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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남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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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김영남
작품등록일 :
2016.04.16 23:31
최근연재일 :
2017.03.19 01:53
연재수 :
115 회
조회수 :
43,776
추천수 :
528
글자수 :
687,446

작성
17.01.16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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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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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1쪽

저녁 -78

DUMMY

어느새 고속도로로 진입했다. 뻥 뚫려 있는 도로를 보며 속력을 내고 싶지만, 뭔가 불안하다. 마치 집을 나오면서 불을 끄지 않았다거나, 냉장고 문을 열어둔 것처럼 말이다. 불을 껐고, 냉장고 문을 닫았다는 것을 안다. 문을 나서기 전 몇 번이나 확인했으니까. 그럼에도 가시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동진은 슬쩍 조수석을 돌아봤다.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뭘 뭐라고 해? 아무 말도 안했어.”


최 교수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동진은 다시 앞쪽을 바라보며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웅성거림, 귓가에서 끊임없이 뭔가가 떠들어 댄다. 정신을 집중해서 들으면 아무소리도 나지 않지만, 마음을 놓고 있으면 스치듯 들려오는 그런 웅성거림 말이다. 룸미러로 뒤를 살피니 수겸은 고개를 푹 숙인 채 곤히 잠에 빠져 있다.


“그나저나, 아침에나 도착하겠구먼.”


최 교수의 푸념을 해댄다. 괜히 액셀러레이터를 밟은 발에 힘이 들어간다.


“좀 서두르면 새벽에 도착할 겁니다.”


“출근시간대만 피하면 막히지는 않겠지. 그 전에 도착하면 되니까 조심해서 운전해. 아직 밤길은 익숙지 않을 테니까.”


“······.”


동진은 대답대신 다시 룸미러로 뒷좌석을 살폈다. 분명 뒤쪽에서 웅성거림이 들려오고 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무질서하지만 반복적인 소음들.


“좀 출출한데? 휴게소는 언제 도착하나?”


최 교수의 물음에 웅성거림이 잦아든다.


“조금 가다보면 나올 겁니다.”


“가서 뭐라도 사먹자고.”


“그러지요.”


어느 순간 대화가 끊긴다. 어두컴컴한 도로,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차창 밖 세상, 그을린 어둠 사이로 실낱같은 가로등 불빛이 지나친다.


“이제 밤에는 제법 추워. 여름도 다 갔구먼.”


최 교수가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10월이면 쌀쌀할 때도 됐죠.”


“이번 여름은 정말 길었어. 유독 날씨가 더워서 그랬나?”


귓속이 아프다. 먹먹하다 못해 따갑기까지 하다. 동진은 운전대를 잡은 손등을 내려다봤다. 조금 빨갛게 부어올라 있는데, 별다른 느낌은 없다.


“그래도 추운 것보다야 더운 게 낫지.”


최 교수의 목소리가 갈라진다. 마치 늘어난 카세트테이프를 듣는 것처럼. 그 안에 다른 어떤 목소리가 메아리친다.


‘냉장고 문은 닫았어? 빨리 닫아야해!’


‘끼익!’


동진은 급히 차를 멈춰 세웠다. 차가 멈춰서니, 어느새 숨이 거칠어져 있다.


“왜? 무슨 일이야.”


최 교수가 호들갑을 떨어대지만, 동진은 앞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어둠속에 도로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길가의 가로등 불빛조차 어둠을 몰아내지 못한다.


“아니 갑자기 멈춰서고 난리야. 왜? 어디 안 좋아?”


최 교수의 말소리와 겹쳐 어떤 웅성거림이 외친다. 다급히 운전석에서 몸을 틀어 정면으로 수겸이를 응시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녀석, 하얀 턱 선으로 한줄기 땀방울이 또르륵 굴러 떨어진다. 웅성거림은 녀석에게서 들려오고 있었다. 손을 뻗어 수겸이를 잡으려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마치 늪에 빠진 것처럼 팔이 느릿느릿 움직인다.


“이런 시간 없네. 빨리 출발해야지, 언제까지 꾸물거리고 있을 텐가.”


‘조그만 더!’


동진은 이를 악물고 손을 뻗었다. 그리고 손끝이 수겸의 옷자락에 닿는 순간, 웅성거림이 선명해진다.


‘산신살, 토신살, 관실살아 내 말 들어. 물러가라 떠나가라. 감응신령 명하노니······.’


‘크윽!’


양 손등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밀려온다. 동시에 포근했던 차 안이 닭살이 돋을 만큼 싸늘해진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어 조수석을 바라봤다. 텅 빈 조수석에는 최 교수가 두고 내린 가방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뒷좌석 역시 아무도 없다.


‘이런 빌어먹을!’


동진은 운전석 문을 열고 도망치듯 차에서 빠져 나왔다. 텅 빈 도로 위, 어둠만 내려앉아있다. 웅성거림의 실체, 바로 원령이나 사악한 존재를 물리치는 귀불주문이다. 아직도 통증이 느껴지는 손등을 내려다보며, 가슴 속을 맴돌던 불안감이 드러난다.


‘청이가 없다. 그걸 왜 잊고 있었는가.’


여기까지 내려오면서도 그녀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 서울로 출발해 버렸다.


‘시간이 없다!’


급히 차에 올라탔는데, 어느새 시동이 꺼져 있다. 게다가 아무리 열쇠를 돌려도 차 시동이 켜지지를 않는다.


‘서둘러서도 안 된다. 이곳은······.’


움켜쥐고 있던 열쇠를 내려놓았다. 다시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초겨울 만치 쌀쌀한 매서운 바람이 불어온다. 옷깃을 여미며 반대편 도로를 응시했다. 한치 앞도 분간 못할 어둠 속, 잠바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군용 칼의 촉감, 차가운 냉기가 감돈다.





얼마나 걸었을까? 멀리 빛이 보인다. 어둠 속 실낱같은 빛줄기, 도로 끝에서 반짝인다. 천천히 빛을 향해 걸었다. 도로가 끝나는 지점, 햇볕이 내리쬐는 산길이 펼쳐져 있다.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니, 마찬가지로 산길이다. 길을 따라 화사하게 만개한 꽃잎들. 순식간에 어둠이 사라져 버렸다. 향기로운 꽃향기와 함께 사람들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진다. 즐겁고 희망찬 노래, 귀에 익은 찬송가다.


“메시아와 함께라면, 걱정 근심 없네. 메시아의 곁에 서면, 죄악이 씻기네.”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며 산길을 내려온다. 저마다 얼굴가득 기쁨이 충만해 있다. 삼삼오오 손을 꼭 잡은 사람들, 그 수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족히 수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밀려 내려오자 슬쩍 길옆으로 비켜섰다. 뒤쪽에서 ‘후드득’하고 흙이 쓸려 내려가는 소리가 들린다. 발밑을 살피니, 바로 뒤가 절벽이다.


“성전에 올라가십니까?”


지나가던 50대 아저씨 한분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묻는다.


“한발 늦으셨구려. 이미 교리가 끝났습니다. 같이 내려가십시다.”


대답이 없자, 아저씨의 표정이 굳어진다.


“내가 끝났다고 했는데, 못 들었습니까? 그만 내려갑시다.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까?”


어느새 울려 퍼지던 노랫소리가 멎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굳은 얼굴로 이쪽을 쏘아보고 있다. 안되겠는지 40대 아주머니가 나선다.


“빨리 내려가요. 조금 후면 밤이 된다고요.”


동시에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외친다.


“맞아요. 이미 문을 닫았을 거예요.”


“고집부리지 말고 빨리 내려갑시다. 모두 바쁜 사람들이에요.”


산길에 병풍처럼 늘어선 사람들, 동진은 깊게 심호흡을 하고 답했다.


“전 내려가지 않습니다.”


40대 남자가 앞으로 나선다.


“형제님은 믿음이 부족하시구려. 꼭 두 눈으로 확인해야 합니까? 그러면 내가 직접 보여드리리다.”


남자가 다짜고짜 웃옷을 벗어 버린다. 섬뜩한 흉터 자국 위로 가슴 부위가 새카맣게 멍들어 있다.


“보십시오. 저는 폐암 말기였습니다. 병원에서도 포기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완치가 되었습니다.”


바로 옆에 서 있던 할머니도 나선다. 할머니의 어깨와 허리 부분이 검게 그을려 있다. 그을린 부분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중풍으로 10년이나 고생했는데, 이렇게 멀쩡해요. 이게 다 은혜를 받아서 그런 겁니다.”


“저도 심장병으로 시한부 인생이었어요. 그런데 메시아께서 제게 새 생명을 주셨답니다. 이건 기적이에요. 제게 기적이 일어난 거라고요.”


사람들이 너도나도 앞으로 나선다. 그 모습이 위압감으로 다가왔다. 주춤 뒤로 물러서며 잠바 안주머니로 손을 넣었다.


“그대는 기어코 지옥을 택하려는 겁니까? 어리석구려. 당신이 믿는 신은 대체 누구요? 누구기에 그토록 책임감이 없습니까?”


남자가 묻는다. 그 질문에 가슴 속 저편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맑고 고요했던 물, 그래서 깨끗하다고 믿었던 물이 웅성거리는 작은 파랑에 뿌옇게 변해 버린다. 이젠 다 사라지고 없다고 여겼던 분노, 응어리진 그것들이 수면위로 올라와 물을 탁하게 만든다. 칼을 잡은 손에 힘을 주니, 문득 손등으로 날카로운 통증이 밀려온다.


동진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며, 칼을 잡은 손아귀에 힘을 풀었다.


“나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이쪽을 쏘아본다. 수많은 눈빛 안에 기대감이 자리해있다.


“신을 믿지 않습니다.”


기대감에 부푼 눈빛이 분노로 일그러진다. 사람들의 외침이 거세진다.


“이단이다! 이단자다!”


“빌어먹을 이교도 놈이다. 죽여라!”


금방이라도 사람들이 달려들 듯 하다. 그렇지만, 물러난 길은 없다. 뒤는 낭떠러지다. 본능적으로 칼 손잡이를 와락 움켜쥐었다.


‘안 돼.’


목소리가 외친다. 혼자 있을 때면 그토록 괴롭혀댔던 목소리.


“네놈은 스스로를 진실하다고 여기겠지.”


수백 명에 사람들이 외친다. 너나할 것 없이 욕설까지 퍼붓는다.


“언제나 자신을 포장해. 교만하고 거짓으로 가득하지. 역겨워 죽겠어!”


“네놈은 언제나 더러운 짓만 일삼았어.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으면서 내심, 다른 사람의 불행을 지켜보기만 했지. 그들이 괴로워하고 비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실은 즐긴 거야.”


동진은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칼자루를 움켜쥔 손에 부르르 힘이 들어간다.


“내 일이 아니다 이건가? 내가 당하는 게 아니니까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거겠지. 근데 말이야.”


40대 남자가 코앞으로 얼굴을 들이댄다.


“네놈은 겁쟁이고 속물이야. 가만히 있어도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지. 그래서 가만히 있었던 거야. 그렇게 모든 일이 끝나버리면 스스로 자위하겠지. 내 탓이 아니라고.”


눈을 감아버리고 말았다. 분노가 치밀어 올라 숨이 턱턱 막힐 정도다. 당장에라도 칼을 꺼내 누군가를 찔러 버리고 싶다. 분노와 증오가 타올라 머리칼이 쭈뼛 설 정도다. 도움이 필요했다.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계속해서 내 길을 가야한다.’


목소리가 아련히 들린다. 신학생 시절,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끝없이 되뇌던 말이다. 문득 칼자루를 잡은 손에 힘이 빠진다.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던 산길이 어느새 어두컴컴해졌다. 계곡 쪽에서 세찬 바람이 불어오고, 길 위 언덕에서 어둠이 밀려 내려온다.


나뭇가지들이 사각거리고, 낙엽이 바스러지는 스산함이 온 산을 헤집는다.


‘위험해. 여긴 위험해.’


목소리가 경고를 준다. 알고 있다. 그렇지만, 발길을 돌릴 수가 없다. 산 정상 어둠 속, 어슴푸레 경기장의 모습이 보인다.


‘크르륵!’


문득 산길 옆 나무숲에서 가래 끓는 소리가 메아리친다. 어둠 속에서 뭔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 바스락 거리는 움직임, 바로 옆에서 그리고 저 앞에서도 느껴진다. 소리에 놀라 흠칫 걸음을 멈췄다. 이 분위기 기억하고 있다. 아니,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악몽, 지옥에서의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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