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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련하 님의 서재입니다.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완결

설련하
그림/삽화
설련하
작품등록일 :
2021.06.28 08:42
최근연재일 :
2022.10.17 08:20
연재수 :
290 회
조회수 :
379,431
추천수 :
7,321
글자수 :
2,467,752

작성
21.06.29 13:58
조회
1,348
추천
48
글자
19쪽

55화. 선배들의 신고식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DUMMY

그러나 지금 쥬맥과 실제 비무를 하고 있는 송곳니는 바짝 긴장해서 남몰래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평범해 보이는 초식이 빈틈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어쩔 수 없이 검이 부딪치면 전해져 오는 진력에 손목이 시큰거렸다. 이러다 잘못하면 창피하게 검을 놓칠 지경이다.


‘이러다가 망신을 당하는 것은 아닐까?’


검을 보면 검기가 맺혀 있지도 않은데, 검기가 맺힌 자신의 검이 오히려 밀리고 있으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자신이 언제 이런 일을 당해 봤던가?


그 상황을 가만히 바라보던 최고참이 안되겠는지 나서서 말렸다. 고참이 망신을 당하면 안 되니까 말이다. 잘못하면 위계질서가 무너질 것이다.


“야! 그만 중지! 그 정도면 되었어. 둘이 실력이 비슷한 것 같다.”


그러자 지켜보던 선배 하나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한마디를 던졌다.


“와~ 요즘 신입들은 뭘 먹고 자라서 다 저렇게 세지?”


모두 혀를 내두르는데 비무를 했던 송곳니 선배는 이마 위의 땀을 훔치며, 하나도 지친 표정이 없는 쥬맥에게 다가오더니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야, 너 정말 대단하다. 나보다 한참 센 것 같다. 나는 일명 송곳니라고 불리는 갈락서다. 앞으로 잘 부탁해.”


“감사합니다 선배님. 쥬맥입니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갈락서는 선배지만 화통하게 쥬맥을 인정하고 땀을 훔치며 뒤로 물러섰다. 그 말과 행동에 모두 어안이 벙벙했다. 아니 신입이 저 유명한 송곳니 선배보다 더 세다고?


그때 다시 나서는 최고참 소산.


“오늘 너무 대단한 후배가 들어온 모양이다. 이왕 해 본 김에 권각술(拳脚術)까지 한번 겨뤄보자. 야! 갈락서 다음 고참이 누구야? 이리 나와 봐.”


그러자 한 사람이 싫다는 듯 몸을 비틀었다.


“에이, 꼭 고참들 창피를 줘야 되겠어요? 다음에 합시다.”


“얼른 와 임마! 때로는 후배한테도 배우는 거야. 빨랑 준비해.”


앞서 싸우는 것을 본 다음 고참 선배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앞으로 나서서 무릎을 굽혀 자세를 낮추고 쥬맥에게 말을 걸었다.


“야, 그냥 한번 해 보자. 연습이니까 살살해라, 응?”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면서 쥬맥이 포권을 하고 인사를 하더니 희한한 자세를 취했다. 주먹을 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수도로 편 것도 아닌 약간 구부린 듯한 엉성한 자세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말이다.


그 모습에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모두 고개를 꺄우뚱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이번에 나온 선배의 주먹에는 푸른 권기가 맺히고 있었다. 후배인 쥬맥이 형식상 선공을 취하는데, 마치 금나수(擒拿手)를 펼치는 듯한 모습이었다.


선배가 권기 맺힌 주먹을 번개처럼 휘두르자 제법 씽씽하며 권풍(拳風)이 일고 주변의 먼지가 날아올랐다.


사실 지금까지 이 소족 내에서는 권각술이라면 첫손에 꼽혀 왔기에 엄살은 떨었지만 나름 자신이 있었다.


쥬맥은 지금 혼원은하무량신공에 수록된 은하무량금나수(銀河無量擒拿手)를 가볍게 펼치고 있는 것인데······.


상대의 혈을 점하거나 타격하여 생포(生捕)하는데 주로 사용되지만, 권각술에 응용하여 펼치고 있는 것이다.


쉭쉭쉭! 쉭! 쉬쉬식!


어느 순간 쥬맥의 양손이 날카로운 바람 소리를 내며 은은한 황금빛을 머금고 현란(絢爛)하게 움직였다.


순식간에 수많은 손 그림자가 나타나며 마치 은하(銀河)처럼 번졌다. 허상으로 혼란을 주면서 선배가 내지르는 권기 맺힌 주먹을 가볍게 밀치며 받아내고 있었다. 선배에 대한 예의로 공격보다는 거의 수비에 치중하면서······.


퍼버벅! 퍼벅!


각법으로 강력하게 내지르는 공격도 모두 황금빛 손에 막혀서 경로가 바뀌었다.


이렇게 눈에 잘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르게 몇 초식이 순식간에 오고 가니 이제야 상대하는 선배도 현실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권각술은 소족 내에서 가장 강하다고 자부해 왔는데, 아무리 진기를 모아서 주먹을 힘껏 내질러도 쥬맥이 가볍게 휘젓는 한 번 손짓에 가로막히고 말았으니 말이다.


아무리 기를 써도 먹히는 게 없었다.


그나마 쥬맥이 공격을 거의 안 하니 버티는 것이지 마음먹고 공격을 해 오면 자신은 삼초지적(三招之敵)도 되지 않을 듯했다. 창피함에 얼굴이 달아오르고 온몸에 식은땀이 흐른다.


그런다고 체면에 졌다고 물러서기도 어렵고 전전긍긍하며 대적하는데 어느덧 비무는 오십 초식을 넘어가고 있었다.


‘이 녀석은 앞으로 절대 건드리면 안 되는 녀석이다. 완전 개창피야.’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최고참을 빨리 중단시키라는 듯이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자 알았다는 듯이 눈을 끔벅인다.


“야! 그만해라. 그러면 이번에는 다수(多數)하고 한번 상대해 봐라.”


그 말에 권각술로 싸우던 선배는 얼씨구나 하고 물러나면서 땀을 닦았다.


“수고했다. 너 정말 대단하구나.”


“아닙니다. 선배님도 대단하십니다.”


체면상 서로를 치켜세우며 뒤로 물러섰다.


“방금 싸우던 녀석 밑으로 유강이만 빼고 전부 다 나와. 모두 해서 일곱 명인가?”


그 말에 이번에는 일곱 명이 앞으로 우르르 나섰다. 모두 이십대 초중반의 나이였다.


“너희들이 모두 쥬맥한테 한 번에 덤벼 봐! 쓰러뜨리는 놈한테 내가 술 한잔 쏜다. 최선을 다해서 한다. 알았지?”


“예! 알겠습니다.”


우렁차게 외친 녀석들이 둥글게 쥬맥을 에워쌌다. 숫자를 믿고 모두가 자신이 있다는 표정들인데······.


“자~ 시작!”


소산의 말에 미처 인사를 나눌 틈도 없이 공격이 시작되었다. 사방에서 번갈아 가며 일곱이 치고 들어오는데, 아마 평소에 함께 진법을 연습한 듯이 손발이 척척 맞는다.


쥬맥은 은하무량금나수와 함께 무량혼원보(無量混元步)를 펼치기 시작했다. 오행구궁의 묘리에 은신의 신기가 깃든 보법이라 모습이 흐릿하게 왔다 갔다 한다.


그때 팔괘구궁(八卦九宮)의 원리를 바탕으로 변화를 일으키며, 자신의 내공으로 발현시킨 음의 기운과 대기의 수(水)기를 조화시켰다.


그러자 주변에 뿌연 안개 같은 운무가 만들어지고 그 안에 몸을 은신하니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함께 싸우는 사람들은 황당해하며 허둥대고, 옆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때 운무 속에서 황금색으로 빛나는 두 손이 현란하게 움직이며 나타났다. 그런데 속도가 너무 빨라서 그 궤적(軌跡)을 자세히 볼 수 없었다. 그저 무언가 움직이고 있다고 느낄 뿐이지.


그러면서 한 명씩 혈이 잡혀 쓰러지기 시작하더니, 일각(15분)도 지나지 않아서 일곱 명 모두가 보기 좋게 바닥에 나뒹굴었다.


‘아니, 이게 뭐야?’


그 모습에 모두들 혀를 내두르는데 쥬맥의 진짜 실력을 안다면 아마 까무러칠 게 뻔했다.


최고참인 소산도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고개를 설레설레 젓더니 허탈하게 웃으며 모두를 둘러보고 말했다.


“야! 앞으로 우리 부락의 무사 대표는 쥬맥과 야수르다. 수련에 집중할 수 있도록 모두 괴롭히지 말고 도와줘.


이번에 돌아오는 천단(10월30일 명절)에 서른 살 이하의 젊은 무사들을 대상으로 영웅대회가 열린다고 하니까 쥬맥이 우리들의 대표로 나간다. 반대하는 사람은 여기서 한번 붙어 봐.”


그러자 모두 이길 자신이 없다는 듯이 눈을 피하며 고개를 떨구었다. 소산이 그것 보라는 듯이 웃으며 쥬맥과 수르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야, 쥬맥하고 야수르! 너희 정말 잘 왔다. 앞으로 힘들면 나한테 얘기해. 앞으로 너희는 우리 소족의 무사 대표니까 열심히 해. 알았지?”


“예!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렇게 첫날의 신고식이 끝나자 둘은 괴롭히는 사람이 없어서 한시름 덜면서 수련에 집중할 수 있었다.



두 달 뒤.


쥬맥은 한 달에 이틀씩 쉬는 휴일(休日)을 이용하여 자신이 오래 거주했던 동굴을 찾아갔다.


자오음양지와 물고기 말린 것을 오래 방치해 두면 상하지 않겠는가? 아까운 것을 어떻게든 처리를 해야지.


그런데 살았던 입구까지는 알겠으나 커다란 노송과 넓적한 바위가 있던 동굴은 이제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그저 깎아지른 듯한 절벽만 있을 뿐.


친구인 점박이와 별이도 주작 신수를 따라갔는지 흔적도 보이지 않았고······.


멍하니 동굴이 있던 자리와 대협곡을 바라보다가 결국 돌아서고 말았다.


처음에 버려졌던 커다란 바위로 와서 숨겨 두었던 입구를 열고 자오음양지와 동굴에서 잡은 물고기 말린 것을 꺼냈다. 그것을 보니 지난날이 그립고 감회가 새로웠다. 이제 이것들은 다시는 구할 수 없는 귀한 것들이 아닌가?


다행히 상하지 않아서 들고 돌아오니 벌써 해가 서산에 지고 있었다.


물고기 말린 것은 혹시 상하지 않도록 소금을 좀 뿌려서 큰 독에 넣어 두었고, 자오음양지는 삶아서 독을 모두 빼낸 다음 침상 아래에 말려 두었다.


한참 바쁘게 움직여서 일을 막 끝냈는데 마침 수르가 와서 처음으로 주점에 함께 가 보기로 했다.


이제 성인이 되어서 주점에 가도 문제가 없으니 호기심에 따라나선 것.


둘이 호기심을 안고 주거지 안에서 가장 큰 주점에 들어서니, 열대여섯 살 먹은 점원이 쪼르르 달려 나와서 둘을 보더니 고개를 꺄우뚱했다.


“어서 오세요. 그런데 성인 맞아요?”


“이 무사복(武士服)을 보면 몰라. 그럼 신분패도 보여 줄까?”


“아니요. 됐습니다. 이리 오세요.”


그러더니 창가에 사인용 빈자리로 안내를 하고 나서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음식과 술은 무엇을 드릴까요?”


이에 수르가 여러 번 와 봤다는 듯이 태연하고 어른스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흠, 백령으로 담은 술과 생선찜, 고기볶음이 있으면 함께 줘.”


“백령으로 담은 술은 좀 비싼데요?”


“그 술이 제일 비싼 술인가?”


“아니요. 금령으로 담은 술이 제일 비싼데 지금 우리 주점에는 없습니다.”


“그럼 그냥 백령으로 담은 술이나 한 병 줘. 고기는 뭐가 있어?”


“오늘 들어온 실비오닭 볶음요리가 아주 맛있습니다.”


“그럼 그걸로 줘. 빨리 좀 가져와.”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비싼 술을 시키자 점원이 바삐 주방이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백령주부터는 비싸서 찾는 사람이 흔치 않은 까닭이다. 그러자 쥬맥이 수르를 보며 궁금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실비오닭이 뭐지? 아리별에서 먹던 닭하고 비슷한 거야?”


그러자 수르가 그것도 모르냐는 듯이 멀뚱히 보다가 산에서 혼자 살았다는 것이 떠올라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지구의 토종닭인데 엄청 커. 몸통 길이가 세 자쯤 될 거야. 한 마리를 잡으면 열 명도 먹고 남을 걸?”


“와~ 그럼 야생하는 것을 잡은 거야 아니면 키우는 거야?”


“처음에는 야생에서 자란 것을 잡았는데 요즘은 닭처럼 부화시켜 키운대.”


이렇게 둘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사이에 드디어 음식과 술이 나왔다. 쥬맥이 나무 젓가락으로 한 점 집어서 맛을 보니 매콤하면서도 제법 구수해서 입맛이 당겼다.


수르는 마치 어른처럼 자연스럽게 조그만 잔 두 개에 술을 가득 따랐다.


“자~ 공식적으로 처음 먹는 술인데 한번 마셔 보자. 너도 같이 잔 들어.”


둘이 잔을 들고 어른들 흉내를 내면서 ‘자, 건배!’ 하고 술잔을 부딪친 다음 단번에 술을 입에 털어 넣었다. 그런데 목구멍이 화끈한 것이 도수가 무척 높은 술인지 목이 콱 막혔다.


“이크! 독하다. 전에 훔쳐먹은 술보다 훨씬 더 독하네. 으으으~”


“와~ 정말 화끈하다.”


그렇게 한마디씩 하고 있는데 옆에서 누가 슬그머니 얼굴을 디밀었다. 마치 소리 없는 귀신처럼 말이다.


“뭐가 그리도 화끈하냐?”


그러자 화들짝 놀라는 수르.


“에익! 아~ 아버지! 집에 안 가시고 왜 여기 계세요?”


“수르 이놈! 어린 녀석이 벌써 술이냐? 너는 쥬맥이겠구나.”


“안녕하세요? 수르 아버님. 인사가 늦었습니다. 쥬맥입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이미 성인이에요. 그리고 처음 마시러 와 본 거예요.”


“좀 전에 훔쳐먹었다는 술은 뭔데?”


둘은 그날 술은 어른과 함께 마시면서 배워야 한다는 수르 아버지 때문에, 어른들 앞에서 눈치를 보며 고개를 돌리고 술을 마시느라고 술이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고 마셨다.


그래도 역시 술은 어른과 함께 마시며 배우는 것이 실수가 적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 생활을 하려면 말이다.



이제 천단도 며칠 남지 않았다.


시월 말에 접어드니 이제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선선해져서 일하기에 딱 좋은 날씨가 되었다.


그러나 아열대 특성상(特性上) 아직도 한낮에는 제법 더웠다. 그동안 쥬맥은 수르를 불러서 말린 물고기를 자주 구워 먹였다. 내공 증진에 좋으니 빨리 친구의 내공을 높여 주고 싶어서다..


아낀다고 먹지 않고 오래 두면 아까운 것을 상해서 버릴까 봐 자오음양지보다 서둘러서 없애려고 하는 것도 있었고.


오늘도 수르와 말린 물고기를 노릇노릇하게 구워서 술 한잔에 맛있게 먹고 난 뒤에, 달빛이 좋아서 둘이 들판길을 거닐었다.


예전에 비월타가 쥬맥의 바지를 벗겼던 정자는 아직도 그대로였다.


그곳에 앉아서 무공에 대하여 서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쥬맥이 자신이 깨달은 무리나 천지자연의 현상에 대하여 얘기를 해 주니, 수르는 귀를 쫑긋하게 기울이고 열심히 들었다.


중간에 말이 끊기고 벌레 소리와 새소리를 들으며 그렇게 정자에 앉아 들판을 바라보는데, 수르가 이상하여 주맥이 쳐다보니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는 듯이 눈을 감고 상념에 잠겨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운기조식(運氣調息)을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쥬맥은 지금 수르가 무언가를 깨닫고 선정(禪定)에 들었음을 알 수 있었다. 조용히 바라보는데 수르의 몸이 한 자나 위로 떠오르더니 온몸에 푸르스름한 진기의 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쥬맥은 방해가 될까 봐 몇 장 뒤로 물러나서 혹시 누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번(番)을 서 주었다.


수르는 지난번에 등 뒤의 독맥만 타통(打通)되었고 아직 임맥은 그대로여서 완전한 대주천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이미 뚫린 독맥을 타고 힘차게 솟구친 기운이 백회혈에 이르더니, 윗입술 속의 은교혈까지 스물여덟 개 혈을 순식간에 지나서 아랫입술 밑에 있는 승장혈을 뚫었다.


이어서 몸 앞 정중앙의 옥당, 중정을 지나 곡골혈과 회음혈에 이르기까지 임맥 스물네 개 혈을 순식간에 뚫고서 다시 단전(丹田)으로 돌아갔다.


이렇게 기존의 독맥 스물여덟 개 혈과 새로 임맥의 스물네 개 혈이 단숨에 꿰뚫리니, 그동안 미세하게 흐르던 기가 마치 봇물이 터진 것처럼 임독(任督) 양맥을 흐르면서 완전한 대주천을 이루었다.


수르의 몸 주위로 푸르스름하게 흐르던 기가 모여들어 회오리바람처럼 휘돌더니, 점점 몸속으로 스며들면서 한 시진만에 깊은 선정에서 깨어났다.


그러자 몸은 어느새 바닥에 닿았고 뜬 두 눈은 번갯불 같은 안광이 어리다가 차차 차분한 눈빛으로 돌아왔다.


수르는 새로 깨달은 것들을 하나씩 마음속에 새기고 정리했다. 친구와 달빛 아래서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깨달음이 찾아온 것인데······.


그동안 가로막혀 있던 벽이 하나 허물어져 내리니 기쁘기 한량없었다. 한편으로는 쥬맥에게 고맙기 그지없고.


이제 독맥과 임맥이 모두 뚫렸으니 제대로 된 대주천을 행하여 훨씬 빠르게 수련할 수 있을 것이다.


수르가 차분히 깨달음을 정리(整理)하고 일어설 때까지 쥬맥은 옆에서 조용히 기다려 주었다.


몸이 날아갈 듯이 가뿐해진 수르가 드디어 몸을 일으켜 쥬맥을 바라보며 기쁜 얼굴로 고마움을 표했다.


“네 덕분에 이렇게 빨리 임독양맥이 타통 되었구나. 맥아 정말 고맙다! 수십 년을 수련한 우리 아버지보다 내가 더 앞서가니 괜히 아버지께 미안하네. 정말 고마워.”


“이 녀석이, 친구 간에 고마운 게 어디 있어? 그건 당연한 거지.”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다.”


둘이서 다시 나란히 달빛을 받으며 돌아오는데 도란도란 얘기를 하면서 걷는 그 모습이 정겹기 그지없었다.


들판을 지나서 하천가에 이르렀는데 유리가 안명과 팔짱을 끼고 나무다리의 난간(欄干)에 앉아 있었다.


모른 척하며 지나치려고 하는데 유리가 돌아보더니 웬일인지 먼저 말을 걸었다.


“어머~ 수르하고 맥이구나. 이 밤중에 어디를 다녀오니?”


그러자 쥬맥은 입장이 난처해서 가만히 있고 대신에 수르가 대답을 했다.


“정자에서 바람 좀 쐬고 오는 거야.”


“그래? 여기는 내 남자친구인 안명이야. 한울님의 손자야.”


“아, 그래? 반갑다. 나는 야수르야.”


“반갑다. 나는 쥬맥이다. 맥쮸~가 아니라 쥬맥이야.”


그 말에 갑자기 유리의 얼굴이 무엇을 들킨 것처럼 새빨개졌다. 맥쮸라니?


“얘기 많이 들었어. 무술이 뛰어나다며? 나는 안명이야. 만나서 반갑다.”


그러자 안명을 거들고 나서는 유리.


“우리 명이도 무술 잘해. 이번 천단에는 영웅대회에도 나갈 거야.”


“응? 그래? 맥이도 우리 소족의 대표로 나가기로 했는데?”


“어머! 그래? 그럼 우리 명이에게 좀 져 줘라, 응!”


이에 자존심이 상한지 말리는 안명.


“에이, 사내대장부 승부에 져 주는 게 어딨어? 괜찮으니까 정정당당하게 해.”


“얘, 쟤 싸움을 무척 잘한단 말이야.”


“그렇게 뒷거래로 이기면 나는 할아버님께 쫓겨나. 걱정하지 마. 이래 봬도 나도 벌써 공력이 일 갑자야.”


“그럼 우리 먼저 간다. 더 놀고 와.”


두 사람이 얼른 자리를 피해서 가 버리자 유리가 안명을 슬쩍 곁눈으로 흘겨보면서 원망하듯이 쳐다보았다.


“쥬맥이 쟤는 싸움을 잘한다고 소문이 났단 말이야. 혼자서 일곱 명을 때려누였대. 그러다가 저 녀석이 우승(優勝)을 하면 어쩌려고 그래?”


“나도 어리바리한 것들 일곱 명 정도는 때려누일 수 있어. 걱정하지 마.”


안명은 여자친구 앞에서 큰소리를 떵떵 치면서 영웅대회의 우승은 마치 자신이 이미 따 놓은 당상처럼 얘기했다. 그러면서 또 시간은 천단의 영웅대회를 향하여 빠르게 흘러갔다.


처음으로 열리는 영웅대회를 자신의 출셋길로 삼아 보려는 수많은 젊은이들의 꿈을 싣고, 시간이라는 마차는 또 그렇게 앞을 행해서 달려가고······. 그리고 그날이 금방 코앞으로 닥쳤다.




감사합니다. - 설련하(偰輦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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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52화. 거인족과 반인족의 전투 21.06.29 1,357 47 18쪽
51 51화. 쥬맥이 맥쮸~ 되다 21.06.29 1,351 47 19쪽
50 50화. 구원(舊怨)과 비무 21.06.29 1,339 47 19쪽
49 49화. 재회 그리고 새로운 출발 21.06.29 1,353 48 19쪽
48 48화. 친구를 찾아서 천인족으로 21.06.29 1,351 48 18쪽
47 47화. 회상(回想) 21.06.29 1,354 48 18쪽
46 46화. 복수 준비와 떠날 준비 21.06.29 1,382 47 20쪽
45 45화. 비월족의 패전 대책 21.06.29 1,387 48 19쪽
44 44화. 주작이 준 기연(奇緣) 21.06.29 1,398 48 18쪽
43 43화. 청룡(靑龍) 출현 +1 21.06.29 1,387 48 19쪽
42 42화. 비월족의 습격(襲擊) 21.06.29 1,402 48 18쪽
41 41화. 반인족 울트의 계략 21.06.29 1,431 48 18쪽
40 40화. 또 하나의 경지를 넘다 21.06.29 1,417 48 19쪽
39 39화. 무공(武功) 수련과 첫 전투 +1 21.06.29 1,417 48 19쪽
38 38화. 친구들의 동태 21.06.29 1,412 47 19쪽
37 37화. 생사현관(生死玄關)을 뚫다 +1 21.06.29 1,444 48 20쪽
36 36화. 친구의 선물(膳物) 21.06.29 1,404 48 18쪽
35 35화. 비월족(飛月族) 금령월 21.06.29 1,421 48 18쪽
34 34화. 거인족 사절단(使節團) 21.06.29 1,420 48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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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31화. 선인(仙人)의 연신기 21.06.29 1,438 50 19쪽
30 30화. 자식을 잘못 가르친 죄 21.06.29 1,431 46 38쪽
29 29화. 복수는 또 다른 피를 부른다 21.06.29 1,413 49 18쪽
28 28화. 적소인의 복수전(復讐戰) +1 21.06.29 1,455 50 18쪽
27 27화. 새 친구 미라챠 +1 21.06.29 1,449 49 18쪽
26 26화. 야차족과의 조우 +1 21.06.29 1,435 49 18쪽
25 25화. 소인족 포로들 +1 21.06.29 1,453 49 18쪽
24 24화. 정보전(情報戰) +1 21.06.29 1,498 49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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