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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련하 님의 서재입니다.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완결

설련하
그림/삽화
설련하
작품등록일 :
2021.06.28 08:42
최근연재일 :
2022.10.17 08:20
연재수 :
290 회
조회수 :
379,419
추천수 :
7,321
글자수 :
2,467,752

작성
21.06.29 11:07
조회
1,430
추천
46
글자
38쪽

30화. 자식을 잘못 가르친 죄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DUMMY

천인족이 전투를 마치고 돌아간 전장에는 백여 명의 소인족 부상자와 짐승들만 남았다. 짐승들 중에는 상처를 입은 검치범이 많았다.


전투에서 구경꾼이었던 고대코뿔소들은 눈치만 보며 풀을 뜯고 서성댄다.


피로 얼룩진 대지에는 아픈 곳을 호소하듯 신음 소리만 가득했다. 하늘도 마치 피의 잔치에 노한 듯 충혈된 눈처럼 붉은 노을로 가득한데 해는 게가 눈을 감는 것처럼 서산으로 지고 있다.


이때 부상자들 사이에서 피얼 중에 유일하게 살아 있는 류류쌍이 나섰다.


오른팔을 잘리고 가슴과 배에 상처를 입었지만, 지금 부상자들을 수습해서 돌아갈 사람은 피얼 자신밖에 없었다.


오늘의 전투는 자신이 보기에도 너무 참담하고 가슴 아픈 패배였지만, 천인족에 대한 모든 정보가 너무 잘못되었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혼자만 살아서 돌아온 염탐꾼 녀석의 말을 믿고 일을 너무 크게 벌였다.


저렇게 무서운 전사들을 그 녀석이 혼자서 어떻게 몇 명을 때려눕힌단 말인가?


그리고 동료들을 산 채로 포를 떠서 먹었다고 했는데, 이번 전투가 끝나고 천인족이 보인 행동(行動)과는 전혀 맞지 않았다.


사람을 먹는 종족이라면 소인족 전사자들은 그들의 좋은 식량이고, 부상당한 자신들도 그들의 먹이가 되어야 했다. 바로 식인종이니까!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잡아먹힐까 봐 공포에 떠는 자신들을 상처에 약을 발라 주고 피가 멈추게 치료를 해 주었다.


그것도 좀 전까지 서로 칼을 맞대고 피를 흘리며 싸운 자신들을 말이다.


그리고 죽은 사람은 짐승의 밥이 되지 않도록 모두 땅에 묻어 주었다.


또한 아픈 몸이니 타고 돌아가라고 건강한 검치검을 인원수만큼 남기고, 식량으로 삼으라고 고대코뿔소도 백여 마리를 남겨 두고 갔고······.


자신들은 적과의 전투에서 이런 자비를 한 번이라도 베푼 적이 있던가? 결코 그래 봤던 적이 없었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적을 어떻게 어떻게······.


저들은 평화(平和)를 원하지 우리와의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싸우면 싸울수록 소인족의 전사자만 수없이 늘어날 것이다.


그렇게 믿고 따랐던 피혼 드워룬은 전쟁을 하자고 선동해서 심복 모두를 죽음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전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부하들을 모두 버리고 혼자만 살겠다고 도망을 쳐 버렸고······.


‘이제 더 이상 죽으면 안 돼. 빨리 가서 이 사실을 종족에게 알리고 전쟁을 막아야 한다.’


상황을 파악한 피얼 류류쌍의 목소리가 신음 소리 사이로 울려 퍼졌다.


“우리는 다시 본거지(本據地)로 돌아간다.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함께 부상자들을 검치범에 태운다. 우리는 오늘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살아서 돌아가야 하니까 절대로 죽지 마라.”


밤이 되면 들판의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드는 짐승 떼가 위험하니 그 전에 이 자리를 떠나야 한다.


그래도 움직일 수 있는 이십여 명이 부상자를 수습하여, 어둑해질 무렵에 검치범을 타고 고대코뿔소 백여 마리를 식량 삼아 끌고서 들판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상처를 입은 검치범들도 다리를 절뚝이며 뒤따라 가는데, 크게 다쳐서 따라가지 못하고 애처롭게 으헝대던 녀석들은 그날 밤 다른 짐승들의 먹이가 되고 말았다.


한편, 혼자만 살겠다고 도망친 드워룬은 자신의 주거지에 도착하자마자 천장 직할의 지하 감옥에 감금(監禁)되었다. 적소인족의 천장인 드워브가 보낸 병사들에게 연행되어서······.


그리고 열흘 뒤에 그 죄를 묻는 심판을 하겠다고 공고하였다.


드워룬은 자신이 천장 몰래 천인족에게 복수를 하고 노획물을 가져다가 천장께 바치며 아부를 하고자 했다. 그러나 여기저기에 배치되어 몰래 정보를 수집해서 천장께 보고하는 비선들의 눈을 피할 수가 없었다.


몰래 뒤따라간 비선에 의해서 죽어 가는 수하들을 버리고 비겁하게 혼자만 살겠다고 도망쳐 온 사실까지 이미 천장 드워브의 귀에 들어가 버렸다.


여기는 드워룬이 갇힌 지하 감옥.

면회를 온 늙은 아버지를 붙잡고 드워룬이 사정을 하고 있다.


“아버지! 드워브 천장님과는 육촌 간이시잖아요? 아버지가 천장님을 찾아가서 부탁을 드리면 들어주실 거예요. 제발 이 아들을 좀 살려 주세요. 제가 피혼이 되어서 그동안 아버지도 편하게 잘 지내셨잖아요. 예, 아버지!”


“네가 말 안 해도 아비 된 심정에 자식을 살려 보겠다고 이미 찾아가서 부탁을 해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들은 척도 안 하더라.”


“그래도 이대로 죽을 수는 없잖아요? 한 번만 더 찾아가서 사정해 보세요. 제 재산도 모두 드린다고 하세요. 예!”


“이놈아! 그러니 잘하지 그랬냐? 이 늙은 아비보다 네가 먼저 가면 어쩌려고 그랬어? 이 불효 막심한 놈아!”


“아버지! 꼭 한 번만 살려 주세요.”


“알았다. 내가 한 번 더 찾아가서 사정을 해 보마. 몸 관리나 잘해라.”


감옥을 나서는 드워룬의 늙은 아버지는 어깨가 힘없이 축 처져 있었다. 이러다가 아들이 죽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이제는 체면이고 뭐고 다 뒷전이다. 아비에게 자식만큼 소중한게 뭐가 있을까?


그날 밤 드워룬의 아버지는 육촌 동생뻘이 되는 천장을 다시 찾아갔다.


양손에는 무엇인지 잔뜩 들고. 그런데 집 앞에서 천장을 수호하는 무장한 병사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섰다.


“아니 이 밤중에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지금은 안 됩니다.”


“내가 천장님 육촌 형일세. 좋은 고기가 있어서 좀 전해 드리려고 왔네.”


“성함만 알려 주시면 안에는 저희가 전해 드리겠습니다.”


“친척이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얼굴이라도 보고 가야지. 그렇지 않은가?”


“피곤하셔서 밤에는 쉬신다고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죄송하지만 그냥 돌아가십시오.”


“잠깐만 보고 나온다니까, 젊은 사람들이 왜 이래, 엉?”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서로 옥신각신하였다. 그래도 돌아가지 않고 바닥에 뻗대어 앉아서, 일부러 안에서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로 외친다.


“아니 육촌 형이 동생 얼굴을 좀 보자고 찾아왔는데, 세상에 이런 문전박대(門前薄待)가 어디 있어? 사람이 그러는 게 아니지.”


천장한테 이렇게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되지만, 아들의 생사가 걸려 있으니 아버지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었다.


밖이 시끄러우니 안에서 그 소리를 들은 천장의 아내가 차마 모른 체할 수 없어서 밖으로 나왔다. 육촌 간에 영원히 안 볼 사람도 아니니······.


“아이고~ 제수씨!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친척 간에 얼굴도 못 보게 문전박대라니요?”


“아니, 아주버님 아니세요? 이 밤중에 어인 일이세요. 어서 들어오세요.”


천장의 아내도 그간의 사정을 다 알지만 차마 모른 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남편이 친척을 돌보지도 않고 죽게 했다는 소리도 듣기 싫었다.


같이 자식을 가진 부모의 입장이라 동정도 가서 안 되더라도 말은 한번 하게 해 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만나지 않으려고 침실에 틀어박혀 있는 남편을 억지로 끌고 나오니, 천장이 자다가 나온 척하면서 눈을 비빈다.


“아니, 이 밤중에 무슨 일이야? 왜 그래?”


“여보, 잠깐만 나오세요. 아주버님이 드릴 말씀이 있다니까 좀 들어 주세요. 일부러 멀리서 찾아오셨잖아요.”


“어, 그래? 아니, 형님 아니세요? 이 밤중에 무슨 일이세요?”


“아이고~ 천장님! 내 얼굴을 봐서라도 우리 아들을 한 번만 살려 주세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양손이 닳도록 빌어 댄다. 또한 주름진 얼굴과 하얀 백발을 꾸벅거리며 굵은 눈물을 흘리니 너무 애처롭고 보기도 민망하다.


천장의 아내가 그래도 손윗사람인데 그냥 둘 수 없으니 안아서 일으켰다.


“아주버님이 무슨 죄를 지었다고 꿇어앉아서 이러세요? 앉아서 편히 말씀하세요. 어서 일어나세요.”


“제수씨! 다 자식을 잘못 가르친 이 아비의 죄입니다. 자식을 앞세우고 제가 어찌 낯을 들고 하늘을 보며 살 수 있겠습니까?”


이제는 주름이 가득한 이마를 바닥에 쿵쿵 소리가 나게 찧어 대니 금방 피가 흘러내렸다. 자식을 살리고자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아비의 심정에 부끄러움이 어디 있겠는가?


“여보! 어떻게 좀 해 보세요. 이러다 아주버님께서 먼저 돌아가시겠어요.”


“참, 이거 입장 난처하게. 여보세요 형님! 우선 돌아가세요. 자세하게 조사를 해서 억울함이 없도록 판결할 테니까 이러지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세요.”


살려 주겠다는 말은 안 해도 지난번 때보다는 한결 나은 표현에 그나마 일말의 희망(希望)을 걸어 보면서 다시 한 번 굽실거렸다.


“이 늙은이의 얼굴을 봐서라도 자식놈을 한 번만 살려 주세요 천장님!”


“형님! 억울하지 않게 다시 한 번 살펴볼 테니까 우선 돌아가세요.”


“아이고~ 고맙습니다. 제수씨! 고맙습니다.”


추레해진 늙은 아버지는 다시 한 번 굽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입장이 난처해진 천장 부부는 어찌할 줄 몰라서 한숨만 쉬고 있다.


다음 날.


다시 옥으로 찾아온 아버지의 말을 듣고 곧 죽을 줄 알았던 드워룬은 금방 기가 살았다. 그러면 그렇지. 그래도 친척인데 모른 척할 리가······.


“거 보세요 아버지. 아버지께서 찾아가시니까 들어주시잖아요.”


“살려 주겠다는 말이 아니라 억울함이 없도록 다시 잘 살펴보시겠다고 하신 거다. 너무 기대하지 마.”


“그 말이 그 말이나 마찬가지잖아요. 이제 다 된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수고하셨어요.”


그러더니 멀리서 듣고 있는, 옥을 지키는 간수(看守)를 목청껏 불렀다.


“여봐! 내가 곧 풀려날 테니까 시원한 냉수나 한 그릇 가져와 봐.”


간수가 머뭇거리자 크게 호통을 쳤다.


“야! 내가 나가면 너희들은 모두 혼날 줄 알어! 쌍, 빨리 물 안 떠와?”


이렇게 아직도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뉘우친 기색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다시 이레 뒤에 전투에 참여해서 부상당한 병사들 백여 명이 다행히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왔다.


검치범이 있어서 비교적 빨리 올 수 있었고, 부상당해서 사냥도 어려운 처지였지만 남아 있던 고대코뿔소 백여 마리를 끌고 오면서 식량으로 삼았다.


비록 초기에 치료를 하였지만 상처가 더운 날씨에 곪아서 피고름이 흐르는 처참한 모습으로 주거지에 나타났다. 그러자 처음에는 귀신인 줄 알고 놀랐던 가족들이 우르르 달려가서 서로 부여잡고 대성통곡(大聲痛哭)을 했다.


피혼 혼자만 살고 모두 죽은 줄 알았는데 다친 몸이나마 살아서 돌아온 것이 천만다행이다 싶은 것이다.


온 부족에 피혼 드워룬의 소문이 퍼졌고, 자식과 부모 형제를 잃은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난동을 부리며 드워룬에게 벌을 줄 것을 요구하였다.


피얼인 류류쌍은 돌아오자마자 처음에 살아서 돌아온 염탐꾼을 붙잡아 감옥에 구금하였다. 그의 이름을 물어보니 닐라리란다.


심문하면서 여러 가지를 꼬치꼬치 캐물으니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것은 하나도 없었고, 그냥 귀로 들린 내용을 추정(推定)한 것뿐이었다.


천인족 몇 명을 혼자서 때려눕혔다는 것도 무용담을 자랑하기 위한 새빨간 거짓말이었고······.


그의 몇 마디 거짓말에 천구백여 명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네 명이 죽었을 때는 모두 목소리를 높여 복수를 외치더니, 천구백여 명이 죽었는데도 이상하게 복수를 외치는 사람이 없었다.


이틀 뒤에 드디어 피혼 드워룬에 대한 심판이 이루어졌다.


커다란 나무 둘레에 목책을 둘러치고, 커다란 탁자에는 중앙에 적소인족 천장인 드워브가 앉았다. 좌우에는 신장과 야장이, 그 뒤로 피혼들이 앉았다.


탁자 앞쪽의 공터에는 맨 앞에 피혼 드워룬과 염탐꾼 닐라리가 손이 뒤로 묶인 채 무릎을 꿇고 앉아 있고, 그 뒤로는 증인들이 줄지어 늘어섰다.


그중에는 피얼 류류쌍과 함께 살아서 돌아온 몇몇 병사들의 모습도 보였다.


드워룬은 아버지의 말을 오해하여 듣고 오늘 살려 준다고 생각하여 반성하는 기색도 없이 의기양양해 있었다.


목책 뒤에는 가족이나 구경하러 나온 여러 사람들이 몰려들어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었다. 마치 좋은 구경거리라도 생긴 것처럼······.


천장은 친인척 관계의 일이라 입장이 난처하여 신장 현밀룬에게 진행을 맡기니 신장이 일어나서 시작을 알렸다.


“지금부터 이번 천인족과의 전투에서 벌어진 사안에 대하여 천장님을 모시고 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신장 현밀룬이 모여 있는 사람들을 빙 둘러보면서 입을 열었다.


“죄인 드워룬과 닐라리는 자리에서 일어서라.”


그러자 드워룬이 무엇이 불만스러운지 눈을 부라리며 따지고 들었다.


“나 드워룬은 아직 죄인(罪人)이 아니오. 피혼인 나에게 말을 함부로 하지 마시오.”


얼굴을 붉히며 씩씩대는 드워룬에게 현밀룬이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것은 내용이 밝혀지면 모두 알 터. 앞으로는 절대 허락 없이 마음대로 말하지 말라. 두 사람 다 알겠는가?”


그러자 둘 다 고개를 푹 숙이고 말을 못했다. 죄인 된 입장으로 괜히 말대꾸를 해 봤자 돌아올 게 없을 테니.


“죄인 드워룬은 이번 전투에서 사전에 천장께 보고하고 허락을 득했는가?”


“부족의 원수를 갚는 것이 더 급하다고 생각되어서 적을 먼저 처단하고 공을 세운 뒤 보고를 드리려고 하였소.”


“이종족과의 전투는 종족 간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사전에 허락 없이는 못 하게 되어 있다. 피혼이나 된 사람이 율법을 모른단 말인가?”


“그들이 내 부족을 사로잡아 산 채로 포를 떠서 먹고 죽였소. 그 원한을 갚아 달라고 부모 형제나 동료들이 땅을 치고 통곡을 하였단 말이요.”


“그래서 냉정하게 부족을 이끌어야 할 막중한 책임이 있는 피혼이 부화뇌동(附和雷同)하여 천구백여 명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았는가?”


“나도 이기고 싶었지만 당시 상황이 별로 좋지 못했소. 천인족을 쳐야 한다는 내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소.


이렇게 힘들게 전쟁에서 돌아온 나를 괴롭히지 말고, 종족 전체의 힘을 모아서 빨리 천인족을 들이쳐서 멸족을 시켜야만 합니다.


그들은 식인종이요. 그들과 우리는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가 되었습니다. 내 부하들을 잡아먹었다구요.”


그러자 가만히 듣고 있던 천장 드워브가 대노하여 벌떡 일어섰다.


“네 이놈! 아직도 네 죄를 뉘우치지 못하는가? 네 명이 죽었다 하여 이천 명이 가서 천구백여 명이 죽었는데, 이제는 전쟁을 하여 수십만 명을 죽이겠다는 것이냐?


자고로 한 부족의 수장은 부족의 목숨을 내 것처럼 여겨야 하거늘 뭣이 어쩌고 어째? 전쟁은 다 준비해 놓고 이길 수 있을 때 하는 것이고, 그마저 안 할 수 있으면 안 하는 것이 상책인 것이야!


피혼이란 놈이 그것도 몰라? 이 대륙에 여러 종족이 있는데, 전쟁으로 우리가 힘이 약해지면 그들의 먹잇감밖에 안 된다는 것을 모르느냐?”


천장이 너무 노해서 격하게 말하자 신장이 눈치껏 나서서 말렸다.


“천장님! 고정하십시오.”


하더니 이번에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 모두 조용히 하세요.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처음에 천인족을 염탐하다가 포로로 잡힌 닐라리에게 묻는다.


천인족이 정말로 우리 부족을 산 채로 포를 떠서 먹고 죽이는 것을 보았는가? 만약에 거짓말을 하면 네 가족들까지 모두 처벌할 것이다.”


“당시는 머리에 두건을 씌워서 눈으로 직접 보지는 못했사옵고, 그들이 하는 말과 비명을 들었사옵니다.”


“이놈! 눈으로 보지도 않은 것을 네 자백을 받으려고 협박하는 소리를 듣고 진실처럼 전하다니! 말을 들었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말이냐? 네가 천인족의 말을 아느냐?”


“천인족의 말은 모르지만 이상하게 머릿속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었사온데 그 사람이 그렇게 말했사옵니다.”


“알고 보니 네놈이 우리 종족의 기밀을 죄다 팔아먹었구나. 네 이놈! 그러고도 네가 살아남기를 바랐더냐?”


거짓말을 하면 가족까지 처벌한다는 말에 얄팍한 염탐꾼인 닐라리는 겁을 집어먹었다. 자기가 한 짓이 있으니 목소리를 낮추며 고개를 푹 숙인다.


“죽을 죄를 지었사옵니다.”


“다음은 염탐꾼 네 사람이 죽은 것에 대해여 뒷조사를 한 것에 대해서 비선 책임자는 결과를 보고하라.”


그러자 뒤에 증인으로 서 있던 천장의 비선 책임자가 앞으로 나섰다. 손에는 조사한 자료인 듯 뭔가를 들고 있었다.


“염탐하다가 처음에 사로잡힌 병사는 총 다섯 명입니다. 그중에 앞에 죄인으로 서 있는 닐라리가 가장 먼저 풀려났고 다음 날 네 명이 풀려났는데, 네 명은 돌아오다가 열대밀림 근처에서 짐승 떼에게 잡아먹혔습니다. 그 유골과 유품을 이미 확인하였습니다.”


비선들이 찾아온 증거품들을 들고 앞으로 나와서 바닥에 늘어놓았다.


그러자 둘레에 서 있던 사람들 중에서 가족으로 보이는 몇몇이 그것을 보고 이리저리 확인을 하더니, 유골을 끌어안고 울음을 터트렸다.


“다음은 이번 전투에 참여하여 부상을 당했으나 살아서 돌아온 사람들이 백여 명입니다. 그 대표로 몇 사람이 증인으로 나와 있는데, 우선 피얼 류류쌍에게 묻겠소. 앞으로 나오시오.”


류류쌍이 앞으로 나와서 천장과 신장께 깊숙이 고개를 숙이며 예를 올렸다.


“피얼 류류쌍은 이번 전투에서 보고 겪은 바를 빠짐없이 그대로 말하시오.”


“예, 그리하겠습니다. 처음 시작은······. 처음에 천인족의 병사 이백여 명을 발견하여 뒤쫓았는데, 싸우지 않고 자꾸 도망만 가자 한 병사가 나서서 혹시 우리를 유인하는 것 아니냐고······.


그 말을 무시했고, 결국 적의 꾐에 빠져서 진법에 갇혔는데 괴이한 진법이······ 하였고, 돌격용 고대코뿔소는 써 보지도 못했습니다. 모두 진에 갇혀서 죽게 생겼는데, 싸움에 끼지 않고 혼자 밖에 있던 피혼 드워룬이 혼자서 백수왕을 타고 도주했고······.


······천인족은 죽은 우리 부족들을 땅에 묻고 상처를 치료해 주었으며, 검치범과 고대코뿔소를 남겨서 부상당한 저희가 돌아올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보고 겪은 바로는 그들은 우리보다 전투력도 훨씬 뛰어나고 문명도 앞서 있으며, 인간을 날로 먹는 식인종은 더더구나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들은 평화를 원하는 듯하였습니다.”


류류쌍의 말이 이어지자 모두가 그럴 수 있느냐는 듯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고, 고개를 꺄우뚱거리니 드워룬은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 뒤에 서 있는 함께 돌아온 사람들! 지금 피얼 류류쌍이 한 말에 한 치의 거짓도 없는가?”


“예, 그렇사옵니다.”


여럿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전투는 전투고 사람이 죽은 것은 죽은 것입니다. 그렇지만 또 이렇게 당해서는 안 되니 비선 책임자는 부상자들의 얘기를 더 자세히 조사해서 천인족에 대한 정보를 정리해 주세요.”


“예, 당연히 그리해야지요”


“자! 그럼 오늘 이 사건에 대하여 더 할 말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진상이 밝혀지니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어처구니없는 거짓 정보와 잘못된 판단으로 수많은 생명이 죽었으니 누군가 그 피에 대해서 책임져야 한다.


신장이 천장 앞으로 가서 머리를 숙이고 판결할 내용에 대하여 한참을 상의하더니, 결론이 났는지 다시 자리로 돌아와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오늘의 심판 결과를 천장님께 말씀드리고 판결할 내용도 이미 재가를 받았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그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전체가 갑자기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하나씩 선언되는 판결문.


“우선 거짓된 정보로 전쟁을 하게 하고, 적에게 우리 부족의 기밀을 누설한 죄인 닐라리를 즉시 참수형(斬首刑)에 처한다.”


“다음은, 율법을 무시하고 천장의 재가도 없이 이종족과 전투를 벌였으며, 잘못된 판단으로 수많은 부하들을 죽게 한 죄인 드워룬은 들어라.


혼자만 살겠다고 부하들을 버리고 도망친 죄인을 일벌백계(一罰百戒)의 본보기로 삼아서 즉시 참수형에 처하고, 그 목을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나무에 걸어서 사흘 동안 효시한다. 이상!”


모여든 사람들이 당연하다는 등 떠들며 웅성거렸다. 드워룬은 드워브가 봐줄 줄 알았는데 참수형이 떨어지자 천장 앞으로 걸어가 철푸덕 주저앉았다.


“천장님! 살려 주신다고 해 놓고 이게 무슨 짓입니까? 우리 아버지랑 육촌지간이면서 어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제발 한 번만 살려 주세요!”


이렇게 다시 아버지를 팔려고 하는데 신장이 노한 목소리로 야단을 쳤다.


“이 죄인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형을 집행하는 병사는 당장에 끌고 가서 형을 집행하라!”


이렇게 불호령이 떨어지자 형을 집행하는 병사들이 우르르 달려들어서 두 죄인을 끌고 나갔다.


그러자 드워룬과 닐라리의 아버지는 그 자리에 쓰러져서 정신을 잃었고, 가족들은 모두 비참하게 울음을 터뜨렸다.


마침내 두 죄인의 참형이 끝나고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가의 높은 나뭇가지에 드워룬의 목이 걸렸다.


드워룬 때문에 자식을 잃은 부모들은 모두 지나가며 거기에 침을 뱉었다.


그러나 그 아래에 드러누운 드워룬의 아버지는 추레한 몰골로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사흘을 기다리더니, 아들의 목이 내려오자 끌어안고 통곡(痛哭)하며 장례를 치렀다.


그리고 드워룬의 장례가 끝난 다음 날 아침.


사람들은 드워룬의 목이 걸렸던 나뭇가지에 목매달아 죽은 그의 아버지 시신을 발견하였다.


나뭇가지에는 이런 글귀가 쓰인 가죽이 함께 걸려 있었는데······.


{내가 자식을 잘못 가르쳤으니 내게 침을 뱉고 내 아들은 용서해 주시오.}


그 이후로 아버지의 얼굴을 봐서 드워룬을 욕하는 사람이 없어졌다.


서로의 가슴속에 피멍만 남긴 사건은 이렇게 일단락(一段落)이 되었다.



** 1권 끝. 2권으로 이어집니다. **




[부록: 팔천계(八天界)와 지구의 탄생]


태초에 영겁의 암흑 속에서


혼돈만이 가득한 세상에는


그 어느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수많은 억겁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혼돈 속에서 한 가닥 영험한 기운이 태동하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 점차 그 덩치를 불리어 갔다


수많은 세월이 또 흐르고······


영험한 기운은 잴 수 없는 크기로 점점 커져서 어느 순간 존재를 자각하는 의식을 갖게 되었으니


그 순간 찬란한 광명의 빛을 내뿜었다. 이에 비로소 빛이 존재하여 세상을 빛과 어둠으로 나누었다


이 광명의 빛을 뿌리는 태초의 존재를 누구는 천신이라 부르고, 하늘에 계시니 하늘님이라 부르고


유일하시니 하나님이라 부르고, 누구는 불타라 하고, 누구는 알라라 하며, 누구는 조물주로······


민족의 신화에 빗대어 누구는 환인이나 천제로 부르고


누구는 반고나 옥황상제로, 제우스로, 나 아레안으로······


이렇게 수많은 이름으로 부르건만 이는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 낸 다른 이름일 뿐 그 이름은 맞는 것도 또한 틀린 것도 아니었다


하나이면서 둘이요 둘이면서 하나이며, 하나이면서 셋이요 셋이면서 하나라 하니, 오직 천지만물의 이치를 깨달은 자만이 알리라


모든 우주의 삼라만상이 누구는 빅뱅처럼 한순간에 만들어졌다 하고, 누구는 태초에 유일한 신께서 일주일 만에 만들었다 하며


모두 자신이 믿는 신을 내세워서 얘기하지만 이는 자신이 모시는 신의 위대함을 선전하기 위한 우리 인간들의 표현일 뿐······


우리에게 신이라 불리는 그 존재께서는 온 세상을 그렇게 무성의하게 허투루 만들지 않으셨다


십이성 마법의 수천수만 배로도 이룰 수 없는 그 정교하고 어긋남이 없는 천지만물의 법칙과


인간의 힘으로는 알 수 없는 거대하고 무한한 공간 속에 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억겁의 수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으셨으니


마땅히 자의식을 가진 모든 생명은 위대한 신의 선물인 자신의 생명과 영혼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하리라



세상이 빛과 어둠으로 나뉘어 하늘이라는 무한한 공간이 만들어지니, 비로소 천신께서는 세상을 만들기 시작하셨다


공간이 무너지지 않도록, 불필요한 것들이 서로 뒤섞이지 않도록, 격리된 공간 간에 서로를 간섭하지 못하도록


에너지 형태의 영기로 거대한 결계를 치고 살아 있는 생명체나 물질적인 것들이 드나들지 못하면서도 천지자연과 영혼이라는 형태로 나누어 준 신 자신의 영기들을 제어할 수 있도록


공간마다 통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드셨으니······


누구는 이를 웜홀이라 칭하고, 누구는 블랙홀이라고 하며, 또 누군가는 화이트홀이라 부르는데


우습게도 그것은 신의 숨구멍이다!


당신께서 만드신 세상을 관조하고 소멸한 생명들의 영혼과 쇠퇴한 천지의 영기를 거두고


새로운 생명과 천지의 영기를 불어넣는···, 그로서 숨쉴 수 있는 위대하신 신의 숨구멍!



신께서 제일 먼저 만드신 것은 천계였다. 또는 천상계라 부르는 당신의 안식처이다


모든 만물이 자신의 거할 곳을 먼저 찾는 것도, 영혼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몸에 깃들인 신의 한 조각 영기의 본능이리라


신께서 나누어 준 수많은 영혼에 깃들인 영기들 중에, 가장 순수하고 깨끗하며 신을 닮은 영혼들만 이곳으로 돌아가 다시 신의 한 부분을 이루나니


누구는 이를 천당이나 천국이라 부르기도 하고 누구는 무색계나 극락이라 부르며, 수미산이라 칭하는 이도 있으니······


그러나 신의 한 부분이 되어 자의식 없이 영기로 영생하는 것이 자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보다 행복할지는 누구도 모르는 일, 다 각자의 선택과 생각에 달린 일이 아니겠는가?



신께서 두 번째로 만든 세상은 마계였다. 신께서는 왜 마계를 다른 세상보다 먼저 만드셨을까?


마(魔)가 곧 악(惡)은 아니지만 너무 패도적이고 거칠며 영기를 어둠에 쉽게 물들이기 때문이었다


혼돈 속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순리를 따르지 않고 생계에 스며들어 성급하게 힘만 키우려고 하며


우선 힘으로 해결하고 패도를 숭배하며 쫓는 과격함과 무모함


악이 마를 먹고 자라난 괴물, 그게 바로 악마였다



신이 세 번째로 만든 세상은 요계였다. 역시 혼돈 속에서 자라난 이 기운은 순리를 따르지 않고 끝없이 쾌락을 추구하며, 생계를 나태함에 물들여 소중한 영혼을 타락시키는 기운이다


모든 걸 먹어 치우려는 욕심 많은 포식자, 시기에, 질투와 애욕에 눈멀어 천리를 거스르는 기운


어찌 보면 마기보다 더 요사스러운 기운이니 요인(妖人)이나 요수(妖獸)가 악기(惡氣) 나 사기(邪氣)에 물든 요기를 먹고 자라면 그게 바로 요괴였다


마계와 요계로 마기와 요기의 큰 기운을 가두었음에도 두 기운은 생계에 스며들어 끊임없이 탐욕을 부렸다



신이 네 번째로 만든 세상은 영계였다. 누구는 이를 명계라 불렀다


실은 이 네 번째 세상을 만들 때 어느 세상을 먼저 만들어야 하는지 신께서는 많이 망설이고 순서를 바꿔 보곤 하셨으나, 결국은 영계를 네 번째로 만드셨다


앞으로 태어날 생명들의 영혼을 우선 준비해야 하고, 소멸한 생명들의 영혼이 돌아와 다음 생을 대기하는 장소


그게 우선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명이 소멸했다고 해서 그 영혼이 바로 영계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 모두 신의 천지만물의 법칙에 따라서 움직일 뿐이다


이 영계를 벗어날 때 모든 자의식과 사념이 지워지니, 지난 생의 모든 것을 잊고 백지 위에서 새로운 생을 시작해 보라는 신의 축복이 아니겠는가?


지난 생의 기억들을 모두 가지고 있다면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신이 다섯 번째로 만든 세상은 중계였다. 누구는 이를 중천이라 부르고 누구는 저승이라 불렀다


자의식을 가진 영혼이 생명을 지니고 살아가게 되면 어떠한 이유로 자의든 타의든 영혼이 오염되나니


그대로 영계에 들일 수는 없는지라 영기에 물든 자잘한 오염을 씻어 내야만 했다


어떤 영혼은 한 번 영천에 몸을 담그면 끝나는가 하면 어떤 영혼은 많은 세월을 보내야 했다


이 영기의 오염이라는 것이 죄와는 또 다른 면이 있으니, 신께서 당신의 영기로 빚어 주신 영혼에 침투한 색과 빛과 농도가 다른 것들이었으니


죄란 그중에 행동과 생각으로 나타난 일부일 뿐이었다


우리가 자신의 영혼을 어찌 관리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살펴야 할 일이다



신께서 여섯 번째로 만든 세상은 유계였다. 그 안에 지옥이 있으니 옥계나 유부로도 불렀는데, 누구는 그 안에 현천(玄天)이 숨겨져 있다고 했다.


생명체로 살아가면서 영혼이 심하게 오염되면 마치 용광로에서 순수한 금속을 걸러 내듯이, 이 지옥에서는 불과 증기와 맷돌 등 수많은 도구와 방법으로 오염된 영혼들을 한 번에 쓸어 넣고, 방앗간에서 기름을 짜듯이 순수한 영기만을 빼서 정련한다


생전의 자의식이 지워지지 않은 채 이 고통 속에서 울부짖는 외침이 얼마나 처절하겠는가?


그보다 더한 고통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고독과 외로움, 절망과 공포에 절어 유부(幽府)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영혼들의 초조함이리라


그나마 너무 오염되어 지옥불로도 영기를 분리할 수 없어서, 그대로 색깔에 따라 마계나 요계로 쓰레기처럼 던져지는 많은 영혼에 비하면 나은 편이려나?



신께서 일곱 번째로 만든 세상은 선계였다. 누구는 신선들이 사는 신선계라 불렀다


비록 소멸하는 생명체에 깃들어 있으나 자의식을 가진 영혼이 천지만물의 섭리와 법칙을 깨닫고 자신 안에 깃든 영혼을 갈고 닦아 스스로 신의 경지에 이른 이들을 위한 세계이다


인세에서 이러한 수련자들을 누구는 수사나 수도자라 하고, 누구는 선인이라 부르며 누구는 도인이라고 부르나, 추구하는 바가 다 같지는 않으리라


이러한 선인들은 자신 안에 있는 영혼의 영기를 키워 누구는 영체나 양신이라 하고 누구는 원영이라 부르는, 보다 농밀하고 선명한 광채로 신을 닮은 영혼을 키워 낸다


오랜 세월을 살기도 하고 육신이 소멸하면 영체만으로 선계에 들어 영생하니 어찌 보면 가장 부러운 존재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어찌 보면 생명으로서 오감을 제대로 느끼지도 못하고, 셀 수 없는 수많은 세월을 살아야 하는 것


이 또한 삶의 고통이 아니겠는가?



신께서 여덟 번째로 만든 세상은 생계였다. 누구는 현계라 부르고 누구는 하계라 부르고, 또 누군가는 욕망을 가진 중생들이 사는 욕계라 부르나, 그 이름이 무어 그리 중요하겠는가?


하지만 중요한 것이 있으니, 신께서 생계를 가장 마지막에 만드신 것은 신께도 그만큼 소중하고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다른 세상은 다 생체가 없이 기로 진체를 이루어 만들어진 세상이지만, 유일하게 살아 있는 육체에 영혼이 깃들어 생명을 이루며 살아가는 곳은 팔계 중에 유일하게 생계밖에 없으니


신께서는 그동안 다른 세상을 만든 모든 경험과 당신이 원하는 이상적인 세상을 만들기 위한 집념으로, 온갖 정성과 심혈을 기울여 이 세상을 만드셨다


그러니 생계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는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어떻든 복받은 자신을 사랑해야 할 것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하지 않던가? 오감을 느끼며, 사랑을 느끼며, 우정을 느끼며, 때로는 배신과 죄악과 죄책감 속에 고통받을지라도 오늘이 우리에게 제일 중요하니 행복 하려고 노력하자


신은 생계 여러 곳에 생명을 창조하셨지만 그 중에서도 인간을 당신과 닮은 가장 이상적인 모습으로 창조하셨고


지구라는 이 별을 생명체가 가장 살기 좋은 푸른 별로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 정성을 기울이셨으니······



신께서는 악(惡)과 사(邪)에 대해서도 여러 날을 두고 고민하셨으나


이는 생명을 가진 영혼의 자의식 속에서 싹트는 것이라 결국 자의식을 가진 생명 각자에게 맡겨 두기로 하셨다


각자에게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것이니 우리 모두는 스스로에 대해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



······그러한 세월 속에


드디어 약 사십육억 년 전 생계에 영기가 충만할 때, 신의 축복 속에 이 지구가 탄생하였다


그러나 첫 모습은 지금처럼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었다


미리내에 태양계를 만들고···, 여덟 개의 행성 중 가장 생명이 살기 좋은 위치에 세 번째의 행성을 만들었을 때

그 겉 모습은 다른 별과 크게 다르지 않게 황량하였다


조그만 덩치에 표면은 울퉁불퉁하였고 크고 작은 바위가 가득하였으며, 앞을 볼 수 없는 어마어마한 뿌연 먼지구름에 뒤덮였다


얼음덩이와 소행성들이 지구 둘레를 정신없이 돌다가 차차 지구와 하나가 되어 가면서 점점 커지고 무거워졌다


지구의 중력에 많은 우주 먼지와 주위를 떠돌던 돌덩이, 그리고 소행성들이 지구에 충돌하면서 엄청난 폭발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그 충돌 여파로 온도가 올라 뜨겁게 끓어올랐다



그러던 어느 날


큰 소행성이 지구 중력에 끌려와 거세게 지구와 부딪치니, 그 충돌 여파로 많은 파편과 먼지구름이 지구에서 튕겨 나갔다


미처 중심이 잡히지 않은 지구는 자전 시간이 두 시진 반 밖에 되지 않아 기우뚱거리며 정신없이 흔들렸다


그러나 떨어져 나간 먼지와 파편들이 뭉쳐서 예쁜 달이 되어 지구의 둘레를 공전하니, 비로소 달과 지구간에 인력이 작용하여 지구는 하루가 조금씩 늦어져 열두 시진이 되었고······


그제야 겨우 비틀거리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우주의 파편들이 지구로 떨어지면서 엄청난 소음 속에 지구는 불덩이처럼 달아올랐다


그러나 일 억 년에 가까운 긴 세월이 흐르면서 우주 파편과의 충돌도 줄어들고, 그에 따라 지구 표면 온도가 식어 가면서 딱딱하게 굳어 거대한 돌덩어리가 되어 갔다



이렇게 지구 온도가 내려가면서 그동안 엄청나게 피어올랐던 수증기가 비가 되어 내리기 시작하였으니


한두 방울 내리던 빗방울은 점점 거센 비가 되어 쏟아지더니, 빗물이 도랑을 이루고 내를 이루었다가 강이 되면서 지구 전체가 물에 잠겨 온 세상이 물바다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태양에서 삼억칠천오백만 리나 떨어져 있던 지구는 물이 잘 증발되지 않다 보니, 어느덧 표면에 천 장(3,000m)이나 되는 물이 쌓여서 사방에 물밖에 없는 별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이 모든 것 또한 신의 섭리였으니, 딱딱한 바위 위에 물까지 뒤덮인 지구의 내부는 무거운 중력의 압력 때문에 뜨거운 용암 상태가 되었고···


이 용암이 끓어올라 마침내 화산 활동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또 몇억 년의 세월이 흐르니


물밖에 보이지 않던 망망대해 지구에 거센 폭발음과 함께 큰 해저 화산이 폭발하였다


그 결과 조그만 산 하나가 불쑥 솟아올랐다. 그리고 점점 화산 활동이 늘어나더니 더욱 크게 땅이 솟아올랐고


마침내 지구 최초의 대륙 발바라(Vaalbara)가 지구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발바라 대륙이 점점 커져서 길이 이만오천 리(10,000km) 너비 만이천오백 리(5,000km)에 이르니, 비로소 삼십팔억 년 전에 생명이 태동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따뜻한 물속에 떠다니던 탄소와 수소, 산소, 질소가 물거품 속에 갇혀서 병아리가 알에서 부화를 하듯이 단세포로 이루어진 세균이 탄생하였다



이런 과정들의 반복 속에 탄생한 푸른색 시아노 박테리아가 햇볕과 물과 이산화탄소를 먹고 산소를 뿜어내니


이 광합성으로 지구상에 산소가 늘어나자 밀리고 밀리어 하늘 높이 오르다 보니 산소끼리 결합하여 오존이 되었다


그리고 이 오존이 쌓이고 쌓여 마침내 지구를 둘러싼 오존층을 이루니, 자외선이 줄어들어 생명이 탄생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 되었다


이에 세균과 박테리아에 이어 물속에 녹조류, 홍조류 등이 생겨나더니 마침내 육지가 이끼류와 같은 선태식물로 뒤덮였다가 고사리와 같은 양치식물이 나타났고


뒤이어 침엽수류인 겉씨식물과 과실수와 같은 속씨식물까지 번성하여 비로소 푸르름이 땅 위를 뒤덮었다


동물도 아메바와 같은 단세포 동물에서 시작하여 점차 양서류와 파충류로 진화하더니, 어느 날 커다란 공룡들이 지구상을 포효하면서 질주하였고 시간이 흐르자 포유류 떼에게 사냥을 당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몇십만 년의 세월이 더 흐르고······, 마침내 언어로 말하고 간단한 표기문까지 가능한 종족들의 문명이 탄생하였으니


오랜 세월을 기다려 온 존재께서는 그 얼마나 기뻐하셨겠는가?


이렇게 지구상에 소인족, 거인족, 반인족, 야차족, 비월족, 어수족이 생겨서 문명의 기초를 이루고 세를 불리며 커져 갔으나 조물주께서는 그래도 뭔가 부족함을 느끼셨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하신 어느 날, 생계의 아리(峩理)별에 먼저 창조하셨던, 좀더 진화하여 자신의 모습을 가장 많이 닮은 천인족을 자연스런 계기를 만들어 지구에 이주시켰다


이들은 천둔산을 성산으로 삼고 주변에 환시와 회홀을 비롯하여 여러 보금자리를 만들며 터전을 잡았다


이 천인족의 유전자가 판게아를 거쳐 우리 현생 인류에까지 이어지니


우리 영혼에 신의 한 조각이 들어 있음이요 또한 우리 모두가 신이 될 수 있음이며, 신의 자녀와 같은 소중한 존재이다



천신께서는 자비가 없다 하셨다. 당신의 생각과 법칙대로 세상을 만들고 부수고 움직일 뿐······


천인족을 이주시키기 위해서 소행성이 아리(峩理)별에 충돌하고 이로 인하여 수많은 천인족이 사라져 갔으며


사차원에 공간균열을 일으켜 통로를 이용해 같은 은하계에 있는 지구별로 이주할 때에도, 수많은 인원이 공간균열의 틈에 빠져서 죽어 갔으나


이는 자의식을 가진 생명체가 느끼는 고통에 지나지 않을 뿐, 신께는 자신이 준 한 조각 영기를 다시 거두어 오염을 씻어 내고 다시 윤회시키는 일에 지나지 않았다


신의 입장에서 보면 육신은 언젠가 반드시 소멸하여 사라지는 필멸의 허무한 존재에 지나지 않았으니······


삼십오억 년 전 어느 날


이렇게 천인족의 대이동을 시작으로 지구에 발바라 문명이 찬란하게 꽃피기 시작하였다


--- 부록 끝 ---




감사합니다. - 설련하(偰輦河)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설 련하입니다.

뒷부분 부록(팔천계와 지구의 탄생)은 원래 서장으로 작성된 부분인데, 도입부부터 내용이 무거운 감이 있어 부록으로 넘긴 것이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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