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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범 님의 서재입니다.

강철의 종

웹소설 > 자유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지니범
작품등록일 :
2020.04.27 10:05
최근연재일 :
2020.10.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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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1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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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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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암흑기의 끝

DUMMY

"전주 이씨의 나라.. 전주 이씨의 나라.. 전주 이씨의 나라!!!!"


김좌근은 거의 발작을 하며 집안의 기물을 때려부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어떻게 되었길래 저 어린 왕이 금군별장을 갈아치울 때까지 자신에게 아무런 기별도 없고. 또 뒤늦게 알아차렸음에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대체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천지신명이 자신을 선무당으로 만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너무 오만했던 것인가?


생각해내야 했다. 그래야만 이 가문을. 아니. 자신의 목숨 하나라도 건질 수 있을테니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파해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조선에서 왕이라는 존재는 말 그대로 최고존엄. 조선의 만백성 위에 군림하는 절대자였다. 그런 절대자가 눈에 거슬리는 존재를 치우겠다는데 무슨 의견이 필요하단 말인가?


"하다못해 군대라도 동원할 수 있었다면...!"


병권을 쥐면 뭐하는가? 군대를 움직일 명분이 없는데. 이미 이하응이 퍼트린 소문으로 세도 가문의 몰락이 머지 않아 찾아올 것이라고 믿는 백성들이 반이요. 나머지 반은 가까운 시일 내에 망할 것이라고 믿는 백성들이 반이었다.


백성들의 여론이 이럴진대 군대를 몰아 왕을 위협한다? 그거야말로 자살행위였다. 군인들은 왕에게 충성하지 세도 가문에게 충성하지 않았다. 그들은 물론 그들의 가족도 세도 가문의 횡포에 시달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것이 죽음의 공포란 말인가? 곧게 뻗은 수염은 어느새 땀에 젖어 미역줄기처럼 변했고. 새햐안 의복에는 어느새 회색의 빛이 뻗어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김좌근을 자신의 추한 몰골을 돌아볼 수 없었다. 어느새 머나먼 곳에서부터. 지척까지. 자신의 것이 아닌 발자국 소리와 서슬퍼런 쇠사슬 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것이 바로 군주의 기쁨이라는 것인가? 아직 작게 난 수염이 바들바들 떨리는 것 같고. 붉은 곤룡포에 새겨진 용에서 붉은 안광이 튀어나올 것 같다.


"크하하! 으하하하핫!"


절로 웃음이 나왔다. 과거에는 그렇게 노력해도 몰아낼 수 없었던 세도 가 놈들을 이렇게 일망타진 할 수 있다니. 새삼 과거의 자신이 얼마나 한심했는지 깨달을 수 있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이제 도성으로 밀려들 선비들 중에서 개화파. 그 중에서도 머리가 좋은 자들을 뽑아 나랏일을 논의해야지. 이 조선이 다른 나라에게 삼켜지지 않도록 말이다.


"도승지. 있는가?"


"예에. 전하. 하문하소서."


"과인이 세도 가문들을 일거에 쓸어버렸으나 아직도 마음이 갑갑하기만 하다. 하여 내가 백성들에게 널리 퍼질 어명을 작성해야겠으니. 종이와 붓을 들고 오도록 하라."


"예에. 전하."


이윽고 도승지가 한지와 붓을 들고 왔다. 사각사각 벼루에 먹을 가는 소리가 어찌나 그리웠는지 모른다.


잠시 숨을 고른 후. 나는 붓을 들어 나의 백성들에게 전할 말을 써내려갔다.


-대조선국 제25대 국왕인 이변이 전한다. 과인이 덕이 없어 아래로는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지고. 위로는 나라의 곳간이 비어 나라의 구실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지난 날 큰 병을 앓은 뒤 열성조의 선왕들께서 꿈 속에서 과인을 엄히 꾸짖으시니 어찌 용상에 오른 자로서 백성들을 굽어살피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여 나는 군을 몰아 도성에서 도사리던 세도 가문들을 일거에 몰아내었다. 그 광경은 무릇 장엄하고 통쾌하였으나. 과인을 도와 나랏일을 도맡을 이들이 없기에 과인의 근심은 끊이지가 않는다.


우리의 바다에 이양선이 들끓고 양이들이 통상을 요구하는데. 저들의 기물은 우리보다 훨씬 진보되어 있으며 저들의 군대는 강력하기 그지없다. 척화는 곧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라 말하는 자들도 있으나. 자신보다 우월한 것을 배우지 않는다면 이게 나라를 팔아먹는 게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제 곧 과인의 군대가 조선팔도를 돌며 백성들을 괴롭한 탐관오리들을 잡아내어 일망타진할 것이니. 뜻 깊고 학식 있는 선비들은 과인의 뜻을 받들어 한양으로 상경하라!-


*


김좌근을 비롯한 세도 가문의 거두들이 처형된 다음 날. 금군별장이 이끄는 10만명의 군인들이 전국을 순회하며 탐관오리를 잡아들이는 거룩한 사명을 띠고 도성을 떠났다.


본래 정원은 5만명이었지만.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정원의 2배가 되었다고 한다. 나는 잠시 고민했지만. 사람은 많을수록 좋았으니 결국 허가하기로 했다.


그 와중에 이 한양에만 10만개가 넘는 조총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으니. 결과적으로는 좋은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금군이 조선을 좀먹고 있는 벌레들을 소독하러 간 사이. 나는 도성에서 가장 기물들을 잘 만들기로 소문난 장인들을 불러모아 서역의 군대가 쓰는 총. 미니에 라이플의 설계도를 보여주었다.


"이건... 참으로 놀라운 조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하. 화약 접시도 없으니 병사들이 화승을 관리할 필요도 없을 것이고. 새로운 탄을 적용한다면 과연 화약의 힘을 더 잘 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과인이 보기에 이 새로운 형식의 총을 만드는 데에서 어려운 부분은 총열에 강선을 새기는 것과 뇌관을 만드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맞는가?"


"안타까우나 그렇사옵니다 전하. 이 뇌관이라고 하는 것에는 화약 대신 기폭약을 넣어야 하는데. 전하께서 말씀하신 뇌홍이라는 것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다면 정말 국방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실로 그러하다. 뇌홍을 만드는 법은 내가 이미 너희들에게 전하여주었으니. 남은 것은 이 총을 대량으로 생산할 장소와 기계를 갖추는 일일 것이다. 다행히도 역적들의 재산을 압류하여 남는 것이 땅과 자원이니. 그대들은 아무런 걱정 없이 제자들을 모아 신형 소총을 만들기 위해 전력을 다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고려 시대 최무선이 화약을 국산화한 후 조선인들은 500년의 시간동안 조총을 잘 써먹어왔다. 강선의 존재는 물론 효과까지도 알고 있었으나. 그것을 대량으로 생산할 재정이 되지 않아 강선을 새긴 조총을 생산하지 못했을 뿐이다.


게다가 지금까지 조선이 조금 심하게 국방에 관심이 없었으니. 아마도 조금만 늦었다면 강선이 뭔지도 모르는 장인들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 다음으로는 이제 대포의 차례다. 소총과는 달리 대포를 개량하는 방법은 굉장히 어려웠다. 강철로 포신을 만들고 강선을 새긴 다음 작열탄과 같은 특수 탄종을 만들어야 하니 말이다.


그러나 조선이 무슨 나라인가. 바로 공밀레의 나라다. 소총을 만들었으면 이제 대포도 만들어야지.


*


"아이고 제발 살려주십시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그럼 죽어야지! 쌀에 모래와 돌을 섞어 준 주제에 어디서 목숨을 구걸해!"


"우리 아버지는 죽은지가 오랜데 군역을 져야 한다고 말한 놈이! 죽여라! 죽여!"


지방 순회를 떠난 금군은 이번 달만 해도 수천명의 탐관오리들을 잡아죽였다. 아주 그냥 조선의 선비란 선비들은 모조리 씨를 말릴 작정으로 말이다. 서원이든 관아든 어명을 받았는데 명령에 불응한다면 총병들이 불벼락을 내릴 뿐이었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 감히 지방의 백성들을 보호하고 바른 길로 이끌어야 할 목민관이 제 영달에 눈이 멀어 백성들이 피폐함이 극에 달하였으니! 그 죄가 하늘을 가릴 정도로 크니 어찌 중벌을 피할 수 있으랴!"


"아이고 나으리! 제발! 제발 자비를!"


"시끄럽다! 저 자에게 1천대의 곤장형을 내려라!"


"그렇지! 이게 나라다! 이 탐관오리야!"


"그 곤장 내가 치게 해주시오! 제발! 돈이라도 내겠소!"


굶주린 백성들이 광기에 휩싸인 채 백성정서법으로 처결을 내리는 광경은 혼란스러웠지만 나름의 질서가 있었다. 그렇게 왕의 군대는 백성들에게 이제 이 조선도 바뀔 것이라는 일말의 희망을 안겨준 것이다.


*


세도 가문을 몰아내고 주상을 도와 나랏일을 하려는 이들을 뽑으려는 특별 과거 시험이 시작되자. 그동안 재야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선비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여 과거 시험장으로 몰려들었다.


옛말에 이르기를 시대가 나쁘다면 벼슬하지 말고 숨어살며. 시대가 찾아오면 밖으로 나가 나랏일을 하는 것이 선비의 덕목이라 하였으니. 저들도 그 말을 충실히 따르는 선비들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의기양양하게 시험지를 펴든 선비들의 손은 빳빳히 굳을 수밖에 없었다.


부들부들


붓을 든 선비의 손이 떨렸다.


과거 시험의 문제로 출제된 것은 고작 3개에 불과하였지만. 단 한 문제도 풀지 못한 것이다.


1. 자신이 알고 있는 서역의 국가를 5개 이상 적으시오.


2. 서역의 군대가 조선을 침공하였을 때 취해야 할 전술.전략적 행동을 적으시오.


3. 조선의 근대화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적으시오.


"도저히...!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조선을 부강하게 만들겠다는 꿈을 안고 상경했지만 안타깝게도 서역에 대해서만큼은 무지한 선비들은 절망하며 붓을 꺾을 수밖에 없었다.


평생동안 공맹의 도를 닦으며 자신을 수련해왔던 선비들이 눈물을 흘리며 꺼이꺼이 우는 것을 본 민초들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궁금해했지만. 당사자들이 말해주지 않으니 추측만이 무성해질 뿐이었다.


그러나 어딜 가나 일부는 빛을 발하는 법. 거르고 거른 끝에. 마침내 철종의 마음에 드는 답을 적어내는 자들이 속속 나타나기 시작했다.


1. 자신이 알고 있는 서역의 국가를 5개 이상 적으시오.


-미리견. 영길리. 보로서. 화란. 노서아-


2. 서역의 군대가 조선을 침공하였을 때 취해야 할 전술.전략적 행동을 적으시오.


-최대한 정면 싸움을 피하고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보급로를 끊고 적의 지휘부에 타격을 준다.-


3. 조선의 근대화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적으시오.


-서역의 물질들은 비록 사학의 교도들이 만들어내었지만 그 이치가 자뭇 신비하고 백성들에게 큰 도움이 되니 서역의 무리들을 잘 타일러 문물들을 만드는 법을 알아낸다면 아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우리 조선에 이리도 인재가 없는 것인가? 이번 달에만 무려 2만명이 넘게 시험을 쳤는데 합격자가 고작 476명이라니!"


"송구하옵니다 전하. 전하께서 친히 내신 문제가 선비들에게 너무 어려운 듯 하옵니다."


"그리 어려운 문제도 아니다. 아니. 오히려 나랏일을 하려면 꼭 알아야 할 것들을 추리고 추려서 고작 3개의 문제로 낸 것인데. 그것조차 통과하지 못한다면 나랏일을 하면서 녹을 받을 자격이 없다."


"지당하신 말이옵니다 전하."


철종은 조급해하고 있었다. 눈을 감으면 태극기가 아니라 일장기가 떠오르는 듯 했고. 주위를 둘러볼 때마다 경복궁이 아닌 조선 총독부가 보이는 듯 했기 때문이다.


세도 가문을 몰아냈다고는 하나 아직 조선을 갈길이 멀었다. 근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국내의 경쟁력을 키워야 하는데 그것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으니 점점 마음 속이 곪아가고 있는 것이다.


"전하께서 서역의 도당들과 서로 통교를 하여 나라를 부강케 하려는 책략을 갖고 계심은 익히 알고 있사오나. 안타깝게도 이 아국은 타국과 통교를 하지 않은 지 수십년이 지나 전하가 원하시는 인재는 찾기 어려우실 것이라 아뢰옵나이다."


도승지가 머리를 숙이며 대꾸하자. 철종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 참아야 했다. 아직은 이 조선이 날개를 펴고 날아오를 수 없었다.


작가의말

꼭 그러잖아요. 시험범위 밖에서 문제 나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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