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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범 님의 서재입니다.

강철의 종

웹소설 > 자유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지니범
작품등록일 :
2020.04.27 10:05
최근연재일 :
2020.10.05 06:00
연재수 :
6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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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0
글자수 :
311,201

작성
20.04.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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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다시 돌아오다.

DUMMY

"전하께선 어떠신가?"


1849년 8월 18일. 본래 역사였다면 이제 국무를 돌보아야 할 철종은 온몸이 비틀리는 괴상한 괴질과 투쟁하고 있었다.


대관절 무엇이 문제였는가. 무엇이 멀쩡한 사지를 뒤틀리게 하고. 무엇이 왕의 입에서 피가 뿜어져나오도록 했는가.


고명하다는 의원들이 연이어 찾아와 사지를 붙들고 맥을 짚고 침을 놓고 탕약을 지어 올렸지만 그 무엇도 효험이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오히려 답답해진 것은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를 비롯한 세도 가문들이었다.


이미 대가 끊긴 것이나 마찬가지인 헌종의 자식인 강화도령을 어떻게든 보위에 올렸는데 즉위한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괴질에 시달리고 있으니. 그들의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욕지기가 나오려 했다.


왕실의 권위가 땅에 추락했다고 하나 무릇 주상이라 함은 이 조선의 국부이자 억조창생의 주인. 세도 가의 그 권력도 모두 왕의 눈을 속여가며 얻은 것이었으니. 금상마저 괴질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그들의 굳건해보였던 권력에도 금이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찌 의원이라 자부하는 자들이 괴질 하나 치료하지 못하는 것이야! 그러고도 도성에서 침술의 박 의원이라 자부할 수 있겠는가!"


"죄송합니다 대감. 하지만 저로서도 금상의 질병이 대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으니.."


결국 오늘도 조선의 영의정 직을 지내고 있는 안동 김씨의 수장인 김좌근은 애꿏은 의원 하나를 질타하며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지금 금상이 겪고 있는 기괴한 질병이. 초월자가 다시 전생시킨 철종의 정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부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고는 생각치도 못하고 말이다.


*


우득! 그드득!


"....!....!...."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온 몸이 끊어지는 듯 아프고.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다만 희뿌옇게 변한 시야에 보이는 익숙한 천장이 회귀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미 사지의 뒤틀림은 멎은 지 오래였지만. 혹사당한 몸뚱아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거칠게 호흡을 내쉬어야 했다.


후욱. 후욱.


마치 가위에 눌린 것처럼. 의식은 뚜렷한 데 반해 몸을 움직일 수가 없으니 죽을 맛이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나는 타들어가는 갈증을 참지 못하고. 찢어진 듯한 성대를 울려내었다.


"게 누구 있느냐...!"


"아니.. 세상에..! 전하! 전하께서 깨어나셨다! 전하! 옥체는 괜찮으시옵니까?!"


이 목소리는 도승지의 목소리였다. 아아.. 참으로 그리운 목소리로구나.


"도승지.. 나를 좀 일으켜주게나."


"아니되옵니다 전하. 어찌 신이 옥체에 손을 댈 수 있겠사옵니까! 서둘러 어의를 대령하겠사오니. 전하께서는 마음을 편히 가지시어 병마를 물리치시오서."


"그래... 물...물 좀 가져다주겠나?"


"서둘러 대령하겠나이다."


종종걸음으로 침실에서 나간 도승지가 얼마 지나지 않아 따뜻하게 끓인 물을 가져왔다. 이왕 차가운 물이었다면 좋았겠지만. 나는 아직 병자이니 일단 끓인 물을 마셔야겠지.


꿀꺽! 꿀꺽!


그렇게 사발 하나에 가득 담긴 따뜻한 물을 단숨에 비우고 나니 졸음이 쏟아졌다. 젠장.. 아직 자면 안되는데... 뭐라도.. 뭐라도 정신을 차릴 게 없나?"


"도승지.. 과인이 아직 몸이 허한 듯 하구나. 무엇인가 몸을 보신할만한 것이 있는가?"


"어의가 올린 탕약이 있사옵니다. 아직 지어 올린 지 이틀이 지나지 않았으니. 아직 그 약효가 남아있을 것이옵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가져오거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도승지가 물러나자 나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내가 본 시간대.. 1945년 8월 14일까지의 기억들이 눈 앞에 아른거려 눈조차 감기 어려웠다. 아니야... 다시는.. 다시는 조선을 식민지로 전락하게 두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초월자에게 한 맹세이자. 나에게 한 맹세이자. 이 조선의 만백성에게 올린 임금으로서의 맹세다. 그렇게 감았던 눈을 뜨자. 어느새 김이 모락모락 나는 탕약 한 그릇이 나의 눈 앞에 보였다.


그것을 주욱 들이키자. 씁쓸한 맛이 입안 가득히 퍼지면서 잠시동안 몸을 지배했던 졸음을 완전히 패배시켰다. 얼굴을 찌푸리면서 탕약을 비운 나는. 힘겹게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도승지에게 말했다.


"도승지. 내가 깨어났다는 사실을 누가 아느냐?"


"저와 궁인들 일부이옵니다. 헌데. 그것은 어찌 물으시는지요?"


"아니다.. 지금.. 지금이 무슨 년이더냐?"


"올해는 기유년이옵니다."


"그런가. 아직 해가 지나지 않았구나. 다행이로다."


"전하께서 무사히 깨어나심은 실로 이 조선의 홍복이라 할 수 있사옵니다. 서둘러 옥체를 보령하시고 조회를 열어 문무백관들에게 전하의 건재함을 보이소서."


도승지는 감격에 겨운 듯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그래. 내가 죽기 전에도 너는 나에게 충성을 다했었지. 이제는 그 변치 않았던 충성을 보답해줄 시간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해야 할 일이 있다.


*


"에헤라디야~ 저 달 밝은 것 보니 오늘은 운수가 좋으려니! 상평통보 하나 걸고 장기를 두기 딱 좋은 날이로다!"


한양의 육조거리에서 홍조를 띄우며 술주정을 부리는 이가 흥선대원군. 다시 말해 이하응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그저 술에 잡아먹힌 어리석은 필부로 보거나. 아니면 그저 경멸의 시선으로 그를 보았을 뿐.


"이런 좋은 날에 어찌 술에 취해 있는가? 자네도 행색을 보니 남루하게나마 선비의 반열에 오른 것에 보이건만. 어찌 벼슬자리에 올라 국정을 논하지 않고 이 밤거리에서 술주정이나 하고 있는 것인가."


그 때 이하응의 뒤에서 들려온 의문의 목소리. 힘은 없었지만. 결코 거부할 수 없는 힘이 담겨있는 목소리에 이하응은 그 무거운 목을 뒤틀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말끔한 갓과 흰 의복을 정제한 젊은 선비가 아닌가. 이하응이 생각하기에 저 젊은 선비는 막 꿈을 안고 상경하였는데 보이는 것은 밤에 뜬 달을 보며 흥청망청 술주정을 해대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유자로서 꾸짖으려 하는 것이리라. 하고 생각했다.


"어느 집 댁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몸은 이래뵈도 종친이오. 이하응이라는 이름 석자 들어보지 못하셨는가? 나라의 지엄한 국법이 종친은 벼슬을 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으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이렇게 종친의 지위를 빌어 놀고 먹다가 천수를 누리다 가는 것이니. 젊은 선비께서는 한낮 필부따위에게 관심일랑 두지 말고 가시구려."


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문장은 이하응의 인생 굴곡을 표현한 것이라고 봐도 좋았다. 종친이라면 아무리 옅어도 이 자는 왕실의 사람이다라고 나라가 보증하고 있을진대 자신을 일개 필부로 칭하고 젊은 선비를 높여주는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이 조선이라는 나라에 환멸을 느끼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라의 국법이 그러하다면. 어째서 그것을 바꿀 생각은 하지 않는가? 선왕들께서 국법의 토대를 혼자서 만드셨는가? 경국대전은 제 혼자서 만들어졌는가?


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법을 바꾸려 들거나 법이 들지 않는 한적한 곳에서 유유자적 난이라 그리면서 선비로서 수양할 것이지. 어찌 아낙네들도 다니는 육조의 거리에서 종친이라는 얇은 껍질 하나를 두르고 술주정이나 부리고 있는 것이야?"


울컥.


대화가 이렇게 흘러가니 이하응도 사람인지라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본래 그의 성질이라면 '허허 그것 참'이라고 넉살 좋게 받아치고 뒤에서 보부상에게 엽전 하나 쥐여준 후 도성의 입성식을 거하게 치뤄주었겠지만. 때마침 달도 밝았고 술을 먹었다는 적당한 핑곗거리도 있었다.


"너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구나! 이 도성에 적을 둔 자들이 누구에게 의탁하는지 아느냐? 왕이 아닌 안동 김씨에. 풍양 조씨에. 반남 박씨에. 달성 서씨에. 연안 이씨에. 경주 김씨에. 풍산 홍씨에. 남양 홍씨에. 여흥 민씨에. 해평 윤씨에. 양주 조씨에 의탁한단 말이다!


주상의 은혜를 제들의 높은 옷자락으로 가리고. 조선이 제 날개를 펴지 못하도록 학의 날개를 꽉 붙들고 있는 저 나라의 빈대같은 놈들이 이미 이 조선의 권신들이 되었으니. 아무리 종친이라 해도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허면.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소."


"..."


"왜 대답이 없소이까? 그렇게 세도 가문들의 이름을 들먹이면서 울분을 토하는 것을 보면 이 나라를 일으켜 세울 비책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틀렸소?"


"그건...!"


"아니면 그저 나의 가치를 세상이 몰라준다고 투정만을 부린 채 술에 빠져 일생을 낭비하는 일개 필부일 뿐인가? 정말 네가 뭘 하고 싶은 지 모른단 말이냐!"


"나는... 나는 저 썩어빠진 조정의 중신이라는 것들의 목을 메달고 싶다. 저들의 고혈을 짜내어 이 조선의 척박해진 땅에 뿌려 다시 땅을 비옥케 하고. 저들이 가져갔던 농민들의 땅을 다시 백성들에게 돌려주고 싶단 말이다!


이름만 남아있는 군대를 다시 일으켜 세워 안팍의 도적 떼들이 감히 이 나라의 종묘와 사직을 우스이 알지 못하게 하고. 버려지고 무너진 성곽들을 예전보다 더 웅장하게 복원하고 싶단 말이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나는 힘없는 일개 종친일 뿐인데... 나 혼자 어찌 저 수많은 노회한 늑대들을 상대한단 말인가.. 어찌.."


이하응은 어느새 거리의 한복판에서 꺼이꺼이 울고 있었다. 이미 사람들이 전부 집에 들어간 시간이라 다행이지. 안 그랬다면 한 동안 사람들의 눈에 찍혔을 것이다.


그가 땅을 치자 눈시울에 넘실거리던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것을 본 젊은 선비는 그에게 다가가. 갓을 벗어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려주었다.


*


"주상 전하 납시오!"


"""주상 전하! 기체후 일향만강 하시옵소서!"""


내가 다시 용상에 앉자 수많은 대신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과연 저 중에 진정으로 나의 몸을 걱정해주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더 나아가. 이 조선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는 자가 얼마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다시 몸에 열이 오르는 느낌이다. 하지만 고작 열이 오른다는 핑계로 이 자리를 파할 생각은 없다. 그럴수록 저 늙은 악귀들에게 트집만 잡힐테니.


나는 최대한 인자한 미소를 지은 채. 역겨운 자들에게 미래의 욕인 가운뎃 손가락 세우기를 날려주었다.


웅성웅성.


난생 처음보는 형태의 어수가 나타나자 신하들이 술렁거렸다.


"크흠! 전하께서 취하신 어수의 형태는! 가운뎃 손가락은 무릇 다섯 손가락 중에서 가장 크니 이는 마치 금상의 위엄을 뜻하는 듯 하고. 그 양 옆으로 솟은 다른 손가락은 산의 옆에 나 있는 줄기들을 뜻하니.


이는 곧 금상께서 이 나라의 준엄한 기개가 서린 산맥이라 칭하시는 것이오. 우리 대신들은 그 산을 이루는 봉우리라 뜻하시는 것이외다."


잘한다 도승지. 역시 꿈보다 해몽이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는 대신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 나의 눈에 밟히는 것은 영의정의 자리에 앉아있는 김좌근. 가장 먼저 저 자를 처리하지 않는다면 나는 영원히 꼭두각시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저 자에게 결코 대답할 수 없는 난제를 내릴 것이다.


"영의정."


"예. 전하. 하문하시오소서."


"삼정의 문란이 무엇을 뜻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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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흑귀부대 +3 20.09.09 1,280 20 12쪽
52 漢의 이름으로. +3 20.09.08 1,230 2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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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원래 전쟁은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는 법이란다. +7 20.09.02 1,240 2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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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시산혈해 +3 20.08.31 1,241 21 12쪽
47 우리는 전쟁을 할 것이다. +4 20.08.26 1,341 21 12쪽
46 동해보복 +2 20.08.25 1,361 27 12쪽
45 음지의 전쟁 +3 20.08.24 1,276 1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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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남방에서의 개전. +2 20.08.11 1,416 20 12쪽
42 도움! +2 20.08.10 1,381 24 12쪽
41 착한 제국주의 +3 20.08.05 1,520 25 12쪽
40 개화된 아시아. +3 20.08.04 1,565 2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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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천하무산자합일! +3 20.07.22 1,676 18 12쪽
37 인민의 제국 +6 20.07.21 1,710 24 12쪽
36 문명국의 군대. +3 20.07.20 1,654 22 12쪽
35 황제 폐하를 위하여! +5 20.07.15 1,718 23 12쪽
34 1달간의 여정. +1 20.07.14 1,664 22 12쪽
33 구원의 대가. +2 20.07.13 1,642 20 12쪽
32 차이점 +3 20.07.08 1,705 2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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