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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련하 님의 서재입니다.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완결

설련하
그림/삽화
설련하
작품등록일 :
2021.06.28 08:42
최근연재일 :
2022.10.17 08:20
연재수 :
290 회
조회수 :
379,432
추천수 :
7,321
글자수 :
2,467,752

작성
21.06.29 13:34
조회
1,382
추천
47
글자
20쪽

46화. 복수 준비와 떠날 준비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DUMMY

한편, 야차족 마린챠와 미라챠 모녀는 점점 세를 불리며 우르고원과 우르산맥을 지나 야얼란으로 가기 위해서 챠린빙호 근처에 다다라 있었다.


지금 야차족의 최고수장(最高首長)인 야신 진신챠가 야아란에 머물고 있으니, 우선 떨어져 있으면서도 크기가 비슷한 도시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더 세를 키워서 진신챠와 대결(對決)을 벌일 생각인 것.


벌써 무리의 수는 오천여 명으로 불어났고, 그중에 남자 전사(戰士)가 이천팔백여 명, 나머지 이천이백여 명이 여자 전사들이었다.


모녀가 여자이다 보니 그 사정을 듣고 여자 전사들이 많이 따른 것이다.


야챠족은 남녀 공히 키가 팔 척에 이르는 늘씬한 몸매에 고양이 같은 탄력 적인 근육을 가지고 있어서 육박전(肉薄戰)에 매우 능했다.


그러한 조건에 마린챠와 미라챠 모녀로부터 토납술을 교육받으면서 전력이 나날이 올라가고 있었고, 전사가 되고자 합류를 원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어서 사기(士氣)도 엄청 높았다.


지금 야얼란에 들어서지도 않았는데 벌써 소문이 나서 사람들이 줄줄이 제 발로 찾아오고 있었으니······.


“이렇게만 불어나면 금방 복수를 할 수 있겠어. 기다려라 진신챠!”


마린챠는 이를 악물고 말을 내뱉었다.


사실 야차족은 결혼도 하지 않고 자유스러운 이성 관계(異性關係)에 야생에서 많이 생활하므로, 지배 체제는 갖춰져 있지만 그다지 강력하게 구속(拘束)하지는 못했다.


강자가 왕(야신)이 되는 형식이지만, 지금의 야신 진신챠는 전대 야신을 정당한 승부로 이긴 것이 아니다. 여자를 이용해서 독을 쓴 뒤에 암살을 한 것이기 때문에, 주변에서 벼르고 있는 정적(政敵)들이 많았다.


그래서 심복(心服)들을 주변에 배치하고 자신은 항상 야아란에만 머물며 예쁜 여자들에게 빠져 살았고.


오늘도 야차족이 신으로 모시는 야차신(夜叉神 날개가 달린 커다란 악마를 닮은 야차) 석상 앞에서 십여 명의 젊은 여자들과 뒹굴고 있었다.


석상의 크기는 야차족보다 세 배 정도는 큰 돌로 만든 것이었다. 자연적인 큰 동굴을 일부 다듬어서 내부를 신전처럼 차리고, 하얀색 옥(玉)으로 된 제단 위에 석상을 모셔 놓았다.


석상 아래에 있는 큰 돌화로에서는 흥분(興奮劑)과 환각 작용을 일으키는 기이한 향이 매캐한 냄새를 풍기며 안개처럼 퍼지고 있었다.


남녀 모두 시큼한 술을 마시고 취해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야릇한 환상에 취해서···.


야차족은 전신에 반 치 전후의 털이 자라기 때문에 옷을 입지 않아서, 남녀가 일을 치를 때도 성가시게 옷을 벗을 필요도 없었다.


아무데나 누워서 뒹굴면 그만이었다. 적모야차(赤毛夜叉)인 진신챠의 전신에는 붉고 매끄러운 털이 융단처럼 자라 있는데, 가랑이에는 네 치 이상의 긴 털이 수북하게 자라서 가려 주었다.


지금 정신줄을 놓고 헤롱거리는 진신챠에게 은색 털을 가진 은모야차(銀毛夜叉) 여자들이 대여섯 명이나 달라붙어서 정신없이 서로에게 이상한 짓을 벌이고 있었다. 몇 명은 술과 음식을 나르는데 그들도 대부분이 은모야챠였다.


진신챠는 유별나게 은모야차 여자에게 집착을 보였다. 손은 손대로, 발은 발대로 꼬리는 꼬리대로··· 다 다른 여자들과 장난을 치고 있다. 짐승이 아니랄까 봐 사지 육신이 아니라 오지 육신(五肢肉身)으로 말이다.


세 자 정도나 되는 길이에 끝이 둥글고 두 치 전후의 털이 붓처럼 자라난 꼬리는 뒤에서 다른 여자와 장난을 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지금도 뒤에 있는 여자에게 무슨 짓을 하는지 여자의 눈빛과 표정이 바뀌었다.


여기저기서 터지는 이상한 소리에 술과 음식을 나르는 여자들도 마음이 콩밭으로 가는 모양이었다. 들고 있는 것들을 주변으로 물리고 모두 한곳으로 달려들었다. 이성이 없는 개나 돼지처럼 말이다.


욕망을 조절할 수 있는 이성이 있어야 비로소 인간이라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지 못하면 바로 짐승 같은 짓이 되는 것이다.


진신챠는 천당을 오가는 듯한 표정으로 풀린 눈에 입을 헤벌쭉 벌리고 있으니······. 그러다가 진이 모두 빠지면 황천길로 떠나는지 모르는 모양이다.



야차족들은 삶 자체가 그러한지라, 지금 마린챠와 미라챠 모녀가 머무는 챠린빙호 근처에서도 이상한 풍경(風景)이 펼쳐지고 있었다.


원래 야차족은 달이 뜨지 않는 밤에는 넓은 벌판에 남녀노소 수천 명이 모여서 ‘암야축제(暗夜祝祭)’ 라는 것을 벌이는데, 바로 오늘이 달이 뜨지 않아서 암야축제가 벌어지는 날인 것이다.


야차족이면 누구나 참석할 수 있었고 또 그들의 문화가 그것을 당연시하였다.


달빛이 없는 챠린빙호 주변의 넓은 들판에는 곳곳에 모닥불이 뜨겁게 불타오르고, 남녀 오천여 명이 모여서 손과 꼬리를 잡은 채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술과 음식을 가져와서 나누어 먹고, 눈동자의 색깔이 노랗게 변한 성인(成人)들은 자유롭게 마음에 드는 이성과 근처의 풀밭이나 모닥불 옆에서 즐겁게 교제(?)를 했다.


어느 곳은 여럿이 뒤엉켜서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는 상태로 이상한 짓을 하는데, 분위기가 극에 달하는지 묘한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져도 누구 하나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없었다.


마린챠도 근육질의 은모야차와 근처의 풀밭에서 분위기를 즐기고 있고, 이제 성인이 된 미라챠는 경험이 적어서 인기가 많은지 여기저기로 계속 불려다니고······.


“어이 미라챠! 이리 와, 이리로!”


정신없이 불려 다니느라 입에서는 벌써 단내가 풍기는데 여기서는 그게 자랑이니 어찌할 것인가?


암야축제는 그 분위기에 사로잡혀서 모두 짝을 꿰차고 짐승 같은 욕망을 풀어 놓는 가운데, 한쪽에서는 그 분위기에 편승하여 단체(團體)로 부끄러운 짓들을 저지르는 것도 서슴치 않았다.


야차족이 아직 야만의 상태이니 어쩔 수 없다지만, 만약 천인족이 이를 본다면 민망하여 고개를 들지 못할 짓이었다.


마린챠는 사실 권력에는 욕심이 없었다. 진신챠가 전 야신을 죽이고 그의 애첩이었던 자신을 취하려고 하다가 잘 안되자 두 모녀를 죽이려고 했기 때문에 복수(復讐)만을 생각할 뿐이지...


개인이 강하다는 것과 권력을 가지고 종족을 통치(統治)를 한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복수를 끝낸 뒤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야얼란으로 가는 이유(理由)가 세력을 불리기 위한 것도 있지만, 복수가 끝난 뒤에 야신(夜神)으로 내세워서 자신들을 돌봐 줄 남자를 찾기 위한 것도 있었다.


그동안 토납술을 가르친 자신의 부하들은 일반 야차족 병사들을 혼자서 서너 명쯤 너끈히 해치울 만큼 강해졌다.


그러니 이제 야얼란에 들어가서 지지층을 더 결집하면 진신챠를 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고 말이다.


그래서 내일은 부하들을 이끌고 야얼란에 입성(入城)하기로 했다. 광란의 암야축제가 끝나고 오랜만에 몸을 푸니 전신이 나른하고 기분도 좋았다.


마린챠는 하늘의 수많은 별과 챠린빙호에 어리는 은하수를 바라보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고, 미라챠는 오늘 너무 무리를 하였는지 벌써 지쳐 떨어져서 세상 모르고 잠이 들었다.


“누구를 나의 기반으로 삼을 것인가?”


아직 기댈 사람을 찾지 못한 마린챠의 마음을 아는지 밤은 길기만 하다.


드디어 아침이 밝아오자 챠린빙호도 동녘의 노을빛을 받아 붉게 물들고, 붉은 태양은 새로운 하루를 알리듯 우르산맥 위로 힘차게 솟아올랐다.


마린챠는 부하들을 군대처럼 조직(組織)해서 대장과 부대장을 정해 주고, 모두 너른 들판에 정렬시켜서 전력(戰力)을 점검하였다.


“모두 앞뒤와 좌우의 열을 맞춰라!”


“자세를 바로 하고 턱을 당겨!”


이제 출발하면 야얼란에 입성하는데 그곳의 힘 있는 사람들에게 얕보이면 안 되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어떻게든 기댈 사람을 찾아야 한다.


모두 무기들을 손질하게 하고 장비도 제대로 갖추게 하여 오백 명 단위로 깃발을 세웠다.


즉 일 개 대를 이루는 것이다. 머리에 대(隊)별로 각각 다른 띠를 두르게 하니 그런대로 형식이 갖춰진 듯했다.


조장급 이상은 반인족 마을을 지나오면서 약탈한 오백 마리의 시리낙타에 올라타니 그 모양새가 제법 그럴싸했다.


마린챠와 미라챠가 가장 큰 시리낙타를 타고 앞장서서 진군했고, 부대별로 줄지어서 그 뒤를 따라 출발했다.


“1대부터 출발하라!”


“1대 출발!”


“2대 출발! ······출발!”


뱀처럼 긴 띠를 이루며 서서히 벌판을 가로질러 야얼란에 다가서자 야차족이 여기저기 모여서 구경을 했다. 이미 소문이 퍼졌는지 근처의 야얼 두 명도 야얼란 입구까지 마중을 나왔고.


지금의 야신 진신챠에게 반발하고 있는 세력이라 적의 적은 바로 아군인 것이다.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마린챠가 전대 야신을 모시면서 야얼들에게 잘했기 때문에 고마움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멀리서 질서 정연하게 행군해 오는 마린챠 부대를 바라보며 그들은 이제 때가 무르익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서로 다가오는 부대를 향하여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도 하면서 기분이 좋은지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또 마음속에는 마린챠를 차지하여 저 힘을 자신의 것으로 하겠다는 야심(野心)도 품으면서 말이다.


‘흐흐흐! 나라고 야신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저 마린챠만 품에 넣으면, 안 되면 미라챠도 좋고······.’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린챠는 부대를 이끌고 점점 가까이 다가섰다.


이제 마린챠 모녀의 복수는 과연 이루어질 것인가?


* * * * *


쥬맥은 이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세 달 뒤에 주작 신수가 와서 동굴을 결계로 봉한다고 했으니, 그 전에 필요한 것들을 챙기고 무공 연습(武功練習)도 해야 했다.


비록 남루한 가죽옷을 입고 있지만 태(胎)를 벗은 전신은 흉터 하나 없이 백옥(白玉)처럼 매끈하였고, 근육이 전신에 멋지게 자리하였다.


우뚝한 코에 야무진 눈에는 번갯불 같은 정기가 넘쳐 흐르고, 짙은 눈썹에 굳게 다문 입술 등 얼굴 전체적으로 다부지고 강인한 이미지가 풍겼다.


길게 자라 뒤로 묶은 머리는 주작의 화정(火晶)을 삼킨 뒤로 검은색에서 붉은색으로 변했다. 마치 힘차게 타오르는 불꽃 같은 색으로······.


혹시 나중에 필요할지 모르니 월광석을 큰 가죽 부대에 가득 주워서 처음에 버려졌던 커다란 바위 밑에 묻었다.


그리고 자오음양지(子午陰陽芝)도 따다가 그늘에서 수분이 남지 않게 완전히 말렸다. 뱀장어 같은 물고기도 매일 잡아다가 햇볕에 말리고.


‘결계로 봉해 버리면 드나들 수 없으니 필요한 것은 있을 때 챙겨야지.’


각각을 커다란 가죽 부대에 넣은 뒤, 월광석(月光石)을 묻은 바위 아래에 비가 들치지 않도록 위 방향으로 커다란 구멍을 뚫고 넣은 다음, 큰 돌로 구멍을 막아 놓았다.


검강(劍罡)이 맺힌 검으로 운기를 하면서 돌에 구멍을 뚫고 다듬는 것은 이제 그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헤어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점박이와 별이에게도 매일 여러 마리의 뱀장어 같은 물고기를 잡아다가 먹이니 변화가 전보다 훨씬 더 빨라졌다.


눈처럼 빛나는 멋진 외모와 더불어 눈에서는 정기가 느껴지고 함부로 할 수 없는 위엄이 묻어났다.


이제는 쥬맥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두 알아들었고, 일부는 의사 표시도 확실하게 했다.


이제 헤어질 날이 멀지 않았음을 서로 느끼는지 세 친구는 하루에도 많은 시간을 수련(修鍊)과 더불어 함께 뛰어 놀고 어울리며 보냈다.


별이는 이제 덩치가 커져 노송(老松)에서 지낼 수 없기 때문에 근처에 커다란 동굴을 찾아 주거지로 삼았다.


그래서 쥬맥이 점박이와 함께 동굴을 찾아가서 조류가 살기 편하게 동굴을 조금 다듬어 주기로 했다.


별이는 날아다니는 새라서 들어가는 동굴의 입구(入口)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동굴을 드나들 때 날개가 다치지 않도록 검강이 맺힌 검으로 입구의 돌을 다듬어서 넓은 자리를 만들어 주니 별이가 무척 좋아했다.


“꾸룩 꾸꾸꾸(와~ 편하겠다.)”


“주작 신수가 올 때까지만 살아.”


오늘도 무공 연습에 친구들과 어울리기로 하루를 보낸 쥬맥은, 달이 밝은 밤이라 동굴 앞 넓은 바위에 걸터앉아서 대협곡을 바라보았다.


이제 이곳을 떠나 천인족의 주거지로 돌아갈 날도 채 열흘이 남지 않았다.


친구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수르와 유리는 어떻게 변했을까? 유리는 그때처럼 귀엽고 예쁠까?


친구들을 생각하다가 천인족의 주거지에서 보내던 어린 시절의 추억(追憶)들이 생각나서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비록 부모 형제를 잃고 병에 걸려 고통스러운 시간도 많았지만, 지나간 시간은 항상 행복(幸福)하고 아름답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순간들까지도 모두 미화되어서···.


그래서 지난 추억은 항상 아름다운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는 고향처럼 말이다.


달빛 아래서 대협곡을 바라보며 추억에 잠기는데 그때의 기억들이 손에 잡힐 듯이 다가온다. 친구들의 얼굴도.


“······.”


그날 밤도 오늘처럼 달이 휘영청 밝은 밤이었다.


수르와 유리를 포함하여 아홉 명의 아이들이 주거지를 가로지르는 하천의 다리를 건너서 들판 가운데에 있는 정자(亭子)로 놀러를 갔다.


어른들이 근처의 농경지에서 일하다가 힘들면 잠시 쉬거나 새참을 먹는 장소라서, 여섯 개의 나무 기둥에 바닥에는 판자로 마루가 깔린 곳으로.


그 옆에는 천 년을 넘게 자란 커다란 귀목(귀몽)나무가 서 있었고 뒤에는 대나무와 활엽수가 무성하게 자란 곳이었다.


그리고 비와 햇볕을 가릴 지붕만 얹어서 사방이 훤히 다 보이는 곳.


정자는 무더운 여름밤에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곳이라 무더울 때 잠자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쥬맥을 포함하여 남자아이 여섯에 여자아이 셋은 나란히 누워서 재잘거리다가 그곳에서 깊이 잠이 들어 버렸다.


밤이 깊어 삼경이 지났는데(1시경), 유난히 장난이 심한 개구쟁이 한 녀석이 쌀쌀한 바람에 눈을 뜨고 일어났다. 주변을 살펴보니 친구들 여덟 명이 나란히 누워서 세상 모르고 자고 있었다.


이 녀석은 심심해서 남자친구와 여자친구들 가랑이를 가지고 장난을 치다가, 번개처럼 기막힌 생각이 떠올랐다.


평소에 수르와 유리랑 잘 어울려 노는 쥬맥 녀석을 이참에 좀 놀려 주고 싶은 것. 자기도 유리를 좋아하는데 유리는 쥬맥만 좋아하고 자기와는 어울려 주지 않아서 심통이 난 것이다.


그래서 쥬맥만 빼고 다른 친구들을 모두 깨우면서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쉬! 쉬!’ 하면서 조용히 하라고 했다.


모두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깨어나 미처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데, 그 녀석이 쥬맥은 깨우지 않고 그의 아랫바지만 살그머니 벗기는 것이 아닌가?


친구들은 뭐하나 하고 바라보는데, 홀랑 벗긴 아랫도리에서 작은 고추가 달랑거리니 이 녀석이 친구들도 보라는 듯이 그걸 가지고 장난을 쳤다.


여자애들은 부끄러워서 손으로 눈을 가리는데 왜 손가락 사이를 벌려서 볼 건 다 보는지 모르겠다.


유리도 쥬맥과 새끼손가락을 걸고 커서는 신랑 각시 하자고 약속했건만, 그 물건이 어떻게 생겼나 하는 호기심(好奇心)에 얼굴을 붉히면서 손가락 사이로 훔쳐보고 있었고 말이다.


수르는 잠이 덜 깨서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멍하니 앉아 있었다.


개구쟁이 녀석이 조심히 일어서더니 손가락을 입에 대고 ‘쉿!’ 하면서 모두들 조용히 따라오라고 손짓을 했다.


그러자 친구들은 개구쟁이를 따라 슬그머니 일어서서 나가더니 쥬맥만 남기고 모두 주거지로 돌아가고 말았다. 재미있다는 듯이 서로를 쳐다보며 키득거리면서······.


밤 사경 중반(2시반경)에 쥬맥은 아랫도리가 서늘하고 한기(寒氣)가 들어서 뒤척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정자에 함께 온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가 버리고 달빛 아래 혼자서 덩그러니 자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정신이 조금 들자 갑자기 소름이 오싹 끼치면서 무서움이 밀려왔다. 그때 밤바람이 불면서 대나무 가지와 잎이 서로 부딪치며 이상한 소리가 났다.


사그락~ 사그락~


그 소리는 마치 어떤 짐승이 살며시 나뭇잎을 밟고 다가오는 것 같았다. 어떤 새는 알을 품고 있는지 이 늦은 시간에도 소리 높여 울고 있었고······.


“꾸꾹꾸꾸~ 꾸꾹꾸꾸~”


그 울음소리가 마치 무서운 짐승이 위협을 하기 위해서 우는 소리처럼 들리고, 여기저기 풀벌레는 제철을 만난 듯이 신나게 화음을 맞추고 있었다.


쥬맥은 갑자기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온몸이 으스스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힘이 쭉 빠진다.


‘빨리 주거지로 돌아가야 해. 내가 왜 혼자 있는 거지? 아유~ 무서워!’


일어나서 가죽신을 신고 돌아가려고 하는데···, 아랫도리의 옷이 어디로 갔는지 맨몸이 아닌가?


여기저기를 살펴보아도 옷이 보이지 않았다. 무서워서 더 이상 찾을 여유도 없고. 결국 신발만 신고 달빛 아래서 주거지를 향해 힘껏 내달렸다.


그런데 아까부터 누군가 계속 자기를 따라서 뛰고 있었다. 무서워서 뒤돌아보니 시커먼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깜짝 놀라서 뒤로 넘어지자 그림자도 없어진다. 자신의 그림자를 괴물이 쫓아오는 줄로 알고 놀란 것인데······.


겨우 안심을 하고 다시 내달리기 시작하니 이번에는 ‘탁탁탁!’ 하고 다른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또 놀라서 멈추어 뒤돌아보면 아무도 없고 말이다.


뛰면 들리고, 멈추면 따라서 멈추고···, 꼭 귀신이 따라오는 것만 같았다.


쥬맥은 그렇게 자기 발자국 소리에 놀라서, 달밤에 아랫도리를 벗은 몸으로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달렸다. 겨우 주거지로 돌아오자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고 말았다.


다음 날 아침에는 옷을 잃어버렸다고 신녀들께 혼이 났다. 다시 새 옷을 받아서 입고 수련장으로 가니, 개구쟁이 녀석이 어젯밤 일을 치른 친구들과 함께 입구에서 쥬맥을 기다리고 있었다.


쥬맥은 부모가 없으니 바지를 잃어버리고 맨몸으로 오지 않을까 해서 모두를 부추겨 구경을 나온 것일 터.


그런데 촐랑촐랑 오는 것을 보니 새 옷을 차려입고 기분 좋게 오고 있었다. 아니, 저 바지는 어디서 났지?


“야, 쥬맥! 네 바지는 여기에 있는데 지금 입고 있는 바지는 어디서 났어?”


친구들을 둘러보니 모두 어젯밤 일을 생각하는지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킥킥거리고 있었다. 아니, 이놈들이?


모두 밉지만 친했던 수르와 유리도 우정을 저버렸다고 생각하니 무척 야속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어젯밤의 일을 생각할수록 더욱 화가 솟구친다.


“야! 네가 내 바지를 벗겼지? 이 나쁜 놈아! 어디 한번 혼나 봐라.”


분을 참지 못한 쥬맥이 얄미운 친구에게 덤벼들었다. 둘은 서로를 붙들고 치고받으며 흙바닥을 뒹굴었고······.


새 바지를 입고 좋아라 했건만 둘이 엉겨 붙어서 땅바닥을 뒹굴자 옷은 금방 흙칠이 되고 말았다.


또 신녀님께 야단을 맞은 뒤에 둘이 나란히 손을 들고 뒤에서 벌을 서야했다. 입으로는 계속 들리지 않게 ‘너 죽어!’를 연발하면서······.


그 이후로 이 개구쟁이 녀석은 그날 밤의 장난을 대단한 무용담(武勇談)처럼 떠벌리고 다녔다. 그래서 친구들은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그 때문에 쥬맥의 사건은 한동안 친구들의 대화에 양념처럼 끼어들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그렇게 분하고 억울했던 일이, 지금 생각하면 아름다운 추억으로 떠오르니 참으로 묘한 일이다. 우리네 삶이란 그런 것일까?

46화 마린챠 모녀의 위치 지도.png

46화 마린챠 모녀의 위치 지도




감사합니다. - 설련하(偰輦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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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2화. 태을 선인과의 조우 21.06.29 1,422 48 18쪽
31 31화. 선인(仙人)의 연신기 21.06.29 1,438 50 19쪽
30 30화. 자식을 잘못 가르친 죄 21.06.29 1,431 46 38쪽
29 29화. 복수는 또 다른 피를 부른다 21.06.29 1,413 49 18쪽
28 28화. 적소인의 복수전(復讐戰) +1 21.06.29 1,455 50 18쪽
27 27화. 새 친구 미라챠 +1 21.06.29 1,449 49 18쪽
26 26화. 야차족과의 조우 +1 21.06.29 1,435 49 18쪽
25 25화. 소인족 포로들 +1 21.06.29 1,453 49 18쪽
24 24화. 정보전(情報戰) +1 21.06.29 1,498 49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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