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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산책

사랑의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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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글산책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6
최근연재일 :
2023.09.14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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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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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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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13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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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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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49화 희망을 보다

DUMMY

그가 선택한 혈자리는 족양명위경(足陽明胃經)의 족삼리혈(足三里穴)이다.


한방치료에셔 가장 많이 활용하는 혈자리 중 하나이다.


족삼리는 무릎관절의 바깥쪽에서 수직으로 3촌을 내려가서, 전경근(前脛筋:앞정강근)과 장지신근(長指伸筋)사이의 깊은 곳에서 취혈한다.


족삼리는 수기에 뛰어난 한의사라면 발가락 끝으로 침향을 보내 득기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마음 먹은 곳이라면 어디든지 침향을 보낼 수 있는 경지에 올라있었다.


눈 밑의 승읍혈(承泣승읍혈)로도, 지창혈((地倉穴) 로도, 하관혈(下關穴)로도 보낼 수 있다.


특히 입꼬리 약간 옆의 지창혈과 턱부위의 하관혈은 지현이 화상을 입은 부위이기 때문에 이 혈로 침향을 보내 득기하는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지현씨. 침 놓을게요.”


그는 족삼리에 자침했다.


거침없이.


제법 굵은 침이라서 통증이 만만치 않을 텐데. 그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침술이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음을 새삼 깨달았다.


자침으로 인한 통증이 없다는 것은 침을 제대로 놓은 것이다.


염전법(捻轉法)!


그는 침을 시계방향으로 천천히 돌리면서 밀고 들어갔다.


보법(補法)과 사법(瀉法)의 효과가 작동하지 않게 조심하면서.


5밀리까지는 부드럽게 들어갔다.


조금 더 들어가야 한다.


그가 원하는 깊이는 8밀리에서 9밀리 사이의 어느 지점이었다.


7밀리.


8밀리.


그가 원하는 곳에 도달했다.


그러나 그가 원하는 곳이 아니었다.


그녀의 표정이 이를 말해주고 있었고, 그의 손 끝 감각이 아직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사람마다 약간의 차이는 당연히 있는 법이다.


그는 좀더 밀고 들어갔다.


9밀리.


그는 다시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이번에도 그가 기대하는 표정의 변화는 없었다.


‘다른 사람에 비해 약간 깊은 곳에 있나?’


그는 조금 더, 아주 조금 더 밀고 들어갔다.


서두르지 않았다.


부드럽게.


아주 부드럽게.


음!


그녀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됐다!


찾았다.


그가 원하는 단 한 점, 바로 그 한 점이었다.


그는 수기를 시작했다.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한 수기!


유연하면서도 거침이 없는 수기였다.


“지현 씨.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해요. 아, 아니. 말하기 힘들면 눈만 깜빡거려도 돼요. 맞으면 눈만 깜빡, 아니면 그냥 가만있으면 돼요. 알았죠?”


그녀는 눈을 한 번 깜빡거렸다.


“자! 지금 짜릿한 느낌이 턱쪽으로 가나요? 귀 앞쪽으로요?”


하관혈을 말하는 것이다.


그녀는 눈을 깜빡거렸다.


제대로 걸린 것이다.


그는 수기를 계속했다.


손끝으로 만족스런 느낌이 전해졌다.


5분 정도 수기를 한 후, 그는 다른 곳으로 침향(針向)을 보냈다.


지창혈로 침향을 보내기를 원하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뺨 옆이에요. 어때요?”


그녀는 이번에도 두 눈을 깜빡거렸다.


그는 그가 원하는 대로 침향을 보냈고 원하는 대로 득기(得氣)했다.


그러자 그녀의 왼쪽 뺨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습윤드레싱위로도 꿈틀거림이 감지됐다.


“지현씨. 지금 어때요? 좋아요?”


그녀는 눈을 깜빡거렸다.


“아주 좋은가요? 아주?”


그녀는 또 눈을 깜빡거렸다.


그는 수기를 계속했다.


이번에는 10분이 넘게 했다.


그런 다음 발침했다.


“지현씨. 오늘 치료는 여기까지. 수고 했어요.”


그녀도 눈을 깜빡거렸다.


그는 치료를 마친 후 그녀의 매니저를 외진 방으로 불렀다.


마 대표도 따라왔다.


“지현씨, 하루 종일 어떻게 지내는지 말해줄 수 있나요? 치료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그녀는 마 대표의 눈치를 슬쩍 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딱히 드릴 말씀도 없어요. 그냥 하루 종일 말은 한 마디도 안 해요. 안 하는 건지 못 하는 건지 분간을 할 수 없을 정도로요.”

“먹는 건요?”

“거의 안 먹어요. 물도 잘 안 마시는 걸요.”

“그러면 안 되는데. 안 먹으면 회복도 느리고 자칫 탈수 현상이 오면 큰일 나요.”

“제가 야채나 과일을 갈아서 드려도 거의 그대로예요.”

“병원에 다시 입원해서 수액이라도 맞자고해도 말을 안 들어요.”


마 대표가 거들었다.


“병원에는 안 가겠대요.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게 싫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아무튼 언니는 원장님한테만 치료받고 싶어 해요.”

“그리고 또요.”


매니저는 뭔가를 말하려다가 말았다.


“내가 모르는 무슨 일 있었어? 눈치 볼 거 없으니 속 시원하게 말해도 돼.”

“사실은 어제 언니가 극단적인 행동을 했어요.”

“뭐? 극단적인 행동이라면? 죽으려고 했단 말이야?”


마 대표가 펄쩍 뛰었다.


“제가 화장실에 갔다 오니까 언니가 주방에 있는 칼로.”

“세상에!”

“제가 언니에게 달려들어 겨우 칼을 뺐기는 했는데. 아휴! 지금 생각해도 아찔해요. 원장님.”


화상환자에게 우울증은 자주 나타나는 후유증이다.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도 드물게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녀처럼 정신적인 충격이 이렇게 빨리 나타나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다.


“그래서 집에 있는 위험한 물건은 제가 다 숨겨놓기는 했는데, 또 이런 일이 있을까봐 무서워 죽겠어요. 대표님.”

“아무 일 없을 거야. 원장님이 다 고쳐주실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마 대표가 매니저를 다독였다.


하지만 마 대표의 걱정이 매니저보다 덜한 건 아니었다.


마 대표가 운전하는 차는 그를 태운 채 도로를 주행하고 있었다.


“원장님. 시장하시죠? 이 근처에서 저녁식사하시고 댁으로 들어가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괜찮습니다. 지현씨가 저러고 있는데 밥이 넘어갈 것 같지가 않네요. 지금 먹으면 체할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그의 아파트 앞에 도착할 때까지.


밤 11시.


뒤늦게 배가 고팠다.


냉장고를 열어보았다.


캔 맥주가 눈에 들어왔다.


연거푸 두 캔을 마셨다.


허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잠을 자기 위해서였다.


그녀에게서 문자와 왔다.


-오늘 수고 많았어요. 고마워요. 준영씨.-

-여태 안 자고 있었던 거예요?-

-잠이 안 와요. 생각이 많아지네요.-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쓸데없는 생각들일 거예요. 지금 지현씨한테 중요한 건 잘 먹고 잘 자는 거예요. 그리고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는 거. 그거면 충분해요. 다른 건 다 필요 없어요.-

-나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그럼요. 당연하죠. 나 오늘 지현씨 치료하면서 확신이 들었어요. 아! 내가 고칠 수 있겠구나, 하는 그런 확신이요! 그러니 나만 믿어요.-

-고마워요. 이젠 편안하게 잘 수 있을 거 같아요. 준영씨도 잘 자요.-

-지현씨도요.-


#


다음날.


그는 어제 자침했던 혈자리는 다 생략하고 족삼리에만 자침했다.


어제와 같은 방법이었는데. 족삼리는 생략하고 싶지 않았다.


왼쪽 빰의 화상치료에 꼭 필요한 혈자리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몇 군데 혈을 추가했다.


얼굴의 화상 치료도 급하지만 왼쪽 손의 회복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손에 물도 담그지 못하고 세수도 하기 어렵다.


일상생활에서의 불편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손의 구축현상을 막아야한다는 것이다.


구축현상이 진행되기 전에 막아야지 진행 되고나면 되돌린다는 게 매우 어렵다.


어쩌면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니 지체할 일이 아니었다.


수태양소장경(手太陽小腸經)의 후계혈(後谿穴)와 수궐음심포경(手厥陰心包經)의 내관혈((內關穴)!


그는 이 두 혈을 수기할 대상혈로 정했다.


후계혈은 요통, 다섯 손가락의 연급(攣急)에 큰 효험이 있다.


연급이란 근육과 관절이 오그라들면서 뻣뻣해지는 증상을 말한다.


그러니 지현에게는 필수 혈인 셈이다.


내관혈은 흉통, 위통, 구토, 편두통에 활용할 수 있고, 일부의 갑상선 기능항진증에도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이 내관혈도 그녀의 수관절과 근육기능을 활성화시키는데 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


이래저래 후계와 내관, 이 두 혈은 그녀의 치료에 아주 중요한 혈이다.


“지현씨. 오늘은 손에 침을 놓을 거예요.


그녀는 눈을 깜빡거렸다.


후계혈에 자침하는 데는 걸림돌이 하나 있었다.


화상치료에 아주 중요한 습윤드레싱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침치료에 방해가 되는 것이다.


습윤드레싱이 후계혈을 덮고 있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침치료를 마무리한 후 다시 드레싱을 해주면 되기는 한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드레싱위에 자침할 생각이었다.


자신이 있었다.


일반적으로는 혈자리를 잡을 때 왼손으로 혈자리 주변을 더듬고 오른손으로 침을 놓게 된다.


그러나 그는 왼손을 사용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자칫 그녀의 환부를 건드릴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보이지 않는 후계혈에 한 손으로 침을 놓았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성공적이다.


단 한 번에 보이지 않는 후계혈에 정확하게 자침했다는 느낌이 그의 손끝에 전해졌다.


그는 이번에도 수기를 시작했다.


수기라면 그 누구보다 잘 할 자신이 있었다.


아니!


사실은 독보적인 경지에 이르렀다고 확신했다.


다만 드러내놓고 큰소리치지 않을 뿐이었다.


그는 먼저 침향을 손바닥 쪽으로 보냈다.


그의 손끝에서 침향이 손바닥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 왔다.


그는 그녀의 눈빛을 살폈다.


‘내가 느끼는 것을 그녀도 느끼고 있을까?’


그녀도 느끼고 있었다.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눈빛이 그걸 말해주고 있었다.


그녀가 숨을 쉴 때마다 오르내리는 가슴이 말해주고 있었다.


그는 보았다.


그녀의 손이 꿈틀거리는 것을!


그는 이어 침향을 손가락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후계혈에서 가장 먼 엄지손가락에서부터 검지를 거쳐 새끼손가락까지 골고루.


어느 한 손가락 소홀함이 없이 정성을 다해.


“지현씨. 어때요? 손바닥 쪽이 따뜻하지 않나요?”


“으음.”


그녀는 신음과도 같은 소리를 내더니 동시에 눈을 깜빡거렸다.


그는 이번에는 손등으로 침향을 보냈다.


“지금은요? 손등으로 느낌이 오죠?‘


그녀는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따뜻한 느낌, 기분 좋은 느낌?”


그녀는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발침 후 잠시 쉬었다가 내관혈에 자침했다.


내관혈은 수근횡문(手根橫紋)의 정중앙에서 팔꿈치방향으로 2촌(寸:손가락 두 마디) 올라온 자리이다.


그는 다시 수기를 한 다음 자침했다.


그리고 그는 영도혈과 신문혈에 자침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영도혈(靈道穴)은 수소음심경(手少陰心經)의 혈로서 정신적인 불안증을 해소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그는 이것으로 그 날의 치료를 마쳤다.


#


치료를 시작한 지 나흘 째 되는 날이었다.


“원장님. 이거 어떡하죠? 회사에 갑자기 일이 생겨 오늘은 모시러 못 갈 것 같은데요.”

“괜찮습니다. 저 혼자 택시타고 가면 됩니다. 염려하지 마세요. 대표님.”


그는 퇴근 후 며칠 째 지현의 집을 들락거렸지만 피곤한 줄을 몰랐다.


오로지 그녀를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겠다는 집념만이 가득했다.


그가 집으로 들어서자 지현의 매니저가 반갑게 맞았다.


“어서 오세요, 원장님.”


느낌이 좋았다.


매니저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표정도 어제보다 눈에 띄게 밝아졌기 때문이었다.


“원장님. 언니가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그래요? 그걸 어떻게 알아요?”

“저 지금 열흘 넘게 언니하고 붙어살고 있잖아요. 저도 환부를 못 봐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느낌이 그래요. 아니에요. 맞아요.”

“습윤드레싱은 누가 해줘요? 매니저님이 해주시는 거 아니었어요?”

“아니에요. 언니가 직접 해요. 병원에 있을 때는 의사 선생님이 직접해주셨는데 집에 와서부터는 아무한테도 환부를 보이고 싶어 하지 않거든요.”


그게 탑스타의 자존심인가?


아니면 여자의 자존심인가?


그는 한편으로는 그녀를 이해하면서도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그는 지현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치료를 시작한 후 처음 보는 눈빛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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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9화 희망을 보다 +1 23.09.13 778 22 12쪽
148 148화 화상 +1 23.09.12 739 23 12쪽
147 147화 사고 +1 23.09.11 791 25 12쪽
146 146화 족집게 +1 23.09.10 795 24 12쪽
145 145화 이별 +1 23.09.09 837 24 12쪽
144 144화 구설수 +1 23.09.08 826 24 12쪽
143 143화 사주(四柱) +1 23.09.07 834 23 12쪽
142 142화 질투 +1 23.09.06 838 22 12쪽
141 141화 서울에 온 리주하 +1 23.09.05 844 23 12쪽
140 140화 침마취 +1 23.09.04 837 23 12쪽
139 139화 계획 변경 +1 23.09.03 901 26 12쪽
138 138화 우리 화장품 윤지현씨 얼굴에 좀 바릅시다 +1 23.09.02 890 25 12쪽
137 137화 리진 회장의 딸 리주하 +1 23.09.01 927 23 12쪽
136 136화 중국으로 가다 +2 23.08.31 914 23 12쪽
135 135화 재기 +1 23.08.30 948 23 12쪽
134 134화 돈 갖고 튀었다 +1 23.08.29 925 22 12쪽
133 133화 야구선수 양재원 +1 23.08.28 937 21 12쪽
132 132화 소매치기 야구선수 +1 23.08.27 944 25 12쪽
131 131화 베풀면서 돈 잘 버는 허준영 +1 23.08.26 963 25 12쪽
130 130화 악몽 +1 23.08.25 966 23 12쪽
129 129화 퇴원하자마자 또 입원 +2 23.08.24 997 24 12쪽
128 128화 위장이혼 +1 23.08.23 993 24 12쪽
127 127화 교통사고 +1 23.08.22 1,005 23 12쪽
126 126화 엿이나 먹어라 +1 23.08.21 1,027 24 12쪽
125 125화 광고모델 허준영 +1 23.08.20 1,052 22 12쪽
124 124화 장사꾼 +1 23.08.19 1,040 24 12쪽
123 123화 리진 회장 +3 23.08.18 1,048 2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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