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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관 님의 서재입니다.

미궁 도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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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관
작품등록일 :
2016.01.19 16:18
최근연재일 :
2017.06.01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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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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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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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글자수 :
172,306

작성
17.05.13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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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 당신에게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5)

DUMMY

 정신을 차리자, 얻어맞은 온 몸이 쑤시고 규칙적으로 지저귀는 새의 노래소리. 그리고 흐릿하고 어두운 시야.


 ..데쟈뷰를 느끼지만, 곧 그게 완전히 같지는 않음을 깨닫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눈이 적응하고 정신이 맑아지자 규칙적으로 지저귀는 새의 노래소리는 한 바퀴를 완주할 때마다 물레방아가 내지르는 비명소리이며 흐릿하고 어두운 시야는 눈이 헝겊에 가려진게 아니라 그냥 밤이어서 건물 안을 비춰주는게 창틀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달빛 뿐이라서 그렇다는 것을 인지했다.


"깼냐?"


 소리나는 곳을 바라보자,  타오르는듯한 붉은 머리와 쏟아진 달빛이 반사되어 빨갛게 빛나는 눈동자가 눈에 들어온다. 솔직히 바지에 조금 지렸다.


"...제가 얼마나 기절해 있던거죠."


"반나절은 쥐 죽은 듯이 뻗어있던데?"


"반나절.."


 반나절이 아니라 일주일은 자고 일어난 듯한 느낌. 시간 감각 자체가 그냥 자고 일어날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길드 일을 하고나서부터 기절하고 쓰러지는걸 밥먹듯이 하고 있는 것 같지만..기분 탓이겠지.


"하아.."


 붉은 머리 청년은 체념한 듯이 그냥 한숨만을 푹푹내쉬었다. 낮에는 납치한 녀석들을 전부다 죽일 기세 였는데 이제 그런 기미는 털 끗만치도 보이지 않는다.


"자라."


 그리곤 그 자리에서 묶여있는 채 옆으로 누워 바닥을 침대삼아 잠을 자기 시작했다.


'..방금 일어났는 뎁쇼.'


 차마 생각하는 걸 입밖으로 낼 수도 없고.. 앞으로의 일이 어떻게 될런지.. 풀벌레 소리와 건물 입구의 횃불타는 소리. 그리고 보초가 재채기 하는 소리가 허공이 울려퍼진다.


 그 와중에 내 머리속에 가득 찬 것은 의뢰에 대한 것.


'하.. 오늘 낮에 모이기로 되어있었는데.. 일이 이렇게 되면 의뢰랑 일행들은 어떻게 되는거지? 오늘 의뢰를 해서 멧돼지를 조금이라도 잡아 푼돈이라도 쌓아놔야 입학금을 준비할텐데.'


 그리고 이내 그 생각들이 하등 쓸모 없는 생각이라는 걸 깨닫는다.


'하긴. 납치된 마당에..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 이대로 내가 어떻게 될 지도 모르는 상황에.. 돈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왠지 모를 서러움이 복받쳐 왔지만, 이게 다 가난해서 생긴 병이라 생각하고 눈물을 꾹 참았다.


 수분기 가득한 안구에 비치는 창살 너머의 하얀 달은 특히나 더 시려보였다.






  새들의 지저... 아니 이제 이정도면 알잖아!


 떨어지는 물소리. 물레방아의 삐걱거림. 흐릿한 시야. 아. 이건 눈꼽이 껴서 그렇다.


"깼냐?"


 ...아오. 저 인간은 저 말 밖에 모르나.


 아무튼, 햇빛이 건물 안을 밝혀주고 있고, 시간을 안물어 봐도 내가 일어난 시간은 한낮이라는 걸 알겠다. 잠이 안와서 꿈뻑 꿈뻑 눈만 꿈뻑이며 새벽 늦게까지 안잤더니, 낮까지 자버린 것 같다.


"지금은 한낮이야. 점심때가 조금 지난 것 같고."


"..안물어봤는데요."


"궁금할거 같아서."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주고 받는 사이, 내 옆에 먹다만 빵쪼가리와 물컵 한 잔.. 아니 자세히 보니 반컵이 있고 컵의 가상에는 빵부스러기가 묻어있었다.


"...."


 그리고 붉은 머리 남자 옆에는 그냥 비어있는 물컵만 하나.


"...."



 조용히 남자를 살펴보았지만, 남자는 눈을 마주치려 들지 않는다.


"......"


"아, 먹었다고! 먹었어! 왜! 불만이냐! 늦게 일어난 니 잘 못이지! 니 밥그릇까지 내가 지켜줘야되? 너 배고프지, 나 배고프냐!"


'와.. 동네사람들! 좀 나와서 이 인간 뻔뻔한 것 좀 보소!'


"아니, 사람된 도리로써 어떻게 그런 추잡한 짓을 할 수가.."


"나 사람 아닌데?"


"...."



 당이 떨어져서 그런지, 짜증이 확 치밀었다.


"아니, 쒸이..뿔.. 진짜.. 생물된 도리로써 어떻게.."


"생물 된 도리면 약육강식이고, 넌 먹이사슬에서 탈락한 것 뿐인데 어디서 까부는거냐."


 그러면서 다시금 어제의 위협적인 눈빛을 쏘아오니 내 몸이 흠칫 한다.


 하지만, 이런 것에 굴하면 내 밥그릇 조차 지킬 수 없게 된다. 내가 살아온 경험으로는, 밥그릇만은 걸레짝이 되도록 얻어 맞더라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굴하지 않고 짖어댔다.


"아니, 썅!! 같이 갇혀있는 사이에 이게 뭔 개짓거리냐구요!!"


 ...존대말이 나오는건 훗날을 위해서.. 라고 해두자.


 내 외침에 움찔 한건지, 아니면 그렇게 쳐다봤는데 위협이 안먹혀서 그런건지 남자는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핫..!!"


"아니 진짜. 지금 웃음이 나옵니까?"


"크하흐흣... 아니, 지금 욕을 하는 건지, 다그치는 건지도 모르겠는데..크흐흣.. 밥그릇 지키겠다고 드래곤 피어조차 견뎌내고 짖어대는게, 옛날에 키우던 곰같아서....크후흐흑.."


"뭐요? 옛날에 키우던 곰? 이 사람이 진짜..! 아니, 사람 아니랬지. 그럼 뭐지? 근데 드래곤 피어는 또 뭐요? 드래곤 피어?... 드래곤?...."


 드래곤이 뭐였더라.


 눈 앞의 사람이 뭐라고 한거지.


 머리속의 지식을 풀 가동해서 열심히 사전을 찾아봤고, 드래곤은 음유시인의 이야기 탭에서 찾을 수 있었다. 주점에서 잡무하거나 할때 들었던 드래곤의 이야기들. 그래. 드래곤.


 순식간에 내 얼굴의 핏기가 가시는 걸 느꼈다.


 내 앞의 이 남자가 지금 자기 자신이 드래곤이라는거야..?


 믿기지가 않았다.


 내 앞의 이 남자가 드래곤이라니.


 ...그래. 믿기지가 않았다.


"이제 하다하다, 별 개소리를..!"


 남자의 웃음이 멈췄다.


"뭐요. 그럼 내가 겁먹을 줄 알아? 왜? 또 째려보게? 서로 묶여있는 상태로 째려보면 무서울 것 같냐아!!!"


 쾅쾅쾅!!!


 갑자기 문쪽에서 들려온 두드리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시끄러, 자식들아! 쳐먹었으면 얌전히 좀 있어라. 내일이면 팔려나갈 놈들이 괜히 화나게 만들지 말고!"


 다시 조용해 지는 건물 안. 떨어지는 물소리와 물레방아의 찢어지는 비명만이 적막함을 숨겨준다.


 그런 적막함 안에서 붉은 머리 남자는 새빨간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쪼끔 지렸다.





 어색하게 시간만이 지나고 먼저 입을 연 것은 붉은 머리 남자였다.


"후.. 내일 팔려간다니.. 내가.. 이 내가.."


 분하다는 듯이 어금니를 깨무는 남자.


"이 구속구들만 없었더라면.. 저 벌레같은 놈들을 다 태워죽여버렸을텐데...!"


 한탄하며 손 발을 묶고있는 큼지막한 보석들이 박힌 구속구들을 벽과 땅에 분풀이 삼아 몇번 부딪쳤다.


 다시 조용해 지는 건물 안.


"... 같이 팔려가는 입장에 통성명이라도 하죠."


 나는 문득 이 남자의 이름도 모르고 있다는 걸 깨닫고는 말을 꺼냈다.


"뭐? 감히 벌레 따위가 이 몸의 이름을-"


"아니. 벌레고 뭐고, 내일이면 둘다 팔려갈텐데 무슨 상관이냐구요."


"...."


 내 말에 남자는 힘없이 축 늘어졌다.


"나이도 비슷한 거 같으니 말 놓도록 하죠. 내 이름은 콘. 콘이라고 해."


"....."


"..프람. 프람 베르그."


 남자는 포기 했다는 듯이 털어 놓았고, 힘 없이 축 늘어진 몸은 가엽게도 보였다.


 다시금 말이 없자, 난 궁금했던 점들을 물어보기로 했다.


"프람? 음. 프람이라고 부를께. 드래곤이라는거 진짜야?"


"그래. 이 몸이 만물의 지배자이자 불의 주인인 레드 드래곤 이시다."


'레드 드래곤?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생각 난 것은 얼마 전 말리란 상공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진 레드 드래곤.


 난 그 일에 대해 프람에게 물었다.


"뭐? 그건 또 뭔소리야. 어떤 미친놈이 영역권도 안지키고 그딴 짓을 해? 자살 지망이냐?"


 프람의 반응으로 보아, 아무래도 그 일은 프람과 관련된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영역권이란게 뭐야?"


"드래곤은 자신들의 구역이 있고, 다들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꺼려해서 좀 처럼 둥지 밖으로 나오려고 하질 않지. 그렇지 않은 녀석들은 폴리모프를 사용해서 이곳 저곳 떠돌아 다니는 녀석들도 있고. 그러다 보면 다른 종족과 친해지는 녀석들도 많거든. 그래서 겉으로는 균형을 유지하네, 뭐네 해도 도시나 국가 단위로 위협을 한다거나 하는 녀석들은 자신의 지인들에게 위협이 되니까 드래곤 여럿에게 몰매맞기 쉽상이지. 그래서 왠만하면 자신의 둥지 근처를 제외한다면 진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편이지. 둥지 근처를 용의 영역이라고 칭하는 거고. 그나저나.. 말리란 상공에.. 어쩌면-"


그러곤 프람은 말 끝을흐렸다.


"근데, 음유시인들의 이야기속의 드래곤이 그 드래곤 맞는거지?"


"뭐어.. 8할 정도는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


"그럼 프람도 불을 뿜어낼 수 있는거지?"


"뭐어..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용의 불은 모든 것을 불태워 버린다는데, 왜 여기서 못나가는 건데?"


"..아니, 벌레같은 놈이 누굴 놀리나!! 이 구속구 안보이냐!"


버럭 버럭 소리지르면서, 다시금 노려보는 프람.


..익숙해 졌는지 이젠 견딜만 해져서 지리지 않았다.


"그게 뭔데? 불로 녹여버리거나 괴력으로 부숴버리면 되는거 아니야?"


"벌레는 지능도 벌레인건가..."


나를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한번 쳐다보고는 할 수 없다는 듯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건 마나 제어구 라는 물건인데, 마나의 흐름을 제어해서 마나를 이용한 기술들, 즉 마술과 육체강화같은 모든 행위를 못하게 만드는 구속구지. 그래서 내가 이렇게 잡혀있는거고."


다시한번 프람의 어깨가 축 늘어진다.


"왜 잡혔는데?"


"....."


좀 친해졌다 싶어서 다시금 잡힌 경위에 대해 물어보았지만 그 점에 대해서는 철통같은 보안으로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럼 너는 왜 잡혀왔는데."


입을 다물고 있던 프람에게서 나온 말은 반대로 나에게 묻는 말.


"글쎄..왜 잡혀 온거지..인신매매려나? 의뢰때문에 이동하다가 캠핑을 하고 일어나니까 여기더라고."


"...등신이네."


"아무리 그래도 드래곤인데 벌레들한테 잡혀온 너만 할까."


건물 안의 기온이 2도는 낮아진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곧 둘다 한참을 웃음을 터트렸다.


웃음이 멎자 다시금 물레방아 소리만이 들려온다.


"왠지 친구같네. 이거."


"그러게."


"넌 내일 여기서 팔려나가면 어떻게 될 것 같냐?"


"...아마도 어딘가의 노예로 팔려나가지 않을까."


"노예라.. 괜찮지. 노예도. 나는 어딘가의 실험실에 팔려나가서 사지가 묶여서 실험을 당하던가 아니면 푸줏간의 돼지고기마냥 부위별로 팔려나가겠지."


체념한 듯 아무런 감정 없이 나오는 프람의 끔찍한 말에 소름이 돋았다.


"탈출-"


"안된다고. 근처에 놈들이 싹 깔려있어. 내 몸값이 얼만데.. 놈들을 싸그리 처리하지 않는 한은 지옥 끝까지라도 쫓아올껄. 그리고 탈출하기 전에 문앞의 보초가 먼저 알아 챌테고."


체크 메이트인가. 방법이 없어보인다.


명색이 최강의 생물인 드래곤이, 구속구 하나때문에 한낫 인간의 손에 잡혀서 외양간의 소마냥 거래되는 현장.


그리고 그 안을 물레방아의 비명소리만이 가득채우고..


"잠깐."


"왜?"


"조용히 해봐. 뭔가 떠오를 거 같은데."


내 말에 프람은 입을 다물었다.


사방을 둘러싼 인신매매범들. 입구를 지키고 있는 보초. 탈출 불가능한 물레방앗간. 구속구에 묶인 드래곤과 떨거ㅈ.. 콘님. 그리고 비명을 지르는 듯이 일정하게 들려오는 물레방아 소리.


"아."


방법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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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4. 카자르겍크 탐사(2) 17.04.23 182 0 12쪽
15 4. 카자르겍크 탐사(1) 17.04.22 182 1 10쪽
14 3. 대전사 결투(3) 17.04.20 224 0 11쪽
13 3. 대전사 결투(2) 17.04.20 206 0 12쪽
12 3. 대전사 결투(1) 17.04.07 227 3 12쪽
11 2. 카자르겍크(4) 17.04.06 239 3 10쪽
10 2. 카자르겍크(3) 17.04.01 320 3 13쪽
9 2. 카자르겍크(2) 16.02.26 343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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