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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남 님의 서재입니다.

아보미나티오

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완결

김영남
작품등록일 :
2016.04.16 23:31
최근연재일 :
2017.03.19 01:53
연재수 :
115 회
조회수 :
43,804
추천수 :
528
글자수 :
687,446

작성
16.07.11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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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
추천
3
글자
13쪽

저녁 -68

DUMMY

손으로 밀자 스르르 철문이 열린다. 그리고 안쪽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들어오세요.”


누구보고 한 말인가? 동진은 입술을 깨물다 천천히 문을 열어젖혔다. 예배당 안의 광경, 도합 일곱 명의 사람들이 바닥에 엎드려 있다. 나비넥타이 남자와 홍 씨를 비롯해서 녀석의 뒤를 따랐던 다섯 명의 남학생들이다. 그들은 바싹 엎드린 채,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다. 얼굴가득 공포와 두려움을 머금은 채. 그 맨 앞에 녀석이 서 있다.


동진은 천천히 남학생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군용 칼은 바로 꺼내 쓸 수 있도록 주머니에 넣어 두었다. 절대 놓치거나 잃어버려선 안 된다.


“왜요? 그 칼로 절 위협하시려고요? 이 녀석들처럼 아저씨도 절 괴롭히려는 겁니까?”


녀석이 엎드려있던 남학생의 머리를 발로 툭 찬다. 남학생은 저항할 생각도 못한 채, 더욱 고개를 처박는다. 동진은 길게 심호흡을 해본 후, 입을 땠다.


“매번 이런 식인가?”


“매번 이런 식입니다. 당연하잖습니까.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죠.”


유리알처럼 투명한 눈동자에 짙은 먹구름이 밀려든다. 청이가 보았다던 검은 기류, 혹시 저것과 비슷할지 모르겠다.


“혹시, 네가 연수냐?”


녀석의 표정이 천천히 일그러진다.


“연수는 죽었습니다.”


이미 죽었단다. 그렇지만 본능적으로 느껴진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디 계시지?”


부모님을 찾자, 녀석은 알게 모르게 나비넥타이 남자를 쏘아봤다. 그러자 남자의 몸에서 경련이 일어난다. 아버지, 아니 새 아빠라는 사람을 찾은 것 같다. 그렇다면 녀석의 어머니는 어떻게 됐을까.


“어머니는 죽었어요. 자살해 버렸죠. 평생 고생만 하시던 분인데, 미련하게도 지옥을 선택하고 말았죠.”


녀석의 대답에 동진은 가슴이 턱 막혔다. 마치 남일 이야기하듯 말하는데, 표정하나 변화가 없다. 대신 눈동자에 휘몰아치는 검은 기류가 점점 거세진다.


“그런데, 그게 궁금한 게 아니잖아요.”


“맞아. 내가 궁금한 건.”


동진은 천천히 녀석에게로 다가갔다. 거리가 점점 좁혀질수록 녀석의 눈동자에 어떤 감정이 휘몰아친다. 그건 먹이를 얻었다는 포식자의 눈빛이다.


“네가 어떻게 살아 돌아왔냐는 거야.”


녀석의 입 꼬리가 위쪽으로 말려 올라간다. 동진은 발끝에 힘을 주며 겨우 걸음을 땠다. 녀석에게 다가갈수록 압력이 심해진다. 마치 모래사장을 걷는 것처럼 신발에서 저항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멈출 수가 없다. 암으로 죽었고, 이미 장례까지 치른 연수, 대체 어떻게 살아 돌아온 걸까?


만일, 살아 돌아온 것이 아니라면, 그럼 무엇인가? 암이 나았다는 뜻일까? 이는, 수겸의 스승이라는 만신의 경우와 비슷했다. 만신 역시 자살 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났다. 의문이 꼬리를 물지만, 모든 열쇠는 녀석이 쥐고 있었다. 청이가 앓고 있는 병의 치료법이 어쩌면 저 아이에게 있을 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그게 아니라면······.


“아저씨는 믿음이 부족하네요. 마치 어린아이가 칼자루를 든 것 같아요. 쓸 줄도 모르고 위험하기만 해요.”


녀석이 몇 번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요. 제가 도와드리죠. 어디 스스로의 믿음을 시험해 보세요. 어쩌면 진실 된 믿음을 얻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요.”


동진은 잠시 어지럼증을 느끼고 비틀거렸다. 녀석은 철문 쪽으로 다가가더니 슬쩍 뒤를 돌아다본다. 녀석의 얼굴에 비웃음이 가득하다.


“전 그 반대에 걸겠습니다. 깊은 내면에 자리한 욕망, 그 추악한 본성에게.”



동진은 도망치듯 건물을 빠져 나왔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고, 양손은 간지럽다 못해 쓰라리다. 밖으로 나오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이마의 식은땀을 식혀준다. 절로 한숨이 뿜어져 나왔다. 결국 아무것도 없이 시간낭비만 해버렸다. 동진은 핸드폰을 꺼내들고 일단 최 교수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교수님, 연수라는 남학생 있잖습니까. 그 아이가 지금······.”


‘나 지금 바쁘니까, 다음에 이야기하세. 이따가 성당으로 오든지.’


최 교수가 먼저 전화를 끊어 버린다. 동진은 고개를 갸웃하며 핸드폰 화면을 응시했다. 바쁜 일이라도 있나? 전화 받을 상황이 아닌가보다. 나중에 다시 걸어야겠다.


“아유, 지저분해. 옷 꼴이 저게 뭐야?”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이쪽을 보고 한소리 해댄다. 동진은 멀뚱히 서서 자신의 옷을 내려다봤다. 단벌 청바지에 다 헤진 잠바지만, 지저분하진 않다. 물론 조금 너저분한 면이 없진 않았는데, 세탁기로만 돌리니 손목과 목깃에 때가 탔다. 그래도 대놓고 지저분하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말이다. 동진은 쓴웃음을 지으며 갈 길을 살폈다. 성당으로 돌아가려면 버스를 타야 하는데, 정류장은 횡단보도를 건너야 했다.


30분쯤 버스를 기다렸을까? 슬슬 지쳐올 무렵, 버스가 온다. 카드를 찍고 버스에 올랐는데, 사람들이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하다. 동진은 손잡이를 잡은 채, 사람들을 뚫고 뒤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다음 정류장에서 사람들이 버스를 타게 되면 그나마도 올라 탈 자리가 없을 터였기 때문이다.


“아이씨! 짜증나게.”


몸에 가방이 밀린 여학생이 대뜸 화를 낸다.


“죄송합니다.”


동진은 연신 고개를 숙였지만, 이번에는 잘 서 있던 아줌마가 버럭 고함을 내지른다.


“그냥 가만히 좀 있어요! 왜 밀고 난리야.”


사람들이 웅성웅성 대며 이쪽을 쳐다본다. 그들의 얼굴은 짜증으로 얼룩져 있다. 동진은 슬쩍 헛기침을 하며 손잡이를 붙잡고 섰다.



드디어 동네에 도착했다. 갑갑한 버스에서 벗어나니, 절로 한숨이 뿜어져 나온다. 40분 정도 버스를 탄 것 같은데, 그 시간이 마치 몇 시간처럼 느껴진다. 하긴, 사람들이 짜증도 났을 게다. 일과 공부에 지친 사람들에게 만원버스는 고역일 테니까.


어쨌든 이젠 성당으로 돌아가야 한다. 연수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장 신부님에게 알려야했다. 죽은 줄 알았던 소년이 살아있는 것, 이는 기적이나 미스터리쯤으로 해석할 일이 아니다. 일차적으로 봉수가 준 서류 정보가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 정신없이 바쁘다고 했잖은가. 그렇지만, 김무영 과장의 정보는 틀릴 리가 없다. 어찌됐든, 이해할 수 없는 일임은 확실하다.


동진은 고개를 푹 숙이고 걷다가, 요란한 자동차 경적 소리에 눈을 치떴다. 자동차 범퍼가 무릎 바로 앞에 멈춰서 있다. 운전자가 조금만 늦게 브레이크를 밟았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 했다.


“야 인마! 미쳤어?”


운전석 창문을 내리고 아저씨가 고함을 질러댄다. 동진은 연신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렇지만 아저씨는 계속 이쪽을 향해 욕지거리를 해댄다. 동진은 걸음을 빨리 해 골목길로 향했다. 딴 생각을 하느라 차를 피하지 못한 건 잘못이다. 그렇지만, 이런 이면도로에서는 차보다 보행자가 우선 아닌가. 뭐 이미 지나간 일이니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성당에 도착하니 본당 문은 굳게 잠겨 있다. 도둑이나 노숙자들이 본당에 들어갈 것을 염두에 둔 조치란다. 발걸음을 돌려 교육관 쪽으로 향해본다. 교육관 대기실 탁자는 텅 비어있다. 한쪽에 비치된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한 모금 마시니 속이 따스해진다.


“어머? 동진씨가 이 시간에 웬일이세요?”


맑고 상쾌한 목소리가 들린다. 언제 들어도 반가운 목소리, 청이였다. 동진은 자리에서 일어나다 슬쩍 미간을 좁혔다. 미니스커트에 짧은 민소매 차림의 청이가 이쪽을 보고 환하게 웃고 있다. 날씨도 추운데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옷차림이 저런가? 물론 옷차림을 가지고 이상하다 여기는 건 아니다. 평소의 청이 답지 않아서다.


청이 뒤로 훤칠하고 잘 생긴 남자가 서 있다.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남자를 소개했다.


“동진씨는 처음 보죠? 민호씨에요.”


남자가 대뜸 악수를 건넨다. 동진은 슬쩍 고개를 숙이며 남자의 손을 잡아갔다.


“이민호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이동진이라고 합니다.”


이민호라는 남자는 자연스럽게 청이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아이 왜 이러세요. 부끄럽게.”


“뭐가 부끄러워? 애인끼리.”


청이는 새빨갛게 얼굴을 붉히더니 부자연스럽게 허리에 감긴 팔을 때낸다. 동진은 다시 탁자에 앉았다.


“그런데 신부님께서는 어디 가셨어요?”


청이의 물음에 동진은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요즘 바쁜 신가 봅니다. 며칠 후 성령세미나가 있다고 하셨는데, 준비할 일이 많다고 하셨지요.”


“성령세미나요?”


“예. 외부에서 다른 교구 신부님들이 오신다고 합니다. 미사도 직접 집전하시고, 성령세미나도 열 계획이랍니다.”


동진은 말을 이으며 미간을 좁혔다. 청이가 의자에 앉은 채 다리를 꼬고 있다. 덕분에 시선을 어디다 둬야 할 지 민망해진다. 남자는 청이 뒤에 서서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다정하게 군다.


“그러면 우리도 미사에 참석해야겠네. 이럴 때 우리가 빠지면 장 신부님도 섭섭해 하실 거야.”


“맞아요. 게다가 성령세미나에 참석하면 은총을 많이 받을 수 있대요. 저도 꼭 참석하고 싶어요.”


둘이 사이가 좋아 보인다. 동진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미소를 지었다. 청이가 검사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했다. 치료약도 없는 병에 걸렸다며 절망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저렇게 환한 미소를 지으니 마음이 놓인다. 그래, 그것으로 충분하다.


“오? 민호군 아닌가?”


장 신부님이 교육관으로 들어오시다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


“그래, 이제 박사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별 말씀을요. 제가 한 게 뭐 있다고요”


민호란 남자가 과장되게 웃으며 손사래를 친다.


“미국 유명한 의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며? 거기서 학위를 받은 건 대단한 일이라던데. 최 교수도 칭찬이 자자하던걸?”


장 신부님이 자랑스럽게 웃음을 터트린다. 청이 역시 한껏 기뻐했다.


“우리 작은 아빠도 민호씨가 대단하다고 하셨어요. 그 대학에서 학위 받는 거 보통일이 아니잖아요.”


“하하하. 뭘요.”


남자가 머리를 긁적이더니 호탕하게 웃는다. 장 신부님은 탁자 쪽으로 다가오다 이쪽을 한번 돌아본다.


“동진이 왔구나. 그래, 성당일은 끝났나?”


신부님의 물음에 동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런대로 마무리되고······.”


“그냥 다른 막노동판을 구해보는 건 어떤가? 거기 일당도 적다며?”


뭐라 답하려는데, 남자가 먼저 나선다.


“무슨 일 하시는데요? 큰 건축일 하시나봅니다?”


“아닙니다. 그냥 일용직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의 대답에 남자가 크게 웃음을 터트린다.


“막노동판에서 일하려면 잘 먹어야 하는데, 식사는 하셨습니까?”


“아직 전입니다.”


“그럼 같이 나가시죠. 저희도 아직 전입니다.”


같이 밥을 먹잔다. 하루 종일 굶어 배가 고팠지만, 사양하고 싶다. 왠지 방해하는 것 같고, 지금 이 자리도 솔직히 편치 않다.


“아닙니다. 집에 일이 있어서 가봐야 합니다.”


“하긴 뭐, 그만 들어가 쉬셔야죠. 막노동판에서 일을 구하려면 일찍 일어나야······.”


말을 잇던 남자는 곁에 서 있던 청이가 팔꿈치로 옆구리를 치자, 입을 다문다.


“오늘 반가웠습니다.”


동진은 빙긋이 미소를 지으며 남자에게 악수를 청했다. 남자는 마지못해 악수를 받더니 등을 돌려 버린다. 동진은 장 신부님께 다가가 고개를 숙였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최 교수님께 전할 말이 있는데······.”


“자네가 직접 하게. 나도 바쁘다네. 그런데 민호야, 자네 아버지께서 이번에 성당에 기부를 하시겠다고?”


장 신부님의 관심은 온통 민호라는 남자에게 쏠려 있다. 기부란 말에 남자가 호탕하게 대소를 터트린다.


“얼마 안 되는 돈입니다. 10억 정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만, 제가 좀 더 보채보지요.”


“어이쿠. 그래주면 고맙지! 요즘 성당 제정 상태가 말이 아니라서 말이야. 자네와 아버지는 나중에 천국에 갈 걸세! 그건 내가 보장하지!”


“하하하. 듣기만 해도 좋은 말씀입니다. 신부님께서 보장하신다니, 아버지께 당장 전화해야겠는걸요?”


남자의 호언장담에 청이가 깔깔대며 웃는다. 그 맑고 청아한 웃음소리를 뒤로하고 동진은 교육관을 나섰다. 어디선가 차가운 바람이 불어온다. 등에 난 식은땀으로 바람은 더욱 차갑게 느껴졌다. 동진은 성당 마당에서 맑게 갠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래, 이런 날이 좋은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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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저녁 -69 16.07.13 515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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