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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남 님의 서재입니다.

아보미나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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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김영남
작품등록일 :
2016.04.16 23:31
최근연재일 :
2017.03.19 01:53
연재수 :
115 회
조회수 :
43,810
추천수 :
528
글자수 :
687,446

작성
16.07.13 00:10
조회
515
추천
5
글자
12쪽

저녁 -69

DUMMY

모든 걸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다 잘됐잖은가. 남자 덕분에 성당 제정상태도 앞으로 좋아질 테다. 오랜만에 장 신부님께서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다. 청이도 행복해 보였다. 그래, 그거면 됐다. 동진은 문득 손등을 내려다봤다. 양 손등이 새빨갛게 부어올라 있다. 좀 지나면 괜찮은데, 통증이 갈수록 심해진다. 내일 날이 밝으면 병원에라도 가봐야 할 듯싶다.


문득 전화벨이 울린다. 동진은 핸드폰을 꺼내 상대가 최 교수임을 확인했다.


“교수님, 그러잖아도 전화하려고 했습니다.”


‘무슨 일인데?’


수화기 너머로 최 교수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온다.


“연수가 살아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김봉수 형사님이 전해준 서류에······.”


‘그깟 일로 전화를 했나? 걔가 살아있든 말든 무슨 상관인가. 자네는 자네 일이나 열심히 하게.’


“예?”


‘자네는 언제까지 그렇게 노숙자처럼 살 건가? 방금 성당에서 청이를 만났다며?’


“아. 네······.”


동진은 자신도 모르게 말꼬리를 흐렸다. 수화기 너머로 최 교수의 화난 목소리가 들려온다.


‘청이가 그러더구먼. 거지처럼 살지 말고 좀 제대로 된 일이나 구하라고 말일세. 그 말을 듣고 내가 얼마나 창피스러웠는지 원, 쯧.’


“청이 가요?”


‘그래. 나한테 부탁도 했어. 대학에 일거리 있으면 자네를 쓰라고 말이야. 이제 막노동판은 때려치우게. 자네가 다닐 직장은 내가 직접 알아볼 테니까, 그리 알고.’


“직장을 알아보신다고요? 그럴 필요까지는······.”


최 교수가 직접 직장을 알아본단다.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져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도대체가 한두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내가 왜 이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하나?’


“죄송합니다. 그런데 직장은 제가······.”


‘그만 끊지. 늦게까지 싸돌아다니지 말고. 집에나 일찍 들어가게!’


전화는 이미 끊어져 있다. 동진은 핸드폰을 내려다보다가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청이가 앓고 있는 병의 치료법을 이제야 알아냈다고 생각했는데, 최 교수는 엉뚱한 소리만 해댄다. 물론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는 건 중요하다. 그렇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잖은가.


동진은 고개를 숙인 채, 어두운 골목길을 걸었다. 왠지 조금 서운하다. 최 교수의 충고는 맞는 말이다. 청이가 한 말 역시 새겨들을 필요성이 있고 말이다. 그렇지만, 가슴 한편은 먹먹하고 답답하다.


“야, 너 돈 있냐?”


골목 한쪽에 사람이 앉아 있다. 20대쯤으로 보이는 청년인데, 빙글빙글 웃고 있다. 동진은 미간을 좁히며 청년을 바라봤다.


“돈 있냐고 이 새끼야.”


“......”


“그지 같은 새끼. 없으면 꺼져.”


녀석의 외침에 동진은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지갑에 돈이 없는지 어떻게 알았을까? 이제 달랑 동전 몇 개만 남았다. 그 돈으로 저녁을 해결해야 하는데, 딱히 저녁거리가 생각나지 않는다. 동진은 청년을 뒤로하고 뚜벅뚜벅 걸어갔다.


“패배자새끼. 저런 놈들이 범죄나 저지르고 다니지.”


청년의 외침이 들린다. 동진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줬다. 손에 힘이 가해지자, 손등의 고통도 그만큼 심해진다. 결국 말아 쥔 주먹을 풀고 말았다.


“왜? 힘 좀 쓰냐? 패배자새끼!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하냐?”


동진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고 이내 골목을 빠져 나왔다. 오늘 하루는 너무 길다. 어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좀 더 걸어야했다.


순간, 또 전화가 온다. 이번에는 장 신부님 전화였다.


‘동진아! 너 지갑 가져갔냐?’


대뜸 신부님이 지갑을 가져갔냐고 묻는다. 동진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갑이요? 무슨 지갑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잠깐만.’


신부님이 잠시 누군가를 바꿔준다. 청이의 애인이라던 남자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쩌렁하게 울린다.


‘야 이 도둑놈새끼야! 내 지갑 빨리 안 가져와?’


말문이 턱 막힌다. 지갑을 가져오라니, 훔치지도 않은 지갑을 어떻게 가져온단 말인가.


‘네가 가져간 거 다 알아. 좋은 말로 할 때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놔라.’


남자의 오해보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청이의 음성이 가슴을 후벼 판다.


‘동진 씨 그런 사람으로 안 봤는데, 아주 못된 사람이네요.’


‘말도 마. 내가 말리지 않았으면, 사고나 치고 다녔을 놈이야. 할 줄 아는 건 힘쓰는 일밖에 없는 놈인데, 그마저도 없으면 나가 죽어야지.’


뒷말은 장 신부님의 목소리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 가슴 속에서 무언가 끓어오르지만, 참았다. 아니, 참아내야 했다. 여기서 화를 내봐야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렇지만, 핸드폰을 더는 들고 있을 수가 없다. 핸드폰에서 연신 벨이 울린다. 신부님과 청이의 전화번호가 번갈아 찍힌다. 동진은 핸드폰을 꺼버린 후, 살며시 잠바 안주머니에 넣었다. 깊게 심호흡을 해 본다.


드디어 집 앞에 도착했다. 이제 더 이상 아무생각 않고 누워 자고 싶다. 그런데 웬 노인이 대문 앞을 가로막고 섰다. 흰 옷을 걸쳤는데, 한복도 아니고 난생처음 보는 복식이다. 동진은 노인 앞으로 다가갔다.


“어르신 좀 지나가겠습니다.”


노인은 별반 말을 하지 않고 이쪽을 올려다본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주름이 가득한 얼굴, 그 사이로 검에 빛나는 눈동자가 있다. 더불어 손등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심해진다.


‘난 이해가 안 가는군.’


노인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동진은 서늘한 시선으로 노인을 응시했다. 그러자 노인이 쓴웃음을 짓는다.


‘언제부터 알았나?’


동진은 천천히 답했다.


“청이를 만나고 나서부터.”


‘그래? 의외로군. 그 여자를 그리 믿고 있었나? 원래 여자란 동물은 믿음직스럽지 못한 건데.’


노인이 피식 미소를 짓는다. 잔인하고 살 떨리는 비웃음이다.


‘자네 여자 경험이 없구먼. 그래서 그런 거였어.’


“여자가 믿음직하지 않다고? 그대가 오히려 여자경험이 없는 것 같군.”


‘크크큭, 말이 그렇게 되나?’


노인은 고개를 들어 이쪽을 쳐다봤다. 웃고 있지만, 눈은 웃지 않는다. 미소로 입 꼬리가 올라갔지만, 섬뜩함이 묻어난다.


‘자네처럼 믿음이 없는 사람은, 사실 대하기가 힘들어. 모든 일을 의심하고 불신하지. 그래서 그런가? 이 세상이 가짜라고 믿었어? 진짜가 아니라고 느껴졌나?’


노인은 서서히 다가왔다. 감히 대적할 수 없는 압박감이 느껴진다. 전날 살의로 가득한 세계에 떨어질 때도 지금과 같은 압박을 느꼈었다.


‘화가 많이 났을 텐데? 그것도 가짜였나? 이제 보니 자네는 거짓된 삶을 살아왔군. 마음과 다르게 행동하고 있어. 마치 패배자처럼 말이야. 마음이 가는대로 행동해야, 그게 진짜 삶인데.’


천천히 무릎이 꺾인다. 동진은 이를 악물고 저항했지만, 노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력은 점점 거세진다.


‘그렇지만, 그도 곧 바뀔 거야. 내가 진짜 삶을 살게 해주지. 마음가는대로 행동하는 삶 말일세. 누군가를 패고 싶으면 패도 돼. 죽이고 싶으면 죽여. 아까 그렇고 싶었잖아? 다 죽여 버리고 싶었잖아. 그런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지? 네 안에 있는 그 비루한 믿음 때문인가? 신은 없다며? 네 잘난 어미와 계집이 죽어나갈 때, 그렇게 믿기로 했잖아?’


동진은 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꽉 다문 이빨 사이로 피가 흘러내린다. 그런데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하다.


“아까 내게 물었지. 언제 알았냐고. 그럼 어떻게 알았는지도 알려줄까?”


노인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검게 타오르는 눈동자가 호기심으로 가득하다. 동진은 잠바 주머니로 손을 우겨 넣었다. 주머니 안에 있던 군용 칼끝이 손끝을 파고든다. 날카로운 고통이 손을 후벼 파지만, 오히려 웃음이 나온다.


“지옥에 가서 알아봐!”


주머니에서 손을 뺀 동진은 번개같이 노인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주먹을 얻어맞은 노인이 괴성을 지르며 뒤로 물러난다. 노인의 얼굴에는 손끝 상처에서 흐른 피가 묻어 있다.


‘크아악!’


날카로운 비명소리와 함께 세상이 깨져버린다. 유리파편처럼 무너져 내리는 배경, 그 사이로 연수가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녀석은 양손으로 머리를 싸쥐며 비명을 질러댔다. 다시 하늘신교 예배당으로 돌아온 것이다. 동진은 주머니에서 군용 칼을 꺼내들었다. 비명을 지르던 녀석이 이번에는 큭큭거리며 웃는다.


“그걸로 날 죽일 순 없어. 난 이미 죽었으니까.”


“그런가?”


동진은 칼로 손바닥에 상처를 냈다. 새빨간 피가 칼날을 물들인다. 피가 뚝뚝 떨어져 내리는 칼날을 본 녀석이 뒷걸음질을 친다. 유리알처럼 투명했던 검은 눈동자에 처음으로 감정이 생겨난다. 녀석이 괴성을 지르며 물러난다.


“누구야? 누가 너에게 그런 힘을 준거야!”


“네 정체는 뭐지? 아까 그 노인하고 무슨 관계야?”


그의 외침에, 녀석이 실실 웃음을 흘린다. 왕창 일그러져있는 얼굴이 검게 물들어간다.


“알아서 뭐하게? 너희는 끝났어. 이미 끝났다고!”


“뭐가 끝났다는 거지?”


녀석의 눈동자에는 커다란 두려움이 내재돼 있다.


“죽어도 죽은 게 아니야. 너희는 영원히 고통 받을 테니까.”


‘털썩’


녀석의 몸이 바닥에 쓰러져 버린다. 동진은 급히 연수의 몸을 살폈다. 이미 호흡이 멈춰버렸고, 심장도 뛰지 않는다. 동진은 한숨을 내쉬며 뒤를 돌아봤다. 나비넥타이를 맨 남자와 홍 씨라는 사람, 다른 남학생들이 바닥에 쓰러져 있다. 가슴이 오르내리는 것을 보니 죽은 건 아니다.


더 이상 이곳에 머물고 싶지 않다. 동진은 재빨리 예배당을 나서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점점 숨이 차오르지만, 멈추지 않았다. 건물을 빠져나오고 한참을 달린 후에야 뜀박질을 그쳤다. 문득 손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진다. 바닥으로 뚝뚝 피가 떨어지는데, 아까 칼을 너무 깊게 찔렀나보다.


동진은 근처 상가 의자에 앉아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상처를 손수건을 감싸보지만, 금세 피가 배어나와 수건을 빨갛게 물들인다.


“어머나! 괜찮으세요? 이를 어째.”


바로 옆 약국에서 뭔가를 들고 나오던 약사 아주머니가 상처를 발견하고 깜짝 놀란다.


“잠깐만 기다려보세요.”


약사 아주머니는 바닥에 떨어진 핏방울과 손의 상처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이내 약국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아주머니는 손에 붕대와 약을 가지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괜찮습니다. 아주머니. 별일 아니에요.”


“괜찮긴 뭘 괜찮아요? 이렇게 상처가 심한데.”


약사 아주머니는 손수 붕대를 감아주신다. 그 손길이 무척 따스하게 느껴졌다.


“이건 약을 발라도 안 되고 꿰매야 하니까, 빨리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동진은 지갑에서 만 원짜리를 꺼내 아주머니께 내밀었다. 그렇지만, 아주머니는 돈을 받지 않았다.


“나중에 필요한 약 있으면, 우리 약국에서 사세요. 그거면 되요. 얼른 병원에 가시라니까요.”


아주머니가 등을 떠민다. 동진은 반 강제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아주머니께 고개를 숙였다. 아주머니는 꼭 병원에 가라며 당부를 하시고, 이내 약국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동진은 약국을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게 성호를 그었다. 아주머니께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오직 기도하는 일 뿐이었다. 갑자기 쓴웃음이 나온다. 신학교 시절, 하루에도 수없이 그었던 성호다. 그러고 보니 거의 10년 만에 성호를 그어본다.


동진은 다시금 뒤를 돌아봤다. 멀리 상가 건물이 보인다. 낡고 허름한 상가 건물 유리창 사이로 하늘신교란 글자가 선명하다.


‘이번은 정말 버티기 힘들었어.’


터덜터덜 걸음을 옮겨 본다. 아름다운 야경이 빛나는 도시의 밤거리, 오늘은 왠지 푸근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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