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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산책

사랑의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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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글산책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6
최근연재일 :
2023.09.14 09:10
연재수 :
150 회
조회수 :
254,608
추천수 :
4,233
글자수 :
804,667

작성
23.05.10 10:20
조회
4,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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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글자
12쪽

1화 납치

DUMMY

납치됐다.


준영은 자신을 납치한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눈이 가려져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사실은 강력한 회오리의 중심으로 빨려 올라간 것이다.


당시 그는 반포의 고속버스 터미널 근처를 걷고 있었다.


그 곳은 사람들의 발길로 항상 붐비는 곳이다.


그가 거대한 회오리의 중심으로 빨려 올라갈 때도 붐볐다.


그러나 그는 혼자만 공중으로 솟구쳤다.


주위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마치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가던 길을 갈 뿐이었다.


그러니 그는 누군가가 자신을 납치해서 하늘로 끌고 올라갔다고 짐작했다.


#


그의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


잠시 후 그는 허공에서 땅바닥으로 추락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이 정도 높이에서 떨어졌다면 죽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멀쩡했다.


땅바닥에 떨어질 때 고급 침대위에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있었고, 다시 한 번 허공으로 살포시 튕겨 올랐다가 떨어진 게 전부였다.


통증?


그건 통증이라기보다는 촉감에 가까웠다.


그는 천천히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용인 민속촌인가?’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에게 다가왔다.


옆구리에 칼을 찬 무관복(武官服)의 남자.


그 뒤로 포졸복을 입은 남자들.


그는 이런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조금 전까지 고속버스 터미널 근처를 걷던 내가 용인 민속촌이라니! 이게 말이 돼?’


공간 이동?


그러나 그는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 있을 수 없었다.


관복차림의 무리들이 그의 바로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었기 때문이다.


“이름을 말하라.”


그들 중 우두머리인 것 같은 자가 물었다.


“허준영입니다.”

“음. 맞구먼. 데리고 가자.”


포졸들이 그의 팔을 잡고 어디론가 끌고 가려했다.


“왜들 이러세요? 이거 놔요.”

“아, 설명을 해 달라? 그래. 자넨 칠십 여년을 이곳에서 살다가 죽어서 환생한 걸세. 현세에서 삼십 여 년 전에.”

‘환생! 내가 환생을 했다고?’


헛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지금은 한의사. 맞지?”

“예. 한의사인건 맞습니다.”

“뭣들 하는가? 어서 이 자를 데리고 가자. 일각이 급하다는 거 모르는가?”


무관복의 남자가 명령을 내렸다.


“여기 민속촌 아닙니까?”

“민속촌? 그런 건 모르겠고, 난 중전마마의 오라비 장희재. 네가 꼭 필요해서 이곳으로 데려온 것이다. 어의는 물론 내의원의 의관들이 하나같이 자네를 조선 최고의 명의하고 하더군. 그래서 자네를 이리 끌고 온 거네. 사전에 상의도 없이 끌고 와서 그건 좀 미안하게 됐네.”


그는 뿌듯함을 느끼며 전생의 허준영을 떠올려보았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러면 전생에 제가 허준이었나요? 동의보감을 집필하신 그 허준선생이요?”

“이걸 그냥 콱.”


무관복의 남자는 칼집에서 칼을 꺼내려다가 참았다.


“내가 방금 말했잖아! 허준영이었다고. 너, 내가 말할 때 안 들었지?”

“칼은 꺼내지 마시요.”


장희빈은 숙종과의 사이에 두 아들이 있었다.


그 중 첫째 아들 윤이 숙종의 뒤를 이어 임금의 자리에 오르게 되는데, 그가 바로 경종이다.


그는 지금 훗날 보위에 오르는 어린 세자 윤에게 가고 있었다.


장희재가 궁으로 그를 끌고가면서 말해줬다.


“아니, 저하께서 배가 아프다면서 온 방을 떼굴떼굴 구르는데 사람 미치겠더라고.”

“배가 아픈 이유가 뭐래요?”

“그걸 모르니까 자네를 데려 온 거 아닌가! 아무튼 내의원의 내로라하는 의원 놈들 중에 이러이러해서 그렇습니다. 이렇게 이렇게 고치면 됩니다, 하고 속 시원하게 나서는 놈이 한 놈도 없으니, 에이, 밥버러지 같은 놈들.”

“허 참. 아니 아저씨. 내의원 의원들도 모르는데 제가 그걸 어떻게 압니까?”


앞서 가던 장희재가 험한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난 서울의 한의사 허준영을 데리고 가는 게 아니라 조선 제일의 명의 허준영을 데리고 가는 거라고. 환생 후에는 어떤지 모르지만, 한 때 자네는 조선 최고의 명의였거든.”

“예? 아저씨. 환생이라는 게 있다고 믿으시는 겁니까? 환생은 저기 그냥 웹소설에나 나오는 거지. 환생은 무슨 환생! 개뿔.”


그는 걸음을 멈추더니 몸을 돌려 왔던 길을 가려고 했다.


“나 안가. 나 집에 갈 거야.”


장희재가 그의 목에 칼을 들이밀었다.


“저하의 목숨이 달린 문젠데 내가 곱게 보내 줄 거라고 생각하나? 그럴 거면 여기까지 끌고 오지도 않았지. 거의 다 왔네. 뛰어. 지금 이 순간 세자 저하께서는 사경을 헤매고 계실 텐데.”


장희재는 무서운 얼굴을 그의 눈앞에 한 번 들이민 후 다시 안간 힘을 다해 뛰었다.


허튼 수작 부릴 생각은 하지 말라는 경고임은 뻔하다.


그도 뛰었다.


‘난 죽었다. 저하의 병을 못 고치면 난 죽는다. 아우 씨이. 무슨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있어?’


#


아아악. 아악!


동궁 전에 들어서자마자 어린 사내의 비명이 귀를 찔렀다.


“세자아아아. 세자!”


그에 못지않게 앙칼진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때 마당을 서성이던 사내 하나가 다가왔다.


“이 사람을 알아보겠는가?”


장희재의 물음에 준영은 사내를 찬찬히 살폈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 낯설지가 않네요.”


사내는 그에게 큰 절을 올리더니,


“오랜만에 뵙습니다, 스승님. 소인 임치두이옵니다.”


임치두.


그는 허준영 밑에서 십 여 년이 넘은 세월동안 온갖 궂은일을 마다않고 의술을 배운 자였다.


지금은 내의원 의관으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던 자였다.


“차림새가 많이 달라 몰라 뵙겠습니다만 스승님 맞으시지요?”


그는 대답하기 애매해서 엉뚱한 곳만 바라보았다.


“세자 저하는 어떠신가?”


장희재가 임치두에게 물었다.


“말도 마십시오. 사경을 헤매고 계십니다. 어서 들어가시지요. 중전마마께서 목이 타게 기다리고 계십니다.”


장희재는 마루로 오르더니 세자 윤의 방문을 벌컥 열었다.


“아이구, 오라버니. 왜 이제야 오신 게요? 우리 세자 죽고 난 뒤에 오실 참이오?”


세자 윤은 끝도 없이 비명을 지르며 방바닥을 떼굴떼굴 구르고 있었다.


“마마. 제 딴에는 최대한 빨리 데리고 온 겁니다.”

“알겠소, 이보시게 허 의원. 어서 우리 세자를 봐주시게. 내 피가 마르는 것 같소.”


중전마마는 만인위에 군림하는 왕비가 아니라 한낱 어미의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그는 몹시 부담스러웠다.


그는 일단 중전 앞에 팍, 엎어졌다.


“마마. 소인은 세자저하를 살릴 수 있는 의술을 갖추지 못했사옵니다.”

“이보시오, 허 의원. 그대 눈에는 아파 죽겠다며 떼굴떼굴 구르는 우리 세자가 안 보인단 말이오? 세자를 살릴 궁리는 안하고 무슨 말이 그렇게 많은 것이오.”


그는 보고야 말았다.


중전마마의 눈에서 불꽃이 튀는 것을.


그리고 목에 핏줄이 솟아오르는 것을,


움켜쥔 주먹에 힘줄이 서는 것을.


그리고 한 가지 더 보고야 말았다.


중전마마의 시선이 장희재가 들고 있는 칼로 잠깐 넘어갔다가 다시 그에게로 돌아오는 것을.


이래저래 죽음을 면하기 어려웠다.


‘그래, 맞아! 나는 조선 최고의 명의 허준영이다!’


그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 먹자 자신감이 솟구쳤다.


“저하. 배가 언제부터 아프셨사옵니까?”

“아 몰라. 안 그래도 아파 죽겠는데 왜 말 시키고 그래.”

“그러니까 어젯밤 자시(밤 11시에서 그 다음날 새벽 1시)경부터 일 겝니다.”


중전마마가 대신 답했다.


“저하께서 평소 매화는 잘 보셨는지요?”


매화?


영화 <광해>에서 본 것 같다.


임금의 대변을 매화라고 한다는 것을.


‘그런데 세자의 대변도 매화라고 하나?’


아니면 매화봉오리?


“잘 보긴요. 잘 보면 사흘에 한 번, 어떨 땐 닷새만에 염소 똥만큼 볼 때도 있소.”

“처음엔 명치 아래가 답답하다고 하지 않았는지요? 메슥거려 토할 것 같다는 말씀도 하셨을 텐데요?”

“맞습니다. 허 의원 말씀 그대롭니다.”

“통증이 윗배에서부터 점점 아래로 내려갔고요. 열도 나고요?”

“예, 그렇습니다. 아이구, 세상에! 참으로 용하시오.”


중전마마의 표정의 한층 밝아졌다.


“그러다가 차츰 오른쪽 아랫배가 아파왔을 것이옵니다.”

“허 의원께서 말씀 하신 그대롭니다.”


그는 세자 윤을 반드시 눕힌 다음 아랫배를 만졌다.


“이 손 치워. 씨이, 안 그래도 아파 죽겠는데. 씨이.”

“세자. 허의원이 세자의 병을 고쳐주려고 진료를 하는 것 아닙니까. 이러시면 안 됩니다.”


중전마마가 세자를 달래도 소용없었다.


그는 세자의 손을 밀어낸 다음 아랫배를 눌렀다.


“아아악. 만지지마. 어마마마. 이 자는 날 살리려는 게 아니라 죽일 작정인가 봅니다. 안 그래도 아파 죽겠는데 거길 누르면 어쩝니까?”

“이러지 마세요, 세자. 허 의원이 병태를 살펴야 치료를 하지요. 아프더라도 조금만 참으세요. 이 에미 속이 다 타들어갑니다.”


그는 진단이 끝났다.


“마마. 장옹(腸癰: 충수염)입니다.”

“장옹! 어의(御醫)도 장옹이라 했소. 한데 문제는 고칠 자신이 없다며 물러난 게 문제이지요.”


중전은 몸을 그의 앞으로 바짝 붙이며 물었다.


“허 의원은 고칠 수 있는 게지요? 어의는 못 고쳐도 허 의원은 고칠 수 있는 게지요? 많은 의관들이 조선 제일의 명의라고 추켜세울 정도면 뭐가 달라도 다르지 않겠소.”


상황이 이쯤 되면 기가 죽을 법도 한데 그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중전마마. 장옹에는 급한 장옹이 있고 덜 급한 장옹이 있사온데, 지금 세자 저하의 병태가 어느 쪽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습니다.”

“급한 장옹과 덜 급한 장옹이 치료방도가 다르오?”

“예, 그렇사옵니다. 급하지 않으면 탕제로 치료가 가능하고 침으로도 가능합니다.”

“탕제와 침으로! 그건 허 의원이 자신 있소?”

“수 십 번 치료해본 경험이 있어 어렵지 않습니다.”

“급한 장옹이라면요?”

“급한 장옹이라면 당장이라도 터질 수 있습니다. 그리 될 경우 터진 악액(惡液)이 복막으로 흘러들어가게 됩니다. 당연히 복막이 곯아 큰 위험이 닥칩니다.”

“큰 위험이라면 어떤 위험을 말하는 것이오?”

“송구하옵니다만 목숨을 잃게 됩니다.”

“모, 목숨을 잃어? 우, 우리 세자가 죽는단 말이오?”

“그렇습니다, 마마.”

“세상에! 말도 안 돼.”


중전은 뒤로 넘어갈 뻔 하다가 겨우 중심을 잡았다.


“마마. 괜찮습니까?”

“오라버니라면 괜찮겠습니까? 세자가 죽게 된다는데요.”


중전은 있는 대로 성질을 부렸다.


“급하면 어찌 해야 하고요? 치료방도가 없다는 말은 하지 마시오. 내가 미치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치료방도가 있기는 합니다만······. 그게 좀······.”

“어떤 방도요?”

“급한 장옹은 수술을 해야 합니다.”

“수술? 수술이 뭐요?”

“세자 저하의 배를 갈라 곯은 부위를 도려내야합니다.”

“뭣이라! 배를 갈라?”


중전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세자를 한 번 쳐다보았다.


“이보시오, 허 의원. 산 사람의 배를 가른다고요?”

“급한 장옹은 수술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찰싹!


중전의 손이 그의 뺨을 후려갈겼다.


“마마. 이 무슨?”


뺨을 맞은 그는 물론 옆에 있던 장희재와 임치두도 놀라 어쩔 줄을 몰랐다.


“마마! 고정하십시오.”


장희재의 말에도 중전의 화는 가라앉지 않았다.


“이런 미친놈을 봤나! 이 자가 이제 보니 사람 살리는 의원이 아니라 사람 잡는 백정 놈이 아닌가!”


중전이 패악을 부려도 그는 항의 한마디 할 수 없었다.


“마마! 이놈을 죽여주십시오.”


그는 중전 마마 앞에 엎드려 그렇게 간청할 수밖에 없었다.


작가의말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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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134화 돈 갖고 튀었다 +1 23.08.29 925 22 12쪽
133 133화 야구선수 양재원 +1 23.08.28 937 21 12쪽
132 132화 소매치기 야구선수 +1 23.08.27 944 25 12쪽
131 131화 베풀면서 돈 잘 버는 허준영 +1 23.08.26 963 25 12쪽
130 130화 악몽 +1 23.08.25 966 23 12쪽
129 129화 퇴원하자마자 또 입원 +2 23.08.24 997 24 12쪽
128 128화 위장이혼 +1 23.08.23 993 24 12쪽
127 127화 교통사고 +1 23.08.22 1,005 23 12쪽
126 126화 엿이나 먹어라 +1 23.08.21 1,027 24 12쪽
125 125화 광고모델 허준영 +1 23.08.20 1,052 22 12쪽
124 124화 장사꾼 +1 23.08.19 1,040 24 12쪽
123 123화 리진 회장 +3 23.08.18 1,048 2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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