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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남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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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김영남
작품등록일 :
2016.04.16 23:31
최근연재일 :
2017.03.19 01:53
연재수 :
115 회
조회수 :
43,809
추천수 :
528
글자수 :
687,446

작성
16.04.16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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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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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글자
9쪽

새벽 -1

DUMMY

어린 양이 일곱째 봉인을 떼셨을 때에 약 반 시간 동안 하늘에는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나는 하느님 앞에 서 있는 일곱 천사를 보았는데, 그들은 나팔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른 천사 하나가 금향로를 들고 제단 앞에 와 섰습니다. 그 천사는 모든 성도들의 기도를 향에 섞어서 옥좌 앞에 있는 황금제단에 드리려고 많은 향을 받아 들었습니다. 그러자 그 천사의 손으로부터 향의 연기가 성도들의 기도와 함께 하느님 앞으로 올라갔습니다. 그 뒤에 그 천사는 향로를 가져다가 거기에 제단 불을 가득히 담아서 땅에 던졌습니다. 그러자 천둥과 요란한 소리와 번개와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그 때 나팔을 가진 일곱 천사가 나팔을 불 채비를 차렸습니다.



자색 수단을 걸친 주교가 성경책을 내려놓는다. 주교가 앉아 있는 책상 바로 앞, 덩치 큰 신부가 안절부절 못하며 서 있다. 바로 옆 자리에는 다른 신부님 두 분이 앉아 계셨다. 한 분은 키가 크고 말랐으며, 다른 한 분은 키가 작고 통통하다.


“이게 무슨 뜻인가?”


주교의 물음에 덩치 큰 신부는 머리를 긁적였다.


“글쎄요.”


주교가 눈살을 찌푸린다.


“진심으로 하는 말은 아니겠지?”


“······.”


대답이 없자, 주교는 눈을 감은 채 관자놀이를 주무른다.


“새벽 미사시간에, 신자 한명을 두들겨 팼다고?”


주교의 물음에 덩치 큰 신부가 몸을 움찔한다.


“술에 취해 난동을 부려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두들겨 팼나?”


“두들겨 패다니요. 그냥 손으로 살짝 밀었는데······.”


덩치 큰 신부가 솥뚜껑만한 주먹을 들고 천천히 미는 시늉을 한다. 주교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술에 취해서 난동을 부렸더라. 그건 그렇고, 그날 새벽까지 친구들하고 술을 마셨다며?”


“오해십니다. 주교님. 아침 일찍 미사가 있는데 어떻게 새벽까지 술을 마십니까?”


“그럼 새벽까지는 아니고, 자정까지는 마셨겠군.”


덩치 큰 신부는 몸을 움츠렸다.


“소주 한잔만 마셨습니다. 딱 한잔이었습니다.”


주교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바로 옆 신부님들을 가리켰다.


“로마에서 오신 분들이네.”


“멀리서도 오셨군요.”


주교가 눈살을 찌푸리자, 덩치 큰 신부는 급히 손을 들어 입을 가린다.


“프란체스코 성인의 일화를 자네도 알겠지?”


“예.”


“그 일로 오신 분들이야.”


덩치 큰 신부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주교는 책상 위 서류를 가리켰다.


“자네는 잠시 쉬는 게 좋겠어. 여기 이 성당은 자네가 어릴 적 살던 동네와 가까우니 마음에 들 거야.”


“하필이면 왜 그 성당입니까?”


덩치 큰 신부의 물음에, 주교가 환한 미소를 짓는다.


“거기가 그나마 여기서 멀거든.”


“그렇군요.”


“게다가 그곳에는 자네가 보살피고 돌봐야 하는 아이도 있지.”


“제가 돌봐야 할 아이가 있다고요?”


주교는 의자에서 일어나 창가 쪽으로 다가갔다. 밖은 이미 어두워졌고, 비까지 뿌린다.


“그가 누군지는 아무도 모르네. 단지 보호가 필요하다는 묵시가 있었을 뿐이지.”


덩치 큰 신부는 날카로운 눈으로 책상 위 성경책을 바라봤다. 책장이 펴진 곳, 요한묵시록 제 8장이다.


“누군지도 모르는데, 그를 어떻게 알아봅니까?”


주교는 뒷짐을 진 채, 빗방울이 떨어져 내리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알아 볼 필요 없네. 그가 먼저 우리 앞에 나타날 테니까.”


“한 가지만 더 여쭤도 되겠습니까?”


주교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를 왜 보호해야 합니까?”


덩치 큰 신부의 물음에 주교는 미간을 좁히며 창밖을 응시했다.


“믿음이란, 강요하거나 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세.”


비가 점점 거세진다.


ㅡㅡㅡㅡㅡ



‘어젯밤 관광버스와 승용차가 충돌해 3명이 다쳤습니다. 또 경기도 고시원에서 불이 나는 등 화재도 잇따랐는데요. 밤사이 사건사고, 주민희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TV소리가 시끄럽다. 김봉수는 정리하던 서류를 내려놓고, 두리번거리며 리모컨을 찾았다. 조용한 형사과사무실, 몇몇 형사들이 의자에 앉아 고개를 꾸벅이며 졸고 있다.


‘사고로 넘어진 차량에서 소방대원들이 부상자를 구출하느라 안간힘을 씁니다. 어젯밤 7시쯤 은평구 불광동에서 관광버스와 승용차가 충돌해 3명이 다쳤습니다. 이 사고로 승용차 운전자와 동승객 2명이 크게 다쳐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야 이 형사! 여기 리모컨 어디 갔어?”


봉수의 외침에 맞은편 책상에 머리를 처박고 있던 사내가 설레설레 손을 젓는다.


‘어젯밤 9시 20분쯤 전북 김제에서는 60살 김 모 씨가 자신의 집에서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경찰은 면식범에 의한 범행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수사에 착수하고 있습니다.’


“아니 리모컨을 어디다 치워버린 거야?”


봉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 먼젓번처럼 소파 구석에 처박혀 있을게다.


‘화재도 잇따랐는데요. 어제저녁 11시 30분쯤 경기도 파주시의 한 고시원에서 불이 났습니다. 불은 고시원 옥상 창고에서부터 시작됐으며,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습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옥상에 있는 창고에서 연기가 났다”는 고시원 관리자의 진술을 토대로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드디어 리모컨을 찾았다. 소파 구석이 아니라 바닥이다.


“아 진짜, TV를 봤으면 리모컨 좀 제자리에 두라고 몇 번을 말해.”


봉수는 리모컨을 들고 볼륨버튼을 찾다가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TV에서 사건사고 기사가 이어지고 있다.


‘오늘 새벽 서울 주택가에서 칼부림으로 행인 2명이 중태에 빠져 경찰이 수사에 나섰습니다. 오전 12시 30분쯤 골목 한 주택가에서 40대 한씨가 길 가던 주부 임씨와 딸 이양에게 흉기를 휘둘렀습니다. 두 사람은 각각 목과 가슴을 심하게 다쳐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지만,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씨는 범행 후 출동한 경찰에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으며, 피해자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경찰은 묻지 마 범죄 사건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봉수는 TV소리를 끝까지 줄인 후 다시 책상으로 돌아왔다. 책상 위 모니터 화면에는 칼부림 사건 개요가 빠짐없이 기록돼있다.


‘범인 한동만(42세, 무직), 특별한 거주지는 없는 것으로 추정. 사건 피해자 임지혜(47세, 식당종업원), 딸 이민영(14세, 학생), 목과 가슴 부위에 자상. 상태 위독.’


사건 보고서에 의하면 당시 피해자들은 어두운 주택가를 걷고 있었다. 그러다 골목에서 튀어나온 범인 한동만을 만나 변을 당했다. 주목할 만 한 점은 당시 인근 주택가 주변에 정전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목격자 진술에 따르면, 그러니까 범행이 일어난 장소 바로 앞에 있던 편의점 점원의 진술에 따르면, 정전이 발생한 와중 약 일이십 분 후, 밖에서 요란한 비명소리가 들렸더란다.


갑작스러운 정전으로 플래시를 찾던 점원은 여성의 비명소리에 놀라 밖으로 뛰쳐나갔고, 사건을 목격한 것이다. 당시 범인 역시 피해자들 옆에 쓰러져 있었는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고 한다. 다행인 점은, 편의점 점원의 발 빠른 신고 덕분에 범인 체포는 물론, 상처 입은 피해자들을 신속하게 병원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봉수는 서류를 던져버리고 소파에 몸을 기댔다. 식당종업원 임지혜, 오래 전 남편의 교통사고로 생업전선에 뛰어든 사람이다. 슬하에 아들과 딸, 남매를 두었는데, 아들은 현재 신학교를 다니는 신학생이고, 딸은 중학생이다.


임지혜는 매일 12시간 넘게 갈빗집 주방 일을 해왔다. 어려운 살림에 두 남매를 키우느라 악착같이 살았던 여인. 그녀의 소식을 접한, 식당 사장과 종업원들, 손님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안타까워했다. 착하고 성실한 그녀에게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냐며, 갈빗집 여사장은 눈물까지 보였다.



더불어, 임지혜는 주변 사람들에게 원한관계나, 개인적 특별사유도 없었으며, 그 외에 범죄경력, 신용불량, 금전적 원한관계 등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우리 주위에 사는 평범한 이웃이고, 누군가의 어머니였을 뿐이다. 결론적으로 이번 사건은 묻지마 범죄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가장 어이없고 허탈한 범죄, 피해자들은 물론 그 가족에까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는 최악의 범죄유형. 바로 묻지마 범죄다.


봉수는 낮게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등을 기대 눈을 감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강력범죄가 끊이지를 않는다. 대체 언제쯤 이 지긋지긋한 범죄와의 전쟁이 끝날지. 아무튼, 지금은 조금 자둬야 한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바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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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밤 -106 +1 17.02.27 671 1 11쪽
105 밤 -105 17.02.26 243 1 12쪽
104 밤 -104 17.02.24 364 1 12쪽
103 밤 -103 17.02.22 298 1 11쪽
102 밤 -102 17.02.20 336 2 14쪽
101 밤 -101 17.02.18 355 3 14쪽
100 밤 -100 17.02.16 338 2 11쪽
99 밤 -99 17.02.14 305 1 17쪽
98 밤 -98 17.02.13 335 1 15쪽
97 밤 -97 17.02.09 415 1 19쪽
96 밤 -96 +3 17.02.08 428 1 20쪽
95 밤 -95 17.02.05 418 1 16쪽
94 저녁 -94 17.02.04 347 3 10쪽
93 저녁 -93 17.02.03 521 3 13쪽
92 저녁 -92 17.02.03 459 3 16쪽
91 저녁 -91 17.02.02 482 3 16쪽
90 저녁 -90 17.01.30 381 3 14쪽
89 저녁 -89 +1 17.01.28 433 3 15쪽
88 저녁 -88 17.01.27 388 2 14쪽
87 저녁 -87 17.01.25 372 2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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