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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련하 님의 서재입니다.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완결

설련하
그림/삽화
설련하
작품등록일 :
2021.06.28 08:42
최근연재일 :
2022.10.17 08:20
연재수 :
290 회
조회수 :
379,415
추천수 :
7,321
글자수 :
2,467,752

작성
21.06.29 13:41
조회
1,352
추천
48
글자
19쪽

49화. 재회 그리고 새로운 출발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DUMMY

한울의 말을 되새긴 비 대족장이 깜짝 놀라서 다시 쥬맥을 바라보았다.


옛날에 풍토병에 걸려서 산에 버리던 일을 생각하니 한없이 미안하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먼 옛날 일을 돌이킬 수도 없는 일!


얼굴 가득히 미안한 표정(表情)을 지으면서 가만히 쥬맥을 바라보았다.


“쥬맥입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상대가 민망하지 않게 쥬맥이 먼저 공손히 인사를 했다. 그것은 이미 지난 일이니···.


“이제 정말 청년이 다 되었구나. 반갑다. 그리고 미안하구나.”


비 대족장이 진지한 표정으로 사과를 했다.


“지난 일은 모두 잊었습니다. 덕분(德分)에 많은 기연을 만났습니다.”


“고맙다. 지금부터라도 잘해 보자.”


“예, 많이 가르쳐 주십시오.”


그때 한울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실은 비 대족장이 쥬맥과 인연이 있고, 또 덕(德)이 가장 높으니 내가 쥬맥을 돌보아 달라고 부탁하러 불렀소. 이제 여기에 주거지를 만들고 함께 살아야 하지 않겠소? 아마 대족장께도 큰 힘이 될 것이오”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소신이 성의껏 챙기겠사옵니다.”


이렇게 한울의 배려로 쥬맥은 다시 비 대족장과의 연이 이어지게 되었다.


비 대족장도 이제 쥬맥이 살아서 돌아왔으니 돌보는 것은 당연히 자신이 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하였고······.


실은 마음 속으로는 오늘과 같은 날이 찾아오기를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항상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과거의 짐을 이렇게 벗을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비율신 대족장은 아래 부족장들이 쥬맥을 산에 갖다 버린 것을 묵인(默認)한 것이 항상 마음에 걸렸다. 살아 있는 생명을, 그것도 사람을 마치 쓸모없는 물건 내다 버리듯이 말이다.


그래서 혹시라도 살아서 돌아오면 잘 해 주리라 마음먹고 있었고, 한울은 네가 버렸으니 네가 책임지라는 뜻이 아니라 그 마음을 잘 알기에 일부러 불러서 부탁 형식으로 맡기는 것이다.


“그럼 잘 부탁하겠소. 지금 함께 데리고 가시오.”


“그럼 이만 물러가옵니다. 쥬맥아! 나랑 함께 가자.”


“감사하옵니다. 그럼 저도 이만 물러가옵니다.”


인사를 하고 물러가는 두 사람을 넷이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비율신 대족장이 쥬맥을 데리고 돌아가면서 궁금한 점 여러 가지를 물었고, 관장하는 지역에 주거지를 내주었다.


게르처럼 나무로 골조를 만들고 가죽과 갈대 같은 풀로 덮어씌운 천막집인데 안이 제법 넓고 아늑했다.


지난번에 비월족의 공격으로 집이 여러 채 불타서 새로 석조나 목조로 많은 집을 지었다. 그러다 보니 주인 없이 남아 있는 빈집인데, 침실과 주방 그리고 넓은 거실도 갖춰져 있었다.


천막집까지 데리고 온 비 대족장은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와서 얘기하라며, 피곤할 테니 우선은 쉬라고 하면서 돌아갔다.


조금 지나자 여자와 남자 몇 명이 오더니 주맥과 인사를 나누고 내부를 깨끗이 청소(淸掃)했다.


그 뒤에 가지고 온 곡식 몇 섬과 이부자리, 다기(茶器)와 취사 도구들, 갈아입을 옷 등 여러 가지를 챙겨와서 고맙게도 정리까지 해 주었고······.


거실 중앙에는 제법 큰 탁자가 놓여 있는데 그 둘레에 방석이 여러 개 놓였고, 지필묵까지 챙겨 두었다. 비싼 고급 종이도 수백 장이나······.


반찬을 만들어 저녁 식사 준비까지 해 놓고 돌아가자, 쥬맥은 고맙고 한편 죄송한 마음에서 잘 가시라고 허리를 숙였다. 지금껏 받아 보지 못한 대우가 어쩐지 쑥스럽기만 했다.


이제 다 가고 쥬맥 혼자만 천막집에 남았다. 가지고 온 봇짐을 침실 한쪽에 넣어 두고, 문을 열어 둔 채로 거실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이제 여기가 내 집인가? 그래도 집이라고 살던 동굴 속보다는 좋군.’


가을이 깊어 가니 파란 하늘이 눈부시다. 이제 돌아와서 이렇게 누워 있으니 세월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고, 그동안 동굴 생활을 해서 그런지 집이 꼭 남의 집인 양 낯설었다.


'점박이와 별이는 주작 신수를 따라갔을까? 내가 살던 동굴은 이제 찾아갈 수 없는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하늘을 보며 누워 있다가 자신도 모르게 깜박 잠이 들었다. 오랜만에 여러 사람들을 만나느라 긴장을 해서 조금 피곤했나 보다.


그런데 누군가 흔들며 깨우는 소리에 눈을 뜨니, 웬 날씬한 청년이 한 손에는 술병 같은 것을 들고 허리를 숙여 내려다보며 자신을 깨우고 있었다.


놀라서 얼른 살펴보니 자신을 보고 있는 얼굴에는 아직도 익숙한 옛 친구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너 수르지?”


“그래, 맥아! 내가 바로 수르다.”


둘은 힘차게 끌어안고 서로의 등을 다정하게 두들겼다. 이 얼마 만인가?


“맥아! 보고 싶었다. 정말 잘 왔어. 그리고 너무 미안하다.”


“아니야. 나도 보고 싶었어.”


둘은 옛 친구와 재회(再會)하니 기쁜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글썽였다. 세월이 흘렀지만 마음은 변치 않았다. 헤어진 것이 마치 어제만 같고.


“야! 오늘 우리 같이 술 한잔 하자.”


“우리 나이에 술을 마셔도 되냐?”


“만 열아홉 살 이상 성인이면 마실 수 있어. 우리도 이제 생일까지 지났으니 성인이잖아? 하지만 어른들 눈이 무서우니 몰래 마시는 거지 뭐. 오늘 같은 날 안 마시면 언제 마신단 말이냐?”


“지금 이 시간에는 술집에서 술을 안 팔 텐데?”


“걱정하지 마라. 우리 아버지가 숨겨 둔 것을 몰래 한 병 훔쳐왔다. 짠!”


그러면서 자랑스럽다는 듯이 왼손에 들고 있던 술병을 앞으로 내밀었다.


“남이 보면 안 되니까 문부터 닫자.”


쥬맥은 혹시 남이 지나다가 볼까 봐 얼른 문을 내리고 와서 술잔과 안주거리를 찾았다. 그런데 집에 그런 것이 있을 리 있겠는가?


주방에 가 보니 술잔은 없고 찻잔만 몇 개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 차나 술이나 다 마시는 것인데!


그래서 아쉬운 대로 술잔으로 쓰려고 들고 나왔다. 안주는 마땅한 것이 없으니 아주머니들이 만들어 놓고 간 몇 가지 반찬을 꺼내 놓았다.


그때 산에서 가지고 온 봇짐 속의 물고기 생각이 났다. 영기가 충만하니 친구의 몸에도 좋지 않겠는가?


‘그걸 소금에 노릇하게 구우면 아마 구수하고 맛도 일품일 거야.’


그래서 얼른 달려가 봇짐 속에서 몇 마리를 꺼내다가 소금을 치고 숯불에 노릇노릇하게 구웠다. 구수한 냄새가 천막 안을 가득 채우니 군침이 절로 돈다.


“와! 무슨 냄새가 이렇게 구수하냐? 끝내준다. 꼭 생선 같은데······.”


“몸에 좋은 거니까 많이 먹어라.”


술잔을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가 끝이 없었다.


“그런데 이게 물고기인지 뱀장어인지 정말 맛있다! 설마 뱀은 아니지?”


“깊은 동굴 속의 한천에 사는 물고기야. 영기가 충만한 곳에서 자라 공력 증진에 좋거든. 매우 귀한 건데 나는 날마다 먹었으니까 너나 많이 먹어라.”


“정말? 그런데 맛이 정말 좋다! 그럼 넌 이 좋은 걸 매일 먹었으면 공력(功力)이 엄청나겠네?”


“아직 삼 갑자 정도밖에 안 돼.”


“뭐? 삼 갑자나? 정말이야? 나는 아직 반 갑자도 안 된다. 와! 너 완전히 고수가 다 됐구나! 야, 이거 내가 다 먹을란다. 친구도 격이 맞을려면.”


“수르야, 너 어디 가서 내가 삼 갑자라고 떠들면 절대 안 된다. 알았지?”


“알았어. 직접 겨뤄보지 않으면 누기 믿기나 하겠냐?”


고수는 하수를 알아봐도 하수는 고수가 자신의 무위를 감추면 모르는 법이다. 그리고 무사들이 자신의 경지를 다 드러내는 것도 좋을 게 없고.


얘기 중에 한동안 정적이 감돌 때였다.


“그런데 유리는 잘 지내냐? 예쁜 처녀가 됐을 텐데.”


쥬맥이 묻고 싶었던 유리의 얘기를 슬쩍 꺼내자 수르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한참 동안이나 쥬맥의 눈치를 살폈다.


“왜? 유리에게 무슨 일이 있어?”


“너에게 말하기가 좀 민망(憫惘)하다. 실은 유리가 요즘 바람이 나서 정신을 못 차린다. 한울님 손자 안명이라고 하는 녀석에게 완전히 푹 빠졌다. 그러니 너도 이제 소꿉장난하던 시절의 첫사랑은 잊어라.”


그 말을 듣자 갑자기 가슴 한쪽이 싸~아 하고 식으면서 허전하고, 기대(期待)했던 뭔가가 가슴 속에서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어린 철부지 시절에 새끼손가락을 걸고 맹세한 풋사랑을 가지고 누굴 구속하고 탓하랴?


“그래? 좋은 사람 만났으면 다행이고, 행복하면 된 거지 뭐.”


“그런데 너는 이제 어떻게 할 거야?”


“글쎄, 깊이 생각 안 해 봤는데? 뭘 해야지? 무공이나 더 배울까?”


“그러면 나랑 같이 정심무관(正心武館)에 다니자. 천령대나 부족의 무사가 되려면 최소한 만 스무 살 이상이 되어야 하잖아? 내년 봄에 신규 모집을 할 때나 가능하거든.”


“거기는 공짜로 가르쳐 주는 거야?”


“한 달에 백령 하나씩인데, 너 돈이 없으면 내가 대 주마.”


“아니야. 한울님께서 금령을 좀 주셨어. 한 백 개쯤 되려나?”


“뭐? 그··· 금령이 백 개씩이나? 너 완전히 부자구나!”


“전에 태을 선인께서 오셨을 때 월광석(月光石)을 몇 개 주워서 가셨는데 내가 드린 걸로 하셨나 봐.”


“달처럼 빛나는 그 비싸다는 월광석 말이야? 그런 게 이 별에도 있어?”


그러자 쥬맥이 침실로 들어갔다 나오더니 옥돌 같은 것을 두 개 들고 나왔다. 어린아이 주먹만 한데 안개처럼 뿌옇고 그 속에서 잔잔한 흰 빛이 마치 달빛처럼 뿜어져 나온다.


“이거야. 밤에 책을 볼 때 참 편해. 너도 하나 가지고 가서 밤에 공부할 때 쓰고, 하나는 유리한테 전해 줘.”


“와! 정말 멋지구나. 그런데 이렇게 비싼 걸 그냥 나를 줘도 돼?”


“너는 내 친구잖아!”


“정말 고맙다. 그런데 유리는 네가 주지 왜? 오랜만에 얼굴도 좀 보고.”


“남자친구가 있다는데 내가 주면 부담스럽지 않겠어? 그러니 네가 줘.”


“알았다. 어쩔 수 없지 뭐. 그런데 소문나면 누가 우리집에 이거 훔치러 오지 않을까? 비싼 것은 줘도 겁나네.”


“그러니까 소문내지 말고 혼자만 몰래 쓰면 되잖아.”


밤이 한참 깊어서야 둘은 회포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결국은 당장 할 일이 없으니 함께 정심무관에 다니기로 했고 말이다.


수르는 밤 늦게야 집으로 돌아갔다. 처음 마신 술에 취해서 쥬맥은 정신없이 떨어져 잤지만, 수르는 집에 돌아가서 어린 녀석이 술을 마시고 다닌다고 아버지께 된통 야단을 맞았다.


그런데도 무엇이 그리 좋은 것인지 계속 히죽거리면서 기분이 아주 좋아 보였다. 야단은 귓등으로 들었고······.



다음 날 동이 트자 수르가 얼큰하고 뜨끈한 국물 한 사발과 밥 한 그릇을 들고 쥬맥을 찾아왔다.


“야, 첫 술에 속이 엄청 쓰릴 텐데 해장국 삼아서 먹어라. 우리 엄마가 네가 다 나아서 돌아왔다고 했더니 기뻐하시면서 싸 주시더라.”


“그래? 고맙다고 전해 드려라. 너는?”


“나는 먹고 왔으니까 너나 얼른 먹어. 먹고 함께 무관에 가자.”


서둘러 아침을 먹고 앞쪽 하천에 나가 세수를 한 다음 함께 집을 나섰다.


입던 옷이 편한지 가죽옷을 그대로 걸쳤다. 그런데 지나는 사람들 몇몇이 생소하다는 듯이 쥬맥을 힐끔거렸다.


“나는 이 옷이 편한데, 아무래도 이제 옷도 바꾸어 입어야 할까 봐.”


“옷가게가 여러 곳 생겼으니까 무관 끝나고 오면서 나랑 같이 가 보자.”


“옷가게도 생기고, 이제 제법 살기가 좋아졌구나. 옛날과 많이 달라졌어”


“야! 말도 마라 그동안 이종족과 싸우느라 수없이 죽어 나갔다.”



둘이서 이런저런 얘기를 두서없이 하다 보니 어느덧 무관에 도착했다.


관장은 소산이라는 사람으로 벌써 나이가 백이십 줄에 들어선 노장이다. 눈이 부리부리하면서 탄탄한 몸매에 공력이 삼 갑자 정도 되는 5단계 제신급 무사였다.


실은 쥬맥과 같은 단계였지만 쥬맥은 일 갑자 정도라고 낮춰서 등록을 했다.


동급이지만 쥬맥은 7단계인 오 갑자 전신급 경지에 올랐다가 주작의 금제 때문에 5단계로 낮춰진 것 아닌가?


그러니 아무도 쥬맥의 경지를 알아보지 못했다. 전부 쥬맥보다 하수들이니.


등록(登錄)을 마치고 나오는데 화문수라는 친구가 기분이 나쁘다는 얼굴로 쥬맥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마치 싸움이라도 한바탕 할 것처럼 허리에 차고 있는 도를 만지작거리며.


수르보다 키가 세 치 정도 커서 쥬맥과 비슷한데, 몸집이 옆으로 퍼져서 우람한 게 엄청 힘이 좋아 보였다.


“하하~ 네가 그 쥬맥이구나. 어떻게 산속에서 안 죽고 살아왔네?”


왜 거기서 죽어 버리지 않고 살아왔냐는 듯이 비꼬는 말투다. 정말 죽기를 바랬던 것처럼······.


“그래, 내가 쥬맥이다. 그런데 별로 기억에 없는데 너는 누구냐?”


“나? 화문수다. 몰라? 너 때문에 우리 아버지가 죽었잖아?”


그러면서 화가 나서 얼굴을 붉히며 머리를 들이받을 것처럼 들이댔다.


“뭐? 나 때문에 네 아버지가 죽어?”


“그래 임마! 네가 풍토병을 옮겨서 그런 거잖아? 다 너 때문이야 임마!”


“아! 그 얘기야? 그렇다면 정말 미안하다. 그건 고의가 아니었어.”


“사람을 죽이고 미안하면 다냐? 엉? 너는 나하고 대련 안 붙기를 바래라. 그날이 바로 네 제삿날이 될 거야.”


악을 쓰는 녀석과 싸울 수도 없고 난처한데, 수르가 말리면서 한쪽으로 끌고 갔다. 수르도 그 사정을 아는 까닭이다. 자기도 친구라고 당했으니까.


그러는 사이에 한 명씩 얼굴을 보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무관이 이백여 명의 관원으로 가득 차 버렸다.



무술 수련이 시작되자 관장(館長)이 쥬맥을 불러서 여러 사람 앞에 세우고 소개를 시켰다. 모두 새로 온 신입(新入)이 누구인지 궁금해서 쳐다본다.


“모두 여기 주목! 오늘 새로 들어온 신입이다. 이름은 쥬맥. 비록 늦게 입관했지만 나이는 열아홉이니 서로 존중해서 사이좋게 지내도록 해라.”


만 스무 살부터 천령대나 부족의 무사로 들어가기 때문에 모인 무관 생도들 중에는 열아홉 살이 가장 많은 나이였다.


“쥬맥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여러 선배님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짝짝짝짝!


환영한다고 박수를 치더니 어디서나 그랬던 것처럼 여기저기서 수군댄다.


“와! 저 불타는 것 같은 붉은 머리카락 좀 봐. 정말 멋진데!”


“그런데 옷차림새가 왜 저렇게 촌스러워? 옛날에나 입던 가죽옷이잖아?”


“혼자 산속에서 오래 살아서 그런가? 말소리나 발음이 좀 시원찮아.”


온갖 소리가 쥬맥의 귓가로 들려오지만 모르는 체했다. 운기조식부터 시작해서 단체 체력 훈련으로 이어졌다.


기본적인 권법부터 마보, 보법, 신법훈련 등 체력 강화 훈련이 끝나고, 점심 시간이 되어서야 휴식이 주어졌다.


“맥아! 가자.”


점심을 먹기 위해서 수르와 함께 인근 식당을 찾아가 선담밀(아리별에서 가져와 심은 밀)로 만든 면(麵)을 시켰다. 오랜만에 먹고 싶기도 했으니···.


닭 뼈를 우린 육수 국물을 시원하게 마시고 있는데···, 옆자리에 아가씨 몇 명이 들어와 앉더니 음식을 시키고 마치 참새들처럼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참을 떠들더니 갑자기 조용 해졌다. 무슨 일인가 봤더니 쥬맥을 슬쩍슬쩍 손짓하며 힐끔거렸다.


불타는 듯한 머리 색이며 가죽옷 차림새가 조금 이상한 모양이다. 그중에 한 아가씨가 수르를 알아보고 손을 흔들며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


“수르야, 오랜만이다. 그런데 누구?”


아가씨가 턱으로 쥬맥을 가리키니 수르도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을 만난 것처럼 얼굴빛이 약간 어색해졌다.


“아~ 유리구나. 음~ 여기는 바로 그 쥬맥이야. 어제 돌아왔어. 인사해라.”


“응? 쥬맥이라고? 그래, 반갑다 얘. 그런데 너는 왜 그렇게 촌스럽니?”


오랜 세월만에 만난 옛 친구에게 건네는 첫마디가 촌스럽단다! 옛정은 어디 가고 이제 체면만 남았나 보다. 그래도 일부러 자연스럽게 웃는 쥬맥.


“아~ 유리구나! 반갑다. 혼자 살다 보니 이렇네. 이제 좀 다듬어야지.”


그러자 유리가 친구들에게 창피하다는 듯이 얼굴을 붉히고 표정이 굳더니, 얼른 고개를 돌리고 외면해 버렸다.


그것을 바라본 쥬맥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었다. 이미 남자친구가 있다는 말을 수르에게 들었으니 달리 바라는 것은 없었다. 그런데······ 그런데······.


유리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그 힘든 나날 속에서도 유리에 대한 풋사랑은 큰 힘이 되었다. 언젠가 그 곁으로 돌아가리라 생각했건만······.


수르가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한 말에도 그다지 실감하지 못했건만······.


갑자기 오장(五臟)이 찢기는 듯했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운 심정은 어디 가고, 자신이 친구라는 것을 창피스럽게 여기는 유리. 그 반응에 부끄럽고 한편으론 온몸이 찢기는 듯 아파서 얼굴을 붉히며 힘없이 고개를 푹 떨구었다.


그때 유리의 옆에 앉아 있던 아가씨가 예쁜 얼굴에 눈망울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쥬맥의 머리와 얼굴이며 몸 여기저기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러더니 쥬맥에게 관심이 있는지 유리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유리야, 네 친구면 우리에게도 소개 좀 시켜 주렴. 서로 인사나 하게.”


“일곱 살 철부지 어릴 때의 친구야. 지금에 와서 친구랄 것도 없어.”


“그래도 머리칼이 마치 타오르는 불꽃처럼 너무 멋지다. 눈빛도 그렇고.”


“내가 보기엔 마치 이종족 같다. 얘, 좋으면 너나 가져라.”


“너 싫으면 내가 친구해도 되지?”


“난 멋진 남자친구 있으니까 좋으면 네 맘대로 해. 너희도 알잖아?”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너희들 모두 들었지? 두말하기 없기다?”


“하던지 말던지······. 쟤는 부모 형제도 없는 고아야. 그러니 내 남자친구하고 비교나 되겠니?”


그런 소리를 귓등으로 들으면서 둘은 서둘러 그곳을 나서고 말았다. 둘 다 표정이 굳어서 한동안 말이 없다.


쥬맥은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는지 고개를 들지 못했다. 괜히 돌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도 아닌 유리에게 저런 소리를 들으려고 왔는지···.


그렇다고 이제 와서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으아아아아~~~ 미치고 환장하겠구나!!’


쥬맥의 소리 없는 절규가 가슴을 후빈다.




감사합니다. - 설련하(偰輦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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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52화. 거인족과 반인족의 전투 21.06.29 1,357 47 18쪽
51 51화. 쥬맥이 맥쮸~ 되다 21.06.29 1,350 47 19쪽
50 50화. 구원(舊怨)과 비무 21.06.29 1,339 47 19쪽
» 49화. 재회 그리고 새로운 출발 21.06.29 1,353 48 19쪽
48 48화. 친구를 찾아서 천인족으로 21.06.29 1,350 48 18쪽
47 47화. 회상(回想) 21.06.29 1,353 48 18쪽
46 46화. 복수 준비와 떠날 준비 21.06.29 1,382 47 20쪽
45 45화. 비월족의 패전 대책 21.06.29 1,386 48 19쪽
44 44화. 주작이 준 기연(奇緣) 21.06.29 1,397 48 18쪽
43 43화. 청룡(靑龍) 출현 +1 21.06.29 1,386 48 19쪽
42 42화. 비월족의 습격(襲擊) 21.06.29 1,402 48 18쪽
41 41화. 반인족 울트의 계략 21.06.29 1,431 48 18쪽
40 40화. 또 하나의 경지를 넘다 21.06.29 1,417 48 19쪽
39 39화. 무공(武功) 수련과 첫 전투 +1 21.06.29 1,417 48 19쪽
38 38화. 친구들의 동태 21.06.29 1,412 47 19쪽
37 37화. 생사현관(生死玄關)을 뚫다 +1 21.06.29 1,443 48 20쪽
36 36화. 친구의 선물(膳物) 21.06.29 1,404 48 18쪽
35 35화. 비월족(飛月族) 금령월 21.06.29 1,421 48 18쪽
34 34화. 거인족 사절단(使節團) 21.06.29 1,419 48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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