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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련하 님의 서재입니다.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완결

설련하
그림/삽화
설련하
작품등록일 :
2021.06.28 08:42
최근연재일 :
2022.10.17 08:20
연재수 :
290 회
조회수 :
379,413
추천수 :
7,321
글자수 :
2,467,752

작성
21.06.29 13:43
조회
1,338
추천
47
글자
19쪽

50화. 구원(舊怨)과 비무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DUMMY

길거리에 서서 한참 동안 마음을 달랜 뒤에 다시 무관으로 돌아오니, 오후부터는 권법 대련(對鍊)이 이어졌다.


보통은 동급생(同級生)들끼리 대련을 하는데 쥬맥은 오늘 처음이고 혼자여서 대련을 할 상대가 없었다. 관장이 앞으로 나서서 상대를 찾았는데······.


“오늘 쥬맥을 상대해 줄 사람 있나?”


그러자 화문수가 마침 잘되었다는 듯이 손을 번쩍 들고 앞으로 나섰다.


“제가 상대해 주겠습니다.”


내막을 아는 수르가 말리려고 하는데 화문수가 벌써 앞으로 달려 나와 자세를 잡는다. 눈치를 보며 수르가 끼어들려고 하니 관장이 어서 들어가라고 손짓을 했다.


관장도 나이 들어 입관한 쥬맥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보고 싶은 것이다.


“자, 준비됐으면 시작한다.”


그러자 화문수가 번개처럼 발로 연속 돌려 차며 공격을 가하는데, 쥬맥은 정신을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멍한 표정으로 방어만 하며 그저 이리저리 피할 뿐이다.


유리에게 받은 정신적 충격이 컸나 보다. 그래도 맞지는 않고 슬쩍슬쩍 피하는데 화문수의 발길과 주먹이 곧 닿을 것처럼 옆으로 스치며 지나갔다.


아쉬움에 안달이 난 화문수가 더 세게 몰아붙이지만 방어와 가벼운 공격 정도만 할 뿐이지 싸우고자 하는 적극성(積極性)이 하나도 없었다.


이제는 화문수도 자신은 상대가 안 되는 고수라는 것을 눈치 챌 법도 하건만, 복수에 눈이 멀어서 성난 멧돼지처럼 씩씩거리며 계속 덤벼들었다.


그러자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던 관장이 도저히 안 되겠는지 대련을 중단시켰다.


“그만! 그만한다. 쥬맥, 앞으로는 좀더 적극적으로 임해라. 알았나?”


“예, 알겠습니다.”


쥬맥이 힘없이 대답하며 뒤로 물러서자 화문수는 아직도 성이 제대로 풀리지 않았는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그렇게 멍한 상태로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무관의 수련도 모두 끝이 났다.


돌아오는 길에 수르와 같이 옷가게에 들러서 파란색 경장차림의 수련복을 사고 가죽신도 새로 장만했다.


머리도 상투를 틀 듯이 위에 묶는 관을 사서 둥글게 말아 올리니 하루아침에 사람이 완전히 달라 보였다.


다음은 무기를 만들기도 하고 팔기도 하는 대장간에 들러 장검을 하나 사서 등 뒤에 비스듬히 맸다.


형태나 크기가 동굴에서 나무로 만들었던 검과 비슷한 것으로 말이다. 거기에 검은색을 띤 손목용 투갑을 두르니 이제야 제대로 된 무사 같았다.


붉은 머리처럼 두 눈에서는 불을 뿜는 듯하고, 절벽을 타면서 단련된 유연하면서도 근육질(筋肉質)의 몸매는 한눈에 봐도 반할 만큼 늘씬한 체형이다.


거기에다가 최근에 탈피를 하여 흠집 하나 없는 백옥처럼 뽀얀 피부.


여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뒤돌아볼 정도로 멋지게 변화한 모습에 수르도 감탄사를 연발했다.


유리를 만나고 쥬맥도 심경에 변화가 왔다. 그래서 마음속에 남아 있던 한 가닥 미련의 끈을 이제는 놓아야 할 때라는 것을 안 것이다.


그저 철없던 어린 시절의 철부지 풋사랑이라고 치부하면서······.


기분이 조금 좋아진 둘은 대로변을 따라서 돌아오는데, 점심때 식당에서 옆자리에 앉았던 아가씨들 중 셋이 앞에서 재잘거리며 걸어왔다.


유리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두 사람은 이제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이 어깨를 반듯이 펴고 당당하게 지나가는데, 그중 한 명이 둘을 보더니 손가락질을 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어머~ 저기 봐! 점심때 식당에서 만났던 유리 친구라는 남자들 아니니?”


“정말? 아니야. 가죽옷에 거지처럼 추레해 보였는데 다르잖아.”


“머리색이 똑같잖아? 저런 색은 다른 데서는 본 적이 없는데······.”


“그런데 너무 잘생기고 멋지다 얘. 친구든 아니든 한번 물어볼까?”


“안 돼! 저 사람은 내가 점찍었으니까 너희는 침 바르지 마. 알았지?”


“아니, 결혼 약속을 한 것도 아니고 오늘 처음 본 사람인데 임자가 어디 있냐 임자가? 먼저 쓰러뜨린 사람이 임자지.”


“야! 너희들 모두 내가 점심때 유리한테 두말하지 않기로 다짐을 받는 것 봤어 못 봤어? 똑똑히 봤잖아?”


“사람을 주고받고 무슨 물건이니?”


여자들이 그렇게 시시덕거리며 서로 다투는 소리를 들으면서 둘은 못 들은 척 더 어깨를 활짝 펴고 빠르게 그 옆을 지나쳤다.


사람의 눈이란 간사해서 때로는 눈에 보이는 겉모습만 보고 그게 전부인 양 내면(內面)은 보지도 않은 채 이러쿵저러쿵 평을 내린다.


오늘은 수르가 쥬맥의 기분을 풀어 주고 싶은지 자기 집에서 저녁을 같이 먹자고 잡아 끄니 어쩔 수 없이 따라갔다.


수르의 아버지 야갈타는 일이 많아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어머니 루나가 아들을 반기듯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쥬맥이 동굴에서 잡아온 물고기 한 뭉치를 통째로 들고 와서 몸에 좋은 것이니 드셔 보시라고 건네자, 먹어 본 수르가 옆에서 입맛을 쩍쩍 다셨다.


“엄마! 이거 엄청 맛있고 몸에 좋은 것이니 아버지랑 많이 드세요. 귀한 것이니까 절대로 남에게 주면 안 돼요. 알았죠?”


“아이고, 그렇게 귀한 것을 너는 안 먹고 다 가져온 모양이구나.”


“저는 날마다 먹어서 이제는 물렸어요. 걱정 마시고 맛있게 드세요.”


사실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귀한 것을 겉만 보고 누가 알겠는가? 그저 맛있는 물고기를 말려서 가져온 모양이다 그리 생각할 뿐이지.


수르 어머니는 항상 고아인 쥬맥이 불쌍해서 마음에 걸렸다 오랜만에 돌아왔다니 정성을 다해서 밥상을 차려 주었다.


그 상을 받으면서 쥬맥은 또 어머니 생각이 나서 울컥하였고 말이다.


마린챠나 비류월을 만났고 오늘 또 수르의 어머니를 만나니 새삼 어머니의 끝없는 사랑이 느껴진다.


혼자 남은 쥬맥도 힘들었지만 나이 어린 자식을 혼자 남기고 떠나야 했던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


철이 드니 이제야 조금씩 헤아려진다.


혼자서 돌아오는 길에 하천의 나무다리 밑에 앉았다. 옛날에 유리의 신발이 죽은 동물의 사체를 밟고 더러워졌을 때 신발을 물에 씻어 주던 곳이었다.


유리의 신발을 만지는 바람에 풍토병(風土病)에 걸렸고 그 이후로 악몽(惡夢) 같은 시간들이 이어졌지만, 지난 일은 추억으로 남는지 유리가 그다지 원망스럽지 않았다.


좋은 남자를 만났다던데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그때 멀리에서 아직 어른스럽지 않은, 자신과 같은 또래로 생각되는 남녀의 말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인기척을 내려다가 지나가겠거니 하고, 다리 밑 그늘에 앉아 있으니 보이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그냥 앉아 있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소곤소곤 얘기를 하면서 나무다리로 다가와 난간에 걸터앉는데, 속삭이는 목소리를 들으니 여자는 낮에 들었던 목소리였다.


‘그렇다면 혹시 유리?’


긴가민가하고 있는데 둘의 대화에서 바로 그 정체가 드러났다.


“명아! 너는 의술(醫術)도 잘하고 무술도 뛰어나니 참 좋겠다.”


“유리 너도 의술은 잘하잖아? 너는 틀림없이 신의가 될 거야.”


“정말 그랬음 좋겠다. 그래야 너랑 결혼해도 꿀리지 않을 텐데.”


“신의가 되면 무술은 못해도 괜찮아. 사람만 잘 고치면 되지 뭐.”


“그런데 명이 너는 어떻게 갑자기 공력(功力)이 일 갑자로 늘었어?”


“응, 태을 선인이 이상한 버섯을 말려서 가져왔는데 위는 빨갛고 아래는 파래. 그런데 또 밑동은 하얀 거 있지? 처음 보는 버섯인데 자오음양지라나 뭐라나. 그걸 몇 번 먹었더니 공력이 금방 늘었어.”


“좋겠다. 나도 좀 가져다주면 안 돼?”


“지금은 다 먹고 없어. 실은 여러 번 전쟁이 있을 때 할아버지께서 건강이 안 좋아지셔서 태을 선인이 잡수시라고 조금 가져온 거야.


그냥 먹으면 독성이 있대. 그래서 살짝 삶았다가 다시 그늘에 말려서 하나씩 먹었어. 그런데도 맛이 매우 쓰고 먹고 나면 목으로 마치 불덩이같이 뜨거운 기운이 올라와서 기절하는 줄 알았어. 그 다음엔 또 한기가 들고······.


오랫동안 운기를 해야 겨우 가라앉아. 할아버지가 나를 귀여워하셔서 당신은 안 잡수시고 나만 몰래 먹이신 거야.”


“아버지도 안 주고? 나도 한울님 같은 할아버지가 계셨으면 좋겠다.”


“나랑 결혼하면 너도 그냥 할아버지라고 불러도 돼.”


“증~말? 우리 빨랑 결혼했으면 좋겠다. 그치?”


유리가 안명을 끌어안고 뽀뽀를 해 대며 조바심을 냈다. 그러자 안명이 얼씨구나 하고 끌어안고 무엇을 하는지 헉헉대는 소리와 쪽쪽거리는 소리가 나무다리 아래까지 들린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쥬맥은 차마 이제 와서 나설 수 없는 입장이 되고 말았다. 그저 숨을 죽이고 조용히 있을 수밖에!


그렇게 한참을 부스럭거리며 끌어안고 있더니 안명이 다시 입을 열었다.


“참! 네 친구 중에 쥬맥이라고 하는 애가 산에서 돌아왔다며?”


“응, 그냥 일곱 살 어릴 때 같이 어울려서 놀던 소꿉친구야.”


“그래도 어릴 때 함께 뛰어논 친구가 죽마고우(竹馬故友)라 애틋하잖아?”


“걔는 풍토병이 걸려서 산속에다 버린 거잖아. 죽은 줄 알았는데 뭐.”


“정말 그 친구에게는 아무런 마음도 없는 거지?”


그러자 유리가 야속하다는 듯이 안명의 가슴을 두 손으로 두들기며 말했다.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이제 너밖에 없어. 그리고 걔는 부모 형제도 없는 천애고아(天涯孤兒)잖아? 그런 녀석하고 어떻게 결혼을 하겠어?”


“얘, 그래도 불쌍한 애니까 잘해 줘야지? 우리 할아버지께서는 그 애를 무척 챙기시던데?”


“정말? 근데 걔 고추는 새끼손가락만 해. 네 것의 반도 안 돼. 히히히”


“아니, 그것까지 봤단 말이야? 언제?”


남자의 본능인지 안명의 목소리가 화가 난 것처럼 커졌다. 그러자 유리는 그게 더 재미있다는 듯이 크게 웃었다.


“호호호호! 어릴 때 저~기 귀목나무(정자나무) 아래에 나무로 만든 정자가 있었잖아? 글쎄 밤에 거기를 놀러 갔다가 모두 잠이 들었는데, 비월타라는 개구쟁이 녀석 알지?”


“아! 알지. 바로 그 천둥벌거숭이 같은 개구쟁이 녀석.”


“그래~ 글쎄 그 녀석이 쥬맥만 혼자 자게 놔두고 다 깨우더니 쥬맥의 바지를 홀랑 벗겨 버린 거야. 나는 그때 부끄러워서 손으로 눈을 가렸는데, 호기심에 손가락 사이로 살짝 봤지 뭐. 새끼손가락만 한 게 귀엽더라구.


바지까지 가지고 모두 와 버렸는데 쥬맥 그 녀석은 아마 오밤중에 혼자 일어나서 똥줄이 탔을 거야. 아유! 생각만 해도 재미있어. 이히히히히!”


“하하하하! 너무 재미있다. 나는 할아버지가 엄해서 밤에 놀러 다니지도 못했는데 같이 못 봐서 정말 아쉽네. 생각할수록 웃음이 나온다. 와하하하!”


“이히히히히히!”


둘이 재미있다고 손을 흔들며 웃는 소리가 하천가에 널리 울려 퍼졌다.


확인 사살까지 받으니 쥬맥의 가슴이 싸~ 하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편으로는 확실하게 정리를 해 주는 유리가 야속하면서도 고맙다. 이제야 마음이 홀가분해지고, 다시 의식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둘은 그렇게 한참을 더 사랑놀이를 하다가 돌아갔고, 쥬맥은 또 생각에 잠겨 한참을 다리 아래에 앉아 있다가 천막집으로 터덜터덜 걸어왔다.



집으로 돌아오니 낮에 누가 다녀갔는지 주방에는 몇 가지 반찬이 더 만들어져 있고, 밥도 그릇에 담겨 있었다.


어젯밤 수르와 술을 마시며 어지럽힌 흔적도 누군가 깨끗이 치웠다. 비율신 대족장이 신경을 써 주는 것 같아서 괜히 미안스러웠다.


다리 밑에서 안명에게 들은 얘기가 생각나 동굴에서 가지고 왔던 가죽 봇짐 속에서 자오음양지를 꺼냈다.


그리고 말린 뭉치를 큰 솥에 넣고 마치 채소를 데치듯이 물에 살짝 익혔다.


그러자 거무스름한 물이 빠져나오는데 아마 독성인 모양이다. 자신은 그것도 모르고 동굴에서 모두 먹었고 말이다. 이렇게 살아서 천만다행이지만.


버섯을 건져서 물기를 빼내고 침대 밑을 깨끗이 청소한 다음, 밑에 깨끗한 종이를 깔고 그 위에 널었다.


침대보를 늘어뜨리니 밖에서 보이지 않고 감쪽같았다. 수르에게 먹일 생각에 벌써부터 기분이 좋았다. 독성 때문에 걱정을 했는데 이제 방법을 알았으니.


‘수르 녀석을 한번 놀려 줘야지. 으흐흐흐! 아마 깜짝 놀랄 거야.’


수르를 놀릴 생각을 하다가 좌정을 하고 앉아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벌써 삼경이 지나고 있지만 가만히 앉아 운공을 하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온몸이 상쾌(爽快)하여 기운이 넘친다.


잠깐 눈을 붙였는데 누군가 들어와서 일어나라고 깨웠다. 벌써 수르가 무관에 가자고 온 것인데, 아직도 한밤중처럼 세상모르게 자고 있었다.


눈을 비비고 일어나 하천에 가서 세수를 하고 오니, 벌써 수르가 밥상을 차려 놨다. 물론 어제 누가 준비해 둔 것이지만 차려 준 게 고마웠다.


“야, 밥은 먹고 가야지 얼른 먹어라.”


“너는 먹고 왔냐?”


“그럼, 나야 엄마가 있잖아? 혼자 있다고 끼니를 거르면 안 돼.”


친구가 애써 차려 준 성의를 봐서 허겁지겁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무관으로 가는 하천 옆 큰 대로변에서 화문수를 비롯한 같은 패거리가 다섯 명이나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무기까지 들고서······.


죽일 듯이 험상궂은 얼굴로 말이다.


쥬맥과 수르는 무기(武器)를 모두 집에 두고 왔는데 이 녀석들은 모두 검이나 도를 허리에 차고 있었다. 아무래도 시비를 걸려고 하는 모양인데······.


그러자 쥬맥이 수르를 보며 당부했다.


“너는 빠져 있어라. 내 문제니까 내가 해결한다. 아무 걱정하지 말고.”


“야, 그래도 다섯이나 되잖아? 그러다 다칠 수도 있어. 혼자는 무리야.”


“내가 내공이 삼 갑자야. 그리고, 화문수 저 녀석은 나 때문에 아버지도 잃었다고 하잖아? 미안하기도 하고······. 한 번은 당해줘야 분이 풀리지 않겠어? 아무 걱정하지 마.”


“하여간 안 다치게 조심해. 알았지?”


그사이에 벌써 다섯 명이 눈앞까지 다가와서 잡아먹을 것처럼 눈을 부라렸다. 그러면서 화문수가 앞으로 나서더니 거만하게 수르에게 턱짓을 했다.


“야! 수르! 너는 빠져 있어. 끼어들면 죽는다! 쥬맥하고 해결할 문제야.”


“너희들 왜 이래? 쥬맥이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말로 해결해야지.”


“야! 너 아버지 죽어 봤어? 호래자식이라는 소리 들으면서 내가 얼마나 서럽게 자랐는지 알아? 죽기 전에 비켜!”


그러자 두 녀석이 나서더니 수르를 잡고 한쪽으로 떼어 놓았다.


“쥬맥! 너 지옥이 어떤지 모르지? 오늘 지옥문(地獄門) 좀 들어갔다 와라.”


그러면서 세 녀석이 동시에 달려드는데 제법 권각(拳脚)에서 바람소리가 쌩쌩하고 났다. 나름 무술을 열심히 익혀서 자신들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쥬맥과는 경지가 다르다는 것을 모르니 용감하게 덤빈다. 마치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을 모르듯이 말이다.


쥬맥은 공격은 하지 않고 이리저리 피하기만 했다. 이까짓 세 녀석이야 마음만 먹으면 한주먹감이 아닌가?


셋이 바람처럼 손발을 휘두르는데도 쥬맥의 손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안 되겠는지 수르를 붙들고 있던 두 녀석이 눈치를 보다가 함께 가세해서 몰아붙이는데도 제압(制壓)을 못 했다.


수르도 그 모습을 보면서 나름대로 안심을 하고 지켜보는데 화문수가 도저히 안 되겠는지 도를 꺼내 들었다.


맨손 한 사람을 다섯이 몰아붙이다가 안 되니 이제는 무기까지 꺼내다니!


“이 녀석! 미꾸라지처럼 잘도 빠져나가는데 내 칼 앞에서도 미꾸라지 신법을 한번 펼쳐 보아라. 내가 이번에는 단장(斷腸)의 고통을 느끼게 해 주마.”


악다구니를 퍼붓더니 악랄해서 흉악한 적에게나 펼친다는 현천도법(玄天刀法) 열두 초식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변에 바람이 몰아치고 먼지가 일어나서 시야를 방해했다. 함께 공격하던 녀석들도 모두 무기를 빼 들고 합격진(合擊陣)을 펼치기 시작하자 도검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요란했다.


쉬악! 쉭쉭쉭!


다섯이 덤벼서 손끝 하나 대지 못하자 화가 치밀어 이성을 잃은 것이다.


그동안 다섯이 손발을 맞추며 연습을 많이 했는지 물샐틈없는 공수(攻守)가 이어지자 수르는 걱정이 되었다.


맨손으로 뛰어들 수도 없고 안절부절을 못하고 있는데, 그 합격진 속에서도 쥬맥은 유유자적(悠悠自適)하게 보법을 밟으며 이리저리 잘 피하고 있었다.


마치 술래잡기라도 하는 것처럼······.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두 멈추어 서서 무슨 구경거리인가 하고 쳐다보았다. 천인족은 무예를 중시(重視)해서 정당한 비무에는 아무도 끼어들지 않았다.


다치는 것을 무서워해서는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무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록 다섯이 하나를 공격하고 있지만 이유를 모르니, 그저 사연이 있거나 사전에 무슨 합의(合意)가 있겠거니 하는 것이다.


그 구경꾼 안에는 유리와 안명, 그리고 어제 대로변에서 마주친 유리의 친구들 세 명도 함께 끼어 있었다.


안명은 쥬맥을 처음 보기 때문에 누구인지도 모르고, 유리는 일부러 알려 주지 않았다. 쥬맥의 무위가 뛰어나서 안명이 질투를 할지도 모르니까.


“와! 저 붉은 머리의 무사는 정말 잘 싸우는데? 나보다 훨씬 고수(高手) 같애. 어떻게 저 나이에 혼자서 다섯을 상대하지? 누군지 정말 궁금한데······.”


“저 정도면 잘 싸우는 거야? 난 잘 모르겠는데. 자기도 저만큼은 하잖아.”


“잘 싸우는 정도가 아니야. 저 정도 되려면 오십 년 이상을 수련해도 쉽지 않을 텐데? 저 다섯이 무기에서 바람소리가 쌩쌩 나잖아? 저 정도만 해도 우리 나이에는 엄청 잘하는 거라고.”


“그래?”


유리의 대답이 별로 시원치 않았다.


어제는 촌스러운 가죽옷에 머리의 색깔까지 이상해서 친구들 앞에서 너무 창피했다. 차라리 전혀 모르는 사람이기를 그토록 바랬는데······.


그런데 오늘 보니 옷도 푸른색의 산뜻한 경장차림에 새 가죽신과 검은 투갑을 찼고, 머리를 멋지게 틀어 올린 모습이 어제의 쥬맥이 아닌 것 같았다.


하루 아침에 변신을 한 것처럼 말이다. 마치 거렁뱅이에서 멋진 왕자로······.


자신보다 훨씬 고수인 안명이 무술도 엄청 뛰어난 고수라고 하니, 괜히 먹기 싫었던 떡인데 갑자기 남 주기가 아까운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 양손에 떡을 쥐려니 괜히 양심이 찔리고······.


이런저런 복잡한 심정으로 지켜보니 마음이 착잡하기만 하다.


‘아이, 어떻게 하지?’


갈팡질팡 애타는 여심이다.




감사합니다. - 설련하(偰輦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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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3 53화. 거인족과 야차족의 전투 21.06.29 1,356 47 19쪽
52 52화. 거인족과 반인족의 전투 21.06.29 1,356 47 18쪽
51 51화. 쥬맥이 맥쮸~ 되다 21.06.29 1,350 47 19쪽
» 50화. 구원(舊怨)과 비무 21.06.29 1,339 47 19쪽
49 49화. 재회 그리고 새로운 출발 21.06.29 1,352 48 19쪽
48 48화. 친구를 찾아서 천인족으로 21.06.29 1,350 48 18쪽
47 47화. 회상(回想) 21.06.29 1,353 48 18쪽
46 46화. 복수 준비와 떠날 준비 21.06.29 1,382 47 20쪽
45 45화. 비월족의 패전 대책 21.06.29 1,386 48 19쪽
44 44화. 주작이 준 기연(奇緣) 21.06.29 1,397 48 18쪽
43 43화. 청룡(靑龍) 출현 +1 21.06.29 1,386 48 19쪽
42 42화. 비월족의 습격(襲擊) 21.06.29 1,402 48 18쪽
41 41화. 반인족 울트의 계략 21.06.29 1,431 48 18쪽
40 40화. 또 하나의 경지를 넘다 21.06.29 1,417 48 19쪽
39 39화. 무공(武功) 수련과 첫 전투 +1 21.06.29 1,417 48 19쪽
38 38화. 친구들의 동태 21.06.29 1,412 47 19쪽
37 37화. 생사현관(生死玄關)을 뚫다 +1 21.06.29 1,443 48 20쪽
36 36화. 친구의 선물(膳物) 21.06.29 1,404 48 18쪽
35 35화. 비월족(飛月族) 금령월 21.06.29 1,421 48 18쪽
34 34화. 거인족 사절단(使節團) 21.06.29 1,419 48 20쪽
33 33화. 새로운 신공(神功) 수련 21.06.29 1,447 48 18쪽
32 32화. 태을 선인과의 조우 21.06.29 1,421 48 18쪽
31 31화. 선인(仙人)의 연신기 21.06.29 1,438 50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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