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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남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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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김영남
작품등록일 :
2016.04.16 23:31
최근연재일 :
2017.03.19 01:53
연재수 :
115 회
조회수 :
43,774
추천수 :
528
글자수 :
687,446

작성
16.07.09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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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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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저녁 -65

DUMMY

반지를 빼고 나니 슬프고 서럽던 마음이 안정된다. 사람들의 행복에 찬 웃음소리, 연인들의 달콤한 속삭임, 그 모든 것들이 전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스스로에게 내려진 죽음의 선고마저도.


“아가씨, 예쁘게 생겼네?”


울림처럼 누군가가 곁에 다가와 주절댄다. 단청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 셋이 벤치를 둘러싼다.


“내 차타고 드라이브 한번 할래?”


녀석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빨간 스포츠카가 서 있다. 돈이 많은 사람인가 보다. 단청은 무표정한 얼굴로 답했다.


“됐으니까, 꺼지세요.”


“뭐라고? 나 참, 어이가 없어서.”


남자들이 비웃음을 머금고 자기들끼리 뭐라 욕을 해댄다. 단청은 손바닥에 들린 반지를 내려 보다가 슬쩍 옆을 돌아봤다. 편의점 앞에서 불신검문을 하고 있던 경찰 몇 명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챘는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단청은 지그시 눈을 내려 감고 반지를 쥔 손을 와락 움켜쥐었다. 이젠 끝내고 싶다.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달려왔는가. 의사라는 직업, 솔직히 사람들을 돕겠다는 일념 하에 공부를 한 건 아니다. 아버지, 그는 병든 엄마를 버려두고 10년 동안 가족을 버린 사람이다. 일신의 명예를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가버린 그는, 결국 어머니가 눈을 감은 날마저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가 말기 암으로 눈을 감던 날, 그녀는 엄마의 손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질 때까지 붙들고 있었다.


‘우리 청이, 착하고 행복하게 잘 커줘서 엄마가 고마워······.’


엄마가 남긴 마지막 말이다. 그때 깨달았다. 단순히 의사가 되기보다는 어떤 의사가 되어야 하는지를 말이다. 복수하고 싶다. 엄마를 그렇게 만든 암에게도, 그리고 명예만을 생각하는 아버지에게도.


벤치를 둘러싼 녀석들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경찰관을 발견하고 등을 돌린다.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있던 녀석은 열이 받는지 손으로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잘게 흐트러지는 머리칼이 녀석의 어깨를 흘러내릴 무렵, 단청은 문득 옆자리를 돌아봤다. 노인이 멀리서 반짝이는 도시의 야경을 응시하고 있다.


‘눈이 있어도 도무지 볼 줄을 모르는군.’


“......”


‘자네 눈앞에 펼쳐진 세상은 거짓과 악의로 가득 찼어. 그걸 분별하는 힘이 있는데, 무얼 주저하는 건가?’


단청은 고개를 돌려 막 차에 올라타고 있는 녀석들을 응시했다. 녀석들의 몸에서 검은 기류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무언가를 얻고 싶으면, 그 만큼 포기해야 하는 법이지.’


“사람 잘못 보셨어요. 다른 사람 찾아보세요.”


노인이 쓴웃음을 머금으며 이쪽을 돌아다본다.


‘동정인가? 저들에게 그럴 자격이 있나? 자네가 지금 저들을 막지 않으면 또 다른 피해자가 생겨. 그 피해자들에게 뭐라고 설명할 텐가?’


단청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 때문이 아니라 하겠지. 그게 아니라면, 내가 괜한 걱정을 하는 건가?’


노인은 손을 들어 누군가를 가리켰다. 단청은 노인이 가리킨 사람을 바라보다가 미간을 좁혔다. 몸 전체에서 검은 기류를 뿜어대는 사내, 그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악의와 분노로 가득한 사람이다.


‘저 자는 화가 많이 났어. 아내가 바람을 피운 사실을 방금 전에 알았지. 그래서 근처 마트에 들려서 칼을 구매했네. 몇 천원 안하는 싸구려 칼이지만, 감히 돈으로 살 수 없는 목숨을 빼앗을 수 있지.’


단청은 사내가 입고 있는 양복을 쏘아봤다. 검은 기류가 칼 모양 형태로 사내의 머리와 웃옷을 맴돈다.


‘지금 저 자를 막으면, 한 생명을 살릴 수 있어. 그건 바로 옆에 서 있는 경찰들도 할 수 없는 일이야.’


사내는 차도까지 나와 택시를 잡았다. 미처 말려 세울 틈도 없이, 택시는 빠르게 사라져 버린다. 단청은 숨이 막혀 왔다.


‘이래도 자네 탓이 아니라고 할 텐가? 막을 수 있었잖아. 그에게 맺힌 악의와 분노를 눈 녹듯 사라지게 할 수 있었잖아. 모든 걸 이해해주고 용서하는 사람으로 만들 수 있었는데, 뭘 주저하는거지? 일이 터지고 나면, 지난번처럼 회개라도 시킬 속셈인가?’


“제게 뭘 원하는 거죠?”


단청은 분노에 찬 시선으로 노인을 쏘아봤다. 노인은 무료하다는 표정을 지은 채, 바지를 툭툭 털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미 원하는 걸 받았네.'


노인의 모습이 허공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오후 21시 10분, 서울]


늦은 저녁을 가게에서 산 김밥 한 줄로 때우고 다시 길을 걸어본다. 동진은 바로 옆 전봇대에 붙은 일자리 모집 전단지를 읽어 내렸다. 요즘에는 일자리 구하기가 힘들다. 아르바이트라도 해볼까 싶으면 사람을 구했거나 필요 없다는 말만 되돌아왔다. 경기가 처참할 정도로 나쁘기도 하거니와 사람들이 바깥활동을 잘 하지 않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술집 주변 상점만 불을 밝혔고, 나머지 상가들은 셔터가 내려져 있다. 강력 범죄가 늘어난 만큼, 소소한 강도사건과 도둑질, 물건 파손 행위도 비일비재하다. 길을 가다가 화가 난다는 이유로 상점 쇼윈도에 돌을 집어던지는 행위가 빈번하단다.


상점 주인은 참다못해 CCTV까지 설치했지만, 범인의 인상착의만으로 수사가 진행될 리 없었다. 무엇보다도 경찰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시점에서 소소한 범죄사건은 묻히기 일쑤였다. 동진은 굳게 셔터가 내려가 있는 편의점 건물을 응시했다. 24시간 문을 열어둔다는 편의점도 해가 지면 닫아버린다. 끊이지 않는 강도사건 때문인데,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생이 칼에 찔려 죽는 사건이 수십 차례나 발생한 덕분이다.



고작 몇 천 원짜리 물건을 훔치려는 사람들, 그걸 빌미로 살인이 일어나기도 했다. 어두운 골목길 한편에 양복을 차려입은 청년이 서 있다. 흔히 거리에서 마주치는 직장인, 하지만 손에는 호신용 전기 충격기가 들려 있다. 술이라도 마셨는지 몸을 가누지 못한다.


“뭘 쳐다봐? 이 새끼야.”


청년이 버럭 고함을 내지른다. 동진은 걸음을 빨리해 골목을 지나쳤다. 이젠 해가 지면 골목길 지나다니는 일이 불편하다. 건장한 남자도 그럴진대, 노약자와 여자들은 어떨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됐기에 이 지경으로 변한건지 궁금하다. 문득 동진은 길을 걷다 말고 손등을 살폈다. 손등과 손바닥이 가렵기 시작한다. 본능적으로 주위를 살폈다.


골목길 안쪽 푸르스름한 가로등 불빛 사이로 교복을 입은 소녀가 서 있다. 10대 후반이나 됐을까? 소녀는 맞은 편, 그러니까 빨간 벽돌로 지어진 주택 담 쪽을 내려다보고 있다. 동진은 몇 발자국 더 걷고서야 맞은편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챘다. 검정색 구두를 신은 남자가 소녀 앞에 쓰러져 있는데, 죽은 것 같지는 않고 기절한 것으로 여겨진다. 간헐적으로 구두를 신은 발이 세차게 떨린다.


소녀가 이쪽을 바라본다. 유리알처럼 투명한 검은 눈동자, 동진은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급히 골목길을 빠져나오는데, 등골이 시리다. 돌아보지 않고도 알 수 있다. 소녀는 이쪽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성당에 도착하고 보니 교육관에 불이 켜져 있다. 동진은 교육관 안으로 들어서다 눈을 동그랗게 떴다. 흉부외과 김무영 과장이 장 신부님과 탁자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다. 신부님이 이쪽을 보고 아는 체를 하신다.


“이 시간에 웬일인가?”


“그냥 지나다 들렸습니다.”


“그러잖아도 전화하려고 했지. 그런데 저녁은?”


동진은 탁자 쪽으로 다가가며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때웠습니다.”


“앉게. 차나 한잔 하지.”


장 신부님이 주머니를 뒤적이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동진은 바지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얼른 자판기 쪽으로 다가갔다.


“제가 하겠습니다. 앉아 계세요.”


신부님은 언제나 그랬다. 항상 자신을 걱정해 주신다. 그럴 때면 가끔씩 아버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가 다섯 살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던 아버지,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의 존재를 입 밖에 내지 않으셨다. 때문에 아버지란 의미가 어떤 것인지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청이 일로 오셨습니까? 검사 결과 때문에요.”


동진이 커피를 건네며 묻자, 김무영 과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것도 있고.”


과장은 탁자 위에 올려놓은 서류를 건넸다.


“이건 암환자들 진료 기록이네.”


“좀 많군요.”


두둑한 서류 뭉치를 뒤적이던 동진은 슬쩍 장 신부님 쪽을 돌아봤다. 신부님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커피 잔을 든다. 서류에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잔뜩 쓰여 있다.


“최근 암학회에서 우리나라 암환자 발생빈도수를 조사한 자료일세. 수치상으로 암환자의 증가율이 전달보다 수십 배나 높아.”


김무영 과장의 설명에 동진은 미간을 좁히며 서류를 읽어갔다. 대충 막대그래프만 이해할 수 있었는데, 9월 달 들어 그래프의 막대가 하늘높이 치솟아 있다.


“단순한 암환자들은 아니겠군요.”


“그렇지. 패턴이 한수련과 비슷해. 폐와 간, 대장, 특히 뇌로 연결되는 안 암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어. 그렇지만, 청이와는 또 다른 패턴을 보이고 있지.”


“또 다른 패턴? 그런 것도 있었나?”


커피를 홀짝이던 장 신부님의 질문에 과장은 서류 뭉치에서 A4 용지 한 장을 추렸다.


“한수련과 청이의 경우 둘 다 동시다발적으로 암이 퍼지고 있어. 반면, 속도와 패턴이 달라.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한수련이 악성이라면, 청이 쪽은 양성쯤으로 해석해야 하나?”


“양성이라면, 경과가 그리 위험하지 않다는 건가?”


신부님이 정색하며 묻자, 과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패턴이 그렇다는 걸세. 둘 다 치명적이긴 마찬가지야.”


“치료할 방법은 없는가? 계속 연구 중인 걸로 아는데.”


“그게 쉽지가 않아. 환자 몸 안에서 발생하는 병변이 암은 맞지만, 퍼져나가는 속도나 패턴은 오히려 바이러스와 비슷해. 또 환자와 환자간의 전이 역시 바이러스성, 그러니까 감기랑 동일하지.”


“감기요? 그러면 다른 사람에게 전염된다는 말입니까?”


동진의 물음에 김무영은 고개를 주억였다.


“아직 전염이라고 말할 단계는 아니지만, 그와 동일한 패턴을 보이고 있어. 여기 이 소년의 경우 아버지와 어머니가 암에 걸렸고, 잠깐 접촉했던 집주인도 암에 걸렸지.”


김무영이 건네는 서류를 읽던 동진은 인상을 찌푸리며 자료를 읽어갔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건강했던 소년이 암에 걸렸다. 그리고 약 보름 후, 소년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암에 걸린 것으로 되어 있다. 소년의 가족은 월세를 살았는데, 집주인 역시 암에 걸렸단다.


“이 소년의 집주소를 알 수 있습니까?”


“그런 것은 환자 개인정보로 분류되기 때문에 공개하기가 힘들어. 그런데 그게 왜 궁금하나?”


“짚이는 것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장 신부님이 거들고 나선다.


“그럼, 봉수한테 연락해보면 되겠군. 단순히 집주소만 가지고 해결 될 일은 아니잖나.”


“최대한 빨리 부탁드립니다.”


신부님은 들고 있던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손사래를 쳤다.


“그게 어디 자네가 부탁할 일인가. 나 역시 청이를 아끼고, 더불어 지금 상황을 우려하고 있네. 봉수에게는 지금 당장 부탁해봄세. 아주 급한 일이라고 말이야.”


장 신부님이 핸드폰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동진은 그를 만류했다.


“아직 아닙니다. 소년의 집이 이곳에서 가깝다는 보장이 없을뿐더러, 그와 비슷한 케이스를 몇 개 더 뽑아야 합니다. 그래야 상황이 명료하게 드러날 겁니다.”


“그럼, 그 소년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더 뽑으면 되겠군. 뭔가 공통점이 있을 거야. 그걸 찾으려는 건가?”


김무영 과장의 물음에 동진은 힘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과장은 발밑에 놓아둔 가방을 집어 들더니, 아예 안에 있던 서류를 전부 탁자위에 쏟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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