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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남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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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김영남
작품등록일 :
2016.04.16 23:31
최근연재일 :
2017.03.19 01:53
연재수 :
1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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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802
추천수 :
528
글자수 :
687,446

작성
16.07.09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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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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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3쪽

저녁 -66

DUMMY

[오후 23시 10분, 성당 교육관]


새벽이 가까워온다. 한참동안 서류를 뒤적이던 김무영 과장은 정리한 용지를 건넸다. 소년뿐만 아니라, 20대 여성과 30대 남성 등 케이스 별로 가족관계가 자세하게 분류되어있다. 신부님은 핸드폰을 꺼내들다 말고 쓴웃음을 짓는다.


“너무 많군. 팩스로 보내는 게 좋겠어.”


장 신부님은 용지를 들고 팩스기 쪽으로 다가가다 슬쩍 이쪽을 돌아다봤다.


“그건 그렇고, 속이 좀 출출한데?”



요즘 같은 세상에는, 밤늦게까지 하는 식당을 찾기가 만만치 않다. 저녁 12시가 가까워지지만, 예전 같았으면 그렇게 늦은 시각이라 여겨지지도 않았을 게다. 그런데 거리는 무척이나 썰렁했다. 지나는 사람을 아예 찾아 볼 수조차 없다. 다행히 사거리에 있는 분식점이 문을 열었다. 분식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경찰관 몇 명이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인근에 순찰을 나왔다가 잠시 들렸나보다.


일행은 경찰 바로 옆 탁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경찰아저씨는 제법 나이가 들어 보였는데, 그 만큼 계급도 높아 보인다.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람 어깨에 무궁화 하나가 떡하니 올라가 있는데, 파출소장이나 순찰 팀장쯤으로 여겨진다. 동진은 주문한 라면이 나오길 기다리면서 TV를 시청했다.


오늘 뉴스도 범죄 사건들뿐이다. 뉴스 후반부에는 날씨이야기도 나오는데, 어떤 지방에서는 핏빛 비가 내렸단다. 공해로 오염된 비가 내린 것으로 보이는데, 자세한 건 나오지 않는다.


“일부러 많이 끓였습니다. 천천히 드세요.”


푸근한 인상의 아주머니가 쟁반 한가득 라면을 끓여와 경찰아저씨들이 앉아 있는 탁자에 내려놓는다. 경위 계급장을 단 반백의 아저씨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짓는다.


“아이고, 그럴 새 없습니다. 빨리 먹고 일어나야지요.”


경찰관들이 차려진 라면을 허겁지겁 먹어댄다. 개중에는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청년도 있었는데, 무척 배가 고팠나보다. 장 신부님이 경찰관들에게 말을 건다.


“요즘 많이 힘들지요?”


신부님의 격려에 경위 계급장을 단 아저씨가 환한 미소를 짓는다.


“신부님 아니십니까.”


“허, 어찌 알고 한눈에 알아보십니다?”


장 신부님이 짐짓 놀랍다는 표정을 짓자, 아저씨가 자신의 목 쪽을 가리킨다. 동진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오직 가톨릭 사제만 목에 찰 수 있는 로만 칼라(Roman Collar, 목에 차는 원형의 흰 띠, 가톨릭 사제의 상징이다)를 경찰아저씨가 알아봤나보다.


“제가 마누라와 함께 성당에 다니는지라 알아봤지요.”


“그런데 요즘 그렇게 일이 많습니까?”


신부님의 물음에 경찰관이 크게 한숨을 내쉰다.


“지금까지 굶고 이게 저녁입니다. 하루 종일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없어요.”


“다 세상이 흉흉한 탓 아니겠습니까?”


김무영 과장이 경찰관의 말을 받는다.


“흉흉해도 이건 정도가 심했어요. 정신없이 바쁜 거야 늘 그런 거니 참겠는데, 갈수록 이 짓도 못해먹겠다고 그만두는 사람이 널렸어요.”


각종 사건들이 늘어날수록 경찰과 공무원들의 업무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중에서도 경찰관들과 소방관들의 업무량은 가히 살인적이기까지 했다. 게다가 각종 위험에 노출돼있고, 더불어 피해자들의 원성도 자자했다. 확실하게 범인을 잡아들이지 못하니, 민원이 끊이질 않았고, 일주일이 넘게 집에 들어가지 못한 경찰관들이 대부분이란다.


고된 업무와 항의전화가 빗발치는 경찰서에 하루 종일 앉아 있는 경찰관들은 우울증을 호소한단다. 결국 하루가 멀다 하고 그만두는 경찰관들이 속출하고 있었다. 말을 듣고 있던 신부님은 답답하다는 듯 물을 들이켰다.


“그래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 아닙니까. 힘을 내세요.”


신부님의 응원에도 경찰관들은 너도나도 한숨을 내쉰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평생 해온 일이라 겨우 버티고는 있는데, 그렇게 쉽지가 않아요. 어떨 때는 왜 이러고 사나 싶기도 하고.”


경찰관들의 어깨가 축 늘어져 있다. 동진은 라면을 먹으면서도 입맛이 썼다. 소주나 한잔 들이켰으면 하는데, 아무래도 다음 기회로 미뤄야 할 듯싶다. 주섬주섬 물건들을 챙기고 일어나는 경찰관들의 뒷모습을 보며, 술이나 퍼 마시고 있기가 미안해진다.



[10월 1일, 오전 10시 10분, 성당]


벌써 10월이다. 달이 바뀌어서 그런지 몰라도 바람이 제법 차다. 잠바 옷깃을 여미지 않으면 목덜미가 시릴 정도다. 동진은 아침 일찍 성당으로 향했다. 교육관으로 들어가 장 신부님께 전화를 거니 바로 앞이란다. 밖에서 차가 멈춰서는 소리가 들리고 신부님이 최문수 교수와 함께 안으로 들어선다.


“오늘 왜 이렇게 추워? 커피 없나?”


최 교수가 양복 깃을 죄며 한소리 해댄다. 동진은 자판기 쪽으로 다가가 커피 세 잔을 뽑았다. 따뜻한 커피 잔을 받아든 최 교수가 의자에 앉아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보일러 좀 켜. 왜 이렇게 싸늘해?”


“아직 보일러 킬 정도는 아닐세. 그리고 성당 재정 상태가 말이 아니라 그럴 여력도 없어.”


신부님이 쓴웃음을 지으며 의자에 등을 기댄다. 최 교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가방에서 서류 몇 장을 꺼내들었다.


“봉수가 전해주래. 어제 부탁한 자료라더군.”


최 교수가 서류를 건네자, 동진은 주의 깊게 글을 읽어갔다. 서류는 짤막짤막한 단어로만 구성되어 있다. 내용도 뒤죽박죽인데 정리할 시간이 없었나보다. 그래도 김봉수 형사 입장에서는 크게 노력한 것일 게다.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부탁을 들어주니 고맙기만 하다.


“그런데 그게 뭐야? 중요한 일인가?”


최 교수가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있다. 동진은 서류 다음 장을 넘겨보다 미간을 좁혔다.


“암에 걸린 소년은 일주일 전에 죽었군요. 어머니와 아버지가 행방불명 상태고, 집주인 역시 마찬가집니다.”


“행방불명이라니, 언제부터?”


“소년이 죽고 나서요.”


“그러면 일주일이 흘렀다는 이야긴데, 그걸 가지고 행방불명이라고 할 수 있나? 애도 아니고 어디 놀러갔겠지.”


최 교수가 툴툴대자, 장 신부님이 슬쩍 인상을 찌푸린다.


“아들이 암으로 죽었다는데, 그런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나?”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의문점은 또 있었다.


“화재로 소년의 집이 전소됐답니다. 장례 중이던 부모는 그 와중에 사라져버렸고요.”


설명을 듣던 최 교수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런데 집주인은 어떻게 됐데?”


“소년이 죽고 당일 새벽에 불이 났답니다. 집주인이 먼저 화재 신고했는데, 그 뒤로 연락이 두절됐다는군요. 소방차가 도착하기도 전에 불을 끄려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추측했는데, 안에 시체는 없었답니다.”


최 교수는 여전히 귀찮다는 얼굴로 커피만 홀짝였다.


“뭐 그렇게 주목할 만한 일도 아닌 것 같은데?”


“가 보면 알겠죠.”


동진이 서류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최 교수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어딜?”



[오전 11시 30분, 서울]


소년의 집은 이곳에서 멀지 않았다. 그렇지만 한강 다리를 건너야 해서 걱정했는데, 의외로 도로는 한산하다. 전반적으로 교통량이 준 것인데, 바깥출입을 자제하는 분위기 때문이다.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곳으로 한참을 운전하니, 가파른 언덕이 나온다. 언덕 주변에는 판잣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서울시 한복판에 이런 곳이 있나 싶다.


곳곳에 ‘재개발 결사반대’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고, 집집마다 대나무 장대에 빨간 깃발이 흔들린다. 재개발을 반대한다는 의미로 깃발을 걸어 둔 것으로 여겨졌다. 동진은 차를 골목 옆 빌라 주차장에 세웠다.


“운전이 제법 늘었구먼.”


주차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최 교수가 담배를 꺼내 물며 감탄한다. 동진은 슬쩍 고개를 숙여 보이고 차 키를 최 교수에게 건넸다.


“그냥 가지고 있게. 어차피 돌아갈 때도 운전해야지.”


최 교수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한 바퀴 주의를 둘러본다.


“저 집인 거 같은데?”


3층짜리 집이 홀라당 타버렸다. 얼기설기 지은 티가 역력한데, 녹슬어 버린 대문은 경첩이 빠져 덜렁거린다. 동진은 앞장서 걸으며 집 구조를 살폈다. 반 지하층이 하나 있고, 위로는 3층 빌라 구조지만, 몇 가구나 사는지는 잘 모르겠다. 안에 들어가서 살피고 싶었지만, 출입금지란 푯말과 함께 입구는 테이프로 감겨 있다. 재개발로 거주자가 떠나면 조합에서 봉인을 하게 되는데, 내부로 들어가려면 조합의 허락을 받아야 할 필요성도 있다.


테이프를 끊고 함부로 들어갔다가 도둑으로 몰리면 피곤하다. 동진은 건물을 한 바퀴 둘러보다가 미간을 좁혔다. 특별한 것은 없다. 사실, 그걸 믿고 온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실망스럽다.


‘덜컹’


잔뜩 녹이 슨 대문을 밀어젖히는 굉음소리와 함께, 맞은편 주택에서 아주머니가 나오신다. 아주머니는 쓰레기봉지를 들고 나오시다가, 일행을 발견하고 잔뜩 경계한다.


“아주머니, 말 좀 묻겠습니다.”


최 교수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아주머니에게 다가간다. 아주머니는 전봇대 밑에 쓰레기 봉지를 내려놓고는 못들은 척 고개를 돌린다.


“여기가 연수네 집 맞죠? 언제 이렇게 불이 났데?”


최 교수가 짐짓 모른척하며 너스레를 떨자, 아주머니는 못내 이쪽을 바라본다.


“누구세요?”


“우린 연수가 다니는 학교, 학생과 선생님입니다. 연수가 학교에 나오지 않아서 직접 찾아왔는데, 허 어쩌다가 이렇게 됐데요?”


“연수가 학교를 안 나간 지는 꽤 된 걸로 아는데?”


아주머니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일행을 쏘아본다. 동진은 속으로 아차 싶었는데, 최 교수는 능구렁이처럼 아주머니를 속아 넘긴다.


“안 온지 꽤 됐으니 이렇게 직접 찾아온 거지요. 요즘 세상이 흉흉해서 학교 측에서도 학생들 관리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최 교수가 혀를 끌끌 차며 답하자, 아주머니의 인상이 조금 풀린다. 동진은 소년, 아니 이연수라는 고2 남학생의 불타버린 집을 다시금 돌아봤다. 연수네 가족이 살던 곳은 반 지하 방이다. 집주인은 3층에서 살았는데, 불은 반 지하 방에서 처음 시작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불이 이렇게 크게 났는데, 다른 사람들은 전부 무사합니까?”


최 교수의 물음에 아주머니는 손을 내저으며 답했다.


“나머지 층 사람들은 전부 이사가버리고 없어요. 집주인 홍 씨만 3층에 살았는데.”


아주머니는 잠시 이쪽 눈치를 살피더니 말을 이어갔다.


“글쎄, 홍 씨는 행방불명 됐고, 지하에 살던 연수 네는 마침 집을 비웠다던데?”


“그것참, 다행이군요. 그런데 연수네 가족은 어디 있답니까?”


“나야 모르지.”


아주머니가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는 듯 대문으로 들어가 버린다. 최 교수는 짐짓 안타깝다는 표정을 짓는다.


“허허, 이거 큰일이구만. 연수가 더 이상 학교를 나오지 않으면 장기결석으로 유급처리가 되는데, 쯧쯧쯧.”


최 교수는 뒷집을 진 채, 연수네 집 쪽을 바라봤다. 그러자 대문으로 들어갔던 아주머니가 다시 밖으로 나온다.


“아이고, 그 착한 아이에게 너무한 것 아니야? 그 정도는 학교에서도 봐줘야지.”


아주머니가 연수를 무척 아끼나보다. 그녀는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일행에게 푸념을 해댔다.


“다 그 못된 놈 때문이야. 그 놈이 그렇게 못살게 괴롭히더니 결국 .”


“그놈이라면, 누굴 말씀하시는 겁니까?”


동진의 물음에 아주머니는 가슴을 치며 그간의 사정을 말했다. 연수는 부지런하고 착한 아이였다. 동네 사람들에게 인사도 잘하고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는 아이였단다. 그런 아이가 어느 순간부터 변하기 시작했는데, 새 아빠가 들어오고 나서부터란다.


“연수네 아버지가 새 아빠였습니까?”


최 교수의 물음에 아주머니는 화가 치민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만날 술이나 처먹고 돌아다니면서 마누라랑 애를 패기 시작하는데, 우리 집까지 우는 소리가 들렸다니까.”


“.......”


아주머니의 설명을 들으며 동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몇 달 전 어머니가 새 아빠를 들였는데, 재혼은 아니고 그냥 동거상태란다. 그런데 새 아빠는 어느 순간 연수와 어머니에게 손찌검을 하기 시작했다. 술을 먹은 주취상태에서 모자에게 가혹한 폭력이 가해졌다. 참다못한 동네사람들이 경찰을 불렀는데, 소용없더란다. 그러던 어느 날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홍 씨와 연수 아버지가 마당에서 싸움을 하고 있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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