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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만은 하얗게 되고 싶은 까만늑대의 책방

비검(非劍)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Blackwolf
작품등록일 :
2013.02.18 22:47
최근연재일 :
2018.06.19 06:38
연재수 :
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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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7.21 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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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쪽

6

DUMMY

아이들을 이끌고 돌아온 렘피룬트는 그들을 전부 무릎 꿇렸다. 독에 당한 부상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가 보기엔 그들 역시 한 패였으니까.


렘피룬트는 표정을 굳히곤 소리쳤다.




"4조장, 리든과 3조장 나다크는 앞으로!"




리든은 쭈뼛거리면서 걸어나왔고, 나다크는 하품을 늘어져라하다가 그의 부름에 당연하단듯이 리든의 옆에 섰다. 오히려 당황한 것은 4조를 따라갔던 토르크와 아르마였다. 어째서 그가 혼나야하는가. 그 답은 렘피룬트가 내주었다.




"리든. 넌 조장으로서 조를 책임질 의무가 있음을 망각한 것이냐. 너의 그 잘못된 판단으로 조를 죽음으로 몰고갈뻔하였다. 이번 일은 기억해두었다 다음번 진급 시험 때 불이익으로 줄 것이니 명심하거라."




리든은 속으로 그를 헐뜯어댔다. 그럴거면 처음부터 말리든가. 왜 굳이 부락의 위치를 알려주고 뻔히 갈 것을 막지 않았단 말인가. 마치 자신을 미워하여 어떻게든 불이익을 주기 위해 그런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리든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든, 렘피룬트는 이어서 나다크를 바라보았다.




"나다크. 너 역시 마찬가지다. 조원 한 두 명이 모여서 비로소 조가 된다. 헌데 너는 그 둘을 죽으러가게 놔두었지. 내 말이 틀린가!"


"아닙니다."


"나다크 역시 리든처럼 진급 시험에 불이익을 주도록 하겠다. 이번 사냥은 여기까지다! 본래 더 쉬었다가야하지만 또 어떤 녀석이 사고를 칠지 모르니 돌아가겠다! 모두 숲을 빠져나간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제법 높은 곳에 떨어졌다지만 기어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구멍을 올려다보았다. 멍하니 그곳을 향해 손을 뻗어보았지만 잡아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살려달란 말을 들은 사람은 있었을까. 오른쪽 종아리에서 느껴지는 아릿한 통증에 이를 악문다. 살을 관통하고 삐죽 튀어나온 붉은 가시. 그걸 빼고 싶었지만 아프기도 아프거니와 등부터 떨어진 충격으로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끄으……"




이제 살려달란 말도 나오지 않았다. 불행 중 다행이라 한다면 바닥으로 꺼지는 함정 밑에 설치된 이 가시들이 구멍의 위치에서 앞으로 살짝 기울여서 설치되어 있단 점이다. 아마 달려드는 녀석이 빠졌다면 전신이 꿰뚫려 죽게끔 설계한 것이리라. 그래서 걸어가다가 떨어진 그는 다리 하나만 뚫리고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절망적이다. 언뜻 들린 목소리는 렘피룬트의 것이였다. 아마 그가 아이들을 구해주고 이끌고 갔으리라. 그렇다는건…… 혼자다.




"누구…… 없…… 어요……"




기운빠진 소리로 마지막 힘을 다해 외쳤다. 하지만 역시 돌아오는 말은 없었다.


로이트는 그렇게 버려졌다.


설마 자신을 잊어버리고 갈 것이란 생각도 못하였다. 아니, 하고 싶지 않았다. 버려지다니…… 아카데미에서도 충분히 따돌림받고 박대를 받았는데 버려지기까지 하면 너무 비참하지 않은가.


이를 악물고 가시에서 다리를 빼냈다. 살과 뼈를 스치는 통증에 비명이 절로 나올뻔하였지만 이가 부서져라 물며 소리를 참아냈다. 아마 여기서 더 소리를 낸다면 고블린들이 찾아올 것이다.




"아파……"




외로움. 그리고 버려졌단 불안함에서 온 정신적인 충격과 다리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뒤섞이면서 그의 감정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억울하다.


왜 자신이 이런 꼴을 겪어야 하는가. 말 한 마디를 잘못 해서? 쓸데없이 나서서? 돈이 없어서? 계급이 낮아서? 힘이 약해서? 바보같이 당하기만 해서? 복수를 꿈꾸지 못해서? 동료가 없어서? 미움을 받고 있어서? 그저 운이 없어서? 운명이어서?


주먹을 쥐었다. 꽉 쥐어진 손은 애처롭게 떨리더니 그대로 흙바닥을 내리쳤다. 버려졌다.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어째서란 생각은 들지도 않았다. 혹시 자신을 죽이기 위해 의도한 것이 아닐까. 로이트의 불안한 정신은 온갖 망상을 이끌어냈다. 어쩌면 정말로 아카데미에 무언가 있었고, 자신이 그걸 밝혀낼 뻔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녀석들이 비밀을 막기 위해 목숨을 빼앗으려하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심한 짓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 그런 것이다. 추측이 맞다. 분명하다. 이보다 확실한 건 없었다. 상황이 증거를 제시해주고, 그들의 태도가 증인이 되었다.




"나쁜 새끼들……"




이를 악물면서 다리를 끌어안았다. 얼굴을 파묻으며 나직하게 말하였다. 눈물이 터져나왔다. 3년 동안 부정한 방법으로 진급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였고, 온갖 괴롭힘을 당하였다.


구타, 욕설, 잡심부름, 금품갈취, 따돌림……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부모님 하나만을 생각하며 버틴 것도 용하다 싶을 정도로 그 정도가 심하였다. 혹시 스스로 목숨을 끊게끔 유도한 게 아닐까. 로이트는 눈물을 닦아내고 힘겹게 일어났다. 일어서기만 했는데도 뚫린 상처가 꿈틀거렸다. 아프다. 하지만 이대로 있다간 당한다. 이곳에서 굶어죽든 고블린들에게 발견되어 죽든 간에 무의미한 죽음이 되버린다. 일단 살아야한다. 살기 위해 발버둥은 쳐봐야한다. 로이트는 검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가시들을 전부 베어내고서 한 팔로 안아들었다. 그리고 흙벽을 더듬거려보았다. 생각외로 튼튼하다. 있는 힘껏 가시를 박아넣었다. 발로 디딜 수 있게끔 박아넣고 한 번 올라서보았다. 조금 불안했지만 그래도 안전한 것 같았다. 후우, 하고 심호흡을 하였다.


경사가 위로 올라갈수록 급해진다. 가시도 제법 많이 베어냈으니 여러 번 도전할 수 있고, 이제 가시에 찔릴 일도 없으니 흙이 무너져내려도 괜찮아보였다.


푹- 푹-


일단 서서 닿을 정도에만 가시를 박아넣고 어림 잡아 몇 개가 더 필요한 지 가늠해보았다. 지금 로이트의 키만큼 박은 가시가 5개. 이것보다 서너 배는 높아보이니 못해도 15개는 들고가야할 것이다. 어떻게 들고올라갈지 고민하다가 허리띠를 풀고 가시 뭉치를 한꺼번에 묶어 둘렀다. 조금 흔들거리긴했지만 문제는 없어보였다. 가시를 하나씩 입에 물고 올라서기 직전에 그걸 집어 박아넣으면서 올라간다면……




"가자……"


















마차 행렬에 올라서는 학생들을 둘러보며 렘피룬트는 말에 올랐다. 나다크는 이번엔 지붕 위에 있다간 감기가 걸리겠다며 질색하는 표정으로 마차에 오르다가 뒤를 힐끔거리는 아르마를 힐긋 보았다. 마치 뭔가 잃어버린 아이처럼 불안해하는 그가 나다크가 다가오자 흠칫 놀라며 머릴 긁적였다. 자신 때문에 혼도 나고, 진급 시험도 어려워졌으니 미안해하는 것이다. 나다크는 뒷목을 긁어대며 손을 내저었다.




"됐고…… 뭘 찾는 거야?"


"아니…… 그 애가 안보이는거 같아서……"


"그 애?"




나다크는 3조에 배정된 마차들을 보았고, 아르마는 고갤 저었다.




"우리 조 말고. 로이트란 애 알지?"

"아, 걔."


"근데 안보이는거 같아서…… 상황이 워낙 급해서 제대로 확인도 못했어."


"걱정마. 조장이 챙길테니까."




어깨를 두드려주는 나다크를 보며, 아르마는 그렇겠지…… 하고 중얼거리며 마차에 올랐다. 렘피룬트는 말을 이끌고 선두에 서며 출발 신호를 알렸다. 그리고 이번엔 쉬지 않고 간다는 말을 추가로 전달해두었다. 그렇다면 밤새 마차에 있어야한단 소리! 아카데미에 도착하고나서 아침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그들은 엘더 포레스트를 떠났다.


















세 번째다. 이번이 세 번째 오르는 것이다.


로이트는 숨이 막혔다. 아무리 바닥이 흙이라지만 떨어질 때의 충격은 장난이 아니였다. 낙법을 익힌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낮은 곳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였다. 흙은 무너지지 않았다. 뭔가를 발라놓은 것인지 생각보다 잘 버텨주었다. 하지만 로이트의 몸이 버텨주질 못하였다. 첫 번째 시도에서 절반 정도 올랐을 때 떨어졌다. 그리고 두 번째 시도에서 입구에 손이 닿았지만 무너져내려서 그대로 추락…… 덤으로 잘라낸 가시에 등이 찍혀서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아마 전부 잘라내지 않았으면 몸이 꿰뚫려 죽었을 것이다.




"하아…… 하악……"




숨이 거칠어졌다. 힘들다. 땀이 뚝뚝 떨어져내렸다. 추락을 경험한 몸은 두려움에 경직되어있었고, 힘이 약해지고 경사가 급해질수록 마음도 덩달아 다급해졌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쿵.


















"억……"




깜빡 잠이 들었나보다. 제트는 뒤통수를 문지르면서 거칠게 운전하는 마부를 향해 투덜거렸다. 그도 잠도 못자고 말을 몰고 있긴 하지만 그거랑은 별개였다.




"후우……"




제트가 창문을 살짝 열어보았다. 단단한 나무로 막혀있던 것이 천천히 열리면서 달빛을 뿜어냈다. 벌써 밤이구나…… 라고 생각하였다.


둥글구나. 하얗고. 그리고 왠지 차갑다는 느낌도 들었다. 밤공기가 차서 그런 것인가. 담요를 몸에 둘러 서로 고개를 맞대고 자는 녀석들을 보며 제트는 창문을 닫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감았다. 조금이라도 자두어야 다음 날에 팔팔하게 움직일 수 있으니……


















"헛……!"




잠깐 눈을 감은줄 알았는데 잠에 들었나보다. 로이트는 눈을 비비면서 일어섰다. 숲이다.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을 빠뜨린 구멍이 보였다. 빠져나왔다. 꿈이 아니었다.




"하아……"




용케 녀석들에게 잡히지 않은듯 하다. 일단 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바삐 움직였다. 하지만 이미 피로해진 몸은 제대로 움직일 생각도 안하였다. 힘들다……. 몸이 너무 지쳐버렸다. 다시 잠들기엔 너무 위험한 곳이고, 아직 다리에 난 상처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였다. 다리를 끌며 가던 로이트의 눈에 밤하늘이 보였다. 그리고…… 나무들 사이로 언뜻 드러난 하얀 달이 보였다.


밝다. 그리고…… 쓸쓸해보였다. 갑자기 든 생각에 로이트는 자기 뺨을 찰싹 때렸다. 이상한 곳에 정신을 팔면 안된다. 그런건 숲을 빠져나와서 해도 늦지 않았다. 절뚝거리며 걸음을 옮기던 로이트는 얼마 안가 근처 나무에 몸을 숙이곤 숨을 죽였다.


키르륵-


가래 끓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로이트의 귀는 이 소리의 주인인 몇 마리의 고블린들이 다가오는 소리를 듣고 재빨리 몸을 피한 것이다. 고블린은 총 다섯이었는데, 그중 셋은 방금까지 로이트가 빠져있었던 함정 쪽으로 갔고, 나머지 둘은 그가 숨어있는 나무 근처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킁-


고블린이 흉측하게 튀어나온 코를 높이 들곤 숨을 힘껏 들이쉬었다. 자기들이 심어놓은 메실리아 꽃(고블린 부락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는 꽃)의 향기 사이로 이질적인 냄새가 감지되었다. 비릿하고 역겨운…… 하지만 왠지 모르게 피를 자극하는…… 인간의 피냄새였다!




"차 무르그!"




알 수 없는 언어가 들린다. 귀를 찌르는 듯한 고블린들의 대화는 바로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로이트에게 생생하게 다가왔다. 싫다…… 무섭다…… 분명 몇 번이고 온 몬스터 사냥이었건만 이렇게 무서웠던 적은 없었다. 멀리서 지켜보았기에, 힘없이 죽어가는 것만 보았기에 이렇게 생생하게 자신을 압박해온 적은 처음이었다.




"파 쿠츠 튜라!"




비명에 가까운 고블린의 외침에 다른 고블린들이 몰려들었다. 사박거리는 발소리만 들어도 최소 열은 넘을 것 같았다. 로이트는 입을 틀어막으며 피가 줄줄 흐르고 있는 자신의 오른 종아리에 메실리아 꽃을 한 웅큼 뜯어 문질렀다. 아프다……! 소리라도 지르지 않으면 미쳐버릴 정도로 아프다……! 피냄새가 나면 안된다는 무의식적으로 한 그의 행동은 고블린들의 후각을 교란시켰다.




"푸 툴루크 투?"


"루 크루 챠!"


"라 파르 코라!"




고블린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자신의 뜻을 주장하는 듯한 말들을 뱉어댔고, 이윽고 그들은 함정이 있는 쪽으로 돌아갔다. 로이트는 고블린들의 발소리가 멀어지는 걸 알고서도 한참을 숨을 죽였다. 그리고 바르르 떨리는 한숨을 내뱉으며 나무 뒤로 고개를 슬쩍 뺐다.


없다.


로이트는 검으로 땅을 찍으며 몸을 일으켰다. 유난히 지금 들고 있는 검이 무겁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다. 전신이 쑤신다. 호흡이 가쁘고, 정신이 몽롱하다. 피곤하단 말론 부족하다. 지쳤다는 말은 가소로웠다. 여태껏 살면서…… 아카데미에서조차 이런 피로를 느껴보지 못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너무 궁지에 몰려있었다.




"루 파르?"




그리고 그 상황에서…… 한 마리의 고블린과 조우했다. 녀석은 로이트를 보더니 흉측한 누런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고, 허리춤의 대롱을 입에 물었다. 로이트는 잠깐 정신을 못 차리다가 고블린의 볼이 빵빵하게 부풀었을 때 검을 들어 옆으로 몸을 날렸다.


푹-


힘껏 쏘아진 독침이 건너편 나무줄기에 박혔다. 로이트는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이를 빠득 물었다. 아무리 성정이 순한 그라지만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에서까지 마음을 놓을 정도로 순둥이는 아니었다. 그는 한 쪽 발을 앞으로 내밀며 자세를 잡았다. 거리는 멀다. 그렇게 여긴 로이트는 어떻게든 검이 닿을 정도로 다가가기 위해 눈치를 살폈다. 고블린은 그가 몸을 날려 독침을 피하자마자 대롱에 침을 넣고 언제라도 쏠 수 있게 로이트를 향해 겨누며 볼을 부풀리고 있었다. 로이트가 왼쪽으로 슬쩍 움직이면 대롱을 오른쪽으로, 오른쪽으로 움직이면 왼쪽으로…… 그의 움직임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거리를 좁힐라치면 뒷걸음질로 거리를 벌렸다.




'칫……'




로이트는 도저히 이 상황을 벗어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덤벼들지도, 그렇다고 놓아주지도 않는 상대를 어떻게 해야할까. 섣불리 거리를 좁혀 검을 휘둘렀다가 실수라도 하는 날엔 고블린의 독침을 맞을 것이고, 거리를 벌려 달아나려는 낌새를 보이면 동족을 부를 것이다. 그나마 로이트가 검을 들고서 견제를 하고 있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대롱 대신 뼈피리를 불거나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젠장!


미세한 떨림. 그것은 검 끝에서부터 시작해서 손잡이까지 서서히 커져갔다. 안그래도 지칠대로 지쳐 힘도 제대로 못 내는 그의 손은 긴장감까지 더해지자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떨어댔다.


고블린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녀석은 로이트가 약해졌든 겁을 먹었든 자신에게 유리해졌단 걸 알아챘다. 이대로만 있어도 동료가 올 것이지만 조금 더 유리한 상황이 만들어진다면 직접 눈앞의 사냥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리라.


어떻게 해야하지?


두 생물체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비릿하게 웃고있는 고블린을 보며 로이트는 숨을 고르더니 히죽 웃었다. 그리곤…… 힘껏 앞으로 나아가며 검을 휘둘렀다.




"푸크륵?!"




당황스럽다. 예상 밖의 행동을 하여 놀랐지만 고블린은 침착하게 뒤로 힘껏 물러나며 독침을 뿜었다. 단 한 발. 어떤 사냥감도 적중당하면 전투불능에 빠졌던 목덜미를 향해 날렸다. 이 한 발이 적중하면 발버둥치던 놈도 금방 잠잠해지리라!


푹-


독침이 적중당한 곳은 왼쪽 어깨. 그나마 로이트가 필사적으로 몸을 틀었기에 목에 맞는 불상사는 피하였다. 하지만 그 덕에 고블린을 향해 휘둘렀던 검로는 조잡하게 변하였다. 아마 고블린이 뒤로 피하지 않았어도 녀석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없었을 것이다.




"끄윽……"




침이 꽂힌 부분에서부터 격통이 밀려온다. 자연스레 왼팔에 주던 힘이 풀려진다. 당장에라도 들고있던 검을 뿌리치고 싶을 정도로 검이 묵직하게 느껴졌다.


빠드득-


금방이라도 놓칠 것 같은 검을 이를 악물며 다시 잡았다. 그리고 눈앞의 녹색 괴물과의 거리를 가늠했다.




"라 카호!"




고블린이 덩실덩실 춤을 춘다. 완벽한 방심. 사냥감을 잡았단 확신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그리고 로이트는 이 상황에서 가장 극단적인 생각을 했고 그대로 행동으로 옮겼다.


휙!


검을 집어던진 것이다. 고블린이 놀라서 옆으로 깡총 피했고, 바닥에 패대기쳐지는 검을 보며 낄낄 웃었다. 그 뒤엔…… 달빛을 가리는 그림자를 조우했다. 로이트가 고블린을 향해 검을 던지자마자 몸을 날린 것이다.


쿠당탕!


고블린의 근력은 약하지 않았다. 단순한 근육량으로만 봤을 때 성인 남자를 웃돌았다. 거기에 녀석들이 지저분하게 기른 손톱까지 더해진다면 어쩌면 독침만큼이나 위협적인 무기가 되어버린다. 고블린은 자신을 깔아뭉갠 로이트의 팔을 잡으며 힘을 주었다. 로이트는 금방이라도 뼈가 부러질 것 같아서 소리를 악! 하고 질렀다가 오른손으로 녀석의 목덜미를 콱 쥐었다.




"크리릭!"




숨통을 조여오자 고블린이 발버둥을 쳤다. 억센 반항에 로이트는 있는 힘을 다해 녀석을 짓눌렀다. 손톱으로 팔이 긁히고 녀석의 발길질에 등에 멍이 들어도 손을 놓지 않았다. 숨이 넘어가는 헐떡이는 소리를 듣고 게거품을 물며 눈동자를 까뒤집어도 로이트는 손에 힘을 빼지 않았다. 녀석이 축 늘어지면서 혀를 빼물고…… 몸이 서서히 굳어갈 쯤에야 로이트는 손을 놓았다. 혀를 빼물고 게거품을 물며 죽은 고블린의 시신을 보며 로이트는 몸을 일으켜 내려다보았다. 흉측하다. 살아있을 때도 그랬지만 죽어버린 고블린은 너무…… 흉측했다. 아마 이 놈을 죽이지 못했다면 혀를 내밀고 죽어있는 건 자신이었을 것이다.


꼬르륵.


배가 고프다. 주변엔 나무열매도 없고…… 마땅히 짐승들도 보이지 않았다. 어느 생존일기를 보면 주변의 온갖 것들을 먹었는데 로이트의 눈엔 입에 넣을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하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선택하고 싶진 않았다. 일순간의 망설임. 어떻게 해야할까란 생각과 이렇게 해야겠단 생각이 동시에 교차하였다.


잠시 후, 로이트는 검을 집어들고 절뚝거리며 그 자리를 벗어났다.




















엘더 포레스트에서 온 마차가 아카데미에 도착하였다. 비록 불미스러운 일이 있긴 했으나 모두가 무사히 돌아온 것을 축하하며 며칠 간의 휴식기도 주어졌고 약간의 먹거리도 주어졌다. 학생들은 저마다 고블린의 무서움에 대해 떠들면서 하나의 이슈를 얘기하였다.


1급 학생들의 졸업식.


매년 있는 졸업 행사지만 그 구성인원들이 달랐기에 모두의 입에 오르내렸다.


거대 상단 라르카 상단의 주인이자 황금의 왕이라 불리며, 황제를 제외하면 최고의 부자라 불리는 라르카 백작. 그의 아들 밀레트 데리반 르 라르카. 금빛 귀공자라 불리며 그 이름에 걸맞게 화사한 금발에 예의범절은 물론 뛰어난 검술까지 갖춘, 그야말로 완벽한 사내였다.


방패의 가문이라 불리며 대대적으로 황실 기사단과 친위대를 배출한 하이크라 가문. 그 중에서도 아버지인 람피아 루스 븐 하이크라의 특성을 진하게 이어받은 가문의 차남, 라이가스. 그 역시 밀레트 못지 않게 유명했는데, 밀레트와 함께 다니는 것이 한 몫 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밀레트에 비해 명성이 뒤처지는 건 아니었다. 단순히 검술만 놓고 본다면 그가 더 우위였고, 누군가를 지키는 것에선 아카데미 내에서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었으니 말이다.


포스티어 제국의 2인자, 고스트 블레이드, 최대 규모의 군사력을 보유한 장군. 칼릭소 공작을 따르는 별칭들을 따져보면 아카데미에 입교하는 학생들보다 많을 것이다. 그런 칼릭소 공작의 딸, 헤스타 펠리어 린 칼릭소는 블루 크리스털에서 배움을 얻다가 아카데미로 옮겨왔다. 그리고 현 1급 학생 중에서도 손꼽히는 검술 실력을 선보였다. 모두가 최초의 여기사가 탄생할 거라며 그녀를 주목하였고, 또 기대하였다.


단 세 명만으로도 떠들썩해진 이 때, 식의 준비 때문에 아카데미는 어수선했다. 그랬기에 아카데미에 있던 사람 중 하나가 보이지 않는다고 눈치채지 못하였고, 또 알았다고 해도 신경쓰지도 않았다.




















"이 와중에 그 놈은 어딜 간 거야!!"




렐프는 콧김을 뿜으며 한 보따리의 검을 들고 창고로 향하였다. 언제나 검을 깨끗하게 닦아놓는 건 그놈(로이트) 몫이었는데 엘더 포레스트에서 복귀한 학생들 사이에선 그의 모습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와놓고도 어딘가에 숨어있을 수도 있었기에 기숙사 곳곳까지 돌아다녀보았지만 놈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여지껏 로이트가 했던 일을 고스란히 할 수 밖에 없었고, 이제껏 월급을 날로 먹던 렐프로선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봐, 영감."




늘 창고 앞에서 졸고있던 노인, 라호드는 의자에 앉은 채 비스듬하게 렐프를 올려다보았다.




"왜 그러나."


"왜 그러긴. 로이트 그놈 어디갔는지 몰라?"


"그야 나도 모르지…… 요새 보이지도 않고……"


"잡히기만 해봐……"




렐프는 투덜거리며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리곤 괜히 라호드를 향해 콧김을 뿜어댔다.




"그리고 또 졸지말라고 영감. 걸리면 바로 끝이니까."


"걱정해주는겐가? 고마우이."


"고맙긴……"




괜히 툴툴거리던 그는 창고 안으로 들어서다가 문득 라호드를 돌아보았다.




"……영감, 살 좀 찐 것 같은데 뭐 좋은 거라도 먹었나?"


"어엉? 왜 그러나. 자네도 몬스터 고기 좀 맛 보려고 그러나."


"뭐?"




렐프가 황당해하는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몬스터 고기라는 민간요법은 널리 퍼져있긴 했지만 그걸 실천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 이유는 당연히…… 식감도 안좋고 맛도 없고,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당장에야 고블린만 봐도 그렇다. 독을 다루는 녀석들인만큼 녀석들의 피에도 독성이 있다. 하물며 다른 몬스터는…… 굳이 독성이 아니더라도 무슨 부작용이 있을지 몰랐다. 헌데 이 노인은 그런 걸 신경쓰지 않고서 먹었단 말인가.




"아무거나 주워먹고 다니지 말라고. 몸에 해로우니까."


"끌끌…… 알았으니 몸 조심하게. 아카데미가 너무 어수선하니 무슨 일이 벌어져도 모르겠구먼."




렐프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늘 보던 라호드의 얼굴이고, 늘 듣던 그의 목소리인데…… 뭔가…… 어딘지 모르게 이상했다. 하지만 식에 쓸 검에 대한 생각이 미치자 그런 이질감은 머릿 속에서 사라졌다.




'확실히 건강해진 것 같기도……'


"졸업식 준비 때문에 시끄럽긴 하지. ……아차, 장식용 검도 닦아야했지. 영감! 괜히 말걸어서 까먹고 있었잖아!!"




신경질을 내며 들어가는 렐프를 보며 라호드는 늘 보여주던 노인의 웃음을 보였다. 그리곤 다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입에서 길게 뜯어지는 녹색 점액질. 거리낌 없이 입에 넣고 씹던 로이트는 칼로 땅을 푹푹 찍어대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뛰어갔다면…… 하다 못해 보통 속도로 걷기만 했었어도 진즉 이 끔찍한 숲을 빠져나갔을텐데, 절뚝이는 한쪽 다리와 피로한 몸, 주린 배는 그의 움직임을 더디게 만들었다. 녀석의 발길질에 얻어맞은 등은 여전히 얼얼하고, 팔은 여기저기 긁힌 탓에 굳은 핏자국이 남아있었다.


로이트는 방금 지나온 휴식지를 생각하며, 이제 얼마 안남았단 생각을 했다.




"끔찍해."




뒤늦게 드는 생각에 헛구역질이 일었다. 살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그건 정말 끔찍한 경험이었다. 입 안에서 살아움직이는 생살이란 끔찍했다. 맛이라도 좋으면 다행이건만 누린내는 물론 입이 저릿저릿하기까지 한 걸 보니 독까지 있는 것 같았다. 몇 번이고 토해내려는 걸 참아냈다. 이거라도 먹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았기에 입을 틀어막고 씹고, 씹고 또 씹었다. 그리고 삼켰다. 싫다. 이 정신나간 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도 이런 짓이라도 한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먹지 않았어도 괜찮다는 생각따윈 하기 싫었다. 그러기엔 입 안에 남아있는 고블린의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억울해서라도 효과를 봐야했다.


"후우…… 후우……"


로이트는 숨을 몇 번이고 들이쉬고 내쉬기를 반복하였다. 이제 정말 얼마 안있으면 이곳을 벗어난다! 하지만 숲 한 곳에서 일어나는 단 하나의 상황은 이런 로이트의 바람을 무참히 박살냈다.


고블린 카무챠는 한쪽 팔이 뜯겨져나간 동족의 시신을 내려다보았다. 잠깐 주변을 수색하고 오는 사이를 노려 동족 하나를 잡아죽이다니. 그것도 모자라 팔 한쪽을 뜯어갔다! 죽은 생물의 일부를 가져가는 건 사냥감으로 인식했단 의미. 치욕이다! 다른 곳도 아니고 부락 근처에서 이런 굴욕이라니! 고블린들이 겁이 많다고 알려져 있으나 그건 아니다. 그들은 매우 신중하였다. 그래서 부락 주변에는 함정을 깔아놓고, 강한 놈들이 냄새를 맞지 못하게 특이한 냄새를 뿜는 꽃을 심어놓았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온갖 독과 발사체를 개발해내어 희생이 큰 근접 전투보단 비교적 안전한 원거리 전투를 추구했다.


카무챠는 죽은 동족의 시신을 건드렸다. 살이 딱딱하지 않다. 독침 중 몇 개를 사용했다. 주변엔 전투 흔적. 주변에 풀이 짓밟힌 것을 보아하니 상대는 동족보다 크다. 하지만 포식자들보단 작고 두 발로 다닌다. 발로 디딘 흔적이 적다. 동족 주변에만 흔적이 많다. 시작부터 일격에 죽인 건 아니다. 몇 차례 대치 끝에 이렇게 된 것이다. 손톱 밑의 살점과 빨간 핏자국과 목에 남아있는 압박자국을 보니 숨이 막혀죽었다. 카무챠는 상대의 모습을 그렸다. 고블린을 깔아뭉갤 정도 크기의 인간이나 그렇게 크진 않다. 녀석은 아직 어리다! 그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적어도 매 년 찾아와 자신들의 동족을 데려가고 잔인하게 찢어죽이는 그 은빛 괴물은 아니란 소리다! 카무챠는 흉측한 송곳니를 드러내며 불쾌감을 표했다. 대체 어떤 미친 인간이 부락에 쳐들어와 동족을 사냥하고 간단 말인가.


표적이 상대적 약자라고 판단을 내린 순간 고블린들은 더이상 소극적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잘 깎아만든 돌창과 독침 세 줄, 대롱과 뼈로 만든 피리, 마지막으로 호흡기에 장애를 유발하는 꽃가루 한 줌까지. 그들은 단단히 무기를 챙겨들고 길을 나섰다.


카무챠가 꾸린 추격대의 고블린은 자신을 제외한 다섯 마리. 이 정도도 과분했지만 그들은 신중했다. 괜히 어설픈 복수를 꿈꾸다 더 큰 손해를 보고 싶지 않았다. 확실하게 놈의 숨통을 끊어놓으리라.


"라 파르!"


쫓아라. 찾아내라. 잡아라. 비슷하지만 다른 뜻의 언어를 내뱉으며 고블린 추격대가 로이트의 흔적을 뒤따라가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제대 전까진 원활한 연재가 불가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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