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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산책

사랑의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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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글산책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6
최근연재일 :
2023.09.14 09:10
연재수 :
15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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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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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804,667

작성
23.08.23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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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글자
12쪽

128화 위장이혼

DUMMY

건물주가 바로 옆옆 건물에 있는 한의원으로 들어가는 걸 여러 번 봤다는 말을 일층 백반집 진혜리가 전해준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녀의 전언에 신경 쓰지 않았다.


서운해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누구든 한의원을 선택할 권리는 있는 법이다.


“사장님. 오셨어요?”


그는 건물주에게 깍듯이 인사했다.


“예. 점심 드시고 오시나보네요, 원장님?”

“예. 잠시만 기다리시겠어요? 금방 봐 드릴 게요.”


#


그가 이곳에 개원한 이후로 두 달쯤 후 5층과 4층 입주자가 연이어 문을 닫고 나갔다.


“안 그래도 장사가 안돼서 힘들어 죽겠는데, 건물주가 세를 올려 달래요. 월세를 내려줘도 문 닫을 판에 코로나 시국에 올리겠다니! 이게 말이 돼요?”


결국 입주자 두 분은 재계약을 포기하고 나갔다.


두 점포가 오랫동안 공실로 있자 똥줄이 탄 건물주는 월세를 10% 낮췄다.


그래도 몇 달 동안 문의조차 없었다.


그러자 추가로 또 10% 낮췄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세입자가 나타나지 않다가 얼마 전 4층에 새 임차인이 들어왔다.


“이 주변에 나만큼 양심적인 건물주는 없을 겁니다. 정말 싸게 들어오신 겁니다.”


건물주는 새 세입자에게 그렇게 자기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러나 백반집 진혜리의 생각을 달랐다.


“여기 한의원이 잘 되기 시작하니까 우리 식당에도 손님이 늘었고, 죽었던 건물이 살아나서 그런 거예요. 건물주는 자기가 싸게 내놔서 세가 나간 줄 알더라고요. 치이.”


“아유, 제가 뭘요. 코로나도 이젠 많이 잠잠해졌잖아요. 그래서 그런 걸 거예요.”


그는 그렇게 겸손하게 말했지만, 그녀가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계약만료를 압둔 3층 세입자는 얼마 전 이런 말을 했다.


“건물주가 월세를 올려 재계약하자고 해서 고민이에요.”


한의원 덕분에 건물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4, 5층이 한동안 공실 상태로 애를 먹었던 것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다시 욕심이 발동한 것이었다.


#


“하하. 이 근처 한의원 중에 원장님이 환자가 제일 많네요. 이 동네 돈은 원장님이 다 쓸어 모으시네요. 하긴 이 근처에서 이만한 건물도 없죠.”


그는 건물주의 자랑에 어이가 없었지만 못 들은 척했다.


“돈을 많이 쳐줄테니 이 건물 팔라는 사람들 전화가 얼마나 오는지 귀찮을 정도입니다. 하하하.”


그 때 정은실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허리는 좀 어떠세요?”


침구실 침대에 있는 환자들이 다 듣는 것이 민망해서, 그는 화제를 돌리고 싶어서 그렇게 물었다.


“어제 하루 맞았는데도 많이 좋아졌습니다. 하여튼 원장님 침은 다른 한의사들 침하고는 확실히 달라요.”


건물주가 그를 대하는 태도가 전과는 달라도 많이 달랐다.


한의원 계약이 만료되면 나가겠다고 할까봐 전정 긍긍하는 것이다.


“내일이나 모레쯤 다시 골프 치러 나갈까 생각중입니다.”

“요즘도 골프 자주 치시나봐요?”

“일주일에 서 너번 정도요. 그거라도 치니까 살지 안 그러면 무슨 낙으로 사는지 모르겠어요? 원장님 언제 같이 한 번 나가시죠?”

“저는 아직 골프 못 배웠습니다.”

“예? 아니, 요즘 골프 안 치는 사람도 있나요? 원장님보다 못한 사람들도 다 골프 치는데 안 치신다니 까∼암짝 놀랐습니다.”

“제가 다른 데 관심이 많아서, 골프는 천천히 배우려고요.”

“골프는 꼭 하십시오, 원장님. 안 그러면 사회생활하기 힘들거든요.”

“예. 알겠습니다.”


#


그가 진료실에서 환자에게 투약할 처방을 구성하고 있는데, 노크소리가 났다.


“네에, 들어오세요.”


정은실 씨가 들어왔다.


“아! 어르신. 오늘부터 모텔에서 투숙하시고 식사도 꼭 챙겨 드셔야 합니다.”

“예. 원장님.”

“그리고 모레 예약 잡아 놨으니까 치료 받으러 꼭 오시고요.”

“예. 원장님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정은실 씨는 잠깐 망설이더니 말을 이었다.


“그리고 원장님. 조금 전에 치료받던 남자 분이요. 원장님한테 골프는 꼭 하라던 분이요. 그 분 황종우 씨 맞죠?”

“예. 맞습니다. 아시는 분이세요?”

“이 건물주인 이고요?”

“예. 들으셨나보네요.”

“허어! 세상에!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오네.”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정은실 씨를 쳐다보았다.


“황종우. 그 사람 차에 치여서, 제가 지금 이 꼴이 된 거예요, 원장님.”

“아아! 예에.”

“그 놈이 가해잡니다. 황종우. 제가 이름도 얼굴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 몸을 망가트린 놈인데 어떻게 기억을 못 하겠습니까? 눈 감을 때까지는 그 놈을 못 잊어요, 원장님.”


정은실 씨는 한숨을 푹 내쉰 다음 또 말을 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돈도 많은 사람이 책임보험 밖에 안 든대 다가 합의금을 그것 밖에 안 줘? 자기는 가진 거라고는 그 똥차하고 29만원 밖에 없다면서요. 그 똥차라도 처분해서 합의금 줄 테니 한 번만 봐달라고 사정사정해서 봐줬는데.”


29만원!


어디서 듣던 소리다.


“사실은 그 때 그 사람 입에서 술 냄새도 살짝 났거든요. 동병상련이라고. 같이 어려운 처지에 돕고 살자싶어 그 정도에서 합의를 봐줬더니, 세상에! 허이구, 나 참.”


건물주에 대해서는 백반집 진혜리에게 들은 말이 있었다.


궁금하지도 않았지만 일층 백반 집을 자주 가다보니 자연히 알게 된 것이었다.


“우리 건물주 고액 탈세자예요. 얼마나 탈세를 밥 먹듯이 했는지 국세청에서도 징수하러오고, 서울시에서도 오고, 구청에서도 오고요. 아무튼 탈세가 취미예요, 취미. 우리 식당에도 한 번씩 와서는 밥값도 안 내고 그냥 가기도 하고 그래요. 목구멍으로 밥값 달라는 소리가 치밀어 올라도 어쩌겠어요. 건물주가 조물주보다 더 높다는데요.”


그는 그런 사정까지는 몰랐다.


진혜리의 말을 듣고 보니 생각나는 게 있었다.


한의원 계약할 당시 건물이 황종우 씨의 부인이름으로 등기되어 있었다.


임대차계약이라고는 처음 해봐서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다.


“저도 확실한 건 모르지만 소문에 의하면, 두 사람이 위장이혼 했나보더라고요.”

“위장이혼이요? 왜요?”

“탈세하려고요.”

“예? 말도 안 돼.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세금 안 내려고 위장이혼을 한다고요?”

“아이고, 원장님은 공부만 해서 그런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시네요. 그런 경우 종종 있대요.”

“전에 우리 한의원에 두 분이 같이 오셨는데 사이가 나쁘지 않은 것 같던데요?”

“부부 속사정이야 알 수 없는 거고요. 아무튼 위장 이혼하고도 같이 해외여행도 다니고 골프도 치러 다니고. 그러는 거보면 참 대단한 사람들이에요.”


건물주 부부는 차가 세 대다.


그가 본 것만 해도 그렇다.


두 대는 수 억짜리 외제차인데, 한 대는 낡고 오래된 국산 소형차였다.


중고차 시장에 내놔도 접수 거부당할 정도로 심하게 낡은 차였다.


‘이상한 일이네! 저 똥차는 뭐야?’


수억 짜리 외제차와는 너무 안 어울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냥 그러고 말았다.


그런데 진혜리의 말을 듣고 보니 이해가 됐다.


두 대의 수 억짜리 외제차가 진짜고, 낡은 국산 소형차는 대외홍보용인 셈이었다.


‘이 똥차하고 29만원이 내 전 재산입니다.’


탈세를 위한 위장차인 셈이었다.


그리고 정은실 씨가 바로 그 위장 똥차에 받혀 몸이 망가진 것이었다.


“자기 전 재산이 이 똥차하고, 현금 29만원 밖에 없다며 빌려서 합의금을 줄 테니 좀 깎아 달라고 애걸복걸하더니! 야아! 이것 참. 아니, 원장님. 제가 멍청한 겁니까? 그 사람이 연기를 잘 하는 겁니까? 기가 차네. 기가 차.”


#


이틀 후.


정은실 씨가 내원했다.


“오셨어요? 몸은 좀 어떠세요?”


그는 침구실에서 나오며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있는 정은실 씨에게 물었다.


“원장님 침이 마술 같아요. 침을 한 번씩 맞을 때마다 확확 좋아지네요.

침 맞는 재미가 제법 쏠쏠해요. 호호.“

“아, 다행입니다. 조금만 가다리세요. 금방 봐 드릴 테니까요.”

“아유. 급하신 분부터 봐 드리세요. 저는 하나도 급할 게 없으니까요.”


10분 후.


대기실 쪽이 소란했다.


정은실 씨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건물주가 목소리를 높였다.


‘무슨 일이지?’


그는 일하다말고 대기실로 나갔다.


‘아! 세상에!’


정은실 씨가 건물주에게 목발을 마구 휘두르고 있었다.


“이 나쁜 놈. 죽어라 이놈.‘


건물주는 그녀가 휘두르는 목발을 피하고 있었다.


연세에 비해 건강 상태가 심하게 나쁜 정은실 씨가 휘두르는 목발은

건강 상태가 아주 좋은 건물주에게 위협적이지 않았다.


말이 휘두르는 거지 그냥 정은실 씨 혼자서 허우적거리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정은실 씨.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정은실 씨가 다시 목발을 휘두르는 순간, 그는 그녀의 팔을 잡았다.


정은실 씨는 목발을 놓치고 말았다.


그녀의 손을 벗어난 목발은 건물주의 오른쪽 어깨를 살짝 스친 다음 바닥에 떨어졌다.


건물주는 잠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안도하는 표정으로 변했다.


목발이 전혀 위협적이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건물주는 다시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아악!”


그는 비명을 지르더니 바닥에 넘어졌다.


“으아아악! 아이고, 나 죽네. 사람 죽네에에에∼.”


헐리우드 액션!


굳이 축구심판이 아니라도 할리우드 액션임은 쉽게 알 수 있었다.


목발이 오른쪽 어깨를 살짝 스칠 때는 오히려 안도하는 표정을 짓다가, 상황 판단을 마친 몇 초 후 비명을 지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는 쓰러져 있는 건물주에게 다가갔다.


“어르신. 괜찮으세요?”

“아악! 아이고 어깨야. 어깨가 아파 죽겠어요. 아무래도 뼈가 부러진 거 같습니다, 원장님.”

“제가 한 번 보겠습니다.”


그는 건물주의 오른쪽어깨에 손을 댔다.


“아악! 만지지 마세요, 원장님. 뼈가 부러졌는데 만지면 어떡합니까?”

“아, 죄송합니다.”

“아아, 아파 죽겠어. 아무래도 안되겠습니다. 119 불러주세요. 큰 병원에 가야겠어요.”


건물주의 속셈이 빤히 들여다보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차 선생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차 선생은 119에 전화했다.


“저 놈의 여편네.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엉?”


건물주는 의자에 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정은실에게 따졌다.


“이놈아. 나를 모르겠냐? 내가 네 놈 똥차에 치여 몸이 망신창이가 되었는데, 날 기억도 못해?”


건물주는 그제야 정은실 씨를 알아보았다.


“아아. 그 여자? 그렇구나!”

“이 나쁜 놈. 저 놈이 날 이렇게 만들어놓고 합의금을 얼마 줬는지 알아요?”


정은실은 기다리던 환자들에게 들으란 듯이 소리쳤다.


“이백만 원. 보험금 빼고 겨우 이 백만 원 줬어요. 이 나쁜 놈이.”


“어쨌든 합의 봤잖아? 합의 봤으면 그걸로 끝난 거지 이제 와서 왜 이래?”

“네 놈이 나한테 뭐랬어? 가진 거라고는 똥차하나하고 현금 29만원 밖에 없다고 했잖아. 그런 놈한테 어떻게 더 달라고 해? 이, 사기꾼 같은 놈아.”

“뭐? 사기꾼? 당신 지금 나한테 사기꾼이라고 했어?”

“그래 사기꾼이라고 했다. 왜? 이렇게 큰 건물도 갖고 있으면서, 뭐? 29만원? 이런 놈이 사기꾼이 아니면 어떤 놈이 사기꾼이냐?”

“말 다했어? 너, 고소할거야. 폭행죄, 명예훼손죄. 내가 당신 다 걸어서 콩밥 먹이고 말테니 각오해”

“그래. 콩밥 먹여라, 이놈아. 나, 콩밥 좋아하니까 먹여라, 이 천하의 사기꾼 같은 놈아.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야.”


정은실 씨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판사판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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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141화 서울에 온 리주하 +1 23.09.05 844 23 12쪽
140 140화 침마취 +1 23.09.04 837 23 12쪽
139 139화 계획 변경 +1 23.09.03 901 26 12쪽
138 138화 우리 화장품 윤지현씨 얼굴에 좀 바릅시다 +1 23.09.02 890 25 12쪽
137 137화 리진 회장의 딸 리주하 +1 23.09.01 927 23 12쪽
136 136화 중국으로 가다 +2 23.08.31 914 23 12쪽
135 135화 재기 +1 23.08.30 948 23 12쪽
134 134화 돈 갖고 튀었다 +1 23.08.29 925 22 12쪽
133 133화 야구선수 양재원 +1 23.08.28 937 21 12쪽
132 132화 소매치기 야구선수 +1 23.08.27 944 25 12쪽
131 131화 베풀면서 돈 잘 버는 허준영 +1 23.08.26 963 25 12쪽
130 130화 악몽 +1 23.08.25 966 23 12쪽
129 129화 퇴원하자마자 또 입원 +2 23.08.24 997 24 12쪽
» 128화 위장이혼 +1 23.08.23 993 24 12쪽
127 127화 교통사고 +1 23.08.22 1,005 23 12쪽
126 126화 엿이나 먹어라 +1 23.08.21 1,027 24 12쪽
125 125화 광고모델 허준영 +1 23.08.20 1,052 22 12쪽
124 124화 장사꾼 +1 23.08.19 1,040 24 12쪽
123 123화 리진 회장 +3 23.08.18 1,048 2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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