽음의 문턱에서 아무런 쓸모도 없는 상태 따윈 집어치우고 싶었다.

허공에 손을 휘젓고, 눈을 감았다 떠도 상태 창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 필요 없으니까 제발 치워줘······.”


그저 지아의 얼굴을 단 1초라도 더 바라보고 싶을 뿐이었다.


『스킬 초기화 진행』


목소리에 반응이라도 하는 것처럼 상태 창이 눈앞에서 사라지더니 짤막한 문구가 또다시 시야를 가렸다.

네모난 상태 창이 시야를 가릴 때보단 홍지아의 얼굴이 잘 보이긴 했지만 이 짧은 문구마저도 초점이 흐려지는 와중에는 굉장히 거슬렸다.


『스킬 초기화 완료』


『스테이터스』


이름 : 차재현


나이 : 35


레벨 : 164


특성 : 전환 중


보유 스킬 : 보유 스킬 없음.


초기화가 완료됐다는 문구와 함께 또다시 상태 창이 시야를 가렸다.

제멋대로 초기화된 특성과 스킬.

애초에 이미 습득한 특성이나 스킬을 초기화 한다는 건 들어본 적도 없다.


이제 시야가 흐릿하다 못해 검게 물들어 간다.

죽을 때가 돼서 정신도 함께 망가져 가는 건지, 결국 제멋대로인 상태 창과 문구 덕분에 지아의 얼굴을 두 눈에 마음껏 담지 못했다.


하긴······, 몇 시간, 몇 분, 몇 초를 담았던 마음에 차지 않았겠지.


누구나 하는 후회의 연속.

최지환이 배신하기 전으로. 악마를 만났을 때로. 아니, 그보다 더 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이런 결말은 절대로 만들지 않을 거다.


더 강해져서, 빌어먹을 악마 새끼들은 다 내 손으로 찢어발겨주겠다.


『스킬 경험치 전환』


분노로 가득 채워진 캄캄한 시야 속에서도 푸른 문구는 계속해서 눈을 괴롭혔다.


『신규 특성 적용』


이제 와서 새로운 특성이라니. 심보 한 번 고약하네.

그때, 또 다른 문구들이 시야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신규 특성 [회귀] 적용 실패』


『특성 재적용』


회귀?


난생 처음 들어보는 특성도 특성이지만······.


적용 실패는 또 무슨 소리지?


『신규 특성 [회귀] 적용 실패』


『특성 재적용』


『신규 특성 [회귀] 적용 실패』


『특성 재적용······.


몇 번이고 반복되는 문구들.


이제 어떻게 되던 좋다.

더 이상 이런 문구에 신경을 쓸 틈도 없다.

그저 지금은 피로한 몸을 편안하게 쉬고 싶을 뿐이다.

새까만 어둠 속에 몸을 맡기고 생각을 접었다.


『신규 특성 [회귀] 적용 실패』


『특성 재적용』


『특성 적용 오류 발생』


『신규 특성 [회귀······.


마지막까지도 푸른 글귀들이 시야를 가렸지만 그것마저도 흐릿하게 번지며 정신을 잃었다.


* * *


“헉!”


아득한 어둠 속으로 빠져들며 분명 죽었다 생각했지만 멎었던 숨이 강제적으로 폐를 자극하는 느낌과 함께 눈이 떠졌다.


그리고, 떠진 눈으로 들어온 시야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배경이 펼쳐졌다.


수십 미터는 될 듯한 나무가 우거진 숲. 그리고 주변에 널브러진 네 구의 시체.

하지만 그런 배경 따위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약하구나, 인간. 지금까지 본 어떤 인간보다 약해서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다. 하지만 그 투지만큼은 그 어떤 인간에 비해도 뒤지지 않는구나. 극찬을 받아 마땅한 인간이라고 이 칼트가 인정해주도록 하마.”


칠흑과도 같은 갑옷과 그와 같은 대검을 들고서 목에 가시가 돋치기라도 한 건지 소름이 돋는 목소리를 내뱉는 악마.


“나, 칼트는 약한 녀석들을 유린하는 걸 즐기지 않는다. 하지만 무의미하게 목숨을 끊기에도 그 투지가 너무 아쉽구나.”


2년 전, 나와 최지환을 무력으로 압도하고서 구슬을 건넸던, 최지환을 악마의 길로 이끈 장본인.


칼트.


그 녀석이 눈앞에 서 있다.


당장이라도 녀석에게 검을 꽂아 넣고 싶지만 어째선지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 격한 감정과 감각.

어딘지 무겁고, 불안정하지만 당장이라도 움직이는 데엔 문제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치려 해봐도 육체가 내 통제를 벗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반응이 전혀 없다.


너 때문에 최지환이······, 지아가······!


‘칼트!’


분노에 찬 목소리를 내질렀지만 마치 벙어리가 된 것처럼 목청이 울리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여기선 못 죽어!”


하지만 내 의지와 다르게 나온 목소리가 목청을 울렸다. 그리고 동시에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몸짓 또한 내 의지와는 다르게 칼트에게서 도망치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칼트를 향해 느껴지던 분노가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아니, 억울함인가?


“그래. 강자에게서 살아남기 위해 달아나는 것도 옳은 선택일지 모른다. 너에게 딱 한 번 기회를 주도록 하마. 혹여나 이 한 번의 공격에서 살아남아, 혹여나 마력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내게 찾아와라. 그땐 너에게도 보옥을 전할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여전히 소름 돋는 목소리가 뒤통수를 향해 날아들었지만 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그 속도 또한 말도 안 될 정도로 느리다.


“푸르르르.”


등 뒤로 내뱉는 짐승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내 말을 듣지 않는 몸뚱이 탓에 소리의 정체를 직접 보진 못했지만, 그날의 기억에 박힌 저 소리를 잊을 순 없다.


『스킬 : 상기(想起) 발동』


눈앞에 보여야 할 푸른 문구가 마치 각막에 때려 박기라도 한 것처럼 머릿속에 직접 전해졌다.


상기?


전혀 본 적 없는 스킬이지만 처음 칼트와 마주했을 때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칠흑의 갑옷과 안장을 씌운 검은 말.

칼트는 검은 연기처럼 갈기를 흩날리며 붉은 눈을 희번덕거리던 말을 타고 우리 앞에 나타났었다.


“1분의 기회를 줄 테니 벗어나라.”


내가 봤던 칼트라면 말 그대로 자비가 없는 녀석이었다.

희비를 느낄 새도 없이 인간의 목숨을 단숨에 앗아가던 녀석은 나와 최지환만을 살려둔 채로 사라졌었다.


그런 녀석이 1분이나 시간을 준다는 건 분명 기회다.


하지만.


“30초.”


내 의지대로 움직여지지도 않는 이 묵직한 몸뚱어리를 가지고는 그저 유린당하는 상황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칠흑의 갑옷을 보는 순간 잠깐 눈이 돌 뻔했지만 우선은 살아남아야 한다. 어찌됐든 움직이는 몸뚱어리가 있다면 상황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제야 주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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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분노(7) 23.07.19 39 0 12쪽
66 분노(6) 23.07.18 43 0 12쪽
65 분노(5) 23.07.17 40 0 14쪽
64 분노(4) 23.07.14 44 0 13쪽
63 분노(3) 23.07.13 46 0 13쪽
62 분노(2) 23.07.11 51 1 13쪽
61 분노(1) 23.07.10 51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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