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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남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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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김영남
작품등록일 :
2016.04.16 23:31
최근연재일 :
2017.03.19 01:53
연재수 :
115 회
조회수 :
43,775
추천수 :
528
글자수 :
687,446

작성
17.01.19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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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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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1쪽

저녁 -81

DUMMY

[10월 3일, 오전 08시 00분, 고속도로]


일행은 아침 일찍 길을 잡아 나섰다. 청이와 수겸은 뒷자리에서 잠을 자고 있다. 최 교수 역시 전날 마신 술이 과했는지 조수석에서 꾸벅꾸벅 존다. 갈 길이 멀었는데, 추적추적 비까지 내린다. 동진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며 와이퍼를 작동시켰다. 빗줄기가 와이퍼에 닦여 나가지만, 앞 유리에는 붉은 잉크가 묻은 것처럼 얼룩이 남는다.


전날 뉴스에서 황사가 심하다고 하더니, 말 그대로 붉은 비가 내리나보다. 혼자 운전을 하고 있으려니 심심하다. 라디오를 켰지만, ‘치직’거리는 잡음이 심해서 알아듣기 힘들다. 잠시 옆에 놓아둔 핸드폰을 살폈는데, 신호가 약하게 잡힌다. 운전대로 몸을 기대, 멀리 보이는 산을 응시했다. 앞으로 몇 시간을 더 운전해야 할 지 모르겠지만, 빨리 서울에 도착했으면 좋겠다.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비는 멈추지 않았다. 많이는 아니고, 이슬비였는데 온 종일 내릴 기세다.


“몇 신가?”


최 교수의 물음에 동진은 내비게이션 시계를 살폈다.


“12시 20분입니다.”


“빨리 왔군.”


“차가 안 막혀서 다행입니다.”


벌써 한강을 건너고 있다. 평소 한강다리는 지금 시간대에 꽉꽉 막혔다. 그런데 휑하다. 차장 밖을 살피던 최 교수가 문득 한강고수부지 쪽을 가리킨다.


“물색이 왜이래?”


동진은 한강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조용히 흘러가는 한강 물이 새빨갛게 변해있다.


“황사 비 때문이겠지요.”


“그런가? 쯧쯧. 세차한지 얼마 안됐는데 말이야.”


최 교수가 심드렁한 얼굴로 투덜댄다.


“그런데 수겸이 자네는 어떻게 할 건가?”


뒷좌석에 널브러져 있던 수겸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전 왜요?”


“아니 집에 어떻게 갈 거냐고? 기차역에 내려줘?”


수겸은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눈치더니, 은근슬쩍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낸다.


“돈도 좀 있고 하니까, 서울 구경이나 며칠하고 내려갈래요.”


“또 게임 사게?”


“그런 건 아니고요. 그냥 온 김에 아는 분들 인사나 드리려고요.”


최 교수는 조수석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기지개를 켰다.


“난 모르겠다. 알아서 해라. 그런데 쟤는 일어날 생각을 안하는구만.”


뒷좌석에 청이는 여전히 곯아떨어져있다. 정말 잘도 잔다.


“피곤한 가 봅니다.”


동진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액셀러레이터를 힘주어 밟았다.


[오후 13시 10분, 성당]


성당 주차장에 도착하자, 최 교수는 거의 기다시피 차에서 내렸다.


“아이고, 죽겠다.”


“저도 허리아파 죽겠어요.”


수겸 역시 등을 두들기며 가진 인상을 다 쓴다. 최 교수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녀석을 쳐다본다.


“그런데, 이래도 돼?”


“또 왜요?”


“무당이라면서? 성당에 들어와도 괜찮아?”


“전 사이비라 괜찮아요. 아이고, 허리야.”


할 말이 없다. 동진은 짐을 챙기다 말고 다시 뒷좌석을 살폈다. 청이가 아직도 자고 있다. 최 교수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차창을 두들긴다. 그제야 그녀가 몸을 비비적대며 하품을 해댄다.


“참나, 아주 숙면을 취하시는구먼.”


“그러지 마세요. 졸려 죽겠단 말이에요.”


청이가 뾰로통하게 대꾸한다. 동진은 남몰래 안도에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까지 올라오는데도 계속 자고 있기에 어디 안 좋은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닌가보다.


“지금 도착했나? 수고들 했네.”


장 신부님이 교육관 앞에서 일행을 마중한다.


“그래, 뭐 좀 건졌나?”


“건진 게 뭐 있겠어. 고생만 즉살 나게 하고 왔지.”


“들어오게. 커피나 한잔 하지. 그런데 저 친구는 누군가?”


장 신부님이 수겸을 보고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왜요? 제게 뭔가 느껴지시나요?”


수겸이 게슴츠레한 시선으로 신부님을 응시한다. 장 신부님은 어깨를 한번 으쓱했다.


“아니. 거지꼴을 하고 있어서.”


수겸이 울상을 지으며 입고 있던 옷을 내려다본다. 여관에서도 그렇고, 차에서도 아무렇게나 구겨져서 잠을 잤던 지라, 일행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일단 커피 대신 밥을 먼저 먹기로 했다. 근처 식당에 자리를 잡았는데, 손님이 한명도 없다. 주인아주머니는 손님이 너무 없다고 푸념을 해댄다. 물을 마시던 최 교수가 식당 TV를 응시한다.


뉴스에서는 여전히 강력 범죄에 대한 소식이 전해지고 있었는데, 단연 눈에 띄는 건 자살 속보였다. 동진은 슬쩍 청이 쪽을 살폈다. 그녀는 분노에 찬 시선으로 TV 화면을 쏘아보고 있다. 그런데, 뭔가 좀 괴리감이 든다. 딱히 이상한 것은 없는데, 분위기가 바뀐 것 같다. 무엇이 바뀐 건지 딱 꼬집어 말하기 힘들었지만 말이다.


뉴스는 계속 끔찍한 사건을 보도하고 있다. 한 마을에서 일어난 자살, 무려 50명이 넘는 사람들이 일거에 자살해 버렸다. 경찰에서는 이 사건을 사이비 종교와 관련된 집단자살로 보고 있었는데, 그런 사건이 몇 군데 더 있단다. 충격적인 사건이지만, 이것도 다음 뉴스에 묻힌다. 비무장 지대에서 총격 사태가 발생해서 수십 명이 죽었단다.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는데, 군은 일단 탈영병에 의한 총격사태로 보고 있었다.


문제는 탈영 병사의 수가 스무 명이 넘는다는 것이다. 거의 소대 급 인원이 단체로 탈영을 했다는데, 전례가 없는 일이라 군도 크게 당황하는 눈치다. 뉴스가 계속 이어진다. 아파트에서 난 불로 수십 명이 죽거나 다쳤는데, 방화로 추정된단다.


“쯧쯧쯧, 이제 한두 명 죽은 것은 뉴스거리도 안 되는구먼.”


최 교수가 멍하니 들고 있던 물 컵을 내려놓고 한숨을 내쉰다.


“세상이 어찌될는지 원.”


“경찰들은 뭐하고 있데요?”


청이의 얼굴도 잔뜩 찌푸려져 있다. 끊이지 않는 강력 범죄,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집단 자살사건. 물론 경찰도 최선을 다하고 있을게다. 그렇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신부님이 사건 정황을 설명했다.


“봉수가 그러더군. 경찰 조직 내부도 지금 위태위태 하나봐. 총기 오발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데.”


“오발사고?”


최 교수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신부님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사고라고는 하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지. 도망가는 범죄자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한 사건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군. 잡힌 범인도 수갑을 채우지 않고 그 자리에서 머리를 쏴 처형을 해버렸다는 소문도 있고.”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최 교수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자, 신부님은 TV화면을 보면서 혀를 찬다.


“이등병을 나무라던 병장이 도끼에 맞아 숨지는 사건도 발생했네.”


“허허! 무지막지하구만.”


“그 이등병이 병장을 죽인 게 아니야. 바로 옆에서 지켜보던 다른 이등병이 분을 참지 못해서 저지른 일이지.”


“......”


신부님의 설명에 일행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게 무슨 의미인줄 아나? 모두 분노와 증오 때문에 일어나는 범죄라는 거야. 사람들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순간적인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있어. 어느 한 지역이나 그룹의 일이 아니네. 경찰, 군, 정부, 모든 부류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일일세.”


“그게 가능한 일인가?”


최 교수가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다. 모든 부류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니, 그렇다면 여기서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 모든 사람들이 분노를 참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국가 간 사이도 극도로 나빠지고 있네. 아프리카와 동남아 국가들은 이미 전쟁을 시작했고, 중동과 이스라엘 쪽도 어제 전쟁이 발발해서 수천 명이 죽었다는군.”


신부님의 말에 일행은 모두 입만 벌리고 멍하니 앉아 있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남미에서도 전쟁이 발발했다. 국가 간 지역 예선 경기, 그러니까 해묵은 축구 경기가 실제 전쟁으로 번진 것이다. 축구에 진 상대팀 국민들이 난동을 일으킨 게 문제였다. 그 난동으로 수천 명이 죽거나 다쳤단다. 중동 쪽은 더 심각했다. 이스라엘을 필두로 서방 세계가 중동에 선전포고를 했는데, 사우디와 이란, 이집트, 거기에 핵무기 국가인 파키스탄, 인도가 참여했단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핵전쟁까지 발발할 모양새였지만, 진짜 위기는 그게 아니었다. 미국과 러시아, 중국 간 외교 분쟁이 끊이지를 않고 있었다. 일본은 연일 중국과 북한을 자극하고 있었는데, 우리나라만 고립무원의 처지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신부님은 TV화면을 가리켰다. 비가 온다. 그런데 그냥 비가 아니다. 붉은 비였다. 미국 워싱턴에도, 프랑스 파리에도, 중동 지역에도, 전 세계 모든 곳에서 붉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화면에서 ‘종말이 시작됐다!’ 라는 피켓을 든 종교 단체들이 뉴욕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하느님의 심판이 시작되었으며, 곧 메시아가 재림한다는 소문이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북유럽과 러시아 시베리아 지방에서는 붉은 눈이 내렸는데, 마치 온 세상이 피로 변한 것 같다며 외신들이 호들갑을 떨어댄다. 그 비가 서울에도 내리고 있었다.


“그럼, 지금 내리는 비가 적어도 황사는 아니겠군요.”


수겸이 심각한 표정으로 묻자, 장 신부님은 뭔가를 생각하던 눈치더니 천천히 고개를 주억였다.


“확실한 건, 붉은 비가 내리면서부터 사람들이 분노하고 서로를 증오하고 있다는 걸세.”


“예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나요?”


수겸의 물음에 장 신부님은 어깨를 으쓱하고 만다. 동진은 그 물음에 답하려다가 이내 그만두고 말았다. 과거 그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출애굽기에 나오는 모세의 10가지 재앙 중, 모든 물이 피로 변하는 사건 말이다. 그렇지만, 지금의 사태와 연관 짓기에는 좀 우습게 느껴졌다. 출애굽기, 아니 성서 자체를 있는 그대로, 사실이라고 받아들여야 하는 대전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성서를 믿지 않으면 억지스럽다고 여겨질 일이다.


뉴스에서 보도했다시피, 이 사건을 재앙, 혹은 종말의 전조라 보는 시작도 있었다. 어쩌면 사회 혼란을 틈타 신도를 모으려는 사이비교의 영악한 수단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 이유는, 지금 밖에 붉은 비가 내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식당 밖으로 나온 일행은 각자 흩어지기로 했다. 최 교수는 피곤하다며 먼저 들어갔고, 수겸이 역시 가볼 곳이 있단다.


“나도 성당에 올라가봐야겠군. 조심히 잘 들어가게.”


멀뚱히 서서 신부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청이가 흘깃 이쪽을 쳐다본다.


“동진씨도 피곤할 텐데 어서 들어가세요.”


“병원까지 같이 가시죠. 제가...”


“됐어요. 빨리 쉬셔야죠. 이따가도 바쁘실 텐데.”


청이가 휙 몸을 돌려 버린다.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동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딱히 바쁜 일은 없는데, 무슨 뜻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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