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김영남 님의 서재입니다.

아보미나티오

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완결

김영남
작품등록일 :
2016.04.16 23:31
최근연재일 :
2017.03.19 01:53
연재수 :
115 회
조회수 :
43,801
추천수 :
528
글자수 :
687,446

작성
17.01.19 01:22
조회
210
추천
3
글자
17쪽

저녁 -80

DUMMY

문 밖은 어둡다. 그냥 어두운 것이 아니라, 한치 앞도 볼 수 없을 암흑이다. 그리고 저 멀리서 불빛이 반짝이고 있다. 동진은 자신도 모르게 잠바 안주머니에서 군용 칼을 꺼내들었다. 환한 불빛이지만, 왠지 모를 불안감이 느껴진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내니, 불빛이 선명해진다. 가로등이다. 환하게 반짝이는 가로등 불빛, 그 아래 두 사람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엄마, 오빠 언제와?”


“왜? 오빠가 보고 싶니?”


“엄마도 참, 그게 아니라 오빠가 이번에 나오면 나 시계 사준다고 했단 말이야.”


“시계? 너 시계 있잖아.”


“엄마, 오빠가 신학교 가더니 철 들었나봐. 저번에 내 시계 보더니 너무 낡았다면서 하나 사준다고 약속했어.”


“오빠가 그랬어? 걔도 참······.”


‘쨍그랑.’


군용 칼이 힘없이 땅바닥을 나뒹군다. 동진은 바닥에 떨어진 칼을 주우려 했다. 그렇지만, 손이 너무 떨려서 칼을 집을 수조차 없다. 그토록, 꿈에서도 만나고 싶었던 가족. 그들이 바로 눈앞에 있다. 문득 가로등 불빛이 깜빡거리기 시작한다. 동진은 급히 고개를 쳐들고 두 모녀를 응시했다. 그들은 두려움에 찬 눈으로 가로등을 올려다보고 있다.


‘안 돼!’


부리나케 칼을 움켜쥐고, 가로등을 향해 달려갔다. 숨이 막히고 심장이 쿵쿵댔지만, 멈출 수 없다. 일순 깜박거리던 가로등 불빛이 ‘퍽’하고 나가 버린다.


“엄마 무서워!”


두려움에 떨고 있는 모녀에게 검은 그림자가 다가든다.


‘한동만!’


동진은 괴성을 질러대며 그림자에게 쇄도했다.


‘죽어! 죽어버리라고!’


달려가던 자세 그대로, 그림자의 목 부위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서걱’하고 소름 끼치는 음향과 함께, 얼굴로 뜨거운 액체가 튄다. 그림자의 몸이 부르르 떨리더니, 이내 축 늘어진다.


‘죽였어! 내가 죽였다고! 드디어 복수했단 말이야!’


‘확’하고 가로등 불빛이 켜진다. 피가 낭자한 아스팔트길, 두 모녀가 쓰러져 있다. 그들은 원한에 찬 눈으로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동진은 부르르 몸을 떨며 앞섬을 내려다봤다. 가슴이 온통 피로 얼룩져 있다. 칼끝에서 ‘똑’하고 핏방울이 떨어져 내린다.


“왜 우릴 죽인거야?”


입에서 핏물을 게워내며, 소녀가 증오어린 외침을 토한다.


“시계 사준다고 약속했잖아. 그런데 왜 거짓말 한 거야? 왜 날 속인 거냐고!”


동진은 정신없이 뒤로 물러났다.


‘내, 내가 아니야! 내가 아니라고!’


“너야. 네가 우릴 죽인거야! 우리를 죽게 내버려 둔 건 바로 너라고!”


‘으아악!’


도망가야 한다. 빨리 어디로든 도망가야 했다. 미친 듯이 달렸지만, 등 뒤에서는 여전히 가로등 불빛이 반짝이고 있다.


“이동진 돌아와!”


등 뒤에서 외침이 터진다. 장 신부님 목소리다.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가까스로 고개를 돌렸다. 장 신부님이 팔을 편 채,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모든 것이 하느님의 뜻인가? 자네는 그 잘난 기도만 해왔어. 그러니까 어떻던가? 하느님께서 자네를 지켜주시던가?”


‘개소리!’


“그게 아니라면, 자비와 사랑으로 가득한 하느님께서 자네를 선택한 거로군. 자네는 은총을 받은 거야. 마음을 드높여 기뻐해야 해. 이건 자네를 위한 주 하느님의 뜻이거든.”


동진은 들고 있던 칼을 장 신부님의 목에 겨눴다.


‘꺼져요! 내 앞에서 꺼지라고요!’


“자네, 신부님께 너무하는 것 아닌가?”


어느 샌가 바로 옆에서 최 교수가 나타난다.


“자네는 증오로 가득 찼군. 짐승 새끼에 불과해!”


최 교수의 호통에 장 신부님마저 화난 표정을 짓는다.


“최 교수! 저런 놈한테는 말이 필요 없어. 매가 약이야. 고통을 줘야 돼!”


최 교수는 얼굴 가득 비웃음을 머금었다.


“아직도 모르겠나? 넌 배신당한거야. 하느님 따위는 없어.”


장 신부님이 답한다.


“시련을 준 거라고? 웃기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어떤 신이 시련을 통해 믿음을 강요하나? 게다가 희생? 누굴 위한 희생? 네 놈이 믿고 있는 그 잘난 하느님을 위한 희생 말인가?”


“하느님이 널 자식과 같이 사랑한다고? 거짓말! 그럼 지옥은 왜 있는데? 어떤 신이 사랑하는 자식을 지옥으로 보내나?”


동진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당장이라도 휘두르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하하하! 당신은 바보에요. 뭘 망설이는 거예요?”


단청의 목소리다. 그녀가 ‘또각또각’ 발소리를 내며 일행 쪽으로 걸어온다.


“죽여요. 쉽잖아요. 이건 기회에요.”


청이의 속삭임이 들려온다.


“복수를 하는 거예요. 당신을 이렇게 만든 놈들한테요. 당신 인생을 망친 놈들이라고요.”


‘······.’


“뭘 망설여요? 신은 없어요. 그건 동진씨도 잘 알잖아요. 칼을 들어요. 들어서 심장을 찔러요. 죽여, 어서 죽여 버리라고!”


‘크으윽!’


꽉 다문 입술 사이로 신음이 터져 나온다. 양손으로 칼자루를 움켜쥔 채, 마음속으로 괴성을 질러댔다. 문득 꿈결처럼 한동만의 목소리가 귓가를 메아리친다.


‘저희 죄를 사하여 주시고, 저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악에서 구하소서.’


칼을 쥔 손이 아파온다. 마치 불구덩이에 손을 밀어 넣은 것 같은 가혹한 고통, 정신이 번쩍 든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경멸과 증오 찬 눈동자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 칼날이 번뜩인다.


‘푸욱!’


동진은 칼 손잡이를 놓고 뒤로 물러났다. 그녀가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친다. 그러고선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복부에 박힌 칼자루를 내려다본다.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단청, 아니 만신이라 불린 이설화가 자리에 주저앉아 무서운 눈으로 쏘아본다.


“죽이고 싶었잖아. 복수할 일념으로 이제까지 살아왔으면서 왜 용서한 거야.”


만신이 발악적으로 외친다. 동진은 조용히 입을 땠다.


‘용서 하지 않았어. 조금, 그 사람을 이해했을 뿐이지’


“거짓말! 네놈 마음속은 증오와 혐오로 가득해. 끝까지 자신을 속이는구나. 더러워, 위선자!”


만신의 몸이 역한 냄새와 함께 타들어간다. 아니 정확하게는 용암에 빠진 것처럼 불타오르며 바닥으로 잠겨든다.


“이건 끝이 아니야. 시작이지.”


만신은 비웃음 섞인 눈으로 올려다본다. 이미 목까지 바닥에 잠겨들었지만, 그녀는 웃고 있었다.


“애초부터 정해져 있었던 숙명의 시작······.”


말을 끝으로 만신의 몸은 바닥으로 사라져 버린다.



무겁게 내려앉은 눈을 힘겹게 떠본다. 잠깐 졸았던 걸까? 그게 아니다. 몸이 어느새 본당 단상 위에까지 올라와 있다. 한쪽 옆에 만신 이설화가 쓰러져 있다. 어떻게 단상 위까지 올라왔는지 알고 싶지도 않다.


너무 많은 심력을 소모해 머리가 어지럽다. 동진은 단상 위 계단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제야 경기장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멍청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웅성거리던 사람들 몇이 밖으로 뛰쳐나가자, 너나 할 것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입구 쪽으로 달려간다.


‘도대체, 언제까지······.’


길게 한숨이 나온다.


[오후 23시 30분, 구례시]


하늘신교에서 내려온 일행은 차부터 찾았다. 수겸이는 거의 탈진상태였고, 청이 역시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최 교수가 미간을 좁힌 채, 담배를 입에 문다.


“혹시나 해서 숙소를 예약해 뒀는데 다행이군 그래.”


동진은 차 시동을 켜다 말고 고개를 주억였다. 그의 말이 맞다. 이대로는 돌아가기 힘들다. 일행들 모두 심신이 너무나 고단한 상태였다. 최 교수는 차창 밖으로 담배 연기를 내뿜고는 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미리 묵을 숙소에 연락하려나 보다.


“하루 만에 돌아오기 힘들었으니까. 사실 장 신부가 먼저 제안한 거지.”


“신부님이요?”


“근처 성당에서 하루 신세질 예정이야. 미리 연락해뒀다고 하더군.”


아마 청이 때문이리라. 그녀에게 가장 안전한 곳은 성당뿐이었다.



산을 내려와 시내로 들어서니, 멀리 성당 십자가가 보인다. 차가 신호에 걸리자 동진은 룸미러로 뒷자리를 살폈다. 수겸이는 곯아떨어져 있고, 청이는 멍한 시선을 창밖에 두고 있다. 웬일인지 아무 말도 않는다.


“괜찮아요?”


그의 물음에 청이가 룸미러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살짝 미소를 지어준다. 한없이 슬퍼 보이는 미소다. 하늘신교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경험상, 유쾌한 일은 아니었을 게다. 시골 성당은 규모가 매우 작았다. 그렇지만, 갖출 건 다 갖춘 성당이다. 성당 주차장에 차를 세운 동진은 급히 밖으로 나와 뒷자리 문을 열었다. 청이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내려선다.


“고마워요.”


“허이고, 지극정성이야.”


최 교수가 한소리 해댄다.


[10월 3일, 오전 01시 20분, 구례시 외곽 성당]


수녀님은 청이가 안전에게 잠을 청할 수 있도록 거처에 방을 마련해 주셨다. 장 신부님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반면, 나머지 일행은 근처 여관에서 묵기로 했다. 수녀님과 함께 교육관으로 들어가던 청이가 뒤를 돌아보며 가볍게 손을 흔들어준다.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의 표정에서 짙은 피곤함이 엿보인다.


뭔가 물어보고 싶었지만, 포기했다. 그렇지만, 가슴 속 저변에서 불안감이 샘솟는다. 뭔가 그녀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하늘신교에 도착했을 때만해도 기세등등했던 청이다. 그런데 지금은 왠지 모르게 깊은 슬픔이, 그보다 더한 나약함이 느껴진다.


“빨리 가요. 피곤해 죽겠네.”


언제 잠을 깼는지 수겸이가 크게 하품을 해댄다. 동진은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며 발걸음을 돌렸다.



여관은 성당에서 가깝다. 3분여 걸어가다 보니, 여관건물이 나오는데 그 앞에 편의점이 보인다. 이때다 싶은지 최 교수가 편의점으로 달려 들어간다. 뭘 사려는지 안 봐도 뻔했다. 여관으로 들어간 일행은 대충 화장실에서 몸을 씻었다. 그러고 나니, 허기가 진다. 동진은 화장실에서 나오다 말고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벌써 방 한가운데 술상이 차려져 있다. 그래, 이런 날에는 술이 필요하다.


대충 끓인 라면을 앞에 두고, 최 교수가 연신 소주잔을 들이킨다.


“기분이 아주 더럽구먼.”


동진은 소주병을 들어 빈 잔을 술을 채워주었다.


“저도 한잔 주세요.”


수겸이가 잔을 내밀자, 최 교수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자네도 술 좋아하나? 아참, 잊고 있었네. 뱀술은 좋아했었지.”


수겸이가 입을 삐죽댄다.


“그건 약이었다고 몇 번이나 말씀드려야 해요?”


동진은 쓴웃음을 머금으며 소주잔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오늘은 정말 술이 달다. 그렇게 한동안 말없이 술잔만 오간다. 말 많던 수겸 역시 조용하다. 하늘신교에서 있었던 일 때문이리라. 결코 유쾌하지 않은 경험일 테고 말이다.


환상은 가장 아픈 곳을 찌른다. 그 고통은 현실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하늘신교에서 최 교수와 수겸, 청이는 기절한 상태로 환상을 봤을 것이다. 마음 가장 밑바닥에 자리한. 잊었던 아니 강제로 잊어야했던 어두운 기억들과 처절하게 마주했을 게다.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다니는 줄 아나?”


최 교수가 물끄러미 소주잔만 내려다본다.


“딸애 때문이야. 녀석이 갓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그 빌어먹을 신병이 왔지.”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다. 물론 수겸이는 모르겠지만,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그렇기에 들으라고 하는 이야기가 아님도 알고 있다. 말하지 않으면, 누군가에게 털어놓지 않으면 결코 참을 수 없기에 그러는 것일 게다.


“신병이요?”


수겸의 물음에 최 교수가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무병 말일세. 마누라는 아이를 고치겠다며 용하다는 무당을 찾아다녔지. 그렇지만, 난 병원을 택했어.”


최 교수는 연신 소주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동진은 그의 빈 잔에 소주를 따라줬다.


“병원에서 그러더군. 일시적인 정신착란이라고 말이야.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환영에 이끌려 거리를 방황하고 다닌다면, 정신병이 맞겠지.”


“그래서 내림굿을 받았나요?”


수겸의 물음에 최 교수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당들이 하나같이 그러더군. 자네 말대로 내림굿을 받아야 한다고 말일세. 그런데 내가 뜯어 말렸지. 우리 딸은 공부도 잘 하고 착한 아이였어. 무당이나 하고 있을 애가 아니었단 말이야.”


동진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아버지 입장에서, 딸애가 무당이 되는 것을 환영하는 사람은 없다. 무당이 어떤지 알면 더하다. 무당의 삶은 고달프기 때문이다. 여러 무당들을 겪어보며, 그들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어쩌면 그것은 모든 종교인들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것, 그것은 자신의 고통을 돌볼 여력이 없음을 의미한다.


사람은 행복을 먹고 사는 존재다. 내 주위사람이 행복하면, 스스로도 행복해진다. 그렇지만 내게 오는 모든 사람들이 불행하면, 정작 나 자신도 불행해지기 마련. 무당을 찾아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행한 사람들이다.


최 교수는 술잔을 입에 털어 넣더니 갑자기 ‘큭큭’대며 웃었다.


“딸애는 신병이 오고 나서 육 개월 만에 자살해 버렸지. 그런데, 그랬는데······.”


눈살이 와락 일그러진다.


“딸애가, 아까 내게 와서 그러더군. 왜 말린 거냐고. 아빠가 안 말렸으면, 지금쯤 멀쩡히 살아 있을 텐데······.”


최 교수는 뒷말을 잇지 않았다. 그렇지만 눈물도 흘리지 않는다. 자식을 가슴 속에 묻은 부모의 심정, 지금은 그 눈물조차 말랐으리라. 슬플 때는 눈물이 난다. 그렇지만, 너무 슬프면 가슴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가 모든 것을 태워버린다. 종국에는 증오만이 빈자리를 가득 채운다.


최 교수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옆에 앉은 수겸에게 술을 따라줬다.


“자네는 쌩쌩해 보이는군. 허긴 뭐 인생을 살아봤어야지.”


술잔을 받던 수겸이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이거 왜 이러세요? 저도 순탄치 않은 삶을 산 사람이에요. 이건 어릴 적, 짱돌에 맞은 상처죠. 그때 죽다 살아났다니까요.”


수겸이가 앞머리를 쓸어 올려 이마를 보여준다. 이마 위쪽에 뭔가에 맞은 흉터가 보인다. 그 흉터를 보는 순간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진다. 동진은 다시금 소주병을 집어 들었다.


“아이고, 거 흉터 하나가지고 엄청 재는구먼.”


최 교수는 푸념을 하다 말고, 쓴웃음을 머금는다.


“그래 맞아. 자네 인생도 평범한 삶은 아니었군그래.”


무슨 뜻일까? 무당의 삶에 공감했다는 의미일까?


“그냥 인생은 아니었다니?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무당은 말일세. 빙의가 이루어지는 순간, 그 빙의된 혼과 마음을 공유하게 돼.”


최 교수는 술잔을 들이키고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설명을 이어갔다.


“세상살이 힘들고 지쳐서 떠난 사람도 많고, 졸지에 요절한 사람, 교통사고로 딸자식 다 내버려두고 떠난 부모. 그들의 마음을 자네는 이해할 수 있겠나?”


슬며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없다. 그건 영원히 불가능하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무수히 많은 변화를 겪지. 때론 기쁘고, 슬프고, 화나고, 절망에 빠질 때가 있어. 그것들은 우리 삶을 직접적으로 변화시키네. 그렇지만, 그 모든 변화들을 다 합쳐도, 1퍼센트야. 나머지 99 퍼센트의 변화는 죽음이 관장하는 걸세.”


죽음이란, 단절이다. 그 자체로 끝이다. 삶에서 그 보다 큰 변화는 없다. 동진은 소주잔을 채우다가 슬쩍 수겸이 눈치를 살폈다. 녀석은 허겁지겁 라면을 떠먹고 있다. 나이 어린 친구지만, 마음 쓰는 일에는 누구보다 강한 사람처럼 보인다. 그게 아니었다면, 이제까지 버텨내지 못했을 게다.


생각이 미치자, 문득 하늘신교에서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수겸이가 외운 귀불주문이 아니었다면, 지금도 아니 어쩌면 영원토록 차를 운전하고 있을지 몰랐다.


“그런데, 어떻게 알아챈 거지?”


수겸이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이내 미소를 짓는다.


“마음에 대한 집중이죠. 빙의 상태에서 상대에게 마음을 빼앗겨버리면, 영원히 돌아올 수 없거든요.”


무당은 빙의상태에서 빙의된 혼령과 교감을 이룬다. 혼령이 분노를 느끼거나 극도의 슬픔에 빠질 때, 무당 역시 그와 같은 심리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걸 제어하지 못하면, 무당은 혼에게 정신을 지배당하거나, 정신착란을 일으킨다. 때문에 마음을 집중해야 했다. 말로는 쉽지만, 슬픔이나 분노에 휩싸여 흥분한 상태에서는 정신을 집중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렇다면, 그 힘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마음에 대한 집중이라. 훈련이 필요한가?”


수겸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훈련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어요. 바로 믿음이죠.”


“믿음······.”


“믿음이 없으면 마음을 집중할 수 없어요.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해주는 힘이니까요.”


동진은 물끄러미 앞에 놓인 소주잔을 내려다봤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아보미나티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86 저녁 -86 17.01.24 352 2 16쪽
85 저녁 -85 17.01.23 285 2 15쪽
84 저녁 -84 17.01.23 386 2 14쪽
83 저녁 -83 +1 17.01.22 205 2 14쪽
82 저녁 -82 17.01.20 313 3 15쪽
81 저녁 -81 17.01.19 257 2 11쪽
» 저녁 -80 17.01.19 211 3 17쪽
79 저녁 -79 17.01.17 248 3 15쪽
78 저녁 -78 +1 17.01.16 262 3 11쪽
77 저녁 -77 17.01.15 241 2 10쪽
76 저녁 -76 16.07.23 323 3 10쪽
75 저녁 -75 16.07.19 936 5 15쪽
74 저녁 -74 16.07.19 404 4 11쪽
73 저녁 -73 16.07.17 1,083 3 10쪽
72 저녁 -72 16.07.16 354 4 9쪽
71 저녁 -71 16.07.14 375 6 12쪽
70 저녁 -70 16.07.13 292 4 11쪽
69 저녁 -69 16.07.13 515 5 12쪽
68 저녁 -68 16.07.11 277 3 13쪽
67 저녁 -67 16.07.11 291 4 12쪽
66 저녁 -66 16.07.09 307 4 13쪽
65 저녁 -65 16.07.09 403 3 12쪽
64 저녁 -64 16.07.08 288 3 10쪽
63 저녁 -63 16.07.05 375 3 11쪽
62 저녁 -62 16.07.04 369 4 14쪽
61 저녁 -61 16.07.02 614 4 14쪽
60 저녁 -60 16.07.01 513 3 13쪽
59 저녁 -59 16.06.30 362 3 19쪽
58 저녁 -58 16.06.29 392 5 12쪽
57 저녁 -57 16.06.29 303 5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