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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남 님의 서재입니다.

아보미나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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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김영남
작품등록일 :
2016.04.16 23:31
최근연재일 :
2017.03.19 01:53
연재수 :
115 회
조회수 :
43,780
추천수 :
528
글자수 :
687,446

작성
16.06.29 00:38
조회
302
추천
5
글자
11쪽

저녁 -57

DUMMY

소녀는 바로 자신의 딸이었다. 아이는 침대 위에 누워 고통에 떨고 있다. 신음소리가 바로 귓가에 메아리칠 정도다. 한수는 숨이 턱 막혀 손가락조차 움직일 수 없었다. 소녀는 딸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


“화재로 큰 화상을 입은 아이에요. 곧 죽을 테니까, 이번에는 아저씨가 직접 해보세요.”


“내 딸이 어쩌다가, 어떻게 이런 끔찍한!”


발악적인 외침에 소녀는 무심한 표정으로 책을 꺼내든다.


“알게 뭐예요. 시작하세요.”


“······.”


한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이는 눈물을 흘리며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다. 입을 벌려 뭔가 말하려고 하는데, 말을 잇지 못한다.


“저 짜증나려고 해요. 바쁘니까 이번 한번만 제가 하죠.”


소녀는 아이 앞에 책을 펼쳤다.


“당신은 어딜 가고 싶나요?”


아이가 힘겹게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마저도 온몸의 힘을 전부 쥐어짜낸 듯 필사적이다.


“여기서 하나 골라보세요.”


소녀의 재촉에 아이는 뭔가에 이끌린 듯 책에 쓰여 있는 기호들 중 하나를 고른다. 별 표시였다.


“얼음을 골랐네요? 잘 가요.”


아이가 더 할 수 없이 슬픈 표정으로 서러운 울음을 터트린다. 한수는 더듬더듬 딸아이에게로 다가갔다. 그렇지만, 아이는 어느새 죽은 듯 움직임을 멈춘다.


“오늘 왜 이렇게 바쁜지 모르겠어요. 일이 끝나려면 아직 멀었으니까, 빨리 책이나 읽으세요.”


소녀가 푸념을 해댄다. 한수는 바닥에 놓여 있는 책과 딸아이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봤다. 궁금하다.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다. 딸아이의 죽음, 그보다 아이가 어디로 갔을지 너무나 걱정됐다. 제발 아주머니처럼 강아지로 태어나지 않았으면, 아니 그보다 천국에 가길 빌었다. 착하고 순진한 딸애는 천국에 갈 자격이 충분하다고 여겼다.


“확인 해봐요.”


소녀의 재촉에 한수는 책장을 넘겼다. 그러다 미처 첫 장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책을 덮고 말았다.


“빨리 책장을 넘기세요.”


한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책 첫 페이지를 넘겼다.


작은 씨앗, 겨우내 얼어있던 땅을 뚫고 새싹이 나온다. 찬란한 햇살과 따스한 기운이 완연한 어느 봄 날, 소담스러운 꽃이 피었다. 향기로운 꽃내음과 함께 도드라진 새하얀 꽃봉오리가 세상을 향해 기지개를 켠다. 한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쉼과 동시에 얼굴가득 미소를 지었다.


이 세상 어떤 꽃보다 아름다운 꽃. 그 곁을 지나는 행인들의 입가에도 미소가 어린다. 그런데 어디선가 검은 그림자가 다가온다. 그림자는 날카로운 모종삽으로 사정없이 흙을 파헤쳤다. 힘들에 뻗어낸 뿌리를 자르고 산채로 잎사귀를 뜯어버린다. 꽃이 고통에 몸부림치며 비명을 내지른다. 그렇지만, 그림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꽃의 모가지를 부여잡고 뿌리째 땅에서 뽑아 버린다.


한수는 잠시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꽃이 다른 곳으로 옮겨지는 모양이다. 책장을 넘기자 화단으로 옮겨 심어진 꽃들이 보인다. 화단은 차량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 바로 옆에 설치되어 있다. 도시 미관을 좋게 하려는 수작인데, 꽃들에게는 고통이었다.


‘콜록, 콜록!’


꽃들이 마른기침을 해댄다. 자동차 배기가스와 오염된 공기, 어떤 사람은 피다 만 담배꽁초를 화단으로 집어던져 버린다. 온갖 쓰레기와 먹다 남은 음료수 캔, 커피 따위가 화단의 흙과 섞였다. 꽃은 고통스러워했다.


다음 장을 넘기자, 꽃이 점점 말라 죽어가고 있다. 고통에 신음하며 어떻게든 살아보려 꽃들은 죽을힘을 다해 버텼다. 그렇지만, 천천히 잎사귀가 말라버리고, 뿌리가 끊어져간다.


“와! 정말 예쁜 꽃이다!”


주변으로 다가온 검은 그림자가 꽃으로 다가간다. 한수는 눈을 치뜨고 급히 다음 장을 넘겼다. 검은 그림자의 손아귀에 꽃이 들려 있다. 산채로 목이 잘려나간 꽃, 아니 이제 꽃이라고 부르기 힘든 그것은 가쁜 숨을 몰아쉬더니, 이내 힘없이 고꾸라져 버린다.


“뭐야? 이게 대체 뭐냐고!”


한수는 책을 병실 구석에 집어 던져 버렸다. 믿을 수 없다. 이건 거짓말이다.


“다 거짓말이라고! 우리 딸이 지옥에 갈 리가 없어. 누구보다도 착한 아이란 말이야!”


소녀는 무료한 표정으로 바로 옆 병상에 걸터앉아 있다가, 몸을 일으키며 답했다.


“그러게, 누가 그걸 고르래요?”


“고르다니? 단지 고른 것만으로 저런 운명을 맞이해야 한다고? 지금 사람가지고 장난해!”


한수는 울분이 복받쳐 올랐다. 갑자기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 착한 딸애가 저런 끔찍한 지옥에서 고통 받아야 한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그리고 저기는 지옥이 아니에요. 얼음이라고 했잖아요.”


“저게 지옥이 아니고 뭐야. 영원히 고통 받는 지옥 말이야! 우리 딸은 나쁜 짓을 하지 않았어. 지옥에 갈 이유가 없다고!”


한수의 발악적인 외침에 소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저씨가 뭔가 착각하고 있나본데. 착한 사람은 천국에 가고, 나쁜 사람은 지옥에 가는 거, 혹시 그런 걸 말하는 거예요?”


“그래.”


크게 고개를 끄덕이자, 소녀는 어처구니가 없는지 웃음을 터트린다.


“누가 그런 소리를 했는데요?”


“누가 그런 소리를 하다니. 그건······.”


한수는 뒷말을 잇지 못했다. 착한 사람은 천국에 가고, 나쁜 짓을 많이 한 사람은 지옥에 간다는 것, 그건 상식이다. 누가 꼭 말해줘서 아는 게 아니란 말이다.


“아저씨는, 아저씨가 태어나기 이전에 어디 있었는지 기억해요?”


“······.”


“그게 아니라면, 혹시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에게 그런 말을 전해 들었나요?”


말문이 턱 막힌다. 평생 종교를 가져본 적이 없어 소녀의 물음에 달리 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성경 어딘가에 그런 내용이 있는 것 같기도 한데, 자세히는 모르겠다.


“착한 사람이 천국에 가고, 나쁜 사람은 지옥에 간다고요? 그걸 누가 결정하는데요?”


소녀의 계속된 물음에 한수는 이를 악물었다. 움켜 쥔 주먹으로 손톱이 파고들어 피가 흐를 지경이다.


“아저씨는 사이코패스죠. 사람을 13명이나 죽이면서도 아무 죄책감이 없었잖아요. 그렇죠?”


소녀의 물음에 한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분노에 차서 사람을 죽였지만, 특별히 희생자들이 불쌍하다 여기지는 않았다. 사실, 미안한 마음은 들었지만 분노가 그 모든 마음들을 앞서고, 지배했다. 그 마음이 어떤 감정이었는지는 쉽게 설명할 수 없었지만, 마약처럼 온 몸을 잠식했던 건 틀림없었다.


“아저씨는 알고 있었어요. 그런 말들이 전부 거짓말이란 것을. 나쁜 사람은 지옥에 간다고요? 그걸 알면서 살인을 했어요? 살인은 나쁜 거라면서요?”


한수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주먹을 휘두르고 싶다. 소녀는 그의 그런 속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 쓴웃음을 삼킨다.


“설마 했죠? 설마 했잖아요. 지옥에 갈 거라고 예상 안했잖아요?”


“······.”


“다행스럽게도 아저씨 예상대로 지옥은 없어요. 그리고 천국도 없죠. 그런데 뭣 때문에 이렇게 화를 내죠?”


한수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책을 응시했다. 아직도, 아직도 딸애는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고 있을지 모른다. 한수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소녀에게 빌었다.


“인정할 수 없어. 이건 불공평하다고! 제발 우리 딸을 살려줘. 그래만 준다면 무슨 짓이든 할게.”


“왜 인정을 안 하는지 모르겠어요.”


소녀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을 이었다.


“아저씨가 인정을 하든, 안하든 그건 아무 의미가 없어요. 현실은 바뀌지 않죠. 생각해봐요. 아저씨는 뭐, 인정해서 사람으로 태어났나요?”


“······.”


“아저씨 인생을 생각해보세요. 없는 집 자식으로 태어나, 평생 고생만하다가 결국, 지금 제 앞에 와 있잖아요. 다른 어떤 존재로 태어났던가, 아니면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다면 상황이 지금과 같았을까요?”


소녀의 물음에 한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소녀의 말대로다. 불행하게도 자신은 소위 없는 집 자식으로 태어났다. 그것도 지지리 가난한 집 아이로 말이다.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는 매일 엄마와 자신을 두들겨 팼다. 어린 시절 대부분을 온몸에 멍이 든 채, 끙끙거리며 밤을 지새웠다. 그러던 어느 날, 굶주림에 지쳐 잠을 자던 자신에게 엄마는 따뜻한 감자를 내밀었다.


그깟 감자하나 가지고, 아버지에게 들킬까 엄마는 조마조마한 표정을 지으셨다. 엄마는 이마가 찢어져 피가 흘렀고, 눈도 새파랗게 멍이 들어 있었다. 그럼에도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감자를 건네셨다. 한수는 그 감자를 움켜쥐고 밤새 서럽게 울었다. 그리고 복수를 다짐했다. 우리 모자를 이렇게 만든 아버지에게, 그리고 세상에게 참혹한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노라고 결심했다.


“그래요, 고를 수 있었으면 대체 어떤 사람이 아저씨 같은 그런 집안에서 태어나길 원하겠어요? 그런데, 고를 수 없잖아요? 뭐, 인생이라는 게 그런 거 아닌가요?”


“크윽.”


한수는 자리에서 엎드렸다. 절로 눈물이 쏟아져 나오려고 한다. 잊었던 감정, 사람들이 자신을 사이코패스라고 부르기 한참 전. 엄마의 품속에서 울고 있던 어린아이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그런 그의 귓가에 소녀의 속삭임이 들려온다.


“태어남, 삶의 시작. 그걸 아저씨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었잖아요. 이쯤 되면 눈치를 채야죠?”


“······.”


“죽음도 선택할 수 없음을.”


소녀는 침대에 앉아 무료하다는 듯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다가 빙긋 미소를 짓는다.


“아직 사인을 안 하시는 걸 보니, 그 아이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세요? 하긴 뭐, 제가 관여할 일도 아니죠.”


한수는 부리나케 몸을 일으켜 병실 구석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책을 부여잡아 책장을 넘겼다. 그렇지만, 아무리 넘겨도 책장은 끝없이 넘어간다. 잠깐 시간을 지체했을 뿐인데, 아이는 끝없는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나무로 태어난 아이, 산불이 일어나 산채로 타 죽고 있다. 고통에 겨운 비명이 산 전체를 메아리친다. 다시 들풀로 태어난 아이, 검은 그림자들은 잡초라며 아이에게 약을 뿌려댔다. 해골마크가 그려져 있는 제초제다.


곧 아이의 몸 안에서 반응이 일어난다. 식물 생장 호르몬이 방해를 받아 생장점이 파괴되고, 모든 신경계가 마비되고 굳어진다. 천천히, 그렇지만 고통스러운 죽음이 이어졌다. 그런데도 책장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넘길수록, 넘겨갈 수록 아이에게는 끔찍한 최후가 반복되고 있다. 그게 수십, 수백 차례 반복된다. 어쩌면 영원히 반복되는지도 모르겠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한수는 눈물을 흘리며 미친 듯이 책장을 넘겨갔다. 드디어 맨 마지막장에 서명난이 나온다. 한수는 가빠오는 숨을 몰아쉬며 급히 사인을 휘갈겼다.


그제야 소녀가 몸을 일으킨다.


“지겨워죽겠네요. 그럼 다음 병실로 가죠.”


한수는 저항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병동 복도에는 셀 수도 없을 만큼 병실이 늘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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