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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남 님의 서재입니다.

아보미나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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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김영남
작품등록일 :
2016.04.16 23:31
최근연재일 :
2017.03.19 01:53
연재수 :
1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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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811
추천수 :
528
글자수 :
687,446

작성
16.07.11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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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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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2쪽

저녁 -67

DUMMY

“홍 씨라면 3층에 사는 집주인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동진의 물음에 아주머니는 아직도 분이 안 풀린다는 듯 찡그린 인상을 풀지 않았다.


“그래. 그 홍 씨라는 인간이 아주 못된 놈이야. 집 세 안낸다고 맨날 연수 엄마를 달달 볶았다니까. 게다가 그 아들놈도 지아비를 꼭 닮았지.”


“아들이라면, 연수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니, 연수는 착하지. 홍 씨 아들놈 말이야. 그놈이 연수랑 같은 반인데 패거리 짓고 다니면서 연수를 얼마나 괴롭히던지 원.”


홍 씨에게 아들이 있는데, 연수를 많이 괴롭혔나보다. 이래저래 문제가 복잡해진다. 최 교수가 눈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답니까?”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돼. 그러다 불이 난 거지.”


아주머니의 대답에 동진은 미간을 좁혔다. 다른 일을 차치하더라도, 연수는 분명 암으로 죽었다. 그렇다면 아주머니가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다. 남의 가정사를 그렇게 속속들이 잘 알고 계시면서 정작 가장 중요한 연수의 사망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럼, 연수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좀 만나봐야 하는데요.”


“글쎄. 그건 모르지. 나도 교통사고를 당해서 몇 주 병원에 누워있었는데?”


몇 주일 병원신세를 졌다면, 아주머니가 모르는 건 당연하다. 동진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잿더미로 변한 집을 돌아봤다. 아주머니는 대문 안으로 들어가다 말고 뭔가 생각이 났는지 일행을 부른다.


“그럼 혹시 거길 가봐. 그 놈이 자주 가는 신교인지 뭔지가 있는데.”


아주머니가 대략적인 위치를 설명해 주신다.



길가 사거리에 작은 점포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신교는 상가 건물 4층에 위치해 있다. 동진과 최 교수는 길에 서서 건물을 올려다보다 표정을 굳혔다. 허름한 상가 건물인데, 칠이 여기저기 벗겨져 있다. 창문에는 십자가 문양이 그러져 있는데, 무슨 울긋불긋한 셀로판지를 붙여 놨다. 한눈에 보기에도 조악한 글씨체로 ‘하늘신교’라 쓰여 있다. 최 교수가 인상을 찌푸리며 담배를 문다.


“저건 하늘신교잖아. 영 들어가기 싫은데?”


“저는 들어가겠습니다.”


“쯧, 이러다 또 저번처럼 그 꼴 나는 거 아니야?”


전날 동해 마을 회관에서 있었던 하늘신교 사건을 생각하니, 절로 등골이 시리다. 그렇지만,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들어가야 했다. 청이와 관련 있을 사건은 빼놓지 않고 조사해야 했으니까.



[오후 18시 00분, 서울, 하늘신교]


어느새 날이 어두워진다. 10월로 접어드니 해가 눈에 띄게 짧아졌다. 동진은 아픈 다리를 주무르며 상가 건물 옆에 서 있었다. 아까 낮에는 하늘신교 문이 굳게 잠겨 있어서 들어갈 수 없었다. 그렇다면,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려야 했는데, 일이 바쁜 최 교수는 그때까지 기다릴 여력이 없단다.


결국 혼자 남아 지금까지 기다린 것이다. 어쩌면 오늘 예배가 없을지도 모른다. 무턱대로 기다릴 수도 없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보통 교회라면 팻말로 예배시간을 적어두는데, 하늘신교는 그런 것도 없었다. 철제 대문에 플라스틱으로 만든 간판이 전부다. 십자가 표시가 없었다면, 신교 인줄도 몰랐을 게다.


동진은 이대로 돌아가야 할지를 생각하다가 문득 표정을 굳혔다. 몇몇 아주머니들과 아저씨들이 상가 건물로 부지런히 들어간다. 그 뒤로 간헐적으로 몇 명이 더 들어갔는데, 느낌이 좋지 않다. 동진은 한 아저씨의 뒤를 따라 건물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늘신교라 칭한 예배당은 규모가 작았다. 무슨 도장을 개조해서 만든 시설로 보이는데, 바닥은 두터운 매트가 깔려 있어 푹신푹신하다. 예배당 맨 끝에는 십자가 대신 빨간 칠로 범벅인 예수님 상이 놓여 있다. 동해 쪽 마을회관에서 본 것과 비슷하다. 동진은 미간을 좁히며 맨 끝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하늘신교 예배당 안에는 아저씨들과 아주머니들이 대부분이다. 개중에는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 몇 분도 끼여 있는데, 특이한 점은 맨 앞줄에 교복차림의 남학생 다섯이 앉아 있다는 것이다. 학교 수업이 끝났을지 잘 모르겠는데, 공손히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괴리감이 느껴진다. 게다가 녀석들 옷차림은 한껏 멋을 낸 채, 머리까지 울긋불긋 물들였다. 학교에서 소위 잘 나가는 녀석들 쯤으로 보였는데, 이런 곳에 와 있다니 조금 의외다.


거의 40명이 넘는 사람들이 예배당 안을 가득 메우자, 실내 공기가 탁하다. 창문이라도 열어놓으면 좋으련만, 걸쇠로 굳게 잠겨 있다. 사람들이 어느 정도 모였다 싶으니, 뒤쪽에서 ‘쿵’하는 소리와 함께 철문이 닫힌다. 다행히 철문을 걸어 잠그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더니, 단상 위로 웬 40대 중반의 아저씨가 올라온다. 말끔한 양복차림인데, 빨간 나비넥타이를 맸다. 아저씨는 사람들을 휘 둘러보고 나서 큰소리로 강론을 시작했다.


“주께서 이르시되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그리하여, 나를 믿는다고 말로만 하는 자는 천국에 갈 수 없고, 나의 가르침대로 행하는 자가 천국에 가리라.”


“믿습니다!”


사람들이 믿겠다고 외친다. 옆에 앉은 아주머니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이쪽을 쳐다본다. 동진은 슬쩍 주저하다가 같이 믿겠다고 얼른 외쳤다.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리라. 죄를 범하는 자들아.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오직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두 번째 사망이라!”


“아멘!”


“진실로 너희들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우리의 나라를 볼 수 없으리라. 그리하여 여기 모인 선택받은 사람들이여. 네 주를 믿지 아니하고, 네 주를 의심하는 자들을 불쌍히 여겨, 우리의 계율을 전파하리라.”


“옳소!”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열광한다. 동진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며 마주 박수를 쳤다.


“그럼, 이제 홍 형제님의 말씀을 들어봅시다. 그분께서 말씀하시는 구원의 길을 우리도 함께 걸어갑시다.”


나비넥타이 남자가 옆으로 빠지자, 배가 불룩하게 솟은 60대 아저씨가 앞으로 나선다. 그의 얼굴은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지옥은 여러분 앞에 있습니다. 지금도 한발자국씩 여러분께 다가가고 있습니다. 저는 봤어요. 지옥의 고통을, 우리에게 내려진 저주를!”


홍 씨의 외침에 곁에 앉은 아주머니의 얼굴이 두려움에 질린다.


“그래요, 저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천사가 내려와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걸 바꿀 수 있다고, 살아 숨 쉬는 이 순간이 다시없는 기회라고 말입니다. 천사는 저에게 지옥을 권하였습니다. 지옥에 가서 이제까지 지은 죄, 그 모두를 타오르는 불꽃에 태워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홍 씨가 입고 있던 웃옷을 벗어젖힌다. 그러자 여기저기에서 단발마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동진은 미간을 좁히며 홍 씨의 몸을 살폈다. 어깨에서 가슴까지 끔찍한 화상 자국이 자리했다. 저 정도 화상을 입었다면, 제법 고통스러웠을 텐데 비교적 최근 상처로 보인다.


“이 화상은 제게 내려진 축복입니다. 전 축복을 내려 받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천사께서 빛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시며, 가로되. 그대 홍석호여, 말씀을 믿는 자여, 이제 그대에게 천국을 허락하노니, 여기 올라와 우리 곁에 앉으라 하셨도다!”


“아멘! 믿습니다!”


홍 씨의 외침에 사람들이 열광한다. 작은 예배당이 쩌렁하고 울릴 지경이다. 동진은 홍석호라는 이름을 듣고 숨이 덜컥 막혔다. 김봉수 형사가 보내 준 팩스자료, 거기에 쓰여 있던 이름이다. 연수네 집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가장 먼저 달려간 사람. 바로 집주인 홍 씨의 이름 석자였다.


동진은 다시금 날카로운 눈으로 홍 씨의 몸을 살폈다. 화재가 나서 화상을 입었다면 저건 일주일도 안 된 상처다. 이 정도 수준이라면 제법 심한 3도 이상의 화상, 병원에서 오랫동안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흉터뿐이다. 물론 예전에 입은 상처 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꼭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 있다.



예배가 길게 이어지지만, 그 다음은 별것 없다. 기타를 치며 성가라는 노래를 부르고, 헌금을 내기도 했는데 강제성은 없었다. 강론이 시작된 지 2시간이 지났을 무렵, 드디어 예배가 끝난다. 사람들은 저마다 얼굴 가득 행복한 웃음을 머금은 채, 밖으로 나섰다. 동진은 사람들이 다 빠져나갈 무렵, 나비넥타이 남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홍 씨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새로 구원을 찾아오신 분이구려. 그런데 믿음이 부족해 보입니다.”


나비넥타이를 맨 남자가 대뜸 한소리 한다. 동진은 표정을 굳히다 애써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남자가 밝게 웃으며 손사래를 친다.


“믿음이 부족하니 여길 찾아온 것 아닙니까? 잘 오셨습니다. 여기서 믿음 받으시고 큰 깨달음을 얻어 가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동진은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홍 씨가 너털웃음을 터트린다.


“우리는 믿음을 전파하라는 사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열린 마음으로 우리를 따라오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하면 그리스도께서 당신에게 믿음을 허락하실 겁니다.”


“알겠습니다.”


싱겁게 대화가 끝나 버린다. 나비넥타이 남자와 홍 씨라는 사람은 더 이상 이쪽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동진은 미간을 좁히며 천천히 몸을 돌렸다. 사이비 종교를 믿는 집단인 줄 알았는데, 특별한 것은 없다. 성경을 해독하는 방법이 다르다 해서 이단이니 사이비라 칭할 수는 없었다. 믿음은 언제나 믿는 사람의 자유의지를 따르기 때문이다. 물론 이곳이 하늘신교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여겼을 게다.


그렇다고 이상한 점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저번 하늘신교처럼 무슨 기적을 베풀지도 않는다. 김무영 과장이 준 서류가 잘못되었을까? 그도 아니면, 애초부터 잘못 찾아왔는지도 모르겠다. 머릿속이 복잡해온다. 철문을 열고 나오면서, 동진은 나직하게 한숨부터 내쉬고 말았다. 하루 종일 기다렸는데, 찾은 건 아무것도 없다. 지금 와서 뭘 찾아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모든 것이 뜬구름 잡는 것처럼 희미하다. 마치 홀로 들판에 서 있는 것처럼 어디로 가야 할지 막연했다.



아래층에서 구두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동진은 입술을 깨물며 계단을 내려다가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남학생 여섯이 계단을 오르고 있다. 뒤에 선 다섯은 아까 예배에 참가했던 녀석들이다. 동진은 맨 앞에 서서 계단을 오르는 녀석을 살폈다. 교복을 입었는데 책가방은 메고 있지 않다.


녀석이 계단을 지나쳐 간다. 동진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남학생을 바라봤다. 계단을 오르고 있던 녀석이 일순 발걸음을 멈추고 이쪽을 내려다본다. 유리알처럼 투명한 눈빛, 그 안에 칼처럼 시린 냉기가 흐른다.


남학생이 다시 계단을 올라가 버린다. 동진은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숙였다. 알 수 없는 위압감, 감정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마치 인형이 쳐다보고 있는 듯한 눈빛이다. 그게 얼마나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위축을 느끼게 하는지 동진은 전날 공원에서 만난 여자를 보며 느꼈다. 그건 죽은 사람의 시선이었다.


동진은 몇 걸음 계단을 내려가다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급히 예배당으로 뛰어올라갔다. 앞을 가로막고 선 철문을 보니 두려움이 앞선다. 그렇지만, 가야하는 길이다. 양 손등이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려워온다. 이제 시험해 볼 때가 왔다. 동진은 바지 뒷주머니에 넣어둔 군용 칼을 꺼내들었다.


작가의말

오타와 비문이 많습니다. 틈나는 대로 고치고는 있지만, 만만치 않군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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