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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만은 하얗게 되고 싶은 까만늑대의 책방

비검(非劍)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Blackwolf
작품등록일 :
2013.02.18 22:47
최근연재일 :
2018.06.19 06:38
연재수 :
27 회
조회수 :
8,998
추천수 :
122
글자수 :
313,295

작성
13.02.18 23:04
조회
563
추천
8
글자
5쪽

프롤로그 - 0

DUMMY

이따금 어두운 공간에서 촛불이 위태롭게 흔들린다. 곧이어 머리에 넝마 같은 천을 뒤집어쓴 누군가가 나타나자, 바람이 세차게 분 것처럼 주홍빛 불꽃은 마지막 몸부림을 치며 사라진다.


쩝- 쩝-


메마른 입에 끈적한 침을 꼴깍거리며 입맛을 다신 괴인이 하얀 연기를 뿜는 촛불 옆에 털썩 주저앉는다. 촛불은 세 갈래 촛대 중앙에 외로이 있었고, 보기 드문 화려한 보석 장식이 있었다. 촛대 밑으로는 낡아빠진 원형 탁자가 있고, 그 옆엔 삐걱거리는 나무 의자가 괴인의 몸을 떠받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인식하게 해주는 희미한 푸른 달빛은 창문으로 추정되는 네모 반듯한 공간에서 새어나오고 있었다.


괴인은 한참 입맛을 다시더니 손을 들어 자신의 입을 문질러댔다. 그리고 몇 번 더 쩝쩝거리고는 기운 빠지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야기의 시작을 하자면…. 으음…. 그래.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겠군."




가래가 뒤섞인 목소리가 잠시 끊어졌다가 이어진다.




"어디, 어디…. 그가 이 나라… 어디냐…. 기사학교? 그래, 기사학교. 거기에 있었을 적이지."




그는 헛기침하며 목에 걸린 걸 긁어내고는 탁자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또래랑 한창 어울려야 할 나이에 그게 무언고 하니, 잔심부름, 막일, 구타…. 하물며 자기보다 약한 애들한테도 멸시를 받았었지…. 그래, 그땐 그랬지. 홀홀."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옛날이야기를 해주는 듯한 말투였지만, 막상 그 자리에서 들었다면 소름끼치게 갈라지는 목소리에 기겁하면서 일어났을 것이다.


괴인은 한참 동안 낄낄거리더니 촛대의 장식을 손톱으로 긁적거리며 말하였다.




"그때 내가 무슨 일을 했었는지 궁금하지 않나?"




….




"이잉…. 대답이 없구만. 그럼 말해주지. 난 그의 가까이에서 변화를 지켜봤고, 또 그걸 도왔어. 어때, 이제 슬슬 궁금해지지?"




장난기 가득한 그의 말에 그 누구도 답하지 않았다. 괴인은 무안한듯 헛기침을 내뱉었다.




"위장이 참 힘들었어. 그 늙은이 몸 속에 들어가는 것도 곤욕이였지만 계속 그 안에서… 아, 이게 아니지…. 그래, 당신은 그의 과거 행적을 좇기 위해서 나를 찾았지. 아니, 잡아왔다가 맞겠지?"




다시 입맛 다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꽤 고난을 겪었으면서도 스스로 너무 낙천적이어서 그걸 드러내지 않았어. 치욕스럽고, 엿 같아도 말이지. 이런, 실례. 욕설은 그다지 안 좋아하지?"




….




"저런, 저런. 이제 슬슬 답해주는 것이 어떤가. 나도 혼자 말하는 거 같아 무안하구만."




그러자 괴인의 정면의 어둠 속에서 손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 손은 검지를 세워 가로 선을 반복해서 그었다.


계속 이야기하란 뜻이었다.


괴인은 혀를 끌끌 찼다.




"뭐, 자네 상황도 이해하겠네만…. 흠흠. 자, 어디…. 그도 슬슬 꾹꾹 눌러담은 것에 한계가 왔지. 기억하나? 렘피룬트 살인사건. 그게 그가 벌인 일이었고, 그 증거를 말소시킨 게 나였어. 말했잖나? 그의 변화를 지켜봤고, 그걸 도왔다고. 그는 증거가 사라져 범인을 잡을 수 없는 그 살인사건을 겪고 비로소 깨어난 거야. 진정한 그가 말이지!"




괴인은 두 손을 들어 올려 무언가를 떠받치듯 행동하였다. 그 모습은 참으로 기괴하면서도 헌신적인 것이 어느 사이비 종교의 광신도와 같았다.




"상상이 가나! 그토록 염원하던 것을, 평생을 바쳐 꿈꿔왔던 것이 실현되는 걸…! 바로 눈앞에서! 지켜본다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도 흐느낄만한 것인지!!"




탁자를 쾅쾅 두드리며 침까지 튀기며 말하는 그의 연설에도 상대방은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그는 천재야…. 재능을 가졌다고! 그리고 나는 그걸 단박에 알아봤지…. 그리고 나는…!"




그가 목청을 높이다가 갑자기 멀뚱히 자리를 앉았다.




"이런, 내가 너무 흥분했구만. 적당히 해도 좋았는데 말이야."




괴인은 능청스럽게 아까 일은 모른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더니 깍지를 끼고 탁자 위에 상체를 얹어놓았다.




"그래…. 말 그대로 적당히 해도 좋았겠지."




뭔가 의미심장한 말을 하려는 건지, 그는 한껏 목소리를 낮췄다.




"슬슬 궁금하지 않나…? 이제껏 벌어진 사건, 내가 말했던 재능 말이야…."




그는 몸을 좀 더 굽혀 탁자 위로 내밀었다.




"그건 말이야…."




괴인이 뭔가를 중얼거림과 동시에 바깥에서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괴인의 앞에서 허둥지둥 움직이는 소란이 벌어졌다.




"알겠나?"




그는 그렇게 말하고서 의자 등받이에 몸을 한껏 기댔다.




"이제 가보는 게 어떤가. 난 다 말해주었네. 자네가 할 일을 해야지. 아! 그리고 날 인질로 잡아갈 생각은 하지 말게나. 소용도 없거니와…날 그리 잡아둘만한 역량도 안 되보이니 말이야…."




여유로운 웃음과 함께 폭발 소리가 계속 들려왔고, 어둠 속에서 손 하나가 나와 탁자를 강하게 내려치더니 그대로 빨려 들어갔다. 괴이는 한껏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새어나오는 달빛을 바라보았다.




"시간 끌기도 끝이로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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